"그래도 치즈루 쨩 갈아입히는건 푸우 쨩보단 오래 안 걸렸다니까? 협조적으로 나와야 빨리 갈아입는 법이야!"
대충 또 선생들에게 쫓겨서 열심히 둘이 도망쳤다느니, 근데 결국 문예부실까지 쫓아온 바바 선생에게 훈계를 듬뿍 들었다느니. 키타카미가 열심히 늘어놓는 무용담을 적당히 흘려듣고 있는데...
"아참, 푸우 쨩."
"...아아?"
대충 컨디션이 나빠져서 오늘은 돌아가라는 핑계를 대기 딱 적당할 정도로 머리가 아파와서 쫓아내기 수월할 거란 생각을 하던 중이었건만.
"왜, 뭐 때문에 그래?"
"내가, 어제 전단지 나눠주고 돌아올 때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해~?"
...뭐. 혹시 전단지 다 나눠주고, 내가 두고간거까지 나눠줬다는 그 얘기냐?
시큰둥한 목소리에 반응하듯, 키타카미가 '뿌-! 뿌-!' 하고 답지않게 귀여운 소리를 내고는.
"틀렸습니다-!"
"...아, 그럼 뭔데."
"에엑... 정말 기억 안나는거야, 푸우 쨩?"
"...넌 지금 환자에게 기억력을 운운하고 있냐...?"
"딱히 감기정도로 기억력이 감퇴되거나 하진 않잖아?"
"...아 됐으니까 빨리 얘기나 해봐..."
칫, 하고 네가 혀를 차야 되는거냐, 아니면 내가 혀를 차고 전화를 확 끊어버리는게 더 타당한거냐.
물론 지나가는 사람 10명정도 붙들고 물어보면 10명 다 내 편을 들어줄거란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빨리 끝내는 쪽이 편할테니.
"어제, 돌아오는 길에 신입 단원을 물색해뒀다고 내가 그러지 않았어?"
"...아."
키타카미의 미친짓에 휩쓸릴 피해자가 1명 더 늘어나는건가.
"...그래서. 그게 왜."
"그게 왜, 라니?! 당연히 한명 더 데려왔지!"
뭐, 저 녀석 눈에 들면, 상급생인 치즈 언니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끌려와 버렸으니. 동급생 중에 키타카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머리가 더 아파질 거 같으니 적당히 축하하고 전화를 끊어버리자.
"그래, 거 축하한다."
"그렇지? 그래서 드디어 RED단의 단원이 5명 다 모인 것을 축하하고, 서로 제대로 인사해둘 수 있도록! 모두 다같이 해서 푸우 쨩네 집에 가고 있으니까. 지금 거의 다 왔어!"
"...저기, 아무리 그래도 환자인데, 하다못해 내일 학교에서 하는게-"
"안됩니다! 결성 당일에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 잠깐. 야. 얌마-"
...내가 뭐라고 항변하기도 전에 키타카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워낙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황망한 심신을 어떻게 추스려보기 전에...
딩-동- 딩-동-
"네에~!"
...현관문의 초인종소리와 함께, 미라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화음이...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했다.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뜯어 말리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이지 이거...?
>>다음 연재시까지, 다이스와 함께 미라이와 RED단이 마주쳐서 나눌 대화를 적어주세요...!
노노하라는 눈을 감고, 어째선지 모르게 엄청나게 고민하는 눈치. ...뭘 고민하는 건진 전혀 모르겠지만.
"...그, 아카네 쨩이 귀여운 걸 좋아하긴 하고. 또, 귀여운게 엄-청 잘 어울리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
조금 난처하다는 듯 눈을 피한다.
"그, 역시, 아무래도 바니걸 같이 너무 귀여운건 조금... 음, 좀 이르지 않을까! 해서...?"
...호오.
이 녀석, 다른 사람 말을 들은 척도 안하는 녀석이나, 딱히 대화할 생각이 없는 녀석이나, 아니면 뭔가 강압에 어쩔수 없이 있는 사람과는 달리... 자기 주장도 뚜렷하고, 또 적당히 타협을 보며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마 보통의 그룹이었다면 저런 밝고 명랑한 분위기 메이커가 분명 필요하고, 중심이 되겠지.
안타깝게도 여기는 그런게 아니겠지만...
침묵만이 흘러가는 방안의 묘한 분위기에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노노하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설마... 그, 아카네 쨩더러... 지금 입으라는 건...아니겠지...? 그치?"
"아쉽지만, 아직 준비를 못했어!"
키타카미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노노하라. 그러다 헛, 하고 숨을 들이키며-
"그, 그렇...잠깐. 혹시, 어제 오늘 떠들썩했던 그 소문의 바니걸이...?"
-음. 분명 처음 봤을때는 자신만만하고 밝은 미소였는데, 지금은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난 긍정해주고 싶은 의사가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지.
"응! 아카네 쨩의 의상은, 내가 단장으로서 최대한 빨리 구해보도록 할 게!"
"스토오오오옵?!"
...하아... 이런이런...
"...너,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거냐...?"
"아니, 갑자기 질문이 너무 또 시니컬하고 멸시적이지 않아?! 아카네 쨩, 지금 아무렇지 않게 바니걸 의상을 입힌다는 거에서 이미 충격이 꽤 큰데?! 그 이상 데미지를 주면 아무리 아카네 쨩이라해도 버티기 힘드니까?!"
...아, 이런.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어야했는데. 키타카미나 아리한테는 겉으로 내뱉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건만. 어찌보면 이렇게나 내 속내를 드러내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바카네.
여전히 표정변화는 없는 채로, 저렇게 애교섞인 말투로 말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또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미즈. 내가 잘못 들은건가...?
냐아아앗-하고 고양이의 하악질처럼 따지려던 바카네도 순간 벙쪘는지 미즈를 돌아보았고.
"뭐, 그럼! 푸우 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할 정도의 '수수께끼의 전학생'인게 판명되었으니까. 아카네 쨩의 입단을 정식으로 승인합니다! 땅-땅-땅-!!"
"저기, 저기 말이지...? 그거 그냥 없던일로 하고 아카네 쨩은 그냥 돌려보내주면 안될까...?"
음, 어림도 없지. 키타카미가 그런걸 들어줄리가 없어. 아니나 다를까, 손 나팔을 만들고는 뿌-뿌-거리며 기뻐하는 키타카미에게 동생과 미즈가 맞춰 손뼉을 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방안 분위기 속, 조금이라도 반대를 세워줄거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걸 느낀 노노하라는 제발 말려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고-
...저 녀석, 예의바르고 모범적이라고 분명,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말하고 나도 그런 모습을 수없이 봐왔는데. 왜 나한테 화풀이 하는 거 마냥 살살 속을 긁어대는거지...? 내가 저녀석한테 뭐 잘못하거나 한거, 없잖아...?
부아를 치밀게 하는 전화 통화가 끝나고 나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동안, 키타카미는 하던 일을 다 끝마친 모양이었다.
"쨘~ 바니걸 아카네 쨩이야!"
"...우으..."
분명 첫인상은 자신만만하고, 키타카미 같은 자연재해도 거뜬히 극복해낼 수 있을것 같던 노노하라 아카네...였을 터인데. 몸을 움츠리고 부끄러워 하는 지금의 모습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런 기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어... 저 멀리 방 구석까지 날라간 속옷을 보아하니, 키타카미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바카네를 제압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이야기인 듯하다.
"...자, 잘 어울리와요...!"
"그러게. 사실, 아카네 쨩이 좀 더 작은 편이라서 사이즈가 잘 안맞지 않을까 했는데... 아마 아카네 쨩 쪽이 쓰리사이즈가 더 좋아서 그런 쪽에서 적절히 맞춰진게 아닐까 싶어!"
"...어이, 잠깐."
내가 아무리 꾸미는 것 같은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해도, 그래도 여자로서 도저히 그냥 흘려들을수 없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음, 조금 돈이 더 들겠지만... 이렇게나 잘 어울리면 아카네 쨩의 바니걸 의상도, 단장으로서 준비해주는걸로 할게!"
"아니아니아니, 됐으니까?! 이번 한 번으로 됐으니까?! 쌩으로 알몸에 이런 얇은 천조각을 걸치는건 이번 한 번으로 끝내주면 안 될까?! 아무리 아카네 쨩이 귀엽다곤해도, 역시 이 옷은 아카네 쨩도 소화하긴 무리랄까, 응! 그러니까!!"
...키타카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바카네. 뭐, 남 얘기는 아니니까... 내친 김에 저 이야기에 힘을 좀 실어줘볼까- 싶어 거들려고 했는데.
"으음...하긴 이 옷, 담임 교사나 타나카나... 다들 귀찮게 굴고 그러니까. 방해 받지 않도록, 뭔가 다른 의상으로 교체해볼 필요가 있긴하겠어."
...잠깐.
"어이, 다른 의상이라니. 저거 맞추는 데에도 돈이 꽤 깨졌다더니만..."
"뭐, 그건 다 방법이 있으니까 괜찮아! 음, 아카네 쨩은 이제 다시 갈아입어도 될거같아!"
"고, 고마워 레이카 쨩...!"
"아니, 대체 뭘 고마워해야하는건데... 또 무슨 옷을 들고오려고..."
"지금 당장은 옷이 중요한게 아냐! 아무리 방과후에 홍보를 한다해도, 우리 RED단이 다른 학생들에게 인상을 깊게 남기려면 뭔가 로고나, 마스코트로 강렬한 무언가를 심어줘야해!"
...그 강렬한 무언가는, 나하고 치즈 언니의 흑역사가 충분히 뇌리에 남긴거 같다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거냐.
"그러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가서, 그 위에 있던 노트들을 휙휙 넘기는 키타카미. 그러고는 노트 하나를 그대로 들고 다시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펼치고는...
"...어이, 잠깐. 이봐."
어느샌가 꺼내든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로고, 한번 정해보는거야!"
"...다 좋은데, 그거 내 노트 아니냐. 적어도 네꺼에다가 하지 그러냐."
"응? 그야 당연히, RED단의 로고로 쓸 디자인이니까. RED단 단장인 내 마음에 들면 되겠지?"
"아니,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말고..."
언제나 항상 별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미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미라이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
...바카네, 이젠 좀 알겠냐. 아무 대책없이 저 녀석을 지지하면 안 된단 말이다. 직접 당해본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고삐를 채워야만 한다는게 내 최소한의 양심이 시키는 일이다.
"...아니, 그리고. 이게 뭐라고 벌금까지 내야해?"
"안 그러면 안 할 거잖아?"
"아니 무슨 블랙기업에서도 안할법한 발상을 자연스럽게 내고 있냐고!"
"그치만 빨리 로고를 만들어서, 홈페이지에 올려놔야 제보 메일이 팍팍 올테니까?"
아니 저게 대체 무슨 논리전개야.
"야, 고작해야 고등학교 동아리인데 거창한 로고가-"
"RED단은 단순한 동아리가 아니라구!! 그리고 아직 부활동 신청도 안되지 않았어?"
"...그건 그렇긴 하...아니, 잠깐.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지적을 니 입으로 하는거냐?!"
대체 키타카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 아니, 생각해보니 딱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긴한데...
"애초에 말이지, 우리 머리로 괜찮고 그럴듯한 로고를 이렇게 단시간에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고작해야 고등학생 5명이 모인 것뿐인데, 누구 하나 디자인에 뛰어난 사람이 있거나 한것도 아니건만 그게 될리가 없잖아.
"에, 저기, 푸우 쨩? 그-"
"가능해. RED단이라면, 할수 있어!"
심드렁한 내 말에 상당히 표정이 찌푸려져있던 바카네가 뭔가를 말하려 했는데, 키타카미가 바로 딱잘라, 저렇게 말해버렸다.
"자, 아무튼 시작이야! 벌금이 싫다면, 참여 안하는 사람은 오늘 귀가 못하는거야!!"
"아니 진짜 대놓고 블랙기업 감성이냐?!"
"...뭐, 뭐어... 재밌어보이니 아카네 쨩은 참여할 게!"
...그렇게 정말 마지못한 표정으로 볼펜을 집어들고 뭔가 끼적이기 시작한 바카네를 시작으로, 치즈 언니와 미라이 마저도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고...
"서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유하면서 만들자!"
"...그 시점에서 이미 대회는 아니지 않게 되지 않냐...?"
...뭐, 어찌되었든 다들 이 얼렁뚱땅 시작해버린 로고 만들기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4까지 다이스. 가장 높은 값으로 판정합니다.
1 ~ 60 : 완성은 무슨... 진전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키타카미의 얼굴이 온통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61 ~ 80 : ...뭐, 이정도면 내가 나중에 마무리해볼게! 그렇게 디자인을 챙기는 키타카미입니다.
81 ~ 100 : 훌륭해!! 대만족! 하면 되지않느냐는 블랙기업 논리를 또 펼치는 키타카미입니다.
RED단이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고, 가족들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다음 날 학교 갈 준비를 할겸 교과서를 챙기고 있었는데...
"...전화...?"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 고등학교에 올라와선 번호는 커녕 메일 주소도 곧잘 교환한 적이 없건만, 지금 같은 늦은 저녁에 굳이 올 전화가 있을까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모르는 번호다.
"...아니, 메일 주소면 몰라도 진짜... 이건 또 무슨 전화야...?"
그냥 단순히 잘못 걸린 전화일것도 같지만, 왠지 모르게 그건 아닐거라는 느낌이 온다.
...그래, 받자, 받아...
"...여보세요?"
"야~호~ 여보세요~ 푸우 쨩?"
...허.
"...처음 듣는 목소리네. 잘못 거셨습니다. 그럼 이만."
"잠깐?! '오늘' 처음들었으면 몰라도, 아예 생판 초면인 목소리는 아니지 않아?! 푸우 쨩, 나라구 나! 아카네 쨩!!"
"노노하라 바카네라는 사람은 모릅니다. 안녕히."
"바카네가 아니라니ㄲ...아니 잠깐?! 별명까지 붙여 부르고 있으면서 모를리가 없잖아?! 잠깐만 전화 좀 받아줘!! 제발, 푸우 쨩!!"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지금 시간에 왜 전화를 했는지 등등... 신경줄을 긁을만한 건은 한두개가 아니긴 하다만, 아무튼 간에. 굳이 전화를 해왔으니 뭔가 할 말이 있어서겠지. 그러니까 잠깐 정도는 받아줄 의향이 있다, 바카네.
"거 속으로 생각해도 충분한 말을 굳이 입밖으로 내서 꼭 짜증을 해소해야겠어?!"
"빨리 말이나 해."
오늘 하루 왼종일 그게 환자한테 할 짓이라 생각하냐.
"뭐어, 그렇긴 하지만..."
얌전히 수긍한 바카네는... 이 녀석, 내가 본 첫 인상보다는 꽤나 상식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꼭 독백을 일부러 들리게 해서-"
"아, 빨리 말해."
"...칫..."
짧게 혀를 찬 바카네는,
"...지금 몸 상태는 어때?"
"환자입니다만."
"아니아니, 그러니까... 혹시, 잠깐 정도라도 산책, 같이 해줄수 있겠어?"
...산책?
"갑자기 무슨 산책."
"아니 그... 조금 해야할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말이지."
"전화로 해. 귀찮아."
"...전화로 해도 될 이야기였으면, 아카네 쨩이 설마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말을 끌었을거라 생각해?"
"응."
"...아니, 매도는 슬슬 됐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게 할테니까, 잠깐이라도 안될까?"
...아니, 뭐 이렇게 집요하나... 싶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데. 간단히라도 말해봐."
그거에 따라서 나갈지 말지를 결정해주마.
더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느낌으로 딱 잘라 말해주니, 으음, 하고 잠깐동안 고민하던 바카네는...
"야호~ 여기야!!"
"...학교를 쉰 사람한테, 학교에서 보자고 하다니. 무슨 폭거냐."
"에이에이. 어차피 3년동안 주구장창 와야만 하는 곳인데, 하루정도 가감되는거에 너무 예민하게 굴면 안된다구, 푸우 쨩?"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튼 간에 아파서 쉬는 날에 굳이 학교로 등교케 만든 용건이 뭔지 궁금해서라도 듣긴 해야겠지. 운동장 옆 가로등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있는 노노하라 아카네는, 잠깐 걷자는 듯 턱으로 슬쩍 학교 본관 쪽을 가리키고는 걸어가기 시작했고... 어디 앉아있기도 애매하니 녀석의 뒤를 천천히 따라 갔다.
"그래서. 키타카미에 대해서 할 이야기라는게 뭐야."
"음... 그러니까..."
뭔가를 잠시 고민하던 바카네는...
"...좀 이상한 질문일지도 모르는데. 푸우 쨩."
"아니, 질문에 질문으로-"
"-혹시 말이지. 미즈키 쨩이나, 치즈루 쨩이 뭔가 이야기 한게 있엉?"
...말투는 평소처럼 아양을 떨고 있지만, 지금 나를 돌아보는 바카네의 눈빛은... 날카롭다.
"...아니. 이야기라고 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겠다만."
"...음, 뭔가 했더라면, 저런 반응은 아니겠징...? 으으으... 아카네 쨩이 1번타자인건, 별로 바람직하지가 않은뎅..."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싸쥔다.
...아니, 너만 알아듣게 혼자 독백하지말고 설명을 해. 뭐 때문에 불러낸거고. 방금 그 질문은 뭔 뜻이야.
"...잠깐, 시간이 좀 걸릴거 같으니까 좀 앉아서 이야기 하자. 식당의 옥외테이블로 가볼까?"
바카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또 걸어가버렸다. ...저 녀석, 내 생각보다도 더 키타카미처럼 제멋대로인 모양이다.
"그냥 얘기하면 그러니까 뭐라도 마시자! 물론, 아카네 쨩이 살테니까~ 푸우 쨩은 어떻게? 커피? 아니면 밤이 늦었으니까 핫초코?"
"...핫초코로."
"라져!"
그렇게 도중에 자판기에서 커피와, 핫초코를 하나씩 뽑아들고는 텅 빈 학교 한가운데에서, 옥외 테이블에 둘이 마주 앉았다.
"그으으럼... 아카네 쨩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그만 뜸들이고 빨리 말해. 대체 뭐때문에 그러는건데."
"...뭐, 그럼 접근하기 쉬운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낭..."
마지막으로 한숨을 포옥, 내쉰 바카네는.
"지금부터 아카네 쨩이 하는 이야기는, 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좀 하기 힘든 이야기, 가 될거야."
"...뭐, 커밍아웃이라도 하는거냐."
"아니, 그... 아. 비슷하려나? 어찌보면, 비슷할지도 모르네. 응."
...악의적인 농담을 던졌는데, 순순히 수긍하고 있다. 그 분위기에서 무언가, 지금은 잠자코 들어봐야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녀석의 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음. 그으러니까... 레이카 쨩이랑, 아카네 쨩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한참 뜸 들인 끝에 나온, 영문 모를 소리.
"평범하지 않다는 거야, 키타카미는 말할것도 없고. 너도 오늘 보는 순간부터 대강 눈치 채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좀, 성격적으로 별난 인간, 이라는 의미가 아니야."
또 크게 한숨.
"...그, 뭐랄까. 좀... 다른 의미에서, 아카네 쨩이랑 레이카 쨩은, 푸우 쨩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이랑은 좀 다르다고 해야할까."
뭔소리야 도대체.
"...그렇네. 그럼, 레이카 쨩의 표현대로 해볼까. 그게 가장 편하겠다."
"키타카미의 표현이라니?"
"음... 레이카 쨩이 불러 모으고 싶어하던 존재들...말이지? 아까, 푸우 쨩네 방에서 레이카 쨩이 딱, 말하지 않았어?"
"...뭐를."
"어어엄청 불친절하네, 푸우 쨩. 그러니까... 우주인, 미래에서 온 자, 그리고 초능력자, 말이지."
...?
"그게 뭐?"
"...아카네 쨩은, 초능력자야."
장난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노노하라 아카네는 민들레 홀씨만큼도 무게감이 없는 실없는 소리를, 참으로 무겁게도 토해냈다.
"......"
"...저기? 푸우 쨩?"
"............"
"...저기, 너무 그렇게 빤히 보기만 하면, 아무리 귀여운 아카네 쨩이라도, 역시 좀 부담스럽달까..."
"...아아, 미안. 이럴 땐 뭐라고 일침을 가해야 앞으로 이딴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바깥으로 불려나오질 않을까를 생각하느라."
내 말에 '이야이야-'하면서 너스레를 떨던 바카네 녀석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상상 이상으로 신랄한 반응이었냐.
"...그렇지. 뭐, 그래. 어디보자..."
"...푸우 쨩? 저기, 휴대폰은 갑자기 왜..."
"검색하면 정신병원 번호도 나올라나... 기왕이면 당장 실어가줬으면 좋겠지만."
"잠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키타카미가 뜬금없이, 수수께끼의 전학생이랍시고 끌고 온거부터 좀 이상하긴 했는데 역시 동류였냐?! 그래 뭐, 이런 류의 동류라면 바로 납득은 간다 그래! 아주 좋은 설명이었어!!
"그, 그러니까 정신병원은 그만두라구-!! 여러모로 골치아파진단 말야!!!"
"하, 뭐가 골치아파지는데 말이십니까, 우주에서 온 초능력자 씨?"
"아니 잠깐, 아카네 쨩은 그런식으로 설명하진 않았어?! 그냥 초능력자인거지, 딱히 우주에서 오거나 같은-"
"아 됐고! 초능력자라면, 뭔가 증명해봐! 말만 띡, 하고 '아카네 쨩은 초능력자야.' 이런 문장 하나로 뭘 믿고, 아니 진짜 왜 내가 이런 상세한걸 다 설명하고 앉아있어야하냐?!"
"...으으음..."
아, 머리야. 지금 니가 머리가 아파야 하는거냐, 바카네? 아주, 키타카미 하나로도 골치가 아픈데, 별 이상한 녀석이 하나 더 추가되었잖아. 대체 이제 어째야하냐...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RED단에서 도망쳐야하나. 좀 평화로운 고교 생활을 꿈꾸고 있었건만,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나 꼬여버린건지.
>>다이스 타임. 2표 먼저 모인 쪽으로.
1 ~ 33 : "증명...하긴 힘들어." 그러시겠지, 중2병.
34 ~ 66 : "...음, 조건이 맞으면 보여줄 수 있어." ...조건부냐?
67 ~ 99 : "...잠-깐만 기다려봐. 금방 보여줄 수 있을것같아." ...뭐든 좋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100 : @투표!
"...지금 보여줄 수 있을거 같은데... 어떻게, 바로 보러 갈거야?"
"아니, 어차피 지금 나온 김에 좀 더 늦어져도 큰 차이는 없으니까, 보러가긴 할건데... 그 떨떠름한 반응은 뭐냐."
"...뭐어, 가보면 알게 될거야... 아무튼, 간다는거지? 그럼 바로 준비할게."
정말, 때마침 장소도 준비 되었고 말이지.
"...장소가 준비 되었다니."
바카네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너 설마, 이렇게 나를 납치해서 어떻게 한다던가 하는건 아니지...?"
"설마! 안됐지만, 푸우 쨩은 함부로 납치되거나 할수 없는걸?"
"내가 함부로 납치되거나 할수 없다? 그건 또 무슨소리야?"
"곧 알게 되니까 걱정마~"
...뭔지 알아먹을수도 없는 소리를 해서 되물어보았지만, 노노하라 아카네는 저렇게만 말하고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로 부른 모양인지, 몇분 지나지 않아 교문으로 택시 한대가 들어오는게 보였다.
"자, 그럼 가볼까?"
"...진짜 믿어도 되는거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푸우 쨩은 함부로 납치되거나 할 수 없는 몸이라니까. 정 뭐하면... 그렇게 믿을 수 없다면, 언제라도 110에 전화할 준비를 해놔도 좋아."
"...아니, 차라리 행방을 알리거나 하는건."
"푸우 쨩, 이미 아카네 쨩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 하고 나오지 않았어?"
...그렇긴 하지.
"그 이상으로, 아카네 쨩이 지금 가는 장소에 대해서 정확한 위치를 말해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 여고생이 늦은 시간에 갔다 온다고 하면 과연 '옳다구나, 갔다오렴' 이라고 하실 부모님이나 어른이 있을까?"
이 녀석, 키타카미한테 휘둘리는 것만 봐서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말을 잘하는 편이었군.
"...그러니까 그렇게 대놓고 '의외네' 같은 표정을 지으면 아무리 아카네 쨩이라도 상처라고..."
오늘의 꿀팁! 같은 느낌으로 으스대는 바카네를 보고 있자니, 이 녀석이 초능력자니 뭐니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진짜인가, 하고 현실감이 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일부러 멀리 나갈 필요가 있는거야?"
"음! 아카네 쨩이 초능력자로서 힘을 발휘하려면... 특정한 장소와 조건이 갖춰져야만 하거든. 오늘 그런 조건이 충족되는 곳이 있나, 하고 확인해봤는데 때 마침 있어서 말이지."
녀석이 택시기사에게 말한 목적지는... 현 밖에 있는 대도시. 고등학생들의 지갑 사정이래봐야,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 분명하니 전철을 타고 가는게 더 경제적이었겠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니, 바카네는 이런이런, 하고 고개를 저으며 이유를 대답해주었다.
"푸우 쨩, 물론 전철을 타고 가는게 훨씬 경제적이긴 하지만 말이지. 안됐지만, 그건 편도로 가는 방법이 될거야. 전철로 이래저래 돌아가다보면 막차 시간이 될거란 말이지? 돌아오기 힘들어지니만큼,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아카네 쨩같은 귀여운 여고생이랑 다니려면 이렇게 왕복으로 전용 차편을 준비해두는게 좋다구!"
"...난 돈 안갖고 나왔다?"
"걱-정 하지마! 당연히 아카네 쨩이 낼거라구!"
옆자리의 바카네는, 창문에 기대어 바깥을 내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리도, 손도, 고개도 온통 까딱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즐거워보이는 모습. 택시비 얘기를 한 이래로 뭔가 말이 끊어졌는데, 저 녀석 쪽에서 먼저 나서서 말을 주도적으로 하지도, 그렇다고 내가 뭔가 생각나는 거리가 없기도 해서 지금 껏 서로 창밖이나 내다보며 쭉 침묵.
창밖에 흘러가는 풍경은, 당연하지만 어둡다. 점점 현 바깥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지는 만큼 가로등도 줄어들고 있고. 큰 길을 따라다니다보니 차량은 꽤 돼서 길은 어둡지 않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저녁에, 오늘 처음 본 녀석과 드라이브라. 이것도 다 키타카미의 덕분인가.
그러니까 불렀겠지요, 노노하라 씨. 입밖으로 직접 빈정거리진 않았지만, 역시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 그런가 눈빛에서 바로 읽었는지 입을 오른손의 주먹으로 살짝 가리고 헛기침을 해보였다.
"크흠, 흠. 그래. 뭐든, 질문해. 아카네 쨩이 대답해줄 수 있는건 다 대답해줄게."
...저 녀석이 대답해줄 수 있는 거, 라니. 뭔가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도망가며 빠져나갈 궁리가 그득해보이는 문장인데.
"...이건 안돼, 저건 안돼, 하며 회피만 하려는 계획은 아니지?"
"아카네 쨩이 뭐, 그럴 것 같은 캐릭터로 보이는 거야... 아카네 쨩도 푸우 쨩 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진지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건 가감없이 말해줄게."
...물론 저런 말뿐인 약속을 마냥 믿을 정도로 어리숙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 저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하면 조금은 다르기야 하겠지.
"...너, 키타카미랑은 무슨 관계야?"
"RED단 단장님과, RED단의 일개 단원?"
"...이딴식으로 빠져나갈것같아서-"
"-아아아. 일단 먼저 짚고 가는거라구. 절반 정도는 조크고, 절반 정도는 진정성 있는 대답이야!!"
그러니까 잠깐!! 이라고 덧붙이며 양손바닥을 펼쳐보이며 만류하는 바카네.
"...그래. 설명해줘."
끓어오른 화를 한숨과 함께 다시 풀어내며 녀석을 응시하니, 녀석도 살짝 한숨을 내쉰다.
"일단은... 레이카 쨩이랑 직접 마주하게 된건, 오늘이 처음이랄까? 그러니까, 레이카 쨩이랑 직접 인간관계를 맺게 된건 RED단의 단장과 단원으로서. 딱 이것 뿐이야. 거짓말은, 절대 할 생각 없어."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하는건, 진실을 다 얘기할 생각이 없다, 라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하겠지.
"...역시 푸우 쨩, 꽤 예리하네."
"뭐, 이래저래."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던 바카네는.
"...레이카 쨩이랑, 아카네 쨩 사이에...관계라고 하면, 이게 단순히 딱 한 문장으로 설명해서 납득이 가는 상황이 아니야. 푸우 쨩의 이해력은, 아카네 쨩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풍부하고 포용력도 넓어서,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아카네 쨩의 초능력을 먼저 보여주고... 그거랑 레이카 쨩이 무슨 관계인지, 같은걸 설명해야 해."
...요컨데, 주우욱 말했지만, 납득시키기 힘들다, 이거냐.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건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려줬으면-"
"...아니, 그러니까 초능력을 보여주든가-"
"...그걸 위해서 이동중이니까, 지루하고 납득 안가는거, 아카네 쨩도 잘 이해하니까, 조금만 더 참아줘."
...장난기 없이 간곡히 설득하는 저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아를 치밀게 하는건지...
"야, 백보 양보해서. 너한테 진짜 초능력이 있다고 치자고. 그거, 조건이 맞아야 성립이 된다고도 쳐. 그래서, 그게 대체 어떤 종류의 초능력인지 설명도 못하고 보여주겠다며 끌고가는게. 너같이 조리있게, 지금껏 말 잘해온 녀석이 그 초능력이 대체 뭔지 간략히라도 설명 하나 못하는게 말이 돼?"
...대꾸는 없다.
"그냥 핑계 아냐? 아니, 왜 그런걸 나한테 뜬금없이 말해주는 건데 또. 아무리 초능력이고 나발이고 실존한다고 해서 상식이니 뭐니 다 필요없다고 쳐도, 적어도 논리적으로 뭔가 연결되고 납득이 가도록 설명이 먼저 수반되어야 하는게 맞지 않냐?"
...고개나 끄덕이지 말고, 이 고양이 같은 녀석이.
"...이것도, 혹시 키타카미가 꾸민 이상한 계획의 일부냐? 아까 둘이 나가서 뭘 사주받았길래 이러냐?"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입이 좀 마르는 것 같아서 침을 삼키며, 숨을 몰아쉰다.
"...푸우 쨩."
"...말해."
"일단, 아까 레이카 쨩한테 끌려나간건, 정말로 학교 주변 소개를 받은거야. 레이카 쨩, 힘도 엄-청 세고... 보다시피 아카네 쨩은 키도 쪼그맣고 힘도 약한편이라서, 어지간하면 완력으로 이겨본적이 없는데, 그런데도 레이카 쨩은 진짜로 아카네 쨩이 살면서 몇 번 본 적이 없는 정도의 힘이었어."
뭐, 팔을 붙잡을 때에 멍자국 같은거 안 남도록, 배려를 엄청 해준건 느꼈지만 말이야.
...키타카미가 배려심이 있다없다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아무튼 바카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푸우 쨩의 말은... 음. 레이카 쨩의 계획...이라..."
...어찌보면 틀리진 않을지도. 바카네는 뭔가 이상한 말을 덧붙였다.
"...아니, 뭘 짠거야, 안 짠거야."
"짠 적은 없어. 아까, 바니걸도 봤겠지만... 아카네 쨩도 레이카 쨩한테 마구 휘둘리는, 푸우 쨩과 동일한 입장의 RED단 단원에 불과해. 애초에, 레이카 쨩이 오늘 처음본 아카네 쨩이랑 뭔가 계획을. 그것도 여고생 한명을 이렇게 다른 현으로 데리고 나가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분명 커질 계획같은걸 짰을 거 같아?"
"...키타카미라면 그러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만."
"...푸우 쨩. 지금 대답하면서, 스스로도 그렇게까지는 아닐거란 생각 하지 않았어?"
...히죽히죽 고양이처럼 웃지마라. 의표를 찔리니 울컥하게 된다. 내 반응을 본 바카네는, 굳이 추궁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레이카 쨩은... 끝도 없이 막나가는 거 같지만, 그 행동들은... 어쨌든 레이카 쨩 본인이 책임져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 내의 행동들이야. 그걸 벗어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은, 하지 않아. 아카네 쨩이 전해들었던 그, 바니걸 복장으로 홍보하거나, 컴퓨터를 강탈하려했거나... 그런건 어디까지나 레이카 쨩 선에서 다 책임지고 끝낼수 있는 것들이라고."
"...납득은 안 가지만, 그렇다 치자."
"음, 고마워. 사실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서 아카네 쨩도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이해해줘서 다행이야."
"...사실, 아카네 쨩은... 이렇게 전학을 갑작스레 올 계획은 없었어. 다른 두 사람이 키타카미 레이카랑 이리 간단하고 빠르게 결탁하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거든. 그 전까지는 그냥 외부에서 관찰만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무슨 벌레 관찰하는 것처럼 표현하지마."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절대 그런 의도는 없었다구. 아카네 쨩들도, 엄청나게 필사적이야. 레이카 쨩한테 해를 가하거나 할 이유 따위 없고... 오히려, 레이카 쨩이 위기에 빠지지 않게, 빠진다면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뭔가 걸리는 단어들이 몇개 있는데. 우선 먼저 짚고가볼까.
"아카네 쨩'들'이라니. 너 말고도 다른 초능력자들이 있는거야?"
호오, 하고 조금 놀란 표정이다.
"많다고는 할순 없는데, 그럭저럭? 어느정도는 있엉. 으그그극..."
깍지를 끼고 팔을 천장으로 쭉 펴는 바카네. 앉아있어서인지, 아니면 키가 작아서인지 손과 천장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보인다.
"아카네 쨩은 뭐, 말단이라서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 말야... 지구 전체에 한 열명? 가량은 있을거야. 그 전원이 '기관'에 소속되어있어."
"...'기관'...?"
"응. 뭐 대충 그렇게 불러. 실체는 알수도 없고, 구성원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뭐, 대충 맨 윗선에 있는 높으신 분들이 모든것을 통괄하겠지?"
"...그걸 나한테 물어보거나 동의를 구할 일이냐."
"아카네 쨩도 잘 모르니까."
"...그래서, 그놈의 비밀결사는 뭐하는 단체냐?"
"뭐, 일단은... 방금까지 아카네 쨩이 말한걸 종합하면 푸우 쨩도 대충은 유추하겠지만, '기관'은, 3년 전에 발족하고서... 키타카미 레이카의 감시를 최우선 중요 사항으로 취급해오고 있어. 레이카 쨩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려나?"
...저 뉘앙스에서 느껴지는게 있긴하네.
"...학교에 '기관'의 관계자...가, 너 혼자가 아니겠네."
"와아, 정답. 아카네 쨩은 어디까지나 보충 인원이야. 이미, 여러 에이전트가 잠입해있는 상황이라구."
...대체 그 녀석이, 키타카미 레이카가 도대체 뭐길래...
"...아니, 대체 뭐 때문에 그 녀석을 그렇게 감시하네, 따라붙네... 그러고 있는거냐?"
뭐, 스카웃해서 아이돌이나 가수나... 하다못해 av배우 같은거라도 시키려는거냐?
"...농담이 저급해, 푸우 쨩."
"계속 진지하게만 이야기해대니까, 어거지로라도 환기를 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가볍게 얘기하면 안 믿을거면서?"
"지금도 믿기진 않는다고."
...정말 한마디도 질 줄을 모르는구나, 푸우 쨩은.
그렇게 넋두리를 읊던 바카네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어느 날.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지 못해."
...띄우는 운이 뭔가 이상하다.
"아카네 쨩이 아는건... 3년 전의 그 날에. 갑자기, 아카네 쨩의 몸에... 초능력, 이라고 지칭하는 것 외에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정체도, 기원도 도저히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났다는 것 뿐이야. 처음에는 공황상태에 빠졌었어. 무서운 경험도, 이것저것 겪어봤고. 다행히도, '기관'에 마중을 나와서 이것저것 도움을 준 덕분에 살았지만... 그냥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아카네 쨩은 스스로 미친거라 생각하고 자살해버렸을지도 몰라?"
...진지하게 믿고 있으면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하지 않나 싶은 내용의 이야기인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계속 맛이 간 채로 방치 되었을 가능성...이..."
"응응,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그런데...아카네 쨩들은, 그런 것 정도는 '따위'로 치부해도 좋을, 더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거든."
...저 녀석, 고양이 상으로 히죽히죽 웃고있거나, 아니면 뭔가 골탕먹어서 찡그려진 얼굴이 아닌...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은건, 처음인가.
"...푸우 쨩은, 세계가 언제부터 존재해왔다고 생각해?"
"...갑작스레 참 거시적인 이야기네. 먼 옛날의 빅뱅, 아니냐? 천문학이나 우주과학에서 베이스로 깔고가는 이야기잖아."
"응. 그렇다고들 하지. 그런데... 아카네 쨩들은, 어떤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말이지?"
세계는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라는 가설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이 얘기를 들은 내가 가장 먼저 살핀건, 앞에서 운전 중인 택시기사의 반응이었다.
하도 별 관계없이 급발진해서 튀어나간 내용이라, 내가 잘못 들은건가. 아니면 어찌저찌 같이 듣고 있을 택시기사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솔직히 반응을 보여야 정상 아닐까? 아니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그냥 뭔 소설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나...
...아무튼 나 말고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바로 확인해보았지만, 그냥 별 관심 없다는 듯 미동도 없이 운전이나 계속할 뿐이었다.
...부정은 나 스스로 해야하나.
"어이, 그럴리가 있냐? 난 3년 전보다도 더 오래된 기억도 갖고 있고. 부모님이던 동생이건 다들 건재하다고. 어릴적에 까불다가 넘어져서 남은 흉터도 분명히 있고. 아니, 그럼 일본사 시간에 필사적으로 외우고 있는 역사는 그럼 대체 뭐라고 설명할건데?"
"그거야 말이지? 만약에, 푸우 쨩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지금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 태어나- 아니, 태어난거보단 나타난게 맞으려나? - 어쨌든. 그렇게 세계에 태어난게 아니란 사실을, 푸우 쨩이라면 어떻게 부정할거야? 사실 이거, 3년 전에 얽매일 것도 없어. 지금부터 불과 5분 전. 5분 전에, 전 우주가 존재해야 할 모든 모습과 인과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세계가 만들어졌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시작된게 아니다... 이렇게 부정할 만한 근거를, 이 세상 어디에서 찾을거야?"
빙긋 웃는 모습이, 꼭 이야기 속에 나오는 체셔캣같은 느낌이다. 저녀석이 체셔캣이라면, 난 이상한 나라에 끌려가는 앨리스인가.
...젠장, 뭔 앨리스냐. 답지않은 소리나 떠올리고 있네.
화는 나지만, 빙긋 웃는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들어온 녀석의 목소리 중 가장 차분하고 낮게 가라앉아있어서 뭐라 따질수도 없었다. 동요하고 있는 나랑 대조되어서, 저 동안이고 까불대는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워 보일 지경이고.
"뭐어... 세계를 자신의 의지로 만들거나, 부술수 있는 존재... 사람들이 보통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아카네 쨩이 알기론, '신'...이라 정의하지?"
"...하, 차...거...뭔..."
...오늘, 내가 정말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나보다... 하루 좀 컨디션 안좋고 기분이 찜찜해서 나가기 싫길래 학교를 쉬었더니, 불청객들이 방에 마구 들이닥친 끝에 저녁에 불려나와서, 키타카미 레이카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내 반응을 못본건지, 아니면 보았음에도 무시하는건지.
"그러니까, '기관' 사람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어."
"...어떤걸?"
"만에 하나라도, 이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바로 세계를 파괴하고 처음부터 다시 창조하지 않을까? 모래사장에 쌓은 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말이지."
...농담이라도 정말 악질적인 농담이군.
"아카네 쨩은... 지이이인짜 모순되고 별 말도 안되는게 수두룩한 세계라해도,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 있어서 말야... 그래서, '기관'에 협력하고 있는거야."
"그러면 키타카미한테 가서 부탁해봐. 제발, 세계를 부숴버리거나 하지말아주세요... 혹시 알아? 들어줄지도."
"...아까 아카네 쨩이 말하고 지나갔던 게 있는데... 레이카 쨩은 스스로가 그런 존재인 걸 자각 못하고 있어.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야. 뭐, 아카네 쨩들은 가능하다면야, 레이카 쨩이 평생 깨닫지 못하고 평온하고 평범하게 인생을 보내줬으면 해."
자! 하고 갑자기 손뼉을 짝짝 두번 치는 바카네. 가라앉아있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시트에 푹 파묻혀있던 몸을 다시 일으키며 곧게 고쳐 앉는다.
"뭐, 정리하자면, 레이카 쨩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신이 아닐까, 라는거지. 마음대로 세계를 조종하는건 아니라는 거야. 다만, 아직 채 발달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 힘의 단편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거든."
"...그걸 어떻게 아냐?"
"지금 푸우 쨩 옆에 앉아있잖아? 그 증거."
...뭔소린가 싶어 가늘게 쏘아보는데,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왜, 아카네 쨩 같은 초능력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그건 말이지-"
'평범한 사람에겐 관심 없어요!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상!'
"-레이카 쨩이, 그렇게 바랐기 때문이야."
......
"레이카 쨩은 신의 힘을 완벽히 발휘하고 있는건 아니긴 한데... 음. 표현해보면, 레이카 쨩의 무의식 속에서 우연하게 그 힘이 행사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달까? 하지만, 요 몇 달 사이에 확연하게 인간의 능력을 넘어신 힘이 레이카 쨩한테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 결과는 뭐... 푸우 쨩도 알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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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루 쨩이랑 같이 전단지를 나눠주러 갔지!"
...
잠깐, 잘 생각해보면... 치즈 언니가 메일을 보낸 시각이 점심시간...이었던거 같은데.
"어제 푸우 쨩이랑 나눠줄 때보다 더 반응이 폭발적이었어!"
...어 뭐... 너든, 치즈 언니든 몸매는 나보다야 좋으니까,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래도 치즈루 쨩 갈아입히는건 푸우 쨩보단 오래 안 걸렸다니까? 협조적으로 나와야 빨리 갈아입는 법이야!"
대충 또 선생들에게 쫓겨서 열심히 둘이 도망쳤다느니, 근데 결국 문예부실까지 쫓아온 바바 선생에게 훈계를 듬뿍 들었다느니. 키타카미가 열심히 늘어놓는 무용담을 적당히 흘려듣고 있는데...
"아참, 푸우 쨩."
"...아아?"
대충 컨디션이 나빠져서 오늘은 돌아가라는 핑계를 대기 딱 적당할 정도로 머리가 아파와서 쫓아내기 수월할 거란 생각을 하던 중이었건만.
"왜, 뭐 때문에 그래?"
"내가, 어제 전단지 나눠주고 돌아올 때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해~?"
...뭐. 혹시 전단지 다 나눠주고, 내가 두고간거까지 나눠줬다는 그 얘기냐?
시큰둥한 목소리에 반응하듯, 키타카미가 '뿌-! 뿌-!' 하고 답지않게 귀여운 소리를 내고는.
"틀렸습니다-!"
"...아, 그럼 뭔데."
"에엑... 정말 기억 안나는거야, 푸우 쨩?"
"...넌 지금 환자에게 기억력을 운운하고 있냐...?"
"딱히 감기정도로 기억력이 감퇴되거나 하진 않잖아?"
"...아 됐으니까 빨리 얘기나 해봐..."
칫, 하고 네가 혀를 차야 되는거냐, 아니면 내가 혀를 차고 전화를 확 끊어버리는게 더 타당한거냐.
물론 지나가는 사람 10명정도 붙들고 물어보면 10명 다 내 편을 들어줄거란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빨리 끝내는 쪽이 편할테니.
"어제, 돌아오는 길에 신입 단원을 물색해뒀다고 내가 그러지 않았어?"
"...아."
키타카미의 미친짓에 휩쓸릴 피해자가 1명 더 늘어나는건가.
"...그래서. 그게 왜."
"그게 왜, 라니?! 당연히 한명 더 데려왔지!"
뭐, 저 녀석 눈에 들면, 상급생인 치즈 언니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끌려와 버렸으니. 동급생 중에 키타카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할까...?
...머리가 더 아파질 거 같으니 적당히 축하하고 전화를 끊어버리자.
"그래, 거 축하한다."
"그렇지? 그래서 드디어 RED단의 단원이 5명 다 모인 것을 축하하고, 서로 제대로 인사해둘 수 있도록! 모두 다같이 해서 푸우 쨩네 집에 가고 있으니까. 지금 거의 다 왔어!"
"...저기, 아무리 그래도 환자인데, 하다못해 내일 학교에서 하는게-"
"안됩니다! 결성 당일에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 잠깐. 야. 얌마-"
...내가 뭐라고 항변하기도 전에 키타카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워낙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황망한 심신을 어떻게 추스려보기 전에...
딩-동- 딩-동-
"네에~!"
...현관문의 초인종소리와 함께, 미라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지는 화음이...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했다.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뜯어 말리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이지 이거...?
>>다음 연재시까지, 다이스와 함께 미라이와 RED단이 마주쳐서 나눌 대화를 적어주세요...!
일단 신입 부원에 관련된 앵커는 제한하겠습니다.
다이스로는 치즈루의 멘탈을 판정합니다. 가장 낮은 값으로 체크합니다.
100 :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40 ~ 99 : 체념한 듯한 표정이지만, 그저께와 비교하면 덤덤해보입니다.
10 ~ 39 : ...표정이 어둡습니다.
4 ~ 9 : ...시집가기는 틀렸사와요...
1 ~ 3 : (오열)
@바니걸 사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푸우 쨩이 직접 보여줄리도 없고...
...몰골 정리 같은거, 딱히 해야할 정도로 지금 엉망인 것도 아니고. 방도 딱히 어질러놓진 않았으니 당장에 들이닥쳐도 문제가 될건 없어보인다는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뭐 어쩌겠냐? 이미 벌어진 일인데.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문 밖 상황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건 어쩔수 없었다고 하겠다.
"앗, 푸우 쨩네 동생?! 너무 귀엽다~!! 에잇!"
...이 목소리는 분명 키타카미일테고...
"에헤헤..."
음, 웃음소리가 뭔가에 파묻힌 감이 있고... 미라이 녀석 버릇까지 생각하면, 키타카미가 미라이를 껴안고 있나.
뭔가 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작아서 그런지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다. 진짜로 다 데리고 온거냐고...
"자, 그럼 푸우 쨩의 방으로 가볼까-!"
"오-!"
뭐가 오-! 냐, 미라이...!! 네 언니를 이렇게 팔아먹겠다 이거지...?! 동생이라고 있는 녀석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해보니 저 녀석은, 키타카미 레이카라는 인간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니 뭐 당연한 건가...
"잠깐...!"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올라오고 있잖아...!
재빨리 침대로 뛰어들자마자-
"푸우 쨩-? 들어갈게~?"
-아니나 다를까, 허락을 구하기는 커녕 바로 벌컥 열려버리는 방 문.
"야호~ 푸우 쨩!"
"...너는 통화나 지금이나 어떻게 인삿말이 똑같냐..."
제일 먼저, 미라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오며 팔을 붕붕 흔들어보이는 키타카미.
"푸우 쨩..."
아하하, 한번 웃어보이고는 이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치즈 언니.
"이예이~"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으로 브이, 하는 미즈.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뒤를 이어서 방에 따라 들어온, 오늘 키타카미에게 끌려온 그 새로운 단원은...
>>+3까지 다이스. 마지막 멤버는 누구?
1 ~ 80 : 청록색 머리의 소녀
81 ~ 100 : 고양이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
두 표 먼저 모인 쪽으로 갑니다.
주황색 단발머리에 작은키. 그리고...
"얏호~ 안녕안녕!! 만나서 반가워!!"
키타카미에게 뒤쳐지지 않는 저 밝음.
"이 쪽은 노노하라 아카네 쨩이야!"
"음음! 아카네 쨩이라고 불러줘!"
키타카미의 소개에 고개를 주억이며 나름대로 근엄하게 말하는... 노노하라. 만족스러운 미소를 한껏 지어보이며 마저 소개하는 키타카미.
"자, 이쪽이야말로, 수수께끼의 전학생! 틀림없는 전학생이야! 며칠 전에 전학온 걸 확인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오늘 전단지를 돌릴 때 딱 마주쳐서 나꿔채왔어!"
"...태클 걸 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머리가 아프다..."
...아 잠깐. 진짜 지끈거려.
"저기, 아카네 쨩이 꽤 귀엽긴하지만, 딱히 수수께끼같은건 없어서 말이지...?"
노노하라도 뭔가 방금 키타카미가 한 말에 대해서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방글방글 웃고있던 얼굴이 살짝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이런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을 오는 학생은, 높은 확률로 수수께끼의 전학생일 가능성이 크니까!"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머리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키타카미.
아니, 그 통계는 도대체 언제 누가 어떻게 구한거냐...? 5월 중순에 전학을 오게된 학생이 당연히 수수께끼의 존재라니, 그럼 일본 전국에 그 수수께끼의 전학생이 우글거리지 않겠냐...?
내 지극히 당연한 지적에, 키타카미는 예상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래서 정보를 캐내려고 데려온거야!"
"뭣이라?!"
..아, 저 대답은 내가 한게 아니다.
"자, 그럼 심문을 시작해볼까?"
"우와~ 재밌겠다~!"
"아니아니, 재밌겠다가 아니지?! 잠깐, 이게 대체 무슨 전개야?! 아카네 쨩이라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개인데?!"
미라이, 너 아직도 방에 있었냐...? 아무튼...
...이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가지 느껴지는 안도감이 있었다.
키타카미가 나보다도 괴롭히기 훨씬 편한 샌드백이 들어와서, 내 부담은 조금 줄겠구나...하고.
...거참 글러먹은 생각이군. 이미 키타카미에게 길들여진것도 아니고.
"자, 그럼 푸우 쨩!"
...키타카미는 내가 딴생각을 하며 정신이라도 도망치는 것마저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왜?"
"단장으로서, 푸우 쨩에게 몇 가지 심문할 권한을 주도록 하겠어!"
...아, 내가 질문을 던지라는건가.
"푸우 쨩이라면 뭔가 재밌고 위트있게 심문하겠지?"
그렇게 대놓고 압박을 줘도 말이지...?
아무튼 어쩐지 넋이 나간채 초점이 없는 상태로 말없이 앉아있는 치즈 언니나,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있는 미즈를 제외한 전원이 다 나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래, 까짓거 뭐라도 상관 없겠지.
>>다음 연재시까지, 푸우 쨩이 아카네 쨩에게 할 질문을 적어주세요!
"아카네 쨩이라고 편하게 불러달라니까!"
...그래그래... 그렇다면야...
"그럼, 바카네."
"그래, 아카네 쨩이라고 불러주면...아니, 잠깐만? 순식간에 별명까지 만들어부를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뭔가 묘하게 멸칭이지 않아?!"
일단 무시.
"너, 바니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어? 바니걸...?"
내가 툭 던진 질문에,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 눈치를 살피는 노노하라. 내 질문에 미즈는 언제나 변함 없을 것같은 무표정을, 키타카미는 흥미로워하고 있고, 미라이는 뭔 얘기인가, 하는 표정이군.
그리고...
"......"
치즈 언니는, 아까의 그 침통한 얼굴에서 더욱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눈의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 역시나 NG워드였나...?
어쨌든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 노노하라 아카네의 대답은...
>>+3까지, 아카네 쨩의 대답을 정해줘! 가장 그럴듯한걸로 답변할거야!
노노하라는 눈을 감고, 어째선지 모르게 엄청나게 고민하는 눈치. ...뭘 고민하는 건진 전혀 모르겠지만.
"...그, 아카네 쨩이 귀여운 걸 좋아하긴 하고. 또, 귀여운게 엄-청 잘 어울리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지..."
조금 난처하다는 듯 눈을 피한다.
"그, 역시, 아무래도 바니걸 같이 너무 귀여운건 조금... 음, 좀 이르지 않을까! 해서...?"
...호오.
이 녀석, 다른 사람 말을 들은 척도 안하는 녀석이나, 딱히 대화할 생각이 없는 녀석이나, 아니면 뭔가 강압에 어쩔수 없이 있는 사람과는 달리... 자기 주장도 뚜렷하고, 또 적당히 타협을 보며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마 보통의 그룹이었다면 저런 밝고 명랑한 분위기 메이커가 분명 필요하고, 중심이 되겠지.
안타깝게도 여기는 그런게 아니겠지만...
침묵만이 흘러가는 방안의 묘한 분위기에 뭔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노노하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설마... 그, 아카네 쨩더러... 지금 입으라는 건...아니겠지...? 그치?"
"아쉽지만, 아직 준비를 못했어!"
키타카미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노노하라. 그러다 헛, 하고 숨을 들이키며-
"그, 그렇...잠깐. 혹시, 어제 오늘 떠들썩했던 그 소문의 바니걸이...?"
-음. 분명 처음 봤을때는 자신만만하고 밝은 미소였는데, 지금은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난 긍정해주고 싶은 의사가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지.
"응! 아카네 쨩의 의상은, 내가 단장으로서 최대한 빨리 구해보도록 할 게!"
"스토오오오옵?!"
...하아... 이런이런...
"...너,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거냐...?"
"아니, 갑자기 질문이 너무 또 시니컬하고 멸시적이지 않아?! 아카네 쨩, 지금 아무렇지 않게 바니걸 의상을 입힌다는 거에서 이미 충격이 꽤 큰데?! 그 이상 데미지를 주면 아무리 아카네 쨩이라해도 버티기 힘드니까?!"
...아, 이런.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어야했는데. 키타카미나 아리한테는 겉으로 내뱉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건만. 어찌보면 이렇게나 내 속내를 드러내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바카네.
"그거 칭찬 아니지?!"
...보기보다 똑똑하네.
"칭찬이 아니잖아-!!"
"...확실히, 수수께끼의 전학생답네요. 음음. 미즈키, 납득했다구."
어...? 방금 누구...?
"저기, 미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
여전히 표정변화는 없는 채로, 저렇게 애교섞인 말투로 말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또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미즈. 내가 잘못 들은건가...?
냐아아앗-하고 고양이의 하악질처럼 따지려던 바카네도 순간 벙쪘는지 미즈를 돌아보았고.
"뭐, 그럼! 푸우 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할 정도의 '수수께끼의 전학생'인게 판명되었으니까. 아카네 쨩의 입단을 정식으로 승인합니다! 땅-땅-땅-!!"
"저기, 저기 말이지...? 그거 그냥 없던일로 하고 아카네 쨩은 그냥 돌려보내주면 안될까...?"
음, 어림도 없지. 키타카미가 그런걸 들어줄리가 없어. 아니나 다를까, 손 나팔을 만들고는 뿌-뿌-거리며 기뻐하는 키타카미에게 동생과 미즈가 맞춰 손뼉을 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방안 분위기 속, 조금이라도 반대를 세워줄거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걸 느낀 노노하라는 제발 말려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고-
"...환영한다, 바카네."
"냐아아아아앗!!!!"
...고기방패는 어쩔수 없지.
얼렁뚱땅 이 RED단인지 뭔지하는 단체에 합류하게 되어서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좌절하고 있는 바카네에게, 치즈 언니가 병문안 선물로 건네준 푸딩을 다시 갖다주며 말을 걸어보았다. 물론 나도 푸딩은 꽤 좋아하는 편이니까, 내가 먹을 몫은 남겨두고 물어보는 중이지.
사족이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치즈 언니는 어느정도 회복된거 같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아무튼 다들 모여앉아 하나씩 푸딩을 집어들고 있고, 동생 녀석이 스푼을 가지러 주방으로 간 상태.
혼자 이렇게 쭈그리고 있는다고 해서 뭐 해결되는건 아니고, 좀 안쓰럽기도 하니까 저 녀석 몫의 푸딩을 하나 직접 갖다주려 한거다.
"...응."
여전히 뾰로통해보이지만, 그래도 사양은 않겠다는 듯 손을 뻗는 바카네.
"뭐, 숟가락은 미라이가 가지러 갔으니까, 좀 있다가 너도 하나 받아서 떠먹으라고."
피식 나오는 웃음과 함께 그렇게 건네주려는데.
"잘 먹겠습니다-!"
홱, 하고 그 푸딩을 나꿔채가는... 키타카미...?
"에?"
"야!!"
순식간에 뚜껑을 벗겨버리고는, 아랫부분을 손으로 눌러 푸딩을 용기에서 살짝 밀어올리고는 그대로, 마치 사과를 베어먹듯 스푼 없이 푸딩을 먹기 시작하는 키타카미.
"으음~ 맛있어~!"
"아, 아아..."
...이건 또 뭐냐?
"잘 먹을께 푸우 쨩~"
"아니, 다 먹었잖아 벌써."
먹고 나서, 먹기 전에 할 인사를 하는게 맞냐. 그리고 그 전에, 왜 네가 그 푸딩을 먹는건데.
"아 맞다. 잘 먹었습니다!"
한결 더 상쾌해진 키타카미의 표정과는 반대로 한결 더 우중충해져가는 바카네의 표정.
...겨우 달래려니까 왜 불을 지르는거야, 단장이라는 녀석이...!
...겨우겨우 내 몫의 푸딩을 건네줘서 달래는데에 성공하자, 바카네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뭐하는 동아리인지, 하고... 아카네 쨩의 소개는 했으니까, 다들 소개 좀 해주면 안될까...?"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말하는 내용이...
...뭐야. 설마, 또 그냥 다짜고짜 끌고와놓은거냐?! 키타카미를 노려보니,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고개를 돌리는 녀석.
"...자! 그럼 다시 한 번 소개할게!"
"...아니, 소개해준적 없다니ㄲ-"
"-우리는 RED단이야! 내가 단장인 키타카미 레이카! 그리고 여기 세 명은 단원 1과 2, 3. 그리고 아카네 쨩이 바로 4야! 자, 다들 친하게 지내자!!"
...자기소개말고 있는게 있냐? 하나마나한 소개를 들은 바카네의 표정은, 그래도 아까까지 겪은 것 때문인지 어느정도 평정심이 유지되고 있었다.
"...뭐하는 동아리인데...?"
...사실 저건 나도 정말 아직까지도 떠나지 않는 의문이긴 한데. 이 RED단인지 뭔지하는 단체를 보고 그 누구라도 떠올릴법한 의문이지.
하지만 키타카미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차례로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가르쳐줄게! RED단의 목적. 그것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말을 잠시 끊는 키타카미. 그러고보니, 저 녀석 진짜 폐활량 좋긴하네. '그것은-' 하고 노래 후렴구 마냥 길게 끌었는데, 전혀 숨이 찬것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내심 경외롭다 느끼던 중, 키타카미는 참으로 놀라운 진상을 마침내 토해냈다.
"우주인과, 미래에서 온 자와, 초능력자를 찾아내서 같이 노는거야!!"
...네이네이, 그러시겠죠. 이미 알던 내용이라 별 감흥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3까지 다이스. 다들 제각각 얼마나 동요하는지를 확인합니다.
1에 가까울수록 평정심을 잃습니다.
차례대로 치즈루, 미즈키, 아카네의 순서입니다!
일단 치즈 언니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고 해야할까. 석고같은걸 끼얹은것마냥, 키타카미를 바라보고는 미동도 없...
"......"
...아니, 그건 아니네. 손을... 잘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유심히 잘 보고 있으면 떨고 있는게 보인다. 조금 거리가 있는데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라니...
심히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며 테이블 아래로 잡아 끌어내리는 모습. 그리고 저런 느낌까지는 아니래도 어쨌든 마찬가지로 굳어있던 미즈, 마카베 미즈키는...
"...그런가요."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노노하라 아카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렇지. 그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그런 표정과 말투로 중얼거리더니 치즈 언니와 미즈를 차례로 바라보고선, 의미를 알수 없는 감상평과-
"과연, 레이카 쨩 다워! 알았어. 아카네 쨩, 여기에 가입하는 걸로 할게! 앞으로 잘 부탁해!!"
처음 왔을때 보인 그 완벽한 미소를 다시금 지어보였다.
"...잠깐, 그런 설명으로 충분한거야? 정말 듣긴 한거냐, 너?"
뭔가 이상한 느낌에 그렇게 다시금 되물어보는데, 이 녀석, 아까 말보다 지금 하는 말을 더 안듣고 있는건지 그냥 불쑥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아카네 쨩이 전학 온 지 얼마 안되서 말이지? 배울게 엄-청 많을거 같아! 그러니까, 많이 가르쳐줘!"
애교를 듬뿍 담았지만, 내민 손이나 녀석의 눈빛이 방금까지와는 달리 사뭇 정중해서 나도 모르게 절로 손을 잡았다.
"잘 부탁해, 푸우 쨩!"
...뭐, 내 이름을 불러줄거란 기대는 안했다.
"아참, 이쪽이 미즈키 쨩이고, 이쪽이 치즈루 쨩이야!"
...까먹었었다는 듯이 두사람을 각기 가리키며 그렇게 적당히 설명하는 키타카미. 그리고 그걸로 할건 다 한것마냥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 일련의 상황을 다 지켜본 미라이는-
"와아-! 나도 RED단에 들어갈래!"
...이런 소리나 하고 있다...
>>다음 연재시까지, 다음 상황 자유 앵커...!
단, 새로운 등장인물은 제한됩니다.
미즈키 "그렇습니까... ...시무룩."
아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키타카미. 그런데 말이지... 애초에 군말 하든말든, 신경 안쓸거 아니었냐...?
"드!디!어! RED단이 베일을 벗고 나설 때가 왔어! 다들, 하나가 되어서 열심히 해보는거야! 와~산~본!!"
와아~ 짝짝짝! 하고 혼자 환호하고 박수치고 있는 키타카미...가 아니라, 잠깐 미라이, 동조해주지 말라니까?!
"후후, 고마워 미라이 쨩! 자, 그럼 RED단 정식 발족과 아카네 쨩의 가입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역시 바니걸 의상을 한번 입어보는 걸로 하자!"
"음음! ...어라? 에?"
"자, 그-러-면... 그렇네! 키는, 푸우 쨩이 가장 비슷하니까... 푸우 쨩의 옷을 입어보는거야!"
...그러면서 주섬주섬... 아까는 신경쓰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수상해보이는 사이즈의 부직포 가방에서 꺼내지는...
"...어이."
...이젠 뭔가 익숙한 느낌인 그거.
...그런데 익숙하다 어쩌다해도, 고작 하루밖에 안됐는데...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닌데.
"어, 어어어... 저기, 아까 아카네 쨩한테 바니걸 의상 입히는거는 캔슬된거...아니었을까나...?"
"하지만 지금까지 나도, 푸우 쨩도, 치즈루 쨩도 다 입어봤는걸? 그러니까 RED단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입어야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기왕이면 아카네 쨩이 가장 말단이니까, 아카네 쨩의 바니걸 의상은 아카네 쨩이 직접 준비해오는걸로 특별히 허락해줄게!"
...아, 양 손의 주먹이 꽉 쥐어진걸로 보아, 이젠 더이상 미소를 유지하기 힘든 모양...인데 용케 버티고 있다.
"...그렇지. 그, 푸우 쨩네 동생!"
"에? 저요?"
"응응! 역시 아카네 쨩은 키도 작고, 사이즈가 잘 안맞을거같으니까! 그리고 아까 RED단에 들어오고 싶다고 그러지 않았어?!"
"에, 그랬죠?"
"그러니까 한번 입어보면 어떨까?! 그래! 푸우 쨩의 옷이랬으니까, 아무래도 생판 남인 아카네 쨩보단 동생이 입어보는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어이어이어이! 잠깐!
"에..? 푸우 쨩?"
...이럴 때는 언니라고 해라, 동생아... 아무튼, 뭔가 빠져나갈 궁리를 열심히 하며 자연스럽게 미라이를 팔아먹으려는 바카네를 제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미라이, 같은 학교도 아니고, 더군다나 고등학생도 아닌 네가 고등학교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리가 없잖냐..."
"에에-"
...키타카미가 뭐라 토달기전에 빨리 매듭지어야한다.
"그리고 인생이란건 말이지,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지만 정작 막상 겪게되면 비극인게 한두개가 아니야."
...이게 정상적인 동아리면 몰라도, 좀... 나도 뭘 했던건지, 뭘 하는 건지, 뭘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 단체라서 말이지. 그러니까 바보같이 무구한 동생 녀석이 쓸데없이 끼어드는건 역시 사양하고 싶달까.
"그리고 고작 중학생인 너한테 이런 의상은 역시 NG야. 그 어떤것도 난 OK 못하겠어.
"에에... 옷도 이뻐보이고, 재밌어보이는데..."
"재미 없어."
...앞으로 뭘 할지도 모르니 위험천만하고. 단호하게 여지를 없애버리는데...
"...그렇습니까. ...시무룩."
...어이, 미즈. 역시 아까도 너 맞지...?
방 안에 있던 나머지 다섯명의 시선이 전부 쏠렸어도, 그저 양장본의 페이지를 찬찬히 넘길 뿐인 마카베 미즈키는... 정말, 아마 내가 살면서 절대 다시는 보지 못할, 전무후무한 포커페이스가 아닐까...
"...아무튼 그런식으로 얼렁뚱땅 미라이한테 토스하는건 절대 안된다, 바카네."
이 녀석이 딱히 언니취급해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언니로서 절대 반대다.
"쳇...!"
>>다음상황 자유앵커...!
키타카미 : 와! 학생회장도 우리 RED단에 가입하려는건가봐!
지금까지 잠자코 지켜보던 키타카미가 그렇게 말하자, 바카네는 점점 눈에 띄게 안색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 다시 생각해보니 말이지? 아카네 쨩은, 역시 RED단과는 적성이 영 안 맞는거 같아서 말이지...? 그러니까 레이카 쨩? 단장님? 잠깐만 멈추고 아카네 쨩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래?! 저기이이이이이?!?!?!"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든 치즈 언니든 당해본 사람이라면 좀 인간적으로 도와줘야 하는게 아니냐, 라고 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잠깐, 레이카 쨩 힘이 뭐 이렇게 세?! 잠깐 이거 성희롱이라구-!!!"
"응응, 잠깐 입어보고 끝나는거니까-"
...직접 겪어보면 그런 말이 안나온다. 저녀석, 힘... 진짜 세...
"으에에, 왜 가리는거야 푸우 쨩!!"
"...그야 네 교육상 좋지 않을테니까 그런거란다, 동생아."
미라이를 붙들고 도저히 못볼꼴을 직접 보진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정도가, 내가 바카네에게 해줄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RED단에 온걸 환영한다, 바카네."
"왜 하필 이런 상황에서 환영인사를 하는건데?!?!?!"
...오, 저 와중에도 태클을 걸 정신이 있다니... 정말 우수한 인재야...
"...어라? 푸우 쨩, 푸우 쨩."
"...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언니라고 해주면 안될까, 미라이?"
...잘 생각해보니 이 녀석이 치하랑 아리 앞에서 푸우 쨩이라 불러댄 통에 이 웃기지도 않은 별명이 중학교 때부터 퍼졌다는 게 떠올라서, 슬슬 입단속의 필요성을 느껴 몇 마디 하려는 때에.
"전화 왔어."
"...어?"
"저어기, 진동 소리나."
치즈 언니가 나하고 미라이의 대화를 들었는지... 아니, 생각해보니 저쪽의 광경을 보고 있느니 뭐라도 다른데에 정신이 팔리는게 낫지. 음.
어쨌든, 미라이의 눈을 가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고 있는 내 상황을 배려해서 치즈 언니가 침대 베개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들어서 직접 가져다줬고...
"아, 고마워요, 치즈 언니."
"아니어요."
그렇게 진동이 울리고 있던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화면에는 전혀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었고...
...뭐, 모르는 번호라지만 지금 올 전화는 거의 정해져있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푸우 쨩?」
"...어어, 타나카."
...그냥 간단히 안부 물어보려고 전화한건가.
>>다음전개 자유앵커! 단, 새로운 등장인물은 제한합니다.
아니 왜 나한테만 그래..!
>>재앵커 갑니다.
"...뭐어... 괜찮아."
모범적인 반장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타나카 답게, 별 비중없는 나란 녀석의 상태도 신경써주는군 그래.
누가 주소를 알려줘서 찾아온 불청객과 그 일행들을 제외했었다면 더 괜찮았겠지만.
「어제 그 바니걸 건으로 등교거부라도 하는게 아닐까해서 걱정했어.」
"...거참 눈물나게 고마워."
그렇게 꼭 일침을 날려줘서 가뜩이나 섬세한 내 멘탈에 치명타를 넣어줘야 했냐.
내 볼멘 소리에 후후, 하고 웃던 타나카는-
「역시 키타카미 씨를 보내서 바로 기운을 차린거야?」
-가차없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되도 않는 소리 하지마. 끊는다."
「그래. 내일 학교에서 봐?」
...저 녀석, 예의바르고 모범적이라고 분명,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말하고 나도 그런 모습을 수없이 봐왔는데. 왜 나한테 화풀이 하는 거 마냥 살살 속을 긁어대는거지...? 내가 저녀석한테 뭐 잘못하거나 한거, 없잖아...?
부아를 치밀게 하는 전화 통화가 끝나고 나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는 동안, 키타카미는 하던 일을 다 끝마친 모양이었다.
"쨘~ 바니걸 아카네 쨩이야!"
"...우으..."
분명 첫인상은 자신만만하고, 키타카미 같은 자연재해도 거뜬히 극복해낼 수 있을것 같던 노노하라 아카네...였을 터인데. 몸을 움츠리고 부끄러워 하는 지금의 모습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런 기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어... 저 멀리 방 구석까지 날라간 속옷을 보아하니, 키타카미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바카네를 제압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이야기인 듯하다.
"...자, 잘 어울리와요...!"
"그러게. 사실, 아카네 쨩이 좀 더 작은 편이라서 사이즈가 잘 안맞지 않을까 했는데... 아마 아카네 쨩 쪽이 쓰리사이즈가 더 좋아서 그런 쪽에서 적절히 맞춰진게 아닐까 싶어!"
"...어이, 잠깐."
내가 아무리 꾸미는 것 같은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해도, 그래도 여자로서 도저히 그냥 흘려들을수 없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음, 조금 돈이 더 들겠지만... 이렇게나 잘 어울리면 아카네 쨩의 바니걸 의상도, 단장으로서 준비해주는걸로 할게!"
"아니아니아니, 됐으니까?! 이번 한 번으로 됐으니까?! 쌩으로 알몸에 이런 얇은 천조각을 걸치는건 이번 한 번으로 끝내주면 안 될까?! 아무리 아카네 쨩이 귀엽다곤해도, 역시 이 옷은 아카네 쨩도 소화하긴 무리랄까, 응! 그러니까!!"
...키타카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바카네. 뭐, 남 얘기는 아니니까... 내친 김에 저 이야기에 힘을 좀 실어줘볼까- 싶어 거들려고 했는데.
"으음...하긴 이 옷, 담임 교사나 타나카나... 다들 귀찮게 굴고 그러니까. 방해 받지 않도록, 뭔가 다른 의상으로 교체해볼 필요가 있긴하겠어."
...잠깐.
"어이, 다른 의상이라니. 저거 맞추는 데에도 돈이 꽤 깨졌다더니만..."
"뭐, 그건 다 방법이 있으니까 괜찮아! 음, 아카네 쨩은 이제 다시 갈아입어도 될거같아!"
"고, 고마워 레이카 쨩...!"
"아니, 대체 뭘 고마워해야하는건데... 또 무슨 옷을 들고오려고..."
"지금 당장은 옷이 중요한게 아냐! 아무리 방과후에 홍보를 한다해도, 우리 RED단이 다른 학생들에게 인상을 깊게 남기려면 뭔가 로고나, 마스코트로 강렬한 무언가를 심어줘야해!"
...그 강렬한 무언가는, 나하고 치즈 언니의 흑역사가 충분히 뇌리에 남긴거 같다만.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거냐.
"그러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가서, 그 위에 있던 노트들을 휙휙 넘기는 키타카미. 그러고는 노트 하나를 그대로 들고 다시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펼치고는...
"...어이, 잠깐. 이봐."
어느샌가 꺼내든 펜으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로고, 한번 정해보는거야!"
"...다 좋은데, 그거 내 노트 아니냐. 적어도 네꺼에다가 하지 그러냐."
...물론 듣지도 않았지만...
>>다음전개 자유앵커!
우승자에게는 선물로 레이카의 뽀뽀
이러다가 죽도 밥도 안 된다고.
"자, RED단 배 RED단 로고 콘테스트 개시야!"
...그래도 그동안 해온 별 정신나간 짓거리들에 비하면, 이건 좀 정상적이고 얌전한 일이니까 잠자코 따라주도록 할까.
...라고하기엔 내 연습장 노트를 북북 찢어버리는 키타카미의 폭거가 많이 거슬리긴 하지만. 종이 몇장으로 저녀석을 잠시나마 얌전하게 둘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자.
"레이카 쨩, 콘테스트라면 상품은 뭐양?"
키타카미의 관심이 다른 데로 돌아간 사이, 재빠르게 옷을 원래대로 갈아입은 바카네는 텐션을 다 회복한 모양인지 아까처럼 톡톡 튀는 고양이 말투로 레이카에게 질문을 던졌다.
"으음, 그러네... 대회니까 상품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키타카미는...
"그렇지! 단장님의 뽀뽀-"
"기각."
그딴걸 하려고 내 노트를 찢어댔냐. 단호한 내 반응에 입을 삐죽이 내밀고 투덜거리는 키타카미. 그리고...
"와아, 푸우 쨩 쌀쌀맞아..."
"그러게! 푸우 쨩 너무하네!"
...어이 바카네, 아까 그렇게 된통 당해놓고 키타카미의 밑에서 앞잡이같은 짓을 하고 싶냐...?
시큰둥하게, 그리고 신랄하게 비꼬아보았지만 바카네는 들리지 않는 척을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말을 무시했고.
"있지 있지, 미라이 쨩도 해볼래? 이건 RED단 단원 이외의 외부 사람들도 참여 가능해!"
"와아~ 정말요?! 재밌겠다~ 할래요!!"
저게 뭐하는 건줄 알고 덥썩 하겠다고 하는거니, 동생아...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하니, 별 사소한 것에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만 같다.
"자, 그럼 가장 그럴듯한 로고를 그린 사람이 우승하는거야! 자, 시작! RED 단원 중 참여 안하는 사람은 벌금이야!!"
"...어이, 키타카미."
...그냥 냅두고 싶어도, 저 적당하고 아무 대책없는 진행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
>>자유 앵커~ 푸우 쨩의 지적 사항들을 적당히 적어주세요!
따질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먼저 따질건.
"그럴 듯하다는게, 대체 누구 관점이냐?"
하다못해 심사기준은 명확해야지. 저런 아무데나 갖다붙여도 되는 기준이 대체 어딨냐.
"응? 그야 당연히, RED단의 로고로 쓸 디자인이니까. RED단 단장인 내 마음에 들면 되겠지?"
"아니,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말고..."
언제나 항상 별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미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미라이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
...바카네, 이젠 좀 알겠냐. 아무 대책없이 저 녀석을 지지하면 안 된단 말이다. 직접 당해본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고삐를 채워야만 한다는게 내 최소한의 양심이 시키는 일이다.
"...아니, 그리고. 이게 뭐라고 벌금까지 내야해?"
"안 그러면 안 할 거잖아?"
"아니 무슨 블랙기업에서도 안할법한 발상을 자연스럽게 내고 있냐고!"
"그치만 빨리 로고를 만들어서, 홈페이지에 올려놔야 제보 메일이 팍팍 올테니까?"
아니 저게 대체 무슨 논리전개야.
"야, 고작해야 고등학교 동아리인데 거창한 로고가-"
"RED단은 단순한 동아리가 아니라구!! 그리고 아직 부활동 신청도 안되지 않았어?"
"...그건 그렇긴 하...아니, 잠깐.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지적을 니 입으로 하는거냐?!"
대체 키타카미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 아니, 생각해보니 딱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긴한데...
"애초에 말이지, 우리 머리로 괜찮고 그럴듯한 로고를 이렇게 단시간에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고작해야 고등학생 5명이 모인 것뿐인데, 누구 하나 디자인에 뛰어난 사람이 있거나 한것도 아니건만 그게 될리가 없잖아.
"에, 저기, 푸우 쨩? 그-"
"가능해. RED단이라면, 할수 있어!"
심드렁한 내 말에 상당히 표정이 찌푸려져있던 바카네가 뭔가를 말하려 했는데, 키타카미가 바로 딱잘라, 저렇게 말해버렸다.
"자, 아무튼 시작이야! 벌금이 싫다면, 참여 안하는 사람은 오늘 귀가 못하는거야!!"
"아니 진짜 대놓고 블랙기업 감성이냐?!"
"...뭐, 뭐어... 재밌어보이니 아카네 쨩은 참여할 게!"
...그렇게 정말 마지못한 표정으로 볼펜을 집어들고 뭔가 끼적이기 시작한 바카네를 시작으로, 치즈 언니와 미라이 마저도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고...
"서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유하면서 만들자!"
"...그 시점에서 이미 대회는 아니지 않게 되지 않냐...?"
...뭐, 어찌되었든 다들 이 얼렁뚱땅 시작해버린 로고 만들기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4까지 다이스. 가장 높은 값으로 판정합니다.
1 ~ 60 : 완성은 무슨... 진전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키타카미의 얼굴이 온통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61 ~ 80 : ...뭐, 이정도면 내가 나중에 마무리해볼게! 그렇게 디자인을 챙기는 키타카미입니다.
81 ~ 100 : 훌륭해!! 대만족! 하면 되지않느냐는 블랙기업 논리를 또 펼치는 키타카미입니다.
결국 대회...는 무슨.
"...으으음... 좋아!! 이거면 충분해~"
나름 그럴듯한 뭔가를 그려낸 미라이의 것을 기초로 해서, 키타카미가 바카네에게 이걸 더해봐라 빼봐라... 처음 말한 그대로 블랙기업마냥 갈군 끝에 나온 로고...는.
"...괜찮네?"
"그, 그렇사와요..."
생각 외로 더더욱 그럴 듯했다. 물론 그만큼 디자인을 수없이 고쳐대면서 내 노트가 갈려나가긴 했지만, 내가 손을 움직이진 않았으니 그걸로 만족하자. 뭔가 잘못된거 같다, 싶은 표정을 지으며 매우 지쳐있는 바카네와 마냥 즐거워하는 미라이와 키타카미...
"......"
...저건 매우 불길한 조합이긴 한데, 뭐 이젠 어쩔수 없나.
어쨌든 간에.
"역시, 하면 되잖아! 다들 수고 했어~ 다음에도 또 부탁할게!"
"...어이."
...이 정도면 거의 일부러, 사람 화딱지나게 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어서,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 미즈?"
어쩐지, 저 로고를 유난히 응시하고 있는 미즈가 눈에 띄였다.
"...네?"
"어..."
대답은 하는데, 시선은 로고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러고보니... 미즈... 마카베 미즈키가, 저렇게나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던 적이... 있었나...?
>>+3까지 다이스 체크.
체크 값은 95입니다. 넘길 경우, 푸우 쨩이 미즈키에게 더 캐물어봅니다.
"...어..."
뭔가 분명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었는데, 또 이걸 뭐라 표현하자니 그건 그거대로 또 잘 정리가 안되고...
"...아니야, 아무 것도."
...뭐, 관심 좀 보일 수도 있는거지. 미즈도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쨌든 나랑 동갑내기고. 좀 괴상한 로고이긴 하지만, 저런 거에 관심을 좀 보인다고 해서 찜찜해하는 내가 이상한거...겠지?
"...네."
"자, 로고도 완성했으니까 오늘의 RED단 활동은 여기서 끝!"
짝짝짝-하고 박수를 치며 키타카미가 그렇게 선언했고, 로고를 그려놓은 종이를 잘 접어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 녀석은 마침내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걸 신호로, 다른 멤버들도 차례차례 주변을 정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푸우 쨩은 환자니까, 따로 배웅은 나오지 않아도 돼!"
"...거, 배려 한 번 고맙수다..."
키타카미를 필두로 RED단원들은 차례대로 방을 나서기 시작했는데,
"자, 그럼 아카네 쨩! 혹시, 학교 안내는 다 받은거야?"
"에? 어어, 지, 진즉에 다 돌아봤다구! 아카네 쨩이 누군데-"
"그럼, 학교 주변은?"
"...어?"
"학교 주변은 아직인거지? 오늘 내친김에 특별히! 이 단장님이 가이드를 해주도록 할게!"
"자, 잠깐, 굳이 그러지 않아도오오오-!!!"
...바카네는, 키타카미에게 뭐라 항변할 틈도 없이 붙들려 끌려나가고 말았다. 가엾은 녀석. 생각해보니, 나도 저런 식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그, 그럼, 푸우 쨩. 잘 쉬시고... 내일 뵈어요."
"으응. 치즈 언니도 내일 봐."
오늘 처음부터, 나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 좌불안석으로 쉼없이 주변의 눈치를 보던 치즈 언니도 그렇게 인사를 하고 갔고...
미라이야 뭐, 로고가 대충 완성 되었을 때 즈음 적당히 인사하고 지 방으로 가버렸으니까. 이제 이 방에 남은건...
"......"
...이제, 저 녀석... 마카베 미즈키만 돌아가면 되는데.
>>다이스 타임. 2표 먼저 모인 쪽으로.
1 ~ 33 : ...아무 말없이 돌아갑니다.
34 ~ 66 : 다 낫거든, 전에 빌려준 책을 읽어달라고 말합니다.
67 ~ 99 : "...저기."
100 : @투표 전환
꾸벅.
"...어어... 잘 돌아가, 미즈. 내일 보자."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만 할거면, 왜 뜸을 들이고 있었나, 싶지만...
어쨌든 그 인사를 끝으로, 미즈는 일행 중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고, 이걸로 오늘 하루가-
>>끝날거 같니ㅎㅎ 어림도 없지!
+3까지 다이스. 다이스와 컴마 값을 판정합니다.
체크 값은 80. 양 쪽 다 넘을 경우, 더 높은 쪽을 우선 판정합니다.
-끝날 거라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RED단이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고, 가족들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다음 날 학교 갈 준비를 할겸 교과서를 챙기고 있었는데...
"...전화...?"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 고등학교에 올라와선 번호는 커녕 메일 주소도 곧잘 교환한 적이 없건만, 지금 같은 늦은 저녁에 굳이 올 전화가 있을까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모르는 번호다.
"...아니, 메일 주소면 몰라도 진짜... 이건 또 무슨 전화야...?"
그냥 단순히 잘못 걸린 전화일것도 같지만, 왠지 모르게 그건 아닐거라는 느낌이 온다.
...그래, 받자, 받아...
"...여보세요?"
"야~호~ 여보세요~ 푸우 쨩?"
...허.
"...처음 듣는 목소리네. 잘못 거셨습니다. 그럼 이만."
"잠깐?! '오늘' 처음들었으면 몰라도, 아예 생판 초면인 목소리는 아니지 않아?! 푸우 쨩, 나라구 나! 아카네 쨩!!"
"노노하라 바카네라는 사람은 모릅니다. 안녕히."
"바카네가 아니라니ㄲ...아니 잠깐?! 별명까지 붙여 부르고 있으면서 모를리가 없잖아?! 잠깐만 전화 좀 받아줘!! 제발, 푸우 쨩!!"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지금 시간에 왜 전화를 했는지 등등... 신경줄을 긁을만한 건은 한두개가 아니긴 하다만, 아무튼 간에. 굳이 전화를 해왔으니 뭔가 할 말이 있어서겠지. 그러니까 잠깐 정도는 받아줄 의향이 있다, 바카네.
"거 속으로 생각해도 충분한 말을 굳이 입밖으로 내서 꼭 짜증을 해소해야겠어?!"
"빨리 말이나 해."
오늘 하루 왼종일 그게 환자한테 할 짓이라 생각하냐.
"뭐어, 그렇긴 하지만..."
얌전히 수긍한 바카네는... 이 녀석, 내가 본 첫 인상보다는 꽤나 상식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꼭 독백을 일부러 들리게 해서-"
"아, 빨리 말해."
"...칫..."
짧게 혀를 찬 바카네는,
"...지금 몸 상태는 어때?"
"환자입니다만."
"아니아니, 그러니까... 혹시, 잠깐 정도라도 산책, 같이 해줄수 있겠어?"
...산책?
"갑자기 무슨 산책."
"아니 그... 조금 해야할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말이지."
"전화로 해. 귀찮아."
"...전화로 해도 될 이야기였으면, 아카네 쨩이 설마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말을 끌었을거라 생각해?"
"응."
"...아니, 매도는 슬슬 됐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게 할테니까, 잠깐이라도 안될까?"
...아니, 뭐 이렇게 집요하나... 싶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데. 간단히라도 말해봐."
그거에 따라서 나갈지 말지를 결정해주마.
더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느낌으로 딱 잘라 말해주니, 으음, 하고 잠깐동안 고민하던 바카네는...
"...뭐어, 큰 토픽이야 전화로 말해도 큰 상관은 없으려나-"
라고 중얼거리더니,
"레이카 쨩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랄까."
"...뭐?"
...차마 거부할 수 없는 화제를 던져놓았다.
"...학교를 쉰 사람한테, 학교에서 보자고 하다니. 무슨 폭거냐."
"에이에이. 어차피 3년동안 주구장창 와야만 하는 곳인데, 하루정도 가감되는거에 너무 예민하게 굴면 안된다구, 푸우 쨩?"
...틀린 말은 아닌데... 아무튼 간에 아파서 쉬는 날에 굳이 학교로 등교케 만든 용건이 뭔지 궁금해서라도 듣긴 해야겠지. 운동장 옆 가로등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있는 노노하라 아카네는, 잠깐 걷자는 듯 턱으로 슬쩍 학교 본관 쪽을 가리키고는 걸어가기 시작했고... 어디 앉아있기도 애매하니 녀석의 뒤를 천천히 따라 갔다.
"그래서. 키타카미에 대해서 할 이야기라는게 뭐야."
"음... 그러니까..."
뭔가를 잠시 고민하던 바카네는...
"...좀 이상한 질문일지도 모르는데. 푸우 쨩."
"아니, 질문에 질문으로-"
"-혹시 말이지. 미즈키 쨩이나, 치즈루 쨩이 뭔가 이야기 한게 있엉?"
...말투는 평소처럼 아양을 떨고 있지만, 지금 나를 돌아보는 바카네의 눈빛은... 날카롭다.
"...아니. 이야기라고 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겠다만."
"...음, 뭔가 했더라면, 저런 반응은 아니겠징...? 으으으... 아카네 쨩이 1번타자인건, 별로 바람직하지가 않은뎅..."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싸쥔다.
...아니, 너만 알아듣게 혼자 독백하지말고 설명을 해. 뭐 때문에 불러낸거고. 방금 그 질문은 뭔 뜻이야.
"...잠깐, 시간이 좀 걸릴거 같으니까 좀 앉아서 이야기 하자. 식당의 옥외테이블로 가볼까?"
바카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또 걸어가버렸다. ...저 녀석, 내 생각보다도 더 키타카미처럼 제멋대로인 모양이다.
"그냥 얘기하면 그러니까 뭐라도 마시자! 물론, 아카네 쨩이 살테니까~ 푸우 쨩은 어떻게? 커피? 아니면 밤이 늦었으니까 핫초코?"
"...핫초코로."
"라져!"
그렇게 도중에 자판기에서 커피와, 핫초코를 하나씩 뽑아들고는 텅 빈 학교 한가운데에서, 옥외 테이블에 둘이 마주 앉았다.
"그으으럼... 아카네 쨩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그만 뜸들이고 빨리 말해. 대체 뭐때문에 그러는건데."
"...뭐, 그럼 접근하기 쉬운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낭..."
마지막으로 한숨을 포옥, 내쉰 바카네는.
"지금부터 아카네 쨩이 하는 이야기는, 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좀 하기 힘든 이야기, 가 될거야."
"...뭐, 커밍아웃이라도 하는거냐."
"아니, 그... 아. 비슷하려나? 어찌보면, 비슷할지도 모르네. 응."
...악의적인 농담을 던졌는데, 순순히 수긍하고 있다. 그 분위기에서 무언가, 지금은 잠자코 들어봐야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녀석의 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음. 그으러니까... 레이카 쨩이랑, 아카네 쨩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한참 뜸 들인 끝에 나온, 영문 모를 소리.
"평범하지 않다는 거야, 키타카미는 말할것도 없고. 너도 오늘 보는 순간부터 대강 눈치 채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좀, 성격적으로 별난 인간, 이라는 의미가 아니야."
또 크게 한숨.
"...그, 뭐랄까. 좀... 다른 의미에서, 아카네 쨩이랑 레이카 쨩은, 푸우 쨩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이랑은 좀 다르다고 해야할까."
뭔소리야 도대체.
"...그렇네. 그럼, 레이카 쨩의 표현대로 해볼까. 그게 가장 편하겠다."
"키타카미의 표현이라니?"
"음... 레이카 쨩이 불러 모으고 싶어하던 존재들...말이지? 아까, 푸우 쨩네 방에서 레이카 쨩이 딱, 말하지 않았어?"
"...뭐를."
"어어엄청 불친절하네, 푸우 쨩. 그러니까... 우주인, 미래에서 온 자, 그리고 초능력자, 말이지."
...?
"그게 뭐?"
"...아카네 쨩은, 초능력자야."
장난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노노하라 아카네는 민들레 홀씨만큼도 무게감이 없는 실없는 소리를, 참으로 무겁게도 토해냈다.
>>자유 앵커. 푸우 쨩의 반응은...?
(삑 삑 삑)
...여보세요. 정신병원이죠? 거기 고등학생도 수용 가능한가요?
"...저기? 푸우 쨩?"
"............"
"...저기, 너무 그렇게 빤히 보기만 하면, 아무리 귀여운 아카네 쨩이라도, 역시 좀 부담스럽달까..."
"...아아, 미안. 이럴 땐 뭐라고 일침을 가해야 앞으로 이딴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바깥으로 불려나오질 않을까를 생각하느라."
내 말에 '이야이야-'하면서 너스레를 떨던 바카네 녀석이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상상 이상으로 신랄한 반응이었냐.
"...그렇지. 뭐, 그래. 어디보자..."
"...푸우 쨩? 저기, 휴대폰은 갑자기 왜..."
"검색하면 정신병원 번호도 나올라나... 기왕이면 당장 실어가줬으면 좋겠지만."
"잠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식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쪽으로 다가와 내 손을 붙드는 바카네. 놔, 놓으라고.
"잠깐잠깐, 정신병원이라니, 농담이라도-"
"농담은 방금 네가 했잖아...!"
"아니, 그... 믿기지 않는다는건 알지만 말이지, 그-"
"아니, 진짜 웃기지 말라고!!!"
키타카미가 뜬금없이, 수수께끼의 전학생이랍시고 끌고 온거부터 좀 이상하긴 했는데 역시 동류였냐?! 그래 뭐, 이런 류의 동류라면 바로 납득은 간다 그래! 아주 좋은 설명이었어!!
"그, 그러니까 정신병원은 그만두라구-!! 여러모로 골치아파진단 말야!!!"
"하, 뭐가 골치아파지는데 말이십니까, 우주에서 온 초능력자 씨?"
"아니 잠깐, 아카네 쨩은 그런식으로 설명하진 않았어?! 그냥 초능력자인거지, 딱히 우주에서 오거나 같은-"
"아 됐고! 초능력자라면, 뭔가 증명해봐! 말만 띡, 하고 '아카네 쨩은 초능력자야.' 이런 문장 하나로 뭘 믿고, 아니 진짜 왜 내가 이런 상세한걸 다 설명하고 앉아있어야하냐?!"
"...으으음..."
아, 머리야. 지금 니가 머리가 아파야 하는거냐, 바카네? 아주, 키타카미 하나로도 골치가 아픈데, 별 이상한 녀석이 하나 더 추가되었잖아. 대체 이제 어째야하냐...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RED단에서 도망쳐야하나. 좀 평화로운 고교 생활을 꿈꾸고 있었건만, 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나 꼬여버린건지.
>>다이스 타임. 2표 먼저 모인 쪽으로.
1 ~ 33 : "증명...하긴 힘들어." 그러시겠지, 중2병.
34 ~ 66 : "...음, 조건이 맞으면 보여줄 수 있어." ...조건부냐?
67 ~ 99 : "...잠-깐만 기다려봐. 금방 보여줄 수 있을것같아." ...뭐든 좋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100 : @투표!
"...아카네 쨩의 초능력은, 몇 가지 조건이 맞을 때에 쓸 수 있어."
그런 설정인거냐. 시큰둥한 대꾸였지만, 바카네는 이번엔 빙긋 웃어보였다.
"으음... 잠깐만. 확인 좀 해볼게."
바카네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들고 뭔가 메일을 보냈고...
>>다시 한 번 다이스 타임. 아카네 쨩은 과연, 지금 바로 푸우 쨩에게 초능력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요?
1 ~ 66 : 어림도 없다!
67 ~ 99 : ...된다고?
100 : @특전.
2표 먼저 모이는 쪽으로 갑니다.
"...으음."
뭔가 불만...스럽다는 반응과 함께.
"...지금 보여줄 수 있을거 같은데... 어떻게, 바로 보러 갈거야?"
"아니, 어차피 지금 나온 김에 좀 더 늦어져도 큰 차이는 없으니까, 보러가긴 할건데... 그 떨떠름한 반응은 뭐냐."
"...뭐어, 가보면 알게 될거야... 아무튼, 간다는거지? 그럼 바로 준비할게."
정말, 때마침 장소도 준비 되었고 말이지.
"...장소가 준비 되었다니."
바카네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너 설마, 이렇게 나를 납치해서 어떻게 한다던가 하는건 아니지...?"
"설마! 안됐지만, 푸우 쨩은 함부로 납치되거나 할수 없는걸?"
"내가 함부로 납치되거나 할수 없다? 그건 또 무슨소리야?"
"곧 알게 되니까 걱정마~"
...뭔지 알아먹을수도 없는 소리를 해서 되물어보았지만, 노노하라 아카네는 저렇게만 말하고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로 부른 모양인지, 몇분 지나지 않아 교문으로 택시 한대가 들어오는게 보였다.
"자, 그럼 가볼까?"
"...진짜 믿어도 되는거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푸우 쨩은 함부로 납치되거나 할 수 없는 몸이라니까. 정 뭐하면... 그렇게 믿을 수 없다면, 언제라도 110에 전화할 준비를 해놔도 좋아."
"...아니, 차라리 행방을 알리거나 하는건."
"푸우 쨩, 이미 아카네 쨩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 하고 나오지 않았어?"
...그렇긴 하지.
"그 이상으로, 아카네 쨩이 지금 가는 장소에 대해서 정확한 위치를 말해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 여고생이 늦은 시간에 갔다 온다고 하면 과연 '옳다구나, 갔다오렴' 이라고 하실 부모님이나 어른이 있을까?"
이 녀석, 키타카미한테 휘둘리는 것만 봐서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말을 잘하는 편이었군.
"...그러니까 그렇게 대놓고 '의외네' 같은 표정을 지으면 아무리 아카네 쨩이라도 상처라고..."
그렇게 다시 한번 푸념하고, 바카네는 택시 뒷자석으로 폴짝 올라탔다.
"...갈거지?"
...여기까지 와서 안간다고 하기도 그러니까.
군소리 없이, 녀석의 옆자리에 탔다.
오늘의 꿀팁! 같은 느낌으로 으스대는 바카네를 보고 있자니, 이 녀석이 초능력자니 뭐니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진짜인가, 하고 현실감이 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일부러 멀리 나갈 필요가 있는거야?"
"음! 아카네 쨩이 초능력자로서 힘을 발휘하려면... 특정한 장소와 조건이 갖춰져야만 하거든. 오늘 그런 조건이 충족되는 곳이 있나, 하고 확인해봤는데 때 마침 있어서 말이지."
녀석이 택시기사에게 말한 목적지는... 현 밖에 있는 대도시. 고등학생들의 지갑 사정이래봐야,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 분명하니 전철을 타고 가는게 더 경제적이었겠지만.
그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니, 바카네는 이런이런, 하고 고개를 저으며 이유를 대답해주었다.
"푸우 쨩, 물론 전철을 타고 가는게 훨씬 경제적이긴 하지만 말이지. 안됐지만, 그건 편도로 가는 방법이 될거야. 전철로 이래저래 돌아가다보면 막차 시간이 될거란 말이지? 돌아오기 힘들어지니만큼,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아카네 쨩같은 귀여운 여고생이랑 다니려면 이렇게 왕복으로 전용 차편을 준비해두는게 좋다구!"
"...난 돈 안갖고 나왔다?"
"걱-정 하지마! 당연히 아카네 쨩이 낼거라구!"
뭐, 저 녀석이 제안한거니까 당연한거...려나?
>>+3까지 자유앵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아카네에게 던질 질문을 적어주세요.
...이것도 혹시 키타카미가 꾸민 이상한 계획의 일부냐?
옆자리의 바카네는, 창문에 기대어 바깥을 내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다리도, 손도, 고개도 온통 까딱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즐거워보이는 모습. 택시비 얘기를 한 이래로 뭔가 말이 끊어졌는데, 저 녀석 쪽에서 먼저 나서서 말을 주도적으로 하지도, 그렇다고 내가 뭔가 생각나는 거리가 없기도 해서 지금 껏 서로 창밖이나 내다보며 쭉 침묵.
창밖에 흘러가는 풍경은, 당연하지만 어둡다. 점점 현 바깥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지는 만큼 가로등도 줄어들고 있고. 큰 길을 따라다니다보니 차량은 꽤 돼서 길은 어둡지 않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저녁에, 오늘 처음 본 녀석과 드라이브라. 이것도 다 키타카미의 덕분인가.
"......"
...그렇네. 키타카미 레이카.
바카네 녀석, 키타카미에 대해서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
"어이, 바카네."
"응? 불렀어, 푸우 쨩?"
"그래."
"왜? 물어볼거라도 있는거양?"
그러니까 불렀겠지요, 노노하라 씨. 입밖으로 직접 빈정거리진 않았지만, 역시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 그런가 눈빛에서 바로 읽었는지 입을 오른손의 주먹으로 살짝 가리고 헛기침을 해보였다.
"크흠, 흠. 그래. 뭐든, 질문해. 아카네 쨩이 대답해줄 수 있는건 다 대답해줄게."
...저 녀석이 대답해줄 수 있는 거, 라니. 뭔가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도망가며 빠져나갈 궁리가 그득해보이는 문장인데.
"...이건 안돼, 저건 안돼, 하며 회피만 하려는 계획은 아니지?"
"아카네 쨩이 뭐, 그럴 것 같은 캐릭터로 보이는 거야... 아카네 쨩도 푸우 쨩 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진지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건 가감없이 말해줄게."
...물론 저런 말뿐인 약속을 마냥 믿을 정도로 어리숙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 저렇게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하면 조금은 다르기야 하겠지.
"...너, 키타카미랑은 무슨 관계야?"
"RED단 단장님과, RED단의 일개 단원?"
"...이딴식으로 빠져나갈것같아서-"
"-아아아. 일단 먼저 짚고 가는거라구. 절반 정도는 조크고, 절반 정도는 진정성 있는 대답이야!!"
그러니까 잠깐!! 이라고 덧붙이며 양손바닥을 펼쳐보이며 만류하는 바카네.
"...그래. 설명해줘."
끓어오른 화를 한숨과 함께 다시 풀어내며 녀석을 응시하니, 녀석도 살짝 한숨을 내쉰다.
"일단은... 레이카 쨩이랑 직접 마주하게 된건, 오늘이 처음이랄까? 그러니까, 레이카 쨩이랑 직접 인간관계를 맺게 된건 RED단의 단장과 단원으로서. 딱 이것 뿐이야. 거짓말은, 절대 할 생각 없어."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하는건, 진실을 다 얘기할 생각이 없다, 라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하겠지.
"...역시 푸우 쨩, 꽤 예리하네."
"뭐, 이래저래."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던 바카네는.
"...레이카 쨩이랑, 아카네 쨩 사이에...관계라고 하면, 이게 단순히 딱 한 문장으로 설명해서 납득이 가는 상황이 아니야. 푸우 쨩의 이해력은, 아카네 쨩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풍부하고 포용력도 넓어서,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아카네 쨩의 초능력을 먼저 보여주고... 그거랑 레이카 쨩이 무슨 관계인지, 같은걸 설명해야 해."
...요컨데, 주우욱 말했지만, 납득시키기 힘들다, 이거냐.
"그렇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건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려줬으면-"
"...아니, 그러니까 초능력을 보여주든가-"
"...그걸 위해서 이동중이니까, 지루하고 납득 안가는거, 아카네 쨩도 잘 이해하니까, 조금만 더 참아줘."
...장난기 없이 간곡히 설득하는 저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부아를 치밀게 하는건지...
"야, 백보 양보해서. 너한테 진짜 초능력이 있다고 치자고. 그거, 조건이 맞아야 성립이 된다고도 쳐. 그래서, 그게 대체 어떤 종류의 초능력인지 설명도 못하고 보여주겠다며 끌고가는게. 너같이 조리있게, 지금껏 말 잘해온 녀석이 그 초능력이 대체 뭔지 간략히라도 설명 하나 못하는게 말이 돼?"
...대꾸는 없다.
"그냥 핑계 아냐? 아니, 왜 그런걸 나한테 뜬금없이 말해주는 건데 또. 아무리 초능력이고 나발이고 실존한다고 해서 상식이니 뭐니 다 필요없다고 쳐도, 적어도 논리적으로 뭔가 연결되고 납득이 가도록 설명이 먼저 수반되어야 하는게 맞지 않냐?"
...고개나 끄덕이지 말고, 이 고양이 같은 녀석이.
"...이것도, 혹시 키타카미가 꾸민 이상한 계획의 일부냐? 아까 둘이 나가서 뭘 사주받았길래 이러냐?"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입이 좀 마르는 것 같아서 침을 삼키며, 숨을 몰아쉰다.
"...푸우 쨩."
"...말해."
"일단, 아까 레이카 쨩한테 끌려나간건, 정말로 학교 주변 소개를 받은거야. 레이카 쨩, 힘도 엄-청 세고... 보다시피 아카네 쨩은 키도 쪼그맣고 힘도 약한편이라서, 어지간하면 완력으로 이겨본적이 없는데, 그런데도 레이카 쨩은 진짜로 아카네 쨩이 살면서 몇 번 본 적이 없는 정도의 힘이었어."
뭐, 팔을 붙잡을 때에 멍자국 같은거 안 남도록, 배려를 엄청 해준건 느꼈지만 말이야.
...키타카미가 배려심이 있다없다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아무튼 바카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푸우 쨩의 말은... 음. 레이카 쨩의 계획...이라..."
...어찌보면 틀리진 않을지도. 바카네는 뭔가 이상한 말을 덧붙였다.
"...아니, 뭘 짠거야, 안 짠거야."
"짠 적은 없어. 아까, 바니걸도 봤겠지만... 아카네 쨩도 레이카 쨩한테 마구 휘둘리는, 푸우 쨩과 동일한 입장의 RED단 단원에 불과해. 애초에, 레이카 쨩이 오늘 처음본 아카네 쨩이랑 뭔가 계획을. 그것도 여고생 한명을 이렇게 다른 현으로 데리고 나가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분명 커질 계획같은걸 짰을 거 같아?"
"...키타카미라면 그러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만."
"...푸우 쨩. 지금 대답하면서, 스스로도 그렇게까지는 아닐거란 생각 하지 않았어?"
...히죽히죽 고양이처럼 웃지마라. 의표를 찔리니 울컥하게 된다. 내 반응을 본 바카네는, 굳이 추궁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레이카 쨩은... 끝도 없이 막나가는 거 같지만, 그 행동들은... 어쨌든 레이카 쨩 본인이 책임져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주 내의 행동들이야. 그걸 벗어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은, 하지 않아. 아카네 쨩이 전해들었던 그, 바니걸 복장으로 홍보하거나, 컴퓨터를 강탈하려했거나... 그런건 어디까지나 레이카 쨩 선에서 다 책임지고 끝낼수 있는 것들이라고."
"...납득은 안 가지만, 그렇다 치자."
"음, 고마워. 사실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서 아카네 쨩도 적당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이해해줘서 다행이야."
후우... 이 한숨은, 화제를 전환한다는 뜻인가.
...그랬지.
"...사실, 아카네 쨩은... 이렇게 전학을 갑작스레 올 계획은 없었어. 다른 두 사람이 키타카미 레이카랑 이리 간단하고 빠르게 결탁하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거든. 그 전까지는 그냥 외부에서 관찰만 하고 있었는데..."
"...사람을 무슨 벌레 관찰하는 것처럼 표현하지마."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절대 그런 의도는 없었다구. 아카네 쨩들도, 엄청나게 필사적이야. 레이카 쨩한테 해를 가하거나 할 이유 따위 없고... 오히려, 레이카 쨩이 위기에 빠지지 않게, 빠진다면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뭔가 걸리는 단어들이 몇개 있는데. 우선 먼저 짚고가볼까.
"아카네 쨩'들'이라니. 너 말고도 다른 초능력자들이 있는거야?"
호오, 하고 조금 놀란 표정이다.
"많다고는 할순 없는데, 그럭저럭? 어느정도는 있엉. 으그그극..."
깍지를 끼고 팔을 천장으로 쭉 펴는 바카네. 앉아있어서인지, 아니면 키가 작아서인지 손과 천장 사이의 거리는 꽤 멀어보인다.
"아카네 쨩은 뭐, 말단이라서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 말야... 지구 전체에 한 열명? 가량은 있을거야. 그 전원이 '기관'에 소속되어있어."
"...'기관'...?"
"응. 뭐 대충 그렇게 불러. 실체는 알수도 없고, 구성원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뭐, 대충 맨 윗선에 있는 높으신 분들이 모든것을 통괄하겠지?"
"...그걸 나한테 물어보거나 동의를 구할 일이냐."
"아카네 쨩도 잘 모르니까."
"...그래서, 그놈의 비밀결사는 뭐하는 단체냐?"
"뭐, 일단은... 방금까지 아카네 쨩이 말한걸 종합하면 푸우 쨩도 대충은 유추하겠지만, '기관'은, 3년 전에 발족하고서... 키타카미 레이카의 감시를 최우선 중요 사항으로 취급해오고 있어. 레이카 쨩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려나?"
...저 뉘앙스에서 느껴지는게 있긴하네.
"...학교에 '기관'의 관계자...가, 너 혼자가 아니겠네."
"와아, 정답. 아카네 쨩은 어디까지나 보충 인원이야. 이미, 여러 에이전트가 잠입해있는 상황이라구."
...대체 그 녀석이, 키타카미 레이카가 도대체 뭐길래...
"...아니, 대체 뭐 때문에 그 녀석을 그렇게 감시하네, 따라붙네... 그러고 있는거냐?"
뭐, 스카웃해서 아이돌이나 가수나... 하다못해 av배우 같은거라도 시키려는거냐?
"...농담이 저급해, 푸우 쨩."
"계속 진지하게만 이야기해대니까, 어거지로라도 환기를 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가볍게 얘기하면 안 믿을거면서?"
"지금도 믿기진 않는다고."
...정말 한마디도 질 줄을 모르는구나, 푸우 쨩은.
그렇게 넋두리를 읊던 바카네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어느 날.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지 못해."
...띄우는 운이 뭔가 이상하다.
"아카네 쨩이 아는건... 3년 전의 그 날에. 갑자기, 아카네 쨩의 몸에... 초능력, 이라고 지칭하는 것 외에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정체도, 기원도 도저히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났다는 것 뿐이야. 처음에는 공황상태에 빠졌었어. 무서운 경험도, 이것저것 겪어봤고. 다행히도, '기관'에 마중을 나와서 이것저것 도움을 준 덕분에 살았지만... 그냥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아카네 쨩은 스스로 미친거라 생각하고 자살해버렸을지도 몰라?"
...진지하게 믿고 있으면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하지 않나 싶은 내용의 이야기인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계속 맛이 간 채로 방치 되었을 가능성...이..."
"응응,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그런데...아카네 쨩들은, 그런 것 정도는 '따위'로 치부해도 좋을, 더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거든."
...저 녀석, 고양이 상으로 히죽히죽 웃고있거나, 아니면 뭔가 골탕먹어서 찡그려진 얼굴이 아닌...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은건, 처음인가.
"...푸우 쨩은, 세계가 언제부터 존재해왔다고 생각해?"
"...갑작스레 참 거시적인 이야기네. 먼 옛날의 빅뱅, 아니냐? 천문학이나 우주과학에서 베이스로 깔고가는 이야기잖아."
"응. 그렇다고들 하지. 그런데... 아카네 쨩들은, 어떤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말이지?"
세계는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라는 가설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이 얘기를 들은 내가 가장 먼저 살핀건, 앞에서 운전 중인 택시기사의 반응이었다.
하도 별 관계없이 급발진해서 튀어나간 내용이라, 내가 잘못 들은건가. 아니면 어찌저찌 같이 듣고 있을 택시기사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솔직히 반응을 보여야 정상 아닐까? 아니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그냥 뭔 소설이나 이런 이야기를 하나...
...아무튼 나 말고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의 반응이 궁금해져서 바로 확인해보았지만, 그냥 별 관심 없다는 듯 미동도 없이 운전이나 계속할 뿐이었다.
...부정은 나 스스로 해야하나.
"어이, 그럴리가 있냐? 난 3년 전보다도 더 오래된 기억도 갖고 있고. 부모님이던 동생이건 다들 건재하다고. 어릴적에 까불다가 넘어져서 남은 흉터도 분명히 있고. 아니, 그럼 일본사 시간에 필사적으로 외우고 있는 역사는 그럼 대체 뭐라고 설명할건데?"
"그거야 말이지? 만약에, 푸우 쨩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지금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 태어나- 아니, 태어난거보단 나타난게 맞으려나? - 어쨌든. 그렇게 세계에 태어난게 아니란 사실을, 푸우 쨩이라면 어떻게 부정할거야? 사실 이거, 3년 전에 얽매일 것도 없어. 지금부터 불과 5분 전. 5분 전에, 전 우주가 존재해야 할 모든 모습과 인과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세계가 만들어졌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시작된게 아니다... 이렇게 부정할 만한 근거를, 이 세상 어디에서 찾을거야?"
빙긋 웃는 모습이, 꼭 이야기 속에 나오는 체셔캣같은 느낌이다. 저녀석이 체셔캣이라면, 난 이상한 나라에 끌려가는 앨리스인가.
...젠장, 뭔 앨리스냐. 답지않은 소리나 떠올리고 있네.
화는 나지만, 빙긋 웃는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들어온 녀석의 목소리 중 가장 차분하고 낮게 가라앉아있어서 뭐라 따질수도 없었다. 동요하고 있는 나랑 대조되어서, 저 동안이고 까불대는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워 보일 지경이고.
"뭐어... 세계를 자신의 의지로 만들거나, 부술수 있는 존재... 사람들이 보통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아카네 쨩이 알기론, '신'...이라 정의하지?"
"...하, 차...거...뭔..."
...오늘, 내가 정말 너무나도 큰 잘못을 저질렀나보다... 하루 좀 컨디션 안좋고 기분이 찜찜해서 나가기 싫길래 학교를 쉬었더니, 불청객들이 방에 마구 들이닥친 끝에 저녁에 불려나와서, 키타카미 레이카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내 반응을 못본건지, 아니면 보았음에도 무시하는건지.
"그러니까, '기관' 사람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어."
"...어떤걸?"
"만에 하나라도, 이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바로 세계를 파괴하고 처음부터 다시 창조하지 않을까? 모래사장에 쌓은 산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말이지."
...농담이라도 정말 악질적인 농담이군.
"아카네 쨩은... 지이이인짜 모순되고 별 말도 안되는게 수두룩한 세계라해도,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 있어서 말야... 그래서, '기관'에 협력하고 있는거야."
"그러면 키타카미한테 가서 부탁해봐. 제발, 세계를 부숴버리거나 하지말아주세요... 혹시 알아? 들어줄지도."
"...아까 아카네 쨩이 말하고 지나갔던 게 있는데... 레이카 쨩은 스스로가 그런 존재인 걸 자각 못하고 있어.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야. 뭐, 아카네 쨩들은 가능하다면야, 레이카 쨩이 평생 깨닫지 못하고 평온하고 평범하게 인생을 보내줬으면 해."
자! 하고 갑자기 손뼉을 짝짝 두번 치는 바카네. 가라앉아있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시트에 푹 파묻혀있던 몸을 다시 일으키며 곧게 고쳐 앉는다.
"뭐, 정리하자면, 레이카 쨩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신이 아닐까, 라는거지. 마음대로 세계를 조종하는건 아니라는 거야. 다만, 아직 채 발달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그 힘의 단편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거든."
"...그걸 어떻게 아냐?"
"지금 푸우 쨩 옆에 앉아있잖아? 그 증거."
...뭔소린가 싶어 가늘게 쏘아보는데,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왜, 아카네 쨩 같은 초능력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그건 말이지-"
'평범한 사람에겐 관심 없어요! 이 중에서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상!'
"-레이카 쨩이, 그렇게 바랐기 때문이야."
......
"레이카 쨩은 신의 힘을 완벽히 발휘하고 있는건 아니긴 한데... 음. 표현해보면, 레이카 쨩의 무의식 속에서 우연하게 그 힘이 행사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달까? 하지만, 요 몇 달 사이에 확연하게 인간의 능력을 넘어신 힘이 레이카 쨩한테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 결과는 뭐... 푸우 쨩도 알테니까."
>>다이스 타임.
다음 연재시까지, 푸우 쨩의 통찰력을 체크합니다.
푸우 쨩은 아카네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 중, 짚어야만 할 부분들을 파악해냈을까요?
체크 값은 95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