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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하]사슬 끝 - 전편

댓글: 5 / 조회: 1755 / 추천: 8



본문 - 04-15, 2016 01:05에 작성됨.

안녕하세요, 카와즈입니다. 또 뭔가를 가져왔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주의! 이 소설에는 보는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쁠 수 있는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치하야의 양친이 이혼했다고 한다.

 드라마 같다.

 처음에 하루카는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로 느꼈다.

 하루카네 가족은 사이가 좋다.

 가끔 약간의 무신경함으로 화를 내서 싸울 때는 있어도, 그건 마음속 어딘가에서 원래 관계에서 벗어날 리가 없다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카는 양친의 이혼이란 것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카는 필사적으로 치하야에 대한 것을 생각했다.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치하야는 낙담해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을까.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그 정도였다.

 하루카는 이럴 때 친구나 가족에게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고 싶어진다. 하지만 치하야는 그 가족과의 관계가 발단이었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어떻게든 하려고 하지 않을까.

 치하야에게, 마음은 이해한다느니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부주의한 위로의 말은 오히려 치하야를 상처입힐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루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적다는 것을 답답하게 여겼다.

 뭐든 좋으니, 치하야의 힘이 되고 싶다.

 뭐든 좋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의지해줬으면 좋겠다.

 치하야는 뭐든지 자기 혼자서 끌어안으니까 걱정이었다.

 하루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하야의 가정 환경이 변했다고 해서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무척 실례되는 일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치하야는 유닛의 파트너고,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절대로 그것은 바뀌어선 안 된다.

 그러니 파트너인 것,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 정도는 최선을 다해서 하자.

 그것만을 강하게 강하게 생각했다.



 -Side : 치하야-

 하루카가 빈번하게 치하야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치하야의 양친이 이혼하고 난 뒤의 일이다. 자산 정리 등으로, 이혼이 성립된 뒤에도 치하야의 가족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길이 갈라진 양친은 각각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고 있다.

 그런 자질구레한 얘기를 정리할 틈도 없이 타인이 되고 싶었던 양친의 심정과, 타인이 되어 버리는 편이 제삼자가 보기에는 가족답게 보인다는 지금 상황에, 치하야는 비꼬는 듯한 감정을 맛보고 마음속으로 씁쓸한 것을 느낀다.

 마음속 어딘가에선 가족이 끝나 버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예를 들어 치하야는 자신이 더욱 노래를 잘 부르게 되면, 이혼 같은 건 농담이었던 것처럼 집안에서 날뛰는 거친 파도가 잠잠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진작에 찢겨서 파도 사이로 사라져 버린 인연을 환시하며 기대를 멈출 수 없다.

 그런 치하야의 마음속을 알 리도 없이, 양친은 새로운 생활의 준비를 진행한다.

 화내는 목소리, 부서지는 소리, 감정적인 외침. 그런 것들 없이 조용히 진행되어 가는 가족간의 대화에 끼어, 8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

 동생의 장례식에서 맛본 분위기다.

 이젠 뒤집을 방법이 없는 것에 대해서 조용히 대처하려는 분위기다.

 8년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동생의 장례식이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8년간 질리지도 않고 반복된 가족내의 소란은 동생을 떠나보내기 위해 필요한 의식은 아니었을까. 그런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치하야의 친권은 어머니가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은 이혼 서류에 친권자를 적지 않으면 이혼할 수조차 없기에 편의적으로 정한 것이었다.

 확실한 표현을 하진 않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치하야와 사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런 말은 얘기하는 중에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

 그것을 들으면서 치하야는 멍하니, 이 사람들은 끝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있으면 동생의 장례식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사이가 나빠도 오래 같이 산 가족이었다. 마음속이 어딘가 비쳐 보이는 가운데 입맛에 맞는 겉치레로 덧칠된 이야기를 계속하는 양친을 보고 있자, 포기가 조용히 마음을 채워 간다.

 치하야는 양친에게 혼자서 사는 것을 제안했다.

 다행히도 아이돌 활동도 궤도에 올라, 돈만큼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사무소까지 40분 걸리는 위치에 방음 설비가 있는 2LDK 방을 찾고 나자, 치하야는 이제 거의 집을 나가는 데에 저항이 없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양친에게 관리를 맡겨 두었던 돈을 개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부탁하고, 임대 물건의 보증인을 서 달라고 하고, 치하야는 아주 간단히 양친 손 안에서 뛰쳐나왔다.

 그걸 어딘가 안심한 듯한 모습으로 바라보던 양친을, 치하야는 슬프게 생각했다.

 이렇게 됐을 때까지도, 이젠 뭘 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기대가 치하야의 가슴에 응어리져 연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양친의 얼굴을 봤을 때, 그것이 숯불에 모래를 끼얹듯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아아, 끝났구나.

 끝나고 말았다.

 치하야는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한다.

 치하야가 혼자 살기 시작한 것은 프로듀서와 현재 유닛을 이루고 있는 하루카에게는 전했다. 사무소에 주소 변경을 알려야 하기도 했고, 이 둘에겐 하는 김에 전해 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는 과연 어른이었기 때문일까. 양친의 이혼 이야기를 같이 이야기하자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 치하야를 조용히 위로해 주었다.

 하루카는 이혼 이야기를 듣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감정이 북받치면 또 울 것 같았기에 애써 담담히 보고하는 데에 그쳤다. 뭔가를 바쁘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루카의 시선이 이리저리 헤메이고 있다. 치하야는 자꾸 움직이는 하루카의 눈을 보면서 어쩐지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울지 않으려고 마음을 진정시키던 반동일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신의 양친의 이혼과 하루카는 직접 관계가 있는 게 아니니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그래도 말하지 못하고, 말을 필사적으로 찾으려 반쯤 벌린 입을 어물어물 움직이는 하루카를 보고 있자니, 치하야는 가슴이 천천히 따뜻해졌다.

 얼빠진 표정이 될 정도로 필사적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는 친구에게 감사를 했다.

 다음번에 꼭 새 집에 놀러 오라고 치하야가 말하자, 하루카는 힘차게 끄덕여 주었다.

 그로부터 하루카는 빈번하게 치하야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서로 오프 날이 맞으면, 하루카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치하야의 집을 찾아왔다.

 하루카가 만들어 주는 점심은 맛있었다.

 하루카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무척 평온했다.

 요즘은 잠을 푹 자지 못해서 얕은 잠을 잤는데, 누군가가 함께 있어 준다는 사실은 치하야를 어느 정도 안심시켰다.

 몸이 좋지 않더라도 둘이서라면 유닛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양친의 이혼으로부터, 치하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있잖아, 치하야 짱. 이거 써 봐."

 평소처럼 치하야의 집을 찾아온 하루카는, 그렇게 말하며 가져온 가방에서 머리띠를 꺼냈다.

 머리띠엔 황토색 털이 복슬복슬한 귀가 한 쌍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귀 자체는 본 적이 있다. 골든 리트리버의 귀와 꼭 닮았다.

 "싫어."

 치하야는 한마디로 딱 잘랐다.

 "그러지 말고."

 말하면서 강아지귀 머리띠를 쓱 내밀어 온다.

 "왜 그런 걸 갖고 있는 거야."

 "노래를 위해서야!"

 "너말야……노래를 위해서라고 하면 뭐든지 받아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진짜로. 가끔은 동물의 기분이 돼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 안 해?"

 "안 해."

 "에~ 괜찮잖아~."

 "안 괜찮아."

 무엇보다도, 아까부터 하루카의 표정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뒷일은 생각 안 하고 사 온 강아지귀 머리띠를 내게 씌우고 놀기 위해, 노래를 위해서란 이유를 날조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있지 있지, 이거 쓰고, 그 다음엔 멍멍이말밖에 하면 안 되는 트레이닝이라구?"

 "뭐야, 그 바보같은 트레이닝은."

 "그 상태로 나랑 얘기를 하는 거야."

 "알았다. 내 인내력을 시험하는 트레이닝인 거지?"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자 하루카는 시선을 좌우로 왔다갔다 하다가, 관자놀이에 검지를 대고 나를 다시 바라본다.

 "멍이나 끄응밖에 못 쓰면 있지, 말 말고 다른 것에 감정을 담는 게 중요해진다구."

 "솔직히 아무래도 좋은데."

 "봐봐, 치하야 짱 말야, 가사에 좀 더 감정을 담을 수 없을까 하고 여러가지 시험해 보고 있다고 요전에 그랬잖아?"

 "그러니까, 그…."

 그렇게 말하고 치하야는 강아지귀 머리띠를 가리킨다.

 "강아지귀를 쓰고, 말에 의지하지 않고 감정을 담는 연습을 한다고?"

 하루카는 자기 뜻이 전해져 만족한다는 듯이 만면의 웃음으로 끄덕여 답했다.

 "역시 치하야 짱! 바로 그거야. 응? 좋은 생각이지?"

 "바보 아냐?"

 "엄격한 걸……."

 "그야 하루카니까."

 "기쁜 걸."

 "일어서는 거 빠르구나."

 "에헤헤……하루카 상은 그게 장점이니까요!"

 하루카는 방긋 웃었다.

 치하야는 이 표정에 약했다. 반격을 부드럽게 감싸 봉쇄해 버린다.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카는 귀여워서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기, 치하야 짱, 부탁해! 조금만! 1분이면 되니까!"

 "1분이라도 싫은 건 싫어."

 "그럼 10분만."

 "왜 늘어나는데."

 "30분! 빨리 안 하면 점점 늘어날 거야~"

 "내가 쓰는 건 결정된 거구나……."

 "1시간!"

 "알았어! 알았어, 하루카. 1분만이야?"

 "2시간!"

 "그건 이제 됐으니까……. 10분만이야?"

 "조금만 더!"

 "그럼, 30분?"

 "으음, 첫날이고, 그정도로 하기로 할까."

 "2일째가 있다는 듯한 말투인데."

 "기, 기분 탓이야. 그럼 곧바로 써 봐."

 그렇게 말하고 넘겨진 강아지귀 머리띠를, 치하야는 오른손으로 잡고 바라본다.

 복슬복슬한 귀는 부드럽게 늘어져 그 금빛 갈색 털을 빛내고 있다. 머리띠 자체의 색은 군청이다. 치하야의 머리에 쓰면 정말로 귀가 달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후우, 한숨을 쉬고, 유리창을 마주본다. 배경을 투과해 비친 자신과 마주보고, 머리에 머리띠를 올린다.

 하루카는 치하야가 싫어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번 일도 사무소에서 당했으면 단호히 거절했겠지만, 믿을 수 있는 하루카와 둘이서 집에서라면 그렇게까지 싫지만은 않다. 단지 부끄러울 뿐이다.

 하루카는 뭔가, 그 근처의 경계를 찌르고 들어오는 게 능숙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의식하고 하는 게 아니겠지만, 그건 가끔 의식하고 하는 것보다도 경우가 나쁘다.

 "이쪽 봐봐."

 하루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이거면 됐어?"

 "멍, 해야지?"

 순진한 얼굴로 정정하는 하루카를 올려다보는 눈빛으로 노려본다.

 하루카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쪽을 보고 있다.

 치하야가 멍멍이말로 대답을 하는 걸 계속 기다릴 셈인 것 같다.

 치하야는 한 순간 발밑에 시선을 떨구고 "큿……."하고 중얼거린다.

 중얼거리지만 하루카의 부드러운 압력에 굴복하고,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머……멍……."

 "감정이 안 담겼는걸."

 심하게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하루카에게, 개답게 물어 줄까 생각했지만 그만둔다.

 "멍!멍!"

 "으음. 30점?"

 "컹!"

 말하면서 하루카에게 살짝 뛰어들어 봤다.

 "와, 느낌 좋은데. 잘도 이런 걸 시켰겠다! 하는 기분이 전해져 와."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어, 뭐야아? 왠지 개답지 않은 말이 들렸는데에~."

 "그거 멍! 처음부터 알고 멍!"

 "좀 너무 억지스러운걸."

 "으으……."

 왜인지 확 피로가 몰려온다.

 그런 치하야를 곁눈질하면서, 일단 강아지귀를 씌운 것으로 어느 정도의 만족을 얻은 듯한 하루카는, 가져온 가방을 열어 빨간 깅엄 체크 무늬 종이봉투를 꺼낸다.

 치하야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수제 과자일 거라고 예상을 한다.

 "멍?"

 "어, 이거? 오늘은 쿠키야."

 "멍……어, 그게. 차……."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치하야는 부엌 싱크대 앞까지 걸어가 멍멍 하고 하루카를 불렀다.

 "잘 했어요."

 뒤에서 따라온 치하야는 그 모습을 보고 치하야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는다.

 칭찬받았다.

 묘하게 기쁘다.

 "그럼 차 내올 테니까, 잠깐 소파에서 기다려."

 "멍……."

 평소엔 치하야가 차를 끓였다. 하루카는 언제나 과자를 만들어 오고, 상당한 빈도로 점심을 만들어 준다. 차 정도는 자기가 끓이지 않으면 미안하다.

 "지금 치하야 짱은 강아지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말하면서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저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나왔다.

 왠지 부끄러워서 치하야는 맥없이 거실로 돌아가, 미색 가죽 소파에 앉았다.

 하루카 나름의 배려일까.

 양친이 이혼했단 얘기를 하고 나서 하루카는 가끔 묘하게 친절해진다.

 완전히 알고 있는 남의 집에서 재빠르게 홍차를 끓이는 하루카를 보며, 치하야는 멍하니 생각한다. 이전의 자신은 배려를 받거나 하면 책임을 느끼고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배려를 받는 건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라며.

 아니, 지금도 예를 들어 프로듀서가 지나치게 배려를 한다면 답답해질 것이다. 그렇게 자신은 미덥지 못하냐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왜 하루카 상대라면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좋아지는 것일까.

 "맞다, 치하야 짱."

 정리되지 않는 사고를 찢듯이 하루카가 말을 걸어 온다.

 "멍?"

 "오늘 쿠키, 먹기 전에 손 같은 거 할 거야."

 하루카 상대라면 자존심 같은 게 아무래도 좋아지는 건, 하루카가 바보라 그런 게 아닐까.

 "멍……."

 "으! 지금 나 바보 취급하지 않았어?"

 예리하다. 하지만 왠지 이제 아무래도 좋아져 버렸다. 입가에는 자연히 웃음이 떠올랐다.

 "멍멍."

 "어, 그런 걸까. 기분 탓일까……."

 어느새 멍멍이말에도 익숙해졌다. 가끔은 하루카에게 맞춰서 바보가 되는 것도 재밌을지 모른다. 치하야는 웃으면서 차가 완성되는 것을 기다렸다.



 "치하야 짱, 손!"

 치하야는 솔직하게, 내밀어진 하루카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잘 했어요~. 장한 걸~. 자, 앙~."

 하루카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예쁘게 놓인 쿠키를 하나 집어 치하야의 눈앞에 내밀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하루카 손에서 직접 먹는 걸 거부하던 치하야였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동안 점점 수치심이 마비되고 있었다. 내밀어지는 대로 쿠키를 입으로 받아서 먹기 시작한다.

 오늘 쿠키는 코코아 반죽과 바닐라 반죽이 체크 무늬를 이루는 것과, 오렌지 향이 나는 두 종류였다. 지금 받은 것은 체크 무늬 쪽. 입에 넣어서 가볍게 힘을 주면 부드럽게 부서져, 엷은 코코아 향의 달콤함과 바닐라 향기가 퍼진다.

 변함없이 하루카가 만드는 과자는 맛있다.

 "멍."

 하나 더, 하고 하루카에게 말한다.

 "다음엔 어느 쪽이 좋아?"

 "끄응."

 "체크 무늬 쪽 말이지. 이쪽이 좋았구나~."

 확실히 아까부터, 치하야는 오렌지 향 쪽 보다 체크 무늬 쪽을 계속 조르고 있다.

 "자, 치하야 짱, 손!"

 하루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척 올린다.

 "잘 했어요. 자, 앙~."

 이미 처음에 약속했던 30분은 지나 있었지만, 치하야는 눈치채지 못한 척을 하고 강아지 놀이를 계속하고 있다.

 수치심과 함께 자존심이란 갑옷이 점점 벗겨지자, 손 하는 걸 칭찬받는 것만으로 신기하게도 기뻐서 참을수가 없다. 이런 간단한 일은 할 수 있는 게 당연하니 칭찬받을 것도 없다고 퇴짜놓는 것도 바보 같다.

 하루카의 손에서 입으로 쿠키를 받아 우물우물 씹고,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치하야는 기묘한 충실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런 걸 계속하고 있었더니 쿠키는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하루카가 가져온 양은 많지만 절반 이상은 패킹이 달린 넓은 병 안에 넣어서 찬장에 있다. 하루카가 올 때마다 과자를 보충하는 탓에 요즘엔 이런 저런 과자가 찬장이나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상태였다.

 썼던 접시를 재빠르게 씻고 소파로 돌아온 하루카는 미소지으며 물었다.

 "맛있었어?"

 "멍!"

 "오렌지 쪽은 뭐가 안 됐던 거지."

 "끄응……멍, 멍."

 치하야는 제스처를 섞어서 어떻게든 전달하려고 애쓴다.

 "아아, 너무 달았구나. 으음, 오렌지 향으로 무마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웡."

 "안 됐구나. 감각 날카로운걸."

 "멍! 웡!"

 "전부 좋아한다고 그래도, 역시 가능한 한은 취향에 맞추고 싶고."

 "멍."

 "에헤헤……그런가. 고마워."

 하루카가 치하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칭찬받으면 기쁘다. 쓰다듬 받으면 기분 좋다.

 왠지 등에 오싹오싹한 감각이 기어오른다. 추위를 참으려고 몸을 움츠릴 때, 그래도 침입해 오는 냉기와 아주 닮았다.

 치하야는 눈을 감고 한동안 하루카가 쓰다듬는 느낌을 즐긴다.

 잠깐 그러고 있자 치하야에게 장난기가 싹텄다.

 반쯤 마비된 수치심으로, 눈을 감은 채로 하루카의 무릎에 누워 뒹굴거린다.

 수치심은 마비되어 있어도 늘 냉정한 머리 한 부분에서는 하루카라면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계산하고 한 일이었다.

 누운 직후, 냉정했던 건 정말로 머리 일부에 불과했단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꽤 기세 좋게 엎어진 치하야의 다리가 테이블을 쳐서, 아직 내용물이 남아 있던 티컵을 쓰러뜨린다. 손님도 아니고 하는 친밀함이 화를 불러, 컵받침을 쓰지 않았기에 컵에서 넘친 홍차가 치하야의 다리를 적시고 러그 매트에 쏟아졌다.

 홍차는 미지근해져 있어서 화상의 위험은 없었지만 다리를 적시는 감촉에 치하야는 눈을 뜨고, 하루카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있는 얼빠진 자세로 상태를 확인하는 꼴이 되었다.

 "아, 어,"

 소리가 새어나온다. 당황한다.

 평소와는 다른 일을 하자마자 실수하고 말았다. 평소였으면 절대로 이런 일은 안 했을 것이다. 하루카의 장난에 어울려 버린 탓이다.

 왜 이렇게 됐지.

 어딘가에 눌러 두었을 수치심이 초조함과 함께 솟아올라, 치하야는 홍차 방울을 떨어뜨리는 채로 굳어 버렸다.

 어떡하면 좋을지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필사적으로 질타하고 있으려니, 하루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 곤란한 멍멍이네. 갑자기 엉겨붙고."

 말하면서 치하야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쓰다듬듯이 두드리고, 어깨 아래에 손을 넣어서 몸을 받치고 다시 앉은 자세로 되돌린다. 하루카는 가볍게 몸을 일으켜 테이블 구석에 놓여 있던 행주로, 재빠르게 테이블 위에 쏟아진 홍차를 닦아내고, 치하야의 다리를 닦고, 러그 매트를 가볍게 두드린다.

 하루카의 모습을 보면서 치하야는 이 다음에 어떡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치하야의 사고를 알 리가 없는 하루카는, 세면장으로 이동해 행주를 빨고 짜서 다시 한 번 러그 매트를 닦으러 돌아왔다.

 "하루카, 그……미안해."

 "으음, 신경 쓰지 마~."

 태평하게 대답하는 사이에도 하루카의 손은 계속 움직여, 살짝 짠 행주로 러그 매트에 물을 먹인 다음 키친 타올로 두드려 수분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것을 반복한다.

 "아마 이걸로 얼룩은 안 남을 거야."

 "카펫이 아니라, 아까 장난친 거."

 "신경 안 써. 내가 시작한 거고."

 한동안 툭 툭 러그 매트를 두드려 홍차를 빨아들이던 하루카였지만, 대강 정리되었는지 키친 타올을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다시 소파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사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치하야에게, 하루카는 다리 위를 통통 두드리는 동작을 했다.

 "뭐야?"

 "뭐냐니, 무릎베개. 하고 싶었던 거지?"

 그건 무릎베개를 해도 된다는 동작이었나. 그보다, 새삼 그런 행동을 하면 조금 전의 자신의 행동이 떠올라서 치하야는 괜히 부끄러워져 버린다.

 "아니……아까 그건, 그 왜, 강아지다운 장난을 하려고,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게 아니라, 다시 하자거나, 그런 게……"

 "그럼 다시 한 번 강아지 모드로 돌아가 버려라."

 "그런 게 아니라니까!"

 "괜찮잖아.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마. 자."

 하루카는 말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통통 허벅지 위를 두드렸다.

 "아아, 정말. 그……멍."

 "에헤헤……이리 와~"

 "멍."

 될대로 되라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치하야는 다시 하루카의 무릎베개에 머리를 맡긴다.

 소파에 앉은 상태로 상반신을 넘어뜨린 모양이 되니 조금 불편했지만, 그 좁은 느낌이 어쩐지 조금 재밌었다.

 "정말이지, 장난꾸러기 멍멍이네. 못됐어, 못됐어."

 말과는 정반대로 하루카의 손은 치하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치하야는 혼나는 것으로 자신을 긍정받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기묘한 감각을 맛본다.

 하루카에게 쓰다듬 받으면 기분 좋다. 본인에게 말하면 화낼 것 같지만, 어머니란 이런 느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은 전혀 다른 거란 묘한 감개가 인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는 화내는 것밖에 없어져 있었다. 상냥하게 혼낸다는 건 첫기억 속에서조차 없다. 하루카는 분명 무조건으로 자신을 긍정해 준다. 갑자기 울 것 같아져서, 치하야는 끄응 하고 소리를 내고 눈가를 손으로 문지르는 걸로 얼버무렸다.

 어쩌면 얼버무린 걸 하루카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눈물이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던 치하야는, 며칠간 계속된 얕은 잠 때문인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깨닫고 나니 의식은 잠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치하야가 눈을 뜨자 1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하루카는 치하야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 머리를 쓰다듬고 머리칼을 빗질해 주었단 것 같다.

 "너무 기분 좋은 것처럼 자서, 깨울 수가 없어졌어."

 이미 치하야가 일어났는데도 변함없이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길 계속하던 하루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하루카의 무릎베개에서 일어난 뒤, 치하야는 왜인지 괜히 부끄러워서 강아지귀 머리띠를 벗고 강아지 놀이를 끝낸다. 하루카는 어딘가 만족한 듯한, 조금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다음은 평소와 같이 두서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샌가 시간은 지나간다. 어느새 하루카는 귀로에 오르지 않으면 곤란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하루카를 역으로 배웅하는 길에, 치하야는 고맙다고 말했다.

 하루카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고맙긴 뭘, 하고 대답해 주었다.

 집에 돌아가면서 치하야는 혼자서 오늘 일을 반추한다.

 하루카가 빗질해 준 머리를 쓸어올린다.

 하루카의 부드러운 손의 감촉과 자신을 감싸준 따뜻함. 참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와 약간의 죄책감에 다시 한 번 손을 댄다.

 치하야는 몸을 움찔 떨었다.

 하루카가 쓰다듬어 줄 때마다 느꼈던, 등줄기를 달리는 한기와 같은 감각이 되살아난다.

 처음 느낀 감각이라 처리하지 못하고 있엇지만, 냉정해지고 나서 되돌이켜 보니 그것은 무척 기분 좋았던 것이란 걸 알았다.

 그렇다, 기분이 좋았다.

 다시금 자각하자 뭔가 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한 발을 내딛고 만 듯한 느낌이 들어서, 치하야는 이번에야말로 몸을 떨었다.



   @@@



 다음에 하루카가 집에 왔을 때, 치하야는 강아지귀 머리띠를 소파 위에 꺼내 두었다.

 "아, 요전의 그거구나."

 하루카가 발견하는 건 확실하다 치고, 그 다음 반응은 거의 도박이었다.

 "요전에 치하야 짱, 귀여웠지~."

 "떠올리지 마. 이상한 모습을 보여 버렸었지."

 내심으론 기대로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참을 수 있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이 서툴러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관계를 이룬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하루카의 행동 패턴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치하야는 그것에 걸었다.

 "정말, 그럼 이거 넣어 뒀음 됐잖아."

 그 말을 듣고 치하야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건 그 말대로였다. 그리고 자신도 알고 있으면서 거기 둔 것이다.

 "그건 그……하루카가 마음에 든 것 같아서. 집에 두면 부끄러우니까, 가져가라고 하려고 생각했다고 할까, 아, 그게, 아니야. 하루카한테 받은 게 싫은 게 아니고, 확실히 감정만으로 표현하는 것의 계기는 됐다고 생각하고, 단지 평소에 얘기하고 있으면 금방 시간이 지나 버리니까 까먹지 않으려고 눈에 띄는 데에 둬야지 생각했을 뿐이라고 할까……. 그래, 까먹지 않으려고. 나 동시에 몇 개씩이나 못 하니까 말야, 그러니까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움직이는 게 제일 편하단 얘기인데……."

 당황하고 있는 탓인지 평소보다도 입이 돌아간다. 스스로도 수상하다고 생각한다.

 "난 치하야 짱한테 선물한 거였는데."

 "그, 받아도 그러니까, 부끄럽대도."

 초조하긴 했지만 하루카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변해 가는 걸 보고, 치하야는 이제 조금 남았다고 작게 생각했다.

 하루카는 요즘 치하야를 곤란하게 만드는 걸 즐기는 데가 있다. 그렇다면 당황하면서 강아지귀 머리띠를 돌려주려고 하면 반대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잘 된다면 또 나에게 강아지귀 머리띠를 쓰라고 권해 주지 않을까.

 내심 두근거리면서, 진심 반 기대 반인 초조함으로 하루카의 말을 기다린다.

 "그러지 말고, 또 한 번 써 봐봐."

 왔다.

 "알았어."

 내기에 이겼다.

 "쓸게."

 하루카의 입으로 이걸 쓰라고 말해 줬으면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면죄부다. 치하야는 직접 이것을 쓸 수는 없다.

 마지막에 남은 조그마한 자존심이었다.

 "어?"

 하루카는 의외란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치하야를 본다.

 치하야는 기쁨과 수치로 조금 붉은 기가 도는 뺨이 보이지 않도록, 재빠르게 강아지귀 머리띠를 집고 유리창을 마주보고, 살짝 머리에 썼다.

 엷은 갈색의 처진 귀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치하야의 머리에서 옆으로 축 늘어져, 짙은 남색 머리칼과 콘트라스트를 눈에 띄게 했다.

 "치하야 짜……."

 "멍?"

 말하면서 하루카를 돌아본다.

 왜 치하야가 솔직하게 장난에 굴한 것인지 모르는 것 같다.

 입가에 손을 대고 미묘한 표정을 짓는 하루카를 향해 치하야는 다가간다.

 그리고 하루카의 소매를 가볍게 잡아 끌어, 그 손을 치하야의 목 언저리로 가져갔다.

 "끄응."

 어리광 부리듯이 올려다보며 우는 치하야에게 하루카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듯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눈이 마주치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치하야는 장난을 되돌려줘서 한방 먹였다는 웃음이 아니라, 하루카의 반응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하야는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루카가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어떡해야 좋을지 생각해 두지 않았다. 치하야가 내기를 했던 건 하루카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강아지귀 머리띠를 쓰도록 권해 주는 데까지였다. 그 다음 일은 내기조차 아니다. 자신에게서 내 줄 것이 더이상 없으니, 내기는 어떻게라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양친의 이혼으로 치하야가 입은 상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깊은 곳에 났다. 내출혈 같은 것이다. 어렴풋한 아픔과 함께 상처 근처부터 마음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밖에서 보이지 않는 동안 주위 조직을 좀먹어 간다.

 스스로가 거기에 상처가 났음을 알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피가 알기 쉽게 흘러나올 때까지는 알아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약한 것이라 잘라내 온 치하야가 남에게 의지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표출시키기 위한 기구가 필요했다. 그것이 저번에 우연히 손에 들어온 강아지귀 머리띠이며, 그 상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어리광부리게 해 줄 지도 모르는 하루카의 존재였다.

 이 상태가 될 때까지 치하야가 걸 수 있는 자존심은 전부 테이블 위에 쌓아올렸다. 다음은 꼴사납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남은 아주 약간의 자존심을 버리고 도움을 바라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치하야가 가져갔던 하루카의 손이 움직인다.

 치하야는 구속을 약하게 하고 하루카의 손이 가는 방향을 주시한다.

 하루카는 손을 움직이면서 입을 열었다.

 "치하야 짱, 무슨 일이야?"

 한 순간 거절할 것처럼 물러난 하루카의 손은 망설이듯이 도중에 멈추어, 다시 돌아와서 치하야의 뺨에 부드럽게 겹쳐졌다.

 딱딱했던 하루카의 표정이 확 풀어진다.

 "오늘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받아 들여, 준 것일까.

 아니, 그런 건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반응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치하야는 기쁨이 솟아오르는 대로 만면의 웃음으로 하루카에게 답했다.

 "멍, 멍!"



 그날 하루 종일을 써서, 치하야는 마음껏 하루카에게 어리광을 피웠다.

 밥을 만들려고 부엌에 선 하루카에게 달라붙어서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루카는

 "정말, 어쩔 수 없다니까……."

 하면서도 치하야의 머리를 쓰다듬고, 소파에서 얌전히 있으라고 부드럽게 재촉하고서 식사를 만든다.

 방해를 해도 화내지 않는 것이, 더 놀아 달라고 고집을 부릴 수 있는 것이 신선했다.

 뭘 해도 상냥하게 미소지어 주는 것이 기뻤다.

 쓰다듬어 달라고 호소하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뻗어 주는 것에 울 것만 같았다.

 이런 따뜻함은 모른다.

 치하야는 행복했다.

 하루카를 역까지 바래다 줄 때 오늘도 고맙다고 치하야가 말하자, '치하야 짱 변태' 하고 부끄러운 듯한 말을 들었다.

 고맙다고 다시 한 번 말하니 하루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맙긴 뭘, 하고 대답했다.

 그날 치하야는 오랜만에 푹 잘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눈을 뜨고 나서 일과인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 어제까지와 비교해서 머리가 맑개 개고 막히는 데 없이 깨끗하게 움직이는 것을 자각했다.

 불충분한 수면은 먼지처럼 매일 매일 치하야의 위에 쌓여,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숨어들어 행동을 저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지금까지 그걸 깨닫지 못한 것이 무시무시했다.

 오늘 레슨에서 만나면 하루카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자고 생각하면서 아침의 윗몸일으키기 100번을 해치운다.

 치하야는 양친이 이혼하고 나서 처음일 지도 모르는 맑은 기분으로 그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



 치하야의 맑은 기분은 며칠 정도밖에 이어지지 않았다.

 하루카와의 강아지 놀이로부터 날짜가 지날수록 이불에 눕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반비례하듯이 잠은 짧고 얕게, 밤중에 몇 번쯤 눈을 뜨게 되어 간다.

 한 번 잠이 깨면 다시 잠에 들 때까지 뒤척거리길 반복하는 꼴이 된다.

 그럴 때 눈을 감고 잠의 전조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하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루카에게 마음껏 어리광 부렸던 며칠 전 생각뿐이다.

 분명 한 번 더 강아지 놀이를 하면 편안한 잠이 찾아올 것이다. 요즘 눈 밑의 다크서클은 컨실러로 감추고는 있지만, 치하야의 어설픈 화장 같은 건 하루카 앞에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늦게까지 노래 레슨을 하고 있다고 얼버무리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프로듀서에게 들키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하루카가 또 집에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 그 강아지귀 머리띠를 쓰고 달라붙고 싶다.

 결국 잠들지 못하게 된 치하야는 침대 옆에 내려와 나이트테이블에 손을 뻗는다.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서랍을 열고 안을 뒤진다.

 과연 그것은 간단히 손끝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복슬복슬한 털 덩어리를 더듬어 가자 뿌리 부분에 딱딱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있다.

 강아지귀 머리띠다.

 그것을 꺼내 머리에 쓴다.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멍."

 쓸쓸해.

 중얼거린 울음소리는 어둠에 빨려들어가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다음에 하루카가 집에 왔을 때, 치하야는 개목걸이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지나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 행위를 강화하면 숙면할 수 있는 날이 오래 계속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치다는 상식에 부끄러워하는 건 치하야와 하루카 둘 뿐인 집 안에선 새삼스러운 건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다.

 수면부족으로 늘 얇은 막이 씌인 것 같은 일상도 이 명안이 나오는 데에 한 몫을 했다.

 하루카를 집에 들이고 거실을 지날 때 소파 위에 놓인 개목걸이와 강아지귀 머리띠가 눈에 들어온 것이겠지. 하루카는 그것과 치하야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게……저거, 뭐야?"

 "응, 개목걸이인데. 몰라? 개목걸이."

 "치하야 짱! 내가 묻고 있는 건 그게 아니라…."

 "개한테는 개목걸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루카는 내게서 눈을 돌린 다음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실내견은, 개목걸이 안 한대."

 바닥의 모양을 주시하면서 하루카가 말한다.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어머, 그런 거야? 나도 모르게 사 버렸는데."

 소용 없게 됐을까, 하고 말 밖에 담는다.

 "그래……안 한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렇다구……."

 "있잖아, 언제까지고 서 있지 말고. 앉자."

 치하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루카의 손을 잡고 소파 앞까지 데려갔다. 눈을 내리깐 채로 하루카는 저항하지 않고 손을 당기면 당기는 대로 따라온다.

 소파에는 개목걸이와 강아지귀 머리띠가 올려져 있다.

 치하야의 앞에 강아지귀 머리띠가 놓여 있다.

 하루카 앞에는 검은 가죽의 매끄러운 광택을 발하는 개목걸이가 놓여 있다. 미색 소파 위에서 검은 가죽 목걸이는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폭은 2센티미터 정도일까. 끝의 잠금쇠에서 조그만 꽃 자수가 놓여 있는 끝까지 얼룩 하나 없다. 아무런 특별할 게 없는 개목걸이인데, 용도를 생각하면 이상한 존재감을 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둘은 손을 잡은 채로 소파 앞에서 계속 서 있었다.

 손을 잡고서라곤 해도, 하루카 쪽은 그저 치하야에게 붙잡혀 있을 뿐이다.

 치하야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공포를 억누르는 얼굴로 지긋이 소파 위에 있는 강아지귀 머리띠를 쳐다보았다.

 하루카는 고개를 돌려 소파와 치하야로부터 눈을 돌리듯이 서 있다.

 치하야는 자문한다.

 하루카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분명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강아지 놀이를 계속 하고 있는지까진 몰라도, 이것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는 건 느끼고 있다. 부족한 건 이유일까. 치하야가 하루카가 시켜서 강아지 놀이를 한다는 포즈를 취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하루카 나름대로 강아지 놀이를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으면 응해 주는 걸까.

 즉, 자신의 지금 상태를 설명하면.

 불면증 증세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과 강아지 놀이로 일시적으로 불면이 해소된다는 걸 전하면, 하루카는 고민하지 않고 강아지귀 머리띠를 쓰도록 명령해 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왕에…….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마지막 일선, 마지막 자존심을 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 사실은 고민할 것도 없이 해야 할 것이다. 하루카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상담해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그걸 하지 못하는 건 자신 안에 뿌리내리고 만 비뚤어진 자존심을 꺾고 싶지 않으니까. 이 이상의 타협점은 못 찾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까. 그것을 양보해 버리면 자신이 아니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싫으니까 싫다는, 어떻게도 되지 않는 이유다.

 언젠가 미래에, 이대로 하루카와 친구로서 시간을 쌓아 나가면 정말로 아무런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할 수 없다.

 왜일까.

 딱 한 마디, 도와달라고 하면 될 뿐인데.

 왜…….

 "아파."

 하루카의 말에 치하야의 사고는 갈 곳을 잃고 흩어졌다.

 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루카의 손을 세게 쥐고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해."

 슬쩍 하루카의 옆얼굴을 본다.

 그 괴로운 듯한 표정을 보고 치하야는 후회했다.

 하루카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들 고 있는 게 자신이란 걸 알고, 겁먹고 자존심을 계속 지키려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한 걸음 내밀어 보자고 생각했다.

 치하야가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을 때, 미끄러져 들어오듯이 하루카가 말했다.

 "요, 요전에 치하야 짱, 귀여웠지."

 치하야는 하루카의 얼굴을 본다. 자연히 입이 다물어져 버린다. 내심 살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비열하게 여겼다.

 "있잖아, 또, 또 써 봐."

 하루카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변함없이 바닥을 바라보면서, 쥐어짜내는 것처럼 말을 잇고 있다.

 치하야가 잡은 손을 놓으려고 하자,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인가 하루카 족에서도 치하야의 손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강아지귀 머리띠를 집어, 이젠 유리창으로 위치를 확인할 것도 없이 익숙한 동작으로 머리에 쓴다.

 "멍."

 작게 하루카에게 썼다고 알린다.

 잡은 손에 다시 한 번 조금 힘을 주고, 치하야는 하루카 쪽을 봤다.

 하루카는 뭔가를 떨쳐내듯이 한 번 끄덕이고서, 시선을 올려 치하야와 눈을 마주쳤다.

 "오늘은 뭘, 해줬으면 좋겠어?"

 하루카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치하야는 기쁨과 동시에 죄책감도 싹트고 있었다.

 하루카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목줄일까."

 조용히 묻는 하루카에게 작게 끄응 하고 울었다.

 미안해.

 하루카는 치하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괜찮아, 하고 말했다.

 "손, 놓아 줘."

 하루카가 말하는 대로 치하야는 손을 놓고,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하루카가 개목걸이에 손을 뻗는다.

 쇠로 된 부분이 찰칵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치하야 짱, 씌울게?"

 끄덕인다. 끄응.

 목에 조금 서늘한 검은 가죽의 감촉이 닿았다.

 목에 둘러진 검은 가죽을 하루카의 손이 훑는다.

 치하야의 목에 맞게 목걸이를 조절하는 하루카의 손가락이 간지럽다.

 "좋아, 이거면 됐을까."

 이번에도 하루카는 자신을 받아들여 주었다. 치하야는 기뻐서 매어진 목걸이에 살며시 손을 뻗어 확인한 후

 "멍."

  하고 웃는 얼굴로 울었다.



 오늘도 하루카가 돌아갈 시간이 되고 말았다.

 하루카는 준비를 마치고 한발 먼저 밖에 나가 있다.

 치하야는 목걸이를 풀고, 강아지귀 머리띠를 벗고, 목덜미를 몇 번쯤 쓰다듬는다.

 이제 와서 깨달은 거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강아지 놀이를 하고 있던 게 된다.

 즐거웠다.

 마음을 어디까지든 해방시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루카를 역까지 배웅해 주는 것뿐이라 지갑과 집 열쇠만을 가지고 밖으로 나간다.

 문을 나와 잠그자, 하루카가 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치하야 짱은 왜 강아지 놀이를 계속하는 거야?"

 "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식이 방해를 해서, 그……그런 거 못 하니까."

 솔직하게 어리광부리고 싶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훌훌 말해 버리면 편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도 주저하고 만다.

 "난 평범히 얘기도 하고 싶은데."

 "그럼 다음엔 도중에 그만두자."

 "아예 그만두지는 않는 거야?"

 "혹시 하루카는 싫었어? ……부담이 된다면 조금 더 줄일게."

 "그만두고 싶진, 않은 거지?"

 "저……, 정말로 부담이 되면 그렇게 말해. 그만두는 것도 검토할 테니까."

 "치하야 짱, 솔직하구나."

 "그게……미안해……."

 하루카는 치하야가 사과하는 걸 듣고 미소지었다.

 뭔가가 개운해진 것 같은 웃음이었다.

 "아니야.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라고 말해줘."

 "하루카, 그…."

 "말해줘."

 지긋이 쳐다봐서, 치하야는 저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하루카의 올곧음에서 눈을 돌리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직 유닛을 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노래밖에 없다고, 노래에만 자신을 바치지 않으면 언젠가 정나미가 떨어져서 가지고 있는 것들 전부를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하루카가 자신에게 향하는 올곧은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돌리거나, 엷은 반응만으로 얼버무리거나 하던 시절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바뀌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면 하루카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치하야는 눈을 돌린 채로 중얼거리듯이 하루카에게 감사한다.

 "고마워."

 "고맙긴 뭘."

 하루카의 말투에서 웃으면서 답한 거란 걸 알았다.

 눈을 돌리고 있는 치하야는 깨닫지 못했다. 하루카의 눈동자에 결심의 불이 피어 있는 것을. 아직 태도도 딱딱하고 주변 전부를 차단하고 있던 시절의 치하야에게 다가갔을 때의 하루카는 이런 눈을 하고 있었다.

 치하야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 치하야이기에 더욱, 하루카가 가진 조용한 격정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즉, 하루카는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날 치하야는 하루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역에서 헤어졌다.

 다음에 레슨에서 얼굴을 봤을 때 하루카가 평소처럼 대해 주는 것에 치하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개목걸이를 쓴 것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치하야의 수면장애도 한동안은 개선되었다.

 하지만 역시 대증요법으로 완치는 어려울 것이다.

 서서히이긴 하지만, 치하야는 잠들기 어려워지고, 밤중에 깨는 횟수가 늘어 간다.

 개목걸이를 쓰고 나서 한 번 하루카가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쾌적한 수면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소파 위에 강아지귀 머리띠와 목걸이는 두지 않았다.

 하루카가 "오늘은 없구나."하고 말한 데엔 놀랐다.

 놀랐지만, 안도했다.

 그건 다시 한 번 해도 된다는 의미니까.



 개목걸이를 쓰고 나서 1개월이 지나, 잠이 불안정해진 치하야는 하루카가 오는 날에 강아지귀 머리띠와 목걸이를 소파 위에 꺼내 두었다.

 하루카를 들이고 소파로 이끌어, 시작의 말을 기다린다.

 "오늘은 좋은 걸 사 왔어."

 하루카의 기쁜 듯한 말에 치하야도 기뻐진다.

 무엇일까. 최근 마음에 든 가게의 과자 같은 걸까.

 "짜안!"

 부스럭 부스럭 가방을 뒤져, 자랑스러운 얼굴로 하루카가 꺼내든 것은 개목걸이에 연결하기 위한 리드였다.

 어라?

 하루카, 그거.

 "치하야 짱, 이걸 쓰면 더 귀여워질 거야."

 말하면서 하루카는 강아지귀 머리띠를 치하야에게 씌우고, 목걸이를 채웠다.

 마지막으로 목걸이와 리드를 잇고서 고리 모양으로 된 손잡이 부분을 가볍게 당겼다.

 하루카의 손의 움직임과 연동해서, 치하야의 목에 작지만 확실한 힘이 가해진다.

 "저……하루카, 이거."

 "아니지."

 "어?"

 "멍, 해야지?"

 하루카가 리드를 당긴다. 갑작스러워서 몇 걸음쯤 하루카 방향으로 비틀거리고 만다.

 "아……."

 눈앞에 웃고 있는 하루카가 있다.

 "멍, 이지?"

 치하야는 웃는 하루카와 시선을 맞추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으로 울었다.

 "멍!멍!"

 하루카가 적극적이 돼 주었다.

 치하야는 기뻐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말았다.

 어디가 전환점이었는가.

 하루카는 왜 적극적이 된 것인가.

 그리고 하루카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치하야와 어울려 주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들을.

 치하야는 기뻐서 자신의 결의를 일단 보류하고 말았다.

 강아지 놀이를 간원했던 이유를 말하려고 했던 것을.

 그저 친구에서, 절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로 한걸음을 내딛으려 했던 것을.

 서로의 목적과 수단이 엇갈려 있는 탓에 둘은 이 이상 없을 만큼 행복했다.

 "치하야 짱, 손!"

 "멍."

 치하야는 웃는 얼굴로 하루카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잘 했어요. 장하다, 장하다."

 하루카의 손으로 쓰다듬 받으면 무척 따뜻하다.

 가족이란 분명 이런 걸 거라고 생각한다.

 "끄응."

 고마워, 하루카.

 분명 오늘은 푹 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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