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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쇼코 "살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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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5, 2015 14:25에 작성됨.

원본 주소 : http://ssimas.blog.fc2.com/blog-entry-4515.html#more

 

1: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03:20.25 ID:kIgC0qSs0

 

요즘 들어서 몇 번이고 같은 꿈을 꾼다.

 그 꿈 속에서 나는 손에 무척 길고 뾰족해 보이는 가위를 가지고 있고, 눈 앞에는 비굴하게 웃고 있는 내가 있다.

 그 녀석이 웃는 모습은 너무나도 추해 보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생각해 버린다.

 '이 녀석을 죽여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라고.

나는 분명 그거다. 뭐라고 할까, 기분 나쁜 녀석이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처참한 모습으로 웃거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지. 아마도.

 손에 든 가위는 녹이 슬어 있어서 사람은 커녕 종이도 뚫을 수 있을지 모를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그 가위를 눈 앞의 자신의 가슴에 겨눈다.

 천천히 힘을 줘서 밀어넣자 드디어 가위는 그녀의 가슴 속에 들어가고

그녀의 가슴 속에 날이 깊이 꽃힌 다음에 그녀의 표정을 다시 보아도, 추악하게 웃는 얼굴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2: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05:35.96 ID:kIgC0qSs0

 

............
......
...


자명종 소리가 울린다.
이불 속에서 손만 뻗어 더듬거려서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를 멈춘다.

오늘도 일어날 때 기분은 최악이네.
나는 기본적으로 야행성이기도 하고, 아침에 좀 힘든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보다는 그 감촉이 아직 손에 진흙처럼 들러붙어 남아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오늘도 꿈에서 나를 죽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을 죽이다니 큰 소동이 일어날 일이지만, 어차피 꿈이고.

내가 어떻게 하는 걸로 뭔가 결말이 바뀐다면 노력할 테지만 꿈 속의 나에게 의사 따위는 없다.
멋대로 손에 날붙이를 들고, 멋대로 생명을 빼앗아 갈 뿐이다.

 

3: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08:09.99 ID:kIgC0qSs0

 

요즘 들어 가끔 이런 꿈을 꾸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싫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서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데.

불쾌해진 기분을 얼버무리는 것처럼 몸을 뒤척였다.
 이대로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 꿈을 꾸는 건 좀 우울하지만 두 번 연속해서 꾸지는 않겠지.

다행히 오늘은 쉬는 날이기도 하고, 가끔씩 이런 날이 있어도 벌받지는 않겠지.
이불 속에서 웅크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친구랑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었어.
요즘 그는 바빠서 못 만나는 날이 많았으니까.

내일도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10:38.42 ID:kIgC0qSs0

 

............
......
...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나와 그녀 둘만이 서로를 향해서 서 있을 뿐.

그녀는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매달리는 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고, 눈동자의 초점은 이 쪽이 아니었다.
 그 표정은 나를 무척이나 초조하게 했다.

손에 있는 건 역시나 녹슨 가위로, 나는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그 가위를 찌르고 싶어진다.

 아아, 나는 또 이 꿈에서 그녀를 죽이게 되는 거구나.
꿈의 끝엔 언제나 심장을 꿰뚫는다. 그걸로 나는 꿈에서 깰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평소와는 상황이 달랐다.
 단지 웃을 뿐이었던 눈 앞의 나 자신이, 무슨 말인가를 소곤소곤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낮고 불명확한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빨리 그녀의 가슴을 꿰뚫으려고 평소보다 힘을 좀 세게 줬다.

날이 가슴 깊숙히 꽃히고, 그녀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입의 움직임을 봐 버렸다.

『좋아해.』

 떨리는 입술은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 말만은 하고 있었다.

 

5: saga  2015/03/23(月) 16:13:10.49 ID:kIgC0qSs0

 

............
......
...


"좋아해?"


점심 시간에, 소파에서 께나른하게 누워서 자고 있던 친구에게 물어봤다.

꿈 속에서 내가 "좋아해"라고 말했다는 걸, 자기를 죽였다고 하면 큰 소동이 벌어질 테니... 그건 덮어 두고.


"그래 봐야 꿈이고, 깊은 뜻은 없지 않을까."


뭐 그렇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자주 꾸던 같은 꿈 속에서 내가... 그녀가 뭔가 중얼거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어서 좀 신경이 쓰였다, 그것 뿐.


6: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15:23.00 ID:kIgC0qSs0

 


"근데 말야."


 끝내려는 줄 알았던 말을 내 친구는 계속 이어나갔다.


"너는 그 말을, 누구한테 하려던 걸까?"


 녹슨 가위처럼 둔하면서도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꿈을 친구랑 만난 날에만 꾼다. 그 사실을 눈치채자 어째선지 심장의 고동 소리가 시끄러워졌다.

 

7: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17:59.67 ID:kIgC0qSs0

 

............
 ......
 ...


우리들은 또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다.
거울도 없는데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건 무척이나 기분이 나쁘다.

도플갱어라던지 그런 얘기는 꽤 많지만... 만나면 죽게 된다는 게 왠지 이해가 간다.
적어도 나는 죽을 것 같다.

아니, 이제부터 내가 죽이는 걸 테지만.

 하지만 오늘 꿈은 또 좀 변해 있었고, 전에 꾼 꿈보다 더더욱, 여러 모로 달라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아무런 느낌도 안 드는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이 쪽을 보고 있다.

 게다가 내 손엔 항상 들고 있던 가위가 없었고, 몸은 묶인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눈 앞의 내가 무언가로 나를 찔렀다.
 그건 많이 봐서 익숙한 갈색으로 녹슨 날카로운 가위.

--아아, 그렇구나. 이건 거꾸로인가.
 이제부터 내가 나에게 살해당하는 건가.

 

8: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20:02.90 ID:kIgC0qSs0

 

그녀가 가진 가위가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그 끝이 내 가슴팍에 닿았다.
 푹 푹 하고 천천히 몸 속에 들어온다. 부드럽게 침입해 온다.

무섭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꿈 속이다. 하지만 그래도 심장 박동 소리가 시끄러웠다. 온 몸에 그 낮은 소리를 울려 퍼뜨린다.

 이 소리는 뭐였지, 어디선가 이거랑 같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소리는... 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심장이 멎는 순간 나는 내가 지금껏 계속 웃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떠올리며 입 안에서 "좋아해."라고 중얼거리자, 이제 더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9: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속보 VIP가 보내 드립니다. 2015/03/23(月) 16:21:27.46 ID:kIgC0qSs0

 

............
 ......
 ...


"친구. 나 있지, 친구가 좋아."

 "응? 오우, 갑자기 왜 그래?"


 좁은 차 안, 작은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무소의 점심 시간이 끝나고 레슨장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데려다 준다고 했다.

 레슨장은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왠지 말해 두고 싶어서..."

 "쑥스러운걸...... 너의 좋아한다는 말은 너무 무방비하다고 생각해."

 "무, 무방비라니,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게, 물론 착각은 하지 않겠지만... 너도 여자잖아. 그러니까 남자한테 그렇게 쉽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아아... 그런 뜻인가... 그래도, 그래도 문제 없어, 응."


 알아 버렸고 말이지, 그래서 나는.


"친구는, 친구니까... 앞으로도 계속, 친구야..."


이미 죽였으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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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 : 어......언뜻 봐선 그냥 잔혹 괴담 SS인것 같지만 사실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잔혹한 SS는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신사게에 올리지 않고 일반번역판에 올려 보겠습니다.

일단 내용에 대해 힌트를 드리자면

1 : 자기를 죽인다는 관용적인 의미

2 : 가슴에 날을 찔러넣는다는 행위 (心+刃=??)와 여기서 유추되는 마음가짐

정도군요. 제목도 본래는 「殺し屋さん」이지만 회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좀 바꿔 봤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한눈에 아실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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