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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P 「흑진주의 선율」(1)

댓글: 2 / 조회: 3411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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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7, 2013 18:12에 작성됨.

1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2013/03/27(水) 18:52:45.81 ID:WQDY/Ko/0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의 쿠로카와 치아키 씨의 SS입니다.







2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8:53:34.70 ID:WQDY/Ko/0



도쿄의 유명 호텔.

큰 공간 안에 장식된 샹들리에가, 너무나도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인다.
그 반짝임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서도 빛이 바래질 줄 몰랐다.

「드디어, 우리들이 여기까지 왔어」 

샹들리에의 희고 눈부신 반짝임에도 전혀 물들지 않는 칠흑의 머리칼.
그 머리칼은 그녀의 인격을 나타내듯, 매끄럽고도 똑바로 흘러내린다.
희미한 곡선을 그리는 눈썹도, 약간 치켜뜨인 듯 하지만 커다란 눈동자를 더욱 더 인상적으로 보이게 한다.
턱이 놀라울 정도로 작아서, 주위의 윤곽이 더 드러나 보이는, 그녀.

쿠로카와 치아키.

『아아. 그래도, 여기서 멈출 치아키가 아니잖아』 

「…후훗」 

「당연, 하잖아?」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라며 흐릿한 웃음에 자신감을 띄우며.
그녀는 언제나 자신감에 넘쳐 있다. 그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 서게 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일이 있었어」 

「때가 때니까, 가끔은 옛날 이야기라도 할까」 

『그래』 

오늘을 위해 준비한, 내 선물을 건네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느긋하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3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9:04:05.19 ID:WQDY/Ko/0



[ 과거 ] 

프로듀서에게는 이야기했으려나.
나는, 비교적으로 아가씨, 라고 불리는 집안에서 태어났어.
초등학생 때부터 명문이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수험공부를 했지.

그 때의 난 집안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었어.
그치만, 다른 사람들보다 유복한 집에서 살고 있다, 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말야.

일반적인 가정에는 없는 오락이 우리 집을 점거하고 있었어.
다도, 꽃꽂이, 서예같은 좀 얌전한 것들.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클래식 감상에도 손을 뻗쳤고.

어릴 때부터, 그건 당연한 일과와도 같이 매일의 삶 속에 새겨져 있던 거였어.
그러니까 의심하지 않았던 거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그 인식은 무너져갔어.





4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9:20:47.86 ID:WQDY/Ko/0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서, 난 많은 사람들과 만났어.

대화를 하면서, 난 내 자신의 입장을 다시 인식하고 말았어.
일반적으로 유복하다고 말하는 집에서조차, 이런 교육을 받지는 않는다고.
나는 '초'라는 글자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가씨'였다, 라고.

세상사라는 이름의 상식을, 나는 너무도 모르고 있었어.
어릴 적부터 들었던, 「치아키는 정말로 착실하구나」라는 평가는, 
어디까지나 쿠로카와 가 안에서만 통하는 평가였던 거야.

매일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친구와 노는 시간조차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집안에서 하는 교육에 몸을 맡기고, 얼마 없는 오락거리를 즐기고.

내가 그것을 '이상하다'라고 느끼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
그러나, 내가 그 습관을 교정하거나 버리거나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습관이란 내게 정착되어있던 것이었어.
그 때부터, 였을까.

내 생각과, 집안의 생각에, 마찰이 있기 시작한 건.









5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9:31:44.02 ID:WQDY/Ko/0



고등학교 3학년 겨울.
공부를 싫어하지는 않았던 나는, 수험공부도 할 겸, 순조롭게 공부를 하고 있었어.
머릿속 한켠에서는, 이건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지.

그야, 이건 십 수년에 걸쳐 내게 들러붙은 습관이었으니까.
나는 나 자신의 의사로 공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습관에 따라 그냥 하고 있는 걸까.

나 자신조차 알 수 없게 되어갔다.

그 때였을까.
수험공부에 열중하던 내게, 부모님이 정기연주회의 티켓을 줬어.
「가끔은, 숨을 돌릴 필요가 있다」라는 말을 하고 말야.

분명 요즘 너무 옥죄고 있던 거 아닐까.
그래, 그럼 갔다 와 보자. 그렇게 생각했어.

거기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7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9:42:50.35 ID:WQDY/Ko/0



정기연주회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

확실히, CD로 듣는 것하고는 한참이나 박력이 달라.
미세한 선율까지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어.

아아, 이번에도, 정말 멋있는 연주였어.
정말로 의미있는 숨 돌리기였어.

아직도 귀에 울리는 여운에 잠기면서, 걸어왔던 길로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 떠올렸지.
다 돌아가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지만, 뭔가 해 볼까. 모처럼인걸.
하지만, 뭘 하지. 돈도 딱히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역시, 그냥 집으로 갈까. 노는 방법도 모르는 내겐 아무 생각도 안 떠올랐어.
할 것도 없고, 집에 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발을 떼었을 때.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저희들의 CD가 발매돼요! 괜찮으시다면, 부디!」 

연주회 회장을 지나, 찻길 건너편에 있는 CD샵.
거기서, 몇 명인가 같은 나이또래 여자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어.

뭐하는 걸까?

그냥 보는 거 정도로는 상관 없겠지.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으로 그냥 가긴 아까워.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선, 그녀들에게 다가갔지.





8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9:51:15.66 ID:WQDY/Ko/0



멀리서도 뚜렷하게 들리는, 선명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 반면, 옆에 있던 CD 플레이어에서 들려오는 빠른 템포의 노래.
아무래도, 그녀들은 샘플 CD를 나눠주고 있는 것 같았어.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즐거운 듯한 표정을 하고서.

보고 있어도,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가끔 지나가던 사람하고 악수를 하고, CD를 주고.
그 행위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질문을 참을 수가 없어서, 나도 그 지나쳐가던 사람이 되기로 했어.
그녀들의 앞에 선 건 좋지만, 대체 뭐라고 하면 될까.
그런 걸 고민하고 있자니, 그녀들이 나한테 말을 걸었어.

「안녕하세요」 

『에? 에에,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CD를 배포하고 있거든요, 한번 들어주세요」 

「저희들, 정말 열심히 노래한 거에요」 

『………』 

아, 이거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로 건넨 한 장의 CD.
심플한 케이스에 들어있는, 타이틀만이 적힌 CD.

정말로 알 수 없는 것뿐이었던 난, 생각을 정리해서, 드디어 입을 열었어. 






9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19:57:29.73 ID:WQDY/Ko/0



『저기…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 

「에?」 

『………』 

아차.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투를 해버렸어.
이래서야, 그냥 고압적으로 설교하는 꼴이잖아.
초조해진 나는, 다시 그녀들에게 제대로 된 의미를 전했어.

『미안. 당신들, 어째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아아, 그런 거였군요. 미소를 지우지 않는 그녀들.
어째서, 이렇게 계속 웃을 수 있는 걸까.
그녀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계속 건드리고 있었어. 

「저희들은, 아이돌이에요」 

『…아이돌?』 

「네, 뭐 말은 그렇지만…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지만요」 

아이돌. 아이돌이라고 하면… 대체 뭘까.
친구들이 빌려주고 듣고 하던 CD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었나.
내 기억의 인식에 초점이 전혀 맞지 않아서, 다시 물어보기로 했어.

『아이돌은… 뭘 하는 사람이지? 나, 잘 모르거든』 





11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20:18:24.25 ID:WQDY/Ko/0



「아이돌이, 뭘 하는가… 인가요」 

어째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해버렸나.
아니면, 너무나 추상적인 질문을 해 버렸나.
내 무지에서 온, 치졸한 질문에도 그녀들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에에 그러니까」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 일까나요」 

「구체적으로 대답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거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고」 

「다양한 아이돌이, 다양한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남들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일이라고 할까요」 

「아직 햇병아리인 제가 말해도, 설득력은 없지만요… 아하하」 

그런 말을 하며 마른 웃음을 흘리는 그녀였지만,
그 말에는, 선명한 의지가 담겨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12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20:26:41.40 ID:WQDY/Ko/0



『그래. 정말, 도움이 됐어. 고마워』 

당시의 내게는 너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서, 그걸 이루려고 하고 있었어.
그녀들이 남을 행복하게 하는 존재라는 그 존재 이유의 편린을, 조금이지만 안 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

『이거, 가져가도 되겠지. 나도 한 장, 가져갈게』 

『고마워, 응원할게. 힘내』 

조금 판에 박힌 말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의 표현이었어.
그 마음을 알아줬으려나, 만면에 웃음을 띠며 그녀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어.

「감사합니다!」 

그 미소에 끌려서, 나도 조금은, 웃은 것 같아.





13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20:33:33.54 ID:WQDY/Ko/0



그 뒤, 집에 돌아와서 정기연주회가 어땠냐고 감상을 물어봤을 때 난, 솔직히 곤란해 있었어.
잘 기억 못했으니까. 감동했어, 그건 기억하고 있었지.
그치만, 대체 무슨 곡이었지. 어떤 음색이었는지.

그런 건, 내 기억에서 전부 빠져나가 있었어.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어. 그녀들의 존재.
나와 같은 나잇대의 여자아이들. 그런데, 나랑 전혀 다른 입장이야.

일반적으로 보면, 나를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한 번 돼 봐, 라는 말을 듣고서, 정말 행복해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특히, 지금의 내 상태를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내 자신을 다시 반추하고 있자니, 부모님의 시선이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
당혹스러웠던 표정을 숨기고, 그냥 적당히 얼버무려서 넘겼어.
그래, 다행이구나. 이제, 공부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에게, 난 또 의문을 가지게 됐어.
공부는 잘 했지만, 난 이런 건 전혀 몰랐어.
그래, 질문거리란 당연히, 이거였던 거야. 

…나한테 세상 일은 전혀 가르치지 않고 공부만 시켜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라는 거지. 





14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20:47:17.86 ID:WQDY/Ko/0



그 의문이 내 안에 불안을 낳았어.
공부에 대한 교육환경은 충실한데, 어째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안 알려주는 걸까.
당연히, 사회인이 되어서 일을 하게 되면, 곤란해지는 건 나인데. 

몇 번, 세상 일을 배우려고 했지만, 어찌어찌 어물쩡 넘어갔던 적이 있었어.
그 땐 슬쩍 넘어갔다는 걸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생각하지.
 
그걸 하고서, 부모님한테 대체 무슨 이득이 있나, 나한텐 대체 무슨 이득이 있는 걸까?
그 생각이 날 꽉 사로잡았어. 일부러 손해를 보게 할 이유도 없을테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른다면, 사회에서는 제 좋은 대로 굴려지는 말이 될 뿐.
나보다도 한참 똑똑한, 그런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는 새에. 

일을 하게 된다면, 그건 커다란 결점이 된다.
일을 하게 된다면. 

아아.

난 깨닫고 말았어. 부모님이 뭘 하려는 건지.
좀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어. 사회인이 되는 게 아니었던 거야.
우리 집안의 여성은, 다들 그랬어.

난,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만다, 라는 걸. 







19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2013/03/27(水) 22:03:12.95 ID:WQDY/Ko/0



나는 쿠로카와 가의 딸.
내 부모님도, 맞선을 봐서 결혼했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당연히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부모님은 분명 내 행복을 바라고 있어.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과 결혼시키려고 하고 있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서, 날 열심히 갈고 닦고 계셔.

하지만.

그 부족하지 않은 미래는, 내게 있어서는 ‘부족함밖에 없던 거야’.
아직 뭔가 확실한 꿈이 있는 건 아냐. 하지만, 그것만은 알아.
집에서도 새장에 갇힌 새. 결혼해도 새장에 갇힌 새.

그래서, 중요한 나는 대체 언제 하늘로 날아가는 걸까. 





20 : VIPにかわりましてNIPPERがお送りします [saga sage] :2013/03/27(水) 22:13:55.82 ID:WQDY/Ko/0



오늘 만났던 그녀들을 떠올렸어.
아직 난 아이돌이 대체 뭔지 잘 몰라.
하지만, 그녀들의 신념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

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전력으로, 그리고, 그걸로 남을 미소짓게 하고.
나도 그녀들의 미소를 받았어. 나도,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그 때 흘러나오던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노래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데, 왜 그럴까.

옷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시크한 디자인의 전신거울에 날 비춰봤어.

만약, 내가 아이돌이 됐다면, 어떤 의상을 입게 될까.
그 때의 그녀들처럼, 프릴이 달린 의상?
아니면, 지금 내가 입은 듯한, 드레스일까.

무심코 본 거울 속 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어. 




23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3:32:48.05 ID:VMrTXD+x0



그 후 가방 정리를 하면서, 떠올렸어.
오늘 받아온, 그녀들의 노력의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CD를 말야. 

아아, 아직 안 들었지. 들어볼까나.
알아보기 위해서, 라는 이유로 사 본 그 CD.
심플한 검은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펼쳤어. 

이제 밤이니까. 예쁘장한 핑크색 이어폰을 귀에 꽂았어.
CD를 읽어들이는 소리가, 어째선지 질질 끄는 느낌을 받았어.

바로 노래가 시작되는가 했더니, 맨 처음에 멘트가 있었어.
자기소개, 노래 제목의 유래. 그리고, ‘자 그럼, 들어주세요.’

전주가 매끄럽게 귀속으로 들어갔어.
이런 노래는, 정말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노래 그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가 없었어. 적은 예산으로 힘겹게 만든 거겠지.

하지만, 어째선지… 정말로, 동경하게 되는 뭔가가 있었어.
…아니, 어째서, 라고 하기엔 정확하지 않으려나.

그녀들의 배경을 알게 됐으니까. 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저 이 CD를 들었을 뿐이라면, 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난, 완성도 넘치는 다른 많은 음악보다도, 마음이 끌려버렸어. 




24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3:47:21.74 ID:VMrTXD+x0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 몸을 눕힌 난, 생각에 빠져 있었어.

지금 이후로 내 장래는, 어떻게 될까.
아니, 그건 정해져 있어. 이대로는, 본 적도 없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하고…….
지금,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유명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는 꼬리표를 붙이기 위해.

난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몸을 맡기고, 일평생 따라가야 하는 건가.
아직 본 적도 없는 남편이라는 사람을 매일 배웅하고, 가사에 전념하는 생활을 보내게 되는 걸까.
이대로, 날갯짓하는 법을 모르는 채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채로, 끝나버리는 건가.

……난, 그딴 거 싫어.

그녀들처럼, 되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남을 행복하게.
구체적인 꿈의 윤곽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내게는, 가장 정확한 게 아닐까.
 
그녀들이, 어째서 그런 활동을 한 걸까.
내 질문에의 대답이, 새삼스럽게도 이제 와서야 보였어.
아이돌은, 남을 웃게 하기 위한 일.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미소짓게 하자. 





25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3:56:03.72 ID:VMrTXD+x0



그렇게 답을 얻은 나는, 꿈의 윤곽을 점점 더 확실하게 만들어갔어.

지금, 이런 곳에서 서 있는 것조차, 상상도 못했지만.
아이돌이 되고 싶어. 생각하는 대로, 좋아하는 일을 해서, 날갯짓을 해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부모님의 시선에서 도망치는 것도.
그 때의 나는, 의외로 냉정했어. 미래에의 통찰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도쿄의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난 자취하게 돼.
그리고, 도쿄라면 부모님의 시선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아이돌이 될 수 있어.

그러면, 일단, 대학에 합격할 만큼 공부는 해 둬야지.
거의 100% 가깝게 합격, 이라는 판정을 받아두긴 했지만, 방심을 할 순 없어.
그 긴장감이, 정체되어있던 공부에의 열의를 불태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어.

그리고, 합격 발표 날이 왔지.
 



27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4:07:58.25 ID:VMrTXD+x0



합격했어.

이걸로, 난, 꿈으로의 한 발을 내딛었어.
부모님께 합격했어요, 라고 연락하고, 집에 돌아갔어.
대학에 합격한 기쁨보다도, 생애 첫 자유를 얻은 기쁨이 더 컸다고 생각해.

분명 괜찮을꺼야. 이제부터는 혼자만의 시간을 얻을 수 있는걸.

봄부터 대학에 다니면서, 아이돌을 목표로 할 거야.
인터넷에서 이미 어느 정도 조사는 해 뒀으니까, 행동으로 옮길 뿐이었어.
하지만, 이사하는 것까지가 아직 바빠. 봄부터 해도 늦지는 않겠지.

부모님은 합격을 전제로, 도쿄 안의 맨션 방 하나를 빌리셨어.
짐도 다 풀었고, 이대로 살기 시작해도 문제는 없었지.

여기가, 내 집. 나만의 집. 아아, 정말, 여기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무 특별할 거 없는 전등이, 무한한 빛으로까지 느껴졌어.

그리고.

내 생활의 끝을 고하는 전화벨이 울렸어.
 





28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4:16:53.49 ID:VMrTXD+x0



일단, 한 번 돌아오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부모님으로부터의 전화인데다, 너무도 명확하게 내용을 전달받았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혼자 살아서 그러는 걸까. 대학에 대해서인가?

차 안에서 흔들리면서, 무슨 말을 들으려는 걸까, 하고 고민했어.
이럴 경우엔, 뭔가 꾸중을 들을 때가 많아.

기껏해야, 혼자 살 때의 주의점을 이래저래 들으면 좋을텐데 말야.
혼날 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고, 오늘은 기쁜 날인걸.

솔직히, 그 때의 나는 조금 붕 떠 있었어.
아니, 조금이 아니었어. 확실히, 붕 떠 있었지.
아주 약간의 시간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멍청하지. 

누구에게도 평등하게, 시간은 유한한 존재인데 말야.

몇 번인가 휴식을 취하면서, 드디어 집에 올 수 있었어.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곧 밤이 될 시간이었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왠지, 시끌벅적했어.

대체, 무슨 일이지? 




29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4:32:31.60 ID:VMrTXD+x0



저 왔어요.
한 번 더 말하고, 신발을 정리하고는, 안에 들어갔어.
몇 명의 웃음소리가 들렸어. 손님이 계시는 걸까?

대답이 없어서, 그대로 거실로 들어가니까, 부모님과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남자분이 술을 마시고 있었어.
그리고 그 옆에… 마찬가지로, 본 적 있는 여자애가 있었어. 

단번에 떠올릴 수 있었어.
 
부모님의 일 때문에 알게 된 것도 있고 해서, 집안이 단체로 사이가 좋은 친구였어.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가게 되어버려서, 사이가 좀 멀어졌지만.
어째서 여기 있는 걸까. 희한한 일이 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딱히 여기 있든 말든 상관 없었어.
일 이야기를 하는 것만이라면, 그녀를 데리고 올 의미가 없잖아.
그럼, 왜 그녀가 여기 있는 거지.

그리고 어째서 오늘, 내가 여기 있는 걸까.
우연이 겹친 걸까. 아냐. 저 아이는 머리가 좋았는데.
부모님도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어. 그래, 우연은 아냐.

그러니까.

치아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어.
모든 걸 이해하고 나니, 미래의 막이 닫혀버렸어.

치아키. 

「저 아이 기억하지? 치아키랑 같은 학교에 합격했다지 뭐니」 





30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4:43:05.77 ID:VMrTXD+x0



「그리고 또 있잖니, 기억하고 있니? 초등학교 때」 

뒤이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 들린다.
한 명 한 명, 내가 알고 있는 이름들만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뻔해서, 황급히 힘을 넣어서, 일어났어.
정신차리고 허리를 펴고 있었는지는 기억을 못 하겠네.
나한텐, 너무도 쇼크였으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뭐지 알겠어?
알고 있는 사람이, 같은 대학에 몇 명이고 있다는 의미가 말야.
대학에 가도, 난 그 사람들을 통해서, 부모님한테 감시받는다, 라는 거야.

같은 학부에 다니는 사람도 있었어.
대학에 가면, 혼자 살게 되면, 모든 게 바뀔 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현실을 보게 되고 말았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겠지.
세상 일을 모르는 딸을, 아무 대책도 없이 멀리 보낼 리가 없잖아.
그걸 못 알아채고 있었다니, 정말 멍청해도 정도가 있지.

아아, 어디에 가도, 난 새장에 갇힌 새.
날갯짓은 할 수 없어.

울 수도 없는, 새장 속의 새.



31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4:56:49.97 ID:VMrTXD+x0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꿈을 절대 포기하진 않았어.

혼자 사는 것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대학생으로서의 건전한 생활도 보내고.
아이돌한테는, 기초체력이 정말 중요하잖아.
규칙적인 생활습관에, 감사하게 되었지 뭐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리 알아둔 코스를 조깅.
가볍게 땀을 흘리고, 제대로 스트레칭을 한 뒤에 샤워를 하고.
대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런 트레이닝을 빼먹지 않았어.

친구가 물어봤을 때도,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다이어트라고 대답했어.
여자라면, 이렇게 대답해두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거기까지 말야.

이렇게 해 두면, 만에 하나라도,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다는 건 모르겠지, 하고. 

제대로 대학에 다니고,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어.
모범생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날 보면서, 부모님의 걱정도 점점 희미해졌어.

딱히 이성을 의식한 적도 없고, 딱히 관계를 맺은 적도 없었어.
그래도, 어째선지, 몇 명인가의 이성이 나한테 호의를 보인 적은 있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날 알 지 몰라도, 난 그 사람들을 몰랐어.

그런 사람이 내 도대체 뭘 좋아한다고 하는 걸까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성과 교제했던 적도 없었어.
그게, 부모님의 신뢰에 더욱 박차를 가한 거야.

부모님한테서 정기적으로 오던 연락도 적어졌어.
그리고, 난. 





33 : ◆Qo0X3AwBF. [saga] :2013/03/28(木) 15:15:19.11 ID:VMrTXD+x0



내 친구도, 악의가 있어서 내가 이렇고 저렇다는 걸 부모님께 보고한 건 아니야.
그저, 물어보시니까, 대답했을 뿐. 그것뿐이었어.

매일 기계처럼 똑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나를 보고할 필요도 없었다고도 생각해.
그래서, 부모님은 나한테서 눈을 뗐어. 그리고, 생각한 거야. 지금밖에 없다, 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이제 곧 스무 살이 되려고 했던 때였으려나.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하니까, 자료가 왔어.
인터넷에서 알아본 정보로 알고는 있었지만, 손에 직접 온 걸 보니까 또 신선한 거 있지. 

이 날을 위해 준비해뒀던 새 드레스를 입고, 평상시엔 잘 하지도 않는 화장도 하고.
일부러 몇 시간 전에 유명한 미용실 가서 머리도 하고, 그 곳으로 갔어. 

역시 대형은 달라,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아이돌 후보생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긴장을 안 했다?
오디션 때 심사위원이 뭘 물어올지 생각하는 적도 없었어.

그게, 나한텐 있었으니까. 질문을 받아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미 답을 갖고 있었다고.
처음 그녀들과 만나서 바뀌었던 거. 새로운 목표, 꿈을 가진 거.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없었어, 그야말로 입에서 줄줄줄 이야기해낼 수 있는걸.

다음 분, 쿠로카와 치아키 씨 들어오세요.
그런 말을 듣고선, 오디션장으로 들어갔다.




34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5:22:07.18 ID:VMrTXD+x0



오디션장 심사위원들은 날 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라.
 
일단, 착실히 몸가짐을 단련해왔으니까.
다른 후보생들보다도 오디션 심사시간이 길었다고 생각해.
많은 질문을 받고서, 생각한 그대로 이야기했어.

거짓말도 과장도 없이, 그대로.
 
그럼,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긍정적인 말로 돌아온 인사에, 난 정말로 안도했어.

꽤나 호감을 준 거 같아. 이건, 합격일 거야. 그렇게 생각했어.
자신 있었어.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어. 몇 년을 참아왔던 이 꿈이.

돌아가는 길에서도 웃음이 그치질 않았어.
오디션을 보러 갔던 차림 그대로 집에 돌아갔으니까, 돌아가는 도중에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어.
그것조차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아아, 아이돌이 되면, 이렇게 주목을 받는 걸까.
언젠가, 이 도쿄라는 별 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조차, 나 자신의 존재가 빛나 보이는, 그런 날은 올까.

그 때의 난, 말 그대로, 주위를 볼 수가 없었어. 




35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5:29:32.21 ID:VMrTXD+x0



오늘은, 학교도 안 나가. 뭘 하지.
아아, 돌아올 때 산, 패션 잡지라도 체크할까나.
아이돌이 되면, 유행을 선도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하는걸.

아니면, 노래 연습을 해야 하나.
아니면, 춤 연습?

꿈과 희망에 잠겨서, 하루하루 보냈어.

맨 처음에는 힘들었던 기초체력 기르기용 조깅도,
땀을 흘리면 흘릴 때마다 성장하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즐거움으로 바뀌어 있었어.

빨리 연락 오지 않을까.
난 언제, 아이돌로 활동할 수 있을까.

데뷔해서, 몇 년동안 이런 업적을 쌓고 싶어.
노래는,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어. 이런 활동을 하고 싶어.
머리를 맴도는 이상을 쌓아올리면 쌓아올릴수록, 시간은 빨리 지나갔어.

그리고, 오디션으로부터, 2주일 후.
기다리고 기다렸던 집 전화가 울렸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터였는데 말야.





36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5:35:50.89 ID:VMrTXD+x0



『네, 여보세요. 쿠로카와입니다』 

부모님한테서 온 전화는 아냐.
친구한테서 온 거였다면, 핸드폰으로 왔을 거고.
이건 분명, 기획사에서 온 전화였을… 

「치아키냐」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오디션을 나갔다지」 

심박수가 올라갔어. 어째서, 아빠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려서, 말도 잘 안 나왔어.
모든 걸, 알아버렸어. 어쩌면 좋지.

「할 이야기가 있다」 

「이번 휴일, 집에 돌아오거라」 

「기획사에는 사퇴하겠다는 전화를 해 두었다」 

사퇴한다는 전화?
그러니까, 나 합격했다는 거야? 

『잠깐, 시간을』 

말을 하려는 시점에서 전화가 끊겼어.
말도 안 돼, 대체 왜. 합격했는데.
지금 다시 전화를 해도 괜찮을까. 괜찮으면 좋겠어.

내 바람은, 그냥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어.





37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15:44:01.29 ID:VMrTXD+x0



같은 학과의 친구도 있어서, 같은 과목을 듣고 있었어.
그러니까, 다음 쉬는 날이 언제인지는 부모님도 알고 있어.
 
이젠, 각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들은 거지만,
내가 기획사에서 나온 걸 본 친구가 있었어.
기획사 앞에는, 오디션 회장이라고 적힌 간판도 있었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한 일 때문에 알려진 거야.
거기에 엄청 튀는 옷이었고. 그것도 이유 중 하나였겠지? 

자, 그럼 이야기를 다시 돌릴게.

귀성한 날 기다리고 있던 건, 굳은 표정의 부모님.
거기에, 전에 왔던 친구의 아버지였어.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혼났어.
그런 일을 하라고, 혼자 살게 한 건 아니다.
치아키를 위해서, 장래를 위해서. 그런데 넌.

돌아와라.

그 한 마디가 내 마음 속 깊이 찔렸어.
하지만, 도쿄에 있는 집의 소유권은 부모님한테 있는 걸.
그 사실 하나 때문에, 나한테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 거야.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 



43 : ◆Qo0X3AwBF. [saga] :2013/03/28(木) 21:07:20.20 ID:VMrTXD+x0



내 꿈은 사라져갔어. 사람(人)의 꿈(夢)이라고 쓰고 덧없다(儚い)고 읽는걸. 
이렇게 간단하게, 수 년 동안, 그렇게 정열을 쏟았던 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다니.

몇 시간이고 걸려서 집에 돌아왔는데, 이야기는 15분도 못 했어.
아니, 이야기라고 할 것도 없었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부모님은 날 신뢰하고 있었어. 근데 그 신뢰를 배신했으니까.

집 밖에 나가니, 친구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어.
내 딸 때문에 미안하구나. 내 딸 때문에, 네가, 네 꿈이 이렇게.
딸한텐 잘 말해두었다. 너무도 경솔한 짓을 했다고.

아버지뻘 되는 어른이 내게 고개를 숙였어.
길디 긴 복도를 걷는 동안 쌓여있던 울분도, 어디론가 가버렸어.
솔직히, 비난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렇게까지 나오셔서야.

화낼 수도 없어. 소리를 치면서 비난할 수도 없어.

이 마음을 대체 어떡하지.
그 분은 내 얼굴을, 눈을 보고, 진지하게 사죄를 반복하고 계시는데, 난 시선조차도 맞출 수가 없었어.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등을 돌리고, 도망쳤어. 




44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1:18:22.89 ID:VMrTXD+x0



또, 몇 시간동안 전철을 타고, 사람의 홍수 속에 섞여서, 도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어.
다음 주에, 이삿짐 센터에서 와서, 짐을 친가로 옮긴다고 했어.

대학교도 휴학을 하게 됐어.
그 동안 짐을 정리하도록. 그런 말을 들었어.
방 입구에는,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기획사의 자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어.

아버지가 전화를 끊은 뒤에, 합격했던 기획사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어.
하지만, 이미 사퇴하는 걸로 처리되어 있어서, 내 다음으로 유력했던 아이가 합격한 걸로 되어 있었어.
부탁합니다. 그건, 착오가 있는 거에요. 부탁합니다.

몇 번이고 부탁했지만, 나 같은 여자애 하나가, 그 결정을 뒤집을 힘이 있을 리가 없잖아.
손에 들어온 꿈에의 실마리가, 눈 앞에서 무참하게도 녹아 사라져버린 순간.

그 후에, 우연히, 그 기획사 앞을 지나갔었던 때였을 거야.
그 때 오디션에서 봤던, 꽤나 예쁘장한 애가 그 날처럼 영업을 하고 있었어.

어째서, 그녀가 저기에 있어?
저기에 있어야 하는 건, 나란 말야.
근데, 왜, 저 사람이 저기서 웃으면서 일을 하고 있어? 

짐을 정리하고 나서, 집 안에 돌던 활기가 허무함으로 딱 바뀌어버린, 세상과는 딱 단절된 방 안에서.

나한테 할 수 있던 일은, 덩그러니 남겨진 침대 위에서, 소리내서 우는 일밖에 없었어. 





45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1:38:51.35 ID:VMrTXD+x0



그 이후로 닷새 정도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갔어.
밖에 나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 밥도 전혀 안 넘어가지.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고, 방에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산 영양드링크 병이 굴러다니고.

냉동보존하고 있던 먹을거리도 바닥을 보여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밖에 나가진 않았어.
밖에 나갈 기운조차 없었으니까. 이제 며칠밖에 갈 일 없어진 대학교까지도.

넘쳐나는 시간을 그냥 명하니 TV 전원을 켜고서, 흘러나오는 색하고 소리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데 썼어.

커튼을 전부 쳐버리고 나니까, 집안을 밝히는 건 TV의 빛밖에 없어.
거기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마저, 나한테는 너무 밝아서 볼 수가 없었을 정도로

그리고 밤에 나오는 버라이어티,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돌을 발견하니까, 눈물이 나왔어.
언젠간 나도 저런 반짝이는 세계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장에서 나가 날개를 펴고, 그대로 어디까지고 날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침대에 몸을 던지고, 그저, 초침만 보고 있었어. 



전화벨.

대체 또 뭐야. 이젠,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1분 가까이 울린 전화벨도 끊기고, 방에는 정적이 내려앉았어.

조심조심 핸드폰 화면을 엿보듯 확인했어.

거기에 말야, 한 통의 음성 메시지가 들어있었어.





46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1:53:06.59 ID:VMrTXD+x0



친구한테였어.
 
며칠씩이나 아무 말 없이 학교를 쉬었으니까 온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녹음되어있을 거라는 걸 직감했어.

갑작스레, 그녀의 아버지가 사죄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어.
자신의 잘못조차 아닌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사과하셨어.
이제 그녀와 만날 일이 없을 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이더라.

한 건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음성메시지가 재생되었어.

미안해요. 나 때문에, 치아키가. 정말 미안해요.
용서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경솔한 짓을 했어요.
지금, 저도 아버지도, 치아키의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어요.

책임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에요.
뭔가를 하고 싶어, 라는 치아키를 처음 봤으니까요.
이제는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포기하지 않을 거에요. 병주고 약주고 뭐하는 짓이냐고 해도 할 말이 없어요.

전 치아키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꿈을 응원하고 싶어서.

이 기회를 놓쳐선, 정말로 치아키의 꿈은 그게 마지막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니까, 전 포기하지 않을 거에요. 치아키가,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치아키의 아버님, 맞선 상대를 찾고 계세요.
이대로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결혼하게 될 거에요.
그 전까지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정말로, 치아키가.

메시지는, 이상입니다.

제한된 녹음시간의 한계 때문이었겠지, 도중에 끊겨버린,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심정을 나타내듯, 이 메시지에는 확실한 열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질한 음성과 함께 내게 온 메시지는, 내게 인생의 모든 것을 건 내기를 제안하고 있었어. 




47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2:12:29.16 ID:VMrTXD+x0



음성메시지를 들은 건 2월 24일 아침.

그 날로부터 5일이 지나고, 남겨진 시간은 오늘을 합쳐서 이틀뿐.
이 이틀간 전부 뒤집어버리지 않으면, 내 미래는 끝나.
그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난 행동을 하고 있었어.

그야, 포기할 수 없었는걸. 아이돌이라는, 꿈의 직업을.

집에서 온 예금통장을 확인했어.
귀성 비용을 빼고서도, 십 수만 엔 정도는 남아있었어.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도쿄의 유명 기획사란 기획사마다 전화를 걸었어.
그 날 바로 결과를 알려주는 프로덕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곳을 중점적으로.

시간이 없어. 그렇지만, 몸단장은 해야지.
미용실도 예약하고, 그 동안 할 수 있는 걸 하자.
건조해진 피부나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지만, 이건 며칠 갖고 낫지는 않아.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도쿄를 돌아다니는 이틀이 시작된 거야. 




48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2:18:22.48 ID:VMrTXD+x0



이전처럼 할 순 없었어.
꿈과 희망에 넘치던 나는 없어졌으니까.
그렇게나 잘도 질문에 답하던 내 입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어.

여유를 가지고 오디션을 보는 아이돌 후보생들.
거기에 비해, 시간도, 뭣도, 전부 쫓기고 있는, 여유 없는 나.

심사위원들이 누굴 고를지는, 일목요연하잖아.
도중에 나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어. 나도 날 한심하다고 생각했다고.

분해.

하지만, 울 시간이 없어.
아침도 점심도 안 먹고, 많은 수의 기획사들을 돌아다녔어.
수첩에 스케줄을 적고, 오디션의 대기실에도 전화를 걸었어.

다른 후보생들은 나한테, 뭐라고 하기 어려운 시선을 보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전화를 걸고, 이동하고,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어.
떨어지고, 떨어지고, 전화를 걸고, 이동하고, 이동하고, 또 떨어지고.

첫 날의 예정을 끝난 내 얼굴은, 지금 내 얼굴에선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얼굴이었어. 




50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2:34:48.92 ID:VMrTXD+x0



드디어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었어. 

이 한 끼로 하루 치의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때의 내게 있어서는, 귀중한 에너지원이었어.

샤워를 하고, 피부하고 머리를 정리하고.

누가 봐도 예쁘다고 칭찬해줬던 내 검은 드레스.
조금 더러워지고, 여기저기 주름이 지고 말야.

그걸 보고서, 또 슬퍼져서는, 그리고 깨달았어.

아, 난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아이돌이 정말 되고 싶었구나, 하고 말야.
나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만은, 하기 싫다는 것도.

그 때의 계절이 계절이었던 만큼, 조금 얇은 이불을 걸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렀던 눈물 때문에, 뽀송뽀송했던 베개가 조금, 차가웠어.

이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서, 잠이 들었던 거야. 




51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2:42:56.63 ID:VMrTXD+x0



2월 25일 이른 아침.

오늘을 놓치면 이젠 남은 게 없어. 오늘 하루로 모든 게 결정되니까.
언제나보다 빨리 눈이 뜨여서, 제대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어.

미용실에 설치된 전신거울에 내가 비쳤어.
여전히 거칠어진 피부나, 머리카락도 보였고.

몇 번이고 전철을 타서, 또 기획사를 돌기 시작했어.
여유가 있는 척하고 오디션을 봤어.

하지만, 상대도 역시 프로잖아?
몇천 명, 몇만 명이나 되는 후보생들을 매일 보는 사람들이니까,
그 정도의 잔재주는 금방 들켜버리는 거 있지.

남은 기획사는 이제 두 곳.
이 두 곳에서 안 되면, 내 인생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평생 할 수가 없어.

구겨진 소매를 다시 펴고, 눈물을 닦고.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고, 두 곳의 기획사에 들어갔어.

하지만.

내가 오디션에서 합격하지는 못했어. 



52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2:48:55.34 ID:VMrTXD+x0



기획사에서 나왔던 게 4시 조금 지나서.

한낮의 태양도 지기 시작하고, 조금씩 기온이 떨어져가는 것도 피부에 느껴졌어.
한 손에 들고 있던 백도, 제대로 들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었어.

아아, 이제 끝났어.

새로운 인생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어.
아직 본 적 없는 내 남편. 그 사람이, 좋은 남편이라면.
거기서 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기획사 앞에 있던 공원의 원형 의자에 앉았어.

괜찮아. 아빠가 골라준 사람이니까,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날 소중히 생각하시는 부모님이 고르시는걸.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분명 날 행복하게 해 줄 거야.
분명, 날.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자연스레 눈물이 흘렀어.

서둘러서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려고 했어.

근데, 없어. 안 넣었나.

이런 우는 얼굴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어딘가로 가버리고 싶어.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어. 





『이거, 쓰실래요?』 






53 : ◆Qo0X3AwBF. [saga sage] :2013/03/28(木) 22:56:25.36 ID:VMrTXD+x0



「에?」 

『아… 괜찮으시다면, 이긴 한데 말이죠. 저기… 울고 계시는 거 같아서』 

일단, 손수건을 받아들고, 눈물을 닦았어.
뭔가의 권유일까. 그렇게 생각해서는 고개를 들었어.
안경을 끼고, 상냥한 듯한 미소로 날 보고 있었어.

『무슨 일, 있었나요?』 

『아차… ㅈ, 죄송합니다. 그, 버릇이라서… 남 일에 자꾸 신경을 쓰게 되네요』 

「………」 

도쿄도 이걸로 마지막.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누군가가 날 기억해 준다면.
기억해준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겠지. 

「그럼… 조금, 들어주지 않겠어」 

「아니, 길어져 버릴 지도 모르겠지만」 

『네』 

그의 순수한 웃음. 오랜만에 본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오디션에서도, 다들 긴장한 얼굴들뿐이었으니까.

어째선지, 오디션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인데.
그한테는, 친구랑 말하는 듯이, 할 수가 있던 거 있지.

그래. 

당신한테, 말야.

프로듀서. 





57 : ◆Qo0X3AwBF. [saga] :2013/03/29(金) 12:26:46.92 ID:PGBXipSe0



『…그랬군요』 

당신 표정에는 슬픔도 동정도 안 보였어.
순수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고 있었지. 

『…그럼, 여기서 하나의 제안, 이긴 한데요』 

『제안… 아니, 아니죠. 어느 쪽이냐면, 권유인데 말이죠』 

『아이돌, 하지 않을래요?』 

「………」 

「그건, 대체 무슨…」 

거의 모든 기획사에 응모해서, 떨어졌어.
그런데, 아이돌이? 남은 기획사는 없었을 텐데. 

『에에 그러니까… 어딘가, 가게라도 들어가서, 어때요?』 

『저쪽, 카페라든가』 

「…에에」 

아직 아이돌이 될 기회가 있다고? 

『아, 죄송합니다, 그러고보니까, 명함을 안 보여드렸네』 

『저, 이런 사람이거든요』 

내민 명함을 보니까, 프로듀서라고 적혀 있었어.

본 적도 없는, 기획사 이름하고 같이 말야.

그리고, 그 이름이.




신데델라 걸즈 프로덕션. 




58 : ◆Qo0X3AwBF. [saga sage] :2013/03/29(金) 12:42:21.86 ID:PGBXipSe0



근처의 카페까지 가서, 창가 자리에 앉았어.

아직 조금 남은, 모르는 사람에게의 불안을 씻어주려는 것 같이 말야.
당신 분명 엄청 익숙하게, 커피하고 홍차, 케이크 세트를 주문했었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만 해도, 고마워서 말이죠』 

『그래서… 읏차. 이게 저희 자료에요』 

『내일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신생 기획사고요』 

『소속 아이돌을 스카우트하려고 다니던 중이었어요』 

건네줬던 자료를 봤어. 책자처럼 커다란 자료.
외관. 사무소 안에 완비된 시설, 트레이너. 여자 기숙사.
놀라웠던 건, 모든 금전적 부담이 면제된다고 기재되어있던 거였어.

『기숙사에서의 식비만은, 본인이 부담하셔야겠지만요』 

『사장님 방침이라서,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말이죠』 

『사장님의 남을 응원하는 그 마음에 끌려서, 저도 이 기획사에 입사한 거에요』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까, 떠올라서요』 



『당신을, 스카우트하고 싶어요』 

『그리고, 반드시 탑 아이돌로 만들어줄게요』 

『…해 보실래요, 아이돌』 





59 : ◆Qo0X3AwBF. [saga sage] :2013/03/29(金) 12:53:07.29 ID:PGBXipSe0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봤어.
울다 만 얼굴에, 주름투성이 드레스.
손에 든 가방도, 이틀 들고 다니면서 엄청나게 더러워졌어.

정말로 꼴사나운 내 모습.
하지만, 신기하게도 싫지는 않았어.
이 모습은, 내가 꿈을 쫓아가던 결과니까.

여기라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아이돌을 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대학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눈 앞에 있는 온화해보이는, 조금 믿음직스러워보이지 않는 이 사람이 프로듀서?
하지만, 엄청 진지해보이는 그 말은, 정말 잘 알 수 있었어.

아까 이야기했던 의문과 함께, 결의하고, 약간의 신뢰가 그에게 전해졌어.
그리고, 새로.

이제부터 함께 해 나가야 할 존재니까.

「당신이 프로듀서? 처음 뵙겠습니다, 난 쿠로카와 치아키 」 

「내 목표는 탑이 되는 거야. 어떤 특훈이더라도 뛰어넘어 주겠어」 

『………』 

『아아! 이제부터, 잘 부탁합니다! 』 

「후훗. 나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해야 하나」 



────── 역자 후기.

잘립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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