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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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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0, 2015 16:01에 작성됨.

………

……





 갈 곳은 없지만 발을 멈춘다는 선택지도 없었다. 멈춰서면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선다는 명령을 뇌에 보내는 게 싫어서 대신 걷고 있다, 그렇게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로등이 적은 밤길을 그저 걷는다. 눈이 어둡다는 것만을 느끼고, 코는 약간의 바다 냄새를 맡았다. 입 속은 바짝 말랐고, 귀는――

 방울벌레 소리를 깨달은 것은, 갑작스러웠다.

 방에 있을 때는 왜 안 들렸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바로 답을 생각해 냈다. 밤엔 빛이 있으면 벌레가 꼬이니까 창문은 닫아두고, 온도 조절은 에어컨으로 하라고 종업원이 주의를 줬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무척 조용한 방이었다.

 아마도 마침 집 근처에서도 가을벌레가 우는 시기가 된 거겠지.

 다리는 멈추지 않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름은 이제 어쩔 도리가 없이, 끝난 것이다.

 기묘한 달성감이 가슴 속에 흘러넘쳤다. 난 이 여행의 진짜 목적을 달성했다.

 하루카는 내가 갑자기 여행 얘길 꺼낸 이유를 ‘여름 동안에 별로 못 놀았으니, 남은 시간으로 여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것 같았지만.

 조금 다르다.

 지나가는 계절을 쫓아가려고 온 게 아니다.

 지나가는 계절에 이별을 고하러 온 것이다.

 여름다운 것을 바란다고는 해도, 그걸 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찾지 못하는 걸로 여름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올해 이 계절은, 내게는 너무 지나치게 특별해졌다.

 하루카와 처음 만났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아직 사무소 동료로밖엔 인식하지 않았던 시절. 아마미 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부터 기억을 현재를 향해 미끄러뜨린다.

 여러 일이 있었다.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TV 출연도, 매일 하는 레슨도, 일이 없어서 사무소에서 따분해하던 때도, 하루카와 같이 있었던 시간이 가장 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하루카가 둘도 없는 존재가 된, 유의 죽음에 대한 스캔들 사건.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노래까지 잃어버리고 모든 것에 절망해 있었을 때. 내가 만든 벽을 부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손을 뻗어 준 건 하루카였다.

 난 그 손을 잡았다. 세계가 변한 것 같았다. 노래밖에 없었던 내 마음에,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즐거운 일들이 늘어갔다.

 누군가에 대해 뭔가를 하고 싶단 마음이 싹튼 건 처음이었다. 나도 하루카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손을 뻗는다. 다리를 움직인다.

 회상에 잠겨 있던 내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다.

 조용히 파도가 치는 어둡고 까만 바다. 가을 바다. 아까 하루카와 왔던 바다다.

 낮에 여기에서 하루카와 떠올렸던, 합숙 다음의 아레나 라이브 풍경이 뇌리에 플래시백된다.여태껏 본 적 없는 넓이의, 빛나는 바다. 모두 함께 목표로 했던, 빛나는 저편.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단지 같이 있는 것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그게 좋았다고, 나를 인정해 준, 도움이 됐다고 말해 준 하루카.

 아직 아무것도 갚지 못해서 면목이 없지만, 이제 괜찮겠지, 하루카. 넌 그대로 네가 갈 길을 가.

 난 더 이상 옆에 있을 수 없어.

 옆에 있을 자격이 없어.

 올해 처음으로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을 만들었다. 일과 관계된 게 아니면 신경도 안 썼을 이벤트에 어째선지 가슴이 뛰었다. 엇나갈 뻔 했지만 하루카가 내 초콜릿을 먹고 맛있다면서 보여준 미소를, 잊지 않는다.

 하루카의 생일엔 앞뒤 생각 없이 준비를 했다. 선물로 자기 집 열쇠를 주다니, 지금 생각하면 머리가 어떻게 된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방 장식도 조금 지나치게 했던 것 같다.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내 서툰 마음을 받아들이고 보여준 미소를, 잊지 않는다.

 바쁘면서도 시간을 내서 내 방에 오게 된 하루카와 비 오는 날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내 노래는 다시 문제가 생겼다. 노래할 수 없어서 고민하고 내가 답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 믿고 기다려 준 하루카. 라이브 중에 봤던, 많은 반짝임 속에서 누구보다도 반짝이던 눈동자를, 그 시선에 신뢰를 담아서 보여준 웃음을, 잊지 않는다.

 끝나버린 불꽃놀이 회장에서, 계속 상처주기만 했던 내 마지막 한마디에 반쯤 울면서도 필사적으로 보여준 웃음을, 잊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그리고 이 여행에서, 하루카가 내게 보여준 모든 웃음을, 잊지 않는다――

 마지막 기억은 아름다운 채로 담아두고 싶었으니까. 그것도 분명히, 이 여행의 목적 중 하나다.

 하루카도 나도 진심으로 즐거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을. 여름다운 건 없어도 된다. 네가 웃어 주기만 한다면. 한없이 행복했던 시간을 확실하게 만들어 두고 싶었다.

 모래사장을 걷는다. 발로 밟는 것에 맞추어 지면이 파여서, 부드러운 모래가 신발 위에 흘러들어온다. 설령 기억도 천천히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라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 유리로 된 쇼 케이스에 소중히 늘어놓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없어지지 않도록.

 사랑을 했던 그 기억도, 아름다운 채로.

 하루카를 향한 이 마음을 깨달은 여름의 시작. 절대로 손이 닿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래도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몸 안쪽에서 폭발할 것 같은 격정에 이끌려 빗속을 달렸던 밤.

 하루카를 향한 마음을 속이려고 했던 여름 축제. 아무리 생각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만약 이루어지더라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랑에 고민하고, 그래도 점점 억누를 수 없게 되어가는 하루카를 향한 정욕을 없던 일로 하려고 했던 축제 뒤의 밤.

 그리고 하루카를 향한 마음을, 하루카와 함께한 모든 추억을, 소중한 과거로 만들겠다는 결의를 한 여름의 끝. 이것이 올바른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혼자서 바다를 바라보는 밤.

 혼자서 바다를 바라본다. 내 발은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밀고 들어오는 자리에서 드디어 멈추었다. 당연하단 듯이 파도는 밀려오고 나간다. 당연한 감정을 갖지 못한 내 눈 앞에서.

 왜 동성을 좋아하게 돼 버렸을까, 첫째 날 밤에 진심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천성인가 생각했지만, 아마도 그건 아니다. 아직 하루카밖에 좋아하게 된 적이 없으니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걸 알게 됐을 때 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금 나는 그 가능성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루카 이외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답은 간단하다――

 하루카였으니까, 사랑하게 된 것이다.

 분명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여자애였다. 하지만 난 하루카가 아니면 안 됐던 것뿐이다.

 그것 뿐. 그저 그것 뿐.

 어쩔 도리가 없고, 어떻게 해서도 안 된다면 방법이 없다.

 남은 건 이 마음을 완벽하게 봉할 날을 정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장례식이나 고별식 날짜를 잡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묘지는 이 바다가 되는 걸까.

 하루카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 계절이 죽는 것과 같이, 이 마음도 버리지 않고 묻어 둔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이 여행을 출발했다.

 마음 어딘가에선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이대로 평범한 친구로서 계속 지내는 것을. 실제로 가능한 한 오늘은 하루카를 향해 그런 마음을 되도록 품지 않으려고 했고, 여행 본래의 목적도 머리 구석에 밀어 두기만 했다. 꽤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아픔이나, 넘칠 것만 같은 좋아하는 감정을 무시하면서, 하루카 곁에.

 하지만 역시 확실한 방아쇠는 있었다. 그것이 아까 있었던 일. 난 아무래도 하루카가 자는 모습에 아주 약한 것 같다. 바로 옆에서 하루카가 무방비해지면 너무 커진 내 감정이 어쩔 수 없이 폭주하고 말 것만 같다. 하루카에 대한 연모를 알고 나서 함께 밤을 보낸 적은 없었지만, 하루카의 생일 다음날 아침, 무의식중에 자는 하루카 뺨에 키스를 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물론 억지로 충동을 억누르면서 친구 놀이를 계속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감정을 품고 만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나는 바라지 않고, 어딘가에서 의도하지 않는 파국을 맞을 지도 모르는 공포를 안은 채 하루카 옆에 계속 있을 순 없다. 내 얄팍함과 뻔뻔함에 넌더리가 난다. 결국 나도 계속 괴로워하고 상처 입는 게 싫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카는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믿고, 다음에 단 둘이 제대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 난 하루카에게 이 마음을 고백할 것이다.

 분명 하루카는 내게서 멀어져 가겠지. 어쩔 수 없이, 거절당하겠지. 얘기도 안 하는 시기가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소중한 추억은 그대로 마음의 버팀목으로 삼고, 천천히 사랑만을 죽이는 거다. 하지만 사랑을 했다는 마음도 제대로 아름다운 과거, 추억이 되도록. 이 마음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이었다곤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모든 것이 부드러운 기억이 되었을 때 다시 하루카와 만나는 거다. 그 땐 미안했어, 나와 다시 한 번 친구가 되어줘, 하고. 그게 얼마나 먼 미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1개월 후일지도 모르고, 1년 후일지도 모르고, 10년 후일지도 모른다. 평생 그대로 하루카를 사랑할지도 모르고, 심하게 상처 입을 하루카는 나를 용서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제멋대로인 행동과 미래란 말인가. 그래도 일말의 희망에 걸 수밖에 없다. 매달릴 수밖에 없다.

 "흑, 크,"

 자조 같은, 한숨 같은, 신음 같은 소리가 이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꼴볼견이라고 생각한다. 능숙한 상냥함을 가지고 싶었다고 다시금 바란다. 내가 모르는 하루카도 분명 아직 많이 있을 테고, 더 알아가고 싶었다는 쓸쓸한 마음이 가슴속에서 넘쳐흘렀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늦었고 내게 남은 길은 이것뿐이었다. 자신이 싫고 싫어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화를 낼 만큼 기력에 여유도 없었다.

 결국 다리에 힘을 넣을 수가 없어져서 모래밭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눈앞까지 파도가 밀려온다. 아아, 여기라면 아무도 없고, 소금물도 잔뜩 있고, 안 들키겠구나 하고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생각을 한다.

 이래봬도 생각했다. 그저 열심히 생각했다. 후회뿐인 인생이었지만, 하루카에 대한 일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하루카.

 어찌할 수 없지만,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좋아합니다.

 절대로 행복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당신을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을 좋아하게 된 자신만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바닷물이 아닌 소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턱 끝에서 다리에 떨어졌다.

 절대로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일어설 수 있게 되면, 이별의 계절로 한 발을 내딛을 테니까.

 그 때가 되어도, 난 꼭 웃을 테니까.

 언젠가 당신이 다른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웃어 줄 수 있도록.

 그러니 지금은, 지금 만은,

 "……하루, 카――윽"

 나에게만 보여줬던 웃음을, 소중히 정리할 시간을, 주세요.

 "――――앗, 으, ――으흑――"

 당신을 생각하며 마지막 눈물을 흘리는 걸, 용서해 주세요.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나가는 계절에 이별의 인사를.

 혼자 해변에서 통곡하는 내 숨죽인 목소리를, 눈물을, 묘지로 정한 가을 바다는 그저 조용히 끌어안아 까만 파도를 날붙이처럼 세우고 어딘가 멀리로 가지고 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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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번역한 뒤에 세빙을 처음 들었는데, '바다 바닥처럼'이란 가사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노린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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