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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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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0, 2015 20:21에 작성됨.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9. HOME -production-

 

 키사라기 치하야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입은 하루카에게 "잘 가."라고 말했던 모양 그대로. 귓속에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계속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잘 웃고 있었을까. 먼 곳으로 가 버리는, 친구였던 소중한 사람을 잘 웃으면서 보냈을까.

 혼자뿐인 방 안에서, 치하야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웃음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걸 봐야 할 사람은 이미 한참 전부터 여기엔 없었으니까. 일부러 마음속과 동떨어진 표정을 짓고 있어도 지치기만 할 뿐이다.

 천천히, 평소 표정으로 돌아오려고 해 본다.

 하지만 왠지 잘 되질 않는다. 얼굴 근육이 그대로 굳어진 것처럼, 아주 조금 입가가 내려갔을 뿐.

 애초에 자신의 '평소 표정'은 뭐였을까.

 언제나 하루카가 곁에 있었다.

 아무리 바쁠 때라도 그녀는 치하야 옆에 있으려 해 주었다.

 그런 때에, 치하야는 늘 웃는 얼굴이었던 것 같다. 눈앞에, 곁에, 웃는 하루카가 있었으니까. 마음을 허락한 상대가 진심으로 즐거운 듯한,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웃지 말라고 하는 게 더 어렵다.

 물론 계속 웃기만 한 건 아니다. 곤란해하기도 하고, 조금 화내기도 했다. 배려나 걱정의 표정을 채 다 감추지 못한 적도 있었고, 우는 얼굴을 보인 적도 있었다.

 웃는 하루카가 옆에 없어도. 그녀가 찍힌 사진을 정리할 때, 즐거웠던 기억을 돌이켜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따뜻한 기분에 둘러싸였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런 나날도 조금 전에 끝났다. 해방감이 아닌, 오직 허무함에만 둘러싸여.

 이제부터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하루카가 없어졌으니까.

 하루카와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야 할까.

 노래에 대한 집착 이외에 강한 감정을 품지 않았던 시절로. 감정 기복도 작고, 흔들리지 않고, 어떤 의미론 그저 올곧았던 시절로.

 하지만 하루카가 없어졌다고 해서 다른 모두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알 수 없다.

 이젠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 표정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표정.

 애초에 지금 치하야는 정말로 웃고 있는 것일까.

 확인해 보려고 일어선다. 양 손이 힘없이 축 늘어져서,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한 이 손이 비참해서. 잡아 주었으면 하는 따뜻한 손은 이미 머나먼 곳에 있고.

 하루카가 방을 나설 때 테이블에서 떨어진 사과를 하나 들고 욕실로 갔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깨달았던 거울 앞에 선다.

 지금 거기에 비친 자기 표정은.

 확실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만이,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끌어올려진 입가. 조금 내려간 눈썹. 웃음을 만드는 얼굴  파츠 속에서, 거기만 어쩐지 이질적이라서. 전체적으로 일그러진 인상을 받는다.

 마음속과 동떨어진 표정을 지으면 이렇게 되고 마는 건가. 어디서 이렇게 비틀리고 말았을까.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이제 날짜도 바뀔 시간인데 뭘 하고 있는 걸까. 혼자서 거울을 보면서.

 문득 떠올린다.

 할로윈 한밤중에 사과를 먹으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거울을 보면, 미래의 반려가 비친다고 한다.

 ……자신은 앞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랑을.

 오른손에 든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다시 한 번 거울을 본다.

 당연하게도 거기엔 한 명의 치하야가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시하다.

 비칠 리가 없다.

 어쩌면 세면실에서 한참 돌아오지 않는 자신에게 "치하야 짱? "하고 말을 걸어줄 누군가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함께 거울에 비쳐 줄 누군가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 누군가를 내쫓은 것은 치하야다.

 누구보다도 비쳤으면 했던 그녀의 손을 놓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걸 슬프게 생각한다.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그건 전부 그 가을 바다에 두고 왔으니까.

 꼭 쥐고 있던 사과를 한 입 더 베어문다.

 혼자서.

 키사라기 치하야는, 미소 비슷한 것을 띠고 있었다.

 

 

OL -wings of imagination-

 오토나시 코토리는, 몽상한다.

 11월도 오늘로 마지막 날. 특히 바쁜 12월에 들어가기 전에 재충전이라도 해 두고 싶다. 오늘 일이 끝나면 오랜만에 어딘가에서 한잔 하고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다. 생맥주. 계란말이. 풋콩에 연골이 들은 닭튀김. 계속해서 나오는 주문한 요리를 생각하면서 입맛을 다신다. 좋아, 열심히 하자.

 그리고, 된다면…….

 반대편 책상에서 컴퓨터를 보며 일을 하고 있는 프로듀서를 슬쩍 본다. 그의 시선은 바쁘게 디스플레이 위를 달리고, 양손도 거의 쉬지 않고 움직인다.

 모처럼이니 누군가와 같이 마시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계속하는 프로듀서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가 문득 무언가를 눈치챈 것처럼 시선을 위로 들었다.

 "저, 오토나시 상……무슨 일 있나요?"

 "――아, 아뇨, 그,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황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든다. 프로듀서는 조금 쓴웃음을 짓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후우. 지금 사무소에 있는 게 그뿐이라서 다행이다. 리츠코 같은 사람한테 농땡이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간 따끔한 질타를 받고 만다. 운이 좋아도, "코토리 상, 한가하네요."같은 군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코토리도 다시 사무작업으로 돌아가려고 볼펜을 손에 들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기운 좋은 인사와 함께 사무소에 들어온 건 야요이였다. 뭔가 여러 가지 짐을 들고 있다. 그 뒤에서 이오리가 숨을 헐떡이면서 얼굴을 내밀었다.

 "야, 야요이……. 왜 계단을 뛰어 올라간 거야……. 엘리베이터 쓰면 됐잖아."

 "빨리 사무소에 가고 싶어서! 이오리 짱도 같은 마음 아니었어?"

 "나, 난 별로――그것보다, 일 끝나고 나서 지치는 게 싫은 거야."

 "이오리 짱, 할머니 같아……."

 "코토리랑 같은 취급 하지 말아 줄래?"

 "이오리 짱은 잠깐 이리로 와 볼래?"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코토리가 파란 심줄을 세우고 이오리에게 미소 지었다.

 "어, 어어음, 둘 다 수고했어. 사무소에 얼굴 내미는 건 기쁘지만, 오늘도 바로 돌아가도 됐는데 말야."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낀 프로듀서는 일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야요이가 커다란 과자 상자를 들고 그에게로 뛰어갔다.

 "저, 아까 스튜디오에서 맛있어 보이는 걸 받아서……. 혹시 괜찮으시면, 두 분도 드세요!"

 프로듀서의 책상에 받은 상자를 둔 야요이는, 소파에 앉아 있던 이오리 옆에 다시 앉아서 손에 든 비닐봉지 내용물을 꺼냈다.

 "이오리 짱, 우리들도 과자 먹자!"

 "아까 받은 과자 막 먹은 참이잖아……."

 "으음, 뭔가 하루카 상이 과자를 못 만들어 주게 됐으니까, 더 먹고 싶어졌는지도."

 "그 애는 지금 할리우드에 있으니까. 이제 곧 1개월인데, 잘 하고 있으려나."

 "가끔 메일 보내도 '괜찮아.'란 답장밖에 안 오니까, 좀 걱정이야."

 섭섭한 듯이 눈썹 끝을 내린 야요이가 손에 들고 있던 건, 포키였다.

 ――핫, 포키!?

 오토나시 코토리는, 몽상한다.



………

……





 "이오리 짱. 얼마 전에, 포키 데이란 게 있었지."

 "그랬지. 그런데 야요이, 그게 왜?"

 "왜 포키 데이라고 하는 걸까~ 하고."

 "11월 11일이라고 한자로 써 놓으면, 봉이 네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게 유래래."

 "흐아, 그러면 연필 데이도 돼 버려요!"

 "별로 뭐든 상관없잖아? 그 상품이 팔리기만 하면 되지."

 "엄한 말 하는구나, 이오리 짱."

 "세상이란 그런 거야."

 "그리고 있잖아, 이오리 짱. 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왜."

 "포키 게임이 뭘까~ 하고."

 "푸웁――!? 어, 어디서 그런 걸 들었어!"

 "아미랑 마미가 포키 데이에 하자고 그랬어."

 "서, 설마 안 했겠지!?"

 "못 했으니까 모르는 거야. 맛있을 것 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미랑 마미가 리츠코 상한테 맞았어."

 "……다음에 리츠코한테 이오리 짱 특별상을 수여해야겠어."

 "그래서 이오리 짱, 포키 게임이 뭐야?"

 "몰라도 돼, 그런 건!"

 "이, 이오리 짱 너무해……."

 "야요이! 슝 하고 실망한 눈으로 보지 마! 착각할 것 같으니까!"

 "슝."

 "…………."

 "슝."

 "………………아 정말, 알았어!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냥 포키 양 끝을 둘이 물고서 오물오물 먹는 것뿐이야."

 "우우? 전혀 어디가 재밌는지 모르겠어요……."

 "별로 재밌는 게 아니니까 그래.

 "이오리 짱."

 "왜."

 "여기에 포키가 있어."

 "있지."

 "이미지를 잘 모르겠으니까, 실제로 이오리 짱이랑 해 보고 싶은데~ 하고."

 "야요이."

 "우?"

 "날 죽일 셈이야?"

 "무서운 말 하는구나, 이오리 짱."

 "안 된다면 안 돼! 난 바쁘단 말야!!"

 "하지만 지금 사무소 소파에서 느긋이 있잖아."

 "그렇지!"

 "……이오리 짱이 안 해 준다면, 프로듀서한테 부탁하고 올게."

 "알았으니까 그건 그만둬! 야요이, 포키 내 봐!"

 "고마워, 이오리 짱. 여기."

 "――음!"

 "……누군가가 포키를 문 채로 내미는 거, 뭔가 슈르한 걸."

 "네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하와……. 하나 부러졌다……,"

 "다음엔 내가 씹기 전에 야요이도 물도록 해."

 "……이오리 짱, 모처럼이니까, 이번엔 내가 먼저 할게――음."

 "…………."

 "으음."

 "…………."

 "이오리 짱, 이번엔 너무 느려……."

 "어떡하란 거야!!! 내가 아 그렇습니까~ 하고 우걱우걱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해도 포키 게임을 못 해요……."

 "슝은 그만두라니까! 난 물고 있는 것만으로 큰일이라고! 이번엔 야요이가 나중에 해! ――음."

 "냠."

 "…………."

 "오독오독."

 "……으으."

 "오독오독."

 "으으으으!!"

 "이햐나, 이오리 향."

 "이 거리에서 말하지 마!"

 "아아, 또 하나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오리 짱, 이대로 계속 하면 나만 포키를 먹게 돼서 치사하지 않아?"

 "맘대로 해!"

 "……그리고, 입술하고 입술이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마, 맘대로 해!"

 "…………있잖아, 이오리 짱. 또 한 번 포키 게임 해도 돼?"

 "마, 마, 맘대로――"



………

……





 "굳이 말하자면 하루카보다 미키가 걱정이야. 이번엔 프로듀서가 그쪽으로 안 가니까. '허니가 부족해~'그런 말이 나올 시기 아닐까."

 "으 으음……. 자, 이오리 짱, 포키."

 "고마워, 야요이."

 "…………저, 오토나시 상, 안 드세요?"

 "――핫"

 야요이가 두고 간 과자 상자에 손을 뻗은 채로 굳어 있던 코토리는, 프로듀서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걸 깨닫고 마들렌을 네 개 움켜쥐었다.

 "머, 먹을 거예요, 물론. 먹을 거예요 아하하하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사무소의 문이 또 열렸다. 들어온 건 히비키와 타카네.

 "다녀왔다구~!"

 "수고하십니다. 어머, 이오리와 야요이도 있었군요."

 "타카네 상, 히비키 상,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책상에 받아온 과자가 있으니까, 괜찮으면 드세요~"

 "후후. 야요이, 잘 먹겠습니다.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기에."

 "……저기, 타카네. 아까 일 끝나고 나서 라멘 먹은 지 얼마 안 됐지?"

 타카네의 뒤를 따라서 과자를 집어든 히비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라멘 이외는 전부 다른 배가 있답니다."

 "단 것의 영역조차 넘었구나. 그러고 보니 어제 같이 목도리 사러 갔을 때도, '좋은 고기의 날'이라면서――"

 ――핫, 목도리?

 오토나시 코토리는, 몽상한다.



………

……





 "그런데 말입니다, 히비키. 오늘은 어떤 목도리를 사러 온 겁니까?"

 "으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쎄요, 여러 가지라."

 "일단은 내가 할 거. 아, 저런 건 어떨까."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히비키는 뜨개질이 취미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뭔가 직접 만든 목도리를 쓰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런 건가요. 이전에 보았던 건 상당히 훌륭했습니다만."

 "고, 고마워. ……타카네는 어떤 게 취향이야?"

 "글쎄요――저쪽의 수수한 색이 마음에 끌리는군요."

 "저 연두색 목도리?"

 "네."

 "……."

 "?"

 "어, 으으음, 고마워! 참고할게!"

 "제 의견이 히비키에게 참고가 될까요……?"

 "그, 그건 다음 달을 기대해! 일단 하나 사 올게!"

 "네. 그나저나 상당히 긴 것을 계산대로 가져가는군요……."

 "기다렸지, 그럼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그렇군요. 세간에선 오늘은 고기를 먹는 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아, 11월 29일이구나. 할인하는 가게가 많으니까 좀 복잡할지도 모르지만, 야키니쿠 같은 거 좋겠다."

 "히비키는 완벽하군요. 저쪽에 좋은 가게가 있었을 겁니다."

 "타카네는 빈틈이 없구나. 혹시 처음부터 야키니쿠 먹을 생각이었어?"

 "글쎄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 그래. ……으으,  추워라."

 "역시 오늘 밤도 밖은 춥군요. 어머, 아까 산 목도리 벌써 쓰는 겁니까?"

 "아, 으음, 이건……응, 뭐 그런데."

 "?"

 "아~, 뭔가 이거, 엄청 긴 걸~."

 "구입하기 전에 확인하지 않은 겁니까?"

 "이건 나 혼자 감으면 꽤 남겠는걸~."

 "실로 요상한 목도리로군요."

 "타카네, 춥지 않아?"

 "조금 춥긴 합니다만, 가게도 멀지 않으니 문제 없습니다."

 "……그렇구나."

 "…………후후."

 "왜, 왜?"

 "다 먹을 때쯤엔 더 추워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여기서 역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요."

 "응."

 "……히비키, 가게를 나오면 하나 부탁을 할지도 모릅니다. 들어 주실 수 있나요?"

 "……어, 어쩔 수 없다니깐, 타카네는."




………

……





 "――야키니쿠 집을 나와서 라멘 집에 데리고 가려고 하고 말야."

 "그건 결국, 히비키의 강한 거절에 의해서 없던 일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확실히 갔잖아? 저녁밥 때마다 두세 가게를 돌려고 하니까, 타카네랑 밥 먹으려면 좀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그, 그런 잔인한……."

 "…………저, 오토나시 상, 오늘 몸 안 좋아요?"

 "――핫"

 또 코토리의 눈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건, 프로듀서. 코토리는 현실 세계를 두리번거린다. ……눈물 맺힌 타카네가, 조금 신경 쓰였다.

 "그러니까 음, 히비키 짱이랑 타카네 짱이 목도리를 사러 갔단 이야기였지?"

 "아, 결국 난 아무것도 안 샀어."

 "왜임까!"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와서 코토리는 입을 막았다. 현실 세계란 건 영 잘 되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자기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도 해야 하는 일의 산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시간만 지나갈 뿐.

 그렇다, 몸이 안 좋다, 잘 되지 않는다고 하면.

 "저, 프로듀서님. 요즘 치하야 짱,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요 1개월 간 신경 쓰였던 걸 물어본다.

 "으음, 제가 있을 땐 별로 사무소에서 만나질 못했으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일은 언제나처럼 잘 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럼 괜찮을 거라곤 생각하는데요……. 뭔가, 사람을 피하고 있다고나 할까. 벽을 만들고 있다고나 할까."

 "치하야의 벽 얘길 하는 거야? 그런 건 본인 앞에서 해."

 "벽 얘길 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 얘긴 안 했어. 지금 제일 너무한 건 이오리라고?"

 얘기에 참가한 이오리에게 프로듀서가 곤란하단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저, 치하야 상, 저도 요즘 무슨 일일까 생각했어요. 말을 걸어도 가끔 멍하니 있어서……."

 "야요이 목소리가 안 들린다니, 치하야 상당히 위험한걸."

 "동감이야."

 "동감이에요."

 야요이와 이오리 말에 프로듀서와 함께 수긍하면서, 오토나시 코토리는 몽상한다.

 치하야의 상태가 이상해진 건 이번 달 들어서다.

 이건 역시 하루카와 미키가 할리우드에 간 것과 시기가 일치한다.

 이번만은 자신의 망상이 현실이 되지 않았길 빌 뿐이었다.

 지금 치하야 분위기로는 좋지 않은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Producer -one for all-

 치하야 상태가…….

 코토리와 이오리, 야요이 얘기를 들으면서 프로듀서는 생각한다. 요즘 그다지 그녀의 일이나 레슨에 동행할 기회가 없어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요즘 사무소 전체적으로 일이 많았으니까, 그리 신경 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책임이란 생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야요이, 따로 알고 있는 건 더 없니?"

 "으음, 별로 치하야 상하고 만나질 못했으니까, 잘 몰라요……."

 "그렇구나……. 너희는?"

 히비키와 타카네는 똑같이 고개를 흔들었다. 요 1개월 동안 치하야는 거의 혼자서 하는 일 뿐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아무도 짐작 가는 게 없다니, 그럼 무슨 일일까.

 치하야 본인에게 물어볼까? 아니, 치하야에 관한 일은 프로듀서가 말을 꺼낸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일이든 협력할 테고, 고민이나 과제가 있으면 해결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도울 생각이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말하게 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거리를 두게 될지도 모른다. 이전에 얼마 남지 않은 라이브와 하루카 일로 고민했을 때는, 치하야가 프로듀서 병실까지 상담하러 와 주었다. 그땐 미력하나마 힘이 되어 주었을지 모르지만, 또 치하야는 혼자서 무언가 고민을 끌어안고 있다.

 이럴 때……. 예를 들어서, 치하야의 동생에 관한 스캔들이 세간에 드러나서 그녀가 마음을 닫았을 땐, 거기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하루카뿐이었다. 프로듀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고민하는 하루카의 얘기를 듣는 것과, 치하야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돌아올 장소를 그대로 준비해 두는 것 정도였다. 간접적인 그런 행위가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고, 이번엔――

 하루카가, 없다.

 하루카에게 전부 맡길 생각은 아니었다지만, 그렇다면…….

 아니, 잠깐만.

 애초에 원인이 하루카라면?

 "저, 프로듀서님.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요. 치하야 짱 상태가 안 좋아진 이유가, 하루카 짱이 멀리 떠난 것과 관계가 있다면……."

 그 무시무시한 생각을, 코토리까지 머뭇거리며 입에 담았다.

 "그럴 리가요. 치하야는 친구가 한동안 해외에 나가 있다고, 남이 봐도 알 정도로 침울해하는 애가 아니에요. 누가 걱정하지 않도록 행동할 테고, 프라이드도 잘 갖고 있고. 그건 때와 장소에 따라서 좋게도 나쁘게도 작용하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남에게 들킬 만큼 약해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뇨, 그러니까, 하루카 짱이 없어서 쓸쓸하다는 게 아니고. 뭔가 두 사람 관계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해결할 수도 없고, 그런?"

 "그건……. 만약 그렇다면 치하야는 하루카와 제대로 얘기를 해야 하겠지만――하루카가 저쪽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건 빨라도 새해가 밝고 나서에요. 게다가 치하야와 하루카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면 지금 하루카도 걱정이고."

 "저, 짧은 메일 뿐이어서 잘 모르지만요, 역시 저도 하루카 상이 걱정돼요……."

 "그렇구나――"

 야요이의 말에 프로듀서가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면 9월에 치하야가 갑자기 오프를 신청했을 때, 그녀치고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 땐 치하야도 가끔 쉬고 싶을 때가 있구나 싶어서 오히려 조금 안심했을 정도였고, 그다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면 하루카와 같이 쉬는 휴가였다. 하루카가 폐를 끼쳤으니 사과의 뜻도 겸해서 젓가락을 기념품으로 주었을 때, 그녀의 한 발 뒤에 있었던 치하야의 표정이 아주 조금 어두웠던 것을 떠올린다. 나쁜 점과 점이 점점 이어져서 어렴풋했던 좋지 않은 이미지의 형태가 점점 또렷해진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을 모르겠다.

 "만약 오토나시 상의 추리대로였다고 하고.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었던 거겠죠. 치하야는 뭔가 고민하고 있어요……."

 "역시 그 나이대 소녀의 고민이라고 하면, 사랑――일까요."

 "서, 설마 둘이서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 건가요!? 누구야, 그런 못된 남자는!"

 코토리가 중얼거린 말에 프로듀서는 그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부탁이니 스캔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게 이유라면 제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뭐라고 하고 있어."

 "못된 분이니 말입니다."

 "진짜 그렇다니깐."

 이오리와 타카네, 히비키가 나란히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프로듀서는 더욱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젠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 된 것만 같다.

 "…………저, 이것도 한 가능성인데요, 저이기 때문에 떠오르는 게――"

 "사랑 얘기의 어디에 코토리가 나올 자리가 있다고!"

 "이오리 짱은 이번 일이 끝나면 나하고 얘기좀 하자?"

 "그, 그만 해, 이오리! 저, 오토나시 상, 그건 대체……?"

 "어디까지나 한 가능성이에요. 그 사랑이 만약, 둘만의 것이라고 한다면 ……."

 "무슨 말인가요? 이제 전 뭐가 뭔지……."

 "저, 그러니까요. 치하야 짱이 하루카 짱을, 아니면 하루카 짱이 치하야 짱을, 사랑한다, 그런."

 이오리와 히비키가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츠리고, 사무소에는 정적이 흘렀다.

 연애감정을?

 치하야가, 하루카에게?

 하루카가, 치하야에게?

 ……그렇군.

 "그 생각은 못 해봤네요. 그거라면 일의 앞뒤가 맞을……지도요."

 "――프로듀서님은 별로 안 놀라시네요."

 "어, 물론 놀라고 있어요. 하지만 고등학생이라면 그야 사랑 한둘쯤 하는 나이겠죠."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제가 말한 사랑은, 뭐라고 할까……. 일반적인 사랑과는 좀 다른, 그런 거잖아요?"

 "그건 오토나시 상 때문에 익숙해졌으니까요."

 "뭐라구욧!? 그건 제 뇌내 월드나, PC에 숨겨둔 폴더나, 이 책상 맨 아래 서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뒀을 텐데 왜!!??"

 "가끔 PC 모니터 켜 둔 채로 둘 때도 있고, 꽤나 얄팍한 책도 책상 위에 내버려 둘 때가 있잖아요. 리츠코가 보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보이는 대로 제가 정리하고 있다구요."

 "며, 면목 없습니다……."

 "농담은 그만 두고. 이건 평범하다, 저건 잘못됐다, 그런 쓸데없는 가치관으로 남의 감정을 묶을 생각도 자격도 저한텐 없어요. 아이돌 모두에 대해서 말하자면,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선택해 준다면 그걸로 됐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모두가 생각하는 최선의 형태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프로듀서도, 가끔은 좋은 말 하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들 프로듀서일지도 몰라."

 이오리와 히비키의 말을 흘려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프로듀서는 생각을 계속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완전히 둘만의 문제인 건 틀림없어. 그게 잘못된 감정인지 옳은 것인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지금 상황은 둘이 바라지 않는, 잘못된 것처럼 보여. 그것만은 안 돼. 하지만 하루카는 지구 반대편에서――"

 "저, 프로듀서님. 혼자서 고민하지 마세요. 그래선 지금 치하야 짱과 하루카 짱처럼 돼 버려요. 모두가 있으니까요."

 코토리의 말에 얼굴을 든 프로듀서는,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렇다.

 고민을 남에게 떠넘기는 게 아닌가 생각해 피하고 있었지만, 치하야를, 하루카를, 모두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죄송합니다……. 어디 보자, 난 가능한 한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 치하야나 하루카의 마음은 분명 둘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할 거야. 물론 너희들이나 사무소에 불이익이 갈 만한 일은 말을 할 거고. 이건 아직 전부 가정에 지나지 않지만――만약 우리들 상상대로였다고 하고, 치하야를, 하루카를, 내 생각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그거 말고 다른 결론을 내렸으면 연을 끊었을 걸."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이오리가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치하야 상하고 하루카 상이 웃을 수 있으면, 그거면 되지 않을까 하고요."

 필사적으로 생각한 것을, 야요이가 어떻게든 정리해서 말했다.

 "전 모두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 또한, 믿을 가치가 있습니다."

 타카네는 평온한 웃음을 지었다.

 "난 처음부터 모두를 가족처럼 생각했으니까."

 히비키의 어깨 위에서 햄조가 규이! 하고 동의하는 듯이 울었다.

 그렇다. 이전에 프로듀서가 무대에서 떨어져서 입원했을 때, 치하야도 이 사무소 사람들을 가족에 비유해서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치하야와 하루카의 관계가 얼마나 튼튼해지더라도. 서로 떨어지는 결말을 맞게 되더라도. 둘은 다른 모두를 소홀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을, 프로듀서는 모두를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코토리의 질문에 프로듀서는 딱 잘라 말했다.

 "역시 이건 둘만의 문제고, 애초에 이 얘긴 아직 상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 그렇게 되어도 괜찮도록 준비는 해 둘 겁니다.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건 치하야와 하루카가 언제 어떤 형태로 마무리를 짓든,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이대로 두는 것뿐이야. 모두들, 협력해 줄 거지?"

 모두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프로듀서는 얘기에 일단락을 지었다. 문득 아레나 라이브 합숙중에 자기가 할리우드에 가게 됐다고 말했던 밤을 떠올린다.

 하루카와 둘이서 얘기했을 때. 그녀는 미래를 상상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프로듀서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분명 지금, 그걸 하루카 자신이 발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치하야에게 있어서. 연애감정이 있든 없든 하루카가 소중한 존재임에 변함은 없다. 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마주서 왔던 치하야는, 그걸 되찾을 계기가 된 하루카를 노래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 있었던 라이브에서 치하야가 다시 노래를 잃을 뻔했던 건, 분명 그런 뜻이다.

 그 때 그녀는, 이번엔 스스로의 힘으로 스테이지로 돌아왔다. 그날 치하야의 노해를 듣고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전력을 다해 자신을 부딪치려는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무언가를 찾아낸 그녀는 이제 하루카를 이유로 노래를 잃지는 않겠지.

 하지만. 혼자서 해결해 버렸기 때문에 더욱.

 가장 소중한 노래와 동등해진 하루카에게 연모를 품었을 경우에. 노래하지 못하게 된 스캔들 사건 때처럼 고민하고,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못하고 또 혼자서 끌어안고 있는 거겠지. 이번만큼은,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부딪쳐야 할 사람일수록 가장 전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렇다. 미래는 지금의 연장선상이다. 그리고 과거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지금 둘은 어디서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제대로 서로에게, 그리고 미래로,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결말을 맞더라도. 쌓아온 시간을 후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나온 확실한 시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라.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으로 삼아라.

 하루카. 지금 넌 10년 후의 미래에, 뭘 바라니?  

 꿈을 그리고 전력으로 살아라. 하루카나 치하야 뿐만이 아니다. 모두의 꿈을 지켜보고 현실로 만들 수 있게 돕는 것이 프로듀서라는 삶이니까.

 ――그런.

 조금 자신답지 않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추측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키호에게 특대 사이즈 구멍을 파 달라고 할까. 그렇게 하자.

 일단은 이런 모양으로 가라앉혀 두고 싶은데. 둘 다 일에서 실수를 할 만한 행동은 안 할 테고…….

 하지만 뭘까. 이 안 좋은 예감은.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듯한. 까먹고 있는 듯한.

 평온한 분위기가 돌아온 사무소에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 때였다.

 "아, 미안. 내 거야. 잠깐만 실례."

 프로듀서가 핸드폰을 손에 들고 통화를 시작했다. 대답을 할 때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5분쯤 얘기하고 나서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지만 얘기할 게 있어. 가능한 한 모두한테 모이라고 해 줘."

 

 

 멀리 떨어진 땅의 호텔 방에서.

 아마미 하루카는 핸드폰을 꼭 쥐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제는 어떡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너무나 많은 것을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

 그렇다.

 아마미 하루카는 눈치 채지 못한다.

 자신이 돌아갈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바다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하나 더.

 예를 들면, 집으로 돌아가던 키사라기 치하야에게 승용차가 한 대 돌진해 오더라도.

 그녀 자신조차 누군가를 생각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서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

 아마미 하루카는, 눈치 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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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번 편은 하루치하 요소가 전무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나도 야요이오리! 히비타카 왓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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