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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ke a strawberry in fact.-2

댓글: 17 / 조회: 2149 / 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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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3, 2016 16:25에 작성됨.

이 글은, 타케우치 P 와 타치바나 아리스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작자 : アルモン님 

픽시브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6277845#13

번역한 녀석 : https://twitter.com/seiyou72

 

마지막의 ㅡㅡ 씨는, 오타가 아닌 원문 그대로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리스는 타케 P 의 명함에 '그의 이름' 과 '직책'이 적혀있는 걸 보았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이름을 부른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9.

 

방금 전까지 성가시게 느끼고 있던 태양이 서쪽으로 저물었는데, 
내 땀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한 번도
내가 알고 있는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항상 태블릿만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까, 주위 사물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 걸까. 다음부터는 주의하자 생각했다.
뭐,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누군가한테 연락하려고 생각해도, 태블릿은 고장났고,
스마트폰은 가방 속에 있다. 공중전화는 보이지도 않고, 
지금은 누구도 없을 집 전화번호밖에 모르니까 
의미가 없다. 몇 번인가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려고
생각했었지만, 온 길을 돌아가는 것도 못하는 나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과, 어떻게 하다 보면
언젠가 알고 있는 장소에 도착하겠지 하는 얄팍한 심산으로
지금 나는 겉잡을 수 없는 장소까지 와 있었다.


프로듀서는 나를 찾고 있을까. 
분명 자기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단단히 화가 나 있을 게 틀림 없어. 
아니면 결과적으로 일을 내팽개친 내게 
실망을 하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이미 프로듀서를 볼 면목이 없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어린애 취급을 받아도 
모든 걸 맡기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무 것도 없는 길에서 넘어져버렸다.
아픔보다도 먼저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급하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편이 더 비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가 흐르는 것을 보자,
아픔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처에 더해, 계속해서 걷고 있던
피로에 의한 고통이 나를 덮쳤다.


그래도 걷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건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프로듀서한테서도,
촬영 현장으로부터도, 내가 잘못을 저질러버린 이 현실에서도.


뭐가 어른이고, 뭐가 프로람. 미안해요, 프로듀서. 
전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힘 없는 아이였어요. 
제 독선으로 모두한테 많은 민폐를 끼치는, 
프로 실격 가짜 아이돌이에요. 미안해요, 프로듀서.

나는 마음 속으로, 결코 닿을 리 없는 사과를 반복했다.


10.


눈치챘을 때 도시의 풍경은 이미 사라져 없어지고, 
변두리라고 생각되는 장소까지 와 있었다. 
사람의 기척이 없다는 건, 무기질적인 빌딩에 둘러싸여
있을 때하고는 또다른 불안감이 생겨났다.


내 다리는 아픔을 넘어서, 감각이 없어져 있었다.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까까지는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에서 계속 걷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기력도 없었다. 
어딘가에 앉고 싶었다. 한 번 앉아버리면 
더 걸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이 있었지만.


내 다리가 정말 한계를 맞이하려는 참에, 
눈 앞에 공원의 입구가 보였다. 
나는 딱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반은 비틀거리며 
공원 안에 들어갔다. 낡은 벤치가 보였기 때문에,
마지막 힘을 쥐어짜 거기에 앉았다. 
그 순간 몸은 납처럼 무거워져서, 내가 
벤치에 박히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졌다. 
역시 예상대로, 더는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문득 하늘을 보니, 가증스러울 정도로 별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로 했다.


아아, 이대로 저 밤하늘로 떨어져서 
그대로 사라지면 얼마나 편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만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고 머리 나쁜 동급생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들었을 땐 불쾌해 했었는데
그 애들도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이었던 걸까.
아니, 그건 아니겠지.


얼마나 밤하늘을 보고 있었던 걸까. 
문득 발걸음이 들린 것 같았다. 
처음엔 이제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한 건가,
하고 생각했었지만 점점 그 발소리가 커졌기 때문에,
그게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메말라 버렸을 내 마음에서
공포라고 하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도대체 누구인 걸까, 수상한 사람인 걸까.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는 걸까. 
방금 전까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주제에,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 발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내 고동소리도 찢어질 듯이 커져갔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럴 때, 어떻게야 된댔지. 
맞아, 도움을 요청해야 돼. 
하지만 이런 곳에서 외쳐봤자 누가 구하러 와 주는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이런 나를 구해 줄 사람이 있는 걸까.


그런 내 갈등 따위는 상관 없이,
발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소리의 주인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 깜빡거리는 가로등에 비춰진 
그 인물은, 애매한 윤곽만으로도 그 거대함을 알 수가 있어서,
내 공포심을 부채질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길 그만두고, 외쳤다.


"프로..."

"타치바나 양!?"

"...에?"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에 제정신이 들었다. 
제대로 그곳을 응시하니, 확실히 그건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긴 해도,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해 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다음부턴 주의해주세요."

"프, 프로듀서..."


그렇게 말하고 목덜미에 손을 대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고 있자,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인데도 어쩐지 너무 기쁘고, 안심이 되고, 
또 미안해서ㅡ 긴장과 불안의 끈이 끊어짐과 동시에 흘러 넘쳐서
멈추지 않는 감정을 억누를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오열을 흘렸다. 
나는 벤치에 앉은 채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이런 꼴불견인 모습을 프로듀서에게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걸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프로듀서, 미안해요. 저, 길을 잃어버려서, 
그런데, 태블릿이 고장나서,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어서,
다들 화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돌아가기 싫어서, 
하지만 역시 혼자선 무서워서, 그래서, 그래서..."

"...괜찮습니다. 타치바나 양. 지금은, 제가 있습니다."


갑자기 울기 시작한 내게 한 순간 당황한 프로듀서였지만,
금방 평소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는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그런 상냥한 취급을 받을 가치가 없는데.
그리고 그 울퉁불퉁한 손으로,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절대 거부했을 그 행동이지만, 나약해져 있는 지금의 내겐
효과가 대단했다. 그래도 역시,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그런 짓을 하면 더 울고 싶어지니까.


11.


"...타치바나 양은 커피와 코코아, 어떤 걸로 하겠습니까."

"...커피로 부탁드려요."


내 대답에 프로듀서는 조금 생각한 다음, 
코코아 캔을 내게 쥐어주었다.


"...저기, 저는 커피라고 말했는데요? 잘못 들으셨나요?"

"죄송합니다. 지금, 굉장히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요. 
타치바나 양에겐 죄송하지만, 코코아로 참아주십시오."

"...뭐, 상관없지만요."


나는 캔 뚜껑에 손을 댔지만, 기운이 빠져서인지
피로 때문인지 힘이 들어가질 않아 잘 열 수 없었다.
한참을 고생하고 있자, 프로듀서가 살짝 캔을 내 손에서 가져가,
가볍게 뚜껑을 따서 다시 내게 넘겨주었다.


"...괜한 참견이에요."

"...죄송합니다."


나는 부끄러움을 숨기는 것처럼, 단숨에 코코아 캔을 기울였다.
부드러운 단 맛이 온 몸에 퍼져가는 게 느껴져서, 
아까 다 내보냈을 눈물이 또 나오려고 했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태블릿이 고장났다고는 해도, 편의점에 가는 것만으로 이렇게
길을 잃는다는 건, 타치바나 양 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그러니까..."


나는 한순간 할 말이 없어졌지만, 이제 와서 
속여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반쯤 포기하곤
사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딸기."

"...네?"

"딸기 파르페라구요! ...최근 이 주변에, 딸기 파르페가 맛있는 
가게가 생겼다고 들어서, 하지만 프로듀서한테 알려지면 
부끄러우니까, 몰래 갔다오려고 했던 거라구요.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길이 복잡해서, 헤매어 버려서, 
태블릿도 고장나버려서 돌아갈 길도 모르고... 
하는 수 없이 걷다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예요."

"...과연. 확실히 그 가게는 뒷골목에 있으니까, 
조금 알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납득했다는 얼굴을 하는 프로듀서였지만,
내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자, 잠깐 기다려주세요! 어째서 프로듀서가, 그 가게를 알아요!?"

"음? 최근 생긴, 딸기 파르페가 유명한 가게를 말씀하셨지요?"


그렇게 말하고 가게의 이름을 내게 말하는 프로듀서.
아니, 거기가 맞아요. 맞긴 한데요.


"그게 아니라, 어째서 프로듀서가, 그 가게를 알고 있냐고 물은 건데요!"

"어째서냐고 말씀하신들, 어제 조사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조사하신 거냐구요!?"

"타치바나 양하고 같이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타치바나 양은, 딸기를 좋아하셨죠?"

"...에?"


프로듀서가 하는 말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딸기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거야.
프로듀서 앞에서는 계속 참아서, 딸기도, 딸기 맛
나는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어, 어떻게... 제가 딸기를 좋아한단 게 들킨 건가요...?"

"...들켰다기보다, 타치바나 양을 프로듀스하기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사항입니다만..."

"어, 어째서? 프로듀서는 제 사생활엔 관심없을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타치바나 양에 대한 거라면, 
뭐든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타치바나 양은 딸기를 좋아하고,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으며, 취미는 퍼즐 게임에 
최근에는 사기사와 양과 책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빠져있고,
꿈은 노래와 음악 일을 하는 것으로..."

"그, 그만 됐어요! 이제 됐으니까요!"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 프로듀서를, 
나는 당황해서 뜯어말렸다. 죄송합니다 하고 
프로듀서가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사과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내 쪽도 부끄러우니까 그만둬요.
두 사람 다 입을 다물어 버리기엔 
밤의 공원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프로듀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타치바나 양을 프로듀스 함에 있어서, 
당신이 어떤 인물인지, 프로젝트 크로네를 위시한 
아이돌 여러분들에게 물으러 다녔습니다. 거기에서,
타치바나 양은 어린애 취급 받거나 과도한 간섭을 받는 건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당신을
어른 취급하고, 최대한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는 게 
최선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 왔습니다만...
최근 사기사와 양에게 들었습니다. 타치바나 양은 
솔직하지 못할 뿐이라서, 좀 더 저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고 계신다는 것을. ...아무래도 저는, 
당신을 대하는 방법을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눈치채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영문 모를 사과를 들어도, 곤란할 뿐이에요..."


머릿속에서 엉망진창이 되어있던 퍼즐 조각이, 드디어 맞추어졌다.
후미카 씨가 요전에 중얼거렸던 '내 탓일지도' 라는 말은 본인이
프로듀서에게 알려준 나에 대한 정보에 의해, 나와 프로듀서 사이에
구멍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서 나온 말이었던 거겠지.
그러니까 그 다음에 후미카 씨는 프로듀서에게 추가로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후미카 씨도 참, 쓸데없는 행동을.


"...그럼 그건가요? 프로듀서는 제가 어린애스러운 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저는 그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쭉 어른스러운 척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타치바나 양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기에."

"...뭔가요, 그게. 제가 바보같잖아요..."


프로듀서 앞에서는 딸기맛 사탕을 먹지 않도록 노력한 것도,
무리해서 커피를 마신 것도, 자는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잠기운과 싸웠던 것도, 드라마에 나온다는 기쁨을 참고
쿨하게 행동한 것도, 오늘 내가 비밀로 딸기 파르페를 
먹으려 가려고 한 것도 전부 전부 의미 없었다는 얘기다.
정말로, 바보 같아.


"저, ...타치바나 양?"

"...말 걸지 말아주세요. 프로듀서 같은 사람, 싫어요."

"그, 그러실 줄은..."


쿠웅 하는 효과음이 들려올 정도로 쇼크를 받고 있는 
프로듀서를 살짝 흘겨보면서, 나는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나는 솔직해 질 수 없었다. 사실은 프로듀서가 
나에 대해 알려고 해 준 것, 그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어서, 굉장히 기뻤지만. 
그야 좀 더 제대로 된 방법도 있었을텐데 하는 분노도
약간은 있었다. 전무님이 말한 대로, 확실히 대단히 서투른 사람이다.


"그러니까, 저기... 타치바나 양에게,
누구에게도 이야기 한 적 없는 제 비밀을 알려드릴테니
그걸로 용서 해 주시겠습니까...?"

"...내용에 따라서요."


뭐가 어쨌든 귀를 기울이고 만다는 게, 내가 알기 쉽다고 불리는 원인인 걸까.


"...그러니까, 실은, 말이죠..."


프로듀서가 두, 세 번 헛기침을 한 후, 똑바로 나를 보았다.
도대체 어떤 비밀을 고백하려는 걸까. 그 진지한 표정에 나도 점차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훑었다. 
그의 입술이 미묘하게 움직인 순간, 내 심장의 고동도 최고조를 맞았고, 그리고...


"저도... 저도 좋아합니다. ...딸기."


...하아?


"타치바나 양은 딸기를 좋아한다는 걸 어린아이 같다고 신경쓰고 
계시는 모양이지만... 실은 저도 딸기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생겨서, 나이도 먹은 남자가, 딸기를 좋아한다니
어쩐지 묘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로서는 꽤 부끄러운 비밀입니다만..."

"...풋."

"저기, 타치바나 양?"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으, 으음..."

"바, 바보 아닌가요? 그렇게 뜸을 들여놓고,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어놓고,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딸기를 좋아한다구요? 쓸데없어! 전혀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요!
킥킥... 이상한 사람... 아, 배 아파... 아하하하!"

"그, 그렇게 웃으실 것까진..."


그렇게 말한 프로듀서는 부끄럽다는 듯이 목덜미에 손을 댔다.
그걸 보고 있으니 또 다시 웃음이 밀려올아왔다. 나는 한동안,
프로듀서를 무시하고 계속 웃고 있었다. 겨우 그것이 진정됐을 때,
벤치에서 일어나 프로듀서 쪽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기운이 돌아와 있었다.
그의 손을 억지로 잡아 끌고, 공원의 출구로 향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다리로.


"...다른 연기자나 스탭 분들도, 분명 화내고 있겠죠."

"그건 그렇겠지요. 오후의 촬영은 타치바나 양 없인 할 수 없으니까요."

"...얼른, 사과하러 가야겠네요."

"네. 타치바나 양도 지치셨을테니, 오늘은 제대로 쉰 다음
내일 제대로 사과하러 갑시다. 이번 건은 제게도 책임이 있으니,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프로듀서는 화내지 않는 건가요?"

"...당신을 발견했을 때, 화내지 않았습니까. 
무슨 일이 있다면 제대로 연락해달라고. 뭐, 그럴 수단이 
없었으니까, 어쩔 도리도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그것 뿐이라구요?"

"...분명 타치바나 양 스스로가, 
자기 잘못을 제일 잘 알고 있을테니까요.
그런 사람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내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제대로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점도 또한, 타치바나 양의 멋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프로듀서의 손을 쥐는 내 힘이, 꾹 하고 강해졌다. 
이 사람은 이렇게나 나를 보고 있어줬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있죠... 프로듀서. 내일은 꼭, 저와 같이
딸기 파르페를 먹으러 가지 않을래요? 마침 지금, 할인권이 두 장 있거든요."

"...괜찮군요. 갑시다. 지금까지의 답례로, 내일은 제가 살테니까요."

"...그럼 저, 특대 사이즈로 시켜도 되나요?"

"상관없습니다. ...저도 그럴 생각이었거든요."


나와 프로듀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풋, 하고 웃어버렸다.
프로듀서가 웃는 얼굴이 되면, 이렇게나 부드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는 구나 하고 나는 새로운 발견에 마음이 들떴다.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끝없이 펼쳐지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에 녹아, 
그리고 없어져 갔다.


12.


다음 날.


나와 프로듀서는 누구보다도 빨리 촬영 현장에 도착해, 
오는 사람을 하나 하나 붙잡고 사과했다. 나는 심하게 혼날 각오를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웃으며 용서해주어서, 그 상냥함에 감격했다. 
그 때는 어떻게 참아냈지만, 프로듀서가


"이것도 타치바나 양의 평소 행실이, 모두의 신뢰를 얻어낸 결과입니다."


하고 말하며 머리에 상냥하게 손을 올렸을 때에는, 
성희롱이라고 항의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또 조금 울어버렸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울보가 되어버린 걸까.


그 날은 낮에 촬영이 끝나서, 이번에는 프로듀서의 차로 
나는 그 카페에 갔다. 겨우 5분 정도로 도착했기 때문에, 
어제 했던 고생은 뭐였던 걸까 하고 대상 없는 분노가 솟았지만,
특대 사이즈 딸기 파르페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덧붙여서 프로듀서는 스스로가 담담히 먹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한 입 먹었던 순간에 그 날카로운 눈가가 어린아이처럼 빛난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배부름에 더해 차가 기분 좋게 흔들려, 
반절 정도 나는 꿈 속에 있었다. 그러니까 프로듀서가 말을 걸었던 것을,
거의 적당한 대답만으로 넘기고 있었지만, 이 말 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타치바나 양. 언젠가 때가 되면, 당신은 분명 멋진 어른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서두르지 말고, 지금을 즐겨 주십시오. 어린아이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
당신의 주위에 분명 가득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어린아이 답게, 그에게 한 가지 어리광을 부려보기로 했다.

 

13.


"...그러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아시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타치바나 양."

"윽!? 이, 이젠 저도 몰라요!"


나는 프로듀서에게 소리를 지르고, 
기세 좋게 방을 나왔다. 그 자리에서 
결이 보일 듯한 검은 머리카락과 이름 그대로 
의연한 표정을 한 특징적인 여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안녕, 아리스."

"안녕하세요. 타치바나라구요, 린 씨!"

"미안 미안, 아리스. ...그러고보니 이번에, 
아리스가 나오는 드라마를 봤어. 좋은 느낌이던데, 꽤 평판도 좋고."

"에헤헤... 감사합니다."


여러가지 트러블이 잇었지만, 무사히 드라마 촬영은 끝이 나ㅓ,
저번 주부터 방송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녹화분을 보면서
엄마와 저녁을 먹는 게 지금의 내 습관이 되어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다음에 후미카 씨로부터 장문의 감상 메일이
오는 것도, 아무래도 연례행사 같은 느낌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들어보세요, 린 씨! 프로듀서가, 
제가 말하는 걸 들어주질 않아요!"

"헤에, 뭘 부탁했는데?"

"저를, 아리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하?"


내가 프로듀서에게 부린 어리광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좀 더 프로듀서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내 신뢰를 나타나는 증거이기도 했다. 프로듀서가 불러준다면,
아리스라고 하는 이름도 좀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나만의 비밀이지만.


"그런데도 저 사람은, 몇 번을 주의해도 저를 타치바나 양이라고 부른다구요!
학습 능력이 없는 걸까요?"


타치바나 양보다 아리스 쪽이 다섯 글자에서 세 글자로 줄어서 편할텐데도.


"신데렐라 프로젝트에서도, 한 때 프로듀서에게 존댓말 금지령이 나왔지만 
길게 못 갔더랬지. 이름 부르기도 꽤 힘들다고 생각해. 아리스?"


그런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린 씨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히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불타 올랐다.

 

"...그럼, 프로듀서가 저를 이름으로 부르게 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저는 신데렐라 프로젝트 여러분한테 이긴 게 되는 거네요?"

"아니 그게... 그거하고 이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다르지 않아요, 린 씨.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니까요."

"아, 그래... 뭐, 힘내셔."

"네!"


린 씨의 대답에 만족하고, 나는 다시 걸어가려고 했다. 
그 때, 아까 닫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죄송합니다, 타치바나 양. 솔로CD의 재킷에 관해서입니다만..."

"...그러니까 아리스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요..."


나는 한숨을 쉬고, 린 씨가 웃었다. 프로듀서가 목덜미에 손을 댄다.
내가 승리하기까지는, 아직 한참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아직 나는,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해질 수가 없다. 
프로듀서에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한 것도, 
자그마한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고, 골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몇 번이고 내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 후회를 거듭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한 걸음을 소중히 하고 싶다. 
잘 되지 않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그 사람을 강하게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언젠가 반드시 닿는다고, 
알려준 게 다름아닌 프로듀서ㅡ 당신이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그 날까지,

ㅡㅡ 씨, 기다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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