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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의 빛 - 19. 뇌우같은 키스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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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2, 2015 12:39에 작성됨.

극채색의 빛 - 19. 뇌우같은 키스를 하고
 

 
매년대로 비의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장마는 아직 걷히지 않는다.
그래도 올해 장마는 이래저래 굴곡이 있어서 폭우가 내렸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구름이 2, 3일 이어진 적도 있다. 맑은날도 꽤나 자주 보인다. 날씨를 읽을 수 없는 해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같다고 타케우치는 생각한다.
빨리 평온해지면 된다. 날씨도 자신도.
 
오늘은 복귀후 첫 린의 솔로 악수모임이 있다.
오랜만에 팬과 접촉에 린은 조금 안절부절해하는 모양이었다. 이동중인 차 안에는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들어서고 있다. 대화다운 대화도 없고 살짝 흐린 하늘 아래 매끄럽게 차는 간다.
 
그러고보니 ,하며 조수석의 그녀를 생각한다.
린은 요즘 타케우치가 모르는 얼굴을 하게 됐다.
촬영이나 스테이지, 그리고 타케우치의 앞에서 편린을 보이는, 본 적도 없는 표정. 사무소나 동료들 앞에선 결코 보여주지 않는 표정.
마음이 여기에 없는듯한, 그래도 혼만이 여기에 남겨져버린듯한.
올라온 사진이나 영상들을 봐도 그렇다.
카메라를 극복하고나서 그녀는 뭐라고 할까, 분위기가 늘었다.
뭐라 형용 못할법한, 참을 수 없는 구심력을 가진……떠오르는 색기같은것이 나오게 됐다. 반해버린 자신의 흐려진 눈 탓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의견은 여기저기 현장에서 나오고 있어서 그녀는 그 오러를 위해 오로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사진을 능가하는걸 타케우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린과 둘이서 장마가 걷혔을때 찍은 폴라로이드.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과 동시에 그늘지기도 했다.
강한 눈빛, 사라져버릴법한 허무함.
마치 울어버릴것 같은걸 참고 있는듯한, 그러면서도 열심히 행복을 만끽하는듯한, 상반하는것이 동시에 깃든 그녀의 모습.
린의 안쪽에서 갈곳 없는 에너지 같은것이 소용돌이 치고 있어서 그것이 출구를 잃고 헤매고 있다.
그걸 전부 모두 찍어낸듯한 사진이었다.
 
사적으로 갖자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나날로 열화해가는 폴라로이드는 너무나도 아쉬워서, 다음날 전부 데이터화했다.
선명한 린의 사진.
이런건 공사혼동이다, 라며 일어나는 죄악감을 짓누르면서도 그녀의 모습은 타케우치의 컴퓨터 구석에 존재하고 있다.
몰래. 하지만 확실하게. 사랑처럼.
 
 
 
          ※
 
 
 
오늘 악수 모임은 야외에서 행해질 예정이었다.
지금까지는 타케우치의 특설장이나 CD샵에서 그룹으로 행해지는것이 많았지만 오늘은 린 혼자서, 더군다나 상당히 뜨인 옥외다.
그래도 린의 인기가 급격히 높은것과 카메라 앞에서 노출이 회복하고나서 첫 솔로 악수 모임이라는것도 있어서 상당한 인수가 모였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회장에 도착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지금까지 같은 옥내에선 사그라들지 않는 기나긴 줄이 생겨있다.
텐트 안에서 살짝 그걸 엿본 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굉장해……"라고 중얼거렸다.
"모두 당신을 만나러 온겁니다"
그렇게 말하자 린은 이쪽을 올려다보고 눈을 몇번 끔뻑거린다. 긴 속눈썹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몇 번이나 감춘다. 굉장하네, 하며 한번 더 말한 린은,
"나, 정말로 여기까지 왔구나"
라며 꿈꾸듯 말했다.
 
그 말에 구름낀 가운데 산더미만큼 모여든 팬들에게 그녀는 정진정명 아이돌이라고 생각한다.
카메라 앞에 못 섰을때도 데뷰 당초, 꽤나 인기가 생기지 않아 예산이 내려오지 않았을때도, 그녀는 내내 혼자는 아니었다. 많은 팬들에게 받쳐져서 달려왔다.
그녀는 혼자는 아니다.
그래, 자신만의 린은――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몰래 사진을 숨겨갖고 있는 자신이 왠지 심히 천하게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정은 용서없이 가슴을 찌른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는 기쁨과, 그녀를 찾아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인데라는 희미한 초조감.
한 점의 그늘 없이 솔직하게 린의 성공을 기뻐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는 자신이 있다. 그것이 괴롭다.
이렇게 기뻐서 견딜 수 없다, 그건 사실인데. 거기에는 단 한점의 더러움이 있다.
그녀를 독점하고 싶다는 추악한 자신.
이런 마음, 지금까지 몰랐다.
 
"프로듀서?"
"아뇨, 아무것도……아닙니다"
 
무의식중에 목덜미에 손을 대고 있었다. 벌레씹은듯한 심정을 읽힌걸까 생각해서 황급히 손을 뗀다. 린은 빤히 이쪽을 올려다본다. 모든것을 꿰뚫어보는듯한 눈으로. 저도 모르게 피해버렸다. 눈 앞에는 팬의 행렬. 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인파가 굉장하다고 생각해서요"
"응, 그러네"
분명 말야, 하고 린은 말을 했다.
"프로듀서의 덕분이야"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것도, 앞으로도 또 힘낼 수 있는것도 전부.
솔직한 말. 아무 잘난척도 없이 자신을 신뢰하는 린의 말. 피한 눈을 돌릴 수 없다.
"아뇨, 린 씨가……열심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억지로 시선을 린과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조금 고개를 숙인 린.
"그런건……나는, "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또 그 표정이다. 그늘과 우울함을 감춘 옆얼굴. 수많은 업계인을 끌어당기게 만드는 표정.
린은 어느샌가 이런, 어른 여성같은 얼굴을 하게 된거겠지.
자신은 린의 모든것을 알고 있는건 아니다. 어째서인건지 이유도 모른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 하고 무슨 일이 있던걸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욱신했다. 생각했던것보다도 훨씬 가슴은 아프다.
린의 모든것을 알고 있는건 아니다. 그런게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녀가 누군가와 손을 잡고 달려가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마, 제대로 할테니까 부탁해, 라고 간원하는 날을.
그런때가 언젠가 반드시 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알지 못하는 그녀의 좋아하는 사람.
그 포지션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다면, 하는 추잡한걸 생각한다. 점점 심장이 아프다. 어른이 생각할게 아니다. 프로듀서로서 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래도, 린의 곁에 있고 싶다.
프로듀서 실격이 되지 않도록.
어른으로서 추태를 보이지 않도록.
그녀의 옆에, 계속 서 있기 위해.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랑을.
 
"시간입니다, 갈아입기를"
"……응"
 
색을 머금은 린의 눈동자.
그것이 잠시 눈을 감고 린은 임시 텐트로 사라져갔다.
 
 
 
           ※
 
 
 
린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아이돌로서 악수를 하는거니까 이미지를 소중히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이었다.
옅은 흰색 드레스와 금색 작은 티아라. 이렇게 보면 그녀는 단순한 여고생도 꽃집 간판 아가씨도 아니라, 틀림없는 아이돌이었다.
밖은 구름끼어있는데 심히 눈부시다.
더 이상 그녀는 원석 따위가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진짜 아이돌이다.
 
악수 모임은 순조로웠다.
한 사람 한 사람, 린은 진솔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편지나 선물을 받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한다. 고작 이것뿐인것을 하기 위해 그녀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는가, 분명 아무도 모를 것이다. 둘만의 특훈의 나날이 떠올랐다.
 
팬들 속에는 굉장히 먼 곳에서 온 사람이나 몇 번이나 얼굴을 보이는 사람, 그리고 특히 여성이 많이 보였다. 칼럼 읽었어요, 라디오를 항상 듣고 있어요. 그런 목소리도 자주 들렸다.
(역시 그때, 미디어 노출을 줄이지 않아서 정답이었어)
 
동성에게도 지지받는 아이돌이라는건 상당히 얼엽다.
그래도 린은 그걸 해낸 것이다. 카메라를 두려워하는 가장 힘든 시기에,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할 수 있는걸 열심히 해서. 그것이 지금으로 이어졌다.
 
줄이 3분의 1정도 줄어들었을때. 갑자기 툭툭, 텐트 위에서 소리가 났다. 끝엥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
장마라고는 해도 오늘 날씨는 하루종일 구름, 강수확률은 결코 높지 않을터였다. 그것도 계산해서 야외에서 스테이지를 설치했을텐데.
점점 빗발은 강해져간다. 지면에 물방울이 튀긴다. 줄의 여기저기에서 색이 여러가지인 우산이 핀다. 역시 여성이 많기 때문인지 우산 색은 화려했다.
 
린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졌다. 악수 하는 사이에도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돌아본다.
"비……어떡하지"
곤란한듯이 말한다.
"우산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네……"
지금부터 실내로 변경할 수 없어? 라며 이쪽을 올려다봤다. 목에 손을 댄다.
"그건……어렵겠군요……"
애시당초 실내 회장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갑자기 이런 대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만한 곳은 없다. 린 자신은 텐트 아래에 있어서 젖지는 않지만 모여든 팬은 그렇지 않을것이다. 기상청에서 받은 20%를 신뢰한 팬들은 지금도 젖으면서 린을 기다리고 있다.
린은 잠깐 생각에 잠기고 응, 하고 중얼거리는것과 동시에 갑자기 일어섰다.
 
"프로듀서, 줄을 잠까만 멈춰줘!"
"린 씨, 뭐를"
"나, 잠깐 옷 갈아입고 올게!"
 
그렇게 말하고 순식간에 린은 안쪽 텐트로 사라져갔다.
갑자기 웅성거림이 퍼지기 시작한다. 앞쪽에서 안쪽으로 전염해가듯이 웅서어거림은 커져갔다. 황급히 앞에 서서 갑작스런 사태가 있어서, 조금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반복하는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해지는 빗소리에 섞여 들려온건 불평불만은 아니었다.
 
"시부린, 왜 그런걸까"
"몸 상태라도 나빠졌나?"
"악수 모임 오랜만이었으니까"
"사람도 이렇게나 있고……"
"걱정이네……"
 
그녀를 생각하는 말들. 거기에 질투하고 있으니,
"――기다리셨습니다!"
선명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뛰어나왔다. 평소 입는 교복차림으로.
 
"린 씨? 그게, 어쩔 생각으로"
"프로듀서……조금만 더, 줄을 잡아둘 수 있을까"
"그건……못할건 없습니다만"
린은 척 고개를 든다. 강한 의지를 깃든 눈빛.
"선물이나 편지, 모두가 갖고 와줬어. 우산이 없는 사람도 꽤 있고……비에 젖으면 편지는 특히 큰일일거야"
안쪽에서 꺼내왔을 빈 상자와 비닐봉투를 영차, 하고 안고,
 
"나, 지금부터 가서 받아올게!!"
 
그렇게 말하고 멈출틈도 없이 린은 뛰어나갔다.
황급히 줄 정리 스태프에게 무선으로 주의를 준다. 이걸로 줄이 무너지거나 패닉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린의 호의가 헛되게 되어버린다.
 
비는 점점 강해진다.
우산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4분의 1 정도라, 그 이외의 사람은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 가만히 서 있다. 린을 위해서.
 
린은 교복차림으로 우산도 들지 않고 줄로 뛰어들어서 한 명씩 사죄하면서 선물이나 편지를 받아갔다. 점점 비닐을 뒤집어쓴 상자가 채워져간다. 타케우치도 뛰어들어서 새로운 상자와 비닐을 린과 교환하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한다
그렇게해가는 사이에 줄의 마지막까지 도달했다. 시간은 상당히 지나있었다. 린이 뒤쪽 텐트로 뛰어갔다온다.
 
"기다렸지, 미안해"
"아뇨, 수건입니다"
닦아주세요, 라고 건낸다.
"고마워, 하지만 바로 나가야해"
시간, 밀렸잖아? 그렇게 말하고 대충 머리카락과 어깨만을 닦고 린은 시계를 힐끔 확인했다. 돌려받은 수건은 무거워져있었다. 붕붕 고개를 젓는다. 젖은 머리카락이 퍼진다. 그대로 슥 고개를 들고,
 
"드레스가 아니게 됐어. 실망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아뇨, 그런건"
 
턱없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팬은 분명 없을 것이다.
생긋, 희미하게 미소짓고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돌아갔다.
 
비속으로 뛰어나간 그녀는 무척이나 늠름했다.
건너편도 보지 않고 처러포처럼 굳게, 일직선으로.
무뚝뚝한 겉표정 속에는 마음과 다정함을 감추고 있다.
 
(그런 모습이, 저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제정신을 차렸다. 안 된다, 생각해선.
지금은 일을 하자.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
 
 
 
 
악수모임은 대성황으로 끝났다.
흠뻑 젖은 린을 걱정하는 팬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때마다 린은 빛나는 미소로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고마워"
라며 미소짓고,
"손이 식었을지도 모르지만,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악수했다. 시간은 대폭으로 밀려져버렸지만, 팬은 다들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것이 타케우치는 기뻤다.
 
돌아가는길, 앞유리에 비가 내려친다.
정말로 일기예보를 대폭으로 배신하는 날씨다.
이후에는 사무소로 돌아가서 린을 갈아입히고나서 돌아가게 됐다.
 
"정말로……수고하셨습니다"
"응, 오늘은 멋대로 뛰쳐나가서 미안해"
 
시트도 젖었네, 라며 린은 엉덩이 부근을 신경쓰고 있다.
여전히 세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문득 뺨 부근이 풀어지는걸 느낀다.
 
"괜찮습니다, 그대로였다면 분명히 편지의 반수 정도는 못 읽게 됐을테니까요"
좋은 임기응변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니 린은 "……고마워" 라고 말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팬의 앞에선 결코 보여주지 않는 표정.
카메라맨이나 자신의 앞에서만 이따끔 얼굴을 드러내는, 희미하겍 우울함을 참는 그 표정. 거기에 두근거린다. 황급히 앞을 쳐다봤다.
 
뒷좌석에는 묵직하게 편지랑 선물이 쌓여있다.
꽃다발이나 린이 좋아하는 청색의 작은 물건, 인형, 음식, 기타등등.
사무소에서 그것들을 일단 나누고나서 린에게 건내야한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내일이 될것 같았다. 오늘은 한 시라도 빨리 린을 갈아입히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전처럼 감기를 걸리게 해서는 안 됐다.
 
늘 가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선물은 뒷좌석에 남긴채로 둘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미미한 진동과 함께 움직이는 공기 조절기가 켜진 상자방. 겨우 돌아왔다, 라는 안도에선지 숨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응. 정말로, 빨리 갈아입어야겠네"
더는 일에 구멍낼 수 없으니까, 라며 굳게 린은 말한다.
"그렇군요……, 읏, !?"
갑자기 덜컹, 하고 발밑이 흔들렸다. 지진인가, 무의식중에 린을 끌어안는다.
"뭐야!?"
날카로운 목소리. 그것과 동시에 팍, 엘리베이터의 불이 꺼졌다.
 
황급히 조작판 앞으로 뛰어들어서 모든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반응하는 버튼은 하나도 없었다. 덜컹덜컹 희미한 소리만 울릴뿐. 주위는 새까맣고 정말로 아무 빛도 보이지 않는다. 싸악 핏기가 간다.
린이 있을 방향으로 돌아보고 사실인것 같은걸 말한다.
 
"……갇혀버렸습니다"
"에, "
"비상용 버튼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앗, 그럼, 스마트폰은, "
 
황급히 둘이서 휴대폰을 꺼낸다. 옅은 빛이 린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다. 자신의 모니터도 확인하고 쓰딘 표정을 지었다. 권외다.
 
"……연결되지 않군요"
"나도, 권외야……그럴수가, 그럼 정말로, "
 
불않내하는 린의 목소리에 황급히 덧붙인다.
"저녁도 진작에 지났다고는 해도 이 엘리베이터는 누군가 이용자가 있을겁니다. 그 사람이 깨닫고 도움을 불러주겠지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가능한 힘있게 말해본다. 그 목소리로 린은 조금 힘이 빠진듯이
"그러……네" 라고 말했다. 거기에는 더는 초조감이나 불안은 보이지 않았다. 안심한다.
 
"구조가 올때까지 조금 쉬자"
오늘은 여러 일이 있었으니까, 라며 중얼거린다.
너무 다가가는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린의 반대각, 버튼 앞부근에 앉는다. 삐걱, 지면이 흔들리는걸 느낀다.
"린 씨도 앉아서 쉬어주세요"
"응, ……알았어. 그러게"
삐걱, 엘리베이터가 흔들려서 린이 앉은것을 알았다.
 
말없는 시간.
원래 린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고, 어느쪽이냐고 하면 말이 없는 편이다. 얘기하는것도 없는 시간이 잠시 이어진 후, 툭, 린이 말을 했다.
 
"……새까맣네"
"그렇군요"
"공기 조절기도……끊긴것 같고, 정말로 전기가 다 나갔구나"
"그렇……군요"
"빨리 눈치채주면 좋겠는데"
"예"
 
그렇게 말하면서도 린의 목소리는 왠지 딴곳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아니면 일이 있으면 누군가가 깨닫고 찾으러 왔을까.
만약을 생각해봐도 소용이 없다. 아무튼 오늘은 린을 빨리 돌려보내주고 싶었다.
 
시각은 점점 지난다.
몸을 움직이는 소리, 어딘가 멀리 들리는 무언가의 소동소리.
엘리베이터 내의 공기를 통해 린의 냄새가 희미하게 전해온다. 현기증을 일으킬것 같다.
어둠 속에서 전해지는 린의 옅은 향기.
자기보다도 훨씬 작은 호흡소리.
린의, 기척.
갑자기 가슴을 치고오르는건 격정에 가까운 무언가.
 
――이 사람을 좋아해.
누구에게도 멈춰지지 않아.
 
기가 센 구석을 좋아해.
퉁명스러운 점을 좋아해.
실은 정이 깊고 다정한 점을 좋아해.
실은 로맨티스트고 굉장히 여자애다운 점도 좋아해.
고양이처럼 조금 날카로운 눈매를 좋아해.
좀처럼 웃음을 보여주지 않는 그 입술을 좋아해.
언제나 살랑살랑 씻기어 새로운 머리카락 냄새를 좋아해.
잘 움직이는 하얀 손끝을 좋아해.
 
……좋아해.
 
앳취, 작은 재채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린은 흠뻑 젖었을터. 아뿔싸, 라며 이제와서 생각한다. 공기 조절기가 끊긴 엘리베이터의 안은 몸집이 큰 자신에게는 되게 더울 정도였지만, 린에게 있어선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다.
배려하지 못한 자신에게 이를 문다. 황급히 일어서자 린이 당혹해하는 기척이 났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엣?"
"그게, 상의를……감기 걸립니다"
"아아, 아아……그래, 그렇지"
 
품에서 전지 잔량이 신경쓰이는 펜 라이트를 꺼내어 돌려서 점등시킨다.
작은 박스 구석에 다리를 세워 앉아있는 린이 비추어졌다. 갑자기 밝아져서 눈부신건지 손을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한 발짝 다가갈때마다 린의 향이 강해지는것 같아서 왠지 어질어질한다. 그걸 의지랑 책임이랑 온갖 모든걸 총동원해서 꾹 참고 다가간다.
펜 라이트를 입에 물고 큰 상의를 벗고 린의 앞에 웅크려 앉았다. 심하게 눈부셔 보여서 라이트를 끈다. 그대로 더듬으며 린의 어깨를 찾는다.
 
손끝의 신경이 전부 갈마되어있는 느낌이 든다.
손을 종횡한다.
갑자기 린의 어깨에 닿은 그 순간.
찌리릿 전기가 달린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것이 사랑인가 생각한다.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지어 린의 어깨에 상의를 살짝 입힌다.
"……고마, 워"
"아뇨"
짧은 대화. 그대로 대각선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자,
 
"저기……, "
 
묘하게 굳은 린의 목소리가 났다.
"네, 뭔가요"
대답을 한다. 최대한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평소대로.
"저기 말야, 나, ……추운데"
"……죄송합니다. 상의는 이제 이것밖에"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말이 분명치 않다. 설마 본격적으로 상태가 나쁜건가?
하지만 타케우치의 걱정을 배신하고 이어진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옆에……앉지 그래?"
"엑"
"그러니까. 여기에, ……앉아줘……"
 
프로듀서의 열이라도 없는것보다는 낫잖아. 라고.
린의 희고 가늘은 손가락이 탁탁, 지면을 치는 소리가 난다.
이건 무슨 포상인가, 아니면 고문인가.
다가가선 안 된다. 이런 밀실에서, 어둠속에서, 그녀의 바로 옆에 있어도 좋을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감각을 차단당한 방은 평소의 판단을 둔하게 만들었다.
충만한, 식은 비의 냄새와 거기에 섞인 린의 향기.
스륵, 발을 내딛는다. 내딛어버린다.
 
"그럼……실례, 하겠습니다"
"응"
 
가능한 살짝 앉았다. 린을 위협하지 않도록.
어깨와 어깨가 맞닿을 거리였다. 한층 향이 강해진다. 무슨 냄새일까, 하며 딴 생각을 열심히 생각한다. 그래도 전신전령으로 신경이 린쪽을 향한다.
맞닿은 부분에서 서서히 정이 솟아올라온다.
좋아해, 좋아한다고.
(안 돼, 이래선)
안 되는데.
너무나도 어둡고, 아무도 없고, 단 둘이라.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릴것 같아서.
 
어찌할 수도 없이, 이 사람에게 사랑을 하고 있다.
 
 
 
          ※
 
 
 
그대로 결국 몇 시간이 지났다.
린은 말이 적어서 가끔 툭툭 종잡지 못할 소리를 했다.
집의 개에 대한것, 좋아하는 꽃에 대한것, 학교에 대한것,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것.
일의 얘기만큼은 어째선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구조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시간 감각이 점점 마비되어온다.
지금이 언제인건지, 언제부터 여기에 있는건지.
평생 여기에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생각했다.
이렇게, 린과 둘이서.
누구에게도, 어떠한 상식에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둘이서.
 
"저기"
"네"
"…………해?"
"네?"
 
들을 수 없는 사라질것 같은 목소리에 린의 방향을 쳐다본다.
뭔가 보이는것도 아니지만, 희미하게 몸을 트는 옷스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나서 작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
 
"결혼……해?"
 
움찔했다.
심장을 바로 찔렸다고 생각했다.
핏기가 싸악 간다. 목소리가 떨린다.
 
"어째서……그것을,"
"……봐버렸어"
"봤, 어……"
"맞선. ……하고 있었지"
 
이 무척이나 잔혹한 우연이다.
그날 그때, 우연히 린이 거기에 있었고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너무 잘 짜였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러자 묘하게 밝은 목소리가 났다.
 
"놀랬어, 프로듀서가 맞선이라니"
 
"하지만 상대방, 엄청 예뻤지"
 
"후리세도게 굉장히 잘 어울렸어"
 
"아! 그러고보니 나, 후리소데 입은적 없어"
 
갑자기 말이 많아진 린에게 놀랬다.
결혼 얘기가 되면 역시 여성은 신경쓰이고 텐션이 올라간다는걸까.
린이 너무나도 밝게 얘기하니까, 그때마다 늑골 중심부분이 욱신욱신거렸다.
 
"결혼식은 역시 일본식?"
 
"프로듀서는 턱시도보다는 무늬있는 하카마라는 느낌인걸"
 
"결혼식이 끝나면 사진 보여줘, 반드시야"
 
"그래서 말야, ………………………그래, 서……"
 
갑자기 쉰듯이 어미가 사라졌다.
린 씨? 하고 불러봐도 대답이 전혀 없다. 옷스치는 기척조차.
상태가 나빠진걸까.
 
"린 씨……괜찮, 습니까?"
 
살짝 손을 뻗어서 어깨를 만져보려고 했다.
그때.
 
 
"괜, 찮아……?"
 
 
린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충격이 왔다.
 
쿵, 등이 벽에 부딪친다.
허벅다리에 올라타는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무게.
꾸욱,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선명한, 낯이 있는 감촉.
위에 올라탄거다, 라고 깨달았을때는 늦었다.
 
 
입술에 온도.
녹아들법한 부드러움.
 
 
찌릿찌릿하게 전격이 달린다. 등골이 오싹오싹해진다. 허리 부근이 떠오른다.
(이건, )
착각도 환상도 망상도 아니라면 이건,
이건――,
 
영원히 이어질거라 생각된 시간.
갑자기 모든 온도가 떨어졌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린이 일어선다. 아연하게 올려다본다.
 
 
"겉치레 정으로……나를, 지우려고 하지마"
 
 
지금이라도 사라질것 같은 허무한 목소리.
 
 
"억수비라도 좋아, 나는, "
 
 
쉰듯이 또, 온기가 매달려온다.
껴안겨있다――린에게.
 
 
"나는, 여기에, 있고 싶은데……"
 
 
혼란해했다.
그녀의 행동을 전혀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터인 그녀.
아이돌일터인 그녀.
손이 닿지 않는, 닿아서는 안 될, 단 하나의 별인 그녀.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고동이 겹쳐진다.
얼굴과 뺨과 온갖 모든 곳에 뜨겁고 뜨거운 피가 돈다.
숨이 가쁘다. 거칠어진다.
등에서 목덜미로 무언가가 치밀어오른다.
 
껴안고 싶다.
있는 힘껏 껴안아주고 싶다.
이 가느다란 몸을, 부러질정도로 껴안고 싶다.
하지만.
 
(안, 돼――, )
 
저도 모르게 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녀를 껴안는것도 못한채로.
타케우치는 그저 몸을 돌아다니는 격정을 견디고 있었다.
 
 
 
 
 
 
 
 
 
 
 
 
뇌우같은 키스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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