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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의 빛 - 6. 절망의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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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2, 2015 11:04에 작성됨.

극채색의 빛 - 6. 절망의 빗소리
 
 

 

"안녕하세요, 시부야 씨"

"시부야 씨,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시부야 씨. 바래다 드릴테니까요"

"시부야 씨, 그리고――"

"시부야 씨――"

 

 

          ※


……피해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건 3일전부터고, 발렌타인 데이를 지나 3주나 가까이 지나려는 시기였다. 이름 호칭이 변했다. 린 씨, 에서 시부야 씨로. 다른 애들은 제대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나만. 나만 성으로 부른다. 그것뿐만 아니다.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쳐다보지 않는 느낌은 아니다. 시선은 느끼는데, 돌아보면 그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래서 또 다른곳을 쳐다보면 시선을 느낀다. 질량을 느끼는 무거운 시선을.

(왜? 내가 무슨 짓 했어?)

조금 무서워진다. 발렌타인의 추태가 안 좋았던걸까. 하지만, 피해지게 된건 아주 최근이고, 발렌타인에서 시간은 꽤 지났다. 그럼 달리 짐작가는거라고 하곤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좋을까.

지금 사전협의한다고 프로젝트 멤버가 모여서 얘기를 듣고 있을때.
네에! 라며 기세좋게 손이 올라갔다. 미오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에 모인다. 미오는 척, 손을 올린채로 "저기 프로듀서"라며 입을 열었다.

"왜 시부린만 호칭이 달라?"
"!"

움찔, 어깨가 떨렸다. 무서워진다. 여기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지. 모두의 앞에서.
하지만 미오의 말을 들은 프로듀서는 음? 하는 식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말입니까"
"그러니까! 시부린만 호칭이 다르잖아. 왜?"
"그런……가요?"
"아니아니아니……"

모두가 풀썩 어깨를 떨군다. 그런 와중에 나는 조마조마하면서 그 대화를 보고 있었다.
프로듀서…… 나를 성씨로 부르는거, 꺠닫지 못한거야……? 왜?
그때 "아-, 혹시-"라는 키라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즈를 안은채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대로 손가락을 척 세우면서 웃었다.

"린짱한테만 발렌타인을 못 받았으니까 화났거니?"
"뭣……!!"
"아-"

그런건가, 라는 분위기. 확실히 나는 모두에게는 줬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지만.
(아, 아니야! 그건 아니야! 줬는걸! 말을 못한것 뿐이지!)
완전 진심인 초콜렛을, 그것도 두 번이나, 줬습니다.
(아……)
혹시, 그래서?
진심 초콜렛 같은걸 받았으니까 프로듀서가 곤란한걸까. 전혀 꺠닫지 못한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다 보였던걸까. 프로듀서는 아이돌을 양성하는게 일인걸. 그래서 내 마음을 받으면 곤란한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다정하니까, 그래서 깨닫지 못한 척을하고 나를 멀리하려는거야……?

(그럴수가)
(그런 배려는 전혀 기쁘지 않아……)

눈물이 나올것 같다. 하지만 여기는 일터다. 참아야한다. 모두 다 있다.
꾹 참고 있으니 아뇨, 라는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덜미에 손을 댄 프로듀서.

"아, 아닙니다. 시부야 씨에겐 면목……없습니다"
"거봐, 또 그래"
"어? 어라……아니, 그게……왜, 일까요"
"프로듀서, 스스로도 모르는거냥?"
"네……"

좀 곤란하다는듯한, 이상하다는 얼굴. 거기에 나에게 혐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게 적은 구원이었다. 곤란하게 만들었다면 사과해야하지만 미움받아버리면 어찌할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정말로 어째서 나를 피하고 있는건지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연기라고하면 상당한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과하고 싶다.
어쨰서 나를 피하는거야? 뭐 심한짓이라도 해버렸어? 하다못해 이류를 알고 싶다.

(그리고 사과해서)
(사과해서, 그리고나서――?)

단순한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로 돌아온다. 정말로?
가슴이 따끔따끔 아프다. 하지만 그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령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시간이 많이 걸려도.

나는 일부러 밝은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짓고, 열심히 지어서――고개를 들었다.

"뭐야 프로듀서. 나한테 초콜렛을 그렇게나 받고 싶었어?"
"에"
"안 됐네. 시기도 지나버렸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내년을 기대해"

(웃어. 웃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앞에선.

나는 완벽한 미소를 지은채로 짖궂게 그에게 그렇게 말한다.
곤란한듯한 눈동자는 나를 피한 상태였다. 굉장히 슬펐다.

 


          ※

 


그런 날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그는 아직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름도, ……불리지 않은 상태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그를 좋아한다고 깨달은 순간의, 그 마음이 되살아난다. 결코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이라고, 생겨났을때부터 깨달았다. 보답받는 마음이 아니라고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괴롭고 쓰라리다. 나는 웃는다. 있는 힘껏 허세를 부려서 그의 시선이 이쪽을 보는, 그 순간만이라도. 돌아보면 피해진다는걸 알고 있어도, 하다못해 바라봐주는것만으로도 좋다. 그러니까 웃는다. 아이돌로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틀린것 같다.
알고 싶다는 마음이 부풀어서, 너무 부풀어버려서 괴로워지고 말았다. 피해져도 좋다. 실연은 처음부터다. 하지만, 하다못해 어쨰서 나를 피하게 됐는지, 그것만은 알고 싶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고 싶다. 안 그러면 나는 웃을 수 없다.

이렇게나 실연을 알고 싶다고 생각한건 태어나서 처음인것 같다.
그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리 괴로워도, 뛰어넘을거니까 그거면 된다.

"시부야 씨. 10분 정도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바래다드릴테니"
"아, 응……"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채로 대화를 나눈다. 그는 방으로 돌아간다. 끼익, 문이 닫혔다. 거절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피해지고 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렇게 되었던걸까)
 
이유를 알고 싶다.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자판기 앞에서 일어서서, 뛰고, 뛰어서. 밖으로 나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랑을 꺠달은 날하고는 다른, 회색의, 어두운 비. 우중충한 무거운 하늘.
내 마음같다고 또 생각한다. 그 극채색의 비가 그립다. 그떄는, 이런 마음을 품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솨아솨아 비가 내리고 있다. 그 속을 걸어간다. 어꺠에 질척하게 물이 떨어진다. 머리카락이 점점 젖고, 소매나 치마 플릿츠로부터 톡톡 물방울이 떨어져간다. 지금이라면 울어도 될것 같았다.
 
"……읏, "
 
오열은 죽을만큼 삼켰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이 마음은, 나만의 것이다.
그저, 참을 수 없었던 눈물만이, 뺨을 뜨겁게 적시고, 떨어져갔다.
 
 
 
 
          ※
 
 
 

"시부야 씨!!"
 
큰 소리로 제정신을 차렸다. 얼마정도 이러고 있었던걸까.
뒤돌아보니 우산을 든 프로듀서가 필사적인 얼굴로 뛰어온다. 오랜만이다, 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이 시선이 마주친다. 그는 내 앞까지 뛰어와서, 우산을 이쪽으로 기울였다. 그 순간 그의 등이 젖어간다.
 
"시부야 씨……찾았습니다"
"응. 미안해"
 
실은 좀 더 제대로 사과하고 싶은데, 그런 퉁명스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시선을 그만 피해버렸다. 내 손 부근을 쳐다본채로 물어본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조금, 비에 젖고 싶어진것 뿐. 그렇게 말하자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바래다드리겠습니다. 감기를 걸립니다"
 
그렇게 말했다. 기막혀한걸까,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팠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니, 그는 차 안에서 수건을 꺼냈다. 나에게 건낸다. 그걸 묵묵히 받아들고, 아아 역시 시선이 맞지 않네, 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시간이 지나도 몸을 닦으려고 하지 않는 나에게, 그는 이상하게 생각한건지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묻는다.
 
(왜 그래, 라니)
(그런건, 하나밖에)
 
"……서"
"네?
"……어째서……?"
 
눈물이 흐를것 같다. 이제 그의 앞에선 두번 다신 울고 싶지 않은데.
흘러넘칠것 같은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고, 오열따위 흘리지 않겠다는 듯이 꾹 참고 나는 고개숙인다. 손을 아플만큼 움켜쥔다. 떨릴것 같다.
 
"어째서, 이름을 부르지 않는거야……?"
"……그것, 은"
"왜, 눈을 마주쳐주지 않는거야"
 
고개숙인채라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숨을 삼키는 기척만큼은 손에 잡히듯이 또렷하게 알았다. 그대로, 침묵. 그는 말하지 않는다. 대답이 없다. 그게 대답인가 생각해버려서 슬퍼진다. 하지만 그런건 너무하다. 하다못해 이유를 들려주지 않으면,
 
 
(나, 앞으로 걸어갈 수 없어――)
 
 
자연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가 망설이는 기척. 고개를 확 든다. 곤란한 것같은 그의 얼굴이 보인다. 그대로, 손을 뻗어서, 넥타이를――
 
 
 
"도망가지마!!!"
 
 
조용해진 주차장에 놀랄만큼 큰 소리가 울렸다.
넥타이를 잡아당겨진 그는 놀란건지, 눈을 끔뻑거리고 있다. 그 시선이 나를 보고 있는걸 꺠달았다. 기뻤다. 그대로 말한다.
 
"왜 나를 피하고 있는거야!?"
 
몸을 앞으로 숙여진 그의 얼굴을 곧게 쳐다보고, 눈물이 나올것 같아지는걸 필사적으로 참는다.
 
"뭐 곤란해지는 짓을 했어? 발렌타인에 초콜렛을 준게 민폐였어? 레슨이 마음에 안 들었어? 아이도로서, 여자애로서……나, 뭐가 틀렸어?"
"그, 것은, "
 
그의 눈동자에 필사적인 형상의 내가 비치고 있다. 꼴사나운 내가.
그는, 몇 번인가 눈을 끔뻑이고, 나를 아연하게 쳐다보며, 입술이 조금 떠러리고 있고. 멈칫, 손이 움직였다고 생각하니, 천천히 팔이 올려져서― ̄
 
", !!"
"프로듀서?"
 
진심으로 놀란듯한 얼굴을 하고, 자신의 손을 쳐다보고 있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아연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라고 생각하니, 눈썹이 꾸욱, 찡그려지고――어딘가 기억에 있는 표정이 되었다.
 
"저, 저기"
"시부야 씨"
 
아직, 성씨인채다. 하지만 나에겐 그걸 언급할 수는 없었다.
그가 너무나도 필사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돌아갑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
 
 
 
낯익은 표정.
눈썹을 찡그리며, 무언가를 참는듯한, 놀란듯한.
아아, 하고 나는 떠올린다. 시커먼 구름에서 질척하게 떨어지는 비를, 조수석에서 빤히 쳐다본다.
 
극채색의 비.
그날, 나는 보답받을 수 없는 사랑을 했다.
 
 
 
 
――――그의 얼굴은, 그 절망과 같은 색을 하고 있었다.
 
 
 
 
 
 
 
 
절망의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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