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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버릴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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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4, 2015 21:04에 작성됨.

키스, 해버릴거라구요
 
 
레귤러 방송 사회 일을 마치고 오늘은 그대로 집에 바로 돌아가도 된다고 들어서 가디건을 다시 입고 스타지오 밖으로 나왔다. 휘유, 차가운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이제 곧 거기에 겨울을 느꼈다. 추운 계절은 도무지 버겁다. 추위타는 체질이고 매년 일어나는게 힘들어지고 거리가 색을 띠며 사람들이 들뜬 걸음으로 반짝반짝거려서 나도 반짝반짝거리고 있을텐데 일루미네이션의 빛이 나를 흐릿하게 만든다.
"하아"
저도 모르게 큰 한숨을 쉬고 황급히 숨을 도로 들이킨다. 도망가는 행복도 없지만, 일부러 행복을 놓칠 수도 없겠지.
"큰 한숨이네에, 그럴때는 핫 커피로 하앗 한숨이라구요"
낯익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와서 뒤돌아보니 생긋 웃은 카에데짱이 캔커피를 내밀어 왔다.
"카에데짱도 여기서 촬영했어? 수고했어."
커피를 받으니 손바닥이 서서히 따뜻해진다. 자연히 옆에 서주는 동기를 곁눈으로 훔쳐봤다. 무척이나 가을 하늘이 어울린다. 저무는 석양의 오렌지 색이, 상냥한 밤색의 머리카락을 보다 한층 둥실둥실하게 보여준다.
"아뇨, 카와시마 씨랑 마시러 가려고 생각해서요"
가끔 이런 일이 있다. 미리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싫은 나하고는 정반대로 그녀는 갑자기 홱 나타나서 별거 아니라는듯이 나의 밤을 빼앗아간다. 그녀와 마시러 가면 종전이 아슬아슬해지고 때로는 첫차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내일, 쉬지요?"
하지만 반드시 내 휴일 전날말고는 제안하러 오지 않는다. 그녀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면 거절할 수 없고, 어느쪽이냐고 하면 나도 그녀와 있는 시간은 좋아했다. 일은 물론 추천하는 스킨 케어나 최근 화제가 되는 미용원이나 마음에 드는 옷가게, 흥미깊은 걸 많이 가르쳐준다.
"첫차까지는 어울릴 수 없는데에?"
"후훗, 노력할게요오"
동기라고는 해도 그녀는 아이돌이 되기 전에는 모델 경험도 있어서 화려한 인생을 보내고 있다. 타카가키 카에데, 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얼굴이 예쁘고 스타일은 발군, 덤으로 팬 서비스는 최고라고 듣고 있다. 그러니까 조금 아저씨 개그를 해도 술을 정말 좋아한다고 해도 그마저도 귀엽다고 듣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고, 그리고 가까이하기 힘든 신비적인 오러를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래서 그녀는 농담같은 캐릭터를 만들어서 '뭐야 타카가키 씨는 생각했던것보다 대화하기 쉽네'라고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 거겠지.
 
"카와사키 씨, 뭐 마실래요?"
"일단 생맥이면 될까, 카에데짱은?"
"저는…손주도 좋아하는 소주를…랄까요오"
"…응, 그러네. 소주 좋아하지"
부드러운 목소리도, 좌우색이 다른 보석같은 눈동자고, 선이 가는 손도, 둥실둥실한 머리카락도, 모두 타카가키 카에데를 만들고 있는거라고 생각하면 어디를 집어도 빼먹을 수 없는 인간이다.
"카에데짱은? 내일 휴가?"
"그래요, 카와시마 씨랑 휴일이 겹치는게 오랜만이었으니까…오늘이라면 제안을 받아줄거라고 생각해서요"
"이래저래 카에데짱의 제안은 거절한 적 없어"
"에에, 저번에는 카레 만들어놓은게 있다고 잽싸게 집에 가버렸잖아요…"
"아…그런적도…있었을지도?"
"오늘은 만들어놓은거 없나요?"
"파스타 씨푸드 소스 만들어놓은건 있지만, 내일 점심에라도 먹을거니까"
"정말로, 카와시마 씨는 좋은 아내가 될것 같네요오"
'아내', 옛날에는 굉장히 동경했다. 나도 분명 누군가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28이나 되면 그런 꿈은 어느샌가 먼지를 쌓고, 깨끗하게 청소해줄 마음도 들지 않는다. 나는 좀 더 다른, 일의 꿈을 선택했다. 그 결과, 성공했다고 할 수 있고 불만이 있는건 아니다. 다만, 조금 따끔하고 가슴이 아플 뿐.
"카에데짱은 요리 안 하던가?"
"그러네요오, 이런 가게에라도 오지 않는한 별로 저녁을 안 먹으니까요…"
"술로만 배를 채우면 나 정도가 됐을때 그 체형 유지 못하게 된다구?"
"후훗, 그럼 카와시마 씨가 만들어주세요"
"어?"
"카와시마 씨의 밥이라면 먹고 싶어요"
무자각이 가장 무섭다고는 곧잘 말하지만, 이 아이와 만나고 곧잘 그걸 체감한다. 만약 가령 우리가 남녀였다면 이건 틀림없이 프로포즈 전조같은 대사다. 안 된다, 아무리 한 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리가 없다. 나는 여자고, 그녀도 여자애, 거기다 세 살이나 연하인, 동기에 인기 아이돌.
"카에데짱도 참, 벌써 취했어?"
웃어 날리면 되는것을 뭘 진지하게 그 말의 이유를 생각해버리는걸까. 의미따위 없다는것도 알고 있으면서.
수수께끼같은 두 눈동자는 천천히 흔들려서 나를 포착한다. 사햐앟고 가늘은 손가락끝이 뻗어와서 내 옆머리를 사락 만졌다.
"제가 그렇게 금방 취하지 않는다는거 알고 있잖아요?"
"왜, 왠지 이상해, 오늘 카에데짱"
놀랬다.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뭐냐는건지. 심장이 시끄럽게 맥박치고, 뇌의 안이 삐걱 굽어지는 감각이 난다.
"자, 마실까요. 건배애!"
마음을 다잡는것같은 느낌으로 내가 놓아둔 유릿잔에 멋대로 건배를 하고 마시기 시작한 그녀. 아연해하고 있으니 '안 마시나요?'라며 이상하다는듯이. 역시 뭘 생각하는건지 모르겠다.
"저, 저기 말야, 카에데짱, 전부터 생각했는데 그런거 그만두는 편이 좋아"
"그런거?"
그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식으로 남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아무것도 없었던것같은 얼굴을 하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그런거 나같은 착각하는 여자가, 카에데짱이 혹시 나를 좋아하는걸까-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버리는 발언이야."
"좋아하는데요?"
"아아, 응. 알고 있지만 그런 좋아해가 아니라"
"저, 카와시마 씨랑 키스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하?"
"전부터 생각했는데요"
"자, 잠깐만 기다려, 카에데짱은 여자애를 좋아해?"
"으응-.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니아니아니아니. 잘 모르겠어요, 라면서 생글거리지마. 웃으며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것 정도는 어른이니까 알잖아(아니, 웃는 얼굴은 화낼 마음도 잃게 만들 정도로 굉장히 귀여웠지만).
"혹시 그런거, 여러 애들한테 말하는거야?"
"카와시마 씨, 아무리 저라도 화낸다구요"
"아니아니, 그치만 말야, 이상하잖아. 모두의 타카가키 카에데라고? 모든걸 갖고 있고, 모든걸 손에 넣을거잖아? 그런 애가 나를 좋아한다니, 아, 알았다, 카에데짱, 혹시 이거 몰카 방송? 싫다, 속을뻔했어"
빠른 말로 거기까지 말해버리니 갑자기 그녀의 보석같은 두 눈동자는 가늘어지고 어두운 색을 떨어뜨렸다. 오싹해진다. 이런 카에데짱은 본 적이 없다. 낮은 테이블에 손을 대고 단정한 얼굴이 다가오는걸 나는 그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저는, 모두의 타카가키 카에데가 아니에요"
아, 당한다. 키스당한다. 황급히 눈을 감았다. 10초 정도 경과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기다리다지쳐서 눈을 뜨니 내 눈 앞에서 턱을 괴고 있는 그녀. 뭘 생각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다.
"거봐, 역시 키스하고 싶다는거 거짓말이잖아"
기대했던 내가 바보같잖아, 한심하잖아, 어떻게 해줄거야. 입술을 꾸욱 깨문 순간에 알코올이 빙글빙글 몸을 도는걸 알았다.
"미즈키, 언니"
놀랬다. 요염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다. 어느 정도 함께 일을 해오고, 사적인 자리도 몇 번이나 마시러 가고, 취해널부러진 카에데짱을 집까지 바래다준적도 있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잖아. 뭐야, 뭐냐고 갑자기.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뻔했잖아!
"…증말, 언니를 놀리지 말아줘"
"어떡하면, 믿어줄건가요?"
아아, 아아. 진짜. 그 얼굴, 눈썹을 떨어뜨리고, 옅은 입술을 꾸욱 앙물고 요염한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는 카에데짱의 얼굴에 엄청 약한 것이다. 그건 만났을때부터, 그녀는 내가 그런 얼굴에 약하다는걸 아라고 있는거겠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런 얼굴을 하는거다. 참을 수 있는게 아니다. 믿고 자시고 믿는다한들 지금뿐이야, 연애라는건. 카에데짱보다 3년이나 오래 살았으니까. 간단하게는 떨어지지 않거든.
"미즈키 언니"
그만해, 그만해, 부르지마. 뱃속이 뜨거워진다.
"키스, 해버릴게요"
싫어, 싫어, 그런짓 당하면 나. 어떤 얼굴로 혼자서 돌아가면 돼. 중학생이 아니거든. 키스 하나로 만족한다고 생각할리없잖아.
"자, 잠깐, 카에데짱"
 
 
 
닿았다. 확실하게 닿았다. 나, 지금, 카에데짱한테 키스당했다. 내가 바른 붉은 립크림이 카에데짱의 입가에 묻어있다. 부드럽고 부드러워서 좋은 냄새가 났다.
"저, 항상 무슨 생각하는지 모른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말하지 않으면 미즈키 언니도 깨달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전하면 전해질지, 몰라서, 이런식으로 고백하는거, 처음이에요"
옅게 색이 깃든 뺨, 평소와 달리 말이 많은 당신, 혹시 제정신이야? 카에데짱이? 나를? 물음표가 몇 개나 머리에 떠오른다.
"카에데짱, 이제 알았어, 괜찮아"
그랟, 그다지 잘하는게 아닌 마음을 전하는걸, 열심히 해주었다. 만약 속은거라고해도 나, 연상인걸, 잘 속아줄게. .밤색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어주자 카에데짱은 내리고 있던 시선을 나에게 옮기고, 슥 눈꼬리를 내리며 미소지었다. 아아, 정말, 귀엽다니까.
 
 
 
 
카에데짱치고는 드물게 술을 많이 안 마신다. 한 입 마실때마다 나를 보고는 생글생글 웃는다. 그렇지, 나, 저 입술과 키스를 한거다. 의식한 순간 어러굴을 볼 수 없게 된다. 이젠 술을 마실 기력도 잃어서 가능하면 빨리 돌아가서 침대 속에서 여러모로 생각하고 싶은데.
"카와시마 씨, 돌아갈건가요?"
호칭, 돌아왔다. 그런 작은 사실에 가슴이 따끔했다. 뭐야, 평소였다면 2차, 3차라고 끈질긴 주제에. 그렇게 생각해서 "응" 하고 대답하는 나도 나지만. 뭐야 나, 스스로 생각하는것 보다도 훨씬 카에데짱을.
카에데짱의 집과 나의 집은 역의 홈이 반대였으므로 에스컬레이터의 앞에서 "그럼 이만"하고 뒤돌아보니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내 뒤를 따라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
"응?"
둘이서 물음표 마크. 잠시 쳐다보고, 카에데짱이 아무 말도 안 해서 "집에 안 가?" 하고 물어보니, "갈거에요, 카와시마 씨의 집에" 라고 들어서 저도 모르게 다시 본다.
"내 집?"
"가도 된다는거 아니었어요?"
잠깐만. 어디서 그렇게 된거야. 다시 생각해봐도 전혀 그런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았다. 그 이전에 집에 온다니, 설마, 그런거? 아니아니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급전개잖아. 거기에는 취기가 좀 부족해. 저도 모르게 오늘 입고 있는 속옷을 떠올려서 머리가 아파진다.
"오는건 괜찮지만, 제대로 자겠어?"
"에?"
카에데짱은 어리둥절한 얼굴. 아-, 정말 나 점점 바보같아! 딱히 그런가 아니야? 그럼 뭐하는데? 다시 마시게? 곁잠? 혹시 혹시가 아니라도 나, 취한걸지도 모른다.
"가자"
종전이 가까워져서 혼잡한 역에서 이런 대화를 할리도 없다. 안그래도 카에데짱 탓에 아까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니트 소매를 퉁명스럽게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 역의 홈에 도착했다.
"카와시마 씨, 늘어나요"
니트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카에데짱이 웃어서 "미안" 하고 말하며 황급히 놓았다.
"이거라면, 늘어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감으며 손을 잡혔다. 뭐야 이거, 연인같잖아. 조금 차가운 손이 기분 좋아서, 점점 주위의 시선따위 아무래도 좋아졌다.
"저, 카와시마 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힘낼게요"
고오오 묵직한 소리를 내고 쾌속 전차가 통과했다. 옆머리가 얼굴에 닿아서 황급히 피하고 잘못 들은걸지도 몰라서 "어?" 하고 되묻는다.
"에?"
또 물음표. 에, 아아, 혹시 우리는 사귀는게 된거야?
"아, 미안해요, 저 순전히"
해석 착각을 빨리 감지한 카에데짱이 황급히 손을 놓아서 이번에는 내가 스륵 손가락을 감았다. 그렇게는 안 된다, 지금부터 도망가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니까.
"행복하게 해주는거, 기대하고 있을게"
들여다보듯이 눈을 마추자 지금까지 본 어떤 카에데짱보다도 가장 귀여운 미소를 보여줘서 가슴속이 따끔따끔 통증이 가시는듯한 감각이 났다.
 
 
 
 
분명 집의 현관을 지나가고나서 바로 "카와사미 씨라고 부르지마"라고 부탁을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그 목소리로 "미즈키 언니"라고 불리고 싶다. 연하 여자애이고 동기에 인기 아이돌의 연인이 생겼다. 지금까지 없을 정도로 눈 앞이 반짝반짝하게 보인다. 분명 일루미네이션을 봐도 지금이라면 내가 더 빛난다고 생각한다. 카에데짱, 나 무척이나 성가시지만 간단하게는 놓아주지 않을거야.
나란히 걷는 귀가길. 둘이서 하나씩 물음표 마크를 하트 마크로 바꿔가는 사랑을 하고 싶다. 웃었지, 이제 28살이나 됐는데. 그렇게 말하니 "후후, 웃지 않아요" 아니, 웃고 있잖아. 분해서 나보다도 얼마간 높은 위치에 있는 어깨에 손을 올려서, 나보다도 매끈매끈한 뺨에 입술을 대고 "카에데짱 바보"라고 속삭였더니 그 자리에서 입술을 막혔다.
 
저기, 왠지, 카에데짱의 페이스에 먹혀버릴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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