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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공주 THE HUNDRED LILY-19~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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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4, 2016 23:20에 작성됨.

19장  '고대로부터의 전래동화'

 

 일단은 그렇군요. 역시 최초의 '잠자는 공주' 얘기부터.

 그렇게 중얼거린 타카네가 얘기한 것은, 머나먼 옛날부터 이어지는 긴 세월의 이야기였다.

 천 년 전.

 아직 이 나라가 몇 개로 갈라져 전화가 끊이지 않았던 시대.

 당시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타카기, 다른 한 사람은 쿠로이라고 했다.

 통치하는 땅도 가깝고 긴 시간 서로 으르렁대던 두사람이었지만, 그 다툼의 무의미함을 깨달았을 때 손을 잡고 평화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에 든 것이 200년 동안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았다는 한 성. 성 아래의 마을뿐인 작은 땅을 통치하고 있던 것은 한 명의 무녀였다. 이름은, 오토나시 코토리.

 병량의 비축도 무기의 양도 알려져 있다. 조사해 보니 그뿐인가, 단 한 사람의 병사도 없다고 한다.

 신기하게 생각한 두 사람은 그 땅으로 가 무녀에게 물었다.

 ――왜 이 땅은 평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에 돌아온 답은 더욱 깊이 고개가 기울 정도로 간소한 것이었다.

 ――저는 그저 이 땅의 평화를 계속 기도할 뿐입니다.

 들어보니, 그녀의 일족은 드물게 바람이나 기도를 원하는 대로 현현시키는 힘을 가진 자가 태어난다고 한다.

 수상한 농담으로 들렸지만, 눈앞에서 코토리가 손 위에 금괴를 출현시키는 것을 보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힘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괴를 쓰다듬어 두 개의 잔으로 바꾼 코토리는, 옆에 있던 술을 스스로 부어 두 사람의 손님에게 조용히 내밀었다.

 ――그 힘,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쓸 생각은 없는가.

 둘의 제안에 고민하던 코토리는 조용히 말했다.

 ――그 말, 마음이 진실이라면. 이 잔에 입을 대십시오. 거짓된 말을 한 자는 이 청주가 목을 태울 것입니다.

 손 안의 잔을 아무런 일 없이 비운 둘을 보고, 코토리는 협력을 요청했다.

 두 남자는 무녀와 함께 다시 평화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

 타카기는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으려 했다. 무녀의 생각이나 삶을 사람들에게 설파하면 언젠가 다툼은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쿠로이는 사람의 나쁜 마음을 떼어내려고 했다. 무녀의 힘을 가지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없애면 언젠가 다툼은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타카기의 방법으론 너무 늦는다고 이의를 제기하던 쿠로이는, 코토리를 전쟁을 좋아하는 귀족이 통치하는 한 땅으로 데려가 다툼의 씨앗 중 하나인 그곳을 불태워 버리라고 말했다.

 바깥 세계를 모르고 자란 무녀는 어쩔 도리 없이 무구했던 것이겠지. 쿠로이가 하는 말을 완전히 신용하고 있던 그녀는, 그걸로 평화로워진다면 하고 그 땅을 하룻밤 사이에 멸망시켰다.

 그 날 확실히 다툼의 싹은 하나 떼어내졌다.

 하지만 그 귀족과 친교를 맺고 있던 이웃 땅의 권력자는 무녀를 원수로 보고 목숨을 노렸다.

 추격자의 칼날을 앞에 두고 자신이 새로운 다툼의 씨앗을 뿌리고 말았음을 깨달은 코토리는, 저항하지 않고 빛나는 하얀 칼날에 몸을 던지고 선혈과 절망을 끌어안듯이, 잠들듯이 눈을 감았다.

 타카기와 쿠로이의 손에 의해 코토리는 한 벚나무 아래에 묻혔다. 둘이 다시 결별한 그날 밤으로부터 3일간. 세계에는 비가 계속 내렸다고 한다. 그것은 코토리가 불태운 땅에 대한 속죄였을지도 모르고, 그녀의 깊은 슬픔이 흘린 눈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소녀들에게 '능력'이 깃들게 된 것은.

 그 비극으로부터 백년이 지나, 오토나시 코토리는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붉은 빛으로 빛내며 파괴의 힘을 휘두르는 코토리에게, 평화를 기원하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코토리를 멈춘 것은 당시 가장 강한 '능력'을 가졌던 소녀였다.  '아이돌'로서 각성한 그녀는 코토리를 쓰러뜨린 후, 누군가에게 이끌리듯이 코토리가 눈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선조로부터 '오토나시 코토리'에 대한 얘기를 들었던 타카기의 자손과 쿠로이의 자손은, 다시 그 땅에서 만나 다음에 태어날지도 모르는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릴 소녀를 기르기 위해 벚나무 옆에 배움터를 세웠다.

 그리고 타카기와 쿠로이 일족은 각각 '능력'의 비밀 규명에 착수하게 된다. 현재에 이를 때까지 계속, 몇 대에 걸쳐서.

  '잠자는 공주' 동화가 생겨난 건 그 즈음이었다.



………

……





 아마미 하루카는 역대 아이돌 중에서도 특히 그 능력을 잘 다루었다고 한다.

 아이돌의 힘에 정신을 빼앗겨 잠자는 공주와 싸웠던 소녀가 대부분이었지만, 하루카는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시간이 길었다.

 학원장의 하나인 타카기는 그 이유를 아이돌이 되는 소녀의 바람과 그 모습, 크기라고 보았다. 학원의 누구나를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사랑받은 하루카는 그녀들을 지키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다. 그 유대가 그녀의 의식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는 흰 백합처럼 무구하고 순결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소녀가 언젠가 아이돌의 능력을 완전히 제어해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릴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까지의 교사 옆에 새로운 배움터를 만들었다.

 또 한 명의 학원장 쿠로이는 그 생각에는 반신반의했다. 때문에 세 개의 계획을 세웠다.

 첫번재는 마음의 유무에 관계 없이 대상으로 한 자의 능력을 백배를 목표로 끌어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두번재는 절대로 시들지 않는 한 송이 백합 같은 강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잠자는 공주에 필적하는 힘을 주어 보는 것.

 세번째는 마음도 힘도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소녀를 창조해 내자는 것.

 이러한 구상이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건 호시이 미키가 잠자는 공주가 된 아마미 하루카를 죽이고 나서였다.

 

 

20장  더듬어 찾는 미래

 

 "――그리고 몇 년 전에 이 학원에 온 저는, 현재의 두 학원장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구를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는 그들 대신 이 땅에서 타카기 님의 의지를 잇고, '모모유리 계획'이라 총칭되는 쿠로이 님의 세 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했던 것입니다."

 시조 상의 이야기는 길고 긴 것이었다. 가나하 상은 진작에 햄조를 불러서 그와 놀고 있다.

 이야기가 일단락된 참에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해 본다.

 "그래서 그 세 계획 중 타카츠키 상에게 행한 게――"

 "첫번째입니다. 가장 어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그녀에겐, 잠자는 공주의 힘의 일부를 직접 투약에 의해 부여했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난 눈에 분노를 깃들이고, 땅에 선 다리가 나서려는 것을 참으며 시조 상을 노려보았다.

 "그 타카츠키 상의 모습이 안 보이는데."

 "원래대로였으면 미키가 눈을 뜨는 것은 다음 보름달 쯤이었습니다. 정황적으로, 잠자는 공주를 타도할 가능성이 더 높은 계획을 최종단계로 이행시키기 위해서, 야요이의 투약은 도중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이 사이에 눈을 뜨고 있었더라도 그 힘이 발휘되는 것은 단시간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뭐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야. 자신의 이가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단은 필요한 정보를 끌어내야만 한다.

 "네가 옮겨간 다음 계획이란 게 아즈사 상에게 했던 걸 말하는 거야?"

 "말씀대로입니다. 예전부터 후보로 생각해 두었던 아즈사에게, 저는 쿠로이 님이 고안한 의식으로 잠자는 공주의 힘을 붓기 위해 지하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당신에 의해 단념이란 쓰라린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만."

 만약 아즈사 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 계획의 그릇으로선 유키호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녀의 마음은 조금, 저로선 버거운 것이었기에."

 시조 상이 엷게 웃었다. 그것을 힐끗 보고서 나는 지금까지 거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있는 하루카에게 시선을 향한다.

 "그리고 세번째 계획으로 태어난 게 하루카였던 거구나."

 "……하루카는 쿠로이 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들은 함께 구교사를 주거로 삼았습니다만, 하루카와 만난 것은 그녀가 태어난 날 하루뿐입니다."

 "만들어졌다니. 역시 너무해."

 눈을 뜨지 않는 하기와라 상을 침통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얘기를 듣던 마코토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이대로 새로운 잠자는 공주가 계속 태어나 언젠가 세계를 멸망시킬 가능성을 방치하는 편이 훨씬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논리로서는 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왜 그렇게까지 해서 잠자는 공주를 막으려고 하는 거야?"

 "……그게 제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제 고향과 같은 말로는 두번 다시――"

 시조 상은 등을 돌리고 시선을 밤하늘로 향했다. 구름이 걸린 달이 유일한 빛으로서 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 아이들과 같은 상황의 소녀도 태어나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쪽을 본 시조 상이 한 순간 눈을 쌍둥이 쪽으로 향했다가, 그 눈이 애수를 담고 나를 보았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변화의 능력 밖에 가지지 못한 저로서는 전투에 참가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야요이와 아즈사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기회는 사라졌고, 하루카도 이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아이돌이 되는 것은 당신이란 말입니다, 키사라기 치하야. 이 운명에서――"

 세계의 종말의 종이 울리는 것처럼. 교사가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하늘을 향해 연두색으로 빛나는 빛의 기둥이 뻗는다.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새로운 잠자는 공주가 될 각오를 하고 미키를 쓰러뜨릴 것인가. 하지만 그래도 미키에게 힘이 미치지 못한 가능성도 있겠지요. 물론 당신에겐 아이돌이 되지 않고 모든 것을 길동무로 삼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당신의 세계는 오늘 밤으로 종언을 맞이하는 겁니다."

 더이상 원형을 갖추지 못한 교사 벽이 화염과 함께 폭발했다. 마코토가, 가나하 상이 일어선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하루카의 눈을 똑바로 보고 끄덕인다.

 "난 아이돌이 되지 않을 거야. ……그게 하루카의 바람이라면. 난 하루카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겠어."

 가나하 상이 그런 내게 웃어 보이고, 마코토는 조용히 그 손에 장검을 쥐었다.

 "미안해, 치하야 짱, 모두들. 좀 더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바로 갈게. ――여길 지키는 것쯤은 맡겨둬."

 미소짓는 하루카에게 나도 웃어 보인다. 괜찮아, 하루카. 이제 네 마음을 난 알고 있어.

 우리들의 모든 것은 이 싸움을 끝내고 나서.

 얼굴을 든다. 시선 끝, 잔해 속에서 한 쌍의 붉은 눈이 빛났다.

 백 년의 시간을 넘은 격정과의, 또 한 번의 해우.

 "……그럼 지켜보도록 하지요. 여러분이 엮어 나가는 새로운 잠자는 공주 이야기를."

 

 

21장  미소 짓는 소녀는 따스함에 안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물방울은……비? 그것 치고는 뭔가 따뜻하다.

 타카츠키 야요이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흔들리는 시야가 점점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누군가에게 초점을 맞추어 간다.

 "야요이!!"

 아까보다도 큰 소리로 그 사람은 야요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오리……짱?'

 눈에 눈물을 잔뜩 머금은 이오리는 조금 안심한 표정을 보이고 야요이를 끌어안았다.

 "얼마나 잘 셈이야……바보."

 ……아으. 조금 괴롭다. 머리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뭔가 이상한 기분.

 '나 왜 이오리 짱한테 안겨 있는 걸까…….'

 덧붙여서 온 몸이 무겁고 아프다. 어질어질한 머리로 필사적으로 기억을 파내려가 본다.

 '리츠코 상이랑 같이 구교사로 가서, 이상한 주사를 맞고, 그리고――?'

 필요할 기억이 다른 구멍에 묻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야요이에게 둘러진 이오리의 팔도 엉망이다.

 "혹시 나……이오리 짱한테, 나쁜 짓, 해 버렸어?"

 이상하다.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고개를 젓는 이오리의 머리카락이 야요이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야요이는 아무 것도 안 했어. 잘못한 건 전부 나……."

 '괴로운 목소리, 내지 마. 이오리 짱의 올곧은 목소리가 좋은데.'

 하지만 그 말이 이오리의 진심을 표현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분명 지금도 그녀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분명 이오리 나름의 친절이고.

 어렴풋이 눈을 뜨며 생각한다. 뭔가 무척이나 졸리다. 하지만 전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있잖아, 나, 아이돌의 희망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대……. 안 됐, 던 것 같은데."

 구교사에서 리츠코가 한 말을 떠올린다.

 "아이돌이 희망 아냐? ――대체 아이돌이란 게 뭐야……."

 "리츠코 상 있잖아, 그런 말 했었어. 아이돌은 누군가의 슬픈 결의라고. 이어서는 안 되는 마음이래. 잘……모르겠지만, 그런 건 안되려나~ 하고."

 점점 목소리가 작아져 간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더 전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일어나서 해도 될까. 지금은,

 "이오리 짱. 구교사, 입구. 들어가서, 처음 계단을 올라서. 복도에, 그 삼각형이랑 사각형 마크가 붙은, 로커……."

 필사적으로 자신이 본 것을 말한다. 이오리가 찾고 있던 것.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기를.

 "부탁이야, 이오리 짜――"

 "……야요이? 야, 야요이――――야요이!!"

 '미안……이오리 짱. 이제 졸려.'

 눈을 감자 점점 몸이 늪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점점 무겁게, 점점 어둡게.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 야요이가 능력을 발현하지 못했던 시절. 몸이 약해서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의 하얀 침대 위에서 보냈던 시절.

 만약 밖에 나갈 수 있게 되면 친구가 생겨서 같이 놀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런 것만 잔뜩 생각하면서 천장을 바라보던 날들.

 힘에 의해 기적적으로 건강한 몸을 얻고 이 학원에 오고 나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유키호, 마코토, 히비키, 아즈사, 리츠코 치하야――

 '맞아, 치하야 상. 아까 이것도 전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이오리 짱, 치하야 상을 구해줘, 하고. 아이돌이 될 지도 모르는 치하야 상의 희망이 되어줘, 하고. 하지만――'

 말할 필요도 없을까. 분명 이오리는 야요이가 부탁하지 않아도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이오리가 착한 소녀라는 걸 야요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게다가 요 1년간 계속 같이 있었는걸.

 분명한 신뢰를 맡길 수 있는 친구는, 야요이가 스스로 얻은 것이다. 그것이 조금 자랑스럽다.

 앞으로 능력이 사라져서 다시 움직이는 게 어려워지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게, 다시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더라도.

 분명 이오리와의 인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근거는 없지만 어쩐지 알 수 있다. 그야――

 '이오리 짱은 굉장한걸.'

 이오리라면, 그 사람들이라면, 분명 괜찮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의 품 안에서 잠들 수 있다.

 ――이 이상의 행복이 있을까.

 

 

22장  소녀를 동경한 소녀는 잘못된 것을 바란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키쿠치 마코토가 찌른 장검 끝이 미키의 낫에 가볍게 막힌다. 튕겨진 충격을 그대로 이용해 더욱 무겁게 휘둘러 내린다. 하지만 그 칼날이 어깨에 닿기 전에 미키는 스륵 하고 피해 버린다.

 "으오오오오오옷!!"

 되돌린 장검을 한 순간 잔상만을 남기고 위로 뛰어오른다. 턱을 노리고 베어올린 공격도 낫 손잡이에 받아넘겨져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그었다.

 어째서. 단 일격도 닿지 않아――

 이 녀석이 유키호를!!!!

 "마코토! 너무 앞으로 나갔어! 물러서!!"

 치하야의 필사적인 외침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코토의 시야에는 쓰러뜨려야 할 적의 불타는 듯한 붉은 눈밖에 비치지 않았다.

 "아, 정말!"

 이누미에 올라탄 히비키가 땅을 달린다. 마코토를 감싸려는 듯이 앞으로 나가, 히비키는 미키를 노려본 채로,

 "치하야 말이 맞아! 일단――"

 "이제 그런거, 질렸어."

 우직 하고. 히비키의 몸이 이누미 등에서 굴러 떨어졌다. 눈 깜짝할 새보다 빨리 히비키 등 뒤로 돌아가 칼날을 휘두른 미키는, 재미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 전신의 털을 거꾸로 세우고 있던 이누미가 신기루처럼 흔들리며 사라진다.

 "가나하 상!!"

 쓰러진 히비키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치하야의 절규도 어딘가 먼 곳에서 울리는 잡음 같았다. 그 어느 쪽도, 미키에게 다가서는 마코토의 발을 늦추지 못한다.

 '유키호를――유키호를 잘도……!!'

 '나 있지, 조금이라도 약한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여기 온 거야.'

 그렇게 말하고 덧없이 웃던 그녀와의 만남이 뇌리에 되살아난다.

 유키호는 분명 강해졌다. 분노로 부들거리는 이오리의 앞에 튀어나가고, 격이 다른 힘을 가진 미키조차 처음에 덤볐을 정도로.

 앞으로 더욱 더욱 강해질 터였다. 변해 가는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터였다.

 그런데――

 연두색과 빨강색으로 빛나는 칼날이 격돌하고 눈부신 섬광을 발한다. 밀어붙이는 두 팔에 더욱 힘을 담자, 마코노가 쥔 장검이 두른 불꽃이 점점 커져 간다.

 "확실히 아까보단 훨씬 훨씬 강해. 하지만 있지, 분노나 증오의 검 같은 걸론 미키한텐 절대 안 닿아."

 마코토와 칼날을 맞댄 채로 미키가 중얼거렸다.

 "그런 거, 미키 쪽이 훨씬 훨씬 깊으니까."

 손에 전해져 오던 진동이 갑자기 사라져, 마코토는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는 칼날에 천천히 시선을 떨어뜨린다.

 '어라……. 난 왜, 이런 상태가.'

 덮쳐올 격통은 왜인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사고가 천천히 돌아온다.

 그래. 아이돌이 되면 여자애다운 여자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남이 들으면 웃어 버릴 것 같은 그것은, 분명 마코토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코토를 바보 취급하지 않았다.

 마코토가 동경하는 소녀상이 그대로 구현화한 듯한 소녀.

 마코토에겐 좋은 점이 잔뜩 있다고 웃어 주었던 소녀.

 마코토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었던 소녀.

 가위를 움직이면서 유키호가 했던 말의 의미를 마코토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자신으로 괜찮다면. 소중히 생각하는 소녀를 지킬 수 있다면, 여자애다워지지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힘이 빠진 오른손에서 장검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빛을 잃은 그것은 달그락 마른 소리를 내며 지면에 굴렀다.

 '맞아, 이 검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검이었을 터였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해 주었던 소녀의 방패가 될 것이었다.

 '어째서, 나는.'

 하지만 지키고 싶었던 소녀는 눈을 뜨지 않는다.

 모든 것이 늦고 만 뒤에.

 미키는 낫을 뽑아 냈다. 마코토의 몸이 무너진다.

 

 

23장  한 줄기의 번개

 

 "마코토!!!!!!"

 순식간에 두 사람이 쓰러졌다. 이쪽이 세 명 줄어서가 아니라. 미키의 속도는 하루카가 나타나기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 혼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초조와 공포가 등을 차갑게 쓸어내린다.

 "――준비체조는 끝인 거야."

 몸을 뒤집은 미키가 여러 개의 광탄을 쏘며 달려든다. 날아오는 연두색 빛을 벽을 출현시켜 막으면서 후퇴. 두 장의 벽을 미키를 향해 쏘아도, 미키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그것을 피하고 눈 앞에서 낫을 휘둘렀다.

 "――큿."

 직전에 새로운 벽을 만들어 내지만, 직격한 기세를 꺾지는 못하고 더욱 뒤쪽으로 날려간다.

 단 일격으로 이 위력…….

 흙먼지를 날리며 굴러가 지면에 온 몸을 맞는다. 바로 일어서려던 두 다리가 무너졌다.

 다시 미키는 화살처럼 거리를 좁혀 온다. 몸을 어떻게든 지탱하고 있는 두 팔이 들어올려지지 않는다. 이제――

 미키가 승리의 웃음으로 이를 보였을 때.

 한 줄기의 번개가 나와 미키 사이의 지면을 굉음과 함께 날려버렸다. 미키가 뛰어서 물러나고 낫을 정면으로 고쳐 잡는다. 원형으로 파인 그 중앙에,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똑바로 서! 치하야!"

 늠름한 목소리가 밤의 어둠에 울린다. 긴 머리칼을 흔들며 주변을 둘러본 그녀는 미키를 보고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꽤나 심한 꼴인걸."

 "미나세……상?"

 뒤돌아본 그녀가 무언가 분한 듯이 시선을 떨구었다. 금방 그 눈을 내게 똑바로 향한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난 어떡하면 돼?"

 "그녀를――미키를 멈출 거야. 힘을 빌려줘."

 미나세 상은 손을 뻗어서 날 일으키고 나서, 미키에게 찌르는 듯한 눈을 향했다. 평소의 자신과 자랑스러움을 깃들인 씩씩한 웃음을 그 얼굴에 띄운다.

 "네가 '미키'구나. ――좋잖아."

 "뭐가 뭔지 모르겠는건 미키 대사인 거야! 맨날 맨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방해만 잔뜩!!"

 "안심해도 돼. 이 이오리 짱이 온 이상, 이걸로 마지막이야."

 분노로 얼굴을 찡그린 미키에게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미나세 상의 오른손이 분홍빛으로 빛나는 번개를 둘렀다.

 "드디어 봐주지 않고 쏠 수 있겠――네!"

 공중을 때리듯이 휘둘러진 손에서 미키를 향해 전격이 쏘아졌다. 그것을 낫을 일섬하는 것으로 튕겨낸 미키가 우리들을 보고 질주해 온다.

 "이 정도론 의미가 없나. 덤으로 무시무시하게 빠른걸."

 "속도로는 못 이겨! 방어에 전념해!"

 "그건 어떨까. ……야요이한테는 쏴 놓고 자기한테 쓰는 건 주저한다니, 그런 바보같은 얘기 있을 리가 없겠지."

 중얼거린 미나세 상의 몸이 발끝부터 반짝임에 싸여 간다. ――아니, 이번엔 두르는 게 아니다.

 미나세 상 자신이, 번개가 되어 간다――?

 "될 것 같네. ――어때? 꽤 빠를 것 같지 않아?"

 온몸을 분홍빛 번개로 재구성한 미나세 상이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미키의 등 뒤로 돌아갔다.

 경악의 표정을 띄운 미키는, 하지만 무시무시한 반응속도로 돌아보듯이 낫을 휘둘렀다. 그 몸이 공중으로 튕겨나갔다. 미키를 쫓듯이 분홍빛 번개가 하늘을 달린다.

 미키 주위를 돌면서 미나세 상이 하는 공격을, 미키는 전방위로 낫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계속 방어한다.

 저런 식의 능력 사용――조금이라도 컨트롤을 잘못하면 미나세 상의 사지는 입자가 되어 산산히 흩어질 것이다.

 동체시력을 한계까지 강화해서 어떻게든 쫓아갈 수 있는 속도로 미나세 상은 전격을 쏘고, 주먹과 다리를 내지른다.

 애초에 상대는 그 미키다. 미나세 상도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꼈을 것이다. 무섭지는, 않은 것일까.

 ……아니. 날 일으켜 준 손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약함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듯이.

 지금 미나세 상은 공포나 포기마저 자신의 힘인 것처럼 주먹에 싣고 있다. 그것이 일격을 빠르게, 무겁게 만든다.

 그녀는 저렇게 강했었던가――

 미나세 상이 미키에게 육박해 초근거리에서 전격을 쏜다. 번개에 어깨가 타면서도 한 순간만 움직임을 멈춘 사람 모양의 번개에, 미키가 칼날을 휘둘렀다.

 "위험해!"

 광속의 공방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대지를 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뻗었다. 출현시킨 벽에 낫의 궤도가 빗나가고, 미키는 증오스럽다는 듯이 같은 고도로 향하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쓸데없는……참견, 이야."

 미키와 거리를 벌리고 내 옆에서 번개화를 푼 미나세 상이 어깨를 들썩이며 평소대로의 말을 던졌다.

 평소엔 좀 신경에 거슬리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무척이나 마음이 든든하다.

 "그것 치곤 상당히 괴로워 보이는데?"

 "시끄러. 네가 손을 안 댔으면 지금쯤 저 녀석은 지면에서 울상을 지었을 거라고!"

 이를 드러낸 미나세 상이었지만 금방 표정을 진지하게 만들고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이 번개화는 앞으로 한 번, 덤으로 아주 잠깐밖에 못 갈 것 같아. 네 얄팍한 벽으론 미키 머리에 혹을 만드는 정도밖에 못 할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결정적인 일격을 때려 넣을 거야."

 "얄팍한 벽이라 미안하게 됐네."

 "하지만 그 능력, 쓰게 해 줘. 일단――"

 미나세 상이 제안한 작전에 가볍게 끄덕여 보인다. 과연, 확실히 의표를 찌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지면에서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서있던 너한테도, 하나쯤은 생각이 있겠지?"

 "……귀 좀 빌려줘."

 미나세 상의 번개화. 그것을 가장 적절하게 살릴 방법.

 "――미나세 상, 할 수 있지?"

 "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뭐, 일단은……."

 시선을 동시에 미키에게 향한다. 이쪽에 등을 돌리고 한 손을 뻗은 그 끝에, 맥동하듯이 떨리며 점점 커져 가는 에너지 구체.

 "저걸 막아 내야, 겠지."

 미나세 상 앞으로 뛰쳐나가 양손을 앞으로 내미는 것과 동시에, 미키가 뒤돌아보며 손끝을 우리들에게 향했다. 그녀 등에 있는, 키의 다섯 배 정도 되는 구체에서 수백 줄기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우리들을 향해 허공을 달려 오는 그것을, 내 등 뒤에서 쏘아진 미나세 상의 전격이 차례로 쏘아 떨어뜨린다. 그녀가 다 막지 못한 것은 내 벽으로 튕겨 낸다.

 연두색으로 빛나는 구체 표면을 깎아내듯이 생겨나는 빛의 선이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쏟아진다. 방어를 빠져나간 그것들은 내 팔을 스치고 미나세 상이 작은 비명을 지르게 했다. 하지만――

 에너지를 모두 방출한 구체가 작아져서 사라졌을 때, 온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우리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너무 끈질긴 거야!"

 미키가 소리치면서 붉은 눈을 찡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우리들을 지면에 내팽개치기 위해 돌진해 온다.

 "치하야!"

 "알아!"

 들고 있던 오른손을 내리고 한 장의 벽을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처럼 방어를 위한 세로가 아니라.

 한 변을 미키에게 향하고 눕혀서 출현시킨 벽이 우리들에게서 굉장한 속도로 미키에게 뻗어 나갔다.

 "엿차."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서 그걸 피한 미키는 그대로 올라타, 더욱 가속하면서 낫을 쳐들었다.

 "일부러 길을 만들어 주다니 친절한 거야!"

 물론 그런 걸 위해 준비한 건 아니다. 만들어 낸 반투명한 벽의 표면을 변화시킨다.

 벽에 휘감는 것은, 물.

 "미끄러뜨려서 떨어뜨리려고 해도 소용 없어."

 "그렇지. 하지만 비 오는 날에는 넘어지는 것 말고도, 또 하나 주의하는게 좋은 게 있어."

 속도를 늦추지 않는 미키를 향해 미나세 상이 엷게 웃었다. 그 손이 살짝 벽 위에 올라가는 것을, 우리들 눈을 계속 노려보던 미키는 결국 눈치채지 못했다.

 미나세 상의 손이 고출력의 전격을 만들었다. 물에 젖은 벽 표면을 순식간에 달린 그것은 발밑부터 미키에게 덤벼들었다.

 "윽!!"

 자세를 무너뜨린 미키에게 이어서 또 한 장의 벽을 만들어 똑같이 그녀에게 쏜다. 다음에 그 표면에 휘감은 것은 처음부터 번개.

 "두 번이나 같은 수는 안 통하는 거야!"

 미키에게로 뻗는 그것을 그녀는 몸을 돌려 피하고 날 향해 다가온다.

 "텅 비었어, 미키."

 등 뒤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미키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벽에 붙인 것은 내가 만들어낸 어중간한 전격 뿐이 아니라.

 "으랴앗!!!!!!!"

 번개화해서 순식간에 미키 뒤로 돌아간 미나세 상이 혼신의 주먹을 미키의 명치에 내질렀다. 호흡을 멈춘 그녀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지면으로 떨어져 간다.

 미키를 쫓아 우리들도 지면으로 내려왔다. 저 고도에서 강렬한 일격을 맞고 떨어졌다. 이제 일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연기가 나는 금발을 흔들면서 홍안의 소녀가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째서……!"

 미나세 상의 목소리가 공포와 경악으로 떨렸다. 하지만 추가로 한 발을 날리려던 그녀 손에서는 한 줄기의 약하디 약한 번개가 미키 발 밑으로 떨어졌을 뿐.

 "……미키는, 이 세상을――부숴야만 해."

 "왜 그렇게 되는데! 너……'허니'를 위해서 아이돌이 된 거 아냐!?"

 미키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무슨 얘기지? 미나세 상은 미키에세 똑바른 시선을 향하고 말을 이었다.

 "구교사 로커에 있던 네 일기를 읽었어. 거기에 소중한 마음이 잔뜩 써 있었잖아! 왜 전부 없었던 것처럼 부수겠다느니 하는 거야!!"

 "――허, 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미키의 눈에서,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눈물이 한 줄기 조용히 뺨을 타고 떨어졌다.

 

 

24장  홍안의 소녀는 기도의 낫을 잡는다

 

 '이거 놔! 놓으라니까!!'

 자신이 목이 이렇게나 비통한 소리를 낼 수 있단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 외침은 어두컴컴한 돌로 된 복도에 허망하게 울릴 뿐, 누구 귀에도 닿지 않는다.

 '그만둬, 놓아줘!'

 말 없이 양 팔을 붙잡고 끌고 가는, 강인한 두 남자에게는 닿지 않는다.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

 '부탁이야, 허니……살려줘…….'

 누구보다도 얘기하고 싶은 그 사람에게도, 닿지 않는다. 지금은 분명 멀리 있을, 누구보다도 소중한 그 사람에게는.

  '허니'라 부르며 사모했던, 미키의 전부였던 사람에게는.

 그것은 호시이 미키가 백 년의 잠에 들기 전의 마지막 기억.

 자신이 갇힌 방과 똑같은 깊이의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왜 잊어버렸을까, 미키는 생각한다.

 허니를 지키기 위해 아이돌이 됐는데.

 하지만 잠자는 공주를, 하루카를 쓰러뜨린 미키에게 달려오는 허니를 당시의 학원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억지로 말렸다. 그렇게 미키는, 외톨이. 소중한 사람에게서 떨어져 땅 밑의 어두운 방에 처넣어졌다.

 허니의 얼굴도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데. 자고 있을 때의 기억까지 되살아난다.

 계속 이어지는 어둠.

 

 몇 년이 지났을까. 아니, 몇 년이든 관계 없다. 어차피 미키가 눈을 떴을 때, 거기에 허니는 없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잠자는 공주든 뭐든 되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이런 슬픈 일이 미키 이전에도 계속 반복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분명 앞으로도. 누군가가 어쩔 도리 없는 절망을 끌어안고, 하지만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백 년의 잠에 들게 되겠지.

 그런, 그런 세계는 말야.

'미키가, 끝내야 해――'

 이 연쇄를 끝내야 해. 누군가가 슬퍼하기 전에. 이 손으로.

 그 파괴충동도 틀림없는 미키의 바람.

 아직 보지 못한 누군가를 향한 작은 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조금 형태를 바꾸어버린 것을, 누구도 눈치채 주지 않았다. 그야 요 백 년간, 아무도 옆에는 없었는걸.

 단 한 명의 소중한 사람조차.

 긴 절망의 잠에서 깨어났을 때, 미키는 더이상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과 보냈던 추억조차. 하지만.

 오직 하나 마음에 있던 등불과 같은 소망을 가슴에, 혼자 뿐인 세계에서 미키는 다시 낫을 잡는다.

 눈앞의 두 소녀를 향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채찍질한다.

 칼날이 치하야에게 닿기 직전에 이오리가 그녀와 함께 번개가 되어 단번에 미키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금방 원래 몸으로 돌아온 이오리가 비틀거리고, 치하야가 그 윗몸을 받쳤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조용히 진홍빛 불꽃이 일었다.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와, 미키에게 슬프고도 결의가 담긴 눈을 향하는 것은.

 ――하루카. 이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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