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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의 빛 - 7. 꽃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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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2, 2015 11:44에 작성됨.

극채색의 빛 - 7. 꽃의 이름
 
 




일면을 뒤덮은 우중충한 구름이 흘러간다.
비가 아쉬워하는걸까, 아니면 이제부터 또 내리는걸까. 그런 생각을 한다. 쓸떼없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야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좀 더 책임이나, 자책이나, 그런 것이다. 물론 그것도 느끼고 있다. 아플 정도로는. 핸들을 움켜쥐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는.
생각이 산만해지는 이유는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집, 꽃집 앞에 섰다.
잘 모를 긴장감이 몸을 지배한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무렵은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유일무이한 인재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빛나보였다. 명함만 받아주시면 하고 순수하게 바라고, 아직 보지 못한 그녀의 미소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고 싶다고.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진작에 빠졌던 것이다. 깨닫지 못한것 뿐이지.

"어머, 프로듀서 씨"
그녀의 모친이 고개를 든다.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든 케이크 상자를 보고서 어머, 라며 얼굴이 풀어진다. 생긋 미소지은 모친은 들어오세요, 라고 안으로 권했다.

"린도 기뻐할거에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시부야 린이 고열을 냈다고 들은건 4일전이었다.

짐작은 바로 갔다. 비를 맞고 흠뻑 젖은채 서 있던 그녀의 모습. 도망치지마, 라는 이전에도 들었던 말. 세게 목을 잡힌 선명한 감촉.
그때, 자신은 도망친것이다. 그녀의 올곧은 시선에서.

왜냐면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말할 생각도 없다.
앞으로 소중하게 품고, 꽃에 물을 주는것처럼 혼자서 기르며, 혼자서 시들게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처음으로 그녀와 진심으로 마주보자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불순한 자신은 그녀와 마주볼 자격이 없다.
그저 순수하게 그녀의 성장을 바라고, 프로듀스를 하고 있었던 그 무렵의 자신과는 다르다. 단순한 사랑하고는 사정이 달랐다. 그녀는 고등학생이고, 아이돌이고, 그 사람들의 소중한 딸이고, 신데렐라 멤버의 동료다. 그걸 자신은.

나 혼자서 더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미소를 보고 싶다고 절실히 바라며, 처음으로 본 눈물에 넋이 나가, 저렇게나 연하의, 가녀린 여자애다, 빠질리가 없는 사랑에 빠지다니. 라는건 심힌 소리겠찌.

도망치지 말라고 들었을때, 뭐라도 대답했으면 좋았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름으로 부르지 않게 되기 전에, 이 사랑을 망가뜨려뒀어야 했다.
후회만이 무겁고 괴롭게 가슴에 퍼져간다.

아아, 포기는 처음부터다.
그런데 이 사랑은 언제까지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다못해, 빨리 말라주는것을 바라는것 밖에, 자신은 할 수 없다.





          ※




그녀의 방 앞에 선닫. 떨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우즈키의 방에도 비슷한 방문을 한 기억이 있다. 그때도 방 앞에서 조금 망설이고, 마찬가지로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그 무렵의 자신하고는 너무나도 달라져버렸다.

폐렴 일보직전까지 갔던 린이 회복했다고 들은건 어제.
슬슬 병문안을 갔다오라고 재촉을 들은건 오늘.
케이크를 사서, 망설이고 망서러여서, 그래도 와버린것이 지금이다.

노크를 하려고 한 손은 계속 공중에 떠있다.
――역시 이대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프로듀서 씨, 린은 어때요?"
"어, 아"
"이제 거의 열도 없어요. 정말이니 들어가주세요"

아무 경계도 없는 두 번의 말에 죄악감이 서서히 퍼져간다.
그건 그렇다. 그녀하고 자신은 나이가 배 정도로 다르다. 사랑이 있을리가 없고, 경계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동으로 신뢰가 웃돈다고 하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자신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후회와 죄의식. 조금의 한숨.

고개를 들어 결심하고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대답은 없다. 망설이고 있으니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로 "으응," 대답같은, 그렇지도 않은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어느쪽이지?)

망설인 끝에――결국 자신은 문을 열기로 했다. 가능한 문 손잡이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처음으로 들어간 그녀의 방은 파랑색을 기초로한 간편한 내장이었다. 하지만 책상 위에는 작은 서랍과 선명한 색의 꽃.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간단하면서 무뚝뚝한 정신속에 가련한 꽃을 피우고 있는. 그런 모습이.

역시 린으로 말하자면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까전에 들은건 대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건 케이크만 두고 바로 나가야할까, 하지만 케이크는 냉장 보관을 해야한다, 등을 생각하니 으응, 목소리가 나서 죽을만큼 놀랐다.

"시, 시부야 ㅆ――"
"달콤한, 냄새……우즈키?"

입을 다물어버렸다. 거기서 연상해야하는건 카나코가 아닌걸까, 라고 잠시 생각한다. 하지만 린은 특히 우즈키와 사이가 좋고, 자신이 바래다주게 되기 전에는 자주 함께 돌아갔었던것 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한걸지도 모른다.

여기서 프로듀서입니다, 라고 하는게 올바른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려가 먼저 나와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심한 감기를 걸리게 만든 자신이, 이렇게 어슬렁 나타나서 책임을 느끼고는 있고, 무슨 소리를 들을 각오도 있다. 그저,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일대일로 말을 거는게 조금, 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린은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우즈키……미안해, 걱정끼쳐서……저기 말야"

잠꼬대인듯했지만 숨을 들이키고 들어버린다. 이대로 살짝 밖으로 나가는게 정답이겠지만, 침대에 펼쳐진 매끈한 흑발과 희미한 색의 입술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달짝지끈한 정신은 다음 말로 날아가버렸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경악했다.
그치만, 어느틈에? 어디서, 누구를――아아, 하지만 자신에겐 그걸 들을 권리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이건 우즈키에게 한 이야기이지, 자신을 들어선 안 되는데, 린의 입술이 움직인다.


"……괴로워……이런,"

"이런 마음, 갖고 싶지 않아……"

"……어쩌면 좋을까, 우즈키?"

"하지만"

"역시, 좋아……해……"

어미가 사라질듯하고, 그리고. 말은 딱 멈췄다.
손이 떨리고 있다. 입술이 떨리고 있다. 꿀꺽 침을 삼킨다. 슬슬 침대쪽으로, 무서운것에 접근하는것처럼 다가가서 들여다본다. 눈을 뜰 기색은 없다. 절망이 쌓여진다.

"………………읏, !"

――더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하고 케이크 상자를 떨어뜨리듯이 두고, 린의 냄새로 넘치는 방을 뛰쳐나갔다.




          ※



"……인사를……"
잊어버렸다, 라고 깨달은건 차에 올라탄 다음이었다. 하아하아, 숨을 헐떡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뛰쳐나갔다. 이 이상 그 공간에 있는건 견디기 힘들었다. 린이 있는, 린의 기운이 넘치는, 린의 방.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린의 방. 그런건.

"뭐가 각오냐……"

쥐어짠다. 전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다.
이런 형태로 차이다니, 라고 생각했지만 차여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자신도 있다. 하지만, 상처는 너무나도 커서 가슴속이 욱신욱신 아프다.

"젠장, "

내일부터.
내일부터 평범한 프로듀서로 돌아갈테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마른 목을 안고 핸들에 엎어졌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린 씨"
"어, 프로듀서……이름"
"? 무슨 일 있습니까?"
"으응……으응!"
 
꽃이 피듯 기쁜듯이 웃는 린.
 
하지만 그 미소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이돌이다.
 
 
 
 
 
 
꽃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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