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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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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0, 2015 08:58에 작성됨.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4. 거짓말쟁이 일기예보

 

"비구나~"

 창문 옆에 앉아 옆으로 밖을 바라보면서 특별히 의미도 없이 중얼거리니, 한 박자 후에, 그래 비구나 하고 맞장구가 돌아오는 것이 어쩐지 기쁘다. 그 대답에도 특별히 의미는 없을 테지만……의미가 없는 말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만다.

"그런데, 하루카."

"무슨 일이십니까."

 돌아보니 방 중앙에서 작은 테이블에, 오른손을 턱에 괸 자세로 조금 미간을 찌푸린 치하야 짱이 시야에 들어왔다.

"슬슬 공부로 돌아가는 게 어때."

 도망칠 수 없는 정론을 듣고 필사적으로 반론의 말을 찾아보지만 쓸데없는 노력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도망칠까 해도, 더욱 멀어지려면 창문 너머, 차가운 비가 쏟아지는 베란다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없다고 알고는 있지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저항을 시도해 봐도,  

"하루카는 그렇게 내 옆자리가 싫은 거구나."

 같은 말을 들으면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말.

 테이블을 끼고 치하야 짱과 마주보고 앉는다. 엉덩이 밑의 방석은 열을 잃어서,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무언으로 항의했다.

"뭘 히죽거리고 있어? "

"별로 아무것도 아닌데~? 평소랑 같은 웃는 얼굴의 하루카 상이에요~"

 아차, 위험해라. 얼굴에 드러났나. 조금 과장되게 웃음을 지어서 얼버무렸더니, 치하야 짱은 한숨을 쉬며 교과서와 노트로 시선을 되돌렸다.

 아니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까, 하루카는 내 옆자리가 싫은 거냐는 말. 치하야 짱도 꽤 날 다루는 솜씨가 좋아졌구나 싶어서.

 치하야 짱 자신을 먹이로 쓰면 나는 대부분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어진다. 그것을 치하야 짱이 알고서 그러는 거라면, 조금 섭섭한 듯한 목소리도 포함해서, 정말로 제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자신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치하야 짱이 자각하고 있다는 말이니. 뭐라고 할까, 조금 분해! ……그래서 좀 부끄럽다.

 하지만, 만약 치하야 짱이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말한 거라면. 조금 섭섭한 듯한 목소리도 포함해서, 지금 당장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하고 등 뒤에서 끌어안고 싶어진다. 치하야 짱이 조금 삐친 것처럼 시선과 입술 끝을 오른쪽으로 흘리고 뺨을 붉히는 데까지 완전히 상상할 수 있다.

 과연 어느 쪽일까, 치하야 짱의 일거수일투족에 그 힌트가 남아있진 않을까 천천히 살펴본다. 샤프를 잡지 않은 쪽,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노트 페이지를 넘긴다. 그대로 왼손이 올라가 귓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한 순간 귀 전체가 드러난다. 흐르듯 교과서의 글자를 쫓는 눈은 살짝 가려져서,

 고개를 든 치하야 짱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야?"

"고개를 숙이고 공부를 해 나가는 치하야 짱이, 예술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뭐야, 그게."

 어찌됐든, 뭘 하고 있었는지 솔직히 대답했을 뿐입니다.……마지막만.

"아니 정말로, 치하야 짱은 공부를 할 때도 자세가 예쁘구나 싶어서."

"그런가? 이상한 자세가 습관이 되면 발성에도 영향이 가니까, 늘 신경은 쓰고 있는데."

"그렇구나~. 난 그만 편한 자세로 도망쳐 버리는데. 공부할 때는 특히."

"그래. 그럼 하루카, 그대로라도 괜찮으니까 일단 교과서를 펼쳐 보는 게 어때?"

 네, 끝까지 얼버무리지 못했습니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치하야 짱의 눈이 안 웃고 있다. 아니, 얼굴 전체가 안 웃고 있다.

 포기하고 수학 교과서를 손에 든다. 적당히 펼쳐 보니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기호와 수식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 어이 너희들, 나와 치하야 짱 사이를 방해하려 하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치하야 짱."

"왜?"

"공부는 그만두자."

 치하야 짱이 잡고 있는 샤프가 탄소를 뿜는 것을 그만두었다. 치하야 짱이 손을 멈추고, 당황과 짜증남과 멸시를 4:5:1로 블렌드한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아직 우리 집에 와서 거의 안 했으면서. 애초에, 같이 숙제를 하자고 한 건 하루카잖아?"

"치하야 짱네 집에 먼저 있던 건 나니까, 어쩌면 치하야 짱이 돌아오기 전까지 꽤 해 뒀을지도 모른다구?"

 치하야 짱이 말없이 내 노트를 빼앗았다. 붙잡혀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기특한 노트가, 펄럭 펄럭 넘어가며 입 다물고 있던 것을 토해낸다. 어제 날짜부터 새하얀 페이지가 무엇보다도 내 죄를 말하고 있었다.

"하루카, 뭔가 할 말 있어?"

"죄송합니다."

 별 것 없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다. 비가 오고 있었다. 치하야 짱네 집에 가기로 했다. 공부할 것들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치하야 짱에게 "오늘 공부하러 가도 돼?"하고 메일을 보냈다. 일이 끝나고 요전번의 그것을 써서 집주인보다 먼저 들어왔다. 치하야 짱이 돌아왔다.

 그것뿐, 이다. 실제로.

 치하야 짱의 표정에 당황스러운 빛이 강해진다.

"왜 오늘 공부하잔 말을 꺼낸 거야?"

"아니, 뭐라고 할까, 장마잖아요."

"장마지. 그래서?"

"요즘 비가 많이 오는구나~ 싶어서."

"장마니까. 그래서?"

"비라고 하면 같이 공부하기잖아?"

"영문을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왜 치하야 짱이 이렇게 둔한 건지.

 그런 치하야 짱은, 처음 지구는 둥글다는 말을 들은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당황이 극에 달했다.

"다시 한 번 물을게. 왜 오늘 공부하잔 말을 꺼낸 거야?"

 어딘가의 누구는 배를 타고 지구를 일주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시 한 번 일주한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뿐이겠지.

 조금 방향을 틀어 보기로 했다.

"저번 달에는 중간고사가 있었잖아."

"있었지."

"다음 달에는 기말고사가 있잖아."

"있지."

"저기, 치하야 짱."

"왜?"

"왜 아무것도 없는 6월 중반에 공부를 하는 거야?"

 치하야 짱의 오른손에서, 샤프가 삐걱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루카가! 공부하자고! 말을 꺼냈잖아!?"

 치하야 짱이 흥분해서 일어섰다. 나는 조그맣게 움츠렸다. 바깥의 비는 더욱 거세지고, 치하야 짱의 방에는 국소적으로 천둥이 쳤다.

 원래 장소로 돌아가려면, 한 바퀴 도는 것 말고도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내가 꺼낸 귀로의 차표가 상당히 불만스러우셨는지, 머리에서 연기라도 피어오를 것 같다. 요즘 같은 때에 증기 기관차는 없다고 생각해, 응.

 잔뜩 움츠러든 목을 조금 뻗어서 치하야 짱을 올려다본다. 아아, 무서워라.

"이, 일단 있지, 슬슬 휴식하자!"

"하루카는 휴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공부하는 편이 좋겠네."

"아니, 일단 진정하자, 응? 커피 타 올 테니까!"

"정말……"

 치하야 짱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꿀꺽 침을 삼키고, 그녀의 입에서 떨어질 판결을 기다린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15분."

 하고 치하야 짱이 중얼거렸다.

"15분 뒤부터 공부를 하자."

"고마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한숨을 등 너머로 들으면서, 튕겨 나오듯이 부엌을 향한다. 전기 주전자에 두 잔 분의 물을 넣고 끓이는 동안 찬장에서 컵과 컵받침을 꺼내고 콩을 준비한다. 치하야 짱 대신 끓는점을 넘은 물을 컵 바닥에 쏟아 붓고, 쟁반에 담아서,

"하루카."

"왜?"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넘어지지 마."

 손에 든 것을 본다. 쟁반 위에 짝을 지어 놓인 두 잔의 커피. 비유가 아닌 피어오르는 증기.

"나, 무사히 도착하면 치하야 짱과 커피를 마실 거야."

"됐으니까 얼른 와."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치하야 짱을 향해서, 결의를 담은 한 걸음을 내딛었다. 오른발이 카페트를 밟고 컵이 작은 소리를 낸다. 흔들리는 커피는 치하야 짱의 심경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는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괜찮아, 나는 이런 데에서 안 넘어져.

 특별히 아무런 일도 없이 테이블에 도착한 컵의 한쪽을 치하야 짱에게 건네고, 다시 부엌을 향했다. 각설탕 두 개와 티스푼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았다고 생각했더니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고 바닥이 다가왔다.

"하루카!?"

 위, 험했, 다. 바닥과 키스하기 직전에 짚은 양 팔이 저릿저릿하다. 쥐고 있던 각설탕이 부서지지 않은 것이 불행 중의 다행.

"괜찮아, 괜찮아. 미안."

 반쯤 일어선 자세의 치하야 짱에게 웃어 보이고, 바닥에 찧은 무릎을 쓰다듬으면서 다시 일어섰다.

"커피 옮기기가 끝났다고 방심한 게 잘못이었어."

"다음 목표는 기합을 안 넣고도 무사히 설탕을 가져오는 거구나."

 으으, 정말 쩨쩨하게. 하지만,

"그럼 콧노래를 부르면서 설탕을 가져올 정도가 되면 상 줘."

"뭐야, 그게."

"뭐든 상관없으니까!"

"그런 일에 어울릴 만한 작은 상밖에 떠오르지 않는데……생각해 둘게."

 좋았어, 하고 테이블 밑에서 조그맣게 거츠 포즈를 한다. 넘어져도 그냥은 일어나지 않는 아마미 하루카. 의외의 소득, 작은 약속.

"그러면 다시 한 번 휴식을 할까!"

"하루카 덕분에 꽤 마음이 피곤해졌어. 넌 다시 한 번 휴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공부 안 할거야. 모처럼 휴식하는 거니까 공부는 잊자?"

 설교 모드로 들어가려는 치하야 짱을 당황하며 멈추고, 내 컵에 설탕을 두 개 다 넣어서 스푼으로 천천히 휘젓는다. 한 입 머금으니 딱 좋은 쓴 맛이 입 안에 퍼졌다.

"비오는 날엔……치하야 짱은 보통 뭘 해?"

"특별히 평소랑 다르지 않아. 비가 올 때도 안 올 때도, 이런 시간엔 커피 같은 걸 마시면서 음악을 듣거나 악보를 읽거나 하고 있어."

 치하야 짱답다면 치하야 짱답다. 꽤 전부터 노래 말고 다른 것에도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곳에서는 역시 변하질 않는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면 사진 시작했잖아! 비 오는 날엔 또 다른 풍경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몰라."

"시작했다――곤 해도, 아직 기본적인 조작법밖에 몰라. 게다가 굳이 밖에 나가서 뭔가를 찍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럼 뭘――"

 찍고 있어? 그렇게 계속하려던 말은, 갑자기 들린 셔터 소리에 막혔다. 놀라서 시선을 되돌려 보니, 치하야 짱의 오른 손에 까만 디지털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내가 커피를 보던 잠깐 사이에 꺼낸 것 같다.

"나?"

"하루카를 포함해서, 내 눈에 비치는 것들."

 조용히 중얼거리는 치하야 짱은 이미 렌즈를 내게서 돌리고 디스플레이를 보면서, 왠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날 찍는 건 좋지만 있지, 이렇게 갑자기 찍힌 얼빠진 표정 말고, 좀 더 귀엽게 찍어줘."

"하루카는 늘 귀여워."

 너무 기울인 컵에서 입으로 흘러들어온 커피가, 폭력적으로 있는 대로 유린하면서 목을 내려간다. 뜨겁다는 말을 삼키고 입가가 벌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은닉하면서, 치하야 짱의 기습술이라면 1루에 나온 이치로 선수도 견제구로 가볍게 아웃시킬 수 있겠다는 어찌 되든 상관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소수를 센다. 치하야 짱이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때, 나는 이미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말, 분하다.

"하지만 설마 치하야 짱이 디카같은 전자 아이템을 완벽히 구사하는 날이 오다니."

"그러니까, 아직 완벽히 구사하진 못한다니까."

"증기 기관차 주제에."

"뭐? "

"아니, 아무것도 아냐."

 의미를 알 리가 없는 말에 고민하는 치하야 짱을 보고,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낀다. 내 안의 어렴풋이 쓴 곳에는, 설탕을 큰 수저로 20숟갈 부어 넣어서 뚜껑을 덮었다. 그건 일단 내버려 두고.

 치하야 짱의 눈에 비치는 나. 내가 없을 때 치하야 짱이 보는 풍경.

 나에겐 보일리가 없는, 치하야 짱이 보는 것을 보고 싶다고. 그걸 본 치하야 짱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나는, 욕심이 많은 것일까.

 뭐 그런 것도 내버려 두고, 신경 쓰이는 것은 신경 쓰이는 것이니,

"치하야 짱, 발렌타인 때나 우리들 생일에도 사진 찍었었지. 인쇄한 건 없어~?"

"어, 그건……있기는 있는데……."

 어라? 확연히 말끝을 흐리고, 치하야 짱의 시선이 허공을 헤멨다.

"보고 싶다, 치하야 짱이 찍은 사진. 셀프 타이머 써서, 둘이서 찍은 것도 있었지?"

"어, 그러니까, 그건 다음번이나……내일일 지도 모르고……."

 수수께끼가 깊어진다. 치하야 짱의 당황이 심해졌다.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추궁은 그만두고 나도 조금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주제를 바꿀 만한 게 없나 주변을 둘러본다.

 어떤 것을, 눈치 채고 말았다. 미안. 한 번만 더, 치하야 짱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러고 보면, 치하야 짱은 사진 찍는데도 액자에 넣어서 집안에 장식하진 않는구나."

 

 당연히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하야 짱은 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을 보였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아까 공부 귀신 치하야 짱보다도 짙은 증기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이래서는 내가 곤란해져 버렸다. 입체적인 궤도를 그리며 달리는 증기 기관차가 있다니.

 ……뭐, 내게 얘기하지 못하는 게 하나 둘쯤은 있겠지. 테이블을 끼고 앉은 거리를, 처음으로 멀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옆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올려놓고 싶어지는 충동을 억누르고, 이 이상 이 주제를 꺼내지 않기로 한다. 이번에야말로 이야기의 노선을 바꾸려고, 리모컨으로 TV를 켠다.

『내일 6월 12일은, 장마 중간의 귀중한 맑은 날이 되겠습니다. 밀린 빨래를――』

 침묵에 빠진 공간에 구름 모양을 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압 배치도를 보아도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치하야 짱에게 시선을 돌리니, 꽤 평소대로 돌아왔지만 묘하게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많아 보였다. 다음엔 무슨 말을 들을지 내가 입을 여는 것을 전력으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바짝 바짝 전해져 온다. 부탁이니 진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내일 있잖아――"

 치하야 짱의 어깨가 가여울 정도로 들썩였다. 사진이라고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그래도 안 되나.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치하야 짱.

"치하야 짱도 나도, 오후부터 같은 일 하나만 있지. 사무소에 가기 전에 잠깐 쇼핑 가지 않을래?"

"뭐?……물론 상관없는데."

 좋아. 자연스럽게 쇼핑 데이트 약속을 얻어 내서 마음이 통통 튀어 오른다. 게다가, 은근슬쩍 오늘 자고 가는 흐름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계획대로!

 내 입이 어중간하게 히죽거리는 동안에, 눈이 치하야 짱의 입이 조그맣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귀가 "정말 잘 됐어."라는, 내버려 둘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말을 들었다.

 이런 딱히 누군가를 향하지 않은 말은 못 들은 체 하는 것이 만화나 그런 데에 나오는 주인공답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메인 히로인이니. 귀가 밝단 말이지~, 이게.

 뭐어, 내 얘기를 제쳐두고 상대 생각에 대해서 이리저리 말할 생각도 없고. 치하야 짱의 눈동자가 오랜만에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걸로 됐다.

"어디 가고 싶은 가게가 있어?"

"으응. 일단 생각내서 말해본 것뿐이니까, 특별히 그런 데는 없는데……. 치하야 짱은 어디 있어?"

"나도 필요한 건 갖춰져 있고……. 그러면 적당히 역 앞에서 걸어 다니고 할까."

"응, 찬성!"

 물론 이의같은 건 없다. 특별히 의미도 없는 내일 오전중, 올 오케이. 제대로 날이 개어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자마자 베란다를 두드리는 비를, 가볍게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면 하루카는?"

"응?"

 잠깐 간격을 두고 들린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그러니까, 하루카는 비 오는 날에는 뭘 하는 걸까 싶어서."

"아아――나도 특별히 뭘 하는 건 아닌데, 비를 바라보는 걸 꽤 좋아해."

"바라봐? 비를?"

 그런 천연기념물을 집에서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짓지 말아 주세요. 으음, 뭐라고 말하면 전해질까.

"나, 비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있지……오늘은 밖에 안 나간다고 정한 날에 내리는 비는, 어쩐지 좋지 않아?"

"……비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걸 잘 모르겠는데."

"어? 비 때문에 신발이나 가방이 젖는 거 싫지 않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니 뭐어, 그건 그렇긴 한데――"

 으음. 역시 감정을 공유하는 건 어렵다.

"오늘은 밖에 안 나가야지~ 하고 정한 날 비는 어딘가 마음 편하다고 할지, 뭐랄지."

"그런가?"

"그런 거야."

 잘 설명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그보다도 나 자신이 막연히 느낄 뿐인 기분을 말로 바꾸는 어려움.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치하야 짱과 비슷한 정도로, 나도 미간에 주름을 잡고 이해받기 위해 말을 찾았다.

 그대로 잠깐 시간이 지나고 내가 포기하려 했을 때쯤. 치하야 짱이 조용히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나도 따라서 비를 바라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끔, 길을 달리는 차가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겹쳐진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말로 하자면 아마도 그것뿐이다. 단지 그뿐인 시간을, 치하야 짱과 둘이서 보낸다.

 커피가 완전히 식었을 즈음, 치하야 짱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어."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이해해 준 것인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뭐가? 하고 되묻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건, 아마도 다른 문제다. 적어도 지금은 이걸로 됐다. 비슷한 걸 생각하고 있다면, 그걸로 됐다.

 애초에 내가 아까 치하야 짱에게 한 말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이미 미묘하게 다르니까.

 응.

 치하야 짱은 치하야 짱. 나는 나.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비를 바라보는 것만 해도, 분명 한 기적일 것이다. 품는 마음까지 똑같고 싶다니, 너무 이기적이겠지요.

 그러니 그저 나는 한 마디,

 

"비구나~"

 하고 중얼거려 본다. 한 박자 후에, 그래 비구나 하고 맞장구가 돌아오는 것이 어쩐지 기쁘다. 하지만, 이 대답에 무언가 의미가 있다고 해도 나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하루카."

"무슨 일이십니까."

 치하야 짱이 시계로 시선을 옮긴다.

"이미 15분 정도가 아닌데."

 알고 있어요, 알고 있고말고요. 치하야 짱, 재미없게.

 현실이 되돌아온다. 시야에 넣지 않으려고 했던 교과서가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네 네 하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뒹굴거리던 샤프를 드디어 손에 잡는다. 노트를 열기 전에 마음속으로 치하야 짱에게 잠깐 사과를 한다.

 미안해, 제멋대로 굴어서. 딱히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기 싫었던 건 아니야. 물론 솔선해서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오늘도, 그냥 치하야 짱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됐어. 주머니에 든, 네가 생일에 주었던 물건을, 아직 나는 구실 하나 없이는 쓸 수가 없어. 물론 이런 말, 치하야 짱한테는 안 하지만 말야.

 미안해, 화나게 해서. 하지만 화를 냈다는 건 역시 눈치 못 챘던 거지. 자각 없었던 거지. "하루카는 그렇게 내 옆자리가 싫은 거구나."하는 말의 의미는, 후자였던 거지. 이것만큼은 어떻게든 확인하고 싶어졌거든. 정말, 넌 둔해. 물론 이런 말, 치하야 짱한테는 안 하지만 말야.

 여러 마음이 뒤섞여서, 역시 나는,

"뭘 히죽거리고 있어?"

"별로 아무것도 아닌데~? 평소랑 같은 웃는 얼굴의 하루카 상이에요~"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끔, 길을 달리는 차가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겹쳐진다. 치하야 짱이 교과서를 넘기는 소리가 마음 편히 들리고, 내 샤프는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이 슥슥 자그마한 소리를 내면서 노트 위를 미끄러진다.



………

……





 일기 예보는 거짓말을 했다.

 결국 내가 다음날 늦잠을 자서 쇼핑 같은 건 갈 시간이 없어진 것까지 일기 예보 탓으로 하지 말라고?

 아니, 그 얘기가 아니고. 뭐 늦잠 자긴 했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평소엔 제대로 일어날 수 있다구?

 그런데 왠지 말야. 치하야 짱네 집에선 알람이 소용없어.

 결국 둘이서 곧장 사무소로 가게 되었지만, 치하야 짱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평소보다 많았던 것 같다.

 비가 그친 길에서 이파리 한 장 위에 놓인 빗방울을 신선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지.

 그렇다, 오전엔 맑았지만 해가 지고 나서는 날씨가 굉장히 나빠진 그 날. 하루가 끝나고 치하야 짱과 사무소를 나와서 조금 걸어간 곳에서 갑자기 비가 내려서. 우산을 들고 돌아가는 게 귀찮다고, 사무소에 그냥 두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치하야 짱은 접이식 우산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헤어져서 사무소에 우산을 가지러 돌아갔는데, 결국 남아서 일을 하던 프로듀서님이랑 같이 돌아갔지.

 아, 코토리 상은 하루 종일 걸려서 만든 데이터를 지워 버렸다고 막차까지 남아 있을 거라고 그랬어.

 정말 장마에는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일기 예보는 거짓말을 했다.

 이틀 연속으로 예보를 틀리다니, 너무하다.

 응, 확실히 다음 다음 날에는 예보대로 하루 종일 해가 나와 있었지만.

 어딘가에 먹구름은 있었을 것이다.

 그 날. 치하야 짱에게서, 몇 개의 노래가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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