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치바나 수사일지 ~테이블 위의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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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min readJul 15, 2018

※ 어나스테에서 배포된 버전을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 묘사 상 원본 설정 및 캐릭터와는 다르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가벼운 폭력 묘사와 비속어 표현이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내용은 픽션이며, 실제 인물, 지역,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오후 여덟 시, 346프로덕션의 의무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인 것으로 보인다. 두런두런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릴 정도의 인원이 의무실 침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침대 위에 있는사람은 미무라 카나코. 사무실 내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현재는 응급실에 잠시 실려 갔다가 신변 보호를 이유로 다시 346프로덕션으로 옮겨진 상태. 하얀 시트 위에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카나코의 주변엔 프로듀서와 몇몇 아이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갑자기 이런 끔찍한 일이…….”

미나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던 프로듀서는 한층 침울해진 표정을 지었다. 최초 발견자인 미나미마저 이렇게 말한다면 더더욱 실신의 원인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의사 말로는 건강상의 문제는 없고 무언가에 의한 타상의 흔적이 보인다고 했지. 그렇지만 대체 뭐가 카나코를 이렇게…….”

프로듀서의 말에 치에리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캔디 아일랜드 멤버로서 레슨을 받던 카나코가 의식불명이라니. 그대로 치에리가 눈물을 터뜨리려던 찰나-

“이건 「사건」의 냄새가 나는군요.”

기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군가가 기묘한 대사와 함께 나타났다. 탐정 아이돌, 안자이 미야코였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저…… 미야코 쨩, 사건이라니?”

치에리의 물음에 미야코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척 하고 손가락을 내밀었다.

“모르시겠나요? 뒷머리엔 타상의 흔적, 단 한 명뿐인 목격자, 벌건 대낮에 빈 방에 홀로 남겨진 시체……. 이건 명백한 밀실사건이에요!”

“얘 안 죽었거든.”

“아아아, 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슬프시겠죠, 괴로우시겠죠, 모든 게 거짓말 같으시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프로듀서! 본 사건은 이 안자이 미야코가 해결해내어 카나코 씨의 성불을 돕, 헉.”

그러니까 안 죽었다고, 라고 태클을 걸 틈조차 없었다. 미야코의 눈이 일순간 풀리더니 스르르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미야코 쨩!!!!!”

“무, 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일에 모두가 당황하던 중에 프로듀서가 허둥지둥 쓰러진 미야코에게 달려들었다.

“잠깐만요.”

작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미야코에게 달려드는 다리들을 멈춰세웠다. 작은 체구에 당당하게 팔짱을 낀 채로 서있는 그는

“아리스……?”

“타치바나입니다. 다들 너무 허둥지둥하시는 것 아닌가요? 이럴 때일수록 보다 차분하고 냉정한 상황분석이 필요해요.”

아리스는 프로듀서에게 ‘불현듯 나타나 날카롭게 상황의 핵심을 파악하는 어조’로 한마디 툭 던지더니 매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아이패드와 전용 펜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자, 제가 한 번 정리해볼게요. 후두부 쪽에 외상, 미나미 씨가 카나코 씨를 발견한 건 오후 일곱 시경, 사건 발생은 오후 여섯 시 반쯤으로 추정, 최초 발견자 외에 목격자 없음. 맞나요?”

“으, 응…….”

미야코가 앞서 언급한 것과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정보값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하나 둘 정리되어가는 듯했다. 그 외에도 진지한 얼굴로 혼자서 이것저것 열심히 메모를 하던 아리스는 침착하게 아이패드의 커버를 덮었다.

“그럼 이제부터 이 건은 제가 일일 수사관이 되어 해결하도록 하죠.”

“엥……?”

“수사, 뭐……?”

“아뇨 뭐……. 그런 게 있는데 그 뭐냐, 아무튼! 제가 맡아서 처리할 테니 모두들 협조 부탁드려요. 일단 여기에 있어봤자 별 도움은 되지 않아요. 사무실로 돌아가도록 하죠.”

어쩐지 평소의 아리스와는 좀 느낌이 달랐지만 그러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건지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지 다들 별 대꾸 없이 아리스의 말에 따랐다. 프로듀서만이 겉옷을 챙겨 입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미야코는……?”

“아 앗 아 그렇군요. 저런, 레슨이 끝난 직후일 텐데 너무 무리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침대로 옮기도록 하죠. 아, 돕지 않으셔도 돼요.”

이 과정에서 옆에서 조용히 모든 걸 지켜보던 미나미는 아리스가 수상쩍을 정도로 경직된 말투를 구사한 사실과 미야코를 옮기는 과정에서 목덜미의 무언가를 제거하는 모습을 발견했으나 이를 섣불리 지적하기엔 아리스가 묘하게 들떠있었기에 일단은 묵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아리스(aka 수사관)의 수사일지의 첫 페이지가 열렸다.

“여기가 사건 현장이군요. 미나미 씨는 특별한 건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셨죠?”

“응, 너무 놀라서 다른 걸 살필 경황도 없었지만.”

아리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특별한 무언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평소대로의 사무실일 뿐이다. 테이블 위를 제외하면.

‘이게 뭐지……?’

테이블 위에는 정체 모를 하얀 가루가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었다. 별 거 아닌 가루라 생각할 수 있으나 아리스(aka 수사관)의 눈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아리스는 손끝으로 그 일부를 손으로 찍어보았다. 단단한 가루였지만 소금이나 설탕이라고 보기엔 좀 굵었고 어떤 것은 약간 바스러지는 느낌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맛을 보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346프로덕션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뭘 흘렸을지 역시 모르는 일이다.

‘이건…….’

아리스는 크로스백에서 장갑을 꺼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들을 미리 준비해둔 작은 봉투에 담았다.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 귀중한 가루다. 첫 증거 채취. 벌써부터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이대로만 한다면 사건은 무사 해결이다. 이상한 방해꾼만 등장하지 않는다면 복잡해질 일은 없을 테다.

“곤니치할로~”

“냐핫, 다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많이 복잡해질 듯하다.

“잠깐만요. 인사는 됐고요, 그 이상 가까이 오지 말아주시겠어요? 지금 두 분은 존재만으로도 이미 유력한 용의자상에 올라와있으며 설령 두 분이 범인이 아니더라도 함부로 수사현장에 개입할 시엔 고의든 아니든 자칫 댁들에 의한 증거인멸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든요?”

“앗 아리스 쨩이다. 메틸헥사비탈은 잘 썼어?”

“칵! 조용히 해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구요!”

“뭔데뭔데~? 또 누가 시키 쨩이 만든 유아퇴행 주스 마신 거야?”

“그런 주스가 있고 또 그걸 마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네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프레데리카 씨랑 시키 씨! 두 분 오늘 사무실에 드나든 적이 있었나요!”

아리스는 혹시라도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들’ 둘이 이쪽으로 다가올까 경계하며 물었다.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아니? 시키 쨩은 방금 회사 정문에서 만나서 같이 온 거고 나는 검은 고양이 프레데리카 놀이 하고 있었어.”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무실엔 들른 적이 없단 말씀이시죠?”

“아리스 쨩이 올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왔겠지만 말이지~”

“타치바나고요, 일단 알겠어요. 물어볼 게 한가득이니까 한가하시다면 저~쪽에 가 앉아계세요.”

“응!”

둘은 촐싹대며 걸어가더니 지나치게 올바른 자세로 구석에 있는 소파에 가 착 하고 앉았다. 일단 둘은 알리바이를 제시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주장일 뿐이다. 여전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귀찮게 군다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안심이다. 저 둘만 얌전히 있으면 이 수사도 착실히 진행해갈 수 있을 것이며

“안녕안녕! 테레비 틀어놨어? 오늘은 캣츠가 이긴다!”

“어라 다들 모여있었네, 후훗.”

“언니들 자리는 있으려나~? 앗! 아리스 쨩 안녕~~!!~!~!”

수사관 아리스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탄식했다. 유키와 사나에는 오자마자 신나서 주사 혹은 고성방가에 가까운 언행들을 해대기 시작했고, 카에데는 벌개진 얼굴로 후훗거리며 좁은 사무실에서 와와거리는 무례한 일행들을 맑은 사케처럼 티없는 미소로 받아주고 있었다.

“또 술 드시러 오신 건가요! 프로듀서가 분명……”

“우리 술 마시러 온 거 아닌데?”

“이미 마시고 온 건데?”

“아오!”

아리스는 순간 그들이 반쯤 깨면 위협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할 각종 술병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몹시 유감스러웠다. 그저 세 사람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그나마 조용했던 사무실이 금세 왁자지껄 해졌다. TV소리에 사나에의 음도 제대로 맞지 않는 노래 소리까지, 게다가…….

“거기 앉지 마세요! 아직 조사가 덜 끝난…… 유키 씨! 소파에 걸개 걸지 마세요!”

“캣츠 새끼들은 오늘도 병살만 치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난장판을 어느 정도 통제해줄 사람이 자신을 제외하고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것이었다. 카에데에게 슬쩍 눈치를 주면 좀 동조해주려나 싶었다.

“제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구요!”

“총이 네 자루 있으면 4 gun? 풉끅.”

아리스가 의자 하나를 걷어차고서야 사태는 진정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된 일이니 협조 부탁드려요. 그리고 유키 씨, 혹시 오늘 지나다니면서 누구누구 만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데.”

“물어본 제가 멍청이네요. 카에데 씨는요?”

“잠깐 잠깐 아리스 쨩.”

카에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서 가만히 딸꾹거리던 사나에가 멋대로 끼어들었다.

“취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언니가 현역 때 종종 쓰던 방법인데 잘 보고 참고하도록 하렴.”

“그런가요……. 불안하지만 한 번 해보시죠.”

사나에는 유키의 반대편에 철제 의자를 가져와 털썩 앉은 뒤 목소리를 깔고 시범을 보였다.

“야 짜샤, 내가 지금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거든? 그래서 빨리 끝내는 방법을 고안하려 하는데, 지금부터 1부터 10까지 숫자를 적을 거야. 헛소리 하나 당 숫자 하나가 지워지는데, 숫자 하나가 지워질 때마다 손가락 하나가”

이후 사나에는 발언권을 잃었다.

“음~ 저도 아리스…… 타치바나 쨩에게 한가지 도움을 주고 싶은데”

사나에의 취조쑈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카에데가 입을 열었다.

“취조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엔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프로듀서에게 혹시 복도 쪽 CCTV를 확인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오……. 그렇네요. 방 내부에만 집중하다 보니 복도의 CCTV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이런 초보적인 미스를……이라고 자책하면서도 드디어 쓸만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구나. 다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쇠뿔도 단 김에, 아리스는 아이패드를 챙기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프로듀서에게 가보도록 할까요.”

“오우! 가자가자♪ 검은고양이 프레데리카가 간다~”

“야호! 프로듀서 기다려랏!”

“저런저런, 그렇게 뛰면 저도 뛰고 싶어져요. 저run저run…… 후후……. 꺼얼껄…….”

정말 이 사람들과 같이 가도 될까. 정신사나운 건 둘째치고서라도 어쩌면 이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아리스는 까불대며 자신을 쫓아오는 무리들을 애써 무시한 채 사무실을 나와 이 시간까지도 근무 중일 가여운 프로듀서를 찾아 나섰다.

오후 10시, 야심한 시각이지만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스 일행은 집에 가고 싶다는 한마디를 남기는 프로듀서를 뒤로 한 채 CCTV 화면을 준비해놓은 모니터로 향했다. 카나코 실신사건 담당 수사관 아리스. 진상에 크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까. 그러나

“……안 나오는데요?”

뜻밖의 난관. 범인의 조작일까?

“아 그건 가짜래.”

종합병원 입원조차 하지 못하고 회사 의무실에 누워있는 아이돌, 퇴근하지 못하는 프로듀서, 어떠한 뜻깊은 사정이 있는 것인지 가짜로 설치되어있는 CCTV. 아리스는 346프로덕션이 진정 대기업이 맞는 것인지, 수사한다면 346프로덕션의 부조리한 현실부터 수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수 초 간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수사는 지체되어버리는 걸까. 낙담해있는 아리스의 어깨에 새하얀 손이 슬쩍 올라갔다.

“꺄아아아아악!”

“에에에에에엥?”

“아 진짜 뭐예요 프레데리카 씨. 그렇게 손 올리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올려야 하는데?”

“이 사람 진짜 한 마디도 안 지려는 거 봐!”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짓는 아리스와 능글맞게 웃고 있는 프레데리카. 프레데리카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슬쩍 뒷짐을 진 채 아리스 옆에 앉았다.

“어린이 수사관님.”

“타치바나.”

“수사관 쨩.”

“아니 진짜…… 아뇨 됐어요, 말씀하세요.”

프레데리카는 아리스 쪽으로 스르르 다가왔다.

“단서는 한 번에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 우선 천천히 처음부터 짚어나가면서 답을 찾아보는 게 어때?”

“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아뇨 갑자기 그렇게 올바른 소리를 하니까……. 아무튼 웬일로 프레데리카 씨가 옳아요. 제가 너무 조급했네요.”

확실히 그렇다. 사건이 지체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갑자기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급하게 진행하다가는 발견할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종결시킬 수는 없다. 자신이 수사관을 자처하고 나섰으니까. 그 동안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비웃음을 받는 자신만을 상상했다. 이는 역으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당당히 모두의 앞에 서는 자신을 앞서 떠올렸기에 나올 수 있었던 상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멋있어 보일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수사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다워질 필요가 있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아리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일단 복도 쪽 가짜 CCTV는 제쳐두고 근처의 다른 CCTV를 살피며 동선을 파악하도록 하죠. 자, 그럼 이것부터…….”

“아, 그거 고장이래.”

“캬악!”

하나같이 도움 안 되는 한심한 감시도구 기계 놈들. 적어도 346프로덕션이 아이돌들의 사적 공간을 어쩌다 보니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자명한 듯했다. 사측의 의지가 작용한 부분은 아니겠지만.

“어라? 그래도…….”

다행히도 완전히 고장나버린 건 아닌지 녹화된 영상 중 (꽤나 지지직거리긴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영상이 일부 남아있었다. 오후 5시 15분부터 6시 45분까지, 한 시간 반 가량의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미나미의 발견 시점으로부터 굉장히 가까운 시간대인지라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핵심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리스는 정확한 시작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영상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근듸 지나댕긔는 새럼들이 일케 마눈대 뉴가 샤뮤실로 드루간 곤지 딸꾹 어케 아러?”

사나에가 혀를 뱅뱅 꼬며 느릿느릿 질문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어절의 맞춤법이 틀렸고 유일하게 맞춤법에 맞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부분이라곤 딸꾹 뿐인데 용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셨군요. 일단…… 제 추측이 맞다면 프로듀서나 동료 아이돌 분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슬프게도.”

아리스의 단언에는 근거가 있었다. 신데렐라 프로젝트 사무실은 일단 사무실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거의 아이돌들의 휴게실 내지는 만남의 광장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만큼 아이돌들이나 담당 프로듀서 외의 사원들이 출입할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런 이유로 이제부터는 이 한 시간 반 동안 누가 그 근처를 오고 갔는지 체크할 예정입니다. 추후 영상에 등장한 사람들이 왜 그곳을 지나쳤는지도 당연히 알아볼 거구요.”

“오늘 캣츠 야구보다 이게 더 재밌다 야.”

“빈정거리는 줄 알았는데 진심이시군요……. 그런데 이 영상은 저만 남아서 마저 체크하려고 해요. 여러분은 완전히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용의자 선상에 있을 수 있음을 아셔야 해요. 그러니 여러분께 이것저것 알려드릴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어쩔 수 없다. 아리스 나름대로 생각한 심증은 있으나 아직 물증이 없으니. 동료 아이돌들에겐 미안하지만, 일단은 모두를 의심하는 단계일 수밖에 없다.

“근데 아리스 쨩.”

미나미가 끼어들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고, 정말로 괜찮겠어? 시간이 늦어서 피곤하기도 할 테고……. 영상은 내일 다시 와서 확인하는 게 어때?”

미나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걱정스런 얼굴(아마 그럴 것이다)로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아리스는 그게 뭐가 대수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걱정해주셔서 감사 드리지만 저는 애가 아니에요. 이 정도 시간에는 피곤하지도 않네요. 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여러분도 제게 도움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으니 이제 돌아가셔서 쉬세요.”

다들 아리스의 수면과 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했으나 그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리스가 뭣도 없이 막무가내로 버틴 건 아니었다. 아까의 조급해하던 아리스와는 달리 지금의 아리스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었다. 이제 모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 게다가 이 영상만큼이나 결정적인 증거가 남아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사건은 하루 만에 스스로의 추리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모두를 내보내고 아리스만 홀로 모니터실에 남았다. 꼭 이럴 때 코우메가 들려줬던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온갖 잡생각을 애써 떨쳐내고 일단은 영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진실은 화면 너머에 있다.

그날 밤, 아리스(aka 수사관)는 아직 아리스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눈치챈 프로듀서에 의해 잠든 채 발견되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네요…….”

아직 부스스한 얼굴로 프로듀서가 우린 차를 한 모금 넘기는 아리스. 대강 20분쯤 보다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든 것으로 보였다.

“괜찮아. 집에도 말씀 드렸으니 내 차로 집에 가면 돼.”

“아뇨, 전 마지막까지 전부 확인하고 가야 해요. 오늘 내로 마무리 지을 수 있어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지만 그 태도는 단호했다. 잠시 침묵하던 아리스는 고개를 홱 들더니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자, 그러니 프로듀서 씨도 제게 협조하세요. 같이 남은 영상을 확인하도록 하죠.”

“나도 용의선상에 있는 거 아니었어?”

“설마 프로듀서가 본인이 담당한 아이돌을 후려쳐서 며칠 동안이나 쉬게 하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건 단순한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제 논리적 판단에 의해 근거한 거구요. 프로듀서를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예요.”

일단 아리스도 일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결론을 낸 상태였다. 무작정 아무나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계속 서 계시지만 말고 여기 오셔서 좀 도와주세요. 어디까지 봤더라…….”

“근데 나 방금 일 끝났는데…….”

영상이 재생되었다.

한 시간 반짜리 영상이 끝나자 노이즈음과 찢어지는 화면이 반복되더니 얼마 있지 못해 완전히 나가버렸다. 아리스는 한숨을 폭 쉬었다.

“드디어 끝났네요……. 저기, 프로듀서 씨?”

“…….”

“프로듀서 씨!”

“앗 아아 전무님 죄송합니다!”

“그새 무슨 꿈을 꾸신 건가요…….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잠꼬대는 그만 두시죠. 한참 어린 저도 이렇게 멀쩡한데 뭐 하시는 건가요.”

“아까 잤잖아…….”

“됐고, 보시면서 뭐 발견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사람이 많다는 거?”

“네 어차피 기대 안 했어요. 이제 제가 발견한 걸 보시죠.”

“방금 좀 어이없어한 거 같은데.”

아리스는 영상을 보면서 적어둔 시간까지 영상을 돌렸다.

“자, 여기 보이시나요?”

흐릿한 영상 속에는 세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눈을 비비며 그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살폈다.

“이건……. 미나미랑 아냐고, 이 오른쪽은 누구지?”

“아쉽게도 지금 영상에선 오른쪽 부분이 심하게 깨진 상태라 정확히 확인하긴 어려워요. 일단 머리카락 색이나 대강의 복장 등으로 좁혀나가긴 했지만 어차피 정 모르겠다면 미나미 씨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고……. 일단 이 모퉁이를 돌면 신데렐라 프로젝트 사무실이 나온다는 건 프로듀서도 잘 아시겠죠. 그리고 끝 쪽으로 곧장 가면 레슨실로 갈 수도 있고요.”

아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영상에 잡힌 다른 사람들도 확인해보니 대부분 유닛 별로 같이 이쪽 복도를 통해 이동하더군요. 지금 화면에 잡힌 미나미 씨와 아나스타샤 씨처럼요. 추측하건대, 이때까지 화면에 잡혔던 분들은 아마 레슨실이 목적이었을 거예요. 유닛 별 특별레슨이 있던 날이라고 하면 납득이 가네요. 그렇다면 이 오른쪽에 계신 이 분은 뭘까요? 프로듀서 씨, 혹시 그 사이에 러브라이카에 새 멤버가 추가된 건 아니겠죠?”

“물론이지.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알았을 테고.”

“그렇죠. 그럼 이 분은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 추측되네요. 단,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요. 시간이 너무 일러요. 이 분은 꽤 이른 시간부터 카나코 씨와 함께 있었어요.”

“그러게. 아직 영상이 시작된 지 30분도 안됐네.”

“심지어 영상이 끝날 때까지 이 분은 다시 CCTV에 잡히지 않았어요. 미나미 씨가 카나코 씨를 발견한 것이 오후 7시경이었으니 영상이 잡히지 않은 15분 사이에 방을 나왔다는 얘기가 되겠죠.”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면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거나 혹은 굉장히 주도면밀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고의든 아니든 정말 카나코 씨를 기절시켰다면 누가 들어오기 전에 그곳을 빠져 나오려 했을 거예요. 아마 카나코 씨와 한동안 같이 방에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겠죠. 왜 계속 같이 있던 사람에게 그런 심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뭐, 싸웠다던가 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요.”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는데”

프로듀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왜 CCTV 화면에 카나코는 잡히지 않았을까? 그 말은 그전부터 계속 사무실에 있었단 얘기가 되는데 카나코는 대체 혼자서 뭘 하고 있었을까?”

확실히 사무실은 혼자 앉아서 뭘 하기엔 꽤나 따분한 장소다. 카나코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충분히 의심해볼법 하다. 그러나 아리스는 프로듀서의 의문에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아리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바로 그거예요, 프로듀서 씨. 어쩌면 그게 이 사건의 원인일 지 모르죠.”

다음 날 오후, 한가한 사람들은 모두 사무실에 모여있었다. 각자 자유롭게 떠들며 휴식시간을 보내던 그 때, 아리스(aka 수사관)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을 가르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리스는 아무 말 없이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지시봉을 든 채 목을 가다듬더니.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어제 저녁,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사무실 내부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아리스는 정적에 싸인 사무실을 한번 쭉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미무라 카나코 씨의 후두부를 가격하여 하루 동안 의식을 잃게 만들었죠. 저, 타치바나 아리스는 몇 가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에 고개 돌리지 않기 위해 본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려 총력을 다했습니다.”

“아리스 쨩 묘하게 텐션 높아 보이지 않아?”

“아리스 쨩이 아니라 수사관 쨩이야.”

“타치…… 아오 흐름 좀 끊지 마세요! 아무튼 저는 어제 몇 가지 단서가 될 만한 정황을 발견, 취합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오오 불타오르는데!”

“그 말은 범인 녀석을 쳐잡았단 얘기임까?!”

“자자, 정숙해주세요. 이제 범인이 누군지 밝힐 거니까요.”

유키와 니나의 말을 시작으로 사무실 내의 반응이 점차 뜨거워졌다. 아리스는 평소대로의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지만 입가에 슬쩍 스치는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는 미처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을 몇 번 고른 후에 입을 열었다.

“범인은…….”

잠시 동안의 정적.

“당신이에요!”

아리스의 지시봉이 허공을 가르며 누군가를 향하더니 척 하고 멈췄다. 그곳에는……

“미치루 쨩?!”

아아…… 바로 이거야……. 아직 발표중인 만큼 아리스는 최고조에 달한 만족감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애썼다. 매번 후미카 씨가 빌려주던 추리 소설에서만 보던 로망이 실현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보고 계신가요 홈즈, 보고 계신가요 포와로. 이런 기분이군요…….

“어? 나 뭔가 나쁜 짓 했어?”

미치루는 후고후고거리며 열심히 빵을 먹는 와중에 자신이 지목당하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물었다. 아리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역시나 잡아 떼시는군요. 하지만 당신의 변명도 제 완벽한 논리 앞에선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어요. 자 그럼 설명하도록 하죠 흠흠.”

아리스는 가볍게 목을 푼 뒤 미나미에게 질문했다.

“미나미 씨, 어제 아나스타샤 씨, 미치루 씨와 함께 사무실 앞을 지나간 일이 있었죠?”

“응, 미치루는 사무실에 들어가고 우리는 레슨실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던 기억이…….”

미나미가 그 때를 떠올리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아리스는 그 답변을 듣고선 한층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렇겠죠. 미치루 씨는 카나코 씨가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그 때 두 분은 뭘 하고 계셨을 지 다들 감이 오시죠?”

“응 우리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빵……”

미치루가 끼어들려고 하자 아리스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미치루 씨 발언권은 조금 이따가 드릴게요. 네, 맞아요. 카나코 씨는 맛있는 걸 좋아하고 미치루 씨는 빵을 좋아하죠. 카나코 씨는 느긋하게 쉬며 저녁으로 빵을 드시고 계셨을 거예요. 그 때 마침 미치루 씨가 들어오신 거고요. 두 분은 말이 잘 통하니 같이 빵을 나눠먹으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셨겠죠.”

“응 맞아!”

“그게 오랫동안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은 이유가 되어요. 미치루 씨는 애초에 카나코 씨에게 해를 입히려 사무실을 찾은 게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던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난 거겠죠. 두 분이 싸우실 만한 일이라면, 역시 카나코 씨가 미치루 씨 몫까지 빵을 먹어버렸다던가? 뭐 그런 일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가요, 미치루 씨.”

미치루는 잠시 생각하더니 사실대로 얘기했다.

“음~ 그러고 보니 카나코 쨩이 내가 가장 먹고 싶었던 허니브레드를 가져가긴 했어.”

“역시 그런 이유였던 건가요……. 평소 미치루 씨가 얼마나 빵을 사랑하시는 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음을 추측해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아리스 쨩.”

미나미가 살짝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딱히 해를 입힐만한 도구가 없지 않아? 더군다나 카나코를 그런 상태로 만들 정도의 흉기라면…….”

“아, 미나미 씨 좋은 질문 감사드려요. 사실 이에 대한 답이 미치루 씨를 범인으로 확정 짓는 데에 좀 더 큰 도움을 주었어요.”

아리스는 중요한 얘기를 앞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흉기는 바로 빵이에요!”

“뭐?”

다들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반응까지 정말 완벽하다. 아리스는 당당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수사관 타치바나는 뭐든 알고 있으니까. 아리스는 자신이 사무실에서 채취한 증거 1호를 공개했다.

“이 봉투 안에 든 가루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어요. 이 가루는 빵가루예요. 그런데 단순히 두 분이서 빵을 먹으며 흘린 빵가루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독 단단한 느낌의 빵가루였죠. 이런 빵가루를 흘릴만한 빵이 뭐가 있을지 생각하다가 떠올린 게 있어요.”

“아! 혹시 그거야? 감 좋네 아리스 수사관 쨩~”

“타치바나입니다. 아무튼 그래요. 사무실에는 프레데리카 씨가 프랑스에서 사온 바게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프레데리카 씨의 바게트는 사무실에 방치된 채 이틀 간이나 실외에 보관되고 있었죠. 더군다나 그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만든 정통 바게트! 바게트가 얼마나 딱딱한지는 다들 아시죠?”

아리스는 모두가 끄덕일 타이밍을 주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특히 그런 종류의 바게트는 실온에 장기간, 그러니까 하루 정도만 방치해둬도 금새 딱딱해져요. 사람을 쳐서 기절시킬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미치루 씨다운 ‘도구’라는 점에서 참신함, 캐릭터 일관성 측면에서 10점 만점 드릴게요. 증거 인멸법도 간단해요. 먹어 치우면 되죠. 그러느라 사무실에서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고, 미나미 씨가 사무실에 오기 직전에 미치루 씨는 이미 자리를 뜬 거예요. 미나미 씨, 아나스타샤 씨 두 분과 함께 걸어오며 얘기를 나눴다면 그들이 언제 끝나서 돌아올지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근데 그거 사람을 기절시킬 정도로 딱딱하다고 하지 않았어……?”

가만히 듣고 있던 린이 물었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아리스.

“미치루 씨는 가능해요.”

“방금 유독 비논리적인 얘길 한 거 같은데…….”

사건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모든 진상은 밝혀졌다. 아리스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얘기를 이어갔다.

“정리하죠. 미치루 씨는 사무실에 들어와 카나코 씨와 빵을 먹었어요. 두 분은 얘기를 나누며 긴 시간 동안 빵을 먹었고, 그러던 중 카나코 씨가 허니브레드를 가져갔죠. 미치루 씨로서는 슬픈 일일 거예요. 허니브레드 같은 빵이 여러 개가 있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무니까요. 그 때, 미치루 씨 눈에 바게트가 들어온 거예요. 과연 정말 진심으로 후려쳤는지 장난으로 때리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나치게 단단해진 바게트는 카나코 씨의 뒤통수를 직격해 실신시킨 겁니다. 그런 뒤 미치루 씨는 흉기인 바게트를 먹어 치워 증거를 인멸하려 했어요. 빵가루는 그 과정에서 나온 거죠. 빵가루를 잔뜩 흘릴 정도로 급하게 먹었고, 시간에 쫓기느라 떨어진 빵가루들을 미처 어쩌지 못했던 거예요.”

다시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아리스는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이상입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미치루 씨?”

미치루는 아리스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와~ 멋지다! 아리스 쨩 뭔가 똑똑하고 대단해!”

뭔가 진상이 밝혀진 후 악역이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며 내뱉을 법한 대사지만 미치루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혐의를 인정한 것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 사건은 무사히 종결되었다. 아리스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하나라도 어긋날까 두려웠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스스로의 범행을 인정하시다니 다행이에요. 아무리 빵을 좋아하신다지만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어? 근데 난 잘못한 게 없는걸. 난 카나코 쨩이랑…… 아야야!”

땡글땡글한 눈으로 멀뚱히 아리스를 바라보며 뭐라뭐라 말하던 미치루가 누군가에 의해 귀를 잡히자 비명을 질렀다. 귀를 잡아당기고 있는 사람은 사나에였다.

“요 녀석! 그런 위험한 짓을 하면 어떡해! 지금 바로 프로듀서하고 트레이너 씨에게 데려갈 테니까 벌 받을 준비나 해!”

“아아아아~! 그치마안~!”

그렇게 용의자 오오하라 미치루는 연행되었다. 그 광경을보며 아리스는 속으로만 쉬던 한숨을 이제서야 겉으로 폭 내쉬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난 뒤의 사무실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이렇게 한 건 해결했네요.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항변하다니……. 반성하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군요. 미치루 씨는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겠죠.”

그렇게 타치바나 수사관의 수사노트는 마지막 장의 마지막 줄을 ‘해결’ 문구가 적힌 도장으로 장식한 채 덮이게 되었다.

그날 저녁.

“일어나셨네요 카나코 씨, 몸은 괜찮으신가요?”

“응, 아리스 쨩 안녕. 몸은 괜찮아, 찾아와 줘서 고마워~”

이곳은 346프로덕션의 의무실. 아리스는 카나코가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담당 수사관으로서 곧장 그를 찾았다.

“어라? 그런데 저쪽 침대에 누워있는 건 누구야? 어? 미야코 쨩?”

“앗 음, 그런 것 같네요. 어디 아프신 걸까요. 그건 그렇고 회복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지만 염치불고하고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아, 응, 어떤 게 궁금해?”

카나코는 반대편 침대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지만 아리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혹시 혼절하시기 전에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가요? 이미 제가 카나코 씨를 위해 모든 사실을 밝혀내긴 했지만, 당사자의 증언도 확실히 들어두는 편이 좋기에…….”

“음~ 글쎄, 기억이 좀 희미하긴 한데…….”

단편적인 기억일지라도 들어둘 필요가 있다.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패드를 열며 질문했다.

“일단 미치루 씨와 계셨던 건 맞죠? 미치루 씨가 카나코 씨에게 그런 못된 짓을 하게 된 상세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리스의 질문에 카나코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에? 미치루 쨩하고 같이 있었던 건 맞지만 딱히 못된 짓은 하지 않았어. 그리고 미치루 쨩은 내가 쓰러지기 전에 집에 가보겠다고 하고 나갔는데?”

“……예?”

이번엔 아리스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카나코를 바라봤다. 카나코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미치루하고 먹었던 그 빵 정말 맛있었지~ 둘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 덕분에 심심하지도 않았고. 누가 갔다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프로듀서겠지?”

아리스는 한층 더 당황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카나코 씨나 미치루 씨가 빵을 갖고 와서 먹은 게 아니라고? 즉, 본인들 몫의 빵이 아니었단 얘기인가? 프로듀서가 빵을 준비해뒀다는 말도 들어본 일이 없다.

“아 참, 그리고 의식을 잃기 전에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야. 창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노랫소리가 들리는데 흥……흐흥? 이상한 멜로디였어. 깜짝 놀라서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더라고. 기억은 그쯤에서 끊, 헉?”

푝.

카나코의 목덜미에 정체불명의 작은 주사기가 꽂혔다. 아리스는 발사기를 든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카나코의 목덜미를 정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된 거야. 모든 건 이미 지나간 것. 사건은 멋지게 해결되었다. 바로 이 수사관 타치바

“으음……. 여기 어디야? 프로듀서? 사건은?”

“꺄아아아악!”

푝.

아리스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된 거야. 모든 건 이미 지나간 것. 사건은 멋지게 해결되었다. 바로 이 수사관 타치바나의 활약에 힘입어.

오늘도 내일도 타치바나(aka 수사관)가 있기에 346프로덕션의 정의는 수호된다. 또 어떤 사건이 그의 앞에 나타날까. 앞으로도 그의 활약은 계속될 것이다- (석양을 배경으로 걸어감) (웅장한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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