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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6

댓글: 6 / 조회: 1469 / 추천: 5



본문 - 09-10, 2015 09:08에 작성됨.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6. lonely dreamers

 

forbidden dream

 "치하야 짱! 불꽃놀이 보러 가고 싶어!"

 하루카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어떤 여름날 밤이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일단 사무소에 들렀더니, 에어컨을 보면서 "아~~~~"하고 소리치고 있는 마미와 하루카를 만났다. 너희들, 일 없으면 빨리 돌아가. 그보다도, 그거 선풍기 앞에서 하는 거잖아.

 8월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무소 에어컨도 우리들과 비슷할 정도로 바빠서, 또 고장나거나 하지 않는 이상에야 선풍기가 나올 자리는 없을 것이다. 밖을 걷는 것만으로 땀에 젖은 셔츠가 불쾌해서 오늘은 바로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컵에 따르고 소파에 앉았다.

 둘을 만난 것도 오랜만이니 조금 더 있어도 좋을지도 모른다. 특히 하루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

 "마미도, 마미도!! 불꽃놀이~!"

 소파를 삐걱거리면서 반대편에 앉은 마미가, 축제 등롱처럼 눈을 반짝였다. 내 옆에 살며시 앉은 하루카도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문답무용으로 "그럴 시간 없어."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유혹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은 둘을 앞에 놓고, 통째로 빼앗겨버릴 것 같은 내 이성이 다행히도 머뭇거려 주었다.

 "둘 다 내일 스케줄을 좀 봐."

 마미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케줄을 확인한다. 금방 눈에 그림자가 지고 입술이 불만스럽게 튀어나왔다.

 "우아우아~, 새까매~"

 "……그러게, 이번 여름은 다른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

 전원의 일정이 적힌 화이트 보드를 보던 하루카도 어깨를 떨구었다.

 "좋잖아, 바쁜 건. 좋은 일이야."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 학생 생활의 중요한 여름이라구!? 청춘의 한 페이지, 하룻밤의 아방주르라구!"

 "좀 더 건전한 학생 생활을 하자. 그리고 프랑스어인 건 분명하지만 아방튀르야."

 봉주르! 그렇게 시간대도 의미도 이상한 인사말을 연발하는 마미에게, 하루카가 친절히 지적했다.

 "아~ 아~. 가고 싶었는데. 불꽃놀이. 폭죽, 포장마차, 빙수, 수영복……."

 재미없다는 듯이, 외국인 같은 인토네이션으로 중얼거리는 마미. 하루카도 하루카대로 눈썹 끝을 내리고, 마미 말에 딴죽을 걸 기력도 없는 듯 축 쳐져 있다.

 오봉은 아직 멀었는데도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할까.

 "저기, 마미, 수영복은 불꽃놀이랑은 관계없다고 생각해. 보통은 유카타잖아?"

 "늦어! 너무 늦어, 치하야 언니! 개그는 신선도가 생명이라구! 이 더운 때에 그렇게 방치해 두면 금방 썩어버려!"

 "……그만큼 팔팔한 걸 보니 문제없을 것 같은데."

 수면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갑자기 일어선 마미를 보면서 한숨을 쉰다.

 실제로 불꽃놀이가 개최되는 주말에 두 명 이상 예정을 맞춰서 참가하는 건, 지금 이 사무소 멤버로는 무리일 것이다. 심한 말이란 건 알고 있지만, 나도 사실은――

 "역시 어렵겠지. ……그래도 치하야 짱이 유카타 입은 거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갔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옆에 앉은 하루카의 한숨 섞인 중얼거림이었고, 그렇지만 완전히 같은 건 아니고, 내가 보고 싶은 건 내 유카타가 아니라 하루카인데, 그것도 이상한 의미가 아니고 분명 하루카는 잘 어울리겠구나 생각했을 뿐이고,

 "그러게, 치하야 언니는 특히 유카타가 어울릴 것 같아."

 "응. 머리도 길고 예쁘고, 몸매도 날씬하고, 얍! 야마토 미인! 그런 느낌으로――"

 그런 하루카를 마음속 필름에 새겨 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맞아 맞아, 유카타는 가슴 작은 편이 어울리니까 말야!"

 "잠깐! 마미! 말투란 게 있잖아!!"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

 "어, 진짜니까 괜찮아. 실제로 엄청 어울릴 거 아냐. 아즈사 언니나 오히메찡도 물론 잘 어울리겠지만, 유카타면 역시――"

 "아앗, 스톱, 스톱! 그 이상은 안 돼, 적어도 감싸서 말해! 부드럽게!"

 "으음, 나이치치?"

 "아웃~~~~!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오블라토로……."

 "주문이 너무 많아, 하루룽. 그럼 예를 들면?"

 "어어!? ……으음, 슬렌더, 라든지?"

 "너희들."

 히익 하는 짧은 비명이 두 명 분, 우리들뿐인 사무소에 울려 퍼졌다.

 "내가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말해 주는구나."

 으름장을 놓으면서 입술 양 끝을 올린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지금 두 마리의 강아지는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떨고 있다.

 "치, 치하야 언니, 오늘은 딴죽이 늦네. 무슨 일이야? 이미 시효 지나지 않았을까……?"

 "아니, 현행범이었어. 한두 마디로 끝났으면 봐줬을지도 모르는데, 유감이야."

 "어, 저기 있지, 나쁜 건 마미고, 나는, 그……."

 "아앗! 하루룽이 배신했어!!"

 "그래. 하루카는 일부러 변명까지 생각해줬구나."

 "그래! 그렇다구, 치하야 짱! 그러니까 나는――"

 "그러니까 나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어? 완곡하게 말하지 않아도 돼,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해 보도록 해."

 "아, 으아, 아,"

 둘에게서 반론의 의사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입가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한다.

 "……그렇지. 먼저 마미, 오른손을 내 봐. 마사지를 해 줄게."

 의표를 찔린 것처럼 반항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마미. 양 손으로 붙잡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여기를 누르면 폐에 좋대."

 "그, 그러면 치하야 언니, 직접 누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폐가 커지면 어쩌면 가슴도,"

 "엉!!??"

 "아야야야 아파 아파!!"

 10초정도 세게 누르고 손을 놓았다.  ‘푸슉~’하고 조용해진 마미에게서 눈을 돌려서, 옆에 앉은 하루카를 본다.

 "그럼, 하루카."

 "무슨 일이십니까, 치하야 누님."

 "손 줘. 얌전히 있으면 그 이상은 안 할 테니까."

 "네……."

 머뭇거리면서 내민 하루카의 오른손을 살짝 잡는다. 살결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하루카의 손.

 이 손을 꼭 쥐고, 일 같은 건 전부 잊고, 불꽃놀이든 뭐든 가고 싶어진다. 어딘가 멀리, 우리들을 전혀 모르는 곳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 손이 내 몸 온 곳을 어루만지는 감촉을 몽상한다. 손을 잡는 것 다음, 그 이상. 분명 주어질 리 없는 상상의 쾌감에 몸이 근질거렸다.

 "치하야 짱?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하루카도 내 손을 꼭 쥔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새인가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쥐는 힘이 조금 강했고, 담긴 마음도 분명 전혀 다를 테고.

 아직 하루카가 알아서는 안 된다. 평생 들키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런 동작으로 슬쩍 눈을 피한다.

 그래.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건 다른 얘기니까. 아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스럽기 때문에 더욱, 가끔은 상처 입히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일까.

 누를 자리 위에 올린 엄지 손가락에 꾹 힘을 주었다.

 하루카의 비참한 절규가 에어컨에 빨려들어갔다.



………

……





 그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조용히 떠올리면서 일에서 돌아오는 길.

 일요일인 오늘 밤도 어딘가에서 불꽃놀이가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약간의 쓸쓸함과 함께 같이 볼 수 없을 불꽃놀이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하루카가 유카타를 입은 모습.

 나는 생각지 않게 일찍 끝났지만 지금도 하루카는 촬영 중일 것이다. 그 날 확인했던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적힌 일정에 역시 불만을 품고 만다.

 사치스럽구나, 나도. 모두 함께 바다에 갔던 아직 한가했던 시절의 여름. 난 그저 일이 없는 것이 불만이었다. 노래할 기회가 없는 것에 초조함 밖에 느끼지 않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또 바쁜 지금 상황도, 나 자신의 노력은 물론 많은 사람의 협력이나 몇 개의 우연 끝에 성립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파도 앞의 모래성 같은 영광이란 것도 물론 알고 있다.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노력을 그만두는 순간 아이돌인 나는 없어져 버리겠지.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닿는 한, 계속 노래하고 싶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페달을 계속 밟으면 나의 하루카를 향한 마음은 너무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그날 밤 하루카의 손을 잡았을 때,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하루카에게 품고 있다고 완전히 자각하고 말았다.

 지금 혼자 있을 때도 이렇게 하루카 생각만 하고 있다.

 이루어질 리 없는 나의 사랑. 마음을 전하면 틀림없이 지금 우리들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만에 하나 하루카가 받아들여준다고 해도, 그것은 여자로서의, 어쩌면 아이돌로서의 하루카마저 파멸시키고 말 것이다.

 이대로 마음을 전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커져만 가는 하루카를 향한 마음은 머지않아 나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그것을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당연히 이런 마음은 버려 버리는 것이 좋다. 적어도 되도록 빨리, 하루카를 친구로서 사랑할 수 있도록 이 마음을 변질시켜야만 한다.

 노래도, 하루카도, 둘 다 소중하지만. 소중한 것을 두 개나 안고 달릴 정도로 나는 강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핸드폰에 전화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혼자 걷는 밤길에 울려 퍼진다.

 있지, 왜 하필이면 네 생각을 할 때, 전화를 거는 거야.

 진동하는 핸드폰을 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가 잘못한 거다. 내가 늘 하루카 생각만 하니까, 언제 하루카가 전화를 걸든 이렇게 된다.

 멀어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핸드폰보다도 가슴이 뛰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여보세요."

『아, 치하야 짱? 오늘도 수고했어.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 지금 시간 괜찮아?』

 "그래. 문제없어."

 문제 많아.

『다행이다. 그리고 있지, 하나 더 먼저 사과할 게 있는데, 지금부터 시간 괜찮아? 』

 "오늘 밤은 이제 예정은 없어."

 너와 거리를 두고 싶은데.

『있잖아, 잠깐 와 줬으면 하는 곳이 있어서――』

 왜 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들고,

 "그 공원이면 지금 가도 그렇게 안 걸리겠다. 기다려, 금방 갈게."

『고마워, 치하야 짱. 이따 보자.』

 그래도 채워지지 못한 채,

 "――갑자기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택시를 부르고 싶은데요……."

 어디까지고 너를 바라고 마는 것일까.



………

……





 하루카가 말한 공원은 수영장이 있고 이벤트가 열리는 넓은 국영 시설이었다. 아직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 전까지 큰 불꽃이 하늘에 피어 있었던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오늘 여기서 불꽃놀이가 열렸다. 수만 발을 쏘아 올렸을 것이다. 내가 도착하기 10분쯤 전까지.

 너무 늦게 왔다는 유감스러움은 들지 않았다. 제 시간에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루카도 그걸 알고 있었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날 여기로 불렀는지.

 인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공원에 도착한 것과 지금 있는 장소를 메일로 하루카에게 보낸다. 후우, 한숨을 쉰다. 나도 뭘 하고 싶은 걸까.

 과연 불꽃놀이, 커플이 많구나. 행복하단 듯이 팔짱을 끼고 어깨를 맞대는 커플들은 내게는 불꽃보다 눈부셔서 눈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눈을 돌려도, 시야에 비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운 듯한 두 사람.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런 걸 보여주지 말아줘. 얼굴을 덮고 웅크리고 싶어진다. 이토록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혼자였다.

 "치하야 짱!"

 그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바닥을 보던 시선을 올려서 뒤를 돌아본다.

 시선을 빼앗긴다는 건 이런 거겠지.

 화려한 붉은 색을 베이스로 한 유카타를 차려입은 하루카가 게타를 신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뛰어서 왔는지 뺨을 엷게 물들이고, 목덜미에는 조금 땀이 맺혀 있고, 그런 모습이 유카타와 어울려서 정말 아름답고 요염해서. 폭력적일 정도의 힘으로 내 시선을 붙잡아 놓아 주질 않는다. 눈을 깜빡일 수조차 없다.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보고 화가 났다고 착각했는지, 하루카가 당황하면서 변명을 시작했다.

 "미, 미안해, 치하야 짱. 진짜로 미안해, 일부러 불러내서. 내 멋대로 굴어서. 불꽃놀이는 시간이 안 맞을 거란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다.

 "이, 이거 있지, 오늘 촬영에서 입었던 의상인데, 그러니까, 그게……."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치하야 짱 일 끝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하지만 모르겠다. 너는 왜.

 "……어때, 치하야 짱?"

 정말로?

 단지 그런 말을 하려고, 단지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네가, 나를, 여기로 부른 거야?

 "――나 말고 보여줄 상대가 없었어?"

 뜨거워지는 가슴 속과는 정반대로, 내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나와서, 스스로도 놀란다.

 "어!? ……그러고 보면 나, 왜 치하야 짱한테 전화했을까."

 "웃기지 마. 나도 한가하지 않다고."

 아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 한 번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다.

 "미안……. 진짜 미안해. 나, 그냥…… 치하야 짱한테……."

 그만둬. 그만해.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모습 보이지 마.

 그래선 난 착각하고 말아. 꿔선 안 되는 꿈을 꾸게 돼.

 "이미 불꽃놀이는 끝났잖아. ……돌아가자."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은 기쁘다. 하지만 연모가 아닌 하루카의 천진난만한 호의는, 지금 내게는 괴롭다.

 역시 내 쪽에서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못쓰게 되기 전에. 착각해서 우쭐해하기 전에.

 자신의 심정을 감추기 위해 나도 모르게 뱉은 칼날 같은 말을 후회하면서도, 이렇게 된 거 그것을 이용하기로 한다.

 오늘은 하루카에게 있는 대로 차갑게 대해 보는 것이다. 이제 이런 사사로운 일로 나를 부를 생각을 못 하도록. 그리고 하루카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기 위해서.

 하루카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이기심일 뿐이란 것에 심한 자기혐오를 느낀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하루카의 표정에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다.

 전부, 전부 내 탓이다. 하루카를 상처 입히는 만큼, 나도 상처 입는다.

 이미 오늘은 더이상 하루카와 같이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발을 돌린다.

 "저기, 치하야 짱."

 그런 내 등에 말을 걸어 주는 네가.

 "부, 불꽃놀이는 끝났어도, 노점은 아직 하는 것 같으니까――"

 상처 입을 걸 알고 있어도, 그래도 다가와 주려 하는 네가.

 "혹시 괜찮으면, 같이 가게를 돌아 주지 않을래?"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계속 웃으려고 하는 네가――어쩔 도리가 없이, 사랑스럽다.

 그러니 나는 이토록 일그러진 감정을 품고 만 것이다. 이루어져도 이루어지지 못해도 괴로운 사랑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감정을.

 "……그래, 모처럼 왔으니까, 잠깐만이라면."

 이토록 일그러진 관계가 되는 것이다. 오늘 나는 너를 상처 입힐 뿐인데, 1초라도 길게 네 유카타 모습을 보고 싶다.

 "고마워, 치하야 짱."

 이 상황에서 하루카에게 감사를 말하게 한 죄책감에 짓눌려버릴 것만 같다.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면서 웃으려고 하는 하루카의 표정 또한,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하루카의 웃음.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멋대로고 차가움을 두르려고 필사적인 오늘 나는, 그저 묵묵히 걸어갔다. 조금 늦게 하루카가 따라온다. 가깝지 않게, 멀지 않게. 친구의 거리로, 떠들썩한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

 "치하야 짱, 이 사과 사탕 엄청 맛있어 보여. 먹을래?"

 "필요 없어."

 하루카가, 쓸쓸한 듯이 웃는다.

 "치하야 짱, 사격 안 해볼래? 저 인형 햄조랑 닮았는데, 히비키 짱한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난 그런 거 잘 못해. 하루카가 해 보는 게 어때."

 하루카는, 웃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치하야 짱, 배 안 고파? 야키소바 안 먹을래?"

 "먹을 것뿐이구나. 이 시간에 먹는 건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해."

 그래도 하루카는, 내게 말을 거는 것을, 웃음 짓는 것을, 그만둬 주지 않았다.

 "치하야 짱, 사람 참 많다. 떨어질 것 같으니까, 손, 잡아도 될까……?"

 놀라서 옆을 본다. 분명 하루카도, 당장이라도 나와 떨어지고 싶다고 생각할 텐데. 왜 옆에 있으려고 하는 걸까. 왜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손을 내미는 걸까.

 역시 나는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욕구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하루카의 왼손을 살짝 잡는다. 그녀가 어깨를 조금 움찔거리면서 나를 머뭇 머뭇 올려다보았을 때, 나는 이미 도로 앞을 보고 있었다. 멀리 있는 등롱을 본다.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잡은 손이 따뜻하다. 겹쳐진 손바닥 안에서, 서로의 땀이 섞였다. 그것을 불쾌하다고는 느끼지 않았다. 그 뿐인가,

 나는 지금 유카타 옷깃 사이로 살짝 보이는, 땀이 반짝이는 네 목덜미를 핥아 보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어.

 한 쪽이 그런 욕망을 가슴에 숨기고 있어도. 많은 커플 사이에 섞인 우리는, 손을 잡아도 더욱이 그들과 똑같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치하야 짱, 우리들……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하루카가 노점 끝에서 마지막에 하려다 그만둔 말을, 나는 알 수 없다. 왜 하루카가 유카타 차림으로 내 앞에 나타났는지도, 알 수 없다.

 오늘 일은 사과할 수 없다. 지금은,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선 하루카와의 거리를 줄이는 것도 벌리는 것도, 정도를 지나치게 될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 이상 하루카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하루카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리였다. 서툴고 극단적인 내 말과 태도는 그저 멋대로 하루카를 상처 입히기만 했다. 단지 하루카가 너무 가깝지 않게, 너무 멀지 않게, 진심으로 웃어 준다면 그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루카가 옆에 있으면, 손을 내밀어 주면, 닿고 싶다는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다. 그냥 둘이서 나란히 축제를 즐기며 돌아다닌다는 그뿐인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무리해서 웃음을 짓고 있는 하루카를 보는 것이 괴롭지만, 그렇게 만든 건 자신이고. 나 자신은 아직 이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힌 채 하루카 옆에서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해서.

 이렇게나 하루카 친구에 어울리지 않는 내가 그녀와 만난 건 잘못이었을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하루카조차 그렇게 말한다 해도.

 그래도 나는 하루카와 친구가 되길 잘 됐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더 이상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너에게 품은 이 소중한 마음이 태어난 걸, 후회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어떤 형태로 매듭을 짓자. 올해가 끝나기 전에. 설령 다시 친구로 되돌아가지 못하더라도, 혹시 진짜로 거리라 멀어져 버리더라도, 오늘 일은 그 때 제대로 사과하자.

 그러니 오늘 밤은. 헤어지기 전에.

 지금은 사과할 수 없는, 앞으로 거짓말은 하지 않을 이 순간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유카타, 정말 잘 어울려."

 진짜 나를, 너에게.

 몇 억 발을 합쳐도 대적할 수 없는. 내 앞에서만 오늘 밤 최고의 꽃이 피었다.

 어쩌면 지금 하루카와 보내는 행복한 시간은 불꽃처럼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을 내릴 때는 내 손으로. 다른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는, 이건 나만의 행복이고 나만의 아픔이니까.

 지금은 그저,

 부디 네가 1초라도 오래 웃어 주기를.



fruity dream

 "치하야 짱! 불꽃놀이 보러 가고 싶어!"

 일을 끝내고 사무소로 돌아온 치하야 짱에게 말을 꺼내 봤다. 마미와 함께 에어컨에 대고 "아~~~~"하고 소리치면서 놀던 때의 일이었다. 참고로 에어컨에 대고 말을 해도 목소리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무리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치하야 짱과 얘기가 하고 싶어서, 갑자기 떠오른 말이었다. 바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치하야 짱이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컵에 따르고 소파에 앉아 주었다. 해냈다!

 "마미도, 마미도!! 불꽃놀이~!"

 마미가 소파가 들썩이게 치하야 짱 맞은편에 앉았다. 한 순간 망설였지만 난 치하야 짱 옆에 앉았다. 치하야 짱과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고동이 조금 빨라진다. 기대를 담아서 올려다보니 치하야 짱이 잠깐 입을 벌렸다가, 금방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둘 다 내일 스케줄을 좀 봐."

 마미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크롤한다. 금방 슬픈 듯이 바닥을 보았다.

 "우아우아~, 새까매~"

 "……그러게, 이번 여름은 다른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

 전원의 일정이 적힌 화이트보드를 보던 나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라?  하지만 이거――

 "저기, 치하야 짱. 우리들, 이번 주 일요일 오후부터는 오프 아냐?"

 "어, 그럴 리가……."

 치하야 짱이 내 시선 끝을 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다. 이번 주말에 어디 불꽃놀이 하는 데 있나?"

 "봐봐, 여기! 회장은 그 큰 공원에서 별로 안 멀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미가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으으, 하지만.

 "마미는 일요일에 일  꽉 차있지 않아?"

 가능한 한 부드럽게 지적하자 마미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금방 일어섰다.

 "지금 여기엔 오빠도 릿짱도 없어……! 31개 있는 마미의 필살오의 70번째로 흔적도 없이 지워 주지……!!"

 "잠깐 잠깐, 스톱!"

 화이트보드 앞에서 클리너를 휘두르는 마미를 당황하면서 말린다.

 "이거 놔, 놓으라고, 하루룽……남자에겐 해야만 하는 때가 있어……!"

 "안 돼! 그런 짓을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설령 지금 자신의 죽음이 의미 없게 느껴지더라도, 분명 이 삶이 뒤를 잇는 자들의 길이 된다……!"

 "자 자, 끝이야."

 "아야!"

 "아윽!"

 치하야 짱이 이상한 설정극을 계속하는 마미와 내 머리에 순서대로 촙을 먹였다. 솔직히 나도 딴죽을 걸고 싶어서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이 수도……뇌까지 울리는군. 더 이상 일어설 수조차 없구나. 그럼 마미는 슬슬 돌아갈게~!"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온 마미가 잽싸게 짐을 챙겨서 사무소 입구로 달려나갔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들을 돌아보고, 마미가 오른손으로 V사인을 만들었다.

 "자유를 가진 자들이여, 마미의 씨체를 넘어서 가라~!"

 문이 쿵하고 닫히고 마미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지막에, 혀 꼬였네."

 "응, 혀 꼬였었어."

 둘이서 마주보고,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웃음을 띄운다.

 치하야 짱이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들도 슬슬 돌아갈까?"

 "으음, 조금만 더 있으면 프로듀서님이 돌아오실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래. 그럼 나도 좀 더 있을까."

 듣기 좋은 말을 하는구나. 조금 더 치하야 짱과 같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치하야 짱하고 불꽃놀이 보러 갈 수 있다.

 다시 한 번 화이트보드를 슬쩍 보고 확인한다. 아직 불꽃을 본 것도 아닌데, 그것만으로 가슴속에 기쁨이 넘쳐난다.

 "저기, 치하야 짱, 약속하자."

 "뭐? "

 내가 새끼손가락을 세운 손을 내밀자, 치하야 짱은 망설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내 손을 따라했다.

 하얗고 가느다란 치하야 짱의 새끼손가락. 거기에 내 손가락을 살짝 건다.

 "손가락 걸었다, 거짓말 하면――"

 난 있지, 치하야 짱이 거짓말을 하더라도, 바늘 천 개를 먹이거나 하지 않아. 분명 그건 날 위해 한 거짓말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으니까.

 주문을 외우면서 새끼손가락에 힘을 준다. 치하야 짱의 손가락도, 조금 세게 걸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준 힘이 더 셀 지도 모르지만.

 제발 너도,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주기를.



………

……





 시선을 올려서 오른쪽을 본다. 떠드는 여자 아이를 쫓아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장년 남자. 내 손목을 본다. 조금 움직인 것도 같은 손목시계의 짧은 바늘.

 시선을 올려서 왼쪽을 본다. 손바닥에 공기가 닿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이 꼭 손을 잡은 유카타 차림의 커플. 내 손목을 본다. 조금 움직인 것도 같은 손목시계의 짧은 바늘.

 정말로 정말로 느릿한 고문이었다. 이래저래 30분 이상 이렇게, 여름 축제로 들뜬 공간에서 나 혼자 가만히 서 있다.

 너무 느리다고 왼손에 감겨 있는 시계를 질책한다. 뭘 밍기적거리고 있어, 좀 빨리 빨리 움직이라고, 바늘 세 개.

 물론 이들은 나쁘지 않다. 단지 충실하게 지금의 정확한 시각을 알려줄 뿐이다. 만약 반칙을 해서, 문자판 옆의 나사를 돌려서 바늘을 옮겨도 치하야 짱이 빨리 와 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딱히 치하야 짱이 지각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치하야 짱에게 "늦었어."라고 하는 것도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찾은 거다. 결국, 너 너무 빨리 왔어! 하고 자신에게 딴죽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약속한 불꽃놀이 당일. 약속장소인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 한 자판기 옆에서 나는 치하야 짱을 기다리고 있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건 밤 8시부터였다. 만날 시간을 정했을 때, "그러면 15분쯤 전에 도착하면 문제없겠지."하고 말했던 치하야 짱에게 아무런 반론을 하지 않았던 내가 잘못한 거다.  "좀 더 빨리 가서 같이 가게도 돌아다니자."면 오케이. 나만 들떠 있다고 생각하면 싫으니까, "좀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나 그런 이유라도 상관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조금 고집을 부렸다. 치하야 짱의 '기대'와 내'기대'미터가 비슷해지도록, 조금 몸을 굽혀서. 어른이 아이에게 말을 걸 때 눈높이를 맞추려고 쪼그리고 앉는 것처럼. 아, 하지만 치하야 짱이 키가 더 크니까, 내가 까치발을 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어른으로 보이도록. 이래저래 해서 나는 "응, 그렇게 하자."하고 흔쾌히 승낙하고 말았다.

 하지만 뭔가 싫잖아. 나만 잔뜩 들떠서 정신없고 그런 건. 여름이라고 머리에 나사가 빠졌다, 그런 건.

 치하야 짱이 오늘 불꽃놀이를 기대해 주고 있는 건 안다. 나만 들떠서 팔을 잡아 끌어도, 아까 가족을 데리고 왔던 어머니처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날 따라와 주겠지. 하지만 그런 어린이 같은 난 치하야 짱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부끄럽지 않을까, 그런 여러 가지를 요즘 생각한다.

 치하야 짱과 나는 키도 생각도 다르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런 치하야 짱을 좋아하지만. 옆에 있을 때는 그에 어울리는 내가 되고 싶어. 내가 같이 있어서 치하야 짱이 지치거나 하는 건 싫고, 주변 사람들이 치하야 짱과 같이 있는 나를 보고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

 ――특히, 나만 치하야 짱을 좋아하는 건 뭔가 분하다.

 애초에 말야, 내가 오늘! 유카타 짱의 치하야 차림! 아, 실수, 치하야 짱의 유카타 차림! 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다고!!!

 분명 엄청 어울리겠지. 가슴이 어떻다느니 하는 건 둘째 치고. 아니, 그것도 포함해서 엄청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어제 전화로 몇 번이나, 내일은 유카타로 와,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제대로 입고 와 줄 거라고는 생각해도. "우리 집에 유카타 같은 거 없으니까, 대여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했던 게 걱정이다. 분명 치하야 짱은 내가 얼마만큼의 정열을 그녀의 유카타 차림에 쏟고 있는지를 눈곱만큼도 이해 못했을 테니, 역시 귀찮으니까 관두겠다고 할 게 분명해!

 난 미인도 아니고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치하야 짱은 내 유카타 차림을 봐도 아무런 생각도 안 할 테지만.

 그래도 오전 중에 마침 유카타를 입는 촬영이 있었으니까, 의상 담당자에게 부탁해서 오늘 하루 종일 빌리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스타일리스트에게 "아까보다도 더 귀엽게 부탁드려요!"같은 무리한 말을 해서 어이없게 만들고.

 빨간색이 너무 선명해서 어린애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어린애인 걸까. 역시 나만 잔뜩 들떴구나. 그런 것들을, 빙글 빙글 빙글 빙글, 생각하고. 정말, 바보 같다.

 1초라도 빨리 유카타를 입은 치하야 짱을 보고 싶어서.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역시 나도 봐 줬으면 해서. 조금이라도 오래, 치하야 짱과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그러니 나는,

 "하루카."

 불꽃을 쏘기 1시간 전부터,

 "저기, 하루카도 참."

 너를,

 "잠깐만, 듣고 있어?"

 "기다렸어 치하야 짱――으햐악!!

 "뭐, 뭐야……."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서, 뒤돌아보자, 치하야 짱 얼굴이 바로 옆에 있었다.

 조금 올려다보듯이 시선을 움직인다. 해는 이미 졌지만 오늘 밤은 꽤 더운데, 치하야 짱의 얼굴에 땀은 맺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호흡을 잊을 정도로 청순한 유카타 차림과 조화를 이루어서――

 헛! 유카타! 치하야 짱과 유카타에요! 왓호이!!

 너무 가까워서 유카타 차림의 치하야 짱의 전신을 볼 수가 없다. 한 걸음씩 뒷걸음치면서, 치하야 짱의 갑작스런 습격과 그 아름다움에 깜짝 놀라서 부족해진 산소를 보급하고, 고동을 진정시키려고 시도해 본다.

 "까, 깜짝이야, 치하야 짱. 가까이 왔으면 먼저 말을 걸어."

 "몇 번이나 불렀어. 하루카가 좀처럼 눈치를 못 챘으니까."

 치하야 짱의 머리끝부터 맨발에 게타를 신은 발끝까지,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시야에 들어오는 거리까지 겨우 물러섰다. 깊은 파랑색을 바탕으로 해서 군데군데 핑크색이나 자주색 꽃이 섞인 어른스러운 유카타가, 날씬한 몸과 등 중간까지 내려오는 예쁜 머리카락의 치하야 짱을 평소보다 더욱 어른스럽게 해서, 넋을 잃을 것만 같다.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아무런 싫은 감정 없이 누군가에게 느낀 건 얼마만일까.

 얇은 천에 구멍이 날 정도로 말없이 응시하는 나에게, 치하야 짱이 곤란한 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오래 기다리게 했어? 일단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하게 왔는데."

 흠칫하고 정신을 차렸다. 벌써 그런 시간이었구나. 음, 그러니까,

 "그런 거 아냐, 방금 왔어~"

 "거짓말. 기다리고 있었다고 막 말한 참이잖아. 그리고 으햐악이라니."

 실수했다. 치하야 짱이 지각하더라도 처음 대화는 "기다렸어?" "방금 막 왔어."로 하자고 생각했는데.

 "그,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영문을 모르겠어."

 치하야 짱이 한숨을 쉰다. 그런 동작 하나 하나가, 오늘은 어쩐지 무척 예뻤다.

 "그런데 하루카, 이건 무슨 일이야?"

 나와 치하야 짱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벌어진 거리를 보고, 그녀의 눈에 곤혹스런 빛이 강해졌다.

 "아, 그러니까, 이것도 특별히 의미 같은 건 없고――으와왓."

 당황하면서 치하야 짱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내 발이, 땅의 단차에 걸려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깜짝 놀란 그녀의 눈보다 조금 아래에, 내 머리가 부딪혔다. 그런 나를 치하야 짱이 부드럽게 받아 주었다. 갑자기 제로가 된 거리에, 내 심장이 다시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치하야 짱의 가슴께에 내 귀가 겹쳐져 있지만, 얇은 천과 얇은 가슴 너머로도 그녀의 고동은 들리지 않는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루카, 괜찮아?"

 "괜찮다 뭐."

 "정말, 이런 조금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넘어질 건 없잖아."

 "……게타가 안 익숙할 뿐이야."

 치사해, 치하야 짱. 분명 언제나 언제나, 두근거리고 있는 건 나뿐이다. 여름인데도 그런 시원스런 얼굴이고. 치하야 짱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치하야 짱, 가슴, 딱딱해."

 "엉!?"

 "패드 들었지."

 "그, 그건 하루카랑은 관계없잖아!"

 "유카타니까 그런 거 안 해도 되는데. 날씬한 치하야 짱이 좋은데."

 "신기해. 칭찬해 주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확 짜증이 나."

 "내 머리는 쿵 했다구. 가슴에 맞은 소리 치고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꿀밤이 하나 날아와서, 다음에 내 정수리가 낸 소리는 꽁 이었다.

 "아파아……."

 "하루카가 잘못한 거야."

 "반성할게요."

 치하야 짱의 왼손은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내 등에 둘러져 있고. 오른손은 자기가 가볍게 때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고 있고.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 마음이 편한 장소는, 분명 지구상에는 여기 말곤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치하야 짱만 있어 준다면 좋으니까, 다른 어떤 장소라도 상관없기도 하다.

 갑자기 발소리가 많아진다. 슬슬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랬지, 우리들도 불꽃을 보러 온 거였지.

 "하루카, 이제 곧 아냐? 벌써 좋은 자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데……어디서 볼래?"

 "어디든 상관없어. ……여기라도 좋아."

 "그래."

 조금만 더, 이대로 있고 싶었다. 치하야 짱이 "더워."같은 말을 하면서, 나를 밀어내지 않기만을 빌었다. 어차피 뜨거운 건 내 쪽이니까. 난 지금 당장이라도 녹아버릴 것 같으니까. 그 정도는 참아줘, 치하야 짱.

 "――아."

 치하야 짱이 내 귀 옆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나에게도 들렸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소리. 얼굴을 든다. 치하야 짱과 같은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기세 좋은 소리를 내면서,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에 커다란 커다란 꽃이 피었다. 치하야 짱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침을 삼켰을 때, 나는 이미 치하야 짱의 목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었다. 유카타에서 뻗어 나온 아름다운 목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난 뭘 보고 싶었던 걸까. 불꽃, 유카타, 치하야 짱――

 차례차례, 불꽃이 발사된다. 꽃이 피는 소리에 질 수 없다는 듯, 주변 사람들도 환성을 지른다. 모두들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이고. 아까 봤던 가족을 데려온 커플도 저 가운데 어딘가에 있겠지. 그런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들도 같은 정도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즐겁고, 행복하고.

 치하야 짱 옆에 서서 불꽃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여러 크기의, 여러 색의 불꽃. 같은 것만 있으면 질려 버리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치하야 짱의 옆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와 함께 불꽃을 보면서, 즐겁다고 느끼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형태는 조금이라도 네 그것과 닮았을까.

 문득 올해 내 생일에 치하야 짱과 밤 벚꽃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벚꽃을 보면서 나는, 무척 아름답게 피지만 금방 져 버리는 게 아이돌 같다고 생각했지만. 치하야 짱은, 그런 나에게――

 "불꽃도, 아이돌하고 비슷할지도 모르겠구나."

 치하야 짱이 중얼거렸다.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치하야 짱은 부드럽게 웃었다. 응, 그렇지,

 "불꽃도 여러 사람이 모여서 서로 협력하기에 하늘에 필 수 있는 거니까."

 이번엔 치하야 짱이 놀랄 차례였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내가 생각을 알았어?"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이건 치하야 짱이 나한테 했던 말이잖아?"

 "그렇지만 먼저 그걸 깨닫게 해 준 건, 너였으니까."

 치하야 짱이 내게 받은 것을, 치하야 짱이 내게 가르쳐 주기도 하고. 그런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에 더욱, 이렇게 우리들은 함께 불꽃을 바라보고, 이번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저기, 치하야 짱은 지금 내 옆에 있어 주고 있지? 난 지금 제대로 옆에 있을 수 있는 거지?

 치하야 짱은 나한테서 멀어지거나 안 할 거지? 봄이 지나도, 커다란 불꽃이 사라지더라도,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나 하지 않을 거지?

 마지막에 일제히 큰 불꽃이 달 옆으로 쏘아 올려지고, 하늘에서 소리가 사라진다. 땅 위의 소란이 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임을 되찾는다.

 꿈같은 시간은 끝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정말 예뻤다. 그럼 하루카, 이제 그만――"

 조금만 더.

 "저기, 치하야 짱."

 이 시간을 계속해도 될까요?

 "부, 불꽃놀이는 끝났어도, 노점은 아직 하는 것 같으니까――"

 이기적인 말을 해도, 될까요?

 "혹시 괜찮으면, 같이 가게를 돌아 주지 않을래?"

 나는 치사하다. 결국 이렇게 치하야 짱의 상냥함에 어리광을 부린다. 만약 그녀가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래, 모처럼 왔으니까, 잠깐만이라면."

 그렇게 말해 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치하야 짱이 가자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 옆에 나란히 서서, 노점이 들어선 길을 둘이 걷는다. 가깝지 않게, 멀지 않게, 친구의 거리로.

 "치하야 짱, 이 사과 사탕 엄청 맛있어 보여. 먹을래?"

 "고마워. 그러고 보면 이것도 과자지. 하루카는 안 만들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한테 주려고 가져가기가 힘들 것 같아서."

 민폐지, 사과 사탕 같은 건, 보통 받더라도 말야. 그래도 오늘만은 용서해 줘.

 "치하야 짱, 사격 안 해볼래? 저 인형 햄조랑 닮았는데, 히비키 짱한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난 그런 거 잘 못해. ……뭐어, 기대는 하지 마."

 "아, 아~……. 다음, 다음 총알이 있어, 치하야 짱!"

 또 다음이 있지? 오늘로 끝나는 게 아니지?

 "치하야 짱, 배 안 고파? 야키소바 안 먹을래?"

 "먹을 것 뿐이구나. 이 시간에 먹는 건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해."

 그렇지. 역시 쓸데없이 참견하지, 나는. 치하야 짱 옆에 있으면, 곤란하지, 그렇지.

 하지만, 하지만 난. 그래도,

 "치하야 짱, 사람 참 많다. 떨어질 것 같으니까, 손, 잡아도 될까……?"

 치하야 짱과 떨어지는 건 싫어. 어딘가로 간다면, 나도 데려가 줘.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줘.

 내 손을, 잡아 줘――

 바닥을 본채로 있으려니, 왼손이 분명한 압박감에 싸였다. 놀라서 치하야 짱을 올려다보자 그녀는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잡은 손이 따뜻하다. 겹쳐진 손바닥 안에서 서로의 땀이 섞였지만 싫지 않았다.

 싫지 않다구. 나, 치하야 짱과 손 잡는 거, 정말 좋아해.

 이렇게 내가 달라붙어 있으면 역시 치하야 짱은 지쳐 버릴까.

 치하야 짱과 내가 같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제대로 친구 사이로 보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치하야 짱을 좋아하니까.

 주변에 있는 행복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특히 연인들이 내뿜는 행복 오라는 정말.

 이래선 꼭 부부 같다. 그런 걸 생각했던 건 분명, 둘이서 벚꽃을 올려다보았던 밤이었다.

 연인이나, 부부나, 그런 건 우리들의 관계성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생각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사람들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보일까, 하고.

 어떤 사람들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일까 하고. 치하야 짱과 있는 내가, 나와 있는 치하야 짱이.

 그래서 이렇게 물어 본다.

 "치하야 짱, 우리들……연인처럼 보이거나, 그러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



………

……





 "――핫."

 벌떡 일어났다.

 숨이 무서울 정도로 거칠다. 쿨러를 켜 두었을 텐데, 잠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지금 꿈은……? 그렇다, 지금 건 꿈이다.

 날뛰는 심장을 어떻게든 진정시킨다. 꿈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치하야 짱의 얼굴이, 뇌리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거절. 압도적인, 혐오감. 비유가 아니고 정말로 등이 얼어붙을 정도로, 어디까지고 차가운 눈빛.

 꿈이다, 꿈. 그건, 꿈이다. 치하야 짱이, 그런 눈으로 날 볼 리가 없다.

 점점 진정이 된다. 손바닥이 말라간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오늘은, 일이 빨리 끝나서, 유카타로, 그래, 유카타 차림으로 치하야 짱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걱정대로 불꽃놀이는 끝나 있었지만, 치하야 짱은 와 줘서, 그래서 같이 다 끝나가는 축제를 돌아다니고――

 그래, 어째서인지 나를 떼 내려는 치하야 짱과, 함께.

 나도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니까 오늘 치하야 짱이 나와 거리를 두려 했던 건 알고 있다.

 그것이 갑작스러워서, 영문을 모르겠어서,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나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난 방해가 되는 걸까. 짜증나는 걸까. 괜히 참견하고, 치하야 짱의 친구로는 어울리지 않는 걸까. 그리고 어느 새인가, 잠이 든 것 같다.

 어쩐지 중간까지는 아주 폭신폭신하고 달달한 꿈이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돼 버렸을까.

 그보다도, 꿈속의 나는 어디까지 나였던 걸까. 치하야 짱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던 나는, 뭘 바라고 있었더라.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다. 점점 사고에 노이즈가 끼는 것 같아서,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시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잠기운에 의식을 맡긴다. 다음에 눈이 뜨였을 때, 나는 이 꿈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치하야 짱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나는 치하야 짱이 아니고, 만약 가르쳐 준다면 그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다. 밝혀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분명 날 위해서일 거라고 믿고 있다.

 꿈속에서 본 불꽃과 유카타 차림의 치하야 짱은, 분명히 예뻤다. 함께했던 시간은 행복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불꽃놀이를 보지 못했던 나는 나대로, 치하야 짱에게서 받은 소중한 말이 있다.

 "유카타, 정말 잘 어울려."

 꿈 속 치하야 짱은 결국 말해 주지 않았다.

 이 한 마디만을 위해, 나는 의상 담당자에게 부탁하고, 스타일리스트에게 무리한 말을 하고, 프로듀서님에게 근처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치하야 짱도, 와 주었다.

 바보 같지. 잔뜩 제멋대로 굴고, 점점 자기가 싫어질 정도가 되어서까지, 그 말을 치하야 짱에게 듣고 싶었으니까. 조금이라도 귀엽다고 생각해 줬으면 했으니까. 치하야 짱이 칭찬해 줘서, 정말로 정말로 기뻤으니까.

 단지 그것만으로 행복해 지니까 말야. 쉬운 여자구나. 부담스럽거나 하진 않지?

 하지만 만약 내가 치하야 짱에게 짐이 된다면. 너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면. 일이 그르게 되기 전에, 좀 더, 말을 해 주세요. 얘기해 주세요.

 어떻게든 당신과 함께 걷기에 어울리는 여자가 돼 보일 테니까요.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냥한 꿈에 미련은 없다.

 아, 딱 하나.

 나도 꿈 속 치하야 짱에게, 유카타 잘 어울린다고. 말할 걸 그랬다.

 부끄러워서 얼굴 빨개지고 할까.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슬쩍 흘릴까.

 뭐, 아무렴 어때.

 그 답을 맞춰 보는 건 꿈속이 아니라.

 내년의 너에게, 오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말을.



【끝】

 

----

중간에 마미가 말하는 '나이치치'는 가슴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소설, 하루치하면서도 은근히 치하야 가슴 네타가 많이 나오죠. 벽이라든지, 판이라든지, 도마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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