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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7-1

댓글: 1 / 조회: 1593 / 추천: 7



본문 - 09-10, 2015 15:59에 작성됨.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7. 지나가는 계절에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걸 깨달은 것은, 갑작스러웠다.

 일이 끝나고 편의점에서 조달한 저녁밥을 먹던 손을 멈추고, 조금 열어둔 창문 틈을 바라보았다. 방충망을 넘어 오는 것은 딱 좋게 시원한 밤바람과 가끔 밖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뿐이다.

 어제는 어땠더라. 엊그제는. ……눈치 챈 것이 지금이니, 그런 사사로운 것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의식하면서 듣고 있던 것도 아니다. 여름의 찌는 것처럼 더운 공기를 몇 배로 해서 진동시키는 듯한 그 소리를, 호의적으로 듣고 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일까, 이 어렴풋이 번지는 적막함은.

 ……쓸쓸함? 그런가, 나는 쓸쓸하게 느끼고 있는 건가. 아마도 여름이 끝나는 것에 대해서.

 한 계절이 지나가는 것에 일말의 아쉬움 비슷한 것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특히 여름은 덥기만 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분명 올해는 마음 어딘가에서 기대했던 거겠지. 여름 시작 무렵에 깨달은 마음이, 이 수개월을 어떤 색으로 물들여 줄 것을.

 하루카와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결국 올해 있었던 여름다운 일이라고 해 봤자, 그런 종류의 이벤트나 페스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일이 바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시간이 있었더라도 하루카에게 연락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끝나가는 축제 회장을 걸었던 그 날처럼, 나는 하루카를 상처 입히고 말 테니까.

 이제 9월 중순이다. 그 불꽃을 보지 못한 불꽃놀이로부터 벌써 1개월도 더 지났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간단히 그 날 유카타를 입었던 하루카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하루카와의 여름 추억. 그녀에게는 싫은 하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작은 뼈가 걸린 것처럼 따끔따끔한 아픔 없이는 떠올릴 수가 없다.

 

 그래도 그날 하루카는, 함께 보낸 시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예쁜 모습 그대로 유리 쇼 케이스에 담겨 있다. 카메라를 꺼낼 여유는 없었으니까 사진은 한 장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구나.

 이거라면, 아름다운 채로.

 그 생각도 갑작스러웠다.

 조금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을 실행한다면, 하루카나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은 완전히 죽는다.

 마지막 한 번만, 작은 충동에 몸을 맡겨 봐도 괜찮을까.

 속박과 이기심이 끈적끈적하게 휘감긴 무거운 오른손을 핸드폰을 향해 뻗었다.

 아직 여름의 등은 보인다.

 지나가는 계절에――



………

……





 "그런 연유로, 우리들은 지금 전철을 타고 있습니다~!"

 "뭐, 보면 알지.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니까 방송 같은 대사는 필요 없어."

 "하지만 여행이에요, 여행! 여행은 역시 기분부터가 중요하니까!"

 하루카가 어린이처럼 무릎을 꿇고 좌석에 반대로 앉아서, 차 창문 너머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옆얼굴에서 시선 끝으로 으로 눈을 돌려 보니, 고마운 쾌청한 날씨 아래에 그저 넓은 전원이 펼쳐져 있다.

 큰 도로나 건물이 없는 그런 시골을, 나와 하루카를 태운 전철이 하나밖에 없는 선로 위를 열심히 달려 나간다. 이 차량에는 우리들밖에 없어서 하루카의 칠칠치 못한 행동에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다.

 "그나저나 전화를 받았을 땐 깜짝 놀랐어. 설마 치하야 짱이 여행을 가자고 말할 줄이야. 그것도 1박으로."

 하루카가 창밖을 바라보면서 재밌다는 듯이 말한다.

 "가끔은 나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우리, 오늘도 내일도 일 있었잖아. 그런데 치하야 짱, 어떻게든 될 거라고."

 "어떻게든 됐잖아."

 솔직히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틀 전에 갑자기 여행을 가고 싶다고 전화했을 때, 하루카는 심하게 놀라서 꽤 망설이면서도 "일이 어떻게든 된다면."하고 말해 주었다. 이어서 프로듀서에게 연락해 보니, 그도 하루카 이상으로 놀라면서 "치하야가 부탁을 하는 건 드문 일이고, 가끔은 확실히 재충전하는 것도 괜찮겠지.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다녀와."하고 믿음직하게 웃었다. 실제로 우리 둘 다 다행히 융통성 있는 일정이었던 덕분에, 내일은 아침 일찍 전철로 돌아가야 하긴 하지만, 프로듀서는 오늘 하루 종일과 내일 반나절간의 오프를 준비해 주었다.

 하루카가 좌석에 제대로 앉으면서 즐거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있지, 슬슬 얘기해 주지 않을래? 왜 갑자기 여행 가자고 말을 꺼낸 거야?"

 "딱히 의미는 없어."

 "어?"

 "딱히 의미는 없다니까."

 다시 한 번 반복하자, 그렇구나, 의미는 없구나,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면서, 하루카는 왠지 히죽거렸다. 재밌는 말은 아무것도 안 했을 텐데.

 "굳이 말하자면 여름다운 걸 찾고 있어, 나는."

 "여름다운 것? 이제 거의 가을인데?"

 "그래서야."

 "흐응, 치하야 짱이라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구나."

 너 때문이야, 그렇게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다. 혼자서 보내는 여름은 어찌되든 상관없고, 오히려 높은 기온이 불쾌한 계절이다.

 하지만 하루카와 즐거운 추억 없이 끝나 버리는 것은 어쩐지 쓸쓸했으니까.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분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뭐, 또 하나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둘도 없는 소중한 1초를, 너와 함께. 그 1초가 조용히 나를 상처 입힌다고 해도.

 상반신을 틀어서 다시 전철 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하루카를, 찰칵.

 "아, 치하야 짱, 또 맘대로 찍었어!"

 "정말 여름다운 하루카가 찍혔어."

 "어디 좀 봐……별로 여름다운 요소는 전혀 없지 않아?"

 "이 미묘하게 반만 뜬 눈이. 이름하여 여름 햇살이 눈부신 하루카."

 "그거, 어중간하게 눈 깜빡이는 타이밍이었을 뿐이잖아. 그래서 말 한마디 정도는 하라고 하는데……."

 하루카가 일어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 여러 포즈를 시험해 보기 시작한다. 다리와 팔을 각각 크로스시켜서, 상체에 폼을 잡은 상태에서 하루카가 한껏 눈을 크게 떴다.

 "자, 찍어! 치하야 짱! "

 전철에서 보이는 풍경만을 사진에 담고, 카메라를 가방에 되돌려 놓았다.

 "너무해!"

 "여름답지 않으니까 안 돼."

 "치하야 짱의 여름다운 기준을 모르겠어."

 으음 하고 고민하면서 자리에 앉은 하루카가, 이윽고 치마에서 뻗어 나온 자기 다리를 한 손으로 찰싹 쳤다.

 "아, 가는 곳이 남쪽인 것도 여름다워서야?"

 "그런 느낌이지."

 "너무 단순한 것 같은데……. 전철로 갈 수 있는 범위론 그다지 여름다워지지 않을 거야. 그리고 하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 곳은 정했어?"

 "아니, 전혀."

 "흠. 참고로 오늘 밤 묵을 곳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점점 이번 여행의 취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즉 치하야 짱은, 정말로 갑자기 나와 여행을 가고 싶어진 거지!"

 "대단해, 하루카. 정답이야."

 "에헤헤~."

 여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애초에 나 자신이 잘 모른다. 그런 것에 하루카를 끌어들여서 면목이 없기는 하지만.

 옆에서 하루카가 웃어 준다면.

 무언가가 일어날 지도 모르는, 아무것도 안 일어날 질도 모르는 어딘가로, 나와 하루카를 태운 전철은 달려간다.



………

……





 개찰구를 지나자 군데군데 편의점이나 음식점 조금만 있는 간소한 역에 내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뒤돌아보니 선로 한 쪽은 끊겨 있다. 우리들을 여기로 실어다 준 차량도 수십분 후에 되돌아가겠지. 1개월 전보다 꽤 열량이 내려간 것 같은 햇살 밑에서 내 뒤를 따라 걷던 하루카가, 정면에서 오는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뜨고 오른손으로 챙을 만들었다.

 "종점까지 와 버렸네. 어떡할래? 버스나 다른 전철이라도 써서 더 멀리 갈까?"

 "내일 돌아갈 때 시간이 걸리면 오후 일에 늦을지도 모르니까, 이 근처로 해 두자."

 "아, 거기는 현실적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아니면 더 먼 데가 좋았어?"

 "으응. 이미 충분히 멀리 온 느낌이야. 늘 일로 돌아다니는 곳하고는 전혀 다르고. 이런 데도 마음이 안정되는구나."

 느긋이 걷는 행인들이나 가끔 차가 다니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루카가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전철로 몇 시간 온 정도로는 기후는 거의 바뀌지 않고 시차도 안 생기지만, 이번 여행으로는 이 근처가 한계일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와 봤다고는 해도, 역시 여름은 우리들이 있던 곳과 같은 속도로 죽어 간다.

 "일단 좀 걸어 볼까. 하루카, 짐 무겁진 않아?"

 "아직 따뜻하니까 옷 같은 것도 가벼운 것들이고, 크게 가져온 게 없으니까 괜찮아. 가자, 가자!"

 하루카가 작은 보스턴백을 가볍게 어깨에 걸치고 걸어가려 한다. 그런 그녀에게, 잠깐만, 그렇게 말을 건다.

 "왜 그 쪽이야?"

 "응? 아, 치하야 짱, 사실은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었어?"

 "아까 말했듯이 특별히 없는데, 어디로 갈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카가 걸어 나가서."

 "응 있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바다가 있을 테니까, 모처럼이니 보러 갈까 하고."

 "바다……. 좋아, 가자."

 폭이 넓은 보도를 나란히 걸어나간다. 평일 낮에 큰 짐을 들고 돌아다니는 학생이 드물어서 그런지, 어머니정도 나이의 여성이 이상한 듯한 시선을 보내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렇게 놀려고만 바다에 가는 거 오랜만이다~"

 느긋한 하루카의 목소리에 의지해 기억의 실을 더듬는다.

 "피서 여행 갔을 때 말이지. 그땐 다들 시간이 있었으니까……."

 "맞아 맞아. 일정 비어있는 사람만 가자~ 했는데, 결국 다들 모여서는. 그랬던 게 지금은 말야."

 "잠깐 나가는 것도 고생이지. 고마운 일이야."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더 놀아뒀어야 했다. 그러면 이번처럼 필사적으로 추억을 모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노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의 나는, 일이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을 뿐이었으니.

 난 늘 후회만 한다.

 "그땐 재밌었지~"

 하루카가 그리워하며 중얼거린 말에 '그렇지'라고 순수하게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이, 역시 조금 후회스럽다. 앞으로도 나중에 되돌아보았을 때 여러 후회가 이곳 저곳에 굴러다니는 삶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무리해서 만든 이 시간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고, 앞을 본다. 그래도, 나는.

 "――으응. '그땐'이 아니지. '그때도'지. 나, 지금도 엄청 즐거운 걸."

 매일을 전력으로 즐기면서 지내는 하루카의 미소가 눈부시다. 일종의 동경을 느끼면서, 역시 나는 하루카의 이런 부분에 끌리고 부러워한다는 걸 다시금 조용히 납득했다.

 "……그렇지."

 반만이라도 좋다. 나도 지금 즐겁다고,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제대로 전해졌을까.

 능숙한 상냥함을 가지고 싶다. 내가 만약 좀 더 여러 일에서 잘 타협하는 사람이었다면. 하루카에게 상처주지 않는 선택지를, 나도 상처입지 않는 선택지를, 이 여행을 하지 않는 선택지를, 찾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자. 모처럼 얻은 시간이다. 지금은 그저, 그것을 즐기자.

 "하루카는 역시 지금도 놀러 가고 싶어?"

 "그야 그렇지. 맛있는 케이크 집 얘길 들으면 먹으러 가고 싶고, 촬영 때문에 분위기 좋은 동네에 가면, 일 같은 건 내버려 두고 치하야 짱이랑 산책하면 재밌겠다~ 같은 생각도 해."

 "…………."

 "어라? "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하지만 아이돌 일도 비슷할 정도로 재밌지만 말야."

 "요즘엔 뭐 있었어?"

 "있지, 일 끝나고 사무소에 들렀더니 마침 몇 명이 있어서, 배고프다~ 그런 얘기가 나와서, 피자라도 먹기로 했는데 말야."

 "응."

 "코토리 상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데까진 좋았는데, S사이즈를 2개 시킨다는 게 도착해서 보니 22개였어."

 "압도적인 입력 미스네. 결국 어떻게 됐어?"

 "타카네 상이 거의 다 처리해 줬어요."

 "그럴 줄 알았어."

 "그 다음에 타카네 상하고 라멘을 먹으러 갔는데 있지."

 "또 먹었어!?"

 "아니, 나는 라멘은 안 먹었어. 타카네 상이 '실로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카, 피자 다음에 라멘을 먹으면 상승효과로 극상의 저녁밥이 되지 않겠습니까.'그런 말을 꺼내서 따라갔어."

 "극상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평범히 생각해 볼 때."

 "뭐 그렇지. 그래도 타카네 상은 맛있다는 듯이 먹었어."

 "그동안 하루카는 뭘 했어?"

 "아무것도 주문 안 하는 건 좀 그래서, 메추리알 먹고 있었어."

 우걱우걱 라멘을 위장에 집어넣는 시조 상 옆에서, 토핑용 메추리알을 깨작이고 있는 하루카 모습은 상상해보니 확실히 조금 재미있었다. 하지만,

 "하루카, 그거 아이돌 일이 재밌는 거하곤 관계없잖아."

 "……그러네. 아, 그러면 요전번에 라디오 녹음이 있었을 때 얘긴데――"

 "잠깐 기다려, 하루카. 그 전에."

 "왜 그래?"

 "바다, 꽤 멀지 않아?"

 "……그러네."

 "버스 탈까."

 "……그러자~."



………

……





 다음에 발이 땅을 밟았을 때엔, 어딘가 그리운 바다 냄새가 났다.

 버스를 타고 20분 (버스로 20분이다. 도저히 여행 가방을 들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여름엔 해수욕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볐을 해안은 시즌이 끝나자 버려진 쓰레기 몇 개가 보일 뿐, 적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주말이라면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와 노는 젊은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들 말고는 노인이 모래사장을 산책하는 정도다.

 "대단하다, 전세야."

 옆에서 하루카가 순진하게 말했다. 뭐어, 그렇게 못 볼 것도 없기는 하지만.

 "수영할래?"

 "아마 추울 테고, 수영복도 없고, 해파리에 쏘이는 건 싫어."

 "맞는 말이야."

 "옛날에 들어갔던 적이 있어. 이 무렵쯤에. 차갑다고 생각하면서도 평범히 수영했었는데, 뭔가에 부딪혀서 긁혔나 싶더니 금방 저릿저릿해져서는. 처음엔 따가운데 욱신거리면서 아파진단 말이지. 해파리는 이제 싫어."

 "이미 겪어 봤구나. 언제 이야긴데?"

 "중3 쯤."

 비교적 최근이었다. 수험 공부로 바빴을 시기에 뭘 한 건지. 뭐, 지금 제대로 상식적인 판단을 해 줬으니 됐다 치자.

 "바다는 역시 여름이란 이미지지만, 조금 시원하고 수영하는 사람도 없으면 여름이란 느낌은 없어져 버리는구나."

 하루카가 수평선 너머 먼 곳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치하야 짱, 별로 여름답지 않은데 괜찮아?"

 "왜?"

 "아니, 우리들 바빠서 여름엔 거의 놀러 못 갔고, 좀 늦었어도 그런 걸 기대하고 온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걸을까."

 바다를 향해서 계단을 내려가자 금방 부드러운 모래가 발을 붙잡았다. 하루카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해서 뒤돌아보았지만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두 사람 분의 발자국이 파도가 치는 곳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둘이서 바다로 가는 건, 아레나 라이브를 대비한 합숙을 했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치하야 짱하고 둘이서 바다라고 하니까, 작년 합숙에서 같이 러닝 했을 때 생각나네. 그땐 나 여러 가지로 복잡했었지."

 하루카도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리워하는 것처럼 먼 곳을 보는 시선을 이번엔 하늘로 향했다.

 "그래도 제대로 해냈잖아, 리더."

 "에헤헤. 앞으로도 리더라고 불러 주세요!"

 "또 금방 우쭐해한다."

 어이없이 바라보자, 하루카는 혀를 슬쩍 내밀고 장난스런 웃음을 지었다. 치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이윽고 그것이 자연스레 부드러운 미소가 되었다.

 "그 때도 치하야 짱이 도와줬으니까, 옆에 있어 줬으니까 어떻게든 된 거야. 새삼스럽지만, 고마워, 치하야 짱."

 "딱히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냐, 그렇지 않아. 얘기도 들어주고, 날 믿어주고, 덕분에 나도 이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거야."

 "그거면 돼, 하루카는."

 조금 세게 밀려온 파도가, 부드러웠던 모래를 적시고 색을 짙게 바꾼 뒤 되돌아간다.

 "이제, 괜찮겠지. 내가 없어도."

 "……어?"

 "농담이야."

 여름이 끝나도 파도는 변함없이 밀려오고 나간다. 무척 당연한 일이고 거기서 차이를 발견한다면, 전부 바라보는 사람의 심정 때문일 것이다.

 "하루카. 한 장 찍어도 돼?"

 "응? 사진? ……맡겨만 두라구~. 이 1년간 또 그라비아 촬영 같은 걸로 단련했으니까!"

 하루카가 렌즈를 향해 몸을 비스듬히 틀어서, 멋진 표정을 짓는다.

 "안 벗어?"

 "수영복 안 가져왔다고 말 했지!?"

 "농담이야."

 "치하야 짱은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하니까 말야. 가끔 불안해."

 "미안하게 됐네."

 표정이 무너졌을 때, 찰칵.

 "우와, 너무해!"

 "방심은 금물이야."

 싱긋 웃으며 하루카에게서 등을 돌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려고 했던 내 양 오금에, 가벼운 충격이.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분투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가방이 흔들리며 엉덩이가 모래밭에 박혔다.

 "…………."

 "방심은 금물이야, 치하야 짱!"

 윽.

 청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고 일어선다. 먼저 장난을 친 건 나니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내 무릎을 꺾고 앞으로 달려 나갔던 하루카는 내 보복이 두려웠는지, 어중간하게 거리를 두고 내 움직임을 주목하면서 한 걸음씩 뒷걸음쳤다.

 그 오른발이 모래사장의 패인 곳에 훌륭히 걸려서, 하루카가 머리부터 모래사장에 파묻혔다.

 "……하루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치하야 짱."

 하루카가 오늘 중 가장 높은 각도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텅 빈 눈이 슬픈 빛을 담았다.

 "방심하지 않은 결과가 이거라니, 너무해……."

 "…………."

 "대자연은 이길 수 없었어……."

 눈뜨고 봐 줄 수가 없는, 큰 대 자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하루카 옆에 앉는다.

 "하늘은 파랗구나……."

 웃음을 참으면서, 자업자득이란 코멘트도 그만두고 뭔가 커버가 될 것 같은 말을 찾는다.

 "음, 이거, 왠지 청춘의 한 페이지 같지 않아?"

 "어디가."



………

……





 나 이상으로 모래투성이가 된 하루카는 당연하게도 목욕을 하고 싶어 했기에, 아직 날이 저물기 까진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스마트폰으로 여관을 찾았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방이 비었는지도 볼 수 있구나. 물론 알고 있었어.

 금방 가깝고 괜찮을 것 같은 여관을 찾아내서, 곧장 그리로 가고 있다. 분명 이 근처일 텐데. ――아, 저건가.

 "오오, 그렇게 크진 않아도 꽤 훌륭하네."

 "그러네."

 나무로 만들어진 문으로 들어가서, 시멘트 바닥에 신발을 털고 놓여있던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접수대로 보이는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카가 비치된 초인종으로 손을 뻗었다. 기분 좋은 금속음이 울리고, 이윽고 안에서 사람 좋아 보이는 환갑을 맞았을 정도의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 여관의 여주인일까.

 "어머,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갑자기 죄송한데요, 오늘 밤 두 사람 묵을 수 있나요?"

 "물론이지요. 오늘은 손님이 적으니까 좋은 방이 비어 있답니다. 거기 종이에 이름 같은 걸 적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다시 카운터 뒤의 방으로 사라지자, 왠지 하루카가 볼펜 끝을 턱에 대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대표자 이름하고 주소 같은 거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귀찮으면 내가 쓸까?"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있지. 우리들, 일단은 아이돌이잖아?"

 "그게 왜?"

 "이럴 때 본명 같은 거 써도 괜찮은 건가 하고."

 "많은 사람들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상관없겠지. 가명이라도 쓰려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지. 치하야 짱이 날 부를 때 불편하지 않게, 하루카란 이름은 그대로 두고――"

 "괜한 거에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냐?"

 "성은 어떻게 할까."

 "아무래도 좋아."

 알 수 없는 하루카의 집요함에 한숨이 나온다.

 "응. 그럼 일단 치하야 짱 걸 빌릴게."

 앗 하는 의문도 제지도 끼워 넣을 틈도 없이, 하루카가 술술 써내려 간 이름에 말을 잃는다.

 '키사라기 하루카(如月春香)'

 "뭣――"

 "아, 미안. 역시 곤란해?"

 "그런 건, 아닌데……."

 하루카 입장에서는 딱히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이만큼이나 복잡한 성과 이름도 없다.

 하루카를 향한 연애감정을 자각하고 나서 몇 번인가 떠올리고 만, 하지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한자 네 글자.

 그것이 보란 듯이 내 눈앞에 있다. 그것도 하필이면 하루카 손으로 적힌 것이.

 이름은 달라붙어 있는데. 메꿀 수 없는 큰 의식 차이에, 뭐라 할 수 없는 쓴 맛 같은 것을 악물었다.

 하루카가 종이 맨 아래 항목에 연락처를 다 적었을 때 마침 여주인이 돌아왔다. 여관이나 식사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끝내고, '후지(藤)'라고 적힌 방 열쇠를 주었다.

 "방은 3층 맨 안쪽입니다.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세요. 마지막으로, 노천탕에 대해서――"

 "치하야 짱! 노천탕이래, 노천탕!"

 "하루카, 얘기는 끝까지 듣도록 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노천탕은 대절제이니, 이용하실 때엔 입구의 팻말을 '입욕중'으로 뒤집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방 열쇠를 받아든다. 옆에 있는 하루카는 이미 노천탕이라는 매혹스런 세 글자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그럼 편히 쉬세요."

 여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가는 계단으로 간다. 그 때, 하루카가 기념품 코너에서 발을 멈추었다. 정말 성급한 아이다.

 "봐봐, 이 지방 마스코트 캐릭터! 귀여워라!"

 "어디가?"

 주걱 같은 몸체에 의욕 없는 얼굴을 붙인 캐릭터가, 여러 가지 상품에 프린트되어 이쪽을 보고 있다. 기묘하다든지 기분 나쁘단 감상은 품을 수 있더라도, 귀엽다는 데까진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치관의 차이란 무섭구나. 키홀더에 스트랩, 과자 상자. 작은 크리스탈 속에 레이저로 조각된 것까지 있다.

 "잉, 저 어중간하게 벌어진 입 같은 게 센스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나저나 꽤 여러 종류 있다, 기념품."

 "그러게. 돌아갈 때 사무소 사람들한테 뭔가 사 갈까."

 "응, 그리고……이번에 특히 프로듀서님한테 폐 끼쳤으니까, 사과도 겸해서 뭔가 드리고 싶어."

 따끔.

 작고 가느다란 아픔은 무시한다.

 "그렇게 할까."

 "그치. 으음, 뭐가 좋을까. 치하야 짱, 뭔가 프로듀서님이 좋아할 것 같은 그런 거 알아?"

 잠깐 생각한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아, 젓가락."

 "젓가락?"

 "그래. 얼마 전에 프로듀서가, 사무소에서 밥 먹을 때마다 나무젓가락 쓰는 건 어쩐지 아깝다고 했던 게 생각났어."

 "……우리들 슬슬 팔리고 있을 텐데, 아무리 지나도 사무소에서 경기가 좋은 냄새가 안 나는 건 왜일까."

 "자잘한 걸 신경 쓰면 지는 거야, 하루카."

 "그렇지. ……의외로 종류 많네. 이런 건 어떨까."

 "괜찮네. 그리고 개인적으론, 저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가리킨 짙은 초록색 젓가락 한 쌍을 보던 하루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치하야 짱. 저걸로 하자."

 "……그래."

 "그럼 돌아갈 때 과자 같은 거랑 같이 사기로 하고. 그럼 방으로 가자! 목욕하러 가자!"

 계단을 하나 건너뛰면서 뛰어 올라가는 하루카의 뒷모습을 쫓으면서, 조금, 정말로 조금, 프로듀서가 부럽게 느껴졌다.



………

……





 그렇게나 목욕을 기대하던 하루카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우헤~"하는 칠칠치 못한 소리를 내면서 타타미에 엎어져 버렸다. 있지, 좀, 모래.

 "하루카, 온천은 어떡할 거야."

 "온천이 와 주세요."

 "바보 같은 말 하지 마."

 "그치만 대단해, 이거. 일단 치하야 짱도 누워 보라구."

 하루카가 자기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잠깐 주저했지만, 거기에 누워 보았다.

 "정말 있지. 사람을 타락시키는 공간이야, 타타미 방은. 여기에 이불이 깔려 있었으면 나 어떻게 돼 버렸을까."

 천장을 올려다보는 하루카의 눈은 완전히 풀려서 초점을 잃어버렸다. 아까도 봤지, 이런 눈을.

 "행복한가보네."

 "좋은 방. 덤으로 옆에는 치하야 짱. 이걸로 최고의 행복을 못 느낀다면, 난 감정 없는 리본이라는 말이에요."

 덤인 나는 어차피 멋대로 혼자서 이 상황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뿐이에요. 몇 시간 후엔 같이 잘 텐데, 고작 나란히 누운 것만으로. 한심하다.

 "감정 있는 리본 씨는 노천탕을 기대하고 있던 거 아녔어?"

 "그렇긴 한데, 한동안 못 일어설 것 같아. 그리고 나, 무기물의 예시로 리본을 든 것 뿐이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통째로 리본인 것 같으니까 하지 마."

 "그래, 그래. 그래서 목욕은?"

 "목욕 목욕 시끄러워, 치하야 짱은. 그렇게 온천을 좋아하면 온천하고 결혼해버려라."

 "……왜 난 혼인 신고서를 못 내는 것만 좋아하게 되는 걸까."

 "응?"

 딱히 온천을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목욕을 끝내고 느긋이 있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애초에 내가 목욕 모드가 된 건 하루카의 텐션에 끌려간 것도 있고.

 "이제 됐어. 혼자서 갔다 올게."

 "너무해!? 자, 일으켜 주세요!"

 하루카가 오른손을 공중에 내밀었다. 한숨을 쉬면서 일어서서, 그 손을 잡고 하루카를 일으킨다.

 한 번 기동하고 나니 하루카는 다시 목욕할 기분이 되었는지, 나보다 빠르게 목욕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치하야 짱, 목욕, 목욕!"

 "…………."

 방문을 확실히 잠그고, 1층으로 내려간다. 노천탕으로 가는 화살표를 쫓아서 복도를 걸어가 보니, 막다른 곳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돼 있었다.

 "아, 온천은 떨어져 있구나. 여기서 게타로 갈아 신을 수 있나봐."

 밖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자 얇은 옷에 바람이 조금 차가웠다. 바닥에 깔린 자갈을 밟으면서 조금 걸어가니 나무로 만든 오두막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문을 지나고 보인 것은, 간소한 탈의실 안쪽에 돌로 둘러싸인 넓다란 온천.

 "얏호호~이!"

 하루카는 옷을 휙 휙 벗어서 바구니에 넣고는, 타올 한 장을 들고 머리부터 탕에 뛰어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기세로 뛰어 들어갔다. 정말로 다이빙하는 게 아닌가 불안했지만, 중간에 통을 주워서 착실히 몸을 씻었다.

 풍덩.

 "물 좋다~. 치하야 짱, 얼른 와~"

 빨리도 욕탕의 증기에 감싸인 하루카가 웅얼웅얼 에코가 들어갈 것 같은 늘어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내가 그렇게 천천히 옷을 갈아입은 것도 아니고, 하루카의 일련의 흐름이 너무 빠른 거다. 타올을 가슴께에서 늘어뜨리고 나도 욕실로 들어갔다. 대야로 물을 두 번 끼얹고, 발 끝만 탕에 넣어봤다. ……아, 딱 좋다.

 타올을 옆에 두고 어깨까지 물에 담그니, 몸이 따뜻해지면서 온몸의 긴장이 풀려간다. 이 온천에 어떤 효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집에서 하는 목욕이나 공중목욕탕과는 다른 극상이라 할 수 있는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건, 노천 온천에 그런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까. 기분 좋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나. 괴물 가슴과 같이 들어온 게 아니란 것도 마음이 편안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옆이 조용해서 돌아보니, 하루카는 완전히 풀린 표정으로 아랫입술 근처까지 탕에 잠겨 있었다. 말하면 입에 물이 들어갈 것 같다.

 너무도 무방비한 하루카. 물론 욕실이라서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았다. 부드러운 곡선이 여자다운 라인을 그린다. 아무것도 덮이지 않은 팔뚝이, 허벅지가, 가슴이, 손이 닿는 거리에 있다. 있지만.

 ……뭐라고 할까, 목욕탕이란 환경에선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생각은 안 드는구나. 하루카에게 품은 연모를 깨닫고 나서, 바꾸어 말하자면 하루카의 몸에 일종의 욕망을 느끼게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같이 하는 목욕. 어쩌면 이상한 기분에 의식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전에도 둘이서 같이 목욕한 적이 있어서인지, 목욕탕에서는 나체가 당연해서인지, 그런 일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온천이 만족스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마음이 놓였다.

 격정에 떠밀리던 시기는 얼마 전에 끝났다는 사실도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마음의 정리가 되고 있는 걸까. 지금도 어쩔 줄 모를 만큼 하루카를 원하게 될 때가 있지만, 그 스위치는 아무래도 욕조 속에는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정말, 이거 굉장해."

 "하루카, 방에 있을 때랑 똑같은 말 하고 있어."

 "이렇게 된 거, 여기에 타타미를 깔자."

 "축축해지겠네. 좋은 것과 좋은 걸 더해도 플러스가 안 될 때도 있어."

 "흐음."

 "슈크림을 생크림이나 초콜릿으로 듬뿍 데코레이션한다면, 분명 너무 달아서 싫어질 거 아냐?"

 "그거 뭐야, 엄청 맛있을 것 같아. 다음에 만들어 올 테니까 같이 먹자."

 "감성의 차이는 무시무시하구나."

 "그래도 치하야 짱하고 내가 지금 생각하는 건 똑같아."

 "그렇지. 온천은 역시 좋아."

 "어, 젖지 않는 타타미 만드는 법을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몰라, 그런 거."

 온천의 열기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카는 평소부터 이상한 애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치하야 짱. 노천탕이라곤 해도 풍경은 영 아니네."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그다지 높지 않은 벽 뒤에 보이는 풍경. 무리지어 자란 나무들과, 조금 멀리에는 산이 보일 뿐이라 확실히 감상을 품기는 어렵다.

 "개방감을 맛볼 수 있는 걸로 됐다고 치자."

 "그렇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눈도 감기고, 아무렴 어때~"

 한동안 둘이서 멍하니 온천을 즐긴다. 어지러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즈음 하루카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언제 씻을래?"

 "응~? 곧~?"

 "난 일단 나갈래."

 "아~, 나도 씻을래~."

 "그래, 그래."

 "하지만 서는 거 귀찮으니까, 비누가 이리로 와~."

 "목욕 매너는 지켜."



………

……





 "그럼 슬슬 잘까."

 대화가 일단락됐을 때 하루카에게 말을 꺼냈다. 조금 전에 날짜는 바뀌었고, 앞으로 반나절만 지나면 일을 해야 하는 일상이 돌아온다. 컵을 손에 들고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남은 주스를 들이킨다. 그리고 빈 캔과 페트병을 정리해 간다.

 "벌써 이런 시간이구나~."

 하루카도 과자 봉지를 접어서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그 목소리에 아쉬운 색이 묻어나는 게, 조금 기쁘다.

 즐거울 때, 시곗바늘도 마치 뛰어오르는 것처럼.

 욕탕에서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상에 호화로운 식사가 놓였다. 산해진미가 듬뿍 담긴 요리를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려서 다 먹고 난 후, 여관의 작은 게임 코너에서 에어 하키 같은 걸 하고, 산책 삼아 편의점까지 가서 과자와 주스를 사 와선 방에 돌아와 보니. 이미 방에는 이불이 두개, 조금 사이를 두고 깔려 있었다. 과자와 주스를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밤중이 되고 말았다.

 대충 정리가 끝난 걸 확인하고 일어선다.

 "불 끌게."

 "아, 잠깐만. 스마트폰 충전기에 꽂아놓게."

 "그래, 그래."

 "이제 됐어~."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방의 조명이 4분의 3정도 사라졌다.

 "장지 너머 불은 어떻게 할래?"

 "거긴 지금은 켜 두자."

 "알았어."

 각각 이불에 들어가 마주보게 돌아 눕는다. 따뜻한 침묵이 어중간하게 어두운 공간을 채워간다. 무척 조용한 밤이었다.

 "있지, 치하야 짱."

 "왜?"

 "오늘은, 고마워."

 "무슨 말이야?"

 딱히 짐작 가는 게 없어서 물어보자, 하루카는 눈을 깜빡이고서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냐니, 오히려 그 말이 무슨 소리냐고 할 레벨이야."

 "하루카는 어려운 말을 하는구나."

 "그럼 치하야 짱도 이해할 수 있게 고맙다고 할께. 오늘은 같이 여행가자고 해 줘서 고마워."

 "갑작스럽기도 했고 폐가 됐다면 모를까, 감사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치하야 짱은 전부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알아주질 않는구나."

 "미안해. ――하루카, 화났어?"

 "화났――다니, 왜 그렇게 되는 거야. 굳이 말하자면 난 좀 어이가 없어, 지금."

 "윽."

 "거긴 치하야 짱이 화낼 부분도 아니라구. 알잖아, 보통은. 우리들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 같은 걸 보고 있었잖아?"

 "난 그 지방 마스코트를 보고 귀엽다곤 생각 안 했는걸."

 "윽."

 "역시 하루카 화났구나……."

 "아니, 농담이야. 뭐어, 그런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계속 같이 있었으니까 같은 걸 생각했던 때도 있었을 거잖아?"

 "난 젖지 않는 타타미 만드는 법 같은 건 생각하려고도 안 했는걸."

 "그것도 농담이니까 있지? 왜 치하야 짱은 그런 얘기만 자꾸 꺼낼까!?"

 "하루카 농담은 알아듣기 힘들어."

 "그건 치하야 짱도 마찬가지야. 난 치하야 짱이 오늘 재밌어했던 걸 알아. 나도 똑같이, 어쩌면 더 재밌었는데, 왜 알아주질 않을까."

 "역시 하루카는 어려운 말을 하는구나."

 "치하야 짱, 지금 내가 한숨을 쉬면 포도 주스 냄새가 직격할 텐데, 각오해 둬."

 "농담이야."

 "어디가?"

 "하루카가 오늘 재밌어했던 거. 알고 있었어. 고마워."

 "오히려 지금 걸 잘 모르겠는데. 치하야 짱 농담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어."

 "앞으론 주의할게."

 "꼭 그렇게 해 줘. 그리고 내가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걸 알았으면, 감사받게 된다는 것도 덤으로 마음속에 담아둬."

 "그런 건가?"

 "그런 거야. 애초에 말야, 오늘 재밌는 일이 잔뜩 있었던 건 물론이지만, 나 치하야 짱이 여행가자고 전화했을 때부터 기대했는걸. 기뻤어."

 "…………."

 하루카가 자세를 바꾸어서 천장을 바라본다. 그 옆얼굴을 보면서, 난 그녀의 어디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어쩌면 모르는 부분이 잔뜩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싶다고 생각한다. 느끼고 싶다고 바란다. 하지만.

 "치하야 짱이 말 꺼내 준 거라구? 내가 안 기뻐할 리가 없잖아. 폐라고 생각할 리가 없어."

 "……하루카."

 계속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하루카도 입을 다물어 버려서, 다시  침묵이 방 안을 지배했다.

 불안정하게 얘기가 끊겨서 갑자기 찾아온 정적이지만 신기하게도 싫지 않았다.

 "있지, 치하야 짱."

 적막을 갈라놓는 건 역시 하루카였다. 머리만 빼꼼히 이쪽을 보고, 입을 연다.

 "그쪽 이불로 가도 돼?"

 "뭐!?"

 상정한 것보다 큰 중화 식칼로 적막이 갈라져서, 목소리가 뒤집혔다.

 "모처럼 종업원 분이 이불을 깔아 주셨다고! 두 개나!"

 "분명 한 쪽은 깨끗하게 두는 편이 종업원도 편할 거야."

 "하루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 쪽도 마찬가지야."

 "아무튼 안 된다면 안 돼. 좁단 말야."

 ……내 마음이 말이지.

 너무 가까운 거리는, 무서워.

 괴로워.

 "쳇~."

 하루카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왜인지 일어섰다. 이불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에잇 하고 자기 이불을 내 이불 쪽으로 밀었다. 틈새가 메꿔지고 두 이불이 이어졌다.

 "이걸로 타협해 줄게."

 두 이불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부근에 누운 하루카가, 이불을 덮고 뭔가 자랑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에헤헤~. 오늘 참 재밌었다. 후나모리라니, 몇 년 만에 먹어 본 건지."

 "처음에 떠올리는 건 역시 먹을 거구나."

 "뭣, 사람을 먹는 것밖에 모르는 여자처럼……. 역시 여관의 묘미는 식사잖아."

 "그래, 그래."

 "아래에서 했던 태고의 초인 말야, 우리들 노래도 들어 있었지."

 "처음 알았어. 그거 의외로 어렵더라."

 "치하야 짱, 리듬감은 대단한데 그런 건 전혀 못하지."

 "시끄러."

 "후후. 목욕하고 먹고 마시고, 놀고, 산책하고. 평범한 여행이었네. 큰 사건도 없었고."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명탐정 같은 상황을 기대했어?"

 "설마. 이런 평범한 시간도 좋다는 말이야. 아무것도 없지만, 이것 저것 있어서."

 "모순되는데."

 "하지만 알겠지?"

 "……뭐어."

 "눈 깜짝할 새에 잘 시간인 걸. 그러고 보면, 이렇게 같이 타타미 깔린 방에서 자는 건, 합숙 이후로 처음이네."

 "그러게."

 "그 땐 바빠서 이렇게 얘기할 시간도 없었는데……역시 합숙날 밤에는 걸즈 토크를 꽃피워야 하지 않아?"

 "어!?"

 하루카는 파고드는 게 예리하다. 싱글 싱글 웃으면서 흉기를 꺼내드는 그녀가 두렵다. 사건이에요, 사건. 엽기적 살인이 일어나려고 해요!?

 "별로 이런 얘기 한 적 없었잖아! 있지 있지, 치하야 짱은 어떤 사람을 좋아해!?"

 "…………."

 사람 마음도, 모르면, 서.

 "타입은?"

 "……묵비권을 행사하겠어."

 "그건 범죄자의 변명이야."

 "그럼 네가 입을 다물어야겠구나."

 "그런 말 하지 말고, 실토하고 편해지라구!"

 웃으면서 식칼을 휘두르는 범죄자에게 자백을 강요받는다는 여지껏 없었던 상황과, 다른 이유로 인한 당황으로,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다.

 "응, 응?"

 "우, 웃음이……."

 푹.

 "웃음이?"

 "귀여운 사람."

 내장이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흘리고 말았지만 한 번 뱉은 말을 없앨 수는 없다.

 "헤에~, 혹시 연하의 귀여운 계열? 다른 건, 다른 건?"

 하루카는 용서 없이 장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 힘껏 끄집어내려고 한다. ……뭐, 괜찮을까. 어차피 모를 테고. 장을 묶는다. 장으로 몸통을 세게 죈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덜렁대고, 불안불안하고."

 "치, 치하야 짱은 돌봐 주고 싶은 사람이 좋구나."

 "다른 사람한테 괜한 참견이나 하고, 착각할만한 행동도 많이 하고."

 "싫은 소리 안 할 테니까, 사람을 휘두르는 그런 남자는 그만두는 편이 좋아."

 "하지만 그런 사람이니까――

 사람의 눈을 끌고, 눈을 뗄 수가 없어서, 바라지도 않았는데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서. 많이 도움을 받고, 나도 그걸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런 나답지도 않은 생각을 하게 되고. 정신을 차리니 점점 끌려서, 조금이라도 오래, 같이――"

 "……치하야 짱?"

 하루카의 눈이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것 같은데. 뭐어 난 치하야 짱이 행복해진다면야 그걸로 좋으니까, 아무 말도 못 하지만 말야.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니까."

 "하지만 치하야 짱한텐 분명 좋은 사람이지?"

 "그래. 아마, 누구한테라도. 모두를 활기차게 해 주는 사람이니까, 분명 그 웃음은 내 게 아닐 거야. 나만의 것이 아니야."

 "……역시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은 아닐 걸. 뭔가 많이 말해 버렸지만, 분명 어디에라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야. 하지만 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됐다는 얘기."

 "어쩐지, 어떤 사람인지 들었을 뿐인데 누군가 특정한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인걸. ……솔직히 말해서 누구야? 나도 아는 사람?"

 "다음에 얘기할 때 가르쳐 줄게. 그럼 그러는 하루카는 어떤데?"

 "나, 나!? 없어, 좋아하는 사람!"

 이불 속에서 명백하게 당황하는 하루카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나 정성껏 사람을 해체해 놓고 반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하루카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시체인 걸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좀비가 된 기분을 즐기기로 한다.

 "자, 자, 빨리 말 안하면 목덜미를 물어뜯을 거야."

 "안 돼, 피가 묻으면 종업원이 곤란해 할 거야!"

 "정말 하루카는 신경 쓰는 곳이 어긋나 있다니까."

 "없다니까, 정말로……."

 하루카가 한없이 약해진 눈을 보인다. 역시 치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나는 감정이 없는 좀비다. 가여움 따위 모른다.

 "그래서?"

 "으으, 치하야 짱이 귀신 같아……."

 "사람이 아니면서 사람 같은 것이란 점은 맞네."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없지만――"

 하루카가 도망치듯이 뒤척이면서 내게 등을 돌렸다.

 "분명 어딘가 나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막연하구나."

 "그리고,"

 "응?"

 "계속,"

 "…………."

 "같ㅇ――"

 "…………."

 "――――"

 "……하루카?"

 "――――쿨~"

 "잠깐만."

 자는 척으로 도망치나 싶어서 하루카 위에 올라탄 자세로 확인해 보았더니, 무섭게도 정말로 정말로 꿈속으로 도망쳐버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렇게 텐션이 높았는데, 이런 짧은 시간에 잘도 잠이 드는구나.

 "――――쿨~"

 이미 편안하게 잠든 하루카를 깨울 수도 없으니,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변함없이 행복하게 자는구나 생각한다.

 두근.

 심장이 큰 소리를 냈다.

 심장 따위,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가슴 깊은 곳에 억누르고 있었던 애정이, 슬픔이, 욕망이, 점점 커져 간다.

 감정 따위,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숨을 느끼고 싶다. 가능한 한 상냥함과 소중한 마음을 담아서, 베개까지 부드럽게 펼쳐진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 더 강하게, 물어뜯듯이, 탐하듯이, 입을 맞추고 싶다――

 내가 내가 아니라 생명이 없는, 감정이 없는, 그래, 좀비 비슷한 것이었다면 이런 괴로움을 맛볼 필요는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나다.

 더 이상 이대로는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자세로 양 팔을 굽히면 나와 하루카의 거리는 제로가 된다.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했던 일이다.

 힘없이 열쇠를 쥐고 일어섰다. 하루카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가, 방문을 잠근다.

 목적지는 없지만 여기에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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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서 분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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