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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의 빛 - 21. 회유어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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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2, 2015 12:40에 작성됨.

극채색의 빛 - 21. 회유어의 진상

 



깊게 앉은채로 눈을 감는다.
빗소리에 섞이어 자신의 호흡이 들려온다. 그리고나서 심장 소리도.
조용하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눈꺼풀 속에 생생히 되살아나는건 단 한 사람.
아주 선렬한 감촉을 언제나 타케우치에게 남겨가는 단 한명의 사람이다.

일하는 사이에 틈이 생기면 평소엔 어깨를 돌리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눈의 피로를 풀기 위해 마사지 등 일의 퍼포먼스를 올리기 위한 행위를 하는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래로 조금이라도 시간이 생기면 이렇게 눈을 감고 생각만 한다.

그녀의 눈물.
아연해하듯 서 있던 린.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손을 벌린다.
거기에 석양아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이 점점 떨어져 손을 적신다.
어두워지기 전의, 코발트 블루로 변해가는 하늘을 등진, 그녀의 얼굴이 처음으로 뭔가 자신이 모르는 아픔으로 강렬하게 일그러져간다.

――그때.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갔다. 그녀가 흘리는 깨끗한 눈물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일까.

(아빠 같았어……인가)

희미하게 가슴이 아팠다.
매달려 우는 린의 모습이 뼈아프게 되살아난다.
생각해보니 키스한것도 기억 못한다고 말한 그날부터, 린은 자주 웃게 되었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건지, 그러니까 평소와 다를바 없이, 아니 평소보다도 웃게 된걸까. 조금 실망한듯한, 안도한듯한 복잡한 심경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열심히 무언가를 참고 있던 것이다. 웃으면서.
(그런것도 깨닫지 못하다니)
무의식중에 그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분명히.
키스받고, 안겨져서, 그것이 너무나도 꿈같아서. 그녀를 생각하는게 무서웠다.
――그 결과가 이거다.
그녀의 아픔, 인내, 괴로움. 그러한 것들의 발견이 늦어졌다. 프로듀서 실격이다.

린의 눈물은 언제나 한결같고, 진솔하고, 아름다웠다.
거기에 비해 자신은 어떤가? 죽고 싶은 기분이 든다.
더러운 욕망을 안고, 그녀를 연애대상으로서 보아버렸다.

차 안에서
"조금 좋아했어"
그렇게 들은 순간의 고동을 잊을 수 없을것 같다.
단번에 심박수는 오르고, 숨을 삼킬것 같아지는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타케우치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누구로부터도 그 무언가로부터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심장이 욱신욱신했다. 그 기대를 배신하는 마음이 여기에 있다.

지나가는 가로등이, 린의 눈물로 젖은 뺨을 빛낸다.
"있잖아, 프로듀서.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서……말야"


행복해져야해.


부탁해, 하며 눈물 섞은 목소리로 말한 그녀.
그 목소리에는 너무 어린 아련한 동경에 결착을 짓는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꼬옥 눈을 감고 아아, 생각했다.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는 시작되었고,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끝나버렸던 것이다, 라고.
"알겠습니다. ……반드시, "


행복해지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을까.
감정의 파도가, 떨릴것 같은 마음의 흔들림이,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것이, 이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되었다.


          ※


"이야기를……받아들이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부장은 투둑, 손에 들고 있떤 펜을 떨어뜨렸다. 주우려고 다가가는 타케우치의 앞에 벌떡 소리를 내고 부장이 일어서서 덥석 양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그런가! 그런가……그런가! 응, 그렇군!!"
"부장님……그게, 아픕, 니다"
그 목소리도 못 들은건지 부장은 얼굴을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웃었다.
"이야-, 한때는 어떻게 된다고 생각했어!"
"죄송, 합니다"
"상대쪽은 너를 마음에 들어서 계속 기다린다고 하지만 거기에도 한도가 있었고, 이쪽에서 기다린다는 얘기를 언제까지 연기해서는 내키지 않아서 말이지"
속사포처럼 말하고 아아 미안해, 라며 타케우치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그런거라면 이야기는 빠르지. 얼른 그쪽에는 그 취지를 전해둘게"
"감사……합니다"
깊게 고개를 숙인다. 황급히 고개를 들라고 말하는 부장.
"이야 축하해! 아니, 이건 좀 성급한가? 하하하"
"아, 아뇨……"
목에 손을 댄걸 보고 부장은 더욱 기쁜듯이 웃었다.
"뭐야, 그렇게 수줍어하고. 역시 너도 사람이군"
철면피라고 하는데, 너는 의외로 알기 쉬우니까, 라며.

……죄악감으로 짓눌릴것 같았다.

상대 여성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
느낌이 좋고 지성을 느끼는 말씨로 교육도 잘 받은듯한 몸짓에 분위기에 기품이 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분위기로 채워져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지, 그런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이 결혼 이야기는 모두에게도 축복받았으므로 아무런 그늘도 없을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상대의 얼굴조차, 실은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길 아닌 사랑을 잊고 싶다. 린을 포기하고 싶다.
그것만을 위해서, 저 따스한 사람을 이요하는 것이다.

부장의 미소가 뼈아팠다. 떠올리지도 못하는 여성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래도.
약속한것이다, 린과.
반드시 행복해지겠다고.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타케우치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날 콴동에 장마가 걷힌다는 선언이 내려졌다.


          ※


"건배!!"

땅, 소리를 내며 컵이 부딪친다. 한쪽은 겸양쩍게, 한쪽은 성대하게.
깨뜨릴 생각이냐 싶을 정도로 있는 힘껏 컵을 맞댄 선배는 마시기 전부터 취한것 같은 미소로 잘 됐어, 라고 말했다.

"겨우 너도 결혼인가"
"하아, ……네……"
"정말로 안심했어"
말하면서 선배는 컵을 들지 않은 손으로 넥타이를 풀었다.
"……선배에겐, 걱정을 끼쳐서……죄송합니다"
"하핫, 딱딱한 소리는 하지 말자고? 오늘은 마시고 마시고 마구 마시자고"
"하아……"
히죽 웃는 선배.
"어쨌든 귀여운 네 축하다, 얼마든지 마셔주지, 내가 사는거니까"
"아니, 그런건, "
"됐으니까 마셔"

내가 입을 대는걸 기다리지마, 라며 선배는 단번에 목을 적셨다. 그걸 쳐다보고나서 타케우치도 입을 댄다.
그날 맥주는 평소보다도 심히 쓰게 느껴졌다.
흐릿한 기억의, 대학생때 처음 마신 술같은 그런 맛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분은 그리고나서 만났어?"
"네, 몇 번은……대답이 늦어진걸 사죄했습니다"
"뭐, 차분히 장래를 생각하는 좋은 남자라고 생각한거 아니야?"
"그래도 기다리게했으니까요……"
"어울려서 기다려준만큼 좋은 여자였어"
"그렇……군요"

선배는 놀랄만큼 잘 웃으며 말이 많아지며 기분 좋게 많은 말을 했다. 한편 자신은 좀처럼 술을 마시질 못해서 두 번째로 부어진 맥주의 거품도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식욕은 없지는 않았지만 역시 젓가락도 별로 움직이지 않아서 맟미내 선배한테 "야야, 왜 그래, "라며 딴지를 들었다.

"이걸로……잘 된걸까요"

말한 순간, 선배의 눈이 취기 풀린 얼굴로 돌아갔다.
툭, 맥주잔이 놓여진다. 곧은 시선으로 꿰둟려서 어색해져서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대로 입을 다물고 싶어졌지만 그걸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저는……나이도 차지 않은 아이에게, 그것도, 담당을……사랑한 남자입니다"
"응"
"그걸 잊고 싶어서, 그걸 위해서 결혼하려는……그런 제대로 되먹지 못한 사람입니다"
"응"
"그 사람을……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자신이, 없습니다"
"……."
"그런데 결혼할 자격은, 저에게……있는걸까요"

긴 침묵. 꼳힐듯한 시선이 아프다.
하지만 후우, 하며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생각하니,


"――괜찮아, 이걸로."


확실한 어조였다.
튕기듯이 고개를 드니 선배는 맥주잔을 둔채로 책상 위의 닭고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너의 좋은 점을 많이 알고 있어. 그렇게 지나치게 생각하는 점도 그렇고, 여차할때 흘러가지 않고 멈춰서는 강함도 있다는 점이지"
"그런, 저는……"
"……너는 좋은 녀석이야."
"……, "
"그러니까, 행복해져라, ……타케우치"

시선이 떨어져간다.
식은 두부 튀김이 조금 흐릿해졌다.
"……, 네"
사라질것 같은 대답.

이걸로 됐다.
이렇게하는 수밖에, 달리 없었던거다.

린은 희소한 멋진 아이돌이다.
혼약자는 흠잡을곳 없는 사람이다.
부장은 자기 일처럼 기뻐해줫다.
선배는 행복해져도 된다고 말해줫다.

남은건 자신의 마음 하나, 그것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 사랑은 죽은 것이다.


죽은 것이다.






          ※


그래도 일하는 짬에 눈을 가마고 생각하는 습관은 빠지지 않았다.
눈꺼풀을 감으면 여러가지 감정이 오간다.
한 마디로는 도저히 표현못할만한, 뒤섞인 감정들.
그걸 어떡하지도 못하고 그저 관찰하고, 그리고 끝난다.

하지만. 도무지 생각해버리는 일이 있었다.

어째서 린은 자신에게 키스한걸까.
어째서 린은 그렇게될때까지 눈물을 참고 웃은걸까.
어째서 린은 그렇게까지 심하게 울어버린걸까.

좁은 암흑에서 패닉을 일으켰으니까?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던 상대가 멀리 가버리니까?
――정말로, 그저 그것뿐인가?

아버지 대신하여 옅은 동경의 대산이 결혼하니까.
그것만으로는 반응이 과잉인건 아닌가?
그런 느낌이 내내 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더러운 원망인것 같아서 이미 끝난 일이라고 몇 번이나 없애고는,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이 놀려진다. 결과 조금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서 눈을 감고 강제적으로 생각을 끊는다.

일어서서 블라인드 틈새로 창밖을 봤다. 눈부신 햇빛이 눈을 비쳤다.
여름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문득 건물 외주를 달리는 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두근거렸다.
장마가 걷히고나서 그녀는 시간이 있으면 한상 밖을 뛰고 있었다. 체력 만들기와 폐활량의 강화가 목적이라고 했다. 거기다 달리면 머리가 시원해지니까, 라고 했었던가.

간단하게 모았을 뿐인 포니테일을 흔들며 파란 T셔츠가 아래를 지내가고 있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 처음으로 숨을 막고 있던걸 깨닫는다. 업은 아직 깊다고 생각한다.

입술 감촉을 잊을 수 없다.
껴안긴 온도를 잊을 수 없다.
그 눈물의 아름다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빨리 잊어야해)
삐걱, 의자에 깊게 앉는다. 한번 더 눈을 감을까말까 망설이고 결국 눈을 감지 않고 컴퓨터의 소재 폴더를 열었다. 시부야 린의 항복, 그 구석에 있는 다른 폴더. 열고서 한 장의 사진을 클릭했다.

반짝이게 빛나는 미소짓는 린.
뒤돌아볼때 나부끼는 머리카락에 땀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치마 자락이 뒤집혀서 확 퍼진 순간.
완벽하다고 볼때마다 생각한다.
어떤 소재여도 이 사진보다 뛰어난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용해야할까, 생각했다.
이만큼 좋은 사진이 있는데, 매상에 일절 쓰지 않는건 너무 아깝다.
시부야 린이라는 아이돌의 매력, 그 전부가 응축된듯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 한 장만 있으면 어떠한 일도 해낼 수 있겠지, 그런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건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서만 맺어진 약속 같은것이라 바꿀 수가 없는, 두번 다신 없는 것이며. 그렇게 상업적으로 써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돌로서 린을 위해서 생각하면 이 사진을 토대로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써도 괜찮을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린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거라고 어딘가 머리속에서 왠지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아, 한숨을 쉬고 사진을 닫는다.
사진을 쳐다보고 한숨을 쉬다니, 내가 생각해도 여자스럽다. 그대로 흐르는 작업처럼 메일 체크를 한다. 그러자 한 통의 메일에 눈이 멎었다.

그 메일의 송신자에게 타케우치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


"편의점의……타이업? 내가?"
"네"
"에, 그건 거기잖아, 그게, 사무소 옆에도, 우리 옆에도 있는, "
"네. 거기가 맞습니다"
"에, ……에?"

타케우치의 말에 린은 눈을 끔뻑이고 있다. 그것도 그렇다. 전국에서 가장 큰손 중 하나라고 듣는 편의점 체인점에서 린 개인에게 말을 건 것이다. 타케우치 자신도 메일을 봤을때는 설마라고 생각했다.

"기획으로서는 편의점에서 대상상품을 사면 제비를 뽑을 수가 있어서 린 씨의 직필 사인이 들어있는 포스터 등 각종 경품이 당첨된다……는 캠페인인 모양입니다. 그 이외에도 이미지 걸로서 CM출연, 이미지 송 발표, 이벤트에서 라이브 등 일은 수갈래로 나뉘어집니다"

린은 입을 멍하니 벌린채로 말이 없어졌다.
갑자기 사무소에 불러냈길래 무슨 일인가 생각했더니 이 이야기다. 놀라는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이쪽이 기획서입니다, 라며 린에게 건내니 핫, 하며 제정신을 차린 린은 낚아채듯이 그걸 받아들고 탐내듯이 읽기 시작했다.
팔랑, 팔랑, 종이가 넘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다 읽은 린은 하아-, 하며 길고 긴 숨을 내쉬고, 그리고 들이키고,

"굉장해……이런 커다란, ……이런, "

말로 나오지 않는 감탄의 소리를 내었다. 도로 내밀어진 기획서를 받는다.

"린 씨가, 지금까지 힘냈기 때문입니다"
"그런건! 나보다, 프로듀서가……, "

파짓, 소리를 내며 시선이 마주쳤다.
신기하게까지 그때까지 느끼고 있던 부끄러움이나 수줍음, 어색함같은것은 어딘가로 사라져 가 있었다. 나누어진건 전우와 같은, 조용한 눈빛뿐.

"……고마워, 프로듀서"

린은 중얼거렸다. 뺨을 흥분으로 붉히며 아직 못 본 일에 대해 꼬옥 손을 움켜쥐고 있다.
고개숙여 호흡을 다듬고 있던 린은 척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 할게. 괜찮아, 분명 우리라면 할 수 있어"

어미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불안인지 흥분인지는 타케우치에겐 알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 알수 있는건 자신이 최대한으로 린을 서포트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해냅시다, 린 씨"
"……응, 나, 달려가볼게!"

그렇게 말하고 웃은 린의 미소는 오랜만에 아무 흐림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나서는 날아가듯이 매일이 지나갔다.
몇 번이나 올라오는 의상안이나 신곡 준비를 회의를 거듭해서 하고, 전체의 컨셉을 토대로 세세한 작업, 그리고 의상 맞추기, 보컬 레슨, 메인 비주얼 촬영, 신곡 수록, CM 촬영, 이벤트 고지, 상품 제작, 등등.

그 틈을 보고 린은 칼럼을 쓰고 레귤러 라디오를 찍고, 라디오 드라마를 찍고, 성우 양성소를 다니고, 거기다 자주적 런닝까지 하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몸의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오는걸까 생각한다.
분명 팬의 성원이나 일에 대한 충족감,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고양감, 그러한 몰입할 수 있는 것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거겠지.
타케우치는 타케우치대로 대단히 바쁘고 다른 아이돌의 프로듀스도 있었기 때문에 집에 못 돌아가는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오랜만에 생긴 짬에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대로 잠들어버릴것 같았다. 오늘만큼은 감정이 드나들 여지가 없었다.
책상 위에서 휴대폰의 진동이 운다.
앉고 일인가 싶어서 눈을 뜨지만 표시된 이름은 약혼자의 이름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녀에게 연락을……)

한번 약속날에 못 만나게 된 취지를 전한 이래로 내내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전화를 해야하는다고 생각해서 전화기에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몸이 무거워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실은 남은 체력을 쥐어짜면 전화 하나 정도는 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이 몸이 움직이지 않는건 무슨 탓일까.

(부실하다……)

오늘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던 여러 감정이 빙글빙글 감돈다.
그대로 결국 타케우치는 짦은 수면을 취했다.

전화는 잠시 계속 울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뚝 끊겼다.


          ※

그렇게해서 캠페인 개시일이 다가왔다.
이 날의 캠페인 개시 이벤트를 계기로 편의점 내장에는 린이 등장하고 BGM에 린의 신곡이 흐르고 텔레비전에선 CM이 대대저거으로 흐르게 된다.

"프, 프로듀서……"
"린 씻"

무대에서 최종조정에 들어간 테이프를 붙이고 있으니 무대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이미 의상으로 갈아입은 린이 반소매를 감추듯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도 아니다.
하고 있던 작업을 끝내고 다가가니 린은 슥슥 손짓을 하고 옆쪽으로 몸을 숨겼다.
쫓아간다.
무대에서 빛이 희미하게 비쳐드는 거의 어둠 속에서 린은 겨우 돌아본다. 낙낙한 치마가 살짝 부풀어서 흔들렸다.

"미안, 바빴어?"
"아뇨, 지금 하던 조정도 끝났습니다. 린 씨야말로 유연함이나 목소리는 괜찮습니가? 뭔가 위화감은"
"응, 괜찮아. 평소대로였어"

그보다, 라며 린이 꼼질거린다. 의문스럽게 생각해서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왠지, 이제와서, ……부끄러워져서 말야"
"부끄럽습니까?"
"이런 큰 무대에 이런 멋진 드레스……어,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청색을 기초로 한 프릴을 충분히 이용한 고딕 롤리타조의 드레스는 린에게 잘 어울렸다. 평소 쿨한 이미지가 붙어 있는 린이지만, 이러한 옷도 어울리냐고 하면 놀랄 정도다.

"……어울립니다"
"아, ……고마, 워"

왠지 말야, 역시 조금 두근거려버렸어, 라며 빠른 어조로 린이 말한다.
긴장해서인지, 무대옆 어둠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귀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울린다고 말한 자신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을까, 뭔가가 겉으로 드러내버려선 안 됐던걸까. 그런걸 조금 생각하면서 뭔가――무언가 위화감을 느낀다.

(뭐지――?)

하지만 그걸 붙잡기도 전에 황급히 시간은 와버렸다.
본방송이다.

"자, 달려가자"

고무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린은 척 고개를 들어 아플 정도로 빛이 넘치는 무대로 나갔다. 단 혼자서, 등을 쭉 펴서.

여기서부터는 린의 무대다.
아무리 스태프가 서포트를 해도, 무대 위에선 아이돌은 혼자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뒤쪽 일밖에 없지만, 그것도 지금은 더는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남은건 옆에서 지켜볼뿐.
(힘내주세요, 린 씨……!)

린은 또박또박 잘 말하고, 인터뷰의 질문에도 똑바로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이번 타이업에 대한 의지를 반짝이는듯한 미소로 말했다. 아무 문제도 없어서 모든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럼 여기서, 시부야 린 씨가 노래하는 이미지 송을 듣겠습니다!"
"네, 잘 부탁합니다!"

바층, 주위가 어두워지고 스포트 라이트가 척, 하고 린을 비춘다.
마이크 스탠드를 꾹 움켜쥐고 린은 조금 솜을 들이키고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굉장해)

주변이 지배되어가는것을 알 수 있다.
린의 노랫소리에, 거기에 몇 없는 존재감에, 가벼운 댄스에.
모두가 숨을 삼키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사이리움 대신에 셔터가 빛난다. 소리가 내려붓는다.
거기에 응하듯이 린의 노랫소리는 힘을 늘린다.

그 때,
비틀, 린의 스텝이 무너졌다.

"!?"
정신을 차렸다.

(힐이……!!)

오른발의 부츠 힐이 중심부에서 부러져있다.
지금까지 그런 조짐은 한 번도 없었는데, 설마 이 큰 무대에, 이 타이밍에.
기울어진 린은 약간 초조해하는게 느리게 보였다.
불길한 땀이 배어나온다. 둥둥둥 심장이 기묘한 소리를 낸다.
(위험해, 넘어진다, )

하지만 다음 순간.
린은 모든게 처음부터 그랬던것처럼 빙글, 예정에 없는 패턴을 하고 보이며, 그대로 다음 스텝을오 가볍게 넘어갔다.

하아-, 숨을 내쉰다.
린의 모습은 변함없다. 빛나게 웃고, 때로는 늠름한 표정, 불타오르는 듯한 푸른 노랫소리.
부러진 힐을 보여주지 않도록, 살짝 댄스 각도를 조정하면서 그래도 린은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모두 노래했다.

"감사합니다!!"

박수가 내려졌다.
린은 땀을 빛내며 생긋 웃는다.
그대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캠페인에 대해서 판촉을 하고,

"시부야 린이었습니다! 감사하빈다!!"

그렇게 말하고 싶게 고개를 숙이고, 잠시 그러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니, 고개를 척 들며 반짝반짝거리는 미소로 손을 흔들고. 춤추듯이 이쪽으로――무대 옆으로 다가왔다.
박수가 좀처럼 끊이지를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응,"

내민 물에는 눈도 주지 않고 린은 무대의 안쪽에 무대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달려간다.
"린 씨?"
물으며 쫓아간다.
그런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린이 무너졌다. 황급히 안는다.

"괜찮습니까!?"
"미안, ……좀, 아플지도"
"다리입니까!"
"응, 좀, 조금이야"

조금이 아니잖아.
희미하게 보이는 린의 표정은 통증으로 일그러져있다. 무대에선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던 약한 소리를 아주 조금만 내고 린은 눈을 감고 얕은 호흡을 되풀이했다.

"프로듀서, 좀 놔줘"
"앗, ……, 죄, 죄송합니다"
"으응. 괜찮아, 고마워"

안고 있던 팔을 놓으니 린은 비슬비슬 구석에 놓여있던 의자에 앉았다. 어깨로 숨을 내쉬면서 겨우 물을 받고 단번에 마신다. 병을 돌려주자 몇 번인가 발목 상태를 확인하고, 그래도 두꺼운 부츠 위로는 잘 알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의상담당자가 발소리를 죽이고 달려온다.

"시부야 씨!"
"죄송해요, 저 넘어져서요"
"아뇨, 그런게 아니요! 이쪽이야말로 점검을 제대로 못 해서……"
"리허설에서 춤췄을때는 괜찮았는걸, 어쩔 수 없어"
"그래서 완전히 같은 예비 부츠가 없어서,"

이거, 라고 내민것은 힐이 없는 무도화였다. 파랑 리본이 달린 검은 신발.
"발이 아프면 비슷한 부츠보다 이쪽이라고. 의상과 지장이 없는 디자인이 좋다고 생각해서……갈아신어주세요"

다음 예정은 테이블 너머로 상품을 배포하면서 악수 모임이다.
허리 아래는 거의 보이지 않을거라고 판단한거라 생각됐다. 그게 좋다. 허세부린 린이였지만 표정을 보면 상당히 다리는 아파보였고, 로우 힐 무도화라면 악수 모임 정도는 넘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린은 힐끔 무도화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건 이걸로 완성되어 있는거니까"
"린 씨! 하지만, 다리는"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린은 천천히 일어났다. 겨우 일어섰다는 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다부지게 웃고

"책상 아래니까 다리는 조금 보일테고. 힐이 노 힐이 된다면 모를까, 부츠가 무도화가 되는건 분위기가 너무 바뀌어. 접착제 좀 빌려줄래? 그걸로 버틸게"
"하지만!"
"이미지 걸은 이미지를 중요시 해야해. 그렇잖아?"

그렇게 말하고 허리를 쭉 폈다.
"확실히 돌아다니는건 좀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서거나 앉는것 뿐이라면 괜찮아"
맡겨줘, 하고 이렇게 말한 그녀는 조금도 동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린 씨"
"응"
"무리를 하지 않는것도, 아이돌의 일 중 하나입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
"…………하다못해. 이 현장이 끝나면, ……바로 병원으로"

고섭으로 가득찬 결단엔 린은 파앗 얼굴을 빛내고
"고마워!" 라고 웃었다.
그 사이에 내내, 뭔가 뭔가 들러붙는듯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건 린의 무리한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


악수회 동안 타케우치는 아무튼 주의깊게 린을 관찰했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빠보이면 바로 갈아입힌다, 혹은 내리게 할 생각으로.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까지 약한 소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무리를 한것 같은 표정조차 전혀 보이지 않은채로,
완전히 평소대로의 시부야 린으로서 악수회를 끝냈다.

어쩌면 모든건 기우이며, 뭐든게 다 대단한일은 아니었던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마저 했지만 악수회를 마치고 반듯하게 걷는 린은 팬이 들어올 수 없는, 스태프조차도 거의 없는 구역까지 인사를 하면서 헤매는 일 없이 곧장 걸어오고는, 타케우치 말고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황급히 달려간다. 린의 이마에는 진땀이 떠오르고 호흡은 심히 거칠었다.

"린 씨! 무리는 하지 말라고 그렇게나……!"
"안 했어. 무리는 하나도. 이게 나의 노력이니까"
"그런건!"
"하지만, "

갑자기 표정에 약한 부분이 돌아왔다.
사적이거나 바래다줄때 보는듯한 무방비한 얼굴. 미약한 목소리로,
"이제, 오늘은 이걸로 끝이지……?"
거기에 몇 번이나 끄덕였다. 린은 오늘 노력했다. 누구보다도. 할 수 있는걸 했다. 최대의 퍼포먼스를 발휘했다. 그러니까 이제, 오늘은 됐다. 쉬어도 된다.
"얼른, 갈아입고 병원으로……"
"프로듀서, "

앉아있던 린은 마치 껴안아줬으면 싶다는 모습을오 팔을 벌렸다.
그건 너무나도 허무하고, 마음이 흔들릴것 같은걸 참는다. 평정을 꾸린다.

"왜 그러십니까"
"미안, ……그게……어부바, 해주지 않을래?"

심히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는 린에게 두 가지 의미로 현기증을 느꼈다.
설 수 없을 정도로 참고 있었나.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어떠한 때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도,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한다. 달리려고 한다. 좀더 빠른 단계로, 자신이 브레이크가 되어주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다. 그런데.
분함에 이를 악문다.
조금의 망설임을 의지로 비틀고,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타케우치는 린에게 등을 내밀었다.

린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진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그러허게 생각한 것이다.
둥실둥실 가볍고, 부드럽고, 이따끔 얼굴에 닿는 긴 머리카락에선 좋은 냄새가 났다.
걸을때마다 몸의 옆엥서 가냘픈 다리가 흔들거린다.
떨어지지 않도록 꼬옥, 목 앞 부근에서 껴안듯이 힘을 넣는다.
……어질어질해질것 같다.

몇 번이나 만났던 약혼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는 멋진 여성이다.
그걸 배신해선 안 된다.
자신은, 올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치솟아오를것 같은 정을 필사적으로 참고, 몇 번이나 약혼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대로 락실까지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한 린을 옮겼다.
문을 여는데 고생했다. 양손이 막혀있어서 팔꿈치로 어떻게든 열었지만 이번에는 불을 켤 수 없다. 스위치 장소는,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제 됐어, 저쪽 의자에……내려줘"

가냘픈 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은대로 그 악실로 들어간다. 끼익, 뒤로 문이 닫힌다.
끼워진 작은 유리로 희미한 빛이 비쳐들어올뿐인 어두운 공간. 그 가장 안쪽 파이프 의자에 살포시 린을 내렸다. 끝없이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숨을 내쉬고,
"그럼 갈아입으시면 연락을. 병원으로 갑시다"
라고 하고 몸을 돌린다. 하지만 쿵, 소매를 잡아당기는 감촉에 돌아봤다.

"……기다려"

속삭이는듯한 목소리.
린이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미안, 조금만 이거…………벗겨줘"

가냘픈 다리를 조금 들어올리며 지금이라도 사라질법한 목소리로 간원했다.
휘청, 무언가가 크게 흔들리는 감촉이 났다.
의상 부츠는 무릎 아래까지로 짜여져서 확실히 아픈 다리로는 힘들어보였다. 거기다 신발을 벗지 않으면 자신의 상황도 똑바로 알 수 없다.
그것뿐이다.
그것, 뿐인데.

흔들려선 안 된다고 마음을 질책한다.
진정해라고 몇 번이나 반복한다
그래도 심장은 경종을 친다.

"……그럼, 그게, "
중얼거리고 린의 발쪽에 무릎을 꿇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떨리는건 피할 수 없었다. 말하고 손을 뻗었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낸다.
손끝이 천천히 부츠를 만진다. 움찔거린다.
매끄러운 감촉. 자크는 어디이락, 하며 손끝만으로 스륵 만진다.

"프로듀서, 그거, 끈이야……, "
"어, 아, 아아, 네, "

살짝 손을 위쪽으로 들어올린다.
작고 둥근 린의 무릎. 그, 바로 아래에 우아하게 묶인 끈.
끝을 집어어서 당기자 스르륵, 소리를 내며 벗겨졌다.
그대로 부츠에 있던 구멍으로 끈을 당겨서 뺸다.
하나씩, 확실하게.

머리가 울린다.
심장이 시끄럽다.
단순한 일이다. 그녀는 다쳤다.
그런데 감정은 용서없이 자신을 흔든다. 한심하다.
거칠어질것 같은 숨을 어떻게든 참는다.

끈을 풀때마다 천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하나씩 풀어간다는 행위가 무언가를 연상시킨다.
놀랄정도로 가까이서, 린의 억누른듯한 호흡이 들려온다.
자신의 숨은 어떨까. 뭔가 부자연스러운 구석은 없는걸까.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겨우 마지막까지 끈을 풀자.
발목을 안듯이 고정하고 가능한 살살, 살짝 부츠를 빼냈다.
"읏, " 하는 린이 숨을 참는 기척이 났다.
스륵, 소리를 내며 긴 부츠는 겨우 린의 다리에서 떨어졌다.

거기서 겨우 참고 있던 숨을 내쉬는게 가능했다.
무릎 꿇은채로 고개를 든다.
어두운 방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빛을 들어와 린의 눈동자만이 젖은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떨릴만큼 아름다웠다.

"프로듀서"
"……네"

젖은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어둠 속에선 똑바로 보이는건 그 아름다운 눈뿐이다.

"고집 부려서 미안해, 하지만"
"……, "
"프로듀서가 입혀준 드레스니까, ……소중했어"

속삭이는듯한 쉰 목소리.
끔뻑거리며 눈동자의 빛이 몇 번이나 감추어진다.
나는. ……나는.

"…………………얼른, 병원으로 갑시다"

도망쳤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로부터 얼굴을 피해, 빠른 어조로 그렇게 말하고.
빠른 걸음으로 린의 악실을 뒤로했다. 도망치듯이.

그대로, 질질 무너져버릴것 같았다.


          ※


병원의 대기실은 완전히 인기척이 사라져서 아플만큼 조용했다.
앉아있는 린의 앞에 조사결과를 들은 타케우치가 다가가니 튕겨지듯이 린의 얼굴이 올라갔다.

"일은, ……무대는"

매달리는듯한 얼굴.
타이업의 대부분 준비는 전부 다 찍었다. 캠페인이 시작될때까지가 제일 바쁘고, 시작해버리면 남은건 그렇게까지 바쁘진 않다. 그저, 전국각지의 편의점을 남하하면서 부르는 이벤트가 아직 남아있었다.
타케우치는 의사에게 받은 진단표를 내려보고,

"2주일 후 홋카이도 무대까지는 완치하겠군요, 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했다.
도중에 린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가는걸 알았다. 다행이다, 라며 쥐어짜낸 목소리.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안정을 취하셔야겠습니다"
"어? 안정……이라니?"
"구체적으로는 의사의 허가가 내려질때까지 댄스 레슨이나 운동은 금지입니다"
"에, "
말한 순간, 어째선지 린의 눈동자에 초조의 색이 가득해졌다.

"――달릴 수 없게 되는건 싫어!!"

생각지 못한 큰 목소리. 후에 조용해진 정적.
생각도 못한 격정에 놀란다. 린 씨? 하고 의아스럽게 물어보지만 린은 매달리는 듯한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며, 그리고 시선을 서성이며 무릎 위로 힘없이 떨구었다.

"그치만, 달려서, 달리지 않으면, 나……, "
웅크려 앉아서 높이를 맞춘다.
"초조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 일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듣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개숙인채로, 달려야해, 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조금 당혹했다. 하지만 그래도, 라고 생각해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두었다.
"린 씨밖에 할 수 없는 일은, 지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야!!"

휘둘러진 생각지 못한 강한 감촉에 또 놀란다.
그것과 동시에 손을 쳐내어졌다는데 생각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자신이 있었다.

"그게 아니야……"

쥐어짜듯이 말하고 린은 고개숙인채로,
"그게 아니야……"
그것만 말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를 모르겠다.
어째서 평소 레슨과 달리기를 못하는것만으로 이렇게 되는걸까. 왜 그렇게 초조해하는걸까. 하지만 그걸 묻지도 못한채로 결국 린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그대로 차로 돌아갔다.

차 안에서도 그녀는 말없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색한 공간이었다.
뭔가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을 반쯤 지났을 부근에, 휴대전화가 떨리는 소리가 조용해진 차 안에 울렸다. 그게 계속 울린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진동.
계속 이어진 착신은 뚝, 끊겼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또 울렸다.
신호대기동안 주머니에서 꺼내자 거기에는 약혼자의 이름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조수석의 린을 본다. 어떡해야할지 망설인다.

"……괜찮아. 받지 그래?"

툭, 이쪽을 보지도 않고 린이 말했다.
그렇게 듣고 아직 무시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럼, 그게, ……실례, 하겠습니다."
휴대전화 홀더에 전화를 고정하고, 스피커 모드로 전화를 받았다.


『――타케우치 씨!?』


갑자기 놀란듯한 약혼자의 목소리가 뛰어들었다.
"료, 료코 씨, ……오랜만, 입니다"
『아, 연결될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놀랬어요, 죄송해요』
"아뇨, 그게……이쪽이야말로, 오랫동안 연락을 안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이참 됐어요. 바쁘다는걸 알고 있는데다, 타케우치 씨하고는 교제하고 있으니까요. 저야말로 몇 번이나 전화걸어버려서 죄송해요』

……견딜 수가 없다.
방금전까지 그렇게나 맞지 않았던 린의 시선이 빤히 이쪽을 쏘아보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뺨이 서서히 뜨거워져서 멋대로 말이 빨라진다.

"죄송하지만 별로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용건을, "
『앗, 죄송해요, ……아이참, 저 아까부터 사과만 하네요……가 아니라! 으음, 말 해야하는게 있다고 생ㄱ가한게 있었으니까 부재 전화로 남기려고 생각해서 전화한거에요』
"……아아, 네"
『그게, 전에 공장 견학도, 그 전에 철도 기념관도, 제가 가고 싶다고 한곳 뿐이었죠?』
"네……"
『그러니까 이번에는 타케우치 씨가 가고 싶은 곳에 가요.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전화한거에요』
"네……, 검토, 해보겠습니다"
『후훗. 그런 말씨, 멋지다고 생각해요』

짖궂게 웃는 약혼자의 기척.
린의 시선은 벗어날 기색이 없다. 찌릿찌릿 뺨이 그을릴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느긋한게 저의 장점이니까요, 시간을 낼 수 있을때까지 그런대로 즐겁게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아뇨, 바쁘시겠지만 몸 소중히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네"
『안녕히, 타케우치 씨』
"네, ……안녕히"

뚝, 소리가 났다.
순간 차안에 아플만큼 침묵이 내렸다.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럴때는 놀려올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기나긴 침묵.
이제 린의 집에 도착할락말락한 곳까지 그건 계속됐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고 윙커를 올렸을때,

"……성씨로 부르는구나"

툭, 그것만 린은 말했다.
에, 라고 생각해서 힐끔 돌아봤지만 린은 이미 창밖을 쳐다보고 있어서, 거기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는 몰랐다.


          ※


눈을 감고 깊게 앉는다.
뭔가 이상하다고, 최근들어 내내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은 그런대로 있지만 짬내는 시간도 그런대로 있다.
타이업 캠페인은 이미 시작했으므로 그 바빴던것도 먼 일같았다.
남은건 이벤트를 몇 가지 해낼 뿐이다.

더는 빗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장마는 걷히고 여름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눈을 감으니 여러가지 감정이 빙글빙글 소용돌이를 친다.
말로 못할 무언가가 치솟아오르고는 사라진다.
이렇게 혼자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조금만이라도 무언가를 넘길 수 있을것 같았다.


몇 분 그러고 있었을까.
시간 감각을 잘 모르게 됐을때 평소엔 눈을 뜬다.
그러면 대충 5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거나, 가끔 15분 지나있거나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을 뜨려고 하는 순간 달칵, 소리가 난 것이다.

문이 열리는 기척.
누구일까, 눈을 뜨려고 하지만 둥실 감도는 커피 향에 급한 용건이라는건 아니라는걸 깨닫고 어깨의 힘을 뺀다.

그대로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왔다. 부장이나 어른이 아닌 소녀의 발소리.
누가 담당하는 아이돌이 어느샌가 돌아왔던 모양이다, 라고 생각한다.

통, 컵이 놓이는 희미한 소리.
눈을 뜨면 될텐데, 완전히 타이밍을 놓쳤다.
이대로 나갈테니까 그 후에 눈을 뜨고 커피를 받으면 사무소로 나가 고맙다는 말을 하면 되나, 라며 무정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이니물은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거는것도 아니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누군지 모를 그녀는 그저 가만히, 오랜 시간 거기에 서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킁, 한번만 코를 울리는듯한 소리가 났다.
옷 스치는 소리.
따뜻한것이 감싸인다.
그 향에 기억이 있었다. 린이다.
카디건을 덮어준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타케우치가 잠들어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번에야마라로 나갈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 린은 옆에 가만히 서 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차라리 눈을 떠버릴까, 라고 생각한 그 순간.

그만 눈꺼풀 위를 차가운 손가락이 쓰다듬었다.
놀라지 않았던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 정도로 놀랐다.
차가운 손가락은 그대로 앞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올려간다.
가까이서 느끼는 린의 기척. 향기.
무서울 정도로 가까운 귓가의 바로 옆에서,



"…………, 타케우치, 씨, "


속삭이는 희미한 목소리가 났다.
그대로 손가락은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귀에 살짝 닿는다.

그때, 바깥 사무소에 누군가가 돌아온 문 소리가 났다.
움찔, 린이 몸을 트는 기척.

"뭐, 뭐하는거람, 나"

허둥대는 듯한 목소리.
그대로 파닥파닥 뛰는 소리. 다녀왔어-, 어서와-, 라는 목소리.
그렇게해서 린은 나갔다.

문이 완전히 닫히는걸 확인하고나서,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다. 린의 카디건이 희미하게 따뜻한 분위기를 뿌리며 무릎에 떨어졌다.
그것과는 반대로 몸은 차가워져 있었다.
카디건이 떨어진 무릎이 떨리고 있다.

위화감의 정체.
그녀는 말했다, 어두운 곳도 좁은 곳도 틀렸다고.
그러니까 키스한걸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언제나 어둡고 좁은 차안에서 그녀는 태연했다.
거의 암흑에 가까운 무대 옆에서도 그녀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악실에서 불을 키려고 했을때, 필요없다고 말했다.

달칵, 하고 소리를 내며 무언가가 짜맞추어져간다.
만나고나서 지금까지 그녀의 얼굴이 몇 번이나 플래쉬백한다.

진심으로 오싹해져 있었다.
손끝이 놀랄정도로 차갑다.
안색이 창백해진다는걸 알았다.
몸속의 피가 어딘가로 빠져버린것처럼.
머리나 눈 앞이, 새까매졌다.

단 한 마디.
그저, 이름을 불린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것을 알아버렸다.

그 말은,
지레짐작도 원망도 망상도 뭐도 아닌,
그 목소리는――,


그녀는, 자신, 을.


린이 서 있던 주위의 바닥에는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이 모든것을 말하고 있었다.


『억수비라도 좋아,
 나는 여기에, 있고 싶은데――』



타케우치는 절벽 위에서 밀쳐떨어진듯한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회유어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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