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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돌의 별 것 없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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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5, 2017 22:18에 작성됨.
글 진행은 반드시 댓글로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창댓은 "한 학생의 별 볼일 없는 일상"에서 이어지는 창댓입니다.
전 창댓을 보고 오지 않으셔도... 무방하지는 않겠네요.
이 창댓에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하니, 오리지널 캐릭터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비밀 메시지같은 건 없어요.
4215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그 차가운 공기에게서 우릴 보호해주던 겉옷을 내벗어던진 우리들에겐 추위에 저항할 수단이라고는 바닥에 깔려있는 이불밖에 없었기에, 우리들은 거의 동시에 이불을 덮고 누워 몸이 다시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도 우리들의 체온으로 데워놓았던 이불에게서 그 온기를 다시 돌려받는 것은, 꽤나 좋은 기분이다.
우리 셋이서 한 이불을 덮고 있었으니 사실상 우리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눠 가져가는 거라고 해야겠지만.
"따뜻해…"
이불 속으로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린 말.
다른 둘은 말이 없었지만, 그녀들도 이 조용하고 따스한 분위기에 취해 조금 전의 불편함은 잊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꽤 크네, 칸자키.
+3 이제 어떤 일이 생길까.
아스카가 작아보일 정도니..
나를 부르는 아스카의 목소리에 이불에서 얼굴을 꺼내자, 옆으로 누운 채 몸을 살짝 일으켠 채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스카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미약한 가로등의 빛을 등져 희미하게 보이는 아스카의 표정이, 어째서인지 밝지 않다.
어째서 아스카가 잘못한 사람을 꾸짖는 사람의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는 걸까.
칸자키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아스카는 내가 칸자키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채고 날 부른 걸까.
그녀가 그것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우리, 나중에 이야기 좀 할까."
"응…"
정말로 칸자키의 몸을 보고 있었던 것이 들킨 것만 같아 불안하다.
일부러 바라본 것도 아니고 딱히 이상한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애인 앞에서 다른 사람의 속옷차림에 눈길을 빼았겼다는 사실은 충분히 잘못된 상황이라, 들킨다면 아스카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상황이 상황이란 걸 아스카도 알고 있을 테니, 나에게 벌의 명목으로 심한 짓은 딱히 하지 않을 테니 불안할지언정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내 가슴이 불안감뿐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을 동시에 연료삼아 콩닥거리며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
나, 설마 기대하는 건가…?
+2 나는, 잠에 들까?
+3 잠에 든다면, 깨어나고 나서 어떤 일이 생길까.
+3 잠에 들지 않는다면, 다음엔 어떤 일이 생길까.
가 아닌가
아스카와 껴안은 채로 아침을 맞은 이 상황이 저번과 똑같아서, 무심코 웃음이 나와버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침대가 아닌 바닥이라는 것과, 품 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볼륨이...
...잠깐, 아스카가 이렇게 컸었나?
창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어오는 것이, 마치 아침이 보낸 전령들이 나에게 이제 깨어나야 할 때라고 알려오는 것만 같다.
하지만 밤새도록 깊은 잠이 선사했던 편안한 망각을 아직 놓아주고 싶지 않아 눈을 감은 채 아직 멍하게 남아있는 안식의 편린을 붙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불 속에서 느껴지는 다른 누군가의 체온과 서로를 껴안은 채 맞대고 있는 피부의 감촉이 멍한 정신의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며 예전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아스카와 껴안은 채로 아침을 맞은 이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는 그 순간과 비슷해서, 무심코 웃음이 나와버린다.
"헤헷."
그 때의 기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이렇게 함께하고 있다는 것과, 내 품 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볼륨이 생각보다…
…잠깐, 아스카가 이렇게 컸었던가?
느껴져서는 안 될 위화감에 살짝 눈을 뜨자, 나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칸자키…?"
내가 껴안고 있던 사람이 아스카가 아니라 칸자키였다니.
의외의 사실에 놀란 나는 어떻게든 칸자키를 깨우지 않고 그녀에게서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내가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는 칸자키 때문에, 그녀를 깨우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지금 이대로 칸자키나 아스카가 일어나버리게 된다면 서로에게 부끄러운 상황이 될 텐데.
+3 …어떻게 하지?
좋아. 칸자키가 깨어날 때까지 가만히 있자.
어차피 아침이 되었으니 얼마 안 있으면 깨어나겠지.
"으음… 음?"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난 칸자키.
눈을 감고 있는 탓에 그녀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칸자키가 내뱉은 작은 소리만 듣고도 그녀가 내가 깨어났을 때처럼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칸자키가 짓고 있을 표정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내가 억울하잖아.
조금 장난쳐볼까.
얼마 있지 않아, 칸자키는 내가 했던 것처럼 포옹을 풀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그것은 그저 헛된 시도로 끝나고야 말았다.
당연하지. 내가 놔주지 않았는데.
칸자키 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도 이 경우에는, 일부러 그러고 있다는 점이 다를까.
하지만 칸자키 네가 금방 풀려난다면 내가 억울한걸.
혹시나 아스카가 일어나서 이 광경을 보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내 마음이, 지금은 네가 하고 있는 나의 헛된 시도들과 불안에 깎여버린 마음 일부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그런데 안 괴롭히고 배길 수 있겠어?
…칸자키 네가 나쁜 거니까.
"끄응…"
"호오라? 간밤에 서로 꽤나 친해진 모양이군?"
내가 사소한 복수를 즐기며 칸자키가 언제쯤 나를 깨워서 벗어나려고 할지 궁금해하던 도중 닥쳐온, 아스카가 깨어난다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
칸자키와 달리, 그녀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무미건조해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 아스카…"
칸자키가 도움을 청하듯 아스카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에 답하는 소리라고는 아직도 지저귀고 있는 새들의 노랫소리와 아스카가 움직이는 소리뿐.
아스카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3 어… 이제 어쩌지?
아닙니다
언제 일어나야 되는거지... 하던도중 방문의 노크소리가 들리는데...
아스카가 혼잣말인지, 칸자키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어젯밤에 그렇게 싸우고서도 이렇듯 너와 같이 사이좋게 자고 있는 착해빠진 모습이."
아스카의 칭찬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실 그렇게 착한 의도로 칸자키를 껴안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스카의 칭찬이 들리는 족족 내 양심을 찌르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티도 내지 못하고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여기서 안 자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간 더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여에게는 할 일이 있건만, 봉인이 너무나도 견고하구나. 그렇다고 다른 자의 안식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건만."
한숨을 쉬며 예전의 그 말투로 볼멘소리를 하는 칸자키.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이젠 꽤 진정되었다는 뜻일까.
"그렇지. 마음같아서는 너를 도와주고 싶지만, 나도 카나하를 깨워버리고 싶진 않으니 이 역경은 란코, 너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다."
아스카는 나를 깨우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칸자키를 도와주지 않고 있었지만 칸자키를 도와주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는 자기 대신 나를 끌어안고 있는 칸자키에 대한 질투심 때문인지, 아스카의 말에선 퉁명스러운 기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긴 하다만…"
칸자키가 곤란하다는 듯 말을 흐렸지만, 나 또한 언제 일어나야 할 지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 되어 칸자키 못지않게 곤란한 상황이었다.
똑. 똑. 똑.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별 탈 없이 무마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들려온 노크 소리.
"어머나, 너희들 깨 있었구나? 나와서 아침 먹으렴."
나와서 아침을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드디어 활로가 보이는 순간.
그 순간은 절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환호성이 마음 속에 머금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속옷만 입고 있니?"
"한 사람이 낙오되느니 차라리 모두가 기회를 포기하자는 유대감… 그런 동료로서의 유대감을 발휘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나."
"그나저나 이렇게 됐으니 카나하를 깨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군. 그러니 그만 일어나주겠나, 잠꾸러기?"
"으으응…?"
드디어 찾아온, 별 탈 없이 이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아, 나는 최대한 금방 일어난 사람을 연기하려고 애쓰며 천천히 눈을 떴다.
+2 내, 내 연기가 잘 먹히려나? (주사위 50 이상 성공)
+3 다음… 상황.
보, 보지 마..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망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데, 긴장감에 말을 더듬어버렸어.
애초에 아침이면 아침이지, 말을 더듬고 나서 벌써 아침이나는 말은 또 뭐야? 그냥 말 없이 일어나기만 해도 됐을 텐데, 이러면 꼭 내가 지금 연기하는 중이라고 광고하는 것 같잖아!
"…카나하."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찔러오는 아스카.
결국 들통나버린 거짓에 의해 싸늘해진 그녀의 시선이, 내가 곧 받게 될 어설픈 마무리의 댓가를 암시한다.
아, 안 돼, 아스카.
보지 마.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단 말이야!
"깨 있었나?"
"으, 응."
이미 들통났는데 여기서 거짓말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겠어? 그냥 쿨하게 인정해야지.
물론 내가 앞으로 아스카에게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거란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고 말야.
…아니지. 그것뿐만이 아냐.
내가 아스카의 반응보다도 먼저 감당해야 하는 건…
바로 내 옆에서 절찬리에 따끈해지는, 아니, 뜨거워지고 있는 칸자키의 반응이겠지.
+3 내가 자는 척을 했단 걸 알게 된 칸자키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면, 이제 어떤 상황이 생길까.
"응…"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칸자키를 끌어안은 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들키게 된다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내가 한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를 수가 있겠어?
난 바보가 아니란 말이야, 아스카.
아니. 바보가 맞을지도.
바보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바보같은 짓 따위는 하지도 않았겠지.
어쩌면 아스카도 그렇게 생각해서 나에게 당연한 말을 물어보는 것으로로 내 바보같은 행동을 꼬집으려 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식사 준비 해놓을테니, 천천히 나오려무나."
마치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명처럼 느껴지는 엄마의 당황한 목소리가 지금 이 풍경을 제대로 요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에게 수치스러운 무언가를 들켜버려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당사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엮이고 싶어하지 않을 상황을.
"네 어머니의 말은 너도 들었을 터. 이제 그만 란코를 놔주지 그러나, 카나하."
낮게 잠겨 있지 않은, 평상시의 톤으로 돌아온 아스카의 목소리을 듣고서야, 나는 아직까지 내 품에 안겨있는 칸자키에게로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힘은 진작에 풀었던 것 같은데 왜 아직까지도 칸자키가 나에게 안겨 있었는지에 관해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지만, 아마도 부끄러워서 사고가 정지해 버렸으리라는 답을 내리며 나는 귀 끝까지 새빨개진 칸자키를 살짝 밀어내었다.
"어라? 칸자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칸자키는 나에게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할 때마다 나를 힘주어 끌어안으며 그녀를 밀어내는 내게 저항해왔다.
"아, 아스카?"
이러한 돌발 상황에 어째서 칸자키가 갑자기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지 당혹스러워하면서, 나는 아스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녀가 서있는 쪽으로 고개를 옮기며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최대한 담아낸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나 좀 도와…"
"그래,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내 말허리를 끊고 들어오는 아스카의 말.
분명 조금 전에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왔을 터였던 아스카의 목소리가, 어느샌가 다시 어두운 진창에 빠진 듯 잠겨 있었다.
또한 내가 바라본 아스카의 표정은 내가 무심코 히익, 하고 소리를 내버릴 정도로 어두워져 있어, 정말로 좋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아스카, 분명 화내고 있어.
아니면… 질투하고 있는 건가?
설마 칸자키도 이걸 노리고?
+3 이, 이 둘을 어떻게 진정시키면 좋을까?
아, 아니면, 이 둘이 이제 어떤 짓을 저지르는 걸까…?
란코 무서운 아이.
라면서 아스카는 란코와 카나하를 번갈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란코를 때내어 준다.
그렇게 아침을 먹었지만... 아직도 삐져있는거 같은데...
라고 말하며, 아스카는 나와 칸자키를 연신 번갈아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과 함께 나에게서 칸자키를 떼어내주었다.
"자, 란코. 일어나야지. 슬슬 우리 둘 다 곤란해질 참이라고."
결국 아스카가 나서게 되자, 칸자키는 못 이기는 척 나를 놓아주었다.
칸자키가 아스카를 이용해서 나에게 보복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아스카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스카 때문에 나를 껴안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꿈쩍않던 칸자키가 이렇게 순순히 떨어져나갈 리 없었으니까.
정말, 이 다음이 걱정된다.
"너희들 싸웠니?"
아직도 뚱한 표정의 아스카와 살짝, 아주 살짝 화난 표정의 칸자키.
그리고 곤란해하는 나를 본 엄마가 툭 던지듯 건넨 말.
"싸, 싸우다니? 절대 안 싸웠어."
"카나하의 말대로."
차라리 서로 싸울 만한 이유가 있어서 싸웠던 거라면 더 나았을 거야, 엄마.
그랬다면 서로에게 명분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아스카에게 머리를 숙이고 내 쪽에서 먼저 다가가는 것으로 아스카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수라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같은 경우라면 내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상태라 사과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내가 사과한다고 해서 아스카의 화가 풀릴 것 같지 않단 말이야.
아스카라면 분명 내가 사과해도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라고 하면서 화가 풀릴 때까지 앙갚음을 하려 들 거라고.
지금도 내 마음은 아스카의 거스를 수 없는 마수가 뻗어오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충분히 괴로워하는데, 아스카가 본격적으로 화풀이를 시작한다면 여기서 얼마나 더 괴로워지게 되는 걸까.
…역시 그런 일은 하는 게 아니었어.
+3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란코는 핸드폰을 보고 있고, 아스카는 카나하의 책장에서 소설책을 한 권 집어 보고있다.
말 붙이기도 뭐한 분위기가 계속되다가...
엄마 : 저기, 잠시 심부름좀 해 줄래?
@왜 다들 인양만 하는거에요...
내 방 안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흥미로운 책이라도 발견했는지 내 책장에서 소설책 한 권을 집어들어 읽고 있는 아스카와 자신의 폰을 들여다보면서 가끔 우리들을 힐끔거리는 칸자키.
나 또한 그런 둘을 구경하면서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을 하는 이 말 붙이기 힘든 분위기 속에서 전전긍긍할 뿐, 내가 저지른 사고가 나를 겨누는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언젠가 나를 관통하고 지나가야 할 화살이 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앞으로 언젠가 받게 될 벌을 언제 받게 될 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해 차라리 지금 당장이라도 아스카와 칸자키가 나를 혼내주었으면 하는 기분.
이래서 어른들이 혼날 짓은 하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다.
"저기, 얘들아?"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문 너머에서 몸을 내밀었지만, 그것이 딱히 놀랍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정말로 피가 바짝, 바짝 말라버리는 기분이야…
차라리 잘못했으니까 내키는 대로 화를 풀어달라고 간청이라도 해볼까.
"잠시 심부름좀 해 주지 않겠니?"
"심부름?"
그나저나 심부름이라니.
지금 당장 우리들한테 시킬만한 일이 있던가?
"보다시피 여가 시간을 즐기는 중이라 여유롭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어떤 일을?"
"딱히 큰 일은 아니고, 그러니까…"
+3 엄마가 우리에게 시키려는 심부름은 과연 무엇일까.
"어렵지 않은 일, 맡아도 되겠지. 카나하에게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테고, 란코 너는 어떻지?"
아스카가 칸자키의 의사를 묻자, 평소대로였다면 여기서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된 말로 우리들에게 어렵게 동의의 뜻을 밝혔을 칸자키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타들어가고 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가는 김에 여기 적힌 물건들도 사주면 좋겠는데, 괜찮겠니?"
엄마가 돈과 함께 건넨 쪽지에는 평범한 주부의 쇼핑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이게 대체 얼마야…?"
하지만 나는 그 평범한 쇼핑 리스트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가 준 돈은 대충 봐도 그 쪽지에 적힌 물건을 모두 사고도 한참 남을 정도라, 어째서 이렇게 많은 금액을 심부름 값으로 주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정도였으니까.
"왜 이렇게 많이 줬어?"
"남은 돈으로는 셋이서 놀다 오렴. 네 친구 둘이 수고해주는데 엄마가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건네주었던 돈을 들고 있는 손을 잡으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은 내가 가졌던 의문을 정말 말끔하게 해소시켜주는, 말 그대로 '엄마의 미소'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무언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간단하고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는 것이 창피해지기 시작한다.
그래, 그렇지.
이렇게 많이 남도록 준 이유가 뭐였겠어.
"알았어."
그러니 엄마에게 고마움을 담아 한 번의 포옹을.
"고마워, 엄마."
"얘가 정말? 어서 다녀오기나 하렴."
"응, 엄마."
+3 좋아. 이제 어떤 일이 생기려나.
딱히 셋이서 어떻게 놀지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엄마의 심부름 때문에 밖에 나오게 된 우리들이었으니 앞으로의 시간을 잘 쓰려면 지금 미리 엄마가 준 돈으로 무엇을 할지 논의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아, 먼저 그에 관한 말을 꺼내본다.
마침 뜻밖의 유흥에 칸자키도 기분이 좀 들떠 있는 것 같고, 엄마가 어제 갔던 마트까지의 거리는 좀 멀기 때문에, 거기까지 걸어가느라 여유 시간으로 넘쳐나는 바로 지금이 이 이야기를 꺼낼 최적의 타이밍이겠지.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봐야 할 딜레마로군."
"허나 운명을 이끌 때도 있어야 하는 법. 틈새 속에 잠깐 숨어 시간의 추적에 대비해야겠지."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의견이 일치한 우리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말하며 어떻게든 다음 일정을 정해보려고 했으나, 마트에 가까워지기까지도 서로의 간극이 좁혀지기만 할 뿐, 결론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 고민만 거듭하며 여전히 발을 놀리던 중, 서로 이야기하며 우리들 쪽으로 걸어오는 낯익은 형체 둘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절친한 친구인 아리사, 그리고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765 프로덕션 소속의 아이돌이자 아리사의 동료인 마카베 미즈키.
"어? 카나하쨩? 아스카쨩이랑 란코쨩도 계시네요?"
미즈키보다 먼저 우리들을 발견한 아리사가 우리 모두에게 아는 척을 하자, 아리사의 옆에서 그녀와 함께 이야기하던 미즈키도 나를 보더니 면식이 있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에토 씨. 간만입니다."
"안녕, 아리사. 안녕, 미즈키. 여긴 어쩐 일이야?"
과연 이 둘은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온 걸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3 나와 조금 닮은 사람을 본 아스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엄청 궁금한걸.
도플갱어를 마주치면 죽는다고?
"보면 안 된다, 카나하."
"아스카? 뭐 하는 거야?"
시야도, 머릿속도 모두 어둠 속에 빠진 채 아스카에게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을 때 아스카의 말이 들려왔지만, 그녀가 내 눈을 가린 이유는 오리무중이었다.
"너를 위한 거다. 모습을 훔친 자를 보게 된다면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까."
"무슨 소리야, 아스카?!"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아스카!
모습을 훔쳤다니, 미즈키가 나랑 조금 닮기는 했지만 그게 대체 어째서 내 눈을 가릴 이유가 되는 거냐고!
이해를 못 하겠어!
"제가… 에토 씨의 모습을…?"
"아, 아스카쨩?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우선 카나하쨩부터 놓아주시는 게 어떨까요?"
아스카의 말에 당황한 듯한 미즈키의 목소리에 섞여 아리사의 중재하는 말이 들려왔지만, 아스카의 손은 내 눈 위에서 떨어질 생각 없이 계속해서 나의 시야를 먹어치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과연 미즈키와 아리사는 아스카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들을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을까.
또 칸자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이없어할까? 아니면 아스카가 나를 나름대로 걱정해주는 모습에 또 다시 가슴아파하고 있을까?
나에게 보이지 않는 표정들과 나를 향하는 시선들, 그리고 제각기 다른 마음들이 모두 다 두렵고 당혹스럽다.
"여의 동포여, 심술이 난 것은 이해한다만 장난이 심하구나."
두 일행이 만나자마자 이상하게 돌아가버린 상황을 바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칸자키의 목소리였다.
"…역시 그런가."
칸자키의 말을 듣고서야, 아스카는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3 그녀의 손이 거둬진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적당히 심부름이랑 같이 병행할 수 있는게...
모든 일이 얼추 일단락되자, 아리사가 살짝 맥빠진 표정으로 우리들을 차례차례 번갈아보면서 우리에게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나에게는 아리사와 미즈키 둘 다 아는 사람들이니 둘과 합류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아리사의 제안에 동의하는 것이 아닌 아스카와 칸자키가 그것을 허락하느냐였다.
아스카는 아리사는 봤어도 미즈키는 본 적이 없을 터였고, 또 칸자키는 아리사를 봤던 것도 같지만 아스카와 마찬가지로 미즈키를 만나본 적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물론 아이돌 활동을 하는 도중에 몇 번 마주쳤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친분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까 이것은 논외로 둬야겠지.
아무튼 이렇게 서로 아는 사람도 아니고 일행의 대다수가 서로 모르는 관계에 놓여 있을 때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 일행들과 같이 다니게 한다면 내 결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낯선 기류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불편함을 감당하게 만드는 거니 나머지 둘의 의사가 중요할 수밖에.
"운명의 분침과 초침이 만나 얻게 된 추종자를 어찌 내치겠는가."
"허락… 이라는 거죠? 란코쨩."
"그렇다."
의외로 아리사 쪽의 제안을 먼저 수락한 사람은 우리 셋 중에서 둘과 가장 인연이 없는 칸자키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요즘 칸자키의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니, 여태껏 내가 칸자키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칸자키에 대해 알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았으니까.
"뭐, 나도 상관 없달까. 카나하 너는 어떻지?"
"나도 괜찮아."
"그럼 일행 결성이로군요. 사실 저희 일행은 이렇다 할 목적이 없었으니, 기왕 일행이 된 김에 세 분이 하려던 일에 편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세 분은 하시려던 일이 있으셨나요?"
…이러면 조금 곤란해지는데.
그건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었단 말이야.
우리도 심부름 다음에 할 일을 정하지 못했으니 묻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아스카랑 칸자키한테 말하려 했었다고.
설마 너희 둘이 목적 없이 나왔을 줄이야.
"엄마가 우리 셋에게 맡긴 일이 있어서 이 근처의 마트에 다녀오고 난 다음 밖에서 좀 놀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뭘 하고 놀지 아직 못 정했어."
"그렇지. 기왕 목적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었으니, '목적이 없다'는 공통점을 통해 '목적을 정하자'는 목적으로 다같이 한 번 뭉쳐보지 않겠나?"
"뭐어… 그러긴 해야겠죠."
+3 과연 다섯 명이 머리를 굴리면 어떤 해답이 나오려나.
그리고 주인공에겐 다녀갈 때마다 온갖 추억이(?) 쌓이는 장소.
노래방.
게임센터라,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네.
"과연, 여러 명이서 여러 가지를 즐기기에는 꽤나 좋은 곳이죠. 가격도 합리적이고요."
"그리고 주변 시설도 꽤 잘 되어 있지, 이 근방은?"
"응."
"므흐흐… 네 명의 아이돌이 게임하는 광경이라니, 벌써부터 근질거리네요!"
그래. 정말 좋은 아이디어야.
마지막에 아리사가 내보인 흑심만 뺀다면.
하지만 저게 아리사니까.
…오히려 저렇게 대놓고 티내지 않으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마트 안으로 들어가 다섯이서 각각 물건을 맡아 가져오는 것으로 심부름을 빠르게 마치고 난 뒤, 우리들은 바깥에서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해 게임센터로 향했다.
"어서 오세… 윽!"
게임 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카운터 직원이 우리를 보며 신음을 흘린다.
어쩐지 그 직원의 얼굴이 조금 익숙한 것 같아 자세히 생각해보니, 전에 이곳에 왔을 때 인형뽑기에서 내가 인형을 너무 많이 꺼내가자 울상지었던 그 직원이라는 것이 떠오르며, 예전에 들었던 미안한 마음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아, 그랬었죠…"
아리사도 그 때의 일이 기억난 모양인지 직원을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계속해서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 수록,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내려가기만 할 뿐.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다.
오늘은… 인형뽑기, 하지 말까.
+3 어떤 게임을 하게 되려나.
중간에 아리사가 인형뽑기를 하지 않겠냐며 나를 유혹하긴 했지만, 아직도 집 한구석에 가득한 인형들보단 울먹이는 직원이 더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나의 은근한 반대로 인해 인형뽑기를 포기한 우리들은 다시 한 번 게임을 추천하는 아리사에 의해 리듬 게임을 고르게 되었다.
"참. 이 기기의 경우에는 카나하쨩을 제외한 저희 일행 모두의 곡이 최소한 한 곡씩은 수록되어 있답니다?"
"그래?"
그런 건 몰랐는데.
그나저나 너는 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아리사?
"네! 그리고 그게 바로 아리사가 이걸 추천드린 이유죠! 자신의 곡을 플레이하는 아이돌이라니, 유니크한 상황 아닌가요!"
그럼 그렇지.
아리사 네가 이런 특이한 상황을 놓칠 사람이겠어?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우리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것들을 추천해주고, 그걸 카메라에 담아내는 게 네가 우리들과 함께 즐기는 방법 중 하나겠지.
물론 나도 그걸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널 내버려두는 거지만.
너는 어디까지나 내 친구지, 파파라치가 아니니까.
하지만 네 동료인 미즈키는 몰라도 아스카나 칸자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네 행동에 달린 문제려나.
뭐, 지금은 무거운 생각 따위 하지 말아야겠지만.
왜냐면 난 지금 여기 놀려고 온 거지, 걱정하려고 온 게 아니니까.
아무튼 각자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는 특이한 점이 있으니 우리들이 즐기기에는 정말 좋을 것 같네.
자신의 곡을 플레이하는 것도 재밌을 테고, 또 다른 사람들의 곡을 플레이하거나 하면서 서로의 점수를 비교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정말 잘 골랐어, 아리사.
"자! 이런 게임이 오늘의 첫 타자라면, 역시 승부겠죠, 여러분?"
"승부, 입니까?"
"호오? 용기의 근거라도 있는 것인가, 이방인이여?"
"뭐어, 그런 건 없지만 어차피 즐기려고 하는 거니까 이렇게 하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군. 역시 온 힘을 다해서 즐기려면 경쟁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리듬 게임은 처음인데, 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
물론 소원을 건 내기 같은 게 아닌, 가볍게 승부하는 것 같으니까 져도 별 상관은 없겠지만.
+3 승부의 승자와, 다음에 생겨날 일
..란코가 부들거리는게 눈에 보여서 괜한 짓을 했나 싶다
손풀이도 할 겸 자신들이 부른 곡이나 다른 사람의 곡을 몇 번 플레이해본 다음, 어느 정도 진지해진 분위기 안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승부.
그 승부의 마지막 타자로 나섰던 나의 플레이가 끝나고 나서 나온 결과창에서 보여지는 것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결과.
"내, 내가… 1등?"
나의 플레이를 요약한 화면 위에 떠 있는 스코어와 정확도는 모두 다른 넷보다 높은 최상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아이돌을 때려치고 게임 쪽의 재능을 살려볼까 싶을 정도로 높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다섯 명 중에서 유일하게 자기 곡이 수록되지 않은 내가 1등을, 그것도 근소한 차이로 2등을 이겨버렸다는 아이러니한 승리의 쾌감이 밀어닥쳤다.
"1등이야! 내가 1등이라고!"
단 한 명만의 승자를 가리는 승부였지만 그래도 내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기쁨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온 몸을 휩쓰는 짜릿한 느낌을 다른 네 명과 나누기 위해 들뜬 목소리로 1등의 영광을 포장해 모두에게 전달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돌아본 그곳엔 씁쓸하지만 어딘가 만족스러워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스카와 사진기를 들어올리는 아리사, 그리고 무표정하던 얼굴 위에 옅은 웃음을 살포시 띄운 채 박수를 쳐주는 미즈키와, 그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다.
"여… 영광의 좌에 올라섰구나."
척 보기에도 나에게 억지로 축하를 건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바들거리는 칸자키가.
하긴, 칸자키라면 나를 축하하려고 해도 마음이 그걸 용납하지 못해 이성과 감성이 따로 노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비단 우리들의 사이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칸자키가 이 승부의 2등이니까.
거기에 진검승부라면 동일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아리사의 주장 때문에 승부에 사용되었던 곡이 하필 칸자키 자신의 곡이었으니까 더 그렇겠지.
나,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해버린 게 아닐까.
승부에 너무 심취하다보니 칸자키를 생각해주지 못한 것도 같네.
"그래서, 보상은?"
일단 장난으로 칸자키의 분위기를 좀 풀어줘볼까.
"보상이라… 중요한 문제로군요. 에토 씨는 어떤 보상을 원하시나요?"
어라?
"정당한 승자에게 주어져야 할 리워드는 그만큼 가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이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결투에 임하다니. 아무래도 우린 기초부터 빼먹었던 게 아닐까."
"그렇죠. 사실 내기 승부 같은 건 아니었지만, 승자가 그걸 원하니까요? 즉!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죠? 므흐흐."
"하아… 결국 투쟁의 지고한 법도에 매여버렸는가."
이,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3 대체 나한테 어떤 보상을 주려는 거야? 너희 넷은.
서로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몇 분동안 나에게 무슨 보상을 주는 것이 합당할지 논의하던 넷의 대표로 발언을 시작한 아스카.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낸 벌과 너의 승리를 축하하는 마음에서, 내가 하룻동안 어울려주도록 하지."
그녀의 발언은 꽤나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울려준다고 해도 말만 다르지 그냥 나와 데이트해주겠다는 거잖아, 데이트.
연인끼리의 데이트가 승부를 통해 쟁취해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칸자키는?"
나는 아스카에게 지금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을 작게 물어보았다.
승자가 패자와 데이트할 권리란 나와 아스카에게 있어 딱히 상관없는 보상이었으니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썩 좋지 않아서 문제란 말이지.
평소같으면 장난스럽게 넘어갈 이런 '보상'도 지금의 칸자키에겐 나와 아스카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장치가 되어 괴롭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니까.
"조금 툴툴거리더군. 역시 이러한 형태의 보상은 싫었던 모양이다."
역시 칸자키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주고 싶지 않은 보상이었겠지.
네 명이서 서로 합의해서 결정했다고는 하지만 칸자키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고려되지는 않은 보상이니까.
아무래도 아리사가 나를 위해서 의견을 주도한 것 같지만…
…좋은 의도도 때로는 이렇게 독이 되는 법이라서 참 문제야.
"나도 이렇게 되는 건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해할 것까진 없어. 나는 괜찮으니까. 그래도 칸자키는 좀 걱정되네."
"내 말이 그 말이다. 어떻게든 란코의 짐을 덜어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짐을 더해버리는 것만 같아 힘들군."
"그렇네…"
+3 …이렇게 불안한 심정으로 내딛은 살얼음판 너머에선 또 어떤 상황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아스카 :1주간 여행을 다녀와야 할 듯하군.
내가 아스카와 이야기하며 걱정하던 당사자에게서 터져나온 큰 목소리가 우리들의 주의를 끌며 주장할 것이 있음을 알려온다.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잠시.
그녀가 다시 말을 꺼내왔다.
"여의 공명자가 비록 정해진 틀을 제대로 따르지 못해 벌받기를 자처했다 하나 그것은 본디 그녀의 일이 아닌, 다른 자가 받아야 할 일이다."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네가 정상의 좌에 올라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자란 심연으로 굴러떨어져, 그곳에서부터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던 자가 아닌 조그만 엇갈림이 만들어낸 큰 소용돌이에 휩싸여 굴러떨어져버린 자가 아니겠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한 말로 요새를 쌓으려 하는 걸까.
"그러니 제단 위에 놓이는 역할은 여의 공명자보다 이 몸이 더 어울리겠지."
뭐야, 정말 간단한 말이었…
…잠깐만. 저 말대로라면 아스카가 해야 할 일을 칸자키가 대신 하겠다는 거 아냐?
오역이야 약간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말 같은데?
"그러니까, 네가 나랑 하루를 보내겠다고?"
"그렇다. 용케 여의 마음과 닿은 모양이로군."
칸자키의 대답으로 확정되어버린 그녀의 뜻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분명 우승 상품으로 아스카와 데이트할 권리를 얻게 되었을 때 의외의 상품에 놀라기는 했지만, 칸자키가 자기 자신을 제물삼아 파격적으로 부풀려버린 지금의 놀라움에 비하면 내가 느꼈던 그 놀라움은 차라리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내 두뇌의 대부분을 잠식해버린 놀라움의 크기에 걸맞게, 이렇게까지 충격적인 말을 꺼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칸자키에게 대답하는 말을 서둘러 만들어내야 하는 내 입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3 칸자키의 말에 나나 아스카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아스카가 소근거리는 말에서 그녀가 칸자키를 질투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은 질투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아스카.
"그러니까… 칸자키 네 말은 정말로 나랑, 그, 하루를 같이 하겠다는 거지? 그것도 우리 단 둘이서만."
결국 내가 급조해낸 말은 도돌이표처럼 이미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그렇…"
하지만 희한하게도 분명 같은 사람이 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반응과 지금의 반응은 사뭇 달라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한 내 말에 또 다른 의미를 실어주었다.
칸자키가 갑자기 저렇게 당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그녀가 했던 말이고, 그녀는 자신의 말을 확언하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놀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설마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급하게 꾀를 냈던 걸까.
자신의 꾀에 자신마저 휩쓸려버렸던 조금 전과 달리 진정된 상태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상기시키는 내 말을 들으니 부끄러워졌다거나, 곤란해졌다거나 그런 거라면 말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읏…!"
"어라? 란코쨩?!"
"아, 가버리셨네요."
그녀의 대안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찰나의 시간을 갖는 것조차 망각해버릴 정도로 조급해한 나머지 머릿속에서 생각난 것을 급하게 써버리고 나서,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뒤쫓으려는 듯 도망쳐버리는 칸자키.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 그녀의 마음이 비쳐보이는 것만 같아 나는 칸자키가 얼마나 아스카를 좋아하고 있었는지, 또 자신의 눈 앞에서 데이트 약속을 잡는 나와 아스카를 보며 얼마나 괴로워하고 슬퍼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결국은 겉모습밖에 알 수 없겠지만.
"…이런."
"저기… 빨리 쫓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한 말이야, 미즈키.
+3 그녀를 쫓아가서 생길 일.
"칸자키."
칸자키는 그다지 진심으로 도망칠 생각은 없었는지,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흥. 너인가."
"그래. 나야."
다른 사람이 찾아주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네.
자신을 따라온 사람이 아스카가 아니라서 실망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필 내가 너를 찾아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되어버린걸 어쩌겠어.
"있지, 칸자키. 네가 불편하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우리 둘이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끝이니까."
칸자키가 자신의 주장을 한껏 펼쳐보았던 것처럼, 아스카와 다른 둘이 없는 틈을 타 나 또한 그녀와 단 둘이서만 있기에 내보일 수 있는 나만의 의견을 그녀에게 전달한다.
네가 억지로 약속을 지키려 한다면 너도 너대로 불편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네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본다면 불편한 하루를 지내게 될 게 뻔하니까.
그런 서로에게 좋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을 너한테 강요할 생각은 없어.
"아니. 마왕의 드높은 진언은 고귀하다. 언약은 이루어질 것이니라."
하지만 칸자키는 의외로 내 제안을 거절하고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선언을 자신의 약속 위에 덧붙여 자신이 되돌아갈 곳을 지워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하지만 그녀를 도망치게 만들었던 감정이 다 빠져나가지 않아 여전히 붉게 보이는 칸자키의 얼굴.
그 얼굴 때문에 지금 그녀가 한 행동이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억지로 자기를 내모는, 무모한 고집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어째서인지 나에게는 칸자키의 새로운 선언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칸자키에게 말했던, 그녀와 나쁜 사이로 남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받아들이고 손을 내밀어준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었다.
+3 란코와 정말 데이트 약속을 잡아버린 지금, 이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차라리 잘 됐다. 일단 란코는 돌려 보내고, 이야기 좀 할까.
생각같아서는 칸자키와 더 대화하면서 우리들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좁혀나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나를 따라와있었던 아리사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 대화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연적끼리의 대화는, 친구 앞에서 할만한 대화가 아니니까.
"언제 왔어?"
"방금 전이죠! 므흐흐… 두 분이서 보낼 하루가 벌써부터 상상되네요! 아! 그렇지! 아리사에게 플랜을 맡겨보시는 건 어떤가요?"
플랜이라니, 아스카와 데이트하는 것도 아닌데 넌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뭐… 그래도 아리사가 와서 차라리 잘 됐나.
너랑 이야기 좀 해야겠어, 아리사.
"일단 칸자키 너는 먼저 돌아가줘. 나는 아리사랑 할 이야기가 조금 있어서."
"…이 몸을 제한 채 세계의 눈을 피해 이루어야 할 서약이라면, 좋다. 그렇게 해주지."
내 말에 간단히 답하고 천천히 사라져가는 칸자키.
얼마 떨어진 거리는 아니니까, 혼자 보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나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단 둘이서 할 이야기라니, 정말로 아리사와 상담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런 건 아냐."
내가 너와 대화하고 싶은 것은…
+3에 대해서야.
우리에게 있었던 일과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리사 너는 꽤 사려깊은 사람이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슬퍼할 때 자신이 도울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울 사람이니까.
그런 너니까… 말해도 괜찮겠지.
"…알겠어요. 이야기해주세요."
내가 사뭇 무거운 태도로 이야기의 시작을 열자, 아리사 또한 얼굴에 가득하던 장난기어린 열정을 지우고 진지해진 얼굴로 나에게 눈을 맞춰오며 믿음직한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있잖아, 아리사."
그렇게 평소의 아리사와는 전혀 달라진, 곤란해하는 친구를 위해 진지하게 상담에 임하려는 아리사의 고마운 모습을 보며 나는 나와 칸자키라는 실로 얽힌 비극의 한 타래를 풀어내기 위한 첫 말을 꺼냈다.
"어제… 칸자키가 나와 아스카가 어떤 사이인지 알아버렸어."
잠시 한숨을 쉬어 숨을 고르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칸자키도 아스카를 좋아하고 있더라고."
"네? 란코쨩도요? 아, 그래서 오늘 그렇게…"
급속도로 어두워지는 아리사의 표정.
그것을 보니 우리들의 관계를 확인해버린 칸자키의 얼굴이 떠올라, 입가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당연히 싫었겠지. 갑자기 한 여자애가 나타나서 아스카를 좋아한다며 고백하질 않나, 병 때문에 아스카가 그 여자애를 만나줘야 하질 않나, 또 그 둘이… 점점 가까워지지를 않나."
"소중한 사람을 빼앗겨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 떨어진다.
눈에서 뺨으로, 뺨을 따라 턱으로.
"그런데 나는 어떻게 했는지 알아?"
차마 아스카와 칸자키의 앞에서는 보일 수 없어 가슴 속에 끌어안은 채 내보이지 않은 날카로운 슬픔 몇 조각.
숨길 수도 없고 이제는 숨길 이유도 없어져 내가 여태껏 아프게 베여가며 품어온 그것을 뽑아내자, 상처에서 나온 피가 작은 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계속 칸자키의 앞에서… 아, 아스카랑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그렇게… 칸자키를 괴롭게 하고…"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나… 정말 어떻게 하면 좋아…?"
눈물이 흘러나오는 상처가 너무나도 아려와, 이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으… 아흐… 흑…"
그저 흐느낄 뿐.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 날 안아주는 아리사가, 또 등을 토닥여주는 그녀의 손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무너져내렸을까.
"괴로우시겠네요, 세 분 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모두가 괴로워하게 되는 건… 참 슬픈 일이죠."
나의 슬픔에 공감해주며 연신 괜찮다고 속삭여주는 아리사에게 안겨, 나는 진정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자, 흐응!"
"크으응…"
"정말, 카나하쨩은 가끔 보면 나잇값을 못 하신다니까요?"
"시끄러어, 아리사…"
방금까지 슬피 울던 사람에게 할 말인가, 싶지만 오히려 내가 진정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아리사에게 더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 말은 좀 너무하잖아.
"좀 진정되셨어요?"
"응…"
"아무튼 이제부터 잘 하시면 되잖아요? 그럴 기회도 생기셨고요."
그렇지.
칸자키와 함께할 수 있는 하루의 시간이, 칸자키가 나에게 준 절대 헛되이 쓸 수 없는 기회가.
하지만 나 혼자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힘내세요! 카나하쨩!"
아리사의 도움을 받아볼까?
+3 어쩌지?
1. 아리사한테 플랜을 부탁해볼까?
2. 아니면 혼자서 노력해볼까?
무조건 혼자 짊어지는건...
"네? 아리사요?"
이건 믿음직한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 일이고, 아스카도 마음아파하는 사건의 당사자인데다 자칫 잘못했다가 칸자키나 아스카 양 쪽을 전부 자극해버릴 수 있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지금 내가 지금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너니까.
게다가 너라면 칸자키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을 테니 나와 칸자키가 아픔만을 남긴 채 멀어지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좋은 계획을 짜줄 것 같고.
거기에 먼저 플랜을 짜주겠다고 했던 사람은 너였잖아?
"어려운 부탁이지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카나하쨩과 란코쨩, 그리고 아스카쨩을 위해서!"
"고마워."
"일단 아리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 카나하쨩과 란코쨩의 데이트 계획 자체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데이트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아리사도 계획에 동참할 테니까! 꼭! 언제 데이트 가시는지 알려주셔야 해요?"
"알았어. 그럴게."
…정말 고마워, 아리사.
+3 이제… 어떤 일이 생길까.
아스카나 미즈키가 걱정할지도 모르고, 아마 지금쯤 돌아가고 있겠지만 혹시나 계속 찾고 있다면 곤란한 일이 생겨버릴 수도 있으니까.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잠깐 담아뒀다 나중에 다시 꺼내도록 하자.
"이제 슬슬 돌아갈까?"
"네, 그러죠."
"…나 눈 부었어?"
울었다는 사실은 들키고 싶지 않은데.
"아뇨? 딱히 눈이 부었다거나 그렇지는 않은데요? 전혀 울었다는 티가 안 나요."
"그래?"
그렇다면 걱정할 이유는 없겠지.
"그럼 됐어. 가자."
"다들 있었네?"
다시 우리가 헤어진 곳으로 되돌아가보니, 다른 세 명이 먼저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마츠다 씨의 연락을 받고 빠르게 돌아왔습니다. ……기다렸다고."
"지금까지 같이 있었던 건가?"
"응."
늦게 돌아오는 두 명이 있는 곳을 유심히 쳐다보는 아스카의 시선.
평상시라면 나에게 와서 꽂혔을 그 시선은 어째서인지 미묘하게 나를 빗나가, 내 바로 뒤에 있는 아리사를 향해 있었다.
설마 또다시 아리사에게 질투라도 하는 건지 궁금해하며 아스카의 옆, 나의 자리로 가 걸음을 재촉하며 다시 다섯 명의 놀이가 재개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스카가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며 자신의 숨결 속에 작은 말을 섞어 내 귀로 흘려넣었다.
"혹시, 울었나?"
예기치 못한 폭로에 당황해 깜짝 놀란 나머지 못박혀 선 채 질겁한 표정으로 아스카를 바라보아 그녀가 숨겨져 있던 진실 하나를 파헤쳤다는 확증을 가져다주자, 아스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마츠다의 어깨가 젖어있더군. 그런 눈에 띄는 표식이 만들어질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약간 앞에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뒤처진 나를 쳐다보는 세 명의 서로 다른 시선보다 내 바로 옆에 서서 칸자키와 아리사를 번갈아보는 시선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한 사람의 시선밖에 없는데도.
"뭐, 사정이 있었겠지. 나중에 설명해주길 바란다."
"으, 응…"
+2 게임센터에서 할 일, 혹은 생길 일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