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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공주 THE HUNDRED LILY-12~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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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4, 2016 23:03에 작성됨.

12장  가족을 아끼는 소녀는 절망을 본다

 

 가나하 히비키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의 1층 교실에서, 혼자 물질변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본인도……아이돌이 되고 싶다구!'

 오전에 리츠코에게 배운 것을 떠올리면서 손에 쥔 연필에 힘을 준다.

 물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원래 물건과 비슷한 무언가로 바꾸는 것보다,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는 쪽이 훨씬 더 난이도가 높다. 아직 같은 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을 터였다.

 "오, 히비키! 빠르구나~!"

 마코토가, 그리고 유키호, 아즈사가 교실로 들어왔다. 그녀들을 살짝 곁눈질할 뿐 의식은 흐트리지 않고, 손 안의 연필에 집중하고 마음에 그린다. 그것이 눈부신 빛에 감싸이자, 연필은 훌륭하게 진홍색 장미로 변해 있었다.

 "히, 히비키 짱 대단해요!"

 "흐흥. 본인, 완벽하니까!"

 유키호의 찬사에 우쭐해서 답한다. 손 안의 꽃도 기분 탓인지 자랑스러워 보인다.

 이변을 깨달은 것은, 곧 수업이 시작되려는 그 때였다.

 "어머? 어머 어머~?"

 아즈사가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걸 따라 히비키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직 오후가 막 시작된 참인데도 학원의 하늘은 한줄기 빛조차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듯이 칠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밤이 세계를 뒤덮고 있다. 두번 다시 빛이 떠오를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만큼 깊은 어둠이.

 누군가의 능력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공간을 통째로 조종하는 능력이라니, 교사인 리츠코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자가 있다면――

 또각 또각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온다. 리츠코일까. 일단 그녀에게 물어보면 된다. 아직 친구들도 몇 명 안 왔고, 잡담이라도 하면서 수업이 시작될 시간을 벌어 주자.

 교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히비키가 예상한 그 누구도 아닌 인물이었다. 놀라서 소리를 낼 뻔 한다. 구불구불한 긴 금발. 훌륭하게 균형잡힌 체구. 몸에 두른 것은 칠흑빛 원단 위에 여러 장식이 달린, 마치 무대 위의 공주님 같은 의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붉고 수상하게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

 "이 교실도 그리운 거야~!"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금발 소녀는 밝게 기지개를 쭉 폈다. 졸업생일까. 하지만 그녀는 우리들과 거의 차이 없는 연령대로 보인다. 멍하니 있던 히비키는 물어볼 것을 물어보기 위해, 벌리고 있던 입에서 소박한 의문을 홍안 금발의 소녀에게 던졌다.

 "누, 누구야?"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히비키와 다른 사람들을 눈치챈 듯, 길가의 돌이라도 보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미키는 미키야. 너희야말로 누구냔 느낌."

 거의 흥미가 없는 듯한 말투로 미키라고 이름을 댄 소녀는 히비키와 다른 사람들을 슬쩍 보았다.

 "하지만 뭐, 미키는 이 세계를 몽땅 부숴버려야 하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살벌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일단은 너희들부터 해도 괜찮을까, 생각하는 거야."

 갑자기 폭발한 살이 떨릴 정도의 살기에 갸웃거리려던 고개가, 전신이, 굳는다. 폐조차 그 일을 포기해버린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어――!

  '미키'가 오른손을 천장으로 향하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길다란 봉 같은 무언가가 나타났다. 끝에 붙어 있는 장식은 마이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둥실 떨어진 그것의 손잡이를 그녀가 잡자, 끝에서 형성된 것은 연두색으로 빛나는 에너지의 칼날. 그건 마치 눈앞의 사람의 목숨을 베어 내려는 듯한――

 "안 돼!!!"

 유키호가 큰 소리를 지르고 오른손을 그녀에게 내질렀다. 몇 개의 하늘색으로 반짝이는 빛이 유키호 주변에 나타나 미키의 발 밑으로 화살처럼 쏟아졌다.

 유키호가 발사한 빛은 교실 바닥에 교단 두개 분 정도의 구멍을 파냈고, 발 딛을 곳을 잃은 미키가 그 안으로 사라졌다.

 "얘들아! 나가자!"

 마코토의 필사적인 목소리에 등을 떠밀릴 것도 없이, 온 몸을 굳게 만들었던 공포가 아주 조금 풀어진 틈에 모두가 창문으로 뛰쳐나가 건물을 등지고 열심히 달렸다.

 "저, 저저저저저저거 뭐냐고! ?"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이면서 히비키가 소리쳤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전혀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다.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튼, 저기 있었으면 위험했을 거란 건 분명해."

 옆에서 달리는 아즈사가, 평소의 느긋한 표정을 짓는 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여유를 잃은 험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유키호, 잘 했어. 나 같은 건 무서워서 몸이 안 움직였어……."

 "나도 무, 무서워서, 그래서 순간적으로……. 꽤 깊게 판 다음 한 번 더 묻었으니까, 약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입술을 깨무는 마코토에게,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였다곤 생각되지 않는 유키호가 공포로 얼굴을 굳히고 필사적으로 말을 쥐어짰다.

 교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히비키 일행은 일단 발을 멈추었다. 뒤돌아보자 똑같이 구교사 쪽에서 달려오는 사람 그림자가 있다. 가녀린 몸, 저건……치하야!?

 "다행이다……. 다들 무사했구나."

 "그건 우리들이 할 말이야! 그나저나 왜 구교사에서――"

 "얘기는 나중에 해. 미나세 상과 타카츠키 상이 걱정이지만, 뭔가 터무니없는 일이 이 학원에서 일어나고 있어."

 냉정하게, 하지만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치하야의 말에 질문을 가로막혀서 히비키는 조금 풀이 죽었다.

 "그렇지. 뭐가 일어나도 괜찮도록 할 수 있는 준비는 해 두자."

 그렇게 말하고 아즈사의 몸이 반짝이는 빛에 둘러싸였다. 눈부셔서 눈을 감는다. 다시 천천히 눈을 뜨자, 수업 마지막에 받았던 성의에 몸을 감싼 아즈사가 서 있었다.

 "어머? 어머 어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이건 꽤……."

 "아, 아즈사, 뭔가 야하다구……."

 가슴께를 잡아당기고 하면서 확인하던 아즈사가, 히비키의 말에 얼굴을 붉히고 포동포동한 몸을 움츠렸다. 치하야 쪽에서 신음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아즈사를 따라, 뭐든 해 봐야 아는 법이라고 다들 성의로 갈아입어 본다. 아즈사 것은 보라색이 장식되어 있지만, 히비키 것은 옥색이다. 자신의 옷 상태를 확인해 보고 납득한다. 일단 튼튼한 소재로 돼 있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조금 능력을 더해서 당겨 보아도 간단히 찢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문득 조금 전부터 자신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것에 시선을 떨군다.

 '뭐, 뭐야 이게. 또 마이크 모양이야…….'

 눈앞에 그것을 가져와 손 안에서 굴리자 손에 잡는 부분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덤입니다'

 "몰라!"

 적혀있는 글자에 확 짜증이 나서, 히비키는 손에 들고 있던 그것을 땅으로 내던졌다.

 "그렇게 험하게 다루면 안 돼. 그 나름대로 가치 있는 물건인가봐."

 치하야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덤'을 주워서 꼭 쥐어 본다.

 '응? 몸 안의 힘이 이거에 모여들고 있는 건가?'

 말하자면 처음부터 힘을 한 곳에 집약시켜 두고, 능력을 쓸 때 쓸데없는 프로세스를 생략하는 것으로 효율을 높이고 사용자의 이미지를 강하게, 신속하게 발현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 물건인 모양이다.

 대단한걸, 리츠코. 하지만 쪽지는 짜증나니까 휙 벗겨서 버려 둔다.

 시험삼아 히비키가 소환 능력을 쓰자, 거대한 체구의 개 비슷한 짐승이 대지를 밟고 출현했다.

 "이누미! 오랜만이라구!"

 어라? 하지만 이렇게 크고 무섭게 생긴 얼굴이었던가……? 너무 힘을 많이 줬을까?

 "우와, 대단해……. 엄청 큰걸."

 마코토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자잘한 건 됐어. 하얗게 빛나는 짐승의 털을 쓰다듬자 이누미는 기쁜 듯이 목을 울렸다.

 '너를 불러낸 건 처음인걸……보고싶었다구.'

 서러운 추억이 가슴 속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아마도 이제 시간은 없다. 히비키는 훌쩍 몸을 공중에 띄워 이누미의 등에 올라탔다.

 "날자구!"

 히비키의 말에 이누미가 밤하늘을 뒤흔드는 울음소리를 내며 답한다.

 중력을 무시한 움직임으로 이누미는 하늘을 달린다. 그것을 따라 클래스메이트들도 칠흑의 하늘로 날아 올랐다. 모두의 시선 끝은 교사.

 갑작스럽게,

 교사의 한 구석이 폭염을 피어올리며 날아갔다.

 매일 다니는 배움터의 벽이 무너져 내린다.

 폭발의 굉음은 묵직하게 버티고 있는 벚나무들마저 흔들리게 만들고,

 숨을 멈추고 바라보는 다섯 사람을 공포 밑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역시 유키호의 능력은 금발 소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엔 역부족이었다.

 "안돼! 밖으로 나온다!"

 이누미의 적의를 감추지 않는 으르렁거림과 히비키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천천히 그녀는 나타났다.

 밤하늘에 빛나는 연두빛 칼날과 붉게 불타는 눈동자.

 "모처럼 땅 밑에서 나왔는데 또 묻혀 버리다니, 과연 상상도 못 한 거야."

 하늘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면서 미키는 천천히 히비키 일행 쪽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느긋한 목소리. 하지만 그것만으로 긴박한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일은 없이.

 "다, 당신은 대체……."

 경악과 공포로 치하야가 얼어붙는다. 미키는 역시 흥미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힐끗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뭔가 얄팍한 게 한 마리 늘어난 거야. 청소하기 번거로운 건 싫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추어 미키가 다섯 사람을 순서대로 바라본다. 으음 하고 고민하고서, 그녀는 귀찮은 것처럼 시선을 히비키 일행에게로 되돌렸다.

 "뭔가 후배 같고, 모처럼이니까 자기 소개 해 주는 거야. 미키는 있지, 아이돌이야."

 고해진 경악할만한 진실에 히비키 일행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이돌? 이게!? 어째서――

 "아름다운 희망이라고 써서 미키(美希)야. 하지만 선물하는 건 친절한 절망인 거야."

 미키가 장난스럽게 웃고서, 손에 든 낫 같은 모양의 끝, 빛나는 칼날을 히비키 일행에게 슥 향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분명히 그 애의 기척을 느끼는 거야. 하지만 아직 여기에 없단 건 늦잠 자고 있나? 뭐어, 백 년이나 자고 있었던 미키가 할 말은 아니지만."

 혼잣말처럼 미키는 중얼거리고, 그리고,

 "계속 계속 이 날을 기다렸다고. 그 애가 올 때까지 시간 때우기라도 돼 주면 기쁘겠는걸."

 싱긋, 웃었다.

 '위험해…….'

 생각하기보다도 먼저, 히비키는 이누미의 등을 두드렸다. 모두가 흩어진 한 순간 뒤의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뭐, 뭐야 저거! 갑자기 너무 반칙이라구!!'

 히비키가 탄 이누미의 두 다리가 대지를 밟고, 미키에게서 거리를 두려는 듯이 질주한다. 그걸 쫓아 지상에 내려온 미키는 낫을 어깨 뒤로 휘둘러 올려, 히비키에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했다.

 '도망칠 순 없을 것 같고, 정면으로 가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그렇다면…….'

 이누미가 뒤돌아서 포효하며 미키에게 돌진해 간다.

 "미키랑 정면에서 맞붙으려고 하다니, 너무 멍청한 거야."

 미키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그것을 거의 눈앞에서 확인했을 때쯤, 이누미가 강인한 다리를 용수철처럼 써서 바로 옆으로 뛰었다.

 "옆? 아니――"

 위. 이누미가 스텝을 밟기 한 순간 전에 미키의 머리 위로 높게 뛰었던 히비키는, 미키가 바로 옆에 신경을 빼앗긴 짧은 틈에 거대한 수리를 출현시켰다. 미키가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커다란 수리는 사냥감을 노리는 눈을 빛내며 금발 소녀에게 돌진했다.

 '잡았다――!'

 대지가 푹 파이고 충격이 파문처럼 퍼진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커다란 수리가 사라졌을 때, 하지만 미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히비키는 싸한 느낌과 함께 뒤를 돌아본다.

 다가오는 붉은 눈동자.

 "정말. 지면에 먹혀들어가는 건 콘도르만으로 충분한 거야."

 '거짓말이지!? 반응도 다음 동작도. 모든 게 너무 빨라!'

 칼날이 정확하게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을 때, 목덜미를 뭔가에 붙잡혀서 히비키의 몸이 휙 뒤로 끌려갔다. 간발의 차로 낫이 허공을 가른다.

 머리와 몸이 아직 붙어 있다는 데에 안도하면서 뒤돌아보니 백은의 털이. 이누미가 히비키를 그 큰 입으로 매달듯이 물고 있었다.

 "더, 덕분에 살았다구……."

 이누미는 다시 미키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히비키의 감사를 발을 멈추지 않고 받았다.

 첫 번째 사람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해서 언짢은 표정을 짓는 미키는, 시선을 위로 향했다. 미키보다 빈약한 소녀가 손에 쥔 뭔가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부탁이야――"

 유키호를 둘러싸듯 생겨난 수많고 작은 푸르스름한 빛. 아까도 그녀가 출현시킨 그것들의 하나 하나가 삽 모양이란 것을 히비키는 깨달았다. 유키호가 마이크를 기세 좋게 미키에게 향했다.

 "――맞아줘!!"

 소녀의 기도를 받아, 몇 개의 삽이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미키를 향해 하늘을 달렸다.

 미키가 뛰어간다. 그녀가 서 있던 지면을 발사된 삽이 파냈다. 연이어 다가오는 그것들을, 마치 그녀는 댄스 스텝이라도 밟는 것처럼 가뿐히 피해 간다. 교정에 몇 개쯤 구멍이 파였지만 하나도 미키를 스치지조차 못한다. 그녀의 발이 지면을 크게 발로 찼다. 낫을 치켜들고 유키호를 향해 도약한다――

 "빨라!"

 유키호의 비명. 빛나는 칼날이 다가오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유키호 짱!"

 유키호 뒤에서 순식간에 나타난 아즈사가 그녀를 끌어안고 다시 사라졌다. 확실한 죽음을 선사할 예정이었던 칼날은 다시 허공을 옆으로 갈랐다.

 "……알아서 무덤 구멍을 준비해 주다니 배려가 깊은 거야. 그러면 바로 베여서 묻혀 버리는 편이 편할 텐데."

 미키가 재미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그 등 뒤에서 다가오는 것은 마코토.

 "하아아아아아아아앗!!"

 기합과 함께 휘두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작열하는 듯한 붉은 검신. 마이크를 손잡이 삼아 나타난 검신이 마코토의 불퇴의 결의를 받아 화염을 두른다.

 "흐읍!!!!"

 키잉, 마코토의 검신이 더욱 강하게 빛나고, 일섬.

 내질러진 그것을 낫 손잡이로 받아낸 미키는 확실한 희열의 웃음을 그 얼굴에 띄웠다.

 곧장 물러선 마코토는 그대로 기세를 몰아 몸을 돌려, 다시 미키 품으로 돌격했다.

 교차하는 빨강과 연두빛 칼날. 하지만 이것도 미키를 한 번이라도 맞히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하앗!!!!"

 세 번째 격돌한 둘의 무기는 서로 날을 밀어내려고 공중에서 끼긱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로 가까이에 미키의 붉게 빛나는 눈. 그것을 세게 노려보지만, 힘겨루기에서 진 마코토는 휘둘러진 낫의 충격에 튕겨나가 뒤쪽으로 날아갔다.

 곧바로 미키에게 달려든 것은 또다시 이누미에 올라탄 히비키였다. 목을 노리고 빛나는 엄니를 미키는 훌쩍 피하고서 다시 하늘위로 뛰어올랐다.

 '아직 멀었어――!'

 마이크를 짐승처럼 입으로 물고, 히비키는 양 손바닥을 미키에게 향했다. 나타난 것은 두 마리의 큰 뱀. 구불거리며 미키를 쫓아 엄니를 드러낸다.

 그 머리를 낫으로 양단하고 미키는 더욱 깊게 웃고서, 허공을 차며 히비키에게 달려든다.

 '위험해, 역시 너무 빨라――!'

 상처를 입을 걸 각오하고 히비키는 고속으로 다가오는 미키를 올려다본다. 하지만 그 몸이 공중에서 무언가에 부딪히고 다시 하늘 위로 튕겨나간다.

 그 반투명한 벽을 히비키 앞에 출현시킨 건――

 '치하야!'

 오른팔을 옆쪽으로 똑바로 뻗은 치하야가 험악한 표정으로 미키를 바라본다.

 그녀쪽으로 가자, 유키호와 손을 잡은 아즈사가 눈앞에 순간이동으로 나타났다. 마코토도 어깨를 누르며 강한 결의를 눈에 깃들이고 전장으로 돌아온다.

 "……흐응."

 그런 그녀들을 내려다보며 미키는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하는 거야. 특히 거기 검 든 애."

 미키가 마코토를 가리키며 싱긋 웃는다.

 "설마 아이돌도 아닌 애가 미키랑 세 번이나 검을 부딪히고도 조각조각나지 않을 줄이야. 깜짝 놀랐어. 그런거 미키, 좋아해."

 "그, 그야 그렇다구! 본인들은 아이돌을 목표로 여기 있는 거니까!"

 히비키가 소리치자 미키는 그쪽엔 별로 흥미 없어 보이는 눈을 향했다.

 "그런 좋은 게 아닌데 말야, 아이돌. 아, 그렇지. 거기 본인 짱――"

 "보, 본인……?"

 갑자기 미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히비키가 몸을 긴장시켰다.

 "그거, 평범한 소환능력이 아니지. 그 사역마들한테선 생기가 안 느껴지는걸."

 치하야가 놀란 듯이 히비키를 봤다.

 "왜 죽은 생물을 굳이 꺼내서 사역시키는 거야――사령마술사(네크로맨서) 짱?"

 히비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 그녀가 쓰는 것은 죽은 생물을 일시적으로 영계에서 불러오는 능력. 그들에게 있는 것은 생전에 가진 의식의 잔재 뿐.

 "시, 시끄럽다구! 아이돌이 되면 다들 제대로――"

 "살아 돌아오거나 하진 않는데? 뭘 기대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이돌인 미키가 가르쳐 줄게. 이 세계의 어떤 강대한 능력이라도, 무언가를 되살릴 순 없는 거야."

 그럴, 수가.

 과거에 자신과 함께 생활하고, 그리고 임종을 지켜보았던 가족들.

 그들과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히비키는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게――

 "뭐, 백 년 쯤은 아무것도 변함없이 지낼 순 있지만. ――아이돌이라면 말야."

 소생 능력 같은 게 없다면. 그렇다면 왜 자신은 여기에 있는가. 뭘 위해 지금, 싸우고 있지――?

 이누미가 쓸쓸한 눈으로 히비키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돌 아이돌 시끄러운데, 미키, 넌 뭘 하고 싶은 거야?"

 치하야가 미키를 똑바로 올려다본다.

 "아까도 말했잖아. 미키는 이 세계를 몽땅 부숴버려야 해. 그럼, 슬슬 수다도 끝이구나."

 미키가 손에 든 낫을 빙글 돌렸다.

 '미키가 온다. 하지만 본인은――'

 "가나하 상."

 탁한 눈을 들어 옆을 보자, 치하야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천천히 그 손을 잡는다.

 '따뜻하다…….'

 예전에 눈을 감고 자신의 품 안에서 점점 차가워져 갔던 가족들.

 '이제 그런건 싫어.'

 주변을 둘러본다. 마코토의, 유키호의, 아즈사의, 그리고 치하야의 눈이 결의에 불타고 있다. 하지만 잡고 있는 치하야의 손에선 떨림이 전해져 와서.

 '무서워. 무섭지만.'

 손을 꼭, 맞잡는다.

 '모두가 없어지는 쪽이 훨씬 무서워! 이제 그런 경험은――'

 미키가 공중을 차고 떨어져 내린다.

 히비키는 그것을 확실히 보고, 소중한 가족들을 떠올린다.

 '부탁이야, 힘을 빌려줘――!'

 그들이 짖고, 날개를 펼치고, 엄니를 빛내 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섯 개의 인영이 격돌한다.

 긴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13장  약한 자의 레종 데트르

 

 진홍빛 눈이 이쪽을 보려 하지도 않고, 빛나는 잔상만을 남기고 바람처럼 옆을 빠져나갔다.

 어두침침한 복도에서 미나세 이오리는 무릎을 꿇었다. 지나친 공포로 일어설 수가 없다.

 단지 옆을 지나쳐갔을 뿐. 그것만으로 절망적인 힘의 차이가 전해져왔다. 저런 걸 멈추는 건 절대로 무리다――

 하지만 방금 녀석의 목적은? 대체 왜 이런 곳에.

 그러나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만약 그 힘이 나쁜 방향으로 행사된다면 이 학원은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걸 깨워 버린 건 나야――'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이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다리가 떨린다. 하지만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야 해――

 비틀거리며 일어나, 이오리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복도를 달려고 나선 계단을 오른다. 자신의 숨소리와 신발이 돌계단을 밟는 소리가 머릿속에 시끄러울 정도로 울렸다.

 그렇게 지상으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오리는 눈을 의심했다.

 '설마 아직 지하인가……?'

 그럴 리는 없다. 눈앞에 있는 건 분명 아까의 벚나무다. 하지만 주변이 이상하게 어둡다. 너무 어둡다.

 그리고 울리는 폭발음.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는 불꽃. 뭐가, 뭐가 일어나는 거지?

 '역시, 나 때문, 에…….'

 의식과는 관계 없이 이가 짧은 간격으로 소리를 낸다. 일단은……리츠코! 리츠코에게 알려야 해!

 구교사 그림자에서 나가려고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 이오리는 뒤돌아보았다.

 흔들 흔들 바닥을 보며 나타난 것은, 위쪽에서 머리를 두갈래로 정리한 작은 몸집의 소녀.

 "야요이……? 야요이 아냐!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하지만 야요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몸이라도 안 좋은 것인지 당황하며 다가가 그 어깨를 안는다. 하지만 왜 구교사에 야요이가? 그보다 왜 그 촌스러운듯 귀여운 성의를 입고 있는 거야!?

 "나, 나 때문에 큰일이 나서……. 아까까지 리츠코랑 얘기하고 있었지, 리츠코는 어디 있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쉴틈없이 말하자, 야오이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 눈동자는 불타는 듯한 빨강.

 "잠깐만, 어떻게 된 거야, 그 눈. 역시 어디 몸이――"

 툭, 하고. 야요이는 이오리를 밀쳐냈다.

 "엑……?"

 비틀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밀쳐져, 애초에 야요이가 자신을 밀쳐냈다는 사실에, 천천히 다가오는 야요이를 멍하니 올려다본다.

 "야요, 이……?"

 그녀가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이오리가 뛰어오르듯이 뒤로 물러서자 야오이의 주먹이 지면에 파고들어,

 지면이 폭발했다.

 "뭐……?"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사고가 쫓아가지 못한다. 야요이에게 저런 힘은 없었을 텐데. 덧붙여서 저런 걸 맞았다간 조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야요이는 그 힘을 이오리에게 사용했다.

 완전히 평소의 야요이가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제정신을 잃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발에 제대로 힘을 넣는다.

 어떻게든 해서 평소의 야요이로 되돌려야 해.

 하지만 어떡하면 될까.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이 학원에 오고 나서 모르는 것, 못 하는 것 투성이야. 아이돌이 되는 것도, 아버지에 대한 것도, 문 안에서 나온 그녀석도――'

 야요이가 양손에 굳게 주먹을 쥐고 돌격해 온다. 그것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이오리의 오른손이 번개를 둘렀다.

 '하지만 야요이, 너 만큼은――!!'

 결의를 담아 야요이의 발 밑에 전격을 쏜다. 푹 파인 지면에 야요이가 밸런스를 잃고 머리부터 격돌하는 걸 보고, 거리를 둔다.

 구교사 벽을 등지고 움직이지 않는 야요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곧 양 팔을 짚고 일어선 야요이의 눈은, 분노로 붉은 빛을 더했다.

 '저 정도의 충격으론 안 되나――'

 야요이의 고유능력은 신체 강화였을 것이다. 왜인지 평소보다 강한 능력의 발동을 느끼고는 있지만, 전격을 제대로 맞히면 야요이의 몸은 그냥 끝나지 않겠지.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야요이가 다시 거리를 좁혀 온다. 그녀의 발밑에 계속해서 전격을 쏘지만, 이제 다 간파했다는 듯이 그것 전부를 피한다.

 한 순간 사라진 것처럼 조였던 야요이가 눈 앞에 나타났다. 당황하며 팔을 교차시키고 강화의 힘을 부었지만 충격이 직격해서, 이오리는 등부터 날아갔다.

 "……아야!"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 어떻게든 양 다리로 지면에 착지한다. 야요이의 불타는 듯하면서 차가운 눈이, 그런 이오리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건 아픈걸, 꽤 해 주잖아……. 아, 그러고 보니 저 옷.'

 눈앞의 야요이를 보고 아픔을 경감시킨다는 성의를 자기도 나누어 받았던 걸 떠올린다. 리츠코에게 들은 대로 나타나라고 염원하자, 눈부신 빛과 함께 이오리의 몸에 걸친 것이 변화한다.

 '아, 과연. 이거라면 확실히――'

 사고를 계속할 시간은 없었다. 거대한 기둥 하나를 부러뜨려 손에 든 야요이가, 어, 부러뜨, 어――!?

 그것을 끌어안고 붕 휘두른다. 더 기둥을 파괴하면서, 그 끝이 이오리의 뺨을 스쳤다. 폭력적인 질량 덩어리가 다시 한 번. 그것을 구르듯이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불공평한 힘에 경악한다.

 "우~! 웃!!!!"

 야요이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굵고 낮은 소리와 함께 돌기둥이 이오리를 덮쳤다. 공중제비를 넘으며 피하고 양손 사이에 번개를 출현시킨다.

 "그만해, 야요이! 눈을 떠!!"

 이오리의 필사적인 외침도 야요이에겐 닿지 않는다. 이오리는 손 안의 전격을 바라보고――

 '역시 안 되겠어…….'

 능력으로 만든 전격을 없애고 야요이의 공격을 피한다.

 이 힘은 눈앞의 벽을 부수겠다는 의지. 그 앞에 있는 무언가를 붙잡기 위한 이오리의 힘.

 하지만 어떤 벽이라도 부숴 버리겠노라고 그저 강하게만 만들어 왔던 전격은, 야요이를 지킬 수 없다――

 몇 번째일까. 자신의 무력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분함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이 힘은 소중한 사람 하나 구할 수 없단 말인가.

 절망에 붙잡힌 다리가 아주 잠깐 멈추었다.

 야요이가 휘두른 일격이 드디어 이오리의 관자놀이를 잡았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벽에 내동댕이쳐져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린다. 입 안에 위화감을 느끼고 뱉어 내자 진홍색 피가 바닥을 더럽혔다.

 기둥을 놓고 야요이가 다가온다. 여기서 끝인가. 포기가 붕 뜬 머리를 지배하고 눈을 감았다.

 난 뭘 위해 살고 있던 걸까. 뭘 위해 이 학원에 있던 걸까.

 문득 1년 전의, 첫 수업을 떠올린다. 리츠코의 목소리가 뇌리에 되살아났다.

 '능력의 근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나 동경, 소망, 기도 같은 강한 마음이나 의지의 힘이야.'

 계속 높은 곳만을 바라봐 왔다. 강함만을 추구해 왔다. 그것이 내가 나이기 위한, 존재의 증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마음이나 의지에 따라 능력은 얼마든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해.'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계속 강함을 추구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아래를 보면 능력은 약해질 뿐이란 뜻이라고.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바람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원하는 소망은 무엇인가.

 내 바람일 텐데 난 어찌되든 상관 없다고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는 충동은.

 위가 아니다. 아래도 아니다.


 단지 눈앞의 누구보다 소중한,


 눈을 뜬다.

 정확하게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진 일격을 구르며 피한다.

 설령 땅을 기더라도.

 벌떡 일어나 오른손을 하늘로 뻗고, 소리 높여 고한다. 들어올린 오른손에 부드럽게 맥동하는 전격이 휘감긴다.

 "감사하도록 해, 야요이! 널 구하는 건 이 미나세 이오리 짱이라고!!"


 누구보다도 소중한 너와,


 야요이가 지면을 차고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그녀를 향해 오른손을 뻗는다.

 "보여줄게! 최강 이오리 짱의, 최약의 일격!"

 출력을 잘못 조절하면 야요이의 몸은 새까만 숯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전부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전격만 만들어 왔다.

 높은 곳을 계속 목표로 하기 위해.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길은 이제 혼자서 나아가고 싶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옆에 있어 주는 행복을 알고 말았으니까.

 네가 옆에 있어 주니까 지금 나는 위를 목표로 할 수 있는 거야.

 그래. 난 어떤 의미로 약해져 버린 것이겠지.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이.

 ――할 수 있지, 미나세 이오리!

 강하게, 강하게 바란다.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은 야요이를 기절시킬 정도의 단 한 줄기의 빛.

 너와 만나고 나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너와 계속 걷고 싶으니까.


 이오리의 바람이 손끝에서 쏘아졌다.

 가느다란 번개는 야요이를 꿰뚫고,

 그녀를 한 순간 공중에 못박은 후,

 그 몸은 중력에 이끌려 단단한 땅으로 떨어졌다.

 "야요이――――!!!!!!"

 이오리의 절규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14장  남겨진 헤메이는 사람은 백지 지도에서 무엇을 보는가

 

 섬광이 밤을 찢어 놓는다.

 미우라 아즈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상처 없는 사람 같은 건 없다. 아니, 단 한 사람――

 보름달을 등지고 빛나는 금발을 날리는 소녀를 분함에 바라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곤 해도 이 차이는 뭐란 말인가.

 순간이동을 구사해서 모두를 치명적인 일격으로부터 구하길 계속하던 아즈사의 이마에도 피로로 인한 땀이 배어나왔다.

 앞으로 몇 번이나 능력을 쓸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뭔가, 뭔가 전황을 바꿀 만한――

 "주역을 안 보고 딴 생각이라니, 꽤 실례인 거야."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아즈사는 경악의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눈을 돌린 건 1초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새――

 미키가 낫을 휘두른다.

 '이동할 곳의 이미지 고정을 할 시간이――'

 아즈사가 작열하는 아픔을 각오한 순간. 한 마리의 새가 등 뒤로 돈 것 같았다.

 바로 눈 앞을 칼날이 지나간 것과,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혀 뒤로 몸이 잡아당겨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리츠코!?"

 마코토가 놀라서 외쳤다. 아즈사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자 분명 그녀들의 교사였다. 평소의 안경이 어두운 밤에 수상하게 빛난다.

 감사 인사를 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리츠코는 아즈사를 붙잡은 채로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목에 두른 팔을 점점 세게 죄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티처 리츠코……어째서!"

 아즈사의 신음 소리에 리츠코는 웃음을 흘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리고 나타난 얼굴에 아즈사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오랜만이군요……언니."

 "――타카네 짱!?"

 풍성한 은발에 요염한 보랏빛 눈동자. 그녀의 이름은 시조 타카네였다.

 이전 아즈사는 치하야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했지만, 그녀에겐 말하지 않는 것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이미 치하야는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아즈사가 잃은 소중한 사람에 관한 것.

 그리고 두번째가 은발의 소녀와의 관계.

 아즈사에겐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은 목걸이만을 남기고.

 실의의 바닥에 빠져 있던 아즈사는 각지를 전전하길 계속했다. 어딘가 아직 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쩔 도리 없는 소망만을 의지해.

 그 모습을 찾는 여행 끝에서 완전히 초췌해진 아즈사는 이 학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교사로 이끌어 준 것이 은발의 소녀――시조 타카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입학식까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 속에서, 아즈사의 상처를 천천히 치료하고 옆에 있어 주었던 것이 타카네였다.

 어느샌가 아즈사는 타카네를 '타카네 짱'이라고 친애를 담아 부르게 되었고, 타카네 또한 아즈사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하지만 아즈사가 정식으로 학원에 입학한 봄――

 타카네는 그 모습을 감추었다.

 아즈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정확히는, 성미 까다로운 룸메이트와 둘 뿐.

 '난 누군가를 계속 바라고 있던 걸지도 몰라.'

 잃어버린 사람을 대신할 누군가를.

 그것은 가장 괴로웠을 때 옆에 있어 주었던 타카네일지도 모르고, 철가면 뒤에 얼핏 얼핏 보이는 상냥함이 귀여운 치하야일지도 몰랐다.

 목걸이를 준 사람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사랑을 했다. 그 양 팔에 안겼던 따스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그것 이외의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사랑의 형태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이제 아즈사 자신은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쪽을 향해 화살처럼 돌진해 오는 치하야를 보고 엷게 미소짓는다.

 '타카네 짱도.'

 치하야가 여태껏 들은 적 없는 큰 소리로 아즈사의 이름을 부른다.

 '치하야 짱도.'

 치하야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녀가 변화로 돌려준 목걸이의 잠금쇠 부분의 세세한 장식은, 그 사람에게 받았던 것과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아즈사는 그것을 알고 있다.

 '확실히 '좋아'했어.'

 그리고 그걸 원래대로 돌리자곤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것과는 다르지만, 이 목걸이는 치하야가 만들어 준 또 하나의 새로운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의식이 멀어져 간다.

 그 때 울지 못했던 자신을 조용히 안아 주었던 사람 품 안에서.

 아즈사의 사고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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