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if 신데렐라 스토리즈 4. 어른의 생일

댓글: 9 / 조회: 2171 / 추천: 1



본문 - 11-25, 2015 22:31에 작성됨.

“좋아해. 나랑 사귀어 줘.”

초등학교 높은 학년이 되자 남자애들이 이따금 고백을 해오게 되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사춘기에 곧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증거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다만 난 누구하고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한테는 또래 남자애들은 어린애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애들은 나 말고 적지 않다.

참고로 나와 마찬가지로 또래 친구들을 연애대상으로 보지 않는 애들 중에 중등부(중학교) 선배를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확실히 초등학생이 중학생을 보면 어른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학생도 어른이 보면 아직 어린애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면 어떤 식으로 느끼게 될까?

어른이 되면 나도 누구랑 연애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까?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란 건 지금은 아직 잘 모르겠다.

또래 남자애들을 어린애라고 깔봤지만, 실제로는 내가 제일 어린이인 건 아닐까?

요즘 왠지 그런 걸 자주 생각한다.

주변에 어른이 많아서 그런가?

난 어린이지만 어린이답게 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어른이 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왠지 굉장히 초조해진다.

시험문제같이 바로 답을 풀 수 있으면 귀찮지 않을 텐데.

 

 

어른의 생일

 

 

7월도 후반. 프로듀서는 프로젝트 룸에서 나츠키와 후미카에게 어느 주제를 중심으로 상담하고 있었다.

“뭐야 자기(프로듀서). 되게 무서운 표정 짓고.”

리젠트 풍 헤어가 특징인 나츠키가 웃는다.

“일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여름이지만 긴소매를 차림을 한 후미카도 물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일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응? 자기 치곤 말끝이 흐린데?”

“실은, 타치바나 양의 생일이여서요.”

“그렇지.”

“그렇죠.”

“엑?”

7월 31일은 프로젝트 동료, 타치바나 아리스의 생일이다.

둘 다 모를 줄 알았으나 평범하게 알고 있었던 터라 프로듀서가 놀라고 말았다.

“알고 있었어요.”

“뭐 그 얘기도 했었으니까. 그치 후미카?”

“네.”

나이차가 나도 여자끼리는 빨리 친해지는 구나, 하고 프로듀서가 생각했다.

“그래서 생일선물 같은 건 생각해놨어요?”

“음, 그게 난 좋아하는 CD를 선물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어. 녀석은 음악에도 흥미 있어 하는 거 같으니까, 시간 지나기 전에 진짜 록을 들려줄까하고 말이지.”

그러면서 나츠키가 윙크한다.

“전 책을 선물해주려고 해요. 아리스 쨩은 독서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요.”

후미카가 가슴언저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아리스를 진정으로 생각하면서 주는 사람의 개성이 잘 묻어나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둘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뭔데?”

“저는, 무얼 줘야 좋겠습니까?”

“…….”

“…….”

둘은 프로듀서가 말하자 입을 다물고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눈짓으로 사인을 주고받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자기. 그건 우리들이 도와줄 수 없겠는데?”

“예?”

예상외인 대답에 놀라는 프로듀서.

특히 여태까지 됐다고 얘기해도 무리하게 도와주던 나츠키가 그런 말을 하여 쇼크였기 때문이다.

“선물이란 건, 그 녀석을 생각하고 고른 걸주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들이 생각한 게 아닌 자기가 아리스를 생각해서 고른 걸 전해주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아.”

“제가, 타치바나 양을 생각한 것.”

“그러니까 도와줄 수 없어.”

“프로듀서 씨. 죄송해요.”

나츠키가 말하자 후미카도 따라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음…….”

난감한 상황에 빠진 프로듀서가 뒷목을 오른손으로 만진다.

“그 대신에 생일파티준비는 도와줄게.”

“예?”

“케이크 같은 건 준비할게. 물론 자기가 쏘는 걸로 하고.”

“예.”

“농담이야. 우리들도 돈 좀 거둬볼까?”

“아뇨. 딱히 그럴 것 까지는…….”

프로듀서가 받는 월급은 케이크 값도 못 낼 정도로 낮지 않기 때문이다.

 

 

*

 

 

같은 시각, 아리스는 346 프로덕션 내에 있는 카페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쨌든 이 카페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한 아리스였다.

“안녕.”

그러던 아리스에게 누군가가 인사한다.

“엥?”

돌아보자 그곳엔 매끈하게 빠진 몸매에 세미 롱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이 서있었다.

“타카가키……, 카에데 씨?”

“하이~ 카에데랍니다.”

카에데는 그러면서 살며시 웃는다.

“앉아도 될까?”

“앗, 네. 앉아도 되요.”

타카가키 카에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회사 내에선 물론, 사회에서도 카에데를 탑 아이돌로 인식하고 있다.

예능업계를 잘 모르는 아리스조차도 알 정도다.

그러한 카에데가 어째서 자기 같은 데뷔 전 아이돌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인지, 그 때 아리스는 알 수 없었다.

“타치바나 아리스 쨩이지?”

“엑?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같은 회사 소속인데 당연히 알지.”

“그런가요?”

참고로 아리스는 346 프로 전속 아이돌 중 반도 파악하지 못했다.

“너같이 귀여운 애는 특히 주목하고 있거든.”

“귀엽다고요……?”

카에데가 하는 말에 하나하나 깜짝 놀란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전신에서 나오는 오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 것일까?

“농담은 고맙지만요, 저 같은 건 타카가키 씨하고 비교하면.”

“카에데 언니, 라고 불러줄래?”

“아뇨, 그럴 수는…….”

“괜찮아. 같은 회사 동료잖아?”

동료라는 말에, 아리스는 나츠키를 떠올렸다.

“동료, 말인가요?”

거의 첫 대면인데도 가까이 거리를 좁혀오는 탑 아이돌에게, 아리스는 꽤 동요하고 있다.

TV등에서 본 타카가키 카에데는 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가까이에서 접한 그녀는 거기서 본 것과 다른 약간 옆집 아줌마가 떠올리는 귀여움(과 약간 철면피)을 담고 있었다.

“뭐 고민이라도 있니?”

“읍.”

또 놀라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독신술, 아니 독심술이라도 체득한 것일까?

“어떻게 아셨어요?”

“일하는 사람 표정은 많이 신경 쓰는 편이거든. 예전에 표정변화가 조촐한 사람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서 말이지.”

아리스는 ‘표정변화가 조촐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프로듀서를 왠지 모르게 떠올렸다.

“뭐, 고민은 사람 나름이니까.”

“아뇨. 딱히 고민 정도는 아니고요.”

“응?”

“약간 잘 모르는 게 있어서요.”

“모르는 거?”

“네. 물어봐도 돼요?”

“응.”

“그, 어른이 되면 어떤 느낌인가요?”

“음…….”

“타카……, 카에데 언니라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건가요?”

“으음.”

카에데가 잠시 생각한다.

“아리스 쨩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걸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예요.”

“질문이 어렵네. 사람은 각자 다르잖아. 나도, 아리스 쨩도.”

“…….”

“동물이라면 알기 쉽겠지만.”

“동물이요?”

“예로 들어 지금 시기면 제비라든가.”

“제비…….”

“엄마 아빠가 먹이를 물어다줄 때는 새끼.”

“자기가 사냥할 수 있게 되면 어른이란 말인가요?”

“으음. 더 말하자면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줄 수 있으면 어른이지 않을까?”

“결혼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건가요?”

“그러네. 나나 쨩 어떻게 생각하니?”

카에데는 고개를 들어 카페 점원을 불렀다.

“네? 나, 나나는 아직 1, 17살이에요, JK라고요!”

점원이 동요하며 그렇게 말했다.

‘저 점원 나이가 17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말했다간 큰일 날 거 같아 입을 다물기로 했다.

“반대로 카에데 언니는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었어요?”

“어릴 적?”

“네. 가끔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잖아요?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여름방학을 즐기는 줄거리를 가진 게임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럴지도. 뭐 분명 청춘일 때가 그리울 때도 있긴 한데…….”

“…….”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해도 할 수 없잖아? 그리고 난 지금이 즐거워.”

“지금이……, 즐거워요?”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도 어른이 되면 그렇게 말하는 걸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거기다 어린애인 채면 술을 마실 수 없잖아.”

“…….”

술 얘기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맛있는 걸까?

결국 타카가키 카에데와 대화했을 땐 어른이란 걸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다 카에데라는 여성은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사림아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자 아리스는 점점 어른이라는 것의 답을 찾기 힘들기 시작했다.

 

 

*

 

 

프로듀서가 미팅을 위해 회사부지 안을 걸어서 이동하다 우연히 사내 카페에서 아리스와 카에데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레어한 조합이다.

나츠키와 카에데가 때때로 대화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리스하고도 대화할 줄은 몰랐다.

아리스를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프로듀서는 용무를 마치고 타카가키 카에데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어머나. 프로듀서 씨가 찾아올 줄이야. 희한한 일이네요.”

변함없이 자세 바르게 앉아 있는 카에데가 말했다.

“타카가키 양. 저희 타치바나하고 낮에 대화를 나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아리스 쨩요? 귀엽지 않나요? 댄스나 노래도 열심히 한다고 듣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대화를 나누셨던 겁니까?”

“…….”

“…….”

침묵.

어색하다.

침묵하는 사이, 카에데는 뭐든 투영할 것 같은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비밀이에요.”

“음…….”

프로듀서는 한숨을 쉬고 오른손으로 뒷목을 만졌다.

예상은 했었다. 여자끼리 비밀 한 두 가지는 있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면 알려줄 수 있어요.”

“정말입니까?”

“대신, 저랑 함께 해주셔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카에데는 왼손 엄지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입을 오므리며 술을 마시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겠지.

프로듀서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

 

 

“뭐, 예상은 했었지만 서도요.”

이자카야 별실 안에서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는 카에데는 약간 불만인 듯 말했다.

“카에데 쨩하고 둘이만 있으면 여러 가지로 위험하니까. 알 것 같아.”

옆에 앉아있는 전 여자아나운서 아이돌, 카와시마 미즈키는 그러면서 프로듀서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아하하하. 프로듀서 군, 오늘은 안 보낼 거야~♪”

버블시대에 입었을 법한 바디 컨셔스 같은 복장을 한 카타기리 사나에는 카에데 옆에서 벌써 준비 완료하고 있었다.

미즈키가 말한 대로, 담당 프로듀서도 아니면서 카에데와 둘이서 마시러 가면 매스컴의 먹이가 될 것은 불 보듯 훤한 것.

카에데 본인은 그러한 위험이 벌어지든 말든 신경조차 안 쓰기 때문에 주변에서 신경써줘야만 한다.

“그보다 돌부처 같은 프로듀서 군이 카에데 쨩하고 마시러 올 줄이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렇대? 아, 샐러드 먹을래?”

옆에 앉은 미즈키가 물었다.

“아뇨. 딱히 타카가키 양을 피했던 건 아닙니다만 그게 역시 주변 눈도 신경 쓰이기도 해서요. 샐러드 먹겠습니다.”

“그렇게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되잖아. 같은 사무소 동료고. 계란말이는?”

“카와시마 씨 분들은 신경 쓰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외부인들이 가차 없을 겁니다. 계란말이도 받겠습니다.”

“알 것 같아. 하지만 주변을 너무 신경 썼다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 맥주 한 잔 더 따라줘?”

“딱히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아뇨, 괜찮습니다. 맥주가 아직 남아있어서요.”

“너희 둘 정말 서투르다. 내가 질투 날 정도로 말이지. 다른 거 마실래?”

“서투른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단 저희들 관계에 이런저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직 안 마셔도 괜찮습니다.”

“너희들 뭘 둘이서 얘기에 푹 빠진 거야? 사귀어? 어?”

“흐윽?!”

어느새 인가 프로듀서 옆에 온 사나에가 프로듀서의 목을 팔로 감싸고 자신의 몸을 밀착한다.

프로듀서 등에 물컹한 느낌이…….

“잠깐 사나에 쨩. 뭐하는 거니.”

미즈키가 등에 달라붙은 사나에에게 주의를 줬다.

“아니~ 프로듀서 군 아까부터 미즈키랑만 계속 얘기하고 있잖아. 재미없다고~”

“나중에 대절해 줄 테니까 얌전히 마셔.”

“시러~ 지금 같이 놀 거야~ 난 좋아하는 건 맨 처음 먹는 스타일이라고~”

“카타기리 씨, 이제 그만 적당히 해주십시오…….”

프로듀서가 사나에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머라고~? 프로듀서 군 언제부터 심술궂게 된 거야~?”

“딱히 심술궂은 건…….”

“자꾸 심술부리면 그 입 막을 거야~, 물리적으로.”

“?!”

“……사나에 언니. 장난치면 때찌할 거예요~”

테이블 건너편에서 자세 바르게 앉은 카에데가 미소만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라가 풍겨 나오고 있다…….

“ㄱ, 거참……. 카에데 쨩 농담이야. 너무 화내지 마…….”

동요한 듯한 사나에가 손을 떼며 프로듀서를 놓아주었다.

“아하하, 한잔 더 마시자.”

사나에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쿠로기리시마를 단잔에 들이마신다.

“슬슬 다른 데로 옮겨볼까?”

미즈키가 그러면서 일어섰다.

“카와시마 씨.”

“둘이서 얘기 나누고 싶은 거잖니? 카에데 쨩하고.”

“예, 뭐.”

“뭐하면 자리에서 빠져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단 여기서 얘기한 일은.”

“알아.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게.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고.”

미즈키가 그러면서 윙크했다.

“감사합니다.”

그 후 미즈키와 카에데가 자리를 바꾸었고 프로듀서 옆에 카에데가 앉는다.

“오랜만이에요.”

“취했습니까?”

“제가 취한 거 같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잘 몰라요.”

카에데가 그러면서 큭하고 웃었다.

“음…….”

프로듀서는 눈을 돌리고 뒷목을 만졌다.

카에데가 있으면 언제나 페이스를 잃고 만다.

카에데는 난감해하는 프로듀서를 보며 즐기는 것같이도 보였다.

“그래서 말씀하고 싶다는 건 타치바나 아리스 쨩에 관한 거죠?”

“예, 뭐. 당신하고 대화하던 모양이던데 고민이라도 털어놨던 겁니까?”

“엄청 과보호하시네요. ‘제 때’는 그렇게 걱정해주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과보호 하진 않습니다. 담당 아이돌을 걱정하는 건 프로듀서로써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타치바나 양은 초등학생입니다. 어른인 당신과 다릅니다.”

“어른……, 말이죠.”

카에데가 그렇게 말하고 살짝 다른 쪽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아뇨.”

슬쩍 프로듀서를 보고 사케를 한 잔 더 들이마셨다.

“그보다 상대가 초등학생이라고는 하지만 낯가리던 당신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담당하는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니까 내버려둘 수 없어서요.”

“…….”

“농담이에요. 그보다 아리스 쨩, 귀엽지 않나요?”

“뭐, 아이돌이니까요.”

“실은 그 애가 저한테 물어봤어요. 어른이 뭐냐고요.”

“어른…….”

“하지만 전 잘 대답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요.”

“음…….”

“딱히 고민으로까지 생각할 필욘 없다고 봐요. 그 또래에는 당연히 그런 의문을 갖지 않겠어요?”

“그런 겁니까?”

“당신도 그러지 않으셨나요?”

“잘 기억이 안 나는군요.”

“프로듀서 씨는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보신 적 있어요?”

“어릴 적으로요?”

“네.”

“…….”

프로듀서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고칠 수만 있다면 고치고 싶은 후회도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지금 일도 있기 때문에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랑 같네요.”

“당신은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어릴 적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말씀하실 거잖습니까?”

“어째서 아세요?”

“맞췄습니까?”

“역시 저랑 당신은 잘 통하는 사이네요.”

“우연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 마셔주십시오. 내일 일에 지장이 갑니다.”

“어른이니까 절제는 할 줄 알아요.”

“정말입니까?”

“참~ 못 믿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카에데가 일부러 하는 듯 뺨을 부풀렸다.

“알겠습니다. 믿어보겠습니다.”

“우후후. 알았으면 됐어요.”

카에데가 그러면서 웃는다.

순수한 미소가 마치 소녀를 연상시킨다.

겉은 어른스러우면서 천진난만한 성격을 가진 것이 그녀의 매력이다.

그 매력이 프로듀서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

 

 

프로듀서가 카에데 일행과 마시고 있던 밤.

술자리가 벌어진 것을 한 점 모르는 아리스는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다.

평소 같으면 공부를 한 뒤 게임이나 독서를 했을 터이나 오늘은 우연히 방영하고 있던 영화를 보고 있던 것이다.

어른 남성과 여성이 연애하는 외국영화였다.

어른들이 보는 영화기 때문에 당연히 찐한 키스신도 나온다.

“…….”

혼자 있는 건 쓸쓸하지만, 오늘만큼은 혼자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을 부모님하고 봤다간 엄청 어색했을 것이다.

‘그보다 키스는 어떤 느낌이 날까? 어른이면 경험해야하나?’

아리스는 자기 입술에 살며시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잘 모르겠어.’

 

 

*

 

 

다음날, 346 프로덕션 내 라운지에서 나츠키와 후미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보다 자기도 참 진지하다니까. 생일선물 정도는 적당히 고르면 될 것을.”

나츠키가 그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만큼……, 아리스 쨩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후미카가 말했다.

“뭐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만나고 시간이 그렇게 흐른 것도 아닌데 너무 무거운 선물을 받았다간 아리스 녀석 정색할지도 모르잖아.”

“무거운 선물……? 볼링공 같은 거요?”

“후미카 너 뭐라는 거야. 그런 무거움이 아니고, 반지 같은 거 있잖아. 마음이 무거운 그런 거.”

“반지가 무거워요?”

“너 말이야, 자기가 갑자기 반지 같은 거 선물해주면 어떨 거 같아?”

“프로듀서 씨가, 반지…….”

후미카가 몇 초 생각한 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아 미안해. 예를 너무 세게 들었다. 맞다, 이마니시 부장님이 반지를―”

“거절할 거예요.”

“대답이 너무 빠른데 너? 부장님이 불쌍하다.”

“아뇨, 부장님이 딱히 싫은 게 아니고요…….”

“알았어, 알았어. 어쨌든 거리감 문제라는 거야. 자기는 서투른 것투성이라 적당히 거리를 잘 둘 줄 모른단 말이지. 거기다 아리스는 초등학생이야.”

“하지만 아리스 쨩은 초등학생 치곤 예의바르잖아요.”

“그 점이야. 그 점도 또 적당히 거리 두는 걸 까먹게 만들지.”

“요즘엔 사이좋게 보이던데요.”

“물론 그렇지. 그러니까 생일선물 같은 거로 고민할 필욘 없다고 보는데 말이야.”

“하지만 담당 아이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점은 멋지다고 봐요.”

“과로로 쓰러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ㅆ, 쓰러지면……. 간병할 게요.”

“후후. 후미카 기특한데.”

나츠키가 그러면서 웃었다.

 

 

*

 

 

그 날, 레슨을 마친 아리스는 프로듀서가 있는 방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방에 가기 전에 프로듀서가 먼저 이쪽으로 왔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타치바나 양.”

“왜 그러세요?”

좀 상태가 이상하다고 아리스가 직감했다.

그 후 프로듀서는 말을 주절거리면서 걸었다.

“요즘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괜찮아요. 아주 좋아요.”

“노래 쪽은 어떠십니까?”

“목소리도 잘 나와요. 좀 더 엄격하게 연습해도 좋을 정도로요.”

“무리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여름방학이니까, 시간 있을 때 실컷 레슨 해놓고 싶어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공부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알고 있다니까요. 공부도 제대로 하고 있어요.”

“예.”

“…….”

“…….”

프로듀서는 이렇게 불필요한 잡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평소 같은 대화에도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라고 아리스는 생각했다.

그것은 무엇일까?

“이제 곧 생일이로군요.”

“그런데요?”

“……뭔가, 받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엥?”

예상외의 말에 아리스가 멈춰 섰다.

“뭐, 줄라고요?”

“아 그게, 생일이니까 어머님께서 뭔가 선물이라도 주시지 않을까 하고요.”

확연하게 동요하고 있는 프로듀서.

이 사람은 거짓말을 잘 못하는구나, 하고 아리스는 생각한다.

혹시 자기에게 뭔가 선물을 주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뭘 줘야할지 모르니까 이렇게 희망사항을 물어보는 거겠지.

아리스는 그 정도까지 짚은 것이었다.

그럼 비싼 거라도 부탁해서 놀려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만뒀다.

이 착실한 사람은 무리인 건 무리라고 얘기할 거고 또 비싼 걸 갖고 싶은 것도 아니다.(아리스네는 유복하다.)

“딱히 물건을 받고 싶은 건 아니에요.”

“예?”

“그 대신에―”

심장이 고동친다.

하지만 그 날 아리스는 결심하고 말했다.

“어른들이 하는 데이트를, 해보고 싶어요.”

“어른들이 하는 데이트 말입니까…….”

프로듀서가 확연히 난감해하는 걸 표정을 보고 알았다.

 

 

*

 

 

“그래서 나한테 상담한 거란 말이지? 뭐 카에데 쨩도 좀 그러니까 나밖에 상담해줄 사람이 없다는 거네. 알 것 같아.”

난감해진 프로듀서는 카와시마 미즈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미즈키가 말한 대로, 지금 프로듀서에게 상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어른이 하는 데이트……. 엄청 조숙한 말을 꺼내놓네 그 애도.”

저녁노을이 스며들어오는 회의실에서 둘은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먼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또래, 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뭐, 먼저 해봐서 깨닫는 것도 있으니까.”

“예…….”

그러면서 뒷목을 만진다.

“저기, 프로듀서 군.”

“예.”

“너, 페도필리아야?”

“아닙니다. 남사스러운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페도필리아(Pedophilia)는 특수성애 중 하나를 일컬음. 유아, 소아(일반적으로 13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성욕, 성적애호를 의미한다.

“카에데 쨩 고백도 계속 거절하는 게, 혹시나 싶어서.”

“아닙니다. 그리고 고백도 받지 않았습니다.”

“흠, 뭐 됐고. 어쨌든 지금은 어른이 하는 데이트가 문제지?”

“예.”

“역시 시티호텔에 가야 할까?”

“호텔 쪽은 빼는 걸로 해주십시오.”

“어째서? 호텔에서 디너는 정석 중의 정석이잖아?”

“상대는 미성년자입니다.”

“초등학생이었지?”

“예. 되도록 건전한 방향으로 알려주십시오.”

“되게 흔한 거지만 드라이브 정도?”

“드라이브…….”

“그게 영화관이나 노래방은 고등학생이라도 갈 수 있잖아?”

“뭐 그거야.”

“하지만 드라이브 정도까지 가면, 대학생 이상이 아니면 힘드니까.”

“그렇군요. 그럼 차를 준비해야겠군요.”

“회사차는 쓰지 마.”

“예?”

“당연하잖니? 회사용 차 같은 건 로망이 하나도 없거든.”

“업무의 일환으로 치는 게.”

“뭐라는 거야. 친구한테라도 말해서 좋은 차를 조달해 오도록 해.”

“예.”

“그리고 옷에도 신경 쓰고. 또 시계 같은 것도 말이지…….”

이렇게 카와시마 미즈키 프로듀스를 바탕으로 데이트 계획이 개시되었다.

 

 

*

 

 

그리고 7월 31일. 마침내 아리스의 생일이 찾아왔다.

이 날 아리스는 자신이 가능한 만큼 꾸미고 약속장소로 왔다.

복장에 매우 신경 쓴 건 아니나 되도록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왔다.

“기다리셨습니다.”

자주 들은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엥?”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자, 평소 양복차림이 아닌 노 넥타이 차림인 프로듀서가 서있었다.

솔직히 옷차림만으로도 인상이 달라 보이는데, 헤어스타일도 약간 러프하게 된 거 같다.

“왜 그러십니까?”

단 어조는 평소와 같이 정중했다.

“아, 아뇨. 평소랑 다른 거 같아서요.”

“이상한가요?”

“아뇨, 이상하지 않아요.”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했으나 왠지 그거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그 뒤 BMW 같은 자동차 조수석에 탄 뒤에 차가 출발했다.

익숙하지 않은 차의 진동이 기분을 초조하게 만든다.

“이 차, 프로듀서 씨 거예요?”

아리스가 물었다.

“아뇨, 지인에게서 빌렸습니다. 오늘을 위해서요.”

“그래요…….”

자신을 위해서 일부러 외제차를 빌려온 건가하고 생각하자 쓸데없이 더 두근두근 거려졌다.

이 사람 진심이다.

조금 농담으로 얘기한 걸 이렇게까지 해줄 줄 생각도 못했다.

평소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차는 도심을 빠져나와 교외로 나아간다.

평소 빼곡했던 빌딩숲이 걷혀진 하늘은 매우 푸르게 보였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평소보다 빛나 보인다.

그 후 둘은 길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수족관을 관람했다.

그러는 동안 아리스는 계속해서 꿈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로듀서가 하는 에스코트는 서투르지만 정중하며, 그리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어른이라는 걸까.’

옆에서 같이 걷는 큰 남성이 매우 눈부시게 보였다.

그리고 순서대로 데이트를 마친 둘은 다시 도심으로 돌아간다.

도중 아리스는 프로듀서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한다.

“무슨 일이시죠 타치바나 양. 기분이라도 안 좋으십니까?”

아리스는 이날 줄곧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지금이라면 어른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그러면서 아리스가 안전띠를 푼다.

“예…….”

그녀는 그대로 운전석에 앉은 그의 양 어깨를 잡았다.

심장이 터져나갈 정도로 맥박이 힘차게 뛰고 있다.

오늘 하루는 계속 이상했다. 뺨이 뜨겁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마음이 뜨겁다.

아리스는 예전에 본 외국영화를 떠올린다.

 

 

“……키스해줘.”

 

 

무의식적으로 그 말을 흘려버렸다.

“……타치바나 양.”

아리스는 꾹하고 눈을 감는다.

이거로 어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하고는 다른 풍경이 보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감촉은 느낄 수 없었다.

그 대신 조심스레 어깨를 잡힌 채 천천히 조수석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어째서?”

아리스가 물었다.

“…….”

하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저 매력 없나요?”

“타치바나 양.”

그 때 프로듀서가 휙하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엄청 화내는 것 같은 얼굴.

‘무서워……!’

여태까지 느꼈던 고양감이 썰물같이 빠져 사라진다.

“그러한 말은, 당신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야 할 말입니다. 함부로 입에 꺼낼 것이 못됩니다.”

“…….”

“대답은?”

“ㄴ, 네.”

“이제 됐습니다.”

“…….”

“…….”

그 후 프로듀서는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귀가하는 차 안에서 아리스는 계속 후회하고 있었다.

첫 드라이브데이트로 들떴다고는 하나, 상스러운 말을 꺼내버린 자기 자신이 싫어진다.

몸도 마음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 아리스에게 프로듀서가 갑작스럽게 말을 꺼낸다.

“오늘 데이트 플랜은 그……. 지인하고 협력해서 짜봤습니다.”

“……그런가요.”

이런 것에 서투를 것 같은 프로듀서치곤 엄청 정성을 들인 플랜이라고 생각했지만, 협력자가 있었다고 하면 상황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는 한 마디 더 붙였다.

“그리고 그, 당신이 한 말입니다만…….”

“엥?”

순간 그녀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꽤 두근거렸습니다.”

그 말에 아리스는 ‘키스발언’을 떠올리고 한 번 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었다.

 

 

끝.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