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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벌 -3- (백합 - 카코, 호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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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9, 2015 17:23에 작성됨.

셋,


 검은색과 보라색을 기조 곳곳에 체인이나 해골이 달린 불길한 롱 드레스. 스탭들이 그 어깨와 팔에 붉은 갑옷과 파츠를 입힌다. 무릎까지 차는 부츠도 신고, 허벅지 부위에도 파츠를 채운다. 마지막으로 허리에 벨트를 채우고 호리호리한 검을 꽂는다. 호사스러운 의상은 외형에 비해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언제나 표정을 밝게 보이게 하도록 했었던 메이크는, 오늘은 오히려 울적한 분위기를 내듯이 했다. 해골과 날개 머리 장식 흔들린다.
 호타루가 오늘부터 반년 정도 연기를 하게 된 것은, 특촬로 주인공 앞을 가로막는 적 간부 중 한 명이다. 얼굴을 드러낼 때도 다소의 액션은 있는 것 같지만, 본격적으로 싸울 때는 풀페이스 로 변신한 다음, 액션은 슈트 엑터로 교체하고, 호타루는 그에 소리를 맞추는 식이다.
 의심할 여지도 없는 악역이 올해 첫 일이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게 되지만, 상당한 대작이다. 거기에, 역시 밝은 역할보다 어두운 역할을 압도적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둘째치고 서라도, 주인공 사이드보다는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라기쿠양 들어갑니다~」

「시라기쿠 호타루입니다……잘 부탁 드립니다」

 박수를 받아 고개를 숙이자, 장갑이 몸을 누른다
격렬한 액션도 있고, 화약을 쓰고 있는 현장에서 불행한 일이 생기면 그냥 끝나지 않기에, 솔직히 말해 불안하기도 하다. 이 일의 오디션을 볼 때도 상당히 주저했다. 하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고,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디고 생각했다. 거기에, 카코가—오디션을 볼 때는 라이브를 위해 레슨을 받고 있었지만—등을 밀어 주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호타루는 가슴을 피고 촬영에 임할 수 있다.
 오늘 첫 장소는, 폐허가 된 교회였다. 벽이나 스테인드 글라스가 갈라져 있고, 이곳 저곳에 덩굴이 쳐져 있다. 여기서 이미 등장한 두 간부와 함께 주인공을 기다리다가 선전포고를 하는 장면이다. 이후 몇 번이나 장소를 옮겨 촬영을 할 계획이다.
 안으로 들어가, 옆으로 쓰러진 의자나 썩은 카페트를 밟으며 제단으로 향한다. 태양빛을 차단한 어슴푸레한 플로어. 제단에는 십자가가 아니고 조직의 엠블럼이 장식되어 있었고, 그 밖에도 배치된 몇몇 장식이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조금 기분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느다, 라고 생각해 버린 것을 당황해 하면서 뿌리친다.
 다른 간부를 연기할 두 배우들도 들어왔기에 인사를 했다. 두 사람 모두 신인답게, 연하인 호타루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서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세 사람은 각자 정 위치로 갔다. 제단 안쪽 벽에 기대는 사람은 연미복에 푸른 갑옷을. 플로어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은 포멀 슈트에 은빛 갑옷을, 입고 있다. 체인이나 해골이나 날개 모티브는 세 사람 모두 공통이다. 호타루도 허리에 있는 검을 칼집에서 빼고, 맨 앞줄에 형태가 그나마 있는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악의 여간부 라는 역할로 의식을 바꾼다. 카메라나 조명이 들어 오고, 촬영이 시작된다.


 어슴푸레하고 황량한 실내, 익숙하지 않는 의상, 보통 드라마 와는 다른 대사 표현, 액션 신--호타루의 불행 체질에 걸릴 것 같은 요소는 산만큼 있지만, 호타루의 예상과는 반대로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타루 자신에게도 다른 배우들이나 스탭, 기재나 세트에도, 눈에 띌말한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드레스라고 해야할 지 갑옷이라고 해야할지 말하기 어려운 의상을 벗고,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호타루는 벽에 기댄 채 카코에게 메일을 보낸다. 오늘이 촬영 첫날이라는 것, 일의 내용, 배우나 스탭이 대체로 자기에게 호의적인 것, 눈에 띈 불행이 없었던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요?,, 라고. 너무 길어 지지 않도록 글을 쓴 후, 송신. 그 후에도 손은 무언가를 비는 것 같이 스마트폰을 꽉 쥐고 있다.
 ――둘이서 첫 참배를 하러 간 날, 그 벤치에서 첫 키스를 한 후, 둘은 사귀게 되었다.
 연인이 생겼다는 것은 호타루의 인생에 있어 처음이었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도 한 적이 없었고, 하물며 그 상대가 남성도 아니고 여성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불안이나 당황스러움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이다. 그럼에도, 그런 마이너스 감정에 짓눌리지 않게 된 것은, 상대가 카코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카코에게 운을 받을 때는 손을 잡았지만, 올해부터는, 대신 키스를 하게 되었다. 어제도 사무소에서 남몰래, 오늘 촬영을 위해서 했다. 키스를 하는 것은, 손을 잡는 것보다 좀 더 강하게 그녀가 느껴진다. 나눠 받은 운도, 전보다 많아진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오늘 일이 잘 풀린 것은 그것만이 아닐 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며 호타루는 과거를 되돌아 보았다.
 확실히 자신은 언제나 불행에 휩쓸렸고, 그 탓에 수포로 돌아간 퍼포먼스도 많았다. 그렇지만 어쩌면, 불행이 계속 일어난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진 탓에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미스가 일어난 것도 많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 불행이라는 익숙해진 라벨을 변명으로 더욱 자신을 없애 버리려는. 그런 연쇄에 갇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코와 연인이 된 시라기쿠 호타루의 세계는, 앞으로는 조금씩, 좋아 질지도 모른다. 일이라든지 일상이라든지, 다양한 것들이, 세계가, 조금은 자신에게 상냥하게 된다면, 그 때는 반드시, 마음에 그리는 이상의 자신에게도, 다소나마 접근할지도 모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넘쳐 버려, 호타루는 머플러에 입가를 숨겼다.
 꽉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이 울리며 메일 수신을 알렸다. 곧바로 메일을 열고 읽는다. 지금은 업무 중이지만 이제 곧 끝나니까, 역에서 기다려 준다면 바로 갈게요, 라고 쓰여 있었다.

「…………아」

 날 것 같을 정도로 기쁜 것도 한 순간, 호타루는 고개를 들고, 안내 방송에서 나오는 역 이름을 확인했다. 카코가 지정한 역을 이미 정거장지나 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리고 서둘러 반대쪽으로 달려가기로 정하고 호타루는 재빨리 답신했다. 역에서 뛰는 것이 자기에는 위험한 일일 텐데도, 호타루는 1초도 우물쭈물 하지 않겠다고 정했다. 근거는 없지만, 넘어질 일도 사람에게 부딪칠 일도 없을 것이란 자신이 있었다. 6시 전 차창 너머 경치는 이미 밤으로 물들어 있었고, 거기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 호타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기로 한 역 개찰구에서, 넘어지지도 부딪치지도 않고 겨우 도착한 호타루는 사람들을 바라 보고 있었다. 숨이 희어질 정도로 춥지만, 역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고 떠들썩하다.
 개찰구에서 시계를 본다. 조금 전 카코와 통화를 한 내용을 미루어 생각하자면, 앞으로 10분 후 정도에 역에 도착할 것 같다. 하지만 호타루에는 그 시간조차 길어서, 부츠 뒤꿈치를 이따금 누르기도 했다.
 엇갈리거나, 연락이 갑자기 두절되거나, 약속한 상대에게 해프닝이 생기거나, 어쨌든 기다리는 것은 익숙하다. 그럼에도 지금은 1초 1초가 매우 아쉽고, 지금 당장이라도 카코가 일을 하고 있는 곳까지 달리고 싶다.

「카코씨」

 그녀의 이름이 희고 떠들썩한 공기의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머플러 안에서 중얼거렸다.

「빨리 만나고 싶어요」

 핸드백을 들고 있는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금까지라면 틀림없이, 10분 정도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카코에게 어리광을 부려도 좋다고 말한 주제에,사실은 자기도 어리광을 부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왔어요」

「히야아!?」

 ――갑자기 뒤에서 호타루를 꽉 껴안는 사람이 있었다. 무심코 비명을 질렀지만, 바로 그것이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왔었던 것 같다.

「수고 하셨습니다, 호타루짱」

「아, ㄴ, 네! , 수고, 하셨습니다……」

 의식 바깥에서 갑자기 뺨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온 카코를, 호타루는 허둥지둥 볼 수 밖에 없었다. 매끈매끈한 뺨, 달려 왔는지 조금 흐트러지고 뜨거워진 숨결,어쩐지 작은 하얀 꽃을 떠오르게 하는 희미한 향기, 발육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껴 버리게 되는 두 개의 감촉이, 가는 팔이 자신을 확실히 안고 있는 것, 등등 그런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호타루의 의식에 뛰어들어 오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꼭 껴안길 수 밖에 없었다.
 즐거운 듯이 카코가 뺨을 문질러서, 호타루는 드디어 혼란에 빠져 버렸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있어도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여자끼리이고, 나이 차이도 있다. 장난치고 있다고는 생각해도 이상한 눈으로 볼 것 같지는 않다. 진짜 상황을 아는 것은 당사자뿐이다.

「저기, 카코씨……부끄, 러워요……」

 그래도 너무 길게 당하면 머리가 끓을 것 같아서, 한계를 넘기 전에 어떻게든 말을 했다.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힘이 없고 작은 목소리였다.

「후후, 그럼 일단은 이쯤에서」

 겨우 호타루를 놓아준—이러면 이런대로 아쉽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리광이다--, 카코가 다시 정면으로 온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상냥한 분위기로, 몇 번을 봐도 여신 같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완전히 화끈해진 뺨에 양손을 대면서 호타루가 물었다.

「카코씨, 폐가 아니었나요……? 갑자기 만나자고 말해서……」

「아니요, 나도 만나고 싶었어요」

 아쉽게도 오늘은 둘이서 어딘가 갈 수 있는 시간도 없고,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호타루가 내리는 역 개찰구까지다. 호타루는 아직 중학생이니까, 늦게까지 밖에 있을 수 없다.

「그럼, 가볼까요」

 카코가 손을 내민다. 호타루가 흠칫흠칫 그 손을 잡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은 손을 잡은 채 걷는 게 어색했다.
 개찰구를 지나며, 호타루는 문득 지난달에 대해 떠올렸다. 퇴근길에 사무소에 들러서, 카코가 일을 마치는 것을 기다리고 함께 돌아간, 그 날 에 대해. 호타루가 개찰구를 지나려 했을 때, 카코가 무의식 중에 호타루의 코트 옷자락을 잡아 만류했었던, 그 사건.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네요」

 계단을 내려가는 카코에게 말을 꺼냈더니, 수줍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 때는 정말로 무의식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이미 나는, 호타루짱에게 빠졌던 거 같아요」

「그렇, 군요……」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맞고 있는데도, 얼굴이 뜨거워지고 전혀 식지 않는다. 카코는 어떤 일이라도 정면에서 솔직하게 말한다. 그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때로는 부끄러워서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뭐랄까, 그 부끄러움조차도 마음 어디선가 즐겨서 있는 자신도, 확실히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으~응」

 홈에 물러나자, 카코가 무엇을 찾는 듯이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무슨 일 있나요?」

「아니요, 키스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멍하니 있는 호타루를 두고, 화장실은 좀 그렇지 않을까, 같은 말을 태연하게 하는 카코. 호타루의 손을 잡고, 아직 전철이 올 때까지 천천히 걷는다.

「그, 조금 기다려 주세요, 카코씨」

「어머. 혹시, 호타루짱은 키스 하고 싶지 않았나요……?」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코이지만, 연기인 것은 쉽게 눈치챈다. 최근 알게 된 것이지만, 카코는 연상인 주제에 가끔 이렇게 아이 같은 짓을 한다. 그리고 그런 점도, 호타루는 완전히 싫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저, 오늘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카코씨가 그런 말을 해버리니까, 저도, 역시 하고 싶어져서……」

 무엇을 말하는 건지, 스스로도 바보 같은 말일고 생각해서, 호타루는 말을 하다가 도중부터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곁눈질로 엿보자, 카코는 매우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대 그대로의 반응을 해버리는 것 같다.
 ――결국 두 사람은, 호타루가 내리는 역 홈에서, 전철과 승객들이 완전히 빠져 나가길 기다린 후에, 기둥 그늘에 숨어 키스를 했다. 그렇게 정한 차내에서 쭉 이어져 있었던 손은, 이미 초콜릿같이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대와 고양감과 다른 감정을 감추듯이 별 거 아닌 말을 뽑았던 입술은, 홈이 고요에 휩싸인 순간, 참기 힘들었다는 듯이 탐하고 있다. 부드러움과 뜨거움과 달콤함만이 의식 전부를 지배하고 있는 이 감각은, 아직 당분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입술을 겹치고, 그리고 떨어진다. 그 떨어진 순간에만 카코가 보여주는, 섹시한 표정. 혹시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자신 혼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호타루의 뇌리를 스쳤다.



 몇 장이나 스티커가 붙여진 대본을 들고, 호타루는 벽을 가득 매운 큰 거울을 마주보고 있다. 운동복 차림에, 허리에는 벨트 대신 끈이 감겨 있고, 검 대신에 비닐우산을 들고 있다. 근처에서 트래이너가 팔짱을 끼고 호타루를 지켜보고 있다.
 3일 전에 받은 대본이지만, 얼핏 보기엔 언제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들고 있는 대본은, 다소 지저분하고 찢기긴 했지만, 읽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고 한 손으로 들고 연습하는 데는 지장 없다. 아직 방심은 할 수 없기는 지만, 대체로 무사한 대본은 호타루에게 용기를 준다.
 거울 앞에서, 우선 악의 여간부 같이 서본다. 그리고 몸짓과 함께 대사를 말한다. 눈앞에 있는 것은 약간 멍청한 모습인 자신의 거울상이 아니라, 그 몸이 모두 불탈 때까지 싸울 각오를 다진 히어로다. 뒤에 보이는 것은 트래이너가 아니라 부하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웃어 버릴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얼핏 보기에는 쿨하고 상냥한 표정을 짓는 여성이지만, 한번 진심으로 화내면 말릴 수 없다, 라는 소문이 퍼져 있는 트레이너이다. 실제로 그것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극소수이고,그 당사자들은 무서워서 절대로 말을 안 한다, 같은 소문.
 호타루의 대사가 조용한 레슨장에 울린다. 호타루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싸울 때 말고는 조용한 숙녀이기에 그다지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지만, 작은 목소리는 그 만큼 밀도가 높은 연기가 요구된다. 동시에 평소 상태와 전투 모드에 들어간 상태에 대해 연기를 구분할 필요도 있기에, 꽤 어려운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대사 도중부터, 우산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는다. 거울을 향해 만든 미소는, 평소 연습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악한 미소다. 위압감을 주도록 천천히 우산을 뽑아, 무한 마크와 비슷한 궤도로 휘두른다. 그것은 변신 할 때 포즈이다. 영상에서는 날카로운 효과음이나 효과가 호타루를 감싸겠지만, 지금은 그 대신 트래이너의 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응, 마지막 표정은 아주 좋았어」

「가, 감사합니다……」

 사악한 표정을 짓는 것에 대해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은 복잡한 기분이다. 그래도 우선 인사를 했다.

「조용한 목소리라고는 해도, 좀 더 크게 해도 될 거야. 그리고, 두 군데 막혔어」

「아, 네……죄송해요. 특수한 용어 같은 것이 많아서, 아직 익숙하지 않다 보니……」

 대본을 바라 보면, 호타루의 대사 중에 굉장히 낯선 단어가 꽤 있다. 이야기의 핵심과 이어진 캐릭터이기에, 등장할 때마다 이런 느낌이다. 호타루는 지금까지 특촬영이라는 것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었기에, 이 부분이 가장 고역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이라고 호타루는 생각한다. 카코와 연인이 되거나 불운이 줄어들거나, 그런 이유로 조금 들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일수록 성대하게 넘어질 때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거기에, 카코의 행운에 너무 의지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힘을 내지 않는다면, 반드시 카코 곁에 있을 자격은 없다.

「힘낼게요. 저……힘내지 않으면 안 돼요」

「? ……아아, 힘내라」

 우산을 허리에 되돌리고 대본을 들고 있는 호타루를 보며, 트래이너는 머리를 갸웃거린다. 호타루와 카코의 관계가 변한 것은, 물론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끼리이고, 아이돌과 사무원 겸 아이돌이고, 그다지 환영 받을 만한 관계는 아니다. 우선, 프로덕션 사무원이 한 아이돌을 편애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연습했던 부분을 한번 더 연습하려고 다시 대본을 펼쳤을 때, 정확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 온 것은 프로덕션 아이돌 동료였다.

「수고 하셨습니다」

「응, 수고. 어쩐지 재미있는 모습이네? ――아, 특촬이야? 그러고 보니. 액션 신이 있었네」

「네, 검을 취급해요. 정확히 무게가 이 정도라서……」

 얼핏 보기엔 상당히 무거울 것 같은 진짜 검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잡아 보면 전혀 무겁지 않다. 특촬영 슈트나 소도구에 대해선 항상 이런 저런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단지, 그래도 주인공 슈트 같은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몇 십 킬로나 된다고도 한다.

「헤―……아, 에 카코씨가 전한 말씀. 레슨이 끝나면 사무소에 들러달래」

「카코씨에게서 말인가요…… 네, 알겠어요」

「시라기쿠, 딱 좋은 시간이잖아. 한 번만 더 하고, 오늘 레슨은 이만 마치자」

「조금 봐도 돼? 어쩐지 재미있을 거 같아」

「아 네…… 괜찮아요」

 트래이너가 대본 카피를 들고, 호타루와 대치하는 형태가 되었다. 카코가 호출하는 이유가 신경이 쓰이지만, 일단 호타루도 의식을 바꾼다. 싸움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주인공을 서포트하고 있는 여성 근처에 나타나 잘 되면 해치워 버리자, 그런 장면이다.
 입고 있는 옷이 저지라도, 허리에 있는 것이 비닐우산이라도, 지금 자신은 세계를 어둠으로 물들이려는 조직의 여간부다. 그리고 대치하고 있는 사람은, 그 계획을 방해 하는 사람 중 한 사람. 호타루가 입을 연다. 조금 전보다 조금 소리를 지른다.



 호타루의 일은 학교가 시작될 쯤에는 조금 줄고, 카코의 아이돌 일도 2월에 들 무렵에는 없다. 그렇기에,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간단하다.
 일이 끝나고 나서 그 짧은 시간을 둘이서 보낸다 그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역시, 하루 종일 쭉 둘이서 지내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다. 1월은 카코가 바빴고, 그러는 동안 호타루는 3학기가 시작되어 버렸기에, 결국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은, 사귀기 시작한 후, 한 달 이후였다.
 ――이 날을 위해 새로 산 옷은, 밝고 귀여운 것을 고를까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지만, 평소 대로 차분한 색과 디자인을 골랐다. 무리하게 귀여움을 연출하는 것보다 자신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 판단이었다. 오늘의 럭키 컬러도 흰색이었으니 딱 좋다. 부츠는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조금 높은 힐이다.사실은 힐이 부러지거나 넘어질까봐 무서워서 좀처럼 신지 않았지만, 오늘은 주저하지 않고 신었다. 그리고 핸드백 안에는, 예쁘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하나.
 밖에 나갔을 때는, 하늘은 쾌청했고, 봄 같이 따뜻하고 밝다. 힐을 신어서 일까, 푸른 하늘이 평소보다 조금은 가깝다. 소중한 날이 맑은 것은, 어느 쪽인가 하면,카코의 행운 덕분이 아닐까.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다녀와. 조심해」

 언제나 호타루가 나갈 때마다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도, 이 날만은 호타루의 표정이 정말로 밝아, 안심하면서 딸을 배웅했다.


 다소 트러블이 있어도 지정된 시간에 늦지 않도록, 호타루는 평소 30분 전에 도착할만한 여유를 두고 출발한다. 오늘도 그렇게 여유를 두고 집에서 나왔지만,빨간불에 많이 걸린 것 정도 뿐 굉장한 트러블에는 휩쓸리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약속 장소에 너무 빨리 도착해 버렸다.
 휴일 역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아, 그야말로 도시 같이 소란스럽다. 카코는 호타루를 위해 조용한 곳이 좋지 않을까 물어봐 주었지만, 카코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이라며 호타루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이럴 때 정도는 응석을 부리고 싶지 않다.
 호타루의 키 정도 되는 전위 예술 같은 동상 근처에서 역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자기를 안는 사람이 있었다.

「히야아」

「호타루짱」

 얼굴 바로 옆에서 즐거움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 그 다음에 비벼지는 뺨과 뺨, 밀착되는 몸.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멍하니 생각하는 한편, 사귀게 된지1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감촉이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호타루는 그렇게 실감했다.

「기다리게 했나요?」

「아, 아니에요……제가 너무 빨리 도착해 버려서…. 미안해요……」

생각해 보면, 불행이라는 이유가 없어도, 어떤 의미로는 안절부절 해서 빨리 출발한 것 같기도 하다. 광장 중앙에 있는 시계를 보면,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15분이나 남아 있었다.

「카코씨도 빨리 왔네요」

「네. 왜냐하면, 호타루짱과 첫 데이트인걸요. 두근거려 버려서」

마치 자기가 지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간파한 듯이 카코가 말하기에, 호타루는 가자기 안긴 것 하고는 다른 부끄러움에 습격 당했다. 몸이 접하는 것과 마음이 접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역시 다르.다

「……맞다, 카코씨. 잊기 전에……」

 수줍음을 감추기 위해, 호타루는 핸드백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카코에게 내밀었다. 정확히 양손으로 들어야 할 크기에,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그것을 보고, 카코가 몹시 놀란다.

「이거……카코씨에게. 선물이에요」

「나에게 말인가요? 어째서--」

「그게요……그저께 갑자기 생각이 난 건데요, 카코씨는, 설날이 생일이었는걸요. 그 날, 모처럼 만났는데도, 저, 완전히 잊고 있어서……」

 그 날 어쩌면 카코도 조금은 기대 했었을지도, 라고 생각하면, 호타루는 후회와 죄송한 마음으로 웅크리고 싶어져 버린다. 이것만은 불행이라는 변명도 할 수 없다. 순수하게 호타루 자신의 실태다.

「그……한 달 이상이나 늦게 준비한 건 미안해요, 그래도, 괜찮다면, 받아 줄 수 있나요?」

「――후후. 그럼, 받을게요. 고마워요, 호타루짱. 그렇지만 나, 선물이라면, 벌써 받았다고 생각해요」

카코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뻗는다. 그러나 상자를 받지 않고, 우선 손가락 끝으로 호타루의 입술 위를 덧씌운다. 몇 초 지나고 나서야 의미를 이해하고, 호타루의 귀가 단번에 뜨거워졌다.

「그, 그게, 그, 그러니까」

「그래도, 호타루짱의 소중한 거지요?」

「그게…… 확실히, 처음, 이었지만」

「그러니까, 호타루짱에게 그럴 생각이 없었어도,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에요, .그래도 제대로 준비한 선물도, 정말 기뻐요」

 조롱이 아니라 솔직한 말, 그 뒤에 카코가 겨우 상자를 받아 준다. 정말로 치사한 사람이다.

「무엇인지는 신경이 정말 쓰이지만……여기서 여는 것은 과분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우선 가볼까요?」

「……네」

 호타루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둘은 손을 맞잡는다. 연인이 되고 나서는 손을 잡는 것도 바뀌었다. 손가락의 사이로 스르륵 들어오는 카코의 손가락은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그것을 맞이하는 측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나란히 걷는다 보폭은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누군가와 걸을 때는 조심스레 한 발작 뒤에서 걷는 호타루도, 카코와 걸을 때만은, 곁에 서는 것이 가능하다. 칭찬도 들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다. 어떤 선택을 해도--아이돌이 된다는 선택에 대해서도--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수 없었던 호타루로서는,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도 올곧게 되는 것은 처음이라, 정말로 행복했다.
 사람이 지나가는 거리를 둘이서 천천히 걷는다. 오늘 데이트는 카코의 쇼핑하는데 호타루가 같이 가는 식이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일에 대해서나 일상에 대해, 3일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좀처럼 끊어질 기색이 없다.
 2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카코가 추천한 레스토랑에서, 우선은 조금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개인이 경영하는 작은 가게이지만, 런치 타임인데도 두 사람 분 자리는 비어 있었고, 수량 한정 메뉴도 남아 있었다. 거기에 호타루 취향의 가게 분위기, 마지막으로 카코와 함께 있어서 일까, 어쩌면 지금까지 인생 중 가장 훌륭한 식사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다시 손을 잡으면서 걸어, 목적지인 쇼핑 몰에 도착했지만. 카코의 봄 옷을 사러 왔을 텐데, 어느새 카코는 자기보다 호타루의 코디네이트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 같고, 마지막에는 맞춤옷을 사자는 제안까지 했다. 과연 맞춤 옷은 아직 부끄러워서 거절했지만, 악세사리 정도라면, 이라는 것으로 어떻게든 서로 납득할 수 있었다.
 카코에게 이끌리는 대로 이런 저런 가게에 들어가는 것은, 호타루에게 있어서는 결코 지치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다. 평소 자기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하거나 몇 발자국 앞서 가는 사람의 등을 쫓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호타루로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이렇게나 이끌어 주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도중엔 호타루도 과감히 카코를 이끌었고, 카코는 그것을 미소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눈에 띈 가게를 닥치는 대로 들어갔고, 위험할 정도로 지갑이 얇아졌지만—그 시간이, 꿈 같았다.

「너무 들떴을 지도 모르겠네요」

 휴게용 벤치에 앉은 카코가, 옆에 짐을 둔다. 옷이 든 봉투가 3개, 그보다 작은 잡화나 액세서리가 들어간 것이 4개. 호타루도 옷 봉투 2개와 잡화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 즐거운 탓에, 지갑 끈이 느슨해져 버렸다.

「그렇네요……예정보다 돈을 많이 써버렸어요. 조금 들어 줄까요?」

 과연 카코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너무 늘어나서, 어느덧 손도 잡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 조금 도와줄래요? 손을 내밀어주세요」

「손? ㄴ, 네!……」

 그 말대로 봉투 너머로 내민 오른손. 카코는 자기가 들고 있는 봉투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호타루의 손을 잡고, 그 집게 손가락에 미끄러뜨렸다.

「엣? 이것, 은……」

「액세서리라고 말해주었는걸요. 그래서 조금 전에 몰래 샀어요」

 호타루의 집게 손가락에, 심플한 실버 반지가 끼워졌다. 호리호리한 링에 새겨져 있는 것은, 잘 살펴 보면 은방울꽃이다. 카코는 같은 디자인에 약간 큰 반지를 호타루에게 건네주고,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호타루는 조심조심 그 섬세한 손가락에, 자기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반지를 끼웠다. 마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듯한 행위에, 손가락이 떨리고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든 다 끼우고, 호타루는 무심코 깊이 한숨을 쉬었다. 카코가 자기 손가락에 끼워진 그것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첫데이트 기념이네요」

「네—소중히 간직할게요. 절대로, 평생……!」

 울 것 같으면서도, 호타루는 다시 한 번 오른쪽 집게 손가락에 있는 은빛을 보았다. 카코가 자신을 위해 골라준, 둘이 같은, 호타루에 있어서 행복의 꽃이 새겨진 링. 농담도 과장도 아닌, 가장 커다란 보물. 호타루는 다른 사람에게 받은 것은 무엇이라도 소중히 하지만, 이것은 그 이상으로 특별하다.

「……어머?」

 호타루를 지켜보고 있었던 카코가 무언가를 깨닫고, 시선을 위로 향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다른 손님들도 어쩐지 웅성거리며 하늘을 보고 있다.

「무슨 일 있나요……?」

「어머. 비 같네요」

「비?」

 무심코 소리를 질러버렸닫. 올려다 보면, 반투명한 천장이 젖어 있는 것 같아 보였고, 귀를 기울이면 확실히 빗소리 같이 들린다. 오늘 아침 일기 예보에서 강수 확률은 10퍼센트라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 그 10 퍼센트에 당첨되는 것이 자신이었다..

「우산, 가져오지 않았어요. …… 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러면 안 되요」

 호타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카코는 재빨리 짐을 모았다.

「사실은 가고 싶은 곳이 더 있지만……일단 내 집으로 갈까요?」

「에? 카코씨네 집, 말인가요?」

「이 근처이에요, 실은」

 어째서 데이트하러 온 쇼핑 몰 근처에 카코의 집이 있는 걸까, 혹시 별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호타루였지만, 생각해 보면, 언제나 먼저 전철을 내리는 것은 호타루였기에, 카코가 내리는 역이 어디인지는 몰랐었다. 카코는 첫 데이트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소개해 줄 생각이었다, 라는 것이었다.


 하늘은 저 끝까지 답답한 회색 빛으로 가득 차 있고, 아무래도 소나기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빗줄기는 그다지 강하지 않아, 최대한 압축한 짐을 꼭 껴안고, 두 사람은 카코가 사는 맨션까지 달렸다.
  아이돌이기에 체력은 있는 편이라, 젖은 쥐 꼴은 되지 않았다. 카코가 맨션 관리인에게서 호타루가 갈아 입을 옷을 빌리고, 재빨리 카코의 방에 들어갔다. 그곳은, 아무런 특색도 없는 1 LDK이었고, 부드러운 색채로 통일된 장식들은 오늘 처음 들어간 레스토랑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 기운 내주세요, 호타루짱」

 코코아를 타가지고 온 카코의 말에도, 호타루는 소파에 앉은 채 고개 숙일 뿐이었다. 솔직히, 카코와 함께 있어서 방심을 한 탓도 있다. 덕분에 카코가 세워둔 이 후 예정도 모두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불운은 영혼에 달라붙은 것이라 완전히 사라질 일이 결코 없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다음 데이트 때 가면 돼요. 그리고, 있지요--」

 곁에 앉은 카코는 미소를 지은 채, 갑자기 호타루를 껴안고는 입술을 빼앗았다. 호타루는 어깨를 움찔했다. 비의 차가움과 입술의 뜨거움이 섞인 감각은 어쩐지 기묘했다.

「여기라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요?」

「그것은……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카코가 전혀 아쉬워하지 않기에, 호타루도 마냥 의기 소침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테이블 위에 있는 컵에 들었다. 이것도 조금 전 쇼핑 몰에서 카코가 산 색이 다른 컵 두 개. 나란히 두면 각각 고양이 그림이 붙어, 꼬리가 하트 형태를 그린다.
  코코아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한 모금 마시자, 달콤함과 따뜻함이 몸 속까지 퍼진다. 카코와 둘 만 있을 때는, 언제나 달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것 같다.

「그래. 호타루짱에게 받은 선물, 열어도 괜찮을까요?」

 카코가 손뼉을 치며 그렇게 말했고, 호타루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침실로 향했다. 바로 호타루가 준 그 작은 상자를 들고 왔다. 비 때문에 걱정했지만, 아무래도 가방 안에서 무사하게 있었던 것 같다.
 카코가 가지런히 무릎 위에 상자를 두고 조심스레 포장을 풀고, 나온 상자의 뚜껑을 연다. 내용은 빗과 비녀 세트였다. 설날에 입고 있던 화려한 기모노와 어울릴 것은 비녀와 머리카락을 빗을 수도 있고 장식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빗, 새겨져 있는 것은 밤에 살랑거리는 풀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작은 빛 무리-- 결국은, 여름 밤을 수놓는 반디들이었다.

「아, 그, 있잖아요, 그 무늬를 보고, 정말로 망설이다가……너무 무겁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장 예쁜 것 같아서, 정말로 가게에서 1시간 정도는 망설여서……」

 카코의 반응을 엿보는 것도 무서워서, 테이블에 있는 컵을 의미도 없이 바라보며, 호타루가 이야기를 했다. 1시간 동안 망설인 것도 사실이고, 그 가게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코에게 어울릴 것 같다고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하필이면 그것이 반디 무늬라는 것은, 카코의 반응을 보면, 지금까지 인생 중 최대급 불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타루짱」

 카코가 입을 열자, 호타루가 살짝 몸을 떨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진지한 음색으로 카코가 한 말은, 호타루의 상상하고는 다른 말이었다.

「나, 실은 살짝 불안했어요」

「? 불안--인가요?」

「내가 호타루짱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단지 어른으로서 아이인 호타루짱을-- 그런 의미로 호타루짱에게 전해진 게 아닐까, 라고. 그리고 호타루짱이 좋아한다는 것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라고. 그렇지 않다고는 알고 있지만, 불안했어요」

 호타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코가 고백한 그 의문은, 호타루도 예전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밝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사랑해 준 것처럼 보이는 카코가 실은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렇지만, 안심했어요. 호타루짱은 오늘, 그 반지를 받아 주었고, 이런 선물도 주었으니까요--이제, 의심할 일은 없겠네요」

 카코가 선물을 테이블에 두고, 상냥하게, 인형 모양 사탕이라도 취급하는 듯이 호타루를 껴안는다. 겨우 호타루도 얼굴을 들어 올린다. 숨결마저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에서, 눈과 눈이 마주쳤다.

「고마워요, 호타루짱. 정말 좋아해요. 정말로, 좋아해요」

 호타루의 팔이 반 무의식 중에, 카코의 등을 두른다.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신사 벤치 위에서 키스를 했을 때보다도 가까웠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저도, ……좋아, 해요. 정말 좋아해요. 카코씨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자석 반대 극이 당기듯이, 혹은 돌고 있던 별가루가 혹성의 인력에 잡힌 듯이, 혹은 떨어진 과실이 부드러운 그늘 잡초로 향하듯이,호타루와 카코는 입맞춤을 했다.
 카코의 호박색 두 눈동자가 물기를 띠고 있는 것을, 호타루는 볼 수 있었다. 다음 순간에는 자신의 눈도 똑같이 된 것을 느꼈다. 한 번 떨어지고, 숨을 쉬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단지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카코가 살며시 혀끝으로 호타루의 입술 사이를 덧쓴다. 호타루에게도 이미 그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조심조심, 어떤 기대도 담으며 입술을 연다. 카코의 혀가, 입술만으로도 느껴지는 코코아의 맛과 향을 더욱 진하게 거느리며, 천천히 들어오다. 물론 지식만 있을뿐 경험 같은 건 없어서, 호타루는 입 안을 뒤지는 듯한 미지의 감각에 당황한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오싹해지고 몸의 떨림도 멈추지 않아, 손은 카코의 옷을 강하게 잡고 있었다. 카코가 손으로 호타루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지만, 그것 조차 지금의 호타루에게는 역효과였다. 불안을 부추긴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카코의 손이 기분이 좋아서, 더욱 더 오싹오싹한 감각을 느껴버린다. 그럼에도 입술은 멋대로 카코를 유혹하고 있고, 유혹을 받은 카코는 지금은 사양하지 않겠다는 듯이--적어도 호타루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호타루를 맛보고 있다. 소리가 울린다.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도 빠르고 강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는 몰랐다. 얼굴은커녕 몸 전체가 뜨거워져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데도 쓸데없이 아련하다. 가슴이 답답하고 간지러워서, 무섭고 달아서, 불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그 감정의 혼돈에서, 이윽고 자신도 몰랐던 자신이 나타난다.
 카코의 혀는 호타루에게 시간의 개념마저 빼앗았는지, 그 진한 키스가 얼마나 길었는지, 호타루는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카코가 떨어졌을 때, 그 혀끝에 투명한 실이 뻗어 나와 끊어진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 갑자기 굳어 있던 몸에서 힘이 빠졌지만, 카코에게 매달리고 있는 팔만은 그대로 있었다. 호타루의 입술 끝에서 흐르던 침을, 카코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닦았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계속 울리고 있다. 벽시계가 1초 1초를 천천히 새긴다. 휴일 맨션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조용한 것이었을까, 그런 의문도 잠깐 떠올랐지만, 그런 것은 이미, 어찌되었든 좋았다.
 ――아아, 반드시, 나는, 지금부터.
 호타루의 마음 속에서 생긴 그것은, 확신이었다. 두 사람을 멈추거나 주저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아무것도 없다.

「카코씨는……언제나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을 뿐인 저 같은 것을, 원하고 있네요. 그것이……굉장히, 기뻐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꿈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말이 되어 준다.

「그런데도, 저는, 좀 더 갖고 싶어져서……카코씨가 저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제가 카코씨를 갖고 싶은 마음만 커져서. ……어리광 부리고, 욕심 부리고」

「――그걸로 좋다고, 호타루짱이 말해 주지 않았나요?」

 카코가 아이다운 미소를 지었다.

「나도 지금 호타루짱을 갖고 싶어요. 그리고, 같은 정도로, 호타루짱에게 나를 주고 싶어요」

 그것이, 결정타였다.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함께 날아가기 위한, 탄환.

「카코씨. ……좀 더, 바라고 있나요?」

「……네, 오히려 원해요」

「괜찮아요. 카코씨에게라면……」

 왜냐하면, 카코 앞에서 빌린 옷을 입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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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이 마지막 편이 절정입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을 위해 번역하기로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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