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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공주 THE HUNDRED LILY-3~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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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4, 2016 22:53에 작성됨.

3장  하늘로 높은 곳으로

 

 "그럼 이제 부유술도 응용에 들어가 보자!"

 리츠코가 교단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반대편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기합을 넣으라는 거겠지. 하지만 오늘은 몸이 무겁다. 어젯밤 재채기를 잔뜩 한 덕분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기는 아닐 텐데……누가 내 얘기라도 하는 걸까.

 "이제 슬슬 물체를 부유시키면서 다른 액션을 추가하는 것도 될 거야. 야요이, 잠깐 해 보겠니?"

 지명된 타카츠키 상이 에에~ 하고 자신 없는 소리를 내고는, 머뭇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다.

 "으음, 뭘 하면 되나요?"

 "저기 있는 걸 부유시키면서 뚜껑을 열어 봐."

 리츠코가 가리킨 것은 교단 위에 놓인 사탕이 든 유리병이었다. 뚜껑은 코르크로 돼 있다.

 그걸 슬쩍 보고 나서, 타카츠키 상은 도움을 바라는 눈으로 내 쪽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지는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두 다리는 바닥에 붙인 채로 응원하는 말만을 전한다.

 "타카츠키 상이라면 괜찮아, 힘내."

 "――! 네!"

 금방 웃는 얼굴로 돌아온 타카츠키 상은 검지손가락으로 조용히 병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병은 떠올라――

 퐁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코르크와 병이 분리됐다.

 "해, 해냈어요!"

 폴짝폴짝 싱글벙글 내 허리에 두 팔을 두르면서 올려다보는 타카츠키 상의 표정에, 큥 한다. 역시 타카츠키 상이야.

 "타카츠키 상, 귀여워."

 아차. 마음 속으로 하려던 말이 무심코 반대가 됐다. 빠득 하고 이를 악무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치하야! 야요이는 네 게 아니라고!"

 "딱히 미나세 상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오리 짱, 치하야 상, 싸우면 떽이에요. 전 둘 다 정말 좋아해요~."

 미나세 상의 얼굴이 추욱 칠칠치 못하게 늘어진다. 타산지석이라고 하지만, 난 저런 표정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미나세 상은 야요이에게서 나에게로 시선을 되돌리고,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돌렸다.

 "흥. 성적 최우수도 야요이도, 너한텐 안 넘길 거야."

 왜 그 둘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도 날 향한 미나세 상의 적개심은 절호조인 것 같다.

 "자, 자. 지금은 수업중이야. 그보다 너희들, 멋대로 자기 자신한테 부유술 쓰지 마. 지금부터 그 시간은 충분히 줄 테니까."

 질책을 받고 가나하 상과 하기와라 상이 바닥으로 돌아왔다. 마음은 이해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띄울 수 있을 정도까지 온 것이다. 들떠도 어쩔 수 없단 거겠지.

 "이 병을 띄우고 열 수 있는 사람부터――"

 리츠코가 손에 든 봉을 휘두르자, 교단 위에 사람 명수만큼 타카츠키 상이 연 것과 같은 병이 나타났다.

 "밖에서 자기 자신을 부유시키는 걸 허가할게!"

 다시 팔이 호를 그리고, 등 뒤의 창틀을 가리키자 창틀에서 유리가 소리도 없이 빠졌다.

 여긴 4층. 저기에서 뛰어나가서 부유에 실패하면 그냥 끝나지 않는다.

 금방 퐁 하고.

 "니히힛. 가자, 야요이!"

 순식간에 과제를 클리어한 미나세 상이 타카츠키 상의 손을 잡아 끌면서 뛰어간다. 하지만 이 교실의 한 장짜리 창문은 면적이 좁다. 미나세 상도 손을 잡은 채로는 창틀을 못 빠져나갈 거란 걸 알았는지, 타카츠키 상의 손을 놓고 벽 앞에서 뛰어올랐다. 그러자 그 몸이 물리 법칙을 넘어서 바깥으로 날아갔다. 스커트 밑단이 휘날리고, 몸을 반회전시키면서 하늘로. 고도를 낮추지 않고 떠오른 미나세 상은 이쪽을 돌아보고 평소처럼 자신만만한 웃음을 띄웠다.

 "할 수 있어, 야요이. 날아봐!"

 타카츠키 상은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었지만 미나세 상이 부르자 얼굴을 들었다. 뿅 하고 두 다리가 동시에 바닥에서 떨어지고, 창틀을 넘은 타카츠키 상의 몸은 그대로 중력에 이끌려 머리가 벽 너머로 사라져――

 곧 둥실둥실 원래 있던 높이로 돌아왔다. 그 손을 미나세 상이 꼭 붙잡았다.

 "으에에,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아냐, 안 그래. 봐봐, 됐잖아?"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모두가 다시 교단을 보았다.

 "본인도!"

 "나도!"

 "저, 저도!"

 "어머 어머~?"

 금방 몇 개의 병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가나하 상이, 마코토가, 하기와라 상이, 아즈사 상이 창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치하야, 너는?"

 리츠코가 물어볼 것도 없다. 주어진 과제는 모두 해결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떠오른 병에서 코르크를 뽑아내고, 창문 너머로 자신의 몸을 던진다.

 떨어진다.

 그것은 여태껏 맛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시간이 조금 천천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떨어진다.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공포 때문인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부터,

 떨어진다.

 지면이 가까워졌을 때, 온 몸이 떠오르는 이미지. 다시 몸에 처음 느끼는 감각이.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받쳐지고 끌어올려지는 듯한.

 능력은 놀기 위해 갈고 닦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치하야! 그대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구!"

 가나하 상이 공중에 뜬 채로 이쪽으로 온다.

 "괜찮아. ……뭔가 재밌어져서."

 "아, 치하야가 재밌다는 말을 하니까, 좀 신선해."

 실제로 이런 건 쓸데없는 감정이다. 내 목적을 위해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젯밤 조금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그 필요 없을 것들도 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손을 뻗어 봐도 될지 모른다고.

 재밌는 건 재밌다고.

 귀여운 건 귀엽다고.

 그렇게 느끼는 게 내 심신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활력에 도움을 준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런 나를 용서해 줄까――

 "다들 문제 없이 떠 있을 수 있지? 그럼 다음은 자유행동으로 할 테니까, 수업시간 전부 써서 부유의 완벽한 컨트롤을 몸에 익히도록 해!"

 리츠코의 지시와 여기저기서 나오는 환성에 의식이 돌아왔다.

 물리적인 지지 없이 지상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상황에, 다시 가슴이 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늘을 날아 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떠받쳐지거나 끌어올려지는 느낌이 좀 거슬리는 걸. 더 자연스럽게 뜰 수는 없을까.

 조금 시행착오를 거쳐서, 떠오르는 데 필요한 벡터를 온 몸에서 균등하게 내보내는 방법을 발견하고 위화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게 됐다. 아예 중력이나 공기 구성까지 지배하에 둘 수 있다면 더 기분 좋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마코토 짱, 나 있지,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면 해 보고 싶은 게 있었어!"

 "뭔데, 유키호?"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기와라 상이 눈을 반짝이며 마코토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공중에서 차 마시기!"

 "차라면, 늘 유키호가 끓여 주는 거?"

 "으음, 그것도 좋지만 왠지 마음이 너무 풀어져서 떨어질 것 같으니까, 오늘은 홍차로 할까. 교실에 티세트 있으니까 가져올게――으와왓!?"

 속도를 내서 교실로 돌아가려던 하기와라 상이 균형을 잃고 아래로 떨어진다.

 "위험해, 유키호!"

 곧바로 마코토가 공중을 달리듯이 하기와라 상 밑으로 돌아가, 떨어지던 하기와라 상을 그대로 옆으로 안고 원래 높이로 돌아왔다.

 "아, 아으으, 미안해, 마코토 짱――"

 하기와라 상은 우물쭈물하면서 아래를 보고 감사 인사를 했지만, 마코토의 얼굴이 가까이 있다는 걸 깨닫고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런 하기와라 상을 끌어안은 채로 마코토가 창틀을 지나 교실로 돌아간다.

 나도 모처럼이니까 공중에서 하고 싶은 걸 해 볼까. 내 방 창문은 열려 있을 거다. 눈을 감고 책상 위에 놓인 읽다 만 소설을 떠올리면서 집중한다. 물체를 띄우는 건, 눈이 닿는 범위에 있는 물건밖에 써 본 적 없지만.

 책이 창문을 나와 학교 건물을 빙 돌아서 여기까지 오는 루트. 괜찮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어. 그 라인을 훑듯이――

 눈을 뜨자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가 있었다. 성공이다. 그건 그대로 내 손 안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으이앗!??"

 미나세 상이 책의 진행 방향 위를 가로지르지만 않았다면.

 "너……너 진짜!!"

 미나세 상이 조금 떨어진 곳 공중에서 머리를 감싸고 나를 노려보았다.

 "미안하지만 불행한 사고야."

 "나, 나한테 원거리능력으로 승부를 걸다니, 배짱 한 번 좋네……!"

 미나세 상이 오른손바닥을 하늘로 향하자, 그녀 손 안에서 소프트볼 크기의 에너지 구체가 생겨났다. 저건……전격? 여태껏 본 적이 없다. 그녀의 고유능력일까.

 순식간에 분위기가 긴박해진다. 미나세 상이 낳은 번개로 된 공을 중심으로 대기가 진동한다.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이, 직격하면 곱게 끝나지 않을 거란 건 알았다. 내 잘못인 건 분명하고 응전할 생각은 없다. 단지 자신의 몸이 숯덩이가 되는 건 간과할 수 없다. 다행히도 내 고유능력은 그것에 적합하다. 양손바닥을 미나세 상에게 향한다.

 "변명이라면 조만간 저세상에서 듣겠어! 이거나 먹어, 치하――"

 "안 돼, 이오리 짱!"

 흉흉한 말로 날 날려버릴 생각이 만만했던 미나세 상 앞에 끼어든 것은, 타카츠키 상이었다.

 "잠깐, 야요이!?"

 당장이라도 발사될 것 같았던 에너지 탄이 미나세 상 손 안에서 수축해 간다.

 "싸움은 안 돼. 그래도 싸우고 나서 화해하면, 별로 안 되진 않아! 안 그러면 나, 이오리 짱 싫어질지도……."

 "그, 그건 더 안 돼! 그래, 싸움 같은 거 딱히 안 될 거 없지, 어라!?"

 미나세 상이 당황해서 혼란에 빠진 사이에 그녀 손에서 능력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졌다. 일단 위기는 벗어난 것 같고, 어깨 힘을 빼고 두 팔을 축 늘어뜨린다.

 "치하야 상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죠?"

 "어, ……응, 맞아. 고마워, 타카츠키 상. 그리고 미나세 상, 미안했어."

 "뭐~가 그리고야. ……자."

 미나세 상이 머리에 격돌했던 문고본을 경미한 부유력을 더해서 던졌다. 팔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왼손에 빨려들듯이 책이 돌아온다.

 "컨트롤 좋구나."

 솔직한 칭찬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미나세 상이 입술 끝을 올렸다.

 "……너야말로, 그거 네 방에서부터 날린 거지? ――꽤 하잖아."

 귀를 의심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곧바로 미나세 상은 요령도 좋게 공중에서 등을 돌렸다.

 "차, 착각하지 마! 이번엔 야요이를 봐서 용서해 주는 거니까!!"

 그대로 타카츠키 상의 손을 끌고 학교 옥상 쪽으로 간다. 타카츠키 상이 잠깐 이쪽을 돌아보고 싱긋 웃었다. 아아, 귀여워라.

 어느샌가 티세트를 가지고 돌아온 마코토나 하기와라 상을 비롯해, 걱정스럽게 상황을 보고 있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도 드디어 공중에 뜬 채로 독서를 한다는 귀중한 체험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책갈피를 끼워 뒀던 페이지를 펴고 뒷 이야기를 읽어 나간다.

 읽어 나간다. 읽어 나가 보지만.

 ……솔직히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독서는 벚나무에 등을 기대고 하는 게 최적이라고 빨리도 깨달았다.

 그런 내 옆에 갑자기 아즈사 상이 나타났다. 놀랐지만 분명 어젯밤, 그녀는 순간이동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분명 이게 아즈사 상의 고유능력일 것이다.

 소녀가 자신이 능력자란 걸 자각할 때, 그 계기가 되는 게 고유능력의 발현이다. 이건 그 사람의 특성이나 적성에 따라 한 사람당 하나씩 익히는 거라고 한다. 덧붙여서 이건 다른 능력처럼 단련을 거듭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어느 정도 행사가 가능하다. 때문에 어렸을 때 의도치 않게 고유능력을 써서 자신에게 능력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금 아즈사 상의 순간이동이나, 아까 미나세 상이 보인 전격 계통의 능력이 고유능력에 해당한다.

 "치하야 짱, 이오리 짱하고 화해해서 잘 됐구나."

 "……글쎄요."

 "아까까지 이오리 짱이랑 얘기하고 있었는데, 마냥 싫은 것만도 아닌 것 같았어."

 "그런가요."

 그녀가 가시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 준다면 조금은 지내기 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보다 아즈사 상, 이제 순간이동과 부유술을 조합해서 쓸 수 있게 됐네요."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당연하단 듯이 바로 옆에 나타났지만, 세로축으로도 크게 가능성이 열린 상태에선 좌표 특정이나 이미지도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 그러고 보니 그렇네. 의외로 어떻게든 되는 법이구나~."

 "……부탁이니까, 산소가 부족하거나 그런 데로 가진 말아 주세요."

 태평하게 웃는 이 사람이 걱정이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나하 상이 왜인지 땅 위에 두 다리를 붙이고 있었다.

 뭘 하는 건지 아즈사 상과 둘이서 지켜보았더니, 청백색의 바람 같은 능력의 흐름 몇 줄기가 가나하 상을 둘러쌌다. 그것은 가나하 상이 펼친 오른손에 모여 수렴하면서, 미나세 상의 손에 전격이 생긴 것과 같이 구형을 만들었다. 그 구체는 어떤 작은 동물로 모양을 바꾸어, 마치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나하 상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그것에 뺨을 부비는 가나하 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더니, 아까까진 눈치채지 못했지만, 똑같이 청백색 에너지에 의해 형성된 두 마리의 새 같은 것이 그녀 주변을 날고 있었다.

 가나하 상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리를 눈치채고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다시 부유 능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가까이까지 와 준 덕에 그 어깨에 올라탄 것의 형태를 겨우 알게 됐다.

 "이건 쥐니?"

 아즈사 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나하 상이 아깝다며 웃음을 띄웠다.

 "얘는 햄스터고, 이름은 햄조. 남자애고 덧붙여서 생일이 본인이랑 같아!"

 능력 중 하나일 뿐일 텐데 꽤나 세세한 설정이 붙어 있다. 혹시 소환 종류인 것일까. 어쨌든 이게 가나하 상의 고유 능력인 건 틀림없어 보인다.

 "왜 지금 그 능력을 쓴 거야?"

 궁금해서 물어보니, 가나하 상은 사랑스럽고도 부드러운 눈을 자기 주변을 빙글 빙글 돌며 날아다니는 새 두 마리에게로 향했다.

 "모처럼이니까 얘네들한테도 오랜만에 하늘을 날게 해 주고 싶어서."

 그리고 햄조라고 불린 햄스터 모양을 한 에너지체의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햄조한테도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손가락을 가지고 놀려는 햄조를 바라보는 가나하 상의 눈이, 왠지 어딘가 검은 그림자가 진 것처럼 보였다.



………

……





 "있잖아, 그거 알아? 우리들 중에서 '아이돌'이 선택될 지도 모른대."

 거의 자유시간이 된 부유술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다들 교실로 돌아간 뒤, 가나하 상이 미나세 상과 다른 애들에게 그런 얘길 하는 걸 들었다.

 "하왓, 그 '아이돌'이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까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교무실에 갔을 때, 리츠코가 누구랑 얘기하는 게 들렸어. 본인이 안에 들어갔을 땐 이미 리츠코 혼자였지만……."

 놀라는 타카츠키 상에게 가나하 상이 자기도 반신반의라는 표정을 지었다.

 "간단히는 믿기 어려운데…….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그야 이 이오리 짱이 있으니까!"

 긴 뒷머리를 빗어 넘기면서 자신만만한 말을 하는 건 역시 미나세 상이었다. 향상심이 있고 그 나름의 실력을 가진 그녀가 '아이돌'이란 말을 듣고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미나세 상도 '아이돌'을 목표로 여기에 왔을 테니까.

 ――'아이돌'.

 그것은, 소녀들의 영원한 동경.

 희귀한 재능이라곤 해도,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우리들처럼 어떤 시대에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절대적인 정점에 설 힘을 지닐 정도에 이르는 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군림할 수 있는 소녀가 바로――'아이돌'이라 불린다.

 난 물론 만난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게, 수십 년, 어쩌면 백 년에 한 번 기적의 재능을 가진 자만이 '아이돌'이 될 자격을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선택받는다고 해도, 누가 어떻게 고르는 걸까요."

 타카츠키 상의 의문은 정당하다.

 "그, 그건, 역시 성적이 좋아서 리츠코에게 인정 받은 학생이 아닐까?"

 가나하 상의 추측도 미덥지 못하다. 애초에 여기 있는 누구도 아이돌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 리가 없을 테니까.

 "뭐, 기대하고 있으라고! 어떤 방법이든, 이 내가 멋지게 아이돌의 자리를 얻어 주겠어."

 미나세 상은 어디까지나 올곧다. 그런 그녀를 가끔 부럽게 생각한다. 교과서를 가방에 다 넣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아이돌이라.

 여자애라면 누구나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학원 모두가,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면서도 조금이라도 그 높이에 다가가고자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다. 나도 그렇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온갖 능력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는 아이돌.

 만약 그 때 내게 그런 힘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4장  구멍 파는 소녀는 마음을 속인다

 

 '아으으, 어떡하지……. 떠올리니까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아…….'

 따스한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에서 쏟아지는 가운데, 옆에서 자는 소녀를 바라보며 하기와라 유키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같은 방을 쓰는 마코토보다 빨리 잠에서 깨어나 이불에 파묻힌 채로, 그녀 입에서 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유키호는 마코토의 자는 얼굴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각이 잡혀 있어서 멋있는 그녀가, 자기 앞에선 이렇게나 무방비하고 편안한 표정을 보여 준다. 윤기 나는 입술, 예쁜 속눈썹. 자고 있는 마코토를 보면, 역시 귀여운 여자애구나 생각도 한다. 평소엔 별것 아닌 동작 하나 하나가 꼭 왕자님 같아서, 그래, 예를 들면 어제도――

 '아아아아아! 역시 안 되겠어!!'

 마음 속으로 한심한 비명을 지른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얼굴에서 불이 날 것 같다. 목욕을 마친 건 자기 한참 전이었는데, 온몸이 다시 후끈해진다.

 밖에서 부유술 수업을 하던 중, 잠깐 교실로 돌아가려던 유키호가 밸런스를 잃고 지면에 떨어지려던 때.

 이제 죽는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딱딱한 땅에 부딪혀서, 땅 속 깊은 곳으로 이 몸은 돌아갈 거라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죄송하단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 마코토는 씩씩하게 하늘을 질주해, 떨어지는 유키호를 끌어안고, 그래, 그건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란 것으로――

 '아아아아아! 마코토 짜아아아아아앙!!'

 소녀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왕자님. 마코토는 유키호가 품은 그런 이미지를 구현화한 듯한 '소녀'였다. 이젠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다. 그녀 옆에 있으면 마치 자신이 공주가 된 것만 같아서. 그 정도로 어쩔 수 없을 만큼, 마코토는 멋있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그래도 어제 그건 지나쳤다. 그 땐 떨어지는 공포와 거기서 살아난 안도감이 강했지만, 지금 이렇게 천천히 마코토를 보면서 떠올리면――

 '아아아아아!'

 이건 병인가 싶다. 끌어안겼을 때 본, 마코토의 얇은데도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팔, 올려다 보면 바로 거기에 있던 눈동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체온이 올라간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어떡하지. 오늘 마코토와 제대로 얼굴을 마주볼 수 있을까. 옆에서 자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이런데. 지금 가능한 한 마음을 진정시켜 둬야지. 침대에서 윗몸을 일으키고 한숨을 돌렸다.

 ……어제는 구해줘서 고마웠어. 감사를 담아 살짝, 짧게 정리된 마코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라? 좀 길었나?

 "음, 으응…."

 마코토가 이불 속에서 꼼지락 꼼지락 움직였다. 아, 깨워 버렸나. 당황하며 손을 뗀다. 유키호가 지켜보는 앞에서, 마코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동자가 유키호를 바라보고 아직 졸린 것처럼 미소지었다.

 "안녕, 유키호."

 이건 병인가 싶다. 그 입술에 슬쩍 자기 이름이 올라간 것만으로 이렇게나 가슴이 뛴다.

 그래. 이 마음은 분명 병일 것이다.



………

……





 "유키호는 정말 차를 좋아하는구나."

 식사가 끝날 무렵, 식당의 찻잔에 입을 대고 있던 유키호를 정면에서 바라보던 마코토가 미소지었다.

 가끔 구멍을 파고 묻히고 싶어지면서도 평정을 어찌저찌 유지하면서 오전 수업을 끝냈다. 둘이서 점심을 먹을 때쯤엔 유키호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손에 든 찻잔에 시선을 떨구고, 유키호도 똑같이 싱긋 웃었다.

 "응, 이런 보리차나 어제 같은 홍차도 좋지만, 역시 제일 좋은건 일본차일까."

 "일본차라면, 녹차?"

 "거의 그렇지. 예절 같은 게 잔뜩 있는데, 그런 걸 잘 지켜서 다도회에서 마시면 더 맛있게 느껴져."

 "헤에. 얘기 들어보면 유키호네 집은 그런거 잘 돼 있을 것 같아. 유키호가 차를 좋아하는 것도 역시 부모님 영향인 걸까."

 "글쎄. 확실히 다도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긴 했어. 그래서 어느샌가 좋아하게 된 걸지도."

 "좋겠다, 유키호네 집은. ……나도 좀 더 조숙하게 길러줬음 했는데."

 마코토가 조금 쓸쓸하게 한숨을 쉬었다.

 "마코토 짱은 마코토 짱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해."

 "뭔가 그것도 복잡한 기분이야. 나도 여자애란 느낌인 유키호 같은 장점을 갖고 싶었는데."

 '그건 아니야. 마코토 짱은 마코토 짱이니까 좋은 거야.'

 그녀에게 장점은 잔뜩 있다. 그리고 마코토가 여자애로서도 귀엽다는 걸 유키호는 알고 있다.

 가르쳐 주고 싶다. 전해 주고 싶다. 어떡하면 좋을까. 마코토의 눈에 어린 그림자가 너무나 싫어서, 필사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렇지!

 "……있잖아, 마코토 짱. 아직 다음 수업까지 꽤 시간 남았고, 머리 잘라줄까?"

 "유키호까지 날 여자애에서 멀어지게 만드려고 하다니……."

 "그, 그런 게 아니라! 어제 구해준 보답이 하고 싶어서. 응?"

 으음~ 하고 마코토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곧 시선을 들고, 아주 조금 웃었다.

 "유키호가 그렇다면야."

 "……응."

 "아, 그러고 보면 있잖아, 유키호."

 "왜 그래?"

 "사실 입술 끝에 계속 밥풀 붙어 있었어."

 "어? ~~~~~!!"

 한 순간 멍하니 있던 유키호의 입술 끝에서 그걸 검지로 살짝 떼어 내고, 마코토는 이번엔 조금 소리를 내서 웃었다.

 "왜, 왜 말 안해 줬어어!"

 "아니, 그런 유키호도 귀여웠거든."

 계속 모르고 있었다니, 역시 오늘은 평상심을 잃은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구멍 속에 묻히고 싶다. 이럴 거면 어제 하늘에서 떨어져서 묻혀 버릴 걸 그랬어!

 게다가 부끄러워서 몸부림치는 유키호 눈 앞에서, 마코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뗀 밥풀을 자기 입에 넣어 버리니까.

 정말 이 왕자님은 어쩔 수가 없다.



………

……





 평소엔 쓰이지 않는 기숙사의 한 방에서.

 의자에 앉은 마코토 뒤에 유키호가 서서, 마코토의 머리카락에 가위를 넣었다. 사각 사각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머리카락이 사락 사락 떨어진다.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면서 유키호는 입을 열었다.

 "나 있지, 머리 짧은 마코토 짱이 좋아."

 "으음, 난 좀 더 긴 편이 여자다워서 좋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도 좋을지 모르지만, 마코토 짱은 지금도 여자애답고 귀엽다고?"

 "엣, 어떤 부분이?"

 "……후훗, 안 가르쳐 줘."

 "왜애!"

 "말하면 분명 마코토 짱, 부끄러워서 죽어 버릴 테니까."

 "그게 뭐야~."

 분명 마코토는 볼을 부풀리고 입을 삐죽 내밀고 있겠지. 정면에 거울도 없고, 등 뒤에 선 유키호는 그걸 상상할 수밖에 없다.

 똑같이 마코토에게도 지금 유키호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마코토 짱은 좋은 점이 정말로 잔뜩 있으니까. 멋있는 것도 그 중 하나야. 짧은 머리가 어울리는 것도 그렇고."

 "……역시 좀 복잡한 기분이야."

 사각 사각, 유키호는 가위를 든 손을 계속해서 움직인다.

 "마코토 짱은 지금 그대로 충분히 매력적이야."

 '그야,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인걸.'

 "난 지금 마코토 짱이 좋아."

 '그러니까 지금 그대로 있어줘.'

 그 말은 족쇄가 되어 마코토를 속박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부 그저, 유키호의 이상을 강요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마코토 짱을――좋아해."

 마코토를, 지금, 자신의 곁에. 박아 두고 싶으니까.

 정확히 마음이 전해졌는지는 모른다. 오히려 눈치채지 못했으면 한다. 그 말 뒤에 숨겨진 순수하고도 추한 소망에는.

 쓰이지 않는 방의 작은 고백.

 그걸 멀리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더라도, 분명 둘은 깨닫지 못한다.

 

 

5장  커튼 그림자

 

 평소엔 쓰이지 않는 한 교실에서.

 "있잖아, 치하야 짱. 나랑 사귀어 보지 않을래?"

 아즈사 상이 장난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내면서, 그런 말을 했다.

 자, 어쩌다 이렇게 됐지――



………

……





 때는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점심시간. 넓이에 비해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 있는 식당에서, 난 평소처럼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는 하기와라 상과 마코토가, 같은 테이블에서 마치 연인 같은 친밀함을 보이고 있었다. 뭐, 저것도 평소와 같은 점심시간의 풍경이다. ……오늘은 조금 하기와라 상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밥과 함께 담긴 카레라이스에 숟가락을 꽂아넣고 입으로 옮긴다. 그런 작업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식사는 효율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하기와라 상처럼 즐기는 법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손쉽게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가격도 싸다면 더욱 좋다.

 그런 점에서 카레라이스는 실로 잘 만들어진 음식이다. 일단 이걸 먹으면 된다는 안심감. 고민할 시간조차 아깝다.

 5분도 안 지나서 접시 내용물을 거의 다 비웠을 때 쯤,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깨달았다. 수상히 여기며 시선을 든다.

 "여기 앉아도 될까?"

 의외의 손님에 조금 놀란다. 허리를 굽히고 내 눈을 들여다 보는 건 아즈사 상이었다. 같은 방인 그녀와는 같이 방에서 식사를 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고작 '같은 공간에서'라는 의미 정도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같은 자리에 앉은 적은, 요 1년간 입학하고 나서 처음 두세 번 정도 뿐이다. ……내가 싫다는 듯한 얼굴이었으니까 사양하게 된 거겠지. 그리고 나서는 아즈사 상이 일부러 말을 꺼내는 일은 없었는데.

 작은 테이블이긴 하지만 마주보고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는 걸 보면, 2인용으로 설계된 것은 틀림없다. 내 앞에는 접시 한 장과 물이 든 컵 하나뿐. 덧붙여서 아즈사 상이 손에 들고 있는 건 토핑된 빵 하나뿐이다. 방해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요즘 그녀와의 딱 좋은 거리감에 안도를 느끼는 자신이 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세요."

 "후후, 고마워."

 아즈사 상이 미소지으며 정면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크로켓이 끼워진 빵 포장지를 벗겨 간다.

 나 자신이 이 모양이고, 남 식사에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은 없지만,

 "……그걸로 충분해요?"

 웬일로 무심코 의문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은, 그, 다이어트 중이라서……."

 아즈사 상은 손에 든 빵을 한 입 베어물고, 부끄러운 듯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즈사 상은 별로 살 안 쪘다고 생각하는데요."

 "요즘 옷 위로는 티 안 나는 데가 좀 그래서."

 옷 위로 보이는 곳도 풍만하니까요. 그건 역시 입에 올리지 않는다.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나서 가슴에 달린 지방 덩어리도 줄어들면 좋을텐데. ……큿.

 "……다이어트, 응원할게요."

 "우후후, 고마워."

 진심으로 나온 말에 진심인 웃음으로 답을 받으니 조금 가슴이 아팠다. 어차피 아플 거라면 좀 더 커져도 될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또 혼자 멋대로 허무해진다.

 잠깐 사이에 우리 앞에서 먹을 것은 없어져 버렸다. 입 안이 텅 비어도 특별히 얘기하고 싶은 건 없다. 아즈사 상도 뭔가 볼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닌 것 같다. 모처럼 쉬는 시간이니 독서라도 하러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왠지 바로 일어나는 것도 망설여져서 움직일 수가 없다. 조금 전까지의 나였다면 주저없이 자리를 떴겠지만.

 이 시간은 명백히 쓸데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것을 곧바로 버리지 못하게 된 자신을 깨닫고, 적잖게 놀란다.

 하지만 그럼, 정말로 어떡할까. 일단 물어본다.

 "저, 아즈사 상은 왜 저한테 온 건가요?"

 "으음, 딱히 의미는 없는데."

 역시 이유는 없었다. 세간에선 그걸 쓸데없다고 한다.

 "저, 그럼 저는 이만……."

 "있잖아, 치하야 짱. 혹시 괜찮으면 산책 좀 안 할래?"

 아즈사 상이 내 말을 덧씌우듯이, 예상 밖의 제안을 했다.

 "어……. 특별히 용건은 없는 거죠?"

 "그런데……안 돼?"

 안 된다니 뭔가요, 안 된다니. 좋은지 나쁜지 묻는다면, 물론 노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기대하는 눈빛을 보면.

 이건 내 잠깐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끝에, 어쩌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말하자면 처음 읽는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가끔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방에 돌아가서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여기서 아즈사 상을 따라가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알았어요."

 대답하는 나를 보며 아즈사 상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정말로 허락해 줄 거라곤 생각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 태도를 계속 취해 왔으니까.

 "우후후, 그럼 갈까."

 아즈사 상이 빵을 싸고 있던 비닐을 뭉치고 일어났다. 나도 식기를 손에 들고 반납구 쪽으로 간다. 그런 우리들을 타카츠키 상이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시야 구석에 비쳤다.

 식당을 나와 복도를 나란히 걸으면서, 아주 조금 올려다보며 물어 본다.

 "그래서, 어디 가는 거에요?"

 "으음, 적당히?"

 질문에 질문이 돌아왔다.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안 한 것 같다.

 오늘도 햇살이 따뜻하니까 산책이라고 하면 당연히 밖에 나갈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아즈사 상의 발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인적 없는 교사에 두 사람 분의 발소리를 내면서 목적지도 대화도 없이 걷는다. 이윽고 아즈사 상은 한 빈 교실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여기면 될까."

 뭐가요 하는 의문은 아마도 의미가 없을 테니, 딱히 부정하지도 않고 아즈사 상을 따라 교실로 들어간다.

 평소에 필요 없는 교실에 일부러 들어갈 일도 없고 수업에서 쓴 적도 없었으니, 여기에 발을 들이는 건 처음이다. 다른 교실과 거의 같은 구조지만 누군가 사용한 흔적은 없다. 정말 쓸데 없는 게 많은 학원이구나 생각한다. 덧붙여서 특별히 먼지가 눈에 띄지도 않는 걸 보면 청소도 되고 있는 것 같다. 쓸데없기 이를 데 없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창가에서 아즈사 상이 손짓하는 걸 보고 가까이 다가간다. 그녀 앞에 서자,

 "비밀 이야기 할까?"

 하고 아즈사 상은 싱긋 웃었다. 여기까지의 그녀의 생각을 모르겠다.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대체 무슨――"

 기다리다 못해 조금 큰 소리로 말하자 그걸 가로막듯이 아즈사 상이 얇은 커튼을 잡았다. 쇠가 미끄러지는 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들을 감추듯이 커튼이 둥실 부풀어 올랐다.

 "쉿. 누가 올지도 모르잖니?"

 아즈사 상이 작게 미소지으면서 검지손가락을 내 입술에 갖다 댔다. 커튼에 둘러싸인 좁은 공간 속에서 더욱 우리들의 거리가 좁혀지고, 생각하기보다 먼저 몸이 반 걸음 물러났다.

 아니다. ……이건 우리들의 거리가, 아니다.

 "나 있지, 여러가지로 생각해 봤는데――"

 평소엔 쓰이지 않는 한 교실에서.

 "있잖아, 치하야 짱. 나랑 사귀어 보지 않을래?"

 아즈사 상이 장난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내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자, 여기까지 대충 돌아보았는데, 역시 이렇게 된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빈 교실에서 필사적으로 머리만을 굴린다. 뭐야. 뭐야, 이게.

 오늘 일을 되돌이켜 봐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아즈사 상의 의도는 어제 이전의 기억이나 지금 그녀의 언동에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아즈사 상에게 목적이 있다면, 말이지만. 정말로 그냥 장난을 하고 있을 뿐이거나, 그녀의 기분이 상했을 뿐이라는 가능성은 일단 배제해 둔다.

 "저, 사귄다는 건……?"

 일단은 자신이 잘못 들었거나, 말의 의미에 차이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본다.

 "좀 더 사이 좋게 지내자는 말이야."

 네. 대충 맞습니다. 사귄다는 건 보통 친밀한 남녀 사이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은 일단 내버려 두자.

 "그건, 그게, 왜요……?"

 다음에 드디어 동기의 확인. 이걸로 납득이 가는 답이 나와 준다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치하야 짱도 그 편이 좋지 않을까?"

 안 되겠다. 모르겠다. 요즘 아즈사 상이 날 신경써 주고 있는 건 안다. 주로 내가 사람을 대하는 것에 관해서. 하지만 그게 왜 '사귄다'는 게 되지?

 내 안의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순수한 흥미나,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 건 자각하고 있다. 그것이 귀중한 걸지도 모른다는 이해도.

 하지만 이건 역시 아니다. 이건 내가 안심할 수 있는 아즈사 상과의 거리가 아니다. 그녀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내 착각이었을까. 적잖이 '배신당했다'는 마음이 싹트고 만다.

 아즈사 상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걱정해 주고 있다고 했을 때, '사귄다'는 결론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그녀에게 가져다 줄 메리트는.

 만약 아이돌이 된다면 사람의 마음도 알 수 있게 될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힘도 없고 사람과의 관계도 적었던 내게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은 한정적이었고.

 아즈사 상의 눈을 살피듯 들여다 본다. 그 눈에 담긴 것은――


 쓸쓸함.


 그 작은 흔들림을 깨달은 순간, 조금씩 추측이 형태를 이룬다.

 지금 아즈사 상은 '치하야 짱도'라고 말했다. 그건 즉, 아즈사 상에게도 나와 그런 관계가 되어서 만족되는 무언가가 있다.

 저번에 아즈사 상이 이 학원에 온 이유를 말해 주었을 때. 왜 지금도 여기에 있냐는 내 물음에, 아즈사 상은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몰라.'라고 대답했다. 분명 그게, 그녀가 내게 얘기할 수 있는 한계였을 것이다. 그것은 아즈사 상에게 있어서, 간단히 남을 들이지 않는 소중한 영역.

 그리고 그걸 말하는 아즈사 상의 눈은 지금과 같은 색이었다.

 아즈사 상에게도, 내게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니 이것은 억측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부족한 부분은――

 "아즈사 상. 저로는 그 사람 대신은 못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메울 수 있는 건, 채울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다.

 아즈사 상이 흠칫 숨을 삼켰다. 그 표정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어떻게――"

 빗나간 것도 아니었나 보다.

 "아즈사 상이 절 생각해 줬던 것처럼, 저도 아즈사 상을 생각해 봤을 뿐이에요."

 이제 아즈사 상은 쓸쓸함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깊게 깊게 숨을 내쉰다.

 "이상한 말 해서 미안해. ……상처를 줘 버렸니?"

 "저야말로 죄송해요."

 가능한 한 감정 없이 중얼거린다. 난 아즈사 상의 바람에 응할 수 없다. 어중간한 상냥함이 분명 그녀의 원래 상처를 키우고 말 테니까.

 "……치하야 짱은 착하구나."

 "박정하다고 스스로도 알고 있어요."

 아즈사 상이 후후 하며 웃는 것에 따라, 나도 아주 조금 웃음을 띄웠다. 그녀가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분명 그녀에겐, 지금도 계속 찾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그 사람은 이 학원에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는 아닐 것이다.

 만약 괜히 거리를 좁혀서 잠깐 '사귀어' 보더라도, 그녀의 상처는 조금 나아지더라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역할에조차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그대로의 거리로. 만약 다른 방법으로 힘이 될 수 있다면, 그 땐 반드시.

 한동안의 침묵만이 우리들의 거리를 메웠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불쾌하고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공간은, 분명 우리들만의 세계였다. 그러니――

 쓰이지 않는 교실의 작은 비밀.

 그걸 멀리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더라도, 분명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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