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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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댓은 "한 학생의 별 볼일 없는 일상"에서 이어지는 창댓입니다.
전 창댓을 보고 오지 않으셔도... 무방하지는 않겠네요.
이 창댓에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니, 오리지널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비밀 메시지같은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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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우울했던 기분이 콕, 콕, 하고 찔리는 작은 죄악감으로 형태가 바뀐 것에 불과할 뿐.
"아. 저번에 마츠다 씨에게서 에토 씨가 인형 뽑기를 잘 하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걸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그 와중에 나를 건드리는 미즈키의 제안.
인형 뽑기라니.
아, 안 그래도 점원이 안 좋은 표정으로 우리들을 맞아줬는데, 그걸 했다간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란 말이야. 그런데 정말로 그걸 시킬 작정이야?
물론 미즈키는 내가 게임 센터에서 어느 정도로 인형을 뽑아댔는지 자세히 모르고 있을 테니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그,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쪽도 동감이다. 카나하가 자제하지 못한 전적이 있어서 말이지."
다른 두 명은 아니지.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때 너무 많이 뽑았었다고.
"하지만 몇 개 정도만 뽑는다면 문제될 건 없지 않을까요?"
"저번에 너무 많이 뽑아버리시긴 했지만, 그야 그렇겠죠?"
그러려나…?
결국 미즈키의 말에 현혹당해 다시 한 번 크레인 게임 앞에 서게 되니,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서로 뽑아달라며 나를 유혹하는 것만 같다.
저 귀여운 인형과 우습게 생긴 인형들을 가져가서 책장에 놓아두면 꽤나 보기 좋을 것만 같아서, 지금이라도 손을 움직여 내키는대로 가져와 품에 안고 그 감촉을 느끼고 싶다.
아, 아냐. 유혹에 져서는 안 돼.
"그럼 조금만 실력을 보여줄까나."
정말 조금만.
있는대로 다 뽑아버리면 정말로 출입을 금지당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적당히 몇 개만 뽑는 거야. 직원한테 혼나지 않을 만큼만, 단 몇 개만 뽑고 나서 그만두면 돼.
그래, 그러자. 그래야지.
좋아. 해볼까.
일단 돈을 넣기 전에 어떤 인형을 뽑을지부터 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자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원하는 인형이라도 있어?"
"…그것보단 나가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갑자기 끼어든, 이를 악문 누군가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시작된 곳에서는 게임 센터의 직원이, 나를 보며 여러 가지 표정을 지었던 미안한 사람이 나를 보며 억지로 웃고 있었다.
"손. 님."
…나, 정말 심각하게 찍혔구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모두 쫒겨나버렫 ……혀, 깨물어버렸습니다."
"아냐. 딱히 미즈키 네 잘못은 아니니까."
이전에 막 뽑아댔던 내 잘못이니까.
"맞습니다!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즐거워지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니에요! 결과는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네."
+3 예상보다 쫓겨나는 게 빨랐는데, 이제 어디로 놀러 가지?
그리고 거기서도 블랙리스트로...
앞으로 조금만 더 있었다면 맛보았을 희열의 순간이 저만치 멀어져버려 이미 유혹에 꺾여 기쁘도록 달콤한 과실이 손아귀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의 손이 허무만을 붙잡게 되니, 좀처럼 그 생각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다른 곳으로 갈까?"
역시, 하고 싶어. 크레인 게임.
"네! 그러죠! 여기선 쫓겨났지만 게임 센터는 많으니까요! 다른 곳에 가서 한 번 뽑아 보실래요?"
"좋아. 가장 가까운 곳으로 안내해주지 않을래, 아리사?"
나는 주변을 그렇게 돌아다니지도 않고 게임 센터에 그렇게 자주 가지도 않아서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딘지 모르니까, 미안하지만 이 주변 지리를 나보다 잘 알고 있을 아리사에게 안내를 부탁해야겠어.
"네! 아리사가 안내해드릴게요! 따라와주세요, 네 분 모두!"
아리사에게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크기는 작았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우리가 갔던 곳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크기는 좀 작은데, 사람은 많네?"
"설비도 잘 되어 있고, 위치도 좋으니까요. 당연한 일이에요."
이런 곳이 있었구나…
그건 그렇고 설비가 좋다면 좀 더 다양한 크레인 게임이 있다는 말이려나?
"보물을 차지할 투사들의 결투장은 어디에 있지?"
"저기에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왜 날 주의깊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지는 걸까.
여기서 이런 미묘한 기척이 따라붙을 이유는 딱히 없을 텐데.
우리 다섯 모두 변장은 꽤 잘 해뒀으니 누가 알아본 것도 아니겠고.
그냥 기분 탓인가?
뭐,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거겠지.
미즈키에게 나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저… 손님. 이것 말고도 다른 재밌는 기기들이 많습니다. 그것들부터 해보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네?"
어느 인형이 좋을지 고르고 있을 때,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은근한 태도로 나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보통 게임 센터 직원이 이런 말을 해 오나?
아니, 그럴 리 없지.
이렇게 된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한 가지.
내가 인형을 마구잡이로 뽑아내고 나서 나에 관한 소문이나 이야기가 근방의 다른 게임 센터로 퍼져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면 직원의 이러한 태도는 설명할 수 없다.
"아무래도 기피 대상이 된 모양이로군. 너는."
"기피 대상이라뇨! 손님! 그, 그런 게 아니라…!"
아스카가 씁쓰레한 어조로 진실을 드러내자 직원이 그 말을 어떻게든 덮어보려고 했지만 이미 확실해진 사실은 어떻게 해도 덮을 수 없었다.
+3 나의 욕구를 방해하는 이 상황을 넘어갈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니면 쫓겨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즐기게 될 다른 게임은 무엇일까.
중독성이 있다.
...앵커가 나쁜 겁니다, 앵커가. (のヮの)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서약과도 같은 약속을 남기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자 그 직원은 시선을 피하며 갈등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할 말을 정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세 개만이라면 상관 없겠죠. 해 보세요. 대신! 너무 많이 뽑아두시진 말고요. 넣으려면 또 힘이 들고, 또 먼지라도 묻으면 곤란하니까요."
"네."
애초에 그렇게 많이 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횟수 제한은 나와 딱히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열 개 정도만 뽑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자. 여기."
내가 열 번의 시도로 얻어낸 인형은 총 열 개.
퍼펙트 스코어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마지막으로 뽑아낸 열 번째 인형을 미즈키에게 건네는 것과 동시에 레버에서 손을 뗀 나는 인형 일곱 개를 품에 한가득 차도록 안아들고 인형을 뽑는 동안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직원의 품으로 넘겨주었다.
"모치즈키 씨와 마츠다 양의 말을 들었을 때도 굉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정말…… 엄청나네요."
"탐욕의 무덤에 잡아먹힌 원념들이 바랬을 위업을 이리도 쉽게 이루어내다니…"
"칭찬 고마워, 둘 다. 우훗."
"…카나하. 네가 지금 꽤나 만족스럽다는 것은 알겠다만, 조금쯤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응?"
아스카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자,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들어찬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한 곳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나였다.
"어…? 사,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인형을 백발백중으로 뽑아대는데 이렇게 구경거리가 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요?"
"그래도!"
난 이렇게까지 주의를 끌 줄 몰랐단 말이야!
+3 여, 여기서 또 어떤 상황이 생기게 될까.
노래도 하자 아이돌이니까(아무말)
그것에 대해 혼자 어버버 거리다가 슬슬 빠져야 겠다는 아리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일단은 게임장에서 나간다.
"아이돌?"
소란스런 웅성거림의 파도 속에서, 내 무의식에 붙잡혀 무의미한 파편들로 부서지지 않은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머릿속으로 꽂혀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짝을 이룬 눈동자들 중 나를 단순히 인형을 잘 뽑는 사람으로서 보는 것이 아닌 아이돌로서 보는 눈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자, 나를 둘러싼 군중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큰 불안감이 몰려온다.
"으와아아…"
딱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째서 생겨나는지 알 수 없는 원인 모를 불안감에 취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말조차 되지 못한 단어를 입 밖으로 내며 흔들리는 동공으로 일행을 번갈아 쳐다보는 것밖에 없었다.
"카나하쨩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 슬슬 빠질까요?"
"그래. 그래야 할 것 같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결론을 내린 일행들이 나를 데리고 나가는 와중에도 나에게 고정되어있던 수많은 눈들은, 게임 센터 밖으로 나오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어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보여지는 것 같아.
"자. 받아라."
게임 센터를 나온 우리들이 적당한 곳에 앉아서 쉴 때 혼자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아스카가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나에게 건넸다.
"밀크티, 좋아했지?"
"응."
탈칵, 캔을 열고 아스카가 사온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자, 그 안에 나를 걱정한 아스카의 마음이라도 녹아들어있었는지 내 마음이 점점 진정되며 본래의 상태를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고마워, 아스카."
"아스카쨩, 아리사의 것은 없나요?"
"마츠다 씨가 마실 음료라면 제가 사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들은, 동료니까요."
"보채지 마라. 너희들의 것도 사 왔으니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되찾아가는 안정이, 내 몸을 채운다.
+3 이제 어디로 가서 남은 응어리를 해소할까.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즐기던 중, 칸자키가 아스카에게 무언가를 제안했다.
"아아, 그런 난제인가. 확실히,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식도락을 즐기러 가는 것도 좋겠지."
방금 그게 뭐라도 먹자는 말이었어?
아스카와 칸자키가 저토록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은 정말 봐도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나도 때때로 조금씩 알아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방금 그 대화가 뭘 먹으러 가자는 대화일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다음 코스는 식당인가요? 그거 좋네요!"
"기대되네요. 두근두근."
+3 과연 어떤 곳으로 가서 음식을 먹게 되려나.
그렇게 갈 곳을 정한 우리들이 향한 곳은 인근의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패스트푸드점들과 별반 다를 곳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패스트푸드점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의 할인 이벤트 포스터와 메뉴판에 그려진 수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이곳저곳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와 여기저기에서 그것들을 만족스럽게 먹어치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들의 식욕을 돋구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손님. 다섯 분이서 오셨나요?"
이제 우리들도 저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합류할 시간이었다.
"자,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란코쨩이 주문하신 거였죠?"
"드디어 이 손에 파혼의 성체를 쥐게 되었구나. 감사를 표하마."
"에토 씨가 주문하신 것은 여기 있습니다. 자. 받아주세요."
"고마워, 미즈키."
메뉴를 고를 때까지만 해도 내심 칼로리를 걱정했지만, 막상 먹기 위해 두 손에 쥐어드니 포장 너머로 새어나오는 맛있는 냄새와 손에서 느껴지는 갓 조리된 음식의 따스한 온기가 당장이라도 포장을 벗기고 한 입 베어물고 천천히 풍미를 느끼고 싶다는 치명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에 빠지도록 나를 매혹해, 그런 걱정은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우리를 대신해서 음식을 받아온 아리사와 미즈키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포장을 벗기고 원하는 만큼 베어문 한 입.
"수라의 거리에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은은한 축복이 흘러 넘치는구나!"
칸자키의 말대로, 입 안에 축복이 넘쳐흘렀다.
+3 함께 먹어서 더 즐거운 점심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린 왜 심심할 틈이 없을까.
생각보다 빠르게 바닥을 보인 음식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다른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조용한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양보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으음… 아무래도 나 말고는 없는 것 같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생각이 있긴 하지만 사실 나도 먹고는 싶고.
…우린 왜 이렇게 심심할 틈이 없는 걸까.
때로는 즐거워서 심심하지 않고, 때로는 심심함을 느낄 틈 따위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기도 하고.
정말, 왜 이러는 걸까나.
"다들, 드실 거죠?"
"너무 당연한 걸 묻는군."
"간단하게 5등분하는 건 어때? 그렇게 하면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잖아."
역시 이 상황에서 가장 나은 방법은 서로에게 공평하게 배분하는 거겠지.
공평하고, 불만도 나오지 않을 깨끗한 해결법이니까 무난하게 이 위기… 음, 위기 맞겠지? 아무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애들이 반대할 것 같지도 않고.
"흥. 완벽한 은총과 불완전한 저주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렇기는 하지. 4등분이라면 몰라도 5등분이라면 나누기 좀 힘드니까. 설령 나눈다고 해도 완전한 5등분은 힘들고."
"또한 다른 이들을 손수 지옥으로 보내 제물로 삼는다 해도 여를 완전한 낙원으로 승천시킬 수 있다면, 설령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져버릴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각오할 만 하지 않은가?"
"그 말은 이 테이블 위를 역량의 차이가 모든 것을 가르는, 승자독식의 세계로 만들겠다는 선언으로 봐도 좋겠지?"
설마 나올까 싶었던 반대 의견.
확실히 칸자키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3등분이나 4등분은커녕 5등분이라는 매우 조금씩만 나눌 수 있는 애매한 숫자와 공평함이 이루어지지 않을 불확실성을 안고 가느니 차라리 한 사람이 남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도 어찌 보면 나은데다 게임을 통한 승부를 내거나 한다면 불만이 나올 가능성 또한 적어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칸자키의 말이 나의 '공평하게 나누자'는 제안보다 일리있거나 설득력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의 반대에 설득되어간다는 점이다.
다섯 명이서 나누기에는 칸자키가 지적한대로 남은 양이 너무 적고, 내가 남은 음식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는 대신 네 명에게 골고루 나눈다면 돌아갈 몫이 그만큼 커질 테니 내 주장이 받아들여질 확률도 높아지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그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칸자키의 말에 따르는 게 더 나았다.
왜냐면 칸자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온전한 치즈스틱 하나와 치킨너겟 하나를 먹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앞일은… 아직 알 수 없잖아?
+3 그럼 일단 종목부터 정해볼까!
"저기, 아리사? 아이돌 대결이 뭘 어떻게 대결하는지는 둘째치고 우리밖에 없다면 모를까,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그런 걸 할 수는 없잖아."
다섯 명의 공통점을 잘 살린 경쟁 방식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리사의 사심이 깃들어 있기도 했고 또 이런 곳에서 그런 대결을 펼쳤다간…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좋았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사의 제안에는 따를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 거라고요, 그게! 아이돌의 무대에는 관객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이돌을 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 사람이 갑자기 주의를 끄는 아이돌… 아니, 그 사람에게 있어선 우상도 뭣도 아닐 인간 하나를 보고서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우리가 관객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우상을 향한 동경과 응원이지, 서커스의 동물을 보는 모욕적인 시선이 아니다."
"그야 그렇긴 한데요…"
아리사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아스카도 나를 거들어 아리사의 제안을 폐기하는데 힘을 보태 결국 그녀의 제안은 흐지부지되었다.
"좋아. 인형 뽑기로 결정하자. 재미도 있고, 공평하게 실력으로 겨룰 수 있잖아?"
"그 의견도 기각이다."
"어째서!"
재밌잖아, 인형 뽑기!
재밌으니 겨루기 좋고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인형을 뽑으면 가져갈 수도 있고!
"전혀 공평하지 않으니까. 네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종목을 선택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아. 룰 위반이다."
아하하…
역시 안 통하나.
"그렇다면 여러분, 포커를 하죠."
세 번째 주자로 나선 미즈키가 주머니에서 트럼프 카드 한 세트를 꺼내며 제안한 포커.
"포커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아, 안 돼요! 미즈키쨩은 포커 엄청 잘 한단 말이에요!"
아리사의 폭로에 의해 그 제안 또한 허무하게 기각당하고야 말았다.
"하아… 차라리 시초의 때로 회귀하는 편이 더 낫겠구나."
"그래. 더 시키는 게 낫겠다."
"그렇네요…"
결국 경쟁과 합의를 포기하고 우리가 선택한 길은 행복을 연장시키는 것.
역시 하나 가지고 싸우는 것보단 여러 개를 더 먹는 게 낫지.
돈은 충분하니까.
+3 다시금 풍족해진 상황 속에서 또 어떤 일이 우리들을 즐겁게 할까.
"나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우리가 남은 음식을 걸고 서로 다투려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군."
추가로 주문한 음식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다시 한 번 테이블 위엔 아주 적은 수의 너겟만이 남게 되었지만, 한계까지 차오른 포만감이 더 먹고 싶다는 욕망을 억제시켜 우리는 남은 음식을 보고도 더 이상 경쟁 의식을 불태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음식을 더 시켜 경쟁할 이유를 없애버린다는 선택지가 정답이었음을 증명해내며 행복한 포만감에 젖어드는 기분은, 꽤나 아늑했다.
"배불러서 더는 움직일 수가 없는데, 잠깐 여기 앉아서 수다나 떨지 않으실래요?"
"좋다. 현인들의 성화를 밝히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지."
"그럼,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골똘히."
수다를 떠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네.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는 카페처럼 분위기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지만, 지금은 우리 다섯 명 모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먹어댔으니까.
잠깐 정도는 여기서 이야기해도 괜찮겠지.
+3 어떤 이야기가 나오려나?
탁자 위에 처음으로 던져진 주제는 서로가 사용하는 화장품에 대한 것.
우리들 모두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대의 소녀인 것도 있고, 또 자기관리에 신경 써야만 하는 아이돌이란 신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서로가 어울려 이야기하기에 꽤나 적절한 소재라고 생각된다.
"저, 이런 쪽으론 문외한이라…"
…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그랬지.
미즈키 너처럼 꽤 뽀얀 피부의 소유자가 화장 쪽에는 문외한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그건 금기에 가깝단 말이야.
"나도 화장은 잘 안하는 편이라 뭐라고 말을 못 해주겠네."
나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너희들은 어때?"
나 또한 미즈키처럼 다른 세 명의 화장 이야기가 궁금해 미즈키에게서 건네받은 질문을 넘겼지만, 어째서인지 모두 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침묵만을 고수하면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는커녕 다른 말 한 마디조차 꺼내지 않았다.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두 분 다?"
그러던 도중 아리사가 못 참겠다는 듯 꺼낸 말을 시작으로, 아스카와 칸자키도 봇물 터진 마냥 아리사와 비슷한 반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말은 좀… 아니지 않나?"
"흥. 우자가 고대의 지보에 손을 대었는가."
왜, 왜 나한테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맞아요. 완벽한 피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두 분 모두 꽤 좋은 편에 속하신다고요. 애초에 두 분 모두 아이돌이 되실 수 있을 만큼 외모는 좋은 편에 속하신다고요?"
"아, 칭찬받았다. ……부끄."
'완벽한 피부라고는 할 수 없겠'다는 말에 아스카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결국 그녀의 입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둘째치고, 난 미즈키랑 달리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단 말이야.
"하지만 요즘은 밤에 늦게 잠드는 일이 많아서 많이 퍼석퍼석해졌다고."
그래서 꽤 고민하고 있고.
"왜 늦게 주무시는데요?"
"그, 그거언…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좀 있었다고나 할까…"
틀린 말은 아냐. 틀린 말은.
"크, 크흠!"
너 때문이라는 건 아나 보네, 아스카.
얼굴이 뜨거워…
+3 다, 다음 대화로 넘어갈까…? 아니면, 다음 상황은?
"..그래서입니다만, 저..다들 사랑하는 사람은, 있으신가요?"
(((푸웁!!)))
근데 너무 폭탄드랍같으니까 아니다 싶으시면 그냥 넘겨주세요(...)
"…그래서입니다만, 저… 다들 사랑하는 사람은, 있으신가요?"
"콜록! 커흐! 크흡!"
미즈키가 다시금 주도하여 꺼낸 대화 주제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폭탄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였다.
물론 걸즈 토크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주제지만, 연애가 암묵적으로 금지되는 아이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문제도 있었고 또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를 맺은 나와 아스카, 우리 두 사람에겐 매우 민감하고 그만큼 기피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얌전히 콜라를 마시던 아스카를 성대하게 사레가 들려버릴 정도로 당혹시킬 수는 없었을 테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뇨?! 미즈키쨩, 저희 아이돌이에요? 연애는 NG라고요?"
"아.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추우욱."
다행히 아리사가 태클을 걸어 진지하게 이상형이라던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던가 하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이유는 없어졌지만 또 다시 곤란한 이야기가 나오도록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바, 방금 그 주제는 넘어가고, 그보다 다들 요즘 꽂혀있는 취미라던가 있어?"
"저의 취미라면… 역시 마술일까요?"
"당연히 아이돌쨩들의 정보 수집이죠! 므흐흐… 정말로 보람찬 일이라고요? 오늘도 좋은 정보를 많이 얻어가는 중이고 말이죠! 므흐흐흐…"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을 돌리자, 다른 일행들도 이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내 말에 호응하여 자신의 취미를 말해왔다.
"요즘 꽂힌 취미라. 보자, 나는…"
아스카가 말할 차례가 되자, 나는 그녀의 취미를 알고 싶다는 마음에 순수한 궁금함으로 반짝이는 눈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한 채 재빠르게 그녀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
+3 그녀에게서 나온 말은…
Mazaru Up!
물론 무슨 악기인진 비밀이다
"인퍼넷 서핑이요? 에고서치라도 하시는 건가요?"
"아니. 에고서치라는 말은 나의 에고, 자아에는 어울리지 않아. 그저 나의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조그만 흥미가 이끄는 대로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헤엄쳐다닐 뿐이다."
아스카는 그렇게 자신이 새로이 가진 취미로 어떻게 무료함을 달래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간략히 설명한 뒤,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깐 눈을 감고 미소지으며 이야기를 멈추었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지식의 레코드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정보들 중엔 나보단 다른 사람과 더 접점을 가지는 일이라 해도 나를 충분히 기뻐하게 만들 수 있는 일들이 넘쳐나니 말이지. 최근에도 그런 게 하나 있었고."
여전히 아스카의 입가에 남아있는 웃음은 그녀가 수많은 데이터가 잠긴 바닷속 깊이 들어가 무언가를 찾아냈을 때 느꼈을 즐거움… 아니, 즐거움이라기보단 애수 섞인 기쁨과 비슷한 감정을 우리들에게 드러내었다.
어째서 그녀의 미소가 이렇게 느껴지는 걸까.
어째서일까.
+3 그리고 이 취미에 대한 걸즈 토크는 어떻게 이어질까.
"우리… 말이야?"
"확실히, 에토 씨와 칸자키 씨의 취미도 꽤나 흥미로운 대화 주제일 것 같네요. ……기대된다고."
드디어 내 차례가 찾아오고야 말았네.
나같은 사람의 취미에 관심가져봐야 별 거 없는데 말야.
"세 명이 이야기했으니, 남은 둘에게도 의무가 지워져야 하지 않겠나. 물론 나도 궁금하고. 자, 그러니 말해주지 않겠어? 둘 다."
하지만 다른 셋이 이렇게나 기대하고 있는데 그 기대를 꺾어버릴 수는 없지 않겠어?
거기에 세 명이 나와 칸자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그녀들이 하던 이야기를 이어받아 이 조촐한 사교 파티를 계속 이끌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어우러지는 것일 테니까, 말해도 괜찮을 거야.
+3 내가 요즘 취미삼아 하는 일은…
"게임인가요? 호오라, 이건 안나쨩과의 조합을 기대해볼 수 있는…"
역시 아리사 너는 머리가 그런 쪽으로 먼저 돌아가는 모양이네.
하여간 너답다니까.
"컴퓨터 게임이라, 네가 가질 취미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세계의 균열이 천기를 비틀었구나."
"나도 컴퓨터 게임에 별 흥미는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게임들 있잖아? 그런 걸 하다 보니까 시간이 잘 가더라고."
나도 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는데 말이야.
아스카의 경우랑 비슷하게 심심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게임을 하다보니 어느새 그게 가벼운 취미가 되어 있었지.
사랑하면 닮는다는데, 이것도 그런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칸자키 너는 어때?"
"드디어 여가 봉인을 풀 차례인가."
+3 칸자키의 취미는 과연 뭐려나.
거기에는 (살짝 왜곡된)아스카 그림이 잔뜩...?
"란코 너는 예전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기곤 했지."
아스카의 해석을 듣고 나니, 그림을 그리는 칸자키의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칸자키를 그다지 자주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빈 공간을 수려하게 채워나가는 화백의 손놀림과 칸자키가 평소에 입는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복장이 어울리게 되니 생소함은 점점 사라져가고 그녀의 모습조차 그녀가 그려내는 그림처럼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자연스레 궁금증이 깨어난다.
"대단한 취미잖아? 칸자키. 혹시 네 그림을 한 번만 볼 수 있을까?"
"그, 금기를 깰 생각이냐!"
얼굴을 붉혀가면서 거절할 정도로 칸자키 너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강압적으로 하지는 말아야지.
아직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있으니까, 칸자키의 그림에 대한 궁금증은 아무래도 여기서 접어야겠네.
"괜찮지 않을까? 칸자키."
"아무리 여의 공명자라고 해도 그리모어를 봉한 금기의 장벽은 열어줄 수 없다!"
아, 아스카한테도 못 보여주는 거야?
그 정도로 부끄러워할 줄은 몰랐는데.
+3 그나저나 취미 말하기도 끝났고, 밥도 다 먹었는데… 이제 뭘 하지?
좋지 않은 생각..
그러기를 한참.
"그럼, 저희는 이만 가봐야 할 시간이라서요. 다음에 다시 보죠!"
"아쉽지만,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시무룩."
"알았어. 다음에 또 보자."
"발키리의 뿔피리가 다시 울부짖을 날을 고대하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지, 아리사와 미즈키가 우리와 함께 할 시간이 사라지고 말아 결국 우리 일행은 다시 세 명의 인원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또 어딜 가볼까? 너희 둘은 가고 싶은 곳 없어?"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해도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는지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고 가만히 있는 아스카와 칸자키를 보며 둘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보기 위해 던진 말.
+3 그 말에 대한 대답은…
(@그런 게 일본에 있나)
일본 시모키타자와에 소극장 많아요
"문화생활?"
"그래. 주변에 있는 소극장이나 그런 곳에서 각자의 역을 맡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연기자의 무대를 감상하는 거지."
연극 감상이라는, 오늘 했던 거의 모든 일들과 거리가 제안을 듣자 흥미가 동하기 시작한다.
조금 전처럼 재미있게 노는 것만 생각했지, 그런 쪽은 생각 못 했는데 아스카 네 말대로 지금까진 다섯 명이서 실컷 재미있게 놀았으니 연극이라도 보면서 몸도 마음도 편하게 휴식시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것도 꽤나 좋은 경험일 테니까.
게다가 연극같은 거, 나 혼자서는 별로 보러 가지 않으니까 이 기회에 봐두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야말로 필멸자의 생을 구경하는 신들의 놀음이로다."
"그렇지."
칸자키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다음 일정이 결정되고 나서 남은 것은 단 하나.
어디에 가서 어떤 연극을 볼지 정하는 것.
"가볼 만한 곳이 있으려나?"
"마침 좀 전에 봐둔 곳이 있다. 애초에 봐두지 않았으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지만."
다행히 그것에 관한 문제는 아스카가 미리 해결해놓아 극장을 선별하거나 작품을 정하기 위해 원하는 것, 원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길게 이야기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어떤 연극이야?"
+3 아스카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연극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사회 풍자 계열의 연극이려나.
"말로 전달하기에는 깊이가 깊은 연극이다. 너희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도록 하지."
"좋다."
"알겠어."
아스카의 말대로 그런 연극이라면 다른 사람에게서 설명을 듣는 것보단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는 편이 더 도움이 될 터였기에, 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아스카의 의견에 찬성했다.
"하지만 그 말은 거짓이었다고요! 저 밖에는, 저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냐. 없을 리가 없어. 그 짐승 떼들은 교활하다고. 널 속이려는 거야."
"짐승 떼요? 교활한 짐승 떼요? 그럼요, 그들은 교활하죠. 땅 위에 다닥다닥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의 모습이 얼마나 교활합니까? 나무 속에 몸을 묻어 날카로운 부리를 숨긴 딱따구리들은 또 어떻고요?"
아스카가 선택한 연극은 그녀의 설명대로 몇 명의 사람들이 사람들을 거짓으로 속이지만, 그 거짓이 당당히 통용되고 모두를 공포심으로 묶어내는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낸 연극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아스카와 칸자키에게 신경 쓸 새 없이 내 눈 앞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한 채 연극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볼수록, 내 안에서 맺힌 어떤 과실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을 만큼 커져가고 익어간다.
"저는 말할 겁니다. 모두 밖으로 나가자고. 모두를 내보내서, 밖에 있는 모든 두려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황홀경으로 변하는 광경을 목격하고야 말 겁니다."
"아서라. 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게 할 참이냐? 네 말을 믿어줄 것 같으냐? 이 벽 뒤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마을 사람들이 알고는 있겠어? 이 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평생 감시하며 살아온 나조차 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사람들이 선뜻 네 말을 믿어줄 것 같냔 말이다."
"그러니 밖으로 함께 나가자는 겁니다! 믿어달라는 거라고요!"
"난 싫다. 너나 실컷 나가라. 난 이 벽 안에서 살고 이 벽 안에서 죽겠다."
연극을 계속 머릿속에 담으면서, 내가 가진 과실은 점차 뚜렷한 색을 가져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어 있는 무언가를 충족시키는 생소한 무언가로 자라났다.
"그래요! 저 혼자라도 말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야 말 겁니다!"
많은 것을 시사하며 감상의 과실을 내면을 자극할 정도로 키워낸 연극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평한 대로의 연극이었군. 나쁘지 않았다."
"의외네. 나는 아스카 네가 먼저 보고 나서 우리들한테 추천해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스카가 주도해서 우리들에게 추천했던 것도 있고, 또 아스카가 꽤 좋아할 만한 소재의 연극이었으니 이미 본 연극이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극이라서 말이지."
"때로는 별들의 속삭임을 들어보아야 하는 법."
인터넷에서 알게 된 연극이었구나.
"역시 인간이란 다수의 사람 앞에서 나약한 법이고, 두려움을 품게 되는군.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야 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의 의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은 퍼즐일 뿐이겠지. 자, 그러니 너희들의 감상을 들려주지 않겠나?"
"두말 할 것 없다. 그야말로 현시의 장막 너머에 드리운 아포칼립스를 위한 서사시였으니."
이번에 나온 칸자키의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쪽에 속해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그녀의 느낌보다는 나만의 나무에 열린 과일을 다른 둘에게 내보일 차례가 왔다는 것이, 그것이 다른 둘의 감상과 합쳐져, 하나의 만찬을 이루어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나는 주인공이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지만, 그래서인지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 더 신경 쓰였어. 결국 주인공이 누구의 동의도 받지 못하고 결국 꺾여버리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그 사람들이잖아?"
진실을 외친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반응에 당황하는 모습이 특히나 그랬지.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대로 각인되어 마치 장난감처럼 다뤄지는 것 같은 기분은… 정말 싫고 무서우니까.
나 자신부터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서워하니까, 그래서 그런 면에 더 신경 썼던 것 같네.
"그런가."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연극의 진정한 최종막이 막을 내리고, 여운의 끝자락만을 남긴다.
+3 연극이 끝났는데, 다음은 무엇을 할까.
칸자키의 말을 들어볼 차례려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근처에 극장이 있어 볼 거리가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볼 거리가 많은 곳에 극장에 들어섰는지는 몰라도, 우리들은 사람들의 틈에 섞여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함께 즐기고, 때로는 한적한 곳에서 새로이 찾아낸 흥미로운 무언가에 발자취를 남기며 거리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연극의 여운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도 묘하게 문화생활을 하는 듯한 기분을 내며 거리를 걸어다니는 즐거운 경험을 하고 나니, 어쩐지 오늘 하루를 끝내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재밌게 놀았네. 그렇지?"
물론 우리들의 소박한 모임을 끝낼 생각은 아직 없었지만, 나는 그 기분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한 마디의 말을 입술 밖으로 꺼냈다.
"그렇구나."
"그렇네."
그 말 한 마디에, 꽤나 나른한 오후의 대화가 이어져간다.
+3 이제 어떤 일이 생길까.
"마, 맞다! 깜빡하고 있었어! 그, 그런데 우리가 산 거랑 엄마 물건은 다 어디갔어? 설마 어디 놓고 왔나?!"
"하아… 칠칠치 못하긴. 내가 챙겼다."
패닉에 빠진 채 기억을 더듬어가며 어디에 물건들을 놓고 왔는지 떠올리려던 나는, 다행히도 아스카가 그것들을 챙겨왔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손에 들린 봉투의 내용물이 우리가 부탁받은 물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 안심할 수 있었다.
잊어버리지 않고 가져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악마의 본질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하긴. 카나하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하지."
"우으…"
내가 여태껏 심부름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노는 데 열중해버렸다는 것을 두 명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바보 취급 받을 수 있는 일까지 해버렸다는 사실은 그래도 조금 부끄러워,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3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니면 돌아가고 나서 어떤 상황이 생기게 될까.
"다녀왔어."
길고 길게 돌아온 귀갓길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 다시금 아늑한 집 안으로 돌아온 우리들.
"이제 오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익숙한 목소리가, 식사를 준비하는 듯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따스한 공기 속에 가득히 퍼진 맛있는 냄새와 함께 우리들을 반긴다.
"미안, 엄마. 우리가 많이 늦었지?"
"늦기는? 좋은 때에 왔는걸. 자, 너희 둘도 같이 저녁 먹으렴. 아주머니가 이번에도 솜씨를 좀 발휘해봤단다."
"그렇다면 신세를 조금만 더 지지."
"신세라니."
아스카를 보는 엄마의 얼굴 위에 고마워하는 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언젠가 엄마가 아스카에게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녀와 함께해야만 하는 나를 지금까지 받아들여주고 자신의 곁을 허락해주었던 그녀에게 엄마가 가지고 있다고 했던 고마운 감정의 존재.
그것은 비단 엄마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가족 모두가 그녀에게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겠지.
단지, 내 감정이 더 강렬하고 깊을 뿐.
이렇게 생각하니 엄마가 나의 마음 일부를 아스카에게 전해준 것만 같아, 괜스레 나까지 감정에 물들어가는 느낌.
처음부터 끝까지 아스카로 물들어 아릿하게 저려오는 마음 속의 애틋함이, 내 가슴을 가득 채운다.
…나쁘지 않네.
"금방 내올 테니까, 먼저 앉아서 기다리렴."
그래. 일단은 저녁부터 먹자.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들어와 즐거운 여운과 피로가 겹쳐 있는 지금이야말로 만찬을 즐기기 정말 좋은 타이밍일 테니까.
모두와 함께 만찬을 즐기고, 다시 한 번 모두와 함께 휴식을 취하기 정말 좋은 때니까.
그러니까, 밥을 먹자.
"참."
음식을 내오던 중, 엄마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아스카와 칸자키를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너희들 오늘도 자고 갈 거니?"
그러고보니 아직 두 명이 자고 갈 지 어떨지 물어보지 않았네.
+3 아스카와 칸자키는 한 번 더 자고 갈 생각일까, 아니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일까.
..하긴, 아스카도 없는데 있고 싶진 않겠네.
"그렇구나… 란코는?"
아스카의 대답이 끝나고, 질문이 칸자키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뜻을 정하기 힘든지 허공을 쳐다보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긴, 아스카도 없는데 우리 집에 더 있고 싶지는 않겠지.
"역시 저도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칸자키가 우리 집에 있는 유일한 이유가 없어지려는 지금 그녀 또한 남을 이유는 없으니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그러한 속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 착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럼 언제쯤 갈 거니?"
"이 만찬이 끝난 후, 라고 할까."
"꽤 빠르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식사만 하고 가면 조금, 서운하잖아.
하지만 그녀가 돌아가려는 이유를 알고 있는 이상, 그녀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은 가만히 앉아 그녀가 우리 집에서 떠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쉬움을 달랠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 홀로 남을 내가 향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겠지.
"그래. 알았다. 저녁은 아주머니가 금방 준비해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렴. 아직 이게 덜 익어서…"
"천천히 준비해도 돼, 엄마."
그래도 역시 보내기는 싫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저녁 잘 먹었어요."
"아, 참. 그렇지."
저녁을 먹고 짧은 작별을 위한 인사를 들으며 두 명을 보내주기 위해 나와 엄마가 현관에 서서 그녀들을 배웅하고 있을 때, 돌연 아스카가 인사 대신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무언가 전할 것이 있는 듯한 그 말을 듣고서, 이별의 망설임에 살짝 떨구고 있던 내 고개가 살짝 들려 그녀를 바라본다.
과연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궁금해하며.
"란코. 너는 먼저 기숙사로 돌아가주지 않겠나?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방금 생각나서 말이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네가 날 기다리는 수고를 하게 만들 정도로 짧지는 않을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에 나는 작은 기대를 품었지만, 곧이어 이어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말에 잠깐 품었던 그 기대조차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스카의 말을 받아들이며 먼저 현관을 나서는 칸자키.
그녀가 먼저 가기를 기다리는지 잠깐 동안 말이 없던 아스카가, 다시 입을 연다.
"오늘은 나와 함께 기숙사에서 밤을 보내지 않겠나? 카나하."
"어…?"
+3 기, 기숙사라니. 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무턱대고 따라가면 분명 기숙사라는 사실도 잊고 짓궂은 장난을 치려 하겠지.
너무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따라가겠다고 하자.
무턱대고 아스카를 따라간다면 분명 기숙사라는 사실도 잊고 짓궂은 장난을 치려 하겠지.
그래. 너무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따라가겠다고 하자.
기숙사에서까지 그런… 장난을 당했다간 정말로 다른 사람들한테 다 들켜버릴지도 모르니까.
아스카도 이 정도는 이해해줄 거야.
"조건이 있어."
"조건? 좋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이라면 들어주도록 하지."
"자, 말해봐라. 네가 내걸 조건은 무엇이지?"
"…너무 괴롭히지는 말아줘."
혹시라도 엄마가 들을까 싶어 아스카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흘려넣은 말.
아스카에게서 살짝 떨어져나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반응을 지켜보자, 내 말에 실소하는 그녀가 보였다.
저 실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 요구가 우스웠던 걸까.
+3 아스카는 과연 저 조건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어떤 말로 날 구슬리려 할까.
무슨 걱정을 하냐는거냐면서... 아무래도 넘겨 짚은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