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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11-2

댓글: 15 / 조회: 2008 / 추천: 14



본문 - 09-10, 2015 21:00에 작성됨.

………

……





 어느 정도 반성은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말을 해 버린 것.

 오늘은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간단히 먹자고, 둘이서 할 만큼 손이 가지도 않는 인스턴트 라면을 나란히 부엌에서 만들 때도.

 식사를 마치고 별 생각 없이 켠 TV에서 나오는 별로 재밌지도 않은 버라이어티 방송을, 소파에 앉아서 어깨와 어깨가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보고 있는 지금도.

 생방임까 수록중과는 딴 사람처럼 하루카는 필요최저한의 말밖에 하지 않았다. 요리할 땐 "그릇좀 집어 줄래?"나, 지금은 "푸훗."이란 영문 모를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금 흐름에는 딱히 웃을 만한 재밌는 건 없었을 텐데.

 하루카가 입을 다물게 된 이유로 짐작 가는 게 없으니까, 역시 아까 내가 원인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조함에 쫓기고 있던 건 분명하다. 그게 하루카에겐 '엉겨붙는다'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건 아니다. 그건 우리들의 관계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하루카가 생각한 건 아닐까 옆모습을 슬쩍 봐도, 거기에 긴장이나 경계의 빛은 없다. 평소대로, 라기보단 평소 이상으로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하루카가 평소처럼 수다를 떨지 않는 건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이유가 있어서일까.

 그래, 예를 들면 지금 나와 있는 게 재미없어서, 라든지.

 얘기를 해도 재미가 없으니까 얘기하지 않는다. 과연, 무척 납득이 갔다. 하지만 나와 있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연인 관계, 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인답게'. 지금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수께끼의 역할. 어떻게 행동하면 나와 하루카는 '연인답게' 있을 수 있는 걸까.

 정신을 차리니 30분짜리 방송은 엔딩을 맞고 있었다. 하루카의 손이 이제 생각났단 듯이 리모컨을 잡았다.

 "내일 치하야 짱은 레슨이었지. 슬슬 샤워하고 잘 준비 할까?"

 "……그러게."

 TV 화면이 새까매지고 다시 방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빗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곧바로 목욕을 하러 가나 했는데, 하루카는 리모컨을 사이드 테이블 위에 돌려놓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은 채로 고개를 꾸벅였다.

 "졸리면 먼저 들어가도 돼."

 "응, 그럴게~."

 얼굴만 이쪽을 보고 하루카는 칠칠치 못하게 웃었다. 무릎 위에 놓여 있던 턱이 움직이고 등이 아주 조금 펴졌다.

 자기 상반신이 언제 하루카에게 다가갔는지, 깨닫지 못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을 내버려 두고, 난 처음으로 그 행동을 했다.

 언제 난 눈을 감았던 걸까.

 언제부터 내 입술은 미적지근한, 그러면서도 불타는 듯한 신기한 열을 띠고 있었을까.

 입술에 닿은 그 감촉은, 같은 것일 텐데도 거짓말처럼 마냥 기분 좋아서. 살짝 누르면 확실히 탄력이 있는데도, 녹아버릴 것처럼 부드러워서.

 녹아버릴 것 같은 건 너? 아니면 나?

 왠지 걱정됐다.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닐까. 내 입술은 네 그것처럼 부드럽고, 윤기나고, 기분 좋은 걸까.

 어지간히도 머리가 못쓰게 됐는지, 몇 개의 있을 수 없는 모순을 깨달았을 텐데도 그럼 그거대로 괜찮을 거라고, 더욱 사고가 멀어져 버린다. 잔뜩 있었을 엉망으로 뒤섞였던 것들도, 마치 처음부터 어찌 되든 상관없었던 것처럼 내게서 멀어져 간다.

 처음으로 입을 맞출 땐 그에 맞는 상황과 장소를 준비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그건 하루카에게 있어서 '지금은 아닌' 게 아닌지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한데.

 전자는 이미 한 발 늦고 말았다. 후자는 사후 승낙 같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하루카는 용서해 주는 걸까.

 물어보는 대신 다시 한 번 강하게 입술로 누르자, 작은 흔들림이 전해져 왔다. 그녀가 입술만, 아니면 목 위를, 그것도 아니면 전신을 움직인 건지는 눈꺼풀 뒤에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곧 같은 힘으로 되돌아왔다.

 한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꽤 오래 이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재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러려고 했어도 초를 세는 기능이 내 뇌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알 방도가 없을 것이다.

 단지 조금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감미로운 괴로움이었다. 이대로 호흡이 멈춰버려도 상관없단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하루카는 어떨까. 역시 그래선 곤란해할까. 아니, 곤란하겠지. 애초에 폐활량은 내가 더 크고, 어라?

 이대로면 내가 하루카를 죽이게 되나?

 ――곤란하다. 하루카가 아니고 내가.

 당황하면서 조금 몸을 뺐다. 입술에 느껴지던 게 없어지고, 자유로워진 입술과 목을 움직여서 짧게 숨을 들이쉰다. 바로 곁에서 푸핫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산소가 뇌에 들어가기 시작해서, 겨우 사고가 돌아오고 고동이 잠잠해진다. 이렇게 자신의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단 사실을 새삼스래 깨닫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놀라고 있으니까, 하루카는 더 놀랐을 것이다. 사과해야 하나 싶어서 눈을 뜨려다가,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사이에 다시 입술이 덮인다. 아니, 덮였, 다.

 한 순간 강하게, 탐하듯이 달라붙더니, 그것은 금방 약해져서 아쉽다는 듯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공기에 닿았을 입술은, 바로 다음에 똑같은 온기에 둘러싸였다. 이번엔 길게, 처음보다 더 부드럽게.

 이윽고 입술이 입술에 붙어있던 감촉이 사라져도 난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과, 눈을 뜨면 뭔가가 끝나버려서 하루카가 거기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근거도 없는 불안과.

 중심 조금 아래밖에 얼굴의 기능을 제대로 못 쓰게 됐나 생각했다. 하지만 두 귀가 확실히,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며시 내쉬는 숨소리를 들었다. 머뭇거리면서 눈을 뜬다.

 전기 스토브가 켜진 실내는 바깥의 추위와는 연이 없을 텐데,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뺨을 붉게 물들인 하루카가 거기 있었다. 그렇다, 그건 당연한 거고, 하루카는 없어지거나 그러지 않을 테고, 하지만 거기에 하루카가 있는 게 왠지 신기해서 난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텐데, 입술로 느껴지는 확실함에 비교하면 본다는 행위는 너무나 불완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단지 인식하기 위해서 가만히 바라본다. 지금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루카가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전까지 간격이 0이었던 예쁜 입술이 조그맣게 열렸다.

 "……해버렸다."

 해버렸네, 그렇게 대답하는 게 적절한 건지 잠시 고민했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건 요점을 빗나간 소박한 질문이었다.

 "……어때?"

 "어떻냐니. 그야――아니, 어떻고 저떻고가 아니라……그런 거 말해야 돼?"

 하루카를 곤란하게 만들기만 한 그 질문에 대한 질문엔 답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멍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봤다.

 "이거면 된 걸까."

 "되고 안 되고가 있어, 이거에?"

 "정석이나 그런 게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말하자, 하루카에게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뭐야, 그게. 확실히 갑작스러웠으니까 좀 놀라긴 했지만 말야."

 "그래, 그럼 다행인데."

 "그럼 다음엔…………후후, 제대로, 해 볼래?"

 "제대로라니, 어떡하면 되는 거지."

 "몰라. 치하야 짱이 말 꺼낸 거잖아."

 피식 하는 하루카에게 왠지 분함을 느끼면서, 그럼 제대로 해 주겠노라고 알 수 없는 저항심을 불태운다. 소파 위에 양 다리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본다. 소리 없이 웃으면서 하루카도 웅크려 앉은 자세를 풀고, 나란한 허벅지 위에 양 손을 올렸다. 진지한 얼굴로 지긋이 하루카를 바라본다. 솔직히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마주보고 가지런히 앉은 것까진 좋은데, 이 자세라면 힘들 만큼 상반신을 기울여야 하루카에게 닿을 것 같다.

 어중간한 분위기와 몇 초의 신기한 시간이 흘렀다.

 "저, 치하야 짱?"

 "…………."

 "저, 잘 부탁드립니다, 예요."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였다. 담담히 고개를 숙이는 하루카가 웃겨서, 나도 모르게 한쪽 손이 입가로 갔다. 하루카는 조금 화난 표정을 지었다.

 "치하야 짱이 이상한 말 하니까 그렇잖아."

 "그랬지. ……그럼, 하루카. 그……괜찮아?"

 "……응. 더 해줘."

 이젠 한계였다. 애초에 참을 생각도 없긴 했지만, 별것 아닌 단 한마디에, 부끄러운 듯이 중얼거린 그 한 마디에, 걸쇠 같은 게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몸을 내민 것보다 조금 늦게, 하루카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다시 한 번이 아니라. 하루카는, 더 해달라고 말했다.

 네 번째 키스. 하루카의 입술이 겹쳐진 채로 조금 모양을 바꾸었다. 일부러 한 번 떨어져 본다. 곧바로, 다섯 번째.

 그 다음부터는 몇 번째인지 세는 건 그만두었다. 쪼듯이, 미끄러뜨리듯이, 가끔 잡아당기듯이.

 즐겁다. 그런 새로운 키스의 느낌. 그 편안함에 모든 것을 맡겼을 때였다.

 빠질 것만 같은 내 입술 옆에 따뜻한 물방울이 닿았다. 내 게 아니다. 놀라서 일단 몸을 뺐다.

 빛을 되찾은 시야 한가운데에, 하루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을 뜬 하루카가 눈가를 검지로 닦고, 그 손끝을 보면서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또 나는 뭔가를 잘못한 걸까.

 "하루카……?"

 "……왤까. 왜일까."

 하루카가 다시 눈을 감고, 어깨를 작게 떨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루카의 눈을 다시 봤을 땐 거의 눈물이 말라 있었다.

 "저기, 하루카,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면――"

 "으응. 미안, 진짜로 아니야. 분명 아팠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훨씬 옛날 얘기야."

 하루카의 눈은 날 보고 있을 텐데도,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치하야 짱은 여기 있구나."

 "――어? "

 "나도, 또 여기 있을 수 있구나."

 "그건, 그렇지?"

 "……에헤헤. 다녀왔어, 치하야 짱."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하루카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이유는, 어쩐지 조금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서와, 하루카."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번엔 내가 제대로 된 말을 했단 것은, 하루카의 입술이 가르쳐 주었다.



………

……





 다음날. 자명종이 울려도 이불에서 나오지 않는 하루카를 용서 없이 두들겨 깨우고, 우리들은 사무소를 향했다. 오늘은 맑지만 춥기는 춥다.

 "후아암, 졸려."

 하지만 전철에서 내리고도 졸려 보이는 하루카의 의식을 완전히 깨우는 데는, 그 추위도 부족한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노니까 그러지."

 "치하야 짱이 자게 두질 않았잖아."

 "……하루카도 그러면서."

 참고로 우리들은 결국 입술로 근접공격이 가능해졌지만, 어젯밤 일을 그대로 묘사한대도 이번 얘기에 R-18 태그가 붙을 일은 없다.

 "그리고 그 시간에 깨워달라고 한 건 하루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일본에 막 돌아온 참이라 하루카는 아직 최소한의 스케줄밖에 없었다. 오늘 오전에 프로듀서와 앞으로의 예정에 대해서 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루카가 말한 시간에 맞게 깨워 줬는데 심한 말을 한다. 나는 어떤가 하면 아직 레슨 스튜디오에 가기엔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모처럼이니 하루카와 함께 집을 나서서 오랜만에 사무소에서 시간을 때우려는 생각이다.

 치하야 짱 오니~. 마녀~. 키스마~. 옆에 있는 하루카가 너무나 시끄럽다.

 "오니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슬슬 절분이구나."

 "맞아. 그러니까 주말에 자러 왔을 땐 콩 뿌려서 치하야 짱을 내쫓을 거야."

 "아무래도 잊어버린 것 같은데, 일단은 우리 집이야."

 이 심기 불편하신 잠꾸러기 공주님은, 집주인을 찬바람 속으로 내쫓을 생각인 것 같다. 덤으로 주말에도 자러 오는 건 확정인 듯하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기쁘군요.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하루카네 놀러가고 싶은데."

 "아, 괜찮아. 다음 달쯤에 올래?"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흔쾌히 승낙 받고 말았다. 점점 하루카의 상태도 평소로 돌아온 것 같다. 조금 전보단 꽤 걸음이 똑바르게 됐다.

 "그럼……별로 안 바쁜 때가 만약 겹친다면."

 "오케이~. 아버지하고 어머니께도 말해 둘게. 아, 하지만 치하야 짱은 다음 달에 바쁘던가? 중요한 라이브가 있었지?"

 "……그렇지."

 확실히 다음 달 말에는 내 생일 당일에 라이브가 하나 예정돼 있다. 소위 말하는 버스데이 라이브란 거다. 일부러 자기 생일에 라이브를 연다니, '자, 축하하도록.'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피하고 싶다. 하지만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오늘 레슨도 라이브 연습이야?"

 "응, 솔로 라이브기도 하고, 그게 주가 될 것 같아."

 "그렇구나……."

 하루카가 조금 아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하는 동안에 우리들은 이미 사무소가 있는 빌딩 앞까지 와 있었다.

 "바쁘긴 해도 하루카가 우리 집에 자러 오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 없어."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그렇게 말하자, 하루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어젯밤 같은 일이 계속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내가 엉망이 될 것 같았지만.

 익숙한 사무소 문손잡이에 하루카가 손을 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루카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간다. 프로듀서와 오토나시 상이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카, 안녕. ――치하야도 같이 왔구나. 마침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이쪽을 돌아본 프로듀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어제도 늦게까지 일을 했던 것일까. 하루카도 금방 눈치를 챘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프로듀서님, 무슨 일 있었나요?"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너희 둘이 말이지. 아니, 결국은 나도 그런가."

 한숨 섞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프로듀서는 앉은 채로 "일단 이걸 좀 읽어봐."하고 한 권의 주간지를 내밀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면서도 하루카가 그것을 받았다. 페이지를 넘길 것도 없이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 프로듀서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커다란 고딕체로 적힌 문구에 눈을 크게 떴다.

 '톱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 더블 열애 의혹!?'

 "잠깐만요, 뭐에요 이게! 치하야 짱, 설마 내가 있는데도――!"

 "내가 하루카 말고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치~."

 "됐으니까 둘 다, 안을 좀 봐."

 하루카가 페이지를 팔락 팔락 넘기자 금방 그 기사에 도착했다. 한 페이지의 거의 절반 크기로, 나와 하루카가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이건 공항에 있었을 때 사진이다. 언제 이런 걸……. 옆에서 하루카도 한숨을 쉬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 건가요. 열렬한 포옹, 밤샘 데이트, 뜨거운 밤……."

 문장을 골라 말하면서 하루카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루카 짱, 그 반응이면, 어제도 치하야 짱하고 뭔가 있었어!?"

 "오토나시 상, 장난칠 때 아니에요."

 오토나시 상이 책상에서 몸을 내밀면서 거친 콧김을 내뿜는 것을 프로듀서가 타일렀다.

 "일단 확인하겠는데……. 이건 너희들이 맞는 거지?"

 "……네."

 "그렇긴 한데,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저희들, 그, 둘 다 여자인데요. 이런 기사를 써도 아무런 의미 없을 텐데."

 끄덕이는 내 옆에서 하루카가 말했다. 확실히 대다수의 독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기사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하고 확인할 방법도 없는 얘기에 손을 대서라도, 너희 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이 있단 말이겠지."

 프로듀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러 적을 만들 만한 행동은 안 하려고 해 왔고, 이런 수단으로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에 짐작은――간다. 한 사람만, 그것도 엄청.

 "쿠로이 사장이군."

 "쿠로이 사장이야."

 "쿠로이 사장이겠지."

 "쿠로이 사장이겠죠."

 넷이서 나란히 한숨을 쉰다. 요즘 딱히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수법으로…….

 프로듀서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일단 이미 나돌게 된 건 어쩔 수 없지. 애써서 부정해서 불씨를 늘릴 필요도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긴 상대도 안 할 테고, 조금 떠들더라도 금방 잠잠해질 거야. 하지만 하루카, 치하야――"

 "알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이번 행동은 경솔했어요. 하루카가 오랜만에 귀국한다고 좀 지나치게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말하면서 조금 늦게 납득한다. 요 며칠간 나 스스로도 내가 좀 이상하다곤 생각했는데, 떨어져 있던 시간은 자각했던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감정을 모으고 쌓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 하루카도.

 "그럼 됐다. 앞으론 밖에서 그런 일을 하는 건 삼가줘. 하루카도 그거면 됐지?"

 "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래도 역시 조금, 잘 모르겠어요. 저희들, 나쁜 짓 한 걸까요?"

 조금 놀랐다. 프로듀서가 상대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서 하루카가 이의를 제기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뭐, 너희들은 아이돌이니까. 연애 얘기는 아무래도 절호의 스캔들이야. 밖에 있을 때만 신경 써 주면 됐어."

 "그래, 사무소에서 얼마든 해도 된다구~?"

 "……여러 가지 의미로, 축복받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부정당하는 건 뭔가……싫어요. ――그렇지."

 오토나시 상의 말은 무시하고, 하루카가 손뼉을 짝 쳤다.

 "이렇게 된 거, 돌파해 버리는 건 어때요?"

 "뭐? "

 안경 뒤에서 프로듀서의 눈이 놀라서 커졌다.

 "물론 이제 사람 눈 있는 데서 끌어안고 그러진 않을게요. 하지만 사이좋은 우리들이 같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자고 가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라고 다들 알게 되면 이런 걸로 일일이 소란 피우는 사람도 없어질 거예요!"

 "그, 그건 그렇군……. 아니 잠깐만. 지금하고 아무것도 안 변하는 거 아냐!?"

 "과연 그렇네, 하루카."

 "치하야까지……."

 보통  여자 둘이서 좀 끌어안고 자고 가고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진 않겠지만, 기자의 감이 옳았단 건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이상의 것을 남들 앞에서 하지만 않으면 어차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소문에 불과하다. 솔직히 이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단 하나.

 ――여기서 하루카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면, 일을 할 때도 하루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일단은 하루카를 제 버스데이 라이브에 서프라이즈 게스트로 초대하는 건 어때요?"

 "어? "

 이건 하루카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신경 쓰지 않고 나는 계속한다.

 "다음 달에 제가 하루카와 얼마나 같이 있든, 라이브를 위한 비밀 회의였다고 해 버리면 문제없지 않을까요."

 "그거 좋다, 치하야 짱. 이걸로 눈치 볼 거 없이 다음 주도 자고 갈 수 있어!"

 "방해는 안 할 테니까 나도 가도 돼!?"

 "자, 잠깐만 기다려. 그건 그러니까……어떻지."

 유능한 프로듀서가 거의 펑크 상태다. 조금만 더.

 "그대로 한발 더 가까워진 우리들은 라이브가 끝나고도, 이젠 자고 가는 것도 버릇이 돼 버렸다."

 "대단해, 퍼펙트 스토리야!"

 "……왠지, 그거면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아니, 하지만……."

 "괜찮지 않겠나."

 "사장님!?"

 프로듀서가 놀라면서 몸을 틀었다. 타카기 사장님, 언제부터 계셨던 걸까.

 "아마미 군과 키사라기 군을 믿어 보지 않겠나. 뭐, 어떻게 되든지 나쁜 쪽으론 굴러가지 않을 거야."

 "그럴까요……. 음, 그럴지도."

 프로듀서는 사장님의 말을 음미하듯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로 해 보자. 하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야 한다?"

 "네!"

 하루카가 활짝 웃었다. 내가 수긍하는 것도 확인하고, 프로듀서는 다시 컴퓨터를 보고 화면에 나와 하루카의 스케줄 표를 나란히 띄웠다.

 "마침 하루카는 레슨을 재개해서 익숙해지고 나서 다른 일을 시키려고 했으니까, 오늘은 이대로 치하야랑 같이 가. 그 쪽엔 둘이 간다고 연락해 둘게."

 "고맙습니다."

 둘이서 고개를 숙이자, 프로듀서는 지쳐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뭐, 말하자면 그거야. 할 거면 되는 데까지 해 버려. 괜한 기사를 쓴 놈이 후회할 정도로. 그리고 누구라도 너희들을 인정해버릴 정도로――"



………

……





 레슨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올 때쯤엔 완전히 해가 져 있었다. 여름이라면 아직 저녁 해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낼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꽤 땀을 흘려서, 샤워도 하고 머리도 잘 말렸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앞으론 몸 상태가 안 좋아질 여유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루카는 하루카구나."

 "무슨 의미야?"

 "솔직하게 칭찬하고 있는 거야."

 할리우드에 있던 동안엔 노래나 댄스와는 일 관련으론 연이 없었을 텐데, 하루카에게 그런 블랭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카는 왠지 조금 표정을 흐렸다.

 "……치하야 짱한텐 못 당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작은 표정의 변화. 시선을 떨어뜨리는 하루카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곧 그녀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그보다 있지, 둘이 레슨 같이 한 거 진짜 오랜만이다. 내가 치하야 짱 라이브에 실례하는 건 고작 몇 곡이지만, 역시 엄청 기대돼!"

 "나도 그래."

 무엇보다도 이걸로, 올해도 하루카와 함께 생일을 보내는 게 확정된 것이다. 바쁜 하루가 되긴 했지만 거의 못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자연스럽게 발이 가벼워――지려다, 어떤 것을 깨닫고 걸음이 느려졌다. 조금 벌어진 거리를 이상하게 여겼는지 하루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옆에 서서 보폭을 맞춘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잠시 후에 나와는 다른 방향을 향했다.

 "하루카는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거지?"

 잠시 걷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해 본다. 하루카의 가방이 우리들 사이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린다.

 "응. 역시 우리 집에도 가야지."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치하야 짱?"

 내 발은 멈추고 마는 걸까.

 헤어지기 싫다는 억지스런 감정이 있단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도 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내 발을 움츠렸다.

 하루카가 걱정스럽게 내 눈을 들여다 본다.

 안 돼, 아니야.

 난 하루카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하려는 게 아닌데.

 또 오늘 레슨을 떠올린다. 꽤 하드한 레슨이었지만, 힘들어도, 넘어져도, 하루카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흐르는 땀조차도 빛나 보여서, 난 몇 번이나 연습 중에 발을 멈추고 넋을 잃고 보고 말았다.

 하루카의 웃음은――아니, 하루카의 모든 것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내가 그랬듯이. 아무리 내가 가까이 있어도, 둘만의 연습시간을 보내도, 한 번 스테이지에 오르면 그녀는 누구든 매료시킬 것이다. 그걸, 난――

 "치하야 짱."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내 손을,

 "잠깐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하루카의 손이, 잡았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하루카는 내 손을 끌었다. 대중교통을 쓰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별로 멀지 않은 거겠지. 이 방향은……사무소?

 좁은 길을 걸어간다.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이 우리들만을 비추었다. 하루카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골목을 돌았다. 이젠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간소한 공원이었다. 이 추위, 이 시간. 아무도 없다.

 하루카가 드디어 내 손을 놓았다.

 "치하야 짱, 여기 기억해?"

 "기억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내가 하루카를 불렀던 곳이다. 작년 하루카 생일에, 꽃놀이를 하고 싶다는 하루카의 작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당연하지만 지금 시기에 연분홍 꽃은 없었다. 아주 잠깐밖에 시선을 모으지 못하는 굵은 나무가 몇 그루나, 그저 우둔히 서 있을 뿐이다. 멈춰 서자 몸이 춥다. 난 천천히 하얀 숨을 내쉬었다.

 "하루카, 돌아가자. 이 계절에 여기엔 아무것도 없잖아."

 "으응. 있어."

 하지만 하루카는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딱 잘라 말했다.

 "지금도 계속. 벚꽃은 있어."

 그야 분명 벚나무는 있지만, 그렇게 대답하기 전에 하루카가 말을 이었다.

 "나 있지, 전에 여기 벚꽃을 보면서 벚꽃은 아이돌 같다고 생각했다고, 얘기 했었지."

 "……응."

 "확 피고, 지고. 그 때 치하야 짱이 부정……이라기보다, 다른 생각을 들려줬는데, 응, 그게 무척 옳아서, 기뻐서."

 하루카가 그 날을 그리워하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역시, 유감이지만 내 생각도 틀리지 않았다고 요 1년 쯤 몇 번이나 생각했어. 여러 가지가,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대로 있을 순 없어서."



 "――그래도 있지, 역시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 있어."

 하루카가 나를 돌아보고, 만개한 웃음을 피웠다.

 ――또.

 숨이 막혔다.

 ――또다.

 모든 생각을 하루카에게 빼앗긴다.

 "있지, 치하야 짱. 난 작년에 여기서 치하야 짱한테 받은 걸 계속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 행복하게 해 준 시간의 추억도, 쭉 잊지 않을 거야."

 하루카가 반걸음 거리를 좁혔다.

 "나 말야, 이런 애니까, 벚꽃처럼 예쁘진 않지만. 갈색에 울퉁불퉁한 줄기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변하지 않는다면. 치하야 짱이, 좋아한다고 말해 준다면."

 글쎄 넌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믿어줘. 난 여기 있어. 치하야 짱이 원해 주는 한은, 난 계속 치하야 짱 곁에 있을 거야. 내가 어떻게든 같이 있고 싶은 걸."

 열심히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 목소리가.

 내가 한동안 계속 앓던 응어리를, 이번에야말로 천천히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질투나 집착이 될 뻔 했던, 겨우 가까워진 거리가 어떤 계기로 다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어떻게든 더, 더 가까워져야 한다. 연인답게 굴어야 한다. 그런 서툴고 헛돌기만 했던 초조감도.

 "……나도, 이거면 된 걸까."

 "난 치하야 짱이 좋아."

 어딘가 빗나간 것 같기도 한 그 짧은 말이,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전부 긍정해 준 것 같았다.

 "……나도, 하루카를 좋아해."

 "고마워. 그러니까 우리들 페이스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자. 다시 여기부터."

 고개를 끄덕이자 하루카는 또 내가 좋아하는 웃음을 지어 주었다. 부드러운데도 한방에 넉 아웃 당할 것 같은 웃음이다. 나도 약해졌구나 하고 그만 쓴웃음을 짓는다.

 정말로 난 물러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루카가 또 멀어진다면, 난 내가 아니게 될 것 같기까지 하다.

 반대로 아까 레슨 동안엔 하루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어디까지라도 목소리가 뻗어 나갈 것 같았다.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만한 강함을 얻는 것과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도 끌어안고.

 이런 나지만. 하루카는 곁에 있어 주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단은 라이브를 성공시키는 것부터일까."

 "응! 대대대성공시키자! 모두가 꺄훙 하게 만들어야지."

 어디까지라도 가자. 그 때와는 또 다른 거리의 우리들로, 다시 이곳에서부터.

 "아, 그러고 보니 하루카. 아직 하나 모르는 게 있는데."

 "뭔데?"

 "요즘 왜 조용히 있는 일이 많아진 거야?"

 "아, 그거 말이지. 말수를 줄이고 치하야 짱이랑 지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좀 실험해 봤어. 해 보고 깜짝 놀랐는데, 떠들지 않아도 치하야 짱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서――――어? 혹시 신경 쓰고 있었어?"

 "……아니, 전혀."

 분명 하루카도 하루카 나름대로 나와의 관계성을 이리저리 더듬어 가면서 굳건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시시한 일로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다니.

 이젠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 잠깐, 치하야 짱. 뭐가 웃긴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입을 삐죽 내미는 하루카 얼굴이 웃겨서 웃음이 더 커질 것 같다.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이번엔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루카의 손을 잡았다.

 깍지 끼고 잡은 손에, 그녀가 세게 힘을 주는 걸 기쁘게 생각하면서.

 난 '연인답게 역에서 헤어지는 법'을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또 조금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되는 거야!!"

 그로부터 1개월 정도 지난 2월 말, 961프로덕션 사장실.

 잡지의 기사를 보던 쿠로이 타카오는 참지 못하고 짜증을 폭발시켰다.

 거칠게 주간지를 책상위에 던지는 바람에, 뒤표지에 부딪힌 트럼프 몇 십 장이 흩어졌다.

 며칠 전에 열린 키사라기 치하야의 버스데이 라이브가 대성공으로 끝났다고, 빨리도 특집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프라이즈로 아마미 하루카라고? 그 둘을 한 번에 부술 수 있던 게 아니었나."

 뭐가 '나쁜 얘기가 아니다'냐, 그 도움 안 되는 놈, 그렇게 쿠로이 타카오는 짜증을 감추러 하지 않았다.

 짜증나,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창밖을 바라보면서 만약을 생각한다.

 역시 이 방법으론 타카기를 이길 수 없는 것일까.

 이 결과가 녀석이 말하는 '아이돌을 믿는다'인지 뭔지 하는 성과라면.

 한 번쯤은――

 이젠 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오랜만에 보는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든다. 두 번째 연결음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위, 나다."

『엉? 진짜로 쿠로이 아저씨야?』

 "오랜만이군, 토마."

 아마가세는 사무소를 떠났지만,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전과 같은 것에 쿠로이는 내심 안도했다.

『그래서? 일부러 전화까지 걸고, 뭔가 용건이 있는 거지?』

 "물론이다. 그, 뭐냐……."

『아, 답답해. 끊는다?』

 "잠깐만. ――그거다. 그냥 한 번, 나도 가끔은 아이돌을 믿어 볼까 생각해서 말이다."

『이제 와서 뭐야.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거든.』

 "얘기만이라도 들어 보지 않겠나?"

『…………뭐, 아저씨가 변했다면야 들어는 줄게.』

 "좋아. 새 아이돌 유닛 기획이다만."

『응.』

 "멤버는 토마, 호쿠토, 쇼타 셋으로 변화는 없다."

『그게 어디가 새로운데?』

 "잘 들어라. 너희 셋이 삼각관계 유닛을 말이다――"

 찰칵.

 뚜, 뚜, 뚜.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되냐고!!"

 쿠로이의 외침이 넓다란 방 안에 허무하게 울려 퍼졌다.

 잘 닦인 바닥 위.

 흩어진 카드 중, 뒤집어진 두 장의 퀸이 겹쳐져 천장을 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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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와즈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셨나요?
이 작품은 제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작품입니다. 처음으로 끝까지 번역한 장편 소설, 처음으로 번역한 아이돌 마스터 SS, 처음으로 커뮤니티에 올린 번역물. 그리고 제 번역 방식이 크게 바뀐 계기이기도 합니다.

원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소설엔 시적인 표현, 운율, 상징 같은 것들이 무더기로 나옵니다. 제가 눈치챈 부분은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잘 된 건지…….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아.'하고 느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가사에서 따온 부분도 많이 있지요. 자신 REST@RT, 눈이 마주치는 순간, 똑딱똑딱, Shiney Smile……. 그것들 또한 제가 눈치챈 부분에 한해서, 현재 돌아다니는 가사 번역에 가깝게 해 두었습니다.

어제 올린 세 편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아서, 회사 일이 바빴음에도 조금 무리해서 전편을 다 올리게 되었군요. 읽어 주신 모든 분들, 덧글을 달아 주신 모든 분들, 추천을 눌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덧글들을 읽으면서, 2개월동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번역에 매진했던 나날이 모두 긍정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또 무언가를 번역할지도 모릅니다만, 일단 당분간은 좀 쉬고 싶어요. 회사에서 서류작업을 하는 척하면서 번역을 했던 나날이여…….

아무튼 그런 느낌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P.S. 이 소설의 분량은 UTF-8 메모장 기준으로 번역 전 604KB,  번역 후 526KB로, 소설 템플릿에 올리면 몇백 페이지가 우습게 나오는 양입니다. 번역 보조 프로그램이 계산한 고유 문장 수는 8550문장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까마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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