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잠자는 공주 THE HUNDRED LILY-15~18장

댓글: 0 / 조회: 1402 / 추천: 1



본문 - 02-04, 2016 23:15에 작성됨.

15장  지키고 싶은 것

 

 제발, 닿아줘――!

 절규와 함께 뻗은 손이 아즈사 상에게 닿기 전에, 타카네라고 불린 은발 소녀가 거대한 새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 등에 아즈사 상을 태우고 구교사 쪽으로 비상한다.

 순식간에 가속한 새는 커다란 날개를 곧게 펴고 금방 멀어져 간다.

 "꺄악!"

 하기와라 상의 비명에 뒤돌아보고 오른손을 뻗어, 그녀와 미키 사이에 얇은 벽을 만든다. 아즈사 상을 쫓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끌려간 지금, 모두를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이를 악물고 눈앞의 적을 보고 선다. 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 온몸이 피폐해지고 뇌가 경종을 울린다. 나 혼자의 지원으로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 순간 약해진 마음을 홍안의 악마는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목표를 나로 바꾸고 번개처럼 달려든다. 바로 앞에 벽을 만들었지만, 미키는 어깨부터 그것에 돌진해 벽째로 나를 날려 버렸다.

 "크――학!"

 말도 안되는 위력에 가슴을 강타당해 숨이 막힌다. 호를 그리며 떨어지는 내 눈앞에 미키가 다가온다.

 이제 아즈사 상이 순간이동으로 도와주는 일은 없다. 단념에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런 내 몸에 뭔가가 휘감겨 급격한 원심력을 느꼈나 싶더니 마코토 쪽으로 내던져졌다.

 "뭐, 뭐야!?"

 내 의문에 딱딱한 웃음으로 답한 건 리츠코였다.

 "어떻게든 안 늦었나 보네."

 ――어, 리츠코!!??

 "리츠코, 너!"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하늘의 거리를 좁히는 나를 보고 리츠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좀……"

 "아즈사 상한테 뭘 한거야!?"

 "어, 아즈사 상? 어?"

 갑자기 덤벼들어 흔드는 내게 저항하지도 않고, 리츠코는 곤혹스런 표정을 한 채로 머리를 흔들었다.

 "치하야! 그 미묘하게 못미더운 걸 보면 분명 이번에야말로 진짜 리츠코야!"

 "어?"

 마코토의 외침에 놀라서 리츠코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흐응. 네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단 걸 겨우 알게 됐어. 그야 미덥지 못한 교사를 티처라고 부르긴 싫지~."

 "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니까! 진짜야, 믿어줘!"

 리츠코가 조용히 띄운 한냐와 같은 얼굴에, 마코토가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모를 변명을 하면서 공중에서 뒷걸음질쳤다.

 "뭐, 지금은 됐어. 설교는 다 끝나고 나서."

 리츠코가 미키 쪽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다.

 "아, 촌극은 끝났어? 미키, 치트급 적이란 자각은 있으니까 분위기는 읽는다구? 아후우."

 미키는 어디까지나 마이페이스로 하품을 했다.

 "어머 안녕, 미키. 착하구나. 그럼 하나만 더. 너희들, 은색 머리를 한 여자애 못봤어?"

 "아즈사 상이 타카네라고 부른 사람이라면, 구교사 쪽으로 갔어."

 리츠코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래, 점심시간에 야요이에게 약품을 주사했던 리츠코는 그 타카네란 사람이 변신했던 거라고 겨우 깨닫는다.

 하지만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인체 변화를 간단히 행하는 그녀는 대체――

 "그렇구나. 엇갈렸나 보네. 그러니 안 보이지……. 너희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리츠코가 정면으로 미키를 본다. 이제 이리저리 생각할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미키, 너도 기다렸지? 그럼――간다."

 리츠코가 뛰었다. 미키가 낫을 몸 앞쪽으로 들었다.

 그대로 격돌할 거라 생각했던 둘은, 하지만 리츠코 쪽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꾸어 미키 옆을 지나쳤다. 그대로 미키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계속 도망다니기만 해선 미키를 이길 수 없는 거야."

 "글쎄, 어떨까."

 리츠코가 미키 머리 위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런 리츠코를 보고, 미키는 낫을 다시 쥐고 단숨에 돌진했다.

 "윽!?"

 하지만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 것은 미키였다. 처음으로 그녀의 팔에서 눈과 같은 색의 피가 방울졌다. 리츠코는 손끝 하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미키를 내려다보고 있다.

 "뭘, 한거야."

 증오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는 미키에게, 리츠코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손끝에서 무언가 빛나는 얇은 것이 뻗어 있다. 실 비슷한 그것은 점점 녹색 빛을 더해가, 이윽고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리츠코의 열 손가락에서 뻗은 무척 얇은 에너지의 실이 허공을 종횡무진 달려 미키를 둘러싸듯이 쳐져 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기다리는 거미줄.

 "내 고유능력은 말이지, 콕 찝어 이거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리츠코가 하기와라 상을 슬쩍 보았다. 의도를 알아챈 그녀가 끄덕였다.

 "――능력의 세세한 조종만은 옛날부터 유난히 특기란 말이지."

 녹색 빛이 사라지고 다시 에너지의 우리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하기와라 상이 대량의 빛나는 삽탄을 미키를 노리고 쏘았다.

 주위가 보이지 않는 실로 둘러싸여 있어서는 특기인 스피드로 피하지도 못하고, 미키는 하기와라 상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받아칠 수밖에 없다. 전부를 막지는 못하고, 미키의 뺨을, 허리를, 탄환이 스쳤다.

 "윽."

 하기와라 상의 공격을 처리하면서 미키가 얼굴을 찌푸렸다. 리츠코가 이번엔 마코토와 시선을 맞췄다.

 "마코토, 다음이야. 준비해. 이 내가 전장에 있는 한――"

 마코토가 가늘고 긴 검신을 어깨 뒤로,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마코토의 의사를 받아 검신이 흔들리는 불꽃에 휩싸였다.

 "――프로듀스는 맡겨둬."

 마코토가 뛰어나갔다. 하지만 나갈 수 없다면 들어올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근접공격에 의미는 없다. 미키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여유로워 보이는 웃음을 짓고 마코토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 미키의 머리 뒤에 녹색 원이 생겨난다. 왜 저기만 빛나고――그런가!

 마코토가 급격히 가속해서 미키의 등 뒤로 돌아, 원 안으로 몸을 날렸다. 실이 없는 곳을 정확히 빠져나간 마코토는 놀라서 돌아보는 미키를 향해 기합과 함께 장검을 내리쳤다. 코앞에서 칼날은 낫 손잡이에 막혔지만, 충분히 힘을 넣은 마코토의 검은 불타오르는 화염을 미키에게 닿게 만들었다.

 "뜨것!"

 그대로 마코토는 뒤돌아본 미키의 반대편, 새로 빛나는 원 안으로 뛰어들어 우리에서 탈출했다.

 "자, 종연이야."

 실로 만들어진 우리 전체가 빛나기 시작해 직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빛을 발한다. 리츠코가 양손을 각각 꼭 쥐고 팔을 몸 앞에서 교차시켰다.

 채찍처럼 구부러진 실이 모든 방향에서 미키를 덮쳤다.

 "아앗!!!!"

 미키가 다 막지 못하는 측면을, 등을, 녹색으로 빛나는 실이 태웠다. 미키의 비명이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리츠코가 손끝에서 에너지 실을 끊자, 그것은 미키를 옭아맨 채로 지면으로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미키가 지면에 격돌했다.

 "해, 해치웠다!"

 자기 차례는 언제 오나 근질거려 하던 가나하 상은 조금 아쉽다는 듯이 외쳤다.

 "잠깐만, 가나하 상. 그건――"

 하면 안 되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모래먼지 속에서 금발 소녀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앵콜, 인 거야."

 미키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키,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귀찮은 것도 싫으니까――"

 미키가 리츠코를 노려보고 손에 든 낫을 빙글 돌렸다.

 "한 곡으로 끝낼게!!"

 미키가 뛰었다.

 리츠코가 손끝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실을 다시 꺼내, 몇 겹이고 원을 그리며 자신과의 사이에 장벽을 만든다. 공방을 겸하는 소용돌이의 방패.

 미키가 크게 낫을 옆으로 휘둘렀다. 저걸론 리츠코에게 닿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휘둘러진 낫은 연두색 칼날만을 킹 하는 소리를 연주하며 거대화시켜, 방패 째로 베어넘겼다.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뜨는 리츠코의 옆구리를 낫 끝이 도려내고, 그대로 그녀를 아래쪽 지면으로 내동댕이쳤다.

 "안 돼애애애애애애애!!!!"

 하기와라 상의 비명이 어둠을 갈랐다.

 미키보다도 격하게 지면에 패대기쳐진 리츠코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옆구리에서 흐르는 혈액이 웅덩이처럼 퍼져 갔다.

 "그럴, 수가……."

 지금까지 것들 중 가장 큰 절망이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키는 쳐 떨어뜨린 리츠코 쪽을 보지 않고 우리들을 노려보며, 낫을 고쳐 잡았다.

 "있잖아, 이번에야 말로 종연이야. ――박수는?"

 누구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런 우리들에게 실망한 듯이 미키가 한숨을 쉬었다.

 "매너 나쁜 관객에겐 벌을 주는 거야."

 미키가 위쪽으로 든 낫의 칼날이 더욱 커져 간다. 안 돼, 저런 건 막을 수 없어. 그녀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한 벽을 만들어 내려고 올렸던 오른손이 굳었다.

 머나먼 거리에서 미키가 낫을 휘두르자, 거대한 날 부분만이 손잡이를 벗어나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돌진해 온다.

 "그런 게 어딨어――――――!"

 "얘들아! 방어에만 집중해!!"

 가나하 상과 내 절규가 겹쳐졌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두 장의 벽을 출현시킨다.

 연두색으로 빛나는 날은 회전할 때마다 더욱 크기를 키워 갔다. 전원이 격돌에 대비하고――

 먼지라도 터는 것처럼 날려가 버렸다.

 몸 앞이 강렬한 아픔으로 떨리고, 바로 등 뒤에도 격렬한 충격이. 자신이 지면에 뒹굴고 있다는 게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바로 전까지 하늘에 있었는데.

 온몸을 덮치는 격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움직이지 않는 팔로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어찌저찌 무릎을 꿇었다. 방어가 특기인 내가 이 대미지를 입었다. 다른 애들은――

 주위를 보자, 마코토가, 가나하 상이, 하기와라 상이, 나와 마찬가지로 지면에 뒹굴고 있었다. 모두 어떻게든 윗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설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아, 아직 안 죽었네인 거야. 깜짝이야."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 웃음을 띄운 미키가 금발을 흩날리며 떠 있었다. 그 몸에 리츠코가 줬던 상처가 거의 다 아물어 있는 걸 보고, 힘의 차이에 경악한다.

 ……그렇더라도.

 지면에 팔을 짚고 천천히 일어선다. 이제 와선 공포로 다리가 움츠러들던 때가 그립다. 지금은 그저, 엉망이 된 양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게 고작이다.

 그렇더라도.

 "다들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해!"

 미키가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등 뒤에 세 개의 거대한 연두색 삼각형이 생겨나,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한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공격보다도 강한 힘의 파동을 느낀다. 저걸 맞으면 아무리 잘 봐 줘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먹을 쥐고 미키를 똑바로 쳐다본다.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다.

 떠나간 사람이 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나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난 어차피 작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난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가.

 난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황량한 대지, 무너진 학원. 아무도 없어진 그 광경이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뒤에는 지금,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걸로 충분하잖아?

 세 개의 삼각형이 더욱 강하게 빛난 순간, 절망적인 위력의 광선이 일제히 방출되었다.

 있는 힘껏 두 팔을 앞으로 내민다.

 절대로 통과시키지 않겠어――!

 강한 결의가 두 장의 거대한 벽을 구현시켰다. 그 표면이 밤하늘을 찢어 놓으며 다가온 빛의 격류와 격돌했다.

 충격에 대지가 파이고 흙먼지가 날렸다.

 두 팔이 격통에 저릿거린다. 방패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래, 도――!

 "윽, 큿!!!!"

 이를 악문다. 팔에 걸린 부하가 가벼워지고 시야가 트였다.

 "치하야!"

 모두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사한 것 같다. 일단은 막아 냈다. 고통에 팔을 누르면서 시선을 올린다.

 상공에는 초연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미키가. 그만한 걸 쏘고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는다.

 "저게……아이돌의 힘이란 말이야?"

 "그런 거야. 그나저나 그 벽, 과연 깜짝 놀랐어. 얇은 주제에 딱딱하구나."

 "얇으니까, 단단한 거야……."

 허세를 부리며 중얼거린 말이 미키에게 닿았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온 몸의 아픔이 한계를 넘어, 난 바닥을 보고 지면에 쓰러졌다.

 "아, 참고로 이거 연사할 수 있는 거야."

 이걸로 끝이다. 포기가 스멀 스멀 온 몸을 감싸 온다. 이제 나로선 저걸 막아낼 수 없다.

 "다, 들……도망……"

 필사적으로 말을 쥐어짠다. 입술에 묻은 모래가 기분 나쁘다.

 이게 절망의 맛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먹는 건 이런 쓴 모래 같은 게 아니라――

 너무 달지도 않고.

 너무 쓰지도 않고.

 벚나무 아래에서 만난, 소중한 소녀를 떠올린다.

 미안해.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말을 꺼냈는데.

 난 결국 누구 하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치하야 짱."



 상냥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 느낌이 들었다. 그건 마치 봄의 부드러운 산들바람 같아서.

 "열심히, 했을지도 모르지만……결국, 쓸데없게 됐――"

 마지으로 말을 나누는 상대가 환청이라니. 별 의미 없었던 인생엔 딱 알맞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건 없어."

 연두색 섬광이 얇게 열린 시야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보다 강하게 빛나는 진홍색 빛이 폭발했다.

 "어……!?"

 놀란 듯한 마코토의 목소리. 아아,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어.

 ――나도 살아 있어?

 살짝 내 몸이 누군가에게 안겨 들어올려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연다.

 머리에 장식된 두 개의 리본. 그리고 언덕에서 넘어졌을 때 붙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진홍색 꽃.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그 소녀는.

 "하루, 카……?"

 "아아, 다행이다. 이걸로 치하야 짱, 내일은 점심 먹을 수 있겠네."

 만약 이게 꿈속이 아니라면.

 내 시선 끝에서, 하루카가 웃고 있다.

 "잠깐 치하야 짱 좀 맡길게. 이 이상 상처 입히면 나 화낼 거니까."

 "어? 응……?"

 가나하 상이 머뭇거리며 팔을 뻗었다. 그녀에게 상반신을 맡기면서, 미키를 향해 걸어가는 하루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미키와 꼭 닮은 옷을 몸에 둘렀지만, 그 색은 순백.

 하루카가 한 번 뒤돌아보았다.

 "치하야 짱은 내가 지킬게."

 웃음이, 피었다.

 곧바로 하루카는 다시 미키 쪽을 보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하루카가 오른손을 옆으로 뻗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얇고 긴 무기가 출현했다. 그 양 끝에는 불꽃처럼 흔들리는 진홍색 칼날. 하루카의 발이 대지를 강하게 차 날렸다.

 공중에 날아오른 하루카는 똑바로 미키를 향해 갔다. 미키가 본 적도 없는 속도로 하루카에게 다가와 낫을 크게 휘둘렀다. 안 돼, 역시 너무 빨라――!

 하지만 하루카는 미키의 스피드에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반복했다. 무기를 맞부딪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이 자리에서 멀어지려는 듯이 교사 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유성 같은 궤적을 그리며 교차하고 점점 멀어져 간다. 더이상 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가 없다.

 "하루, 카. 어째서……."

 "치하야, 아는 사이야?"

 가나하 상의 물음에 작게 끄덕인다.

 아는 사이, 그렇지.

 내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소중한.

 ――하루카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

 하지만 한동안은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머나먼 저편에서 두 사람이 격돌한다.

 진홍색 빛이 희망의 빛처럼 반짝였다.

 

 

16장  잠자는 공주는 백 년이 지나 재회한다

 

 교사 옥상 위, 호시이 미키는 과거의 '원수'와 대치했다.

 진홍색으로 빛나는 언월도를 잡는 모습은 그 때와 같다. 하지만 눈동자 색은――다르구나. 평범해서 재미 없어.

 하지만 하루카는 하루카다. 눈을 떴을 때부터 가까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꽤나 늦은 등장이다.

 "기다렸어……하루카."

 "돌아가자? 미키. 여긴 우리들이 있어도 되는 곳이 아니야."

 "돌아간다니 어디로 말야? 미키, 이제 어두운 땅 밑은 싫은 거야."

 "이미 우리들이 살아야 했을 시대는 끝났어. 너를 쓰러뜨리면 나도 여기서 사라질 거야."

 "그런 하루카는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200년이나 살아 있는 거야?"

 미키의 물음에 하루카는 괴로운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네가 알아도 되는 게 아냐."

 "아 그래.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는 거야."

 미키는 칼날을 하루카에게 향하고 물었다.

 "미키는 전~부 부숴버리기 위해 여기 있는데. 하루카도 알지, 미키랑 똑같았으니까. 그래서, 지금 하루카는 왜 여기 있는 거야?"

 "그 파괴와 증오의 연쇄를 끝내기 위해서야. 미키, 100년 전 일 중에 뭔가 기억나는 건 있어?"

 "일어나기 전 일은 전~혀."

 "그래. 그럼 아이돌이 되기로 한 계기는?"

 "뭐야, 그게. 다 부숴버리고 싶어서 아냐?"

 "……그렇지. 역시 그렇게 돼 버리지."

 하루카가 쓸쓸하게 중얼거리면서 바닥을 보았다.

 "내가 끝내야 해. 기다려, 치하야 짱."

 달빛이 비추는 가운데, 하루카가 얼굴을 천천히 들고 미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동시에 두 사람이 달리기 시작한다.

 진홍과 연두의 섬광이 지붕 중앙에서 격돌했다.

 하루카는 미키가 휘두른 칼날을 흘려넘기듯이 언월도로 피하고, 곧바로 반대편 칼날로 미키 가슴을 노린다.

 미키가 낫을 세로로 돌리며 뛰어오르자 하루카는 그것을 쫓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선다. 하루카가 있던 장소를, 지붕을 관통하면서 뻗어나온 연두색 칼날이 아래에서부터 베어올렸다.

 그것을 피한 하루카는 다시 맹렬히 지붕 위를 달린다. 언월도를 휘두르는 등 뒤에는 꽃처럼 피어난 몇 개의 진홍색 탄환. 하루카를 넘어 발사된 그것을, 미키는 똑같은 수만큼 만들어 낸 빛나는 삼각형에서 광선을 쏘아 정면에서 막아 냈다. 진홍색과 연두색 섬광이 폭발하고 곧바로 뛰어들어온 하루카의 찌르기를, 점의 움직임을 읽은 미키가 핀포인트로 낫 손잡이로 맞추어 튕겨 낸다.

 그것은 마치 쓸쓸한 무도회 같았다.

 스텝을 밟는 것처럼 하루카가 이동하고, 춤을 추는 것처럼 미키가 양손을 움직인다.

 춤추는 벚꽃잎만이 무대 장식이고.

 일반인은 시인할 수 없는 속도로 계속해서 도는, 화려한 의상을 걸친 두 사람의 공주님. 그것을 보름달만이 조용한 관객으로서 바라보고 있었다.

 

 

17장  그 마음은

 

 교사 옥상이 폭발했다.

 지붕 절반 이상이 텐트처럼 가볍게 날아가고 벽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간다.

 하루카는――

 하루카는!?

 "치, 치하야! 아직 움직이면 안 된다구!"

 "……괜찮아. 이제 걸을 수 있어."

 가나하 상이 몸을 일으키는 나를 돌려 놓으려고 하는 걸 뿌리치고 일어선다.

 떨리는 시선 끝에서, 한 명의 소녀가 부드러운 호를 그리면서 떨어져 간다.

 붉은 빛을 두른 여자 아이. 그 빛이 점점 작아져 간다.

 "하루카!!"

 내딛은 발이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유는 없다. 구르다시피 하며 그녀가 떨어진 곳으로 달려간다.

 "위험해, 치하야!"

 마코토의 제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 사람의 발소리가 나를 쫓아온다.

 하루카는 교사 뒤의 벚나무 밑에 쓰러져 있었다.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달려가 위를 바라보도록 눕혀 어깨를 안았다.

 "하루, 카――하루카!"

 네가 없어지면 난――

 필사적으로 불러도 그녀는 눈을 뜨지 않는다. 하기와라 상과 다른 애들이 걱정스럽게 내 뒤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하루카, 제발, 하루카――"

 천천히, 내 품 안에서 하루카가 눈을 뜬다. 그 눈이 날 비추고 하루카가 조용히 미소를 만들었다.

 "다행, 이다. 치하야, 짜."

 "안 다행이야!"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하루카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교사에서 멀어지려는 듯이 걷기 시작한다.

 "일단 여긴 별로 안 좋아하니까, 좀 더 저쪽으로 가자?"

 벚나무 아래엔 안 좋은 추억이 있으니까. 하루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리를 끈다.

 "아, 그러고 보니 리츠코!"

 사태가 급격히 굴러가는 바람에 완전히 의식 밖에 있었다. 뛰쳐나간 마코토가 금방 리츠코를 등에 지고 돌아왔다.

 역시 의식은 없다. 지금도 피를 뿜어 내고 있는 옆구리의 상처가 안쓰럽다.

 교정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하루카는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코토가 리츠코를 눕히고, 간단한 지혈 처치를 한다. 치료술을 쓰지 못하는 답답함에 입술을 깨문다. 리츠코의 회복력에 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초조한 마음을 어떻게든 억누르면서 우리들은 하루카 주위에 앉았다.

 "일단. 미키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거야. 꽤 힘을 깎았으니까. 하지만 미키를 떨어뜨렸을 때 강력한 방어 결계를 펴는 게 보였으니까, 다같이 지금 가더라도 어떻게 할 순 없을 거야. 미키도 회복에 전념하겠지만 경계는 풀지 마."

 하루카가 우리들을 둘러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치하야 짱한텐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까."

 "하루카. ――미안해."

 "…………응?"

 "나, 너한테 상처주는 말을 해서. 네 기분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

 하루카가 곤혹스러운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저기, 나, 처음엔 능력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물어볼 줄 알았는데, 왜 사과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건 내가 잘못해서――"

 "음, 역시 뭔가 오해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는데, 치하야 짱은 나한테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그럼 왜 오늘 그 언덕에 안 왔던 거야?"

 "아, 그건 정말로 졸려서 졸려서. 그냥 늦잠입니다. 정말 미안해, 치하야 짱."

 뭐――?

 늦잠?

 일단, 날 싫어하게 된 건, 아니고?

 "그것도 포함해서 역시 처음부터 설명해야겠지. 나 있잖아, 아이돌이야――"

 ……그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미키와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200년 전의."

 그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돌이란 건 말야, 백 년에 한 번 잠자는 공주가 눈뜰 때 능력을 가진 누군가에게 그 소질이 주어지는 거야. 잠자는 공주 얘기, 들은 적 있지?"

 모두가 끄덕인다. 이 학원의 누구나가 아는 소문.

 "이건 훨씬 옛날부터 있던 전설인데, 전부 진짜야. 구교사의 벚나무 밑에는 소녀가 잠들어 있고. 백 년동안 눈뜰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놀라서 숨을 삼킨다.

 "이 다음은 전래동화엔 안 나오지만, 눈을 뜬 소녀는 이 세상 전부를 파괴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와. 그걸 멈추기 위해 선택되는 게, 아이돌."

 "그럼 하루카, 짱은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린 적이 있어?"

 하기와라 상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응. 하지만 있지,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리고 힘을 다 쓴 아이돌은 다음 잠자는 공주로서 백 년간 잠들게 돼. 그렇게 해서 계속 아이돌은 태어나고 사라져 갔던 거야."

 "그럴 수가……그럼 하루카는 왜 잠자는 공주가 된 거야!? 그걸 알면서 아이돌이 된 건 아니지?"

 놀라는 마코토에게 하루카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어. 그래도, 그 때의 내겐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었거든. 그럴 수 있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내가 미키의 최대의 공격 전에 생각했던 것과 같은 걸, 하루카는 말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돼 버리는 걸까. 아이돌의 힘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커서, 나도 싸우고 있을 때 일은 지금도 거의 생각 안 나. 그 때 누구를 위해 싸웠던 건지도 잊어버렸어."

 하루카는 쓸쓸한 듯이, 웃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려서, 이번엔 내가 잠자는 공주가 됐어. 백 년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내 안에는 '전부 다 부숴야 해' 라는 마음밖에 없었어. 왜인진 모르겠지만."

 따뜻하게, 부드럽게 웃을 수 있는 하루카가 그런 충동에 지배당하는 모습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나를 멈춰 준 게, 미키였어. 아이돌로서 내 앞에 버티고 선 미키는 날 죽였어."

 "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죽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가 말을 잃는다.

 "그, 그러면 누군가를 되살리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야!?"

 가나하 상이 매달리는 듯한 시선을 하루카에게 향했다. 이것에도 하루카는 고개를 젓는다.

 "그건 아이돌이라도 잠자는 공주라도 못 해. 나에 대한 건 나중에 설명할게. 날 쓰러뜨린 미키는 또 다음 잠자는 공주가 되어서, 백 년간 잠들었어. 그리고 눈을 뜬 게, 지금 우리들이 싸우고 있는 미키."

 그렇구나, 그래서. 잠자는 공주인 그녀는 모든 것을 부수려고――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하루카는?

 "즉 잠자는 공주를 아이돌이 쓰러뜨리는 것으로 세계가 유지돼 왔는데, 이래선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고 말아. 어딘가에서 아이돌이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리는 데 실패한다면 그걸로 끝.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이 이 연쇄를 끊기 위해, 선택받은 아이돌 이외에 잠자는 공주를 타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나."


 "이번에 눈을 뜨는 미키를 쓰러뜨리기 위해, 그 다음 잠자는 공주인 '나'의 유전자를 사용해서 내가 만들어졌어. 간단하게 말하면 클론이란 거지."

 "그럴 수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 우리들을 쓸쓸하게 바라보면서 하루카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 목적은 원래 아이돌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지고, 그걸 파괴충동에 휩싸이지 않고 제어할 수 있고, 그리고 역할을 마침과 동시에 죽는 '아마미 하루카'를 낳는 것이었어. 지금까진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힘은 나오고, 눈 색도 평범한 그대로고, 요즘 들어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고. 정말 있지, 졸려서 견딜 수가 없어. 오늘도 좀 더 빨리 일어나려고 했는데, 아~, 미키 나와버렸구나~ 하고 눈치챘어도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거든. 미안해."

 "그런 게 어딨어! 잠자는 공주를 쓰러뜨리면 볼일은 끝이라니――너무해!"

 마코토가 하루카의 말을 끊듯이 외쳤다. 반대로 나는 점점 냉정해져 간다. 그런가. 그래서 하루카는 일어나지 못하게 된 거였구나.

 "그럴까? 적어도 난 납득했어. 어차피 '나'는 죽은 사람이고, 내 힘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끝낼 수 있으니까. 만약 이번에 내가 실패하더라도 다음 잠자는 공주는 백 명의 '나'를 만들어서 맞붙일 거래. 과연 그거라면 틀림없이 이 연쇄는 끊길 거야. 내가 이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건 일단 미키와 싸우는 실험대.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어. 생각했, 었어."


 "난――아이돌이니까.  '아마미 하루카'니까.


 하루카가 마코토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천천히 내게로 되돌렸다.

 "하지만 있지――치하야 짱하고, 만나 버렸으니까."

 하루카는 포기한 것처럼. 하지만 왠지 즐거운 것처럼 작은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1개월 전에 태어나고 나서 계속 구교사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 세계를 밝을 때 봐 두자고 생각해서, 백 년만에 교사 밖으로 나와 봤더니 벚나무 아래에 여자애가 있었단 말야.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흥미 본위로 다가가 봤을 뿐이었는데. 내일도 그 애는 있을까, 내일은 좀 더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했더니 두근거리기 시작해서."

 혼자, 였던 것이다. 하루카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 원하지 않게 태어나서.

 "처음엔 좀 까다로운 인상이었는데. 그래도 제대로 남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여자애라서. 그 눈을 나 같은 애한테 향해 주는 게 기뻐서. 아아, 난 이 애가 있는 세상을 지킬 수 있구나 생각하니까, 좋아, 열심히 하자, 하고."

 있잖아, 치하야 짱. 하고 하루카는 계속했다.

 "그런 내가 있지, 치하야 짱이 아이돌이 될 지도 모른단 얘길 듣고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 그것도 날 위해 아이돌이 되겠다니. 치하야 짱 탓이 아냐. 하지만 지키고 싶은 여자애가 눈앞에서 슬픈 연쇄에 엮일 지도 모른다니, 용서할 수 없었어. 분했어."

 하루카의 눈이 강한 의지를 발한다.

 "만약 치하야 짱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난 전력으로 미키와 싸웠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절대로 치하야 짱을 아이돌 같은 게 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마코토 짱! 위험해!!"

 "――――――어?"

 하기와라 상이 마코토의 등 뒤를 감싸듯이 서서 양 손을 펼치고 있었다.

 털썩.

 쓰러진 하기와라 상이 계단을 굴러 떨어져 간다. 그 온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연두색으로 반짝이는 빛.

 누구 하나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빛이 떨어져 가고, 풀밭에 엎드린 하기와라 상의 손끝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유키호!!!!!!"

 튕겨나는 것처럼 일어선 마코토가 계단을 떨어지듯이 달려갔다.

 "유키, 호?"

 하기와라 상의 곁에 주저앉아 그 어깨를 안아올린 마코토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일어나――"

 몸을 흔들어도 하기와라 상은 눈을 뜨려 하지 않았다.

 "――일어나, 유키호!!"

 눈가에 큰 눈물방울을 띄운 마코토의 외침이 덧없이 울렸다.

 "유키호!!!!"

 그 절규에 불린 것처럼 하기와라 상의 오른손이 천천히 들어올려졌다. 그 손이 마코토의 뺨에 살짝 닿았다.

 "――토 짱. 나, 마코토 짱, 을 지켜내――을까?"

 힘없이 오른손이 떨어진다.

 "그럴, 수가――"

 가나하 상이 입을 반쯤 벌리고 굳는다.

 난 조용히 일어섰다.

 "하루카. 지금 건 미키지?"

 "……응. 하지만 그녀의 힘이 돌아왔으면 지금 일격으로 전원을 없애버렸을 거야. 조금 더 시간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할 일이 있다면――서둘러."

 "……가나하 상은 여기에 있어. 모두를 지켜줘."

 "아, 알았다구."

 구교사를 향해 달려간다.

 하루카의 얘기를 듣고 생각하는 것은 잔뜩 있다.

 쓰러진 하기와라 상을 보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세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적어도 나는 어디까지라도 냉정해야 해. 행동을 해야 해.

 지금 다른 감정에 머리를 지배당하면, 내 다리도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다. 미키가 돌아오면 이번에야말로 전선은 붕괴한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힘이 회복되고 나서. 그런 물러터진 말을 할 시간은 이제 없다.

 

 

18장  지하로 깊은 곳으로

 

 구교사에 가까워짐에 따라 뭔가 불길하고 강대한 힘의 기척이 강해진다. 이끌리듯이 도착한 곳은 한 그루의 벚나무.

 여기에 오기까지 부서진 기둥이나 폭발한 것처럼 패인 지표의 구멍이 신경쓰였지만, 지금 문제는 이 나무 아래 뿌리 부근에 열려 있는 깊은 어둠이다.

 이 학원에 정말로 지하가 있었다니. 도저히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향해야 할 곳은 분명 이 속인 것 같았다.

 돌로 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간다.

 그 앞에 있는 것은 양초 불꽃만이 흔들리는 어두침침한 복도. 하지만 이쪽이 아니다.

 등 뒤를 돌아보자 이미 열려 있는 문이 나를 집어삼킬 듯이 어둠을 보이고 있었다. 이 안이다. 분명 찾는 사람이 이 앞에 있다.

 문에 발을 들인 순간, 얇은 막을 빠져나가는 듯한 감촉이 있었다. 놀라서 발을 뺄 뻔 했지만 신경쓰지 않고 몸을 들이민다. 문 저편에 있던 것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어둠이 아니었다.

 지면을 통째로 도려내 만들어진 거대한 공간. 그 천장에서는 지표에 선 벚나무의 뿌리가 수많은 팔을 벌리고 있다. 크기가 제각각인 붉은 빛이 맥동하듯이 흔들거리고, 그 중심, 쇠사슬에 묶여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즈사 상!"

 두 팔을 벌리고 붙들려 있는 아즈사 상은 내 외침에도 눈을 뜨지 않는다. 그 아래에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서 있는 칠흑의 드레스로 몸을 감싼 소녀. 이쪽을 향해 있는 등에 흐르는 머리카락은 맑은 은빛.

 "당신, 무슨 짓을!"

 은발의 소녀가 천천히 어깨 너머로 엷은 보랏빛 눈을 내게 향했다.

 "당신, 이란 건 저 말씀이십니까. 시조 타카네라고 합니다. 조금 늦었군요, 키사라기 치하야."

 왜 날 알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은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리츠코로 변장해 아즈사 상을 납치한 그녀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향한다.

 그녀가 뭘 하려고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느껴지는 팽대한 기척은 미키가 두른 것과 거의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뭔가 잘 모르겠는 일이 일어나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늦기 전에 막아야만 한다.

 "때는 왔다――――지금이야말로 탄생(데뷔)의 때――――!"

 은발의 소녀가 아즈사 상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양손을 올렸다.

 그녀를 향해 달려가려던 내 앞에는, 하지만 나를 막으려는 듯이 두 소녀가 좌우에서 나타났다. 어느 쪽도 은발 소녀와 같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아주 비슷한 체구나 얼굴을 볼 때 쌍둥이일까. 유일하게 눈에 띄는 차이는 머리를 묶은 위치. 그리고 입가의 악세서리가 조금 신경쓰인다.

 "오히메찡의 방해는 아미가!"

 머리를 오른쪽에서 묶은 소녀가 외친다.

 "마미가! 그냥 두지 않겠어!"

 머리를 왼쪽에서 늘어뜨린 소녀도 외친다.

 둘이 양손을 벌리고 좌우의 손을 잡자, 비어 있던 그녀들의 손을 잇듯이 같은 모습의 소녀가 또 나타나, 그리고 또. 점점 늘어 간다. 저건 분신을 낳는 능력?

 "으럇!"

 열 명을 넘은 그녀들이 각각 손을 놓고 각각의 입에서 완전히 같은 말을 하면서, 일제히 내게 달려온다. 이래선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곤혹해 할 여유는 없었다.

 아직 만전과는 거리가 먼, 너무 많이 써서 회복되지 않은 능력에 신경을 쓸 여유도 없었다.

 단번에 처리한다!

 양손을 앞으로 내민다. 떠올리는 것은 이 공간을 완전히 막을 정도로 넓고 높은 벽. 생겨난 그것을 달려오는 소녀들을 향해, 손을 대지 않고 단번에 밀어냈다.

 "흡!"

 처음으로 내 공격적인 의사를 받은 벽은, 미끄러지듯이 속도와 질량을 가진 채로 전진해 다가오던 그녀들과 격돌한다.

 "우갸!"

 열 몇 명의 비명과 동시에 한쪽 손을 되돌렸다. 반투명 벽이 쓰러지고 그대로 깔아뭉갠다. 퐁 하는 소리를 내며 분신이 사라지고 원래 있던 둘만이 벽 아래에 남았다. 단번에 단번에를 시도해 봤는데, 의외로 잘 되는 법이구나. 그렇다면――

 기절해서 움직이지 않는 그녀들을 확인하고 그대로 쓰러진 벽을 앞으로 움직인다. 그 끝이 은발 소녀의 등으로 빨려들어가, 그녀를 몇 미터 앞으로 날려 버렸다.

 소리를 내지도 않고 은발 소녀가 바닥에 엎어진다. 하지만 금방 비틀거리며 일어나, 연보라빛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공격에 대비해 방심하지 않고 자세를 잡는다. 아마도 같은 수는 두 번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공격 방법은 제한되어 있다. 다음엔 대체 어떡하면.

 사고를 언덕을 내려가는 바퀴처럼 회전시키고 있는 동안, 은발 소녀는 양 손을 올렸다. 안 돼, 시간이 모자――

 "항복하겠습니다."

 "……어?"

 그녀가 양손을 든 채로 무표정하게 입에 올린 말에 귀를 의심한다. 내가 멍하니 있자 그녀는 조금 떨어진 바닥을 가리켰다.

 "저기에 그린 진 위에서 제 몸이 떨어진 것으로 인해, 술식은 강제적으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계속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무익한 다툼의 필요도 없습니다."

 가리킨 곳을 보니 확실히, 아까까지 그녀가 서 있던 곳에는 복잡한 모양과 문자가 조합된 마법진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그럼 아즈사 상은――"

 "한동안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번에 거리를 좁혀 멱살을 잡는 나를, 그녀는 무표정한 시선 그대로 계속 내려다보았다.

 "어떤 힘을 부었기 때문에, 한 번 그녀 자신의 능력은 전부 뽑아낸 것입니다."

 "웃기지 마! 대체 뭘――"

 "그건 앞으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여기에 온 걸 후회해도 좋다면."

 "……전부 얘기해 주는 거지?"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전부. 하지만 긴 얘기가 될 터이니――"

 은발 소녀는 깊은 욕망을 감춘 표정으로 살며시 웃었다.

 "식당은 아직 건재할까요. 조금 공복을 느낍니다."

 나는 그녀의 뺨을 찰싹 때렸다.



………

……





 물론 식당 같은 데는 가지 않고, 난 눈물을 머금은 시조 상을 끌고 하루카와 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바로 의식을 되찾고 다시 젖꼭지를 문 쌍둥이 소녀들, 아미와 마미도 따라온다.

 리츠코 옆에 눕혀 두었던 하기와라 상은 역시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가나하 상과 마코토. 그리고 앉은 채로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던 하루카. 그 눈이 우리들의 발소리를 듣고 천천히 뜨였다.

 "어서와, 치하야 짱.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타카네 상."

 "1개월만이군요, 하루카.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보는 것처럼 엉망이지만."

 엷게 웃는 하루카 옆에서 가나하 상이 검은 머리를 흔들며 일어섰다.

 "치하야! 아즈사를 구하러 갔던 거지. 왜 그녀석하고 같이 있는 거야!? 아즈사는!?"

 "……아즈사 상은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지금 이 학원에서 어디보다도 안전하단 곳에 그대로 두고 왔어."

 그녀에게 삿대질을 받아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시조 상을 곁눈질하며 대답한다. 아직 아무 것도 신용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하루카. 당신 자신에 대해선 이미 이야기했습니까?"

 "대충은. 내가 아는 건 그렇게 많지 않고."

 하루카의 말을 받은 시조 상이, 그럼, 하고 끄덕였다.

 "미키의 힘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간 시간이 있는 것 같으니, 앞으로를 위해서도 '잠자는 공주'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지요."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