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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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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0, 2015 16:49에 작성됨.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8. 단절의 방아쇠, 이별의 총탄

 

 "미키, 그리고 하루카. 너희들은 다음 달부터 할리우드에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어."

 "어……."

 쿵.

 짧은데도 무섭도록 위력적인 프로듀서님의 말은, 내 머리에 꽂혀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에는 너무도 충분했다. 할리우드? 내가? 미키랑?

 "그쪽 영화에 둘 모두 주연이란 식으로 얘기가 들어왔어. 미키는 이전 영화가 호평이었고, 하루카도 아이돌 어워드 수상이 그쪽 눈에 들었나 봐. 물론 둘의 의견을 듣고 나서――"

 "물론 미키는 오케이인 거야! 허니도 갈 거지?"

 "나, 나는 이쪽에서 평소대로 모두를 프로듀스해야 하니까……."

 프로듀서님의 말을 끊을 기세로 바로 대답한 미키에 이어서, 승낙하는 말을 하려고 열려던 입이 멈추었다. 어라……? 왜일까.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시선을 움직인다. 뒤돌아보고, 다시 한 번. 모두의 얼굴을 둘러본다. 다들 있다. 이전 아레나 라이브 공연 결정을 들었을 때도 비슷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프로듀서님이 모두를 모아놓고 말했다. 좋은 뉴스가 있다고. 사무소 사람들 모두가 자기 얘기인 것처럼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다, 기쁘다. 나도 물론. 하지만 그건 어째서인지 천천히 음미하고 나서 삼킨 것 같은 기쁨이고, 조금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켜서 끌어낸 것 같은 기쁨이다.

 왜일까. 아레나 라이브가 결정됐을 때는 나도 모르게 몸을 쑥 내밀 정도로 기대되고 기뻤는데. 이게 예를 들어서 "돔 라이브야!" 같은 거였다면, 그때와 같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치하야 짱을 바라본다. 그녀도 역시 나에게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눈은 맑고 예뻤지만, 어라, 하지만 그 눈에서는 무언가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마치 낮에는 조금만 얼굴을 가까이 대면 돌아다니는 물고기나 바닥의 해초나 조개도 보이는데, 빛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밤바다 같은.

 두근,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건, 이 큰 답답함은, 불안? 아니, 아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언가가 부족하다. 난 깨닫지 못했다.

 나인데, 내 일인데, 왜인지 내가 멀다.

 치하야 짱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려다, 다시 닫는다. 지금 이 장소에서 치하야 짱은 내게 말을 바라는 게 아니고, 나도 치하야 짱에게 말을 걸 필요는 없었다. 그런 아무래도 좋고 당연한 사실도 내 뒤를 두 걸음 늦게 따라오고 있는 것만 같다.

 

 "미키 있지, 또 허니랑 할리우드 데이트 하고 싶어! 그럼 미키, 엄청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알았어, 무사히 촬영 끝나고 일본에 돌아오면, 어디든 원하는 데에 따라가 줄 테니까……."

 정면을 다시 보니, 프로듀서님은 평소와 같은 곤란한 표정으로 미키를 달래고 있었다.

 시선을 떨어뜨리고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내가 지금 ‘갈게요’란 한 마디를 못 하는 건, 어딘가 걸리는 게 있는 것만 같이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모두와 함께'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우리들만 할리우드에 간다는, 미안함……?

 "하루카는 어떡할래?"

 프로듀서님이 내게 말을 건다.

 "하루카도 갈 거지?"

 미키가 나를 본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다. 하지만 돌아볼 수가 없었다. 왜일까, 무섭다.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다는 게, 갑자기, 이유도 없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망설일 선택지도,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인 아마미 하루카에게는.

 얼굴을 든다. 앞을 본다. 드디어 바다 너머로 갈 수 있다.

 동경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내 동경은――

 "갈게요. ……가게 해 주세요, 할리우드."



……





 얘기가 끝나고 나서, 프로듀서님이 조정을 마친 스케줄 표를 두 장 건네주셨다. 하나를 화이트보드에 붙이고, 손에 남은 다른 하나를 내려다본다.

 "11월 1일에 저쪽으로 가니까, 앞으로 3주일하고 며칠이구나……. 으엑, 다른 일이 조금씩 당겨졌어……."

 옆에 있던 리츠코 상도 내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바쁘겠지만, 일을 남겨두고 보낼 수도 없잖아. 도울 수 있는 건 도울 테니까 열심히 해."

 "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금방 긴 머리를 등까지 늘어뜨린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가려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뭔가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무엇을 위해?

 ……아까부터 생각해도 의미가 없는 질문만 계속 떠오른다. 성가시다. 생각하기보다도 먼저 발을 내딛었다.

 "저기, 치하야 짱."

 미키와 얘기하고 있던 치하야 짱이, 바로 뒤에서 부른 나를 돌아보고 웃음 지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있지, 그, "

 무엇을 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말로 나올 리가 없다. 스스로 말을 걸어 놓고, 말이 막혔다.

 치하야 짱이 내 말을 기다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 사실은 할리우드에 가게 됐어."

 "나도 알아. 축하해, 하루카."

 그야 그렇지. 같은 순간에 그걸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미소와 함께 받은 축복에, 나는 따끔한 아픔을――

 어?

 아픔……? 어째서.

 "어, 그러니까……고마워?"

 "왜 의문형인 거야?"

 "아, 응, 그렇지, 이상하지. ……그래서 있지, 그러니까, 일이 바빠서, "

 뭐야, 그게. 최고로 어찌되든 상관없다.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뭔가, 뭔가,

 "그래서……. 아, 생방임까 레볼루션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싶어서."

 우리들이 메인 퍼스털리티를 맡은 TV 프로그램 이름을 댔다. 응, 이것도 일단 중요한 이야기니까? 그럴 거다.

 "그건 미키도 걱정인 거야. 하루카랑 미키가 할리우드 가면 치하야 상 혼자잖아. 괜찮겠어?"

 "전혀 괜찮지 않아. 나 혼자선 도저히 프리 토크를 진행할 수가 없는걸. 둘이 없는 동안에, 누군가 대신――"

 셋이서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에게 맡겨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들 개성이 강하니까 어딘가 불안한 요소가 생긴다. ……괜찮을까, 이 사무소.

 "――새삼스럽게 생각하지만, 하루카의 평범함은 귀중한 거였어."

 "에헤헤, 고마워, 치하야 짱……근데 그거, 칭찬하는 거지?"

 "하루카는 잘 넘어져서 불안하지만, 평범히 일을 하는 데는 안정감이 굉장해."

 "미키, 그렇게 덧붙여도 있지, 조금은 상처받아."

 다시금 자신의 위치가 슬퍼진다. 프로듀서님이 날 리더로 임명한 것도, 이런 평범한 안정감만 평가했던 게 아닌가 불안해진다. 뭐어 그것도 일종의 신뢰라곤 생각하지만서도. ……나,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겨도 되겠지?

 "음, 아즈사 상은 어때요? 생방임까 사회자요."

 이 이상 디스가 나오기 전에 가까이 있던 아즈사 상에게 도망쳐 본다.

 "나? 상관은 없는데, 별로 그런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진행이 산으로 가 버릴지도 몰라."

 "그, 그렇군요."

 아즈사 상이 산으로 간다는 말을 하면 묘하게 설득력이 생긴다. 한쪽 손을 뺨에 대고 고민하는 아즈사 상 뒤에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프로듀서님이 이쪽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둘이 없는 동안에 모두가 매주 교대로 치하야를 도와주자고 생각하고 있어. 누가 옆에 있으면 일단 어떻게든 될 것 같지?"

 "네. 고맙습니다,  프로듀서."

 치하야 짱이 안심했는지 벽을 쓸어내렸다.

 "그러니까 둘 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알았어! 허니도 약속 잊어버리지 마!"

 솔직하고 거짓 없는 호의와, 가까운 미래에 머나먼 땅으로 간다는 기대로 반짝이는 미키의 눈을, 난 더 이상 직시할 수가 없었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나도 기대하고 있다. 과거 출연했던 어떤 작품보다도 큰 무대에서 자신의 힘을 시험할 수 있다. 그야 영화가 좋고 나쁘고는 규모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꿈 중 하나이기도 했다. 언젠가 세계의 스테이지에서 노래나, 댄스나, 연기를 하는 것. 한 명의 평범한 소녀가 꿈꾸기에는 너무나 멀고, 높고, 큰 동경심.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걸.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만 건 나 자신이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해서 없었던 일로 할 만큼, 요령 좋게 살진 못 할 것 같았으니까.

 꿈이 또 하나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고민거리도 하나 줄었다. 하지만 왜, 뭔가가 부족한 것 같은, 마음 일부를 다른 곳에 두고 온 것 같은 걱정이 가시질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말이지.

 내 마음은, 걱정은 어디에 있는 걸까.



………

……





 바쁜 나날이었다.

 소시지처럼 줄줄이 들어찬 예정에 휘둘리길 계속하면서, 어느새 찾아온 10월 마지막 월요일. 주말엔 이미 난 미국에 있겠구나 생각하면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영어 공부도 해 놓고 싶었지만 통근 전철에선 단어장을 꺼내는 것도 겁날 정도로 피곤해서, 결국……응.

 다음 일, 라디오 수록까진 꽤 여유가 있어서 사무소에서 느긋이 쉬려고 편의점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사가지고 왔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를 선택해서 사무소가 있는 층까지 올라간다. 고맙다, 문명이여.

 "안녕하세요~"

 "하루카……수고했어."

 "아, 치하야 짱!"

 사무소에 들어가자 치하야 짱이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요즘은 주말에 하는 생방임까 말곤 얼굴 마주칠 기회도 없었으니까, 이틀 연속으로 만난 게 왠지 기뻐서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지고 말았다.

 "그렇지. 특히 하루카는 바빴으니까. 괜찮아?"

 치하야 짱이 이어폰을 빼고 코드를 말고 나서, 염려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좀 힘든 게 재밌는 법이야."

 좀 허세를 부리면서, 편의점 봉투를 테이블 위에 두고 치하야 짱 옆에 앉는다. 솔직히 좀 피로가 쌓였는데, 치하야 짱 얼굴을 보니까 신기하게도 다 날아갔어. 그런 말은 좀 부끄러우니까 가슴 속에 넣어 두었다.

 다시 사무소 안을 둘러보니, 어라? 아무도 없다.

 "지금은 코토리 상도 없어?"

 "오토나시 상은 아까까지 있었는데, 점심도 먹을 겸 사무용품을 사러 나갔어."

 흠. 지금 이 사무소엔 치하야 짱과 나 둘뿐이다. 치하야 짱과 나 둘뿐이다. 딱히 의미는 없지만, 두 번 말해 봤다.

 "치하야 짱은? 오늘은 벌써 일 끝났어?"

 "난 지금 타카츠키 상을 기다리는 거야. 다음 TV 게스트 수록에 같이 가니까."

 "그렇구나. 요즘 치하야 짱, 야요이랑 같이 하는 일 많지 않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랑 타카츠키 상은 잘하는 게 다르니까 별로 그럴 기회는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저번 주에도 둘이서 같이 촬영이 있었어."

 "헤에~"

 어쩐지, 얘기하고 있는 치하야 짱이 유난히 생기가 넘쳐 보인다. 식물이 3배속으로 성장할 만큼 눈이 반짝인다.

 "잡지 기획으로 스튜어디스 옷을 입었었는데, 뭐라고 할까, 대단했어. 보통 그런 옷은 성인 여성이 입는 건데, 타카츠키 상이 입으니까 다른 매력이 있는 거야. 원래 코스튬의 의도와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타카츠키 상의 귀여움 같은 걸 잘 끌어내서. 분명 타카츠키 상이랑 같이 여객기에 타는 승객은, 너무 높은 곳에 와서 결국에는 천사들이 사는 곳에 온 게 아닌가 착각할 거야."

 "그, 그렇구나……."

 정말 행복하게 말하는 치하야 짱의 머릿속은 분명 그 때 야요이 모습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나인데.

 "그거, 혹시 내가 입으면 어떤 느낌일까?"

 "글쎄. 타카츠키 상과 하루카의 매력은 또 다르니까."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돌아갔겠다, 이봐. 치하야 짱에게 악의는 없었겠지만 어쩐지 짜증이 밀려온다.

 "됐어, 됐어. 어차피 치하야 짱은 야요이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타카츠키 상을 좋아하는 것과 하루카를 좋아하는 것도, 또 다르지."

 왜 그렇게 슬픈 것처럼 웃을까. 별로 귀엽지도 않은 나를 향한 동정입니까, 그런 겁니까. 아까 반짝이던 눈은 어디로 간 거야.

 "――흥이다. 야요이 얘기만 잔뜩 그렇게 신나서 얘기하고. 치하야 짱은 내가 없어도 어차피 아무렇지도 않지?"

 왜일까, 아까부터. 자신의 안쪽에서 나쁜 감정만 흘러나온다. 멈추질 않는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잔뜩 눌린 까만 무언가가 유일한 출구를 찾아낸 것처럼 입에서 흘러나온다.

 "한동안 못 만나게 되는데. 난, 나만, 쓸쓸――"

 쓸쓸하다니, 바보 같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깨닫고 당황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납득한다. 기세를 타고 넘칠 뻔한 말 속에서,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찾아냈다.

 쓸쓸함. 그렇구나. 난 쓸쓸한 거구나. 치하야 짱과 헤어지는 게. 그러니까 할리우드에 가게 된 걸 솔직하게 좋아할 수 없었던 거구나.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어린애 같다. 확실히, 쓸쓸하긴, 하다. 하지만 그 감정과 큰 일을 맡은 기쁨을 천칭에 올린다고 해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무겁다. 그럴 거다.

 아직이다. 아직 부족하다.

 그 때 내 안에서 해외로 가는 것과 같은 정도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무거웠던 것.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시선을 떨군다. 급속도로 식은 머리에는 후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해 버렸을까. 유치하고 불안정한 자신에게 엄청난 혐오감이 들었다.

 "하루카……."

 당황한 듯한 치하야 짱의 목소리. 그야 그렇겠지, 나도 영문을 모를 소리를 갑자기 들으면, 누구라도 곤란해한다.

 내 시선 끝에서, 다리 위에 올라가 있던 치하야 짱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하지만 곧 망설이듯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힘없이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둘만 있는 사무소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야 해.

 "아, 아하하, 미안해, 치하야 짱……. 뭔가 나, 역시 지쳤나 봐."

 건조한, 갈라지는 듯한 웃음. 이상하다. 웃음은 내 몇 안 되는 세일즈 포인트였을 텐데.

 "일이 밀린 것도 그렇지만, 환경이 크게 바뀐다는 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도 스트레스가 돼."

 얼굴을 들어 보니 치하야 짱은 따뜻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배려에 어리광을 부린다.

 "치하야 짱, 레코딩으로 해외 나간 적 있었지. 조언 좀 해 줘~."

 "처음엔 역시 긴장하고 불안했지만 의외로 금방 익숙해졌어. 말도, 잘 못해도 어떻게든 되는 법이야."

 "아, 그거, 특히 걱정돼. 나 정말로 영어 못하니까."

 "일상 회화 정도는,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해서 침착하게 들으면 분위기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 그래도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잘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한 건 자주 있지만. 제대로 공부해 둘 걸 그랬다고 많이 후회했어."

 "한 번 그런 후회스런 경험을 하면 영어도 공부할 생각이 들게 될까?"

 "나도 뉴욕에 있을 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돌아오니까 결국 평소랑 똑같았어. 유감스럽게도."

 "아하하, 역시 그렇지."

 아까보단 제대로 웃은 것 같다.

 "고마워, 치하야 짱. 조금 마음이 편해졌어."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안 했는걸. 대신 이 빵을 받을게. 마침 배가 고팠어."

 "아, 잠깐만, 그거 내 점심이야! 감사는 필요 없었던 거 아니었어!?"

 치하야 짱이 비닐봉지에서 꺼낸 팥빵을, 당황하면서 잡아챘다. 잠깐 생각하다가 봉지를 뜯고 빵을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을 치하야 짱에게 내민다.

 "……자."

 "고마워. 잘 먹을게."

 둘이서 반으로 나눈 팥빵을 먹는다. 달콤한 팥앙금과 치하야 짱의 다정함으로 몸의 긴장이 풀린다. 치하야 짱은 조금 전에 점심을 먹었을 테고, 그다지 배고프지 않았을 텐데.

 문득 프로듀서님이 이 사무소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의 TV 수록을 떠올린다. 그 때는 얼어붙은 요리 프로그램 분위기를 내가 풀었던 적도 있었는데.

 다음 주 생방임까부터 미키와 나는 없지만, 실제로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고, 조금 쓸쓸히 생각한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덤벙대서 치하야 짱의 방해가 될 정도인 걸.

 빵을 위장에 집어넣고 일어선다.

 "나, 차 끓여 올게."

 역시 난 제멋대로다.

 설령 치하야 짱이 날 필요로 하지 않아도. 나와 당분간 만나지 못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도.

 난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없으면 쓸쓸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걸.

 조금은 치하야 짱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

 역시 난 제멋대로다.

 그런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치하야 짱과 헤어지는 편이, 훨씬 더 싫었다.



………

……





 그러저러해서, 10월 마지막 날. 내일은 벌써 비행기로 할리우드에 가는 날이다. 그런 날 전야에 난 이렇게 치하야 짱네 집에 가고 있다.

 정작 그 치하야 짱에게는, 내가 지금부터 집으로 간다는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약속 없이 쳐들어간다는 최고로 민폐인 짓을 하려고 한다.

 그치만 그치만, 정말 제멋대로면서도, 오늘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10월 마지막 날. 10월 31일. 즉, 할로윈! 아이들이 과자를 달라고 조르러 여러 집을 돌아다니는 날이에요!! 어차피 난 애야, 됐지!?

 반쯤 강제로 자신을 납득시키면서, 치하야 짱네 집에서 가까운 역에 내렸다. 개찰구를 나와서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풀려 있던 코드 위쪽 단추를 잠갔다. 치하야 짱네 집을 향해, 걸어 나간다.

 만약 치하야 짱이 아직 안 돌아왔으면 어쩌지. 열쇠를 받았다곤 해도, 역시 한 마디 말도 없이 멋대로 들어가 있을 수도 없고…….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얼빠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걸으면서 신음했다.

 하지만 놀러 가는 걸 알리고 싶진 않았다. 별것 아닌 아마미 서프라이즈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만약, 만약 치하야 짱이 "내일은 바쁘니까 오늘은 못 놀아." 같은 말을 하면 어쩌지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오늘이 정말로 정말로 마지막 날. 그야 다시는 못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올해는 이제 못 만난다.

 요 1주일간 사무소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개성 넘치는 응원을 들었다. 덤으로 조금 걱정도 받았다. 분명 일종의 신뢰일 것이다. 거의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배웅해 주었다. 치하야 짱도 그렇다.

 그렇긴 한데.

 치하야 짱에겐, 치하야 짱만은 조금 다른, 좀 더 특별한 뭔가를 기대해 버린다. 바라고 만다. 애타는 듯한, 초조한 듯한, 충동 그대로. 무엇 때문에 초조한 건지도 모르지만.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치하야 짱하고 다시 한 번 만나면 뭔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조금 더 개운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런 생각 또한, 내 발을 치하야 짱네 집으로 향하게 했다.

 문득 답장을 쓰다가 만 학교 친구 메일이 생각나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앗. 새로 온 읽지 않은 메일 제일 위에, 발신인 '치하야 짱'. 기대에 가슴이 뛰는 걸 의식하면서, 5분 전 쯤에 온 제목 없는 메일을 열었다.

 『갑자기 미안해. 지금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

 으음, 확실히 너무 갑작스러운데. 나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 치하야 짱네 집 같은 데에 갈 여유는 없는데 말야.

 하지만 꼭 치하야 짱이 와 달라고 한다면,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는 나를 만나고 싶어해 준다면, 가 줘도 되려나.

 ……어쩔 수 없구만.

 발이 향하는 방향은 전혀 바꾸지 않고 치하야 짱네 집을 향한다. 어느새인가 빠른 걸음이 돼 있었지만, 속도는 늦추지 않고 치하야 짱네 집을 향한다.

 메일을 차례로 정리하면서 뭐라도 사갈까 하고 폐점 직전인 슈퍼마켓에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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