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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의 빛 - 16. terrible sweet

댓글: 3 / 조회: 1094 / 추천: 1



본문 - 12-12, 2015 12:30에 작성됨.

terrible sweet
 



모든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라디오 퍼스널리티로서 나 개인의 방송을 가진것.
콜럼 연재로 인해 새로운 타입의 팬이 늘은것.
거기에 대허새 또 하나의 연재 이야기가 날아온것.
그리고 촬영 훈련도 진행되어, 셔터음은 완전히 괜찮아진것.

전부 순조. 너무 순조로워서 무서울 정도다.
물론 새롱누 타입의 일만 하니까 공부할게 많아서 오프날도 자주 연습만 하고 있고, 콜럼 소재도 찾아 메모를 갖고 걷는 나날이지만……그래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오늘도 집이나 사무소에선 지금 하나 집중할 수 없으니까, 라는 이유로 어딘가 콜럼을 쓸 수 있을만한 조용한 장소를 찾아 걷고 있는 참이었다.

햇살이 기분 좋다. 바람이 불어간다. 모든것이 지나가는듯한 푸른 하늘.
이런 날은 밖에서 콜럼을 쓰는것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쓴 문자는 분명 평소와 다른 색을 가져서 팬들에게 갈 것이다. 그런것도 좋을지도.

그렇게 정한 나는 어떤 큰 공원으로 발을 옮기기로 했다.
평일이고 그렇게까지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원래부터 광대하고 한산한 공원이라는것이 장점인 곳이다. 역시 유일이라면 커플이나 가족단위로 와서 떠들썩하지만 오늘은 그런것도 없을테지.

정기권으로 전차에 탄다. 사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역을 지난다.
그러고보니 이 곳을 전차로 타는것도 오랜만이다. 평소엔……프로듀서가 밥래다주니까. 학교에서 사무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고, 집에서 학교는 역시 프로듀서도 보내주진 않지만, 사무소에서 돌아갈때, 일터에서 바로 돌아갈, 그럴때 그는 반드시 나를 바래다주었다. 다른 아이돌도 있는데, 치한에게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바래다주었다. 기뻤다.

빈 차량에 앉아있던 내 옆에 앉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실례합니다, 라고 한 마디 말하고 살짝 좌석을 좁혔다. 정신을 차리니 좌석은 상당히 많이 채워져있다. 아직 서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가득한 수준일까.

(……응?)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정면 좌석은 비어있다. ……어째서, 그쪼에 안 앉은거지?
옆에 있는 사람은 내가 좁힌 만큼, 꾸욱 엉덩이를 붙여왔다. 점점 갑갑해진다. 짓눌려질것 같아서 좀 무섭네, 라고 생각한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네, 시부야 린짱"
"에?"

아는 사람 중에 이런 목소리인 사람 있었던가, 생각해서 고개를 든다. 그 사람은 신문을 얼굴 앞에 펼치고 있었다. 누군지 모른다. 험악한 얼굴이 된다.

"저기, 죄송합니다……누구, 신가요"
"기억 못해? 모를려나아"

묘하게 친근스런 어조에 조금 불신감. 팬중 한 사람일까. 악수모임에 늘 오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하지만 그 모든걸 기억할 수 있는건 아니었으니까, 결국 기억은 믿을 수 없다.

죄송합니다, 라고 새과하려고 할때――이상한 감촉이 났다.
움찔, 몸이 떨린다.

"기억 못 하겠지. 왜냐면 모르도록 했으니까 말야?"
"……, 아, "

허벅다리에 손이 올려져있었다. 상대는 아직 신문으로 얼굴을――그래, 얼굴을 가리고 있다.
오싹했다, 전신의 털이 선 몸이 떨릴것 같다.
주섬, 주섬 열을 주듯이 끈적하게, 손이 허벅다리를 문지른다.
꼬옥 닫혀진 다리 사이로 손끝이 이따끔 들어온다. 아마 내 얼굴은 창백해져있다.

"쓸쓸하네. 요즘 좀처럼 못 봤으니까아"
"읏……, ……"
"하지만 이렇게 만나서 기뻐. 역시 운명이구나, 린짱"
"힉, "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몸이 아닌것 같다.
――어째서, 그때의 치한이 여기에?
그리고 어째서, 나를 알고 있는거야?

우연히 대상이 됐다고만 생각했다.
우엲 취향인 애가 있었다고, 그런 녀석이라고.
하지만 그는 내 이름을 명확한 의사를 갖고 불렀다.
전부터――나를 알고 있고, 그러면서――?

창백해진 얼굴에서 더욱 핏기가 가신다.
그만두세요 한 마디가 나오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낼 수 없다. 내면 전차내의 전원이 이쪽을 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무섭다. 부끄럽다. 견딜 수 없다. 무섭다.

어질어질 현기증이 난다.
끈적하게 허벅다리를 기어가는 감촉.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아직 하차역까지는 훨씬 멀다. 그 동안, 계속?

(틀렸어, 견딜 수 없어――, )

몸아, 움직여. 뭐든 좋아, 뭐든 좋으니까 움직여.
가능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도록.
뭘 말해도 되지 않는다. 말도 섞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태연한 정차역의 방송.


"읏, ……!!"
그걸로 스위치가 들어갔다.
나는 튕기듯이 일어서서 가방을 집어들고 뛰었다.
또 봐, 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또 만나는건 두번 다시 있을까보냐.
나는 기분 나쁜걸 모두 뿌리치듯이, 모르는 역으로 뛰어내렸다.


          ※


"주문은 어떠십니까?"
"아……어으……커피. 아이스로"
"알겠습니다"

뛰고, 뛰고 또 뛰어서.
현기증으로 흔들리는 발밑을 내딛으면서 그저 달려서.
역 앞 근처에 있는 호텔의, 들어가서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뛰어들었다. 썌액거리며 아무 저항도 없이 앉혀준 스태프 언니에게는 감사한다.

숨이 진정되는걸 기다린다. 현기증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 사람은 내 팬이었던걸까. 악수모임이나 이벤트에 오는걸까. 누군진 모르겠지만, 만약 누군지 알았다면……그래도 나는 악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걸까. 아이돌로서. 아아, 경찰에 찔러둘껄 그랬다. 그러면 마음둘곳 없는데.

하지만 지금 자신은 이벤트도 악수모임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남의 욕망을 강요당한건 이걸로 몇번째일까. 라고 생각한다. 몇 번을 이런 짓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공포와 혐오. 아이돌을 한다는건 이런 일이 된다는걸까.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돌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걸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정신이 들었다.
내가 아이돌을 하고 있는건 어째서인가.
그저 노래부르는게 즐겁다는것만이 아니다. 무대의 고양감을 좋아하는것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노래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 격려받는 사람, 자기도 힘내자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그걸 잊어선 안 된다. 공포로 보이지 않게 될뻔했다.

"아이스 커피입니디"
"가……감사, 합니다"

비싸봐이는 유릿잔에 들어간 커피가 나왔다.
예쁜 유릿잔이네, 생각하고 우유를 넣고서 문득 깨닫는다.
이런 호테레의, 좋은 레스토랑에 무심코 들어가버렸는데.
여기선 역시 콜럼은 쓸 수 없다.
(아차, 좀 더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어야 했어)

자신이 심하게 다른 곳에 있는듯해서 초조해한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은 모두 예쁘게 꾸민, 결혼식에서 돌아가는 사람들 뿐이다.
저쪽에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예쁜 후리소데를 입고 있고――

(응?)

호화로운 후리소데를 입은 예쁜 여자.
그건 좋다.
그건 좋지만.
그 정면에 앉아 있는 사람은, 혹시.


(프, 프로듀서……!?)


어째서 이런 곳에?
아니, 보면 안 다. 후리소데의 여성, 그 옆에 부모님같은 사람, 정면에는 프로듀서, 옆에는 본적이 있는 상사. 이건……어디에서 어떻게 보더라도,

(맞선, 이다)

발밑이 와라락 무너지는듯한 충격을 받는다.
그치만, 그럴수가. 나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아직 생각한 적도 없었다.

대화는 들리지 않는다. 좋은 레스토랑이라서 그럴까, 그런 점도 신경쓰고 있는거겠지.
하지만 상대 여성은 꽃이 피는듯한 미소를 짓고 있고, 프로듀서도……미소로.


(저런 미소, 나에게는 보여준 적이, 없어……)

싸아악, 무언가가 물러간다. 기력이나, 생명력이나, 그런 것이.
정신을 차리니, 빨대를 들고 있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쩌지. 아니, 어쩌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 사람이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겐 없다.

왜냐면 나는 단ㄷ순한 아이돌이고, 게다가 지금은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
저 사람은 그저 프로듀서. 일하는 관계. 그것뿐.

그러긴커녕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연애대상으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너무 어려서, 저 사람의 앞에선 저런 식으로 피어나는 모습은 분명 할 수 없다.
손이 닿지 않는 먼곳에 있는 사람. 그걸 똑똑히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이야기에 들뜬 모습. 미소. 미소. 본 적이 없는 미소.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커피에 한 입도 대지 않고 그 자리를 비틀거리면서 뒤로 했다.


          ※


늘 들어가는 체인점을 발견해 들어간다.
평소라면 체형 유지를 생각해서 부탁하지 않는, 크림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주무한다. 크림과 우유를 증량해서 주세요, 라고 말을 더한다.

비틀거리며 좌석에 앉았다. 어디에도 있을법한 흔해빠진 소파가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그대로 잠겨버릴것 같다.

콜럼 따윈 쓸 수 없다.
오늘은 더는, 아무것도 쓸 수 있을것 같지 않다.
안 그러면, 약한소리랑 사랑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커피를 마셨다.
크림이 듬뿍 담긴 그건 아플만큼 달고 달아서 눈물이 나왔다.
고개숙여 그걸 감추었지만, 너무 달달한 커피는 전혀 맛있지 않았다.







terrible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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