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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다발 3화 -안개꽃다발(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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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5, 2020 23:47에 작성됨.


 문을 열자 공기는 차가워 속이 가라앉는다.

 모르는 사이에 달은 구름 뒤로 가려져 창백한 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가로등의 칙칙한 인공 빛만이 세상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

 숨을 들이마시고 성큼성큼 한 걸음을 내딛는다. 신발 밑창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퍼지고, 하나 둘 이어진 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점철되어 점점 빨라진다.

「시즈카, 시즈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단숨에 계단을 내려와 달이 없는 밤의 도시로 뛰어 들었다. 어디론가 앞으로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무심하게, 손만 뻗어 앞으로만 발을 내딛는다。

 그것은, 오기로 부를 수 있는 멋진 것이 아니고......더욱 본능적이고 부끄러워하는 부분을 다분히 포함한, 갈증처럼 강한 욕구였다. 사막속에서 물을 구하듯, 어둠속에서 불빛을 구하듯, 마치 어린아이 같은 가냘픈 적막만이 내 몸을 앞으로 밀었다.

「있는거지……! 오늘은 약속한 날이니까、내게 오고 있는거지、시즈카……!」

 시즈카는 반드시 어딘가에 와 있다. 근거는 없지만 진심으로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분명 시즈카는 아직 앞을 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분명 시즈카는 아직 나와 보낸 그 날들 속에 갇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설령 나와 떨어져 있어도 두 사람의 날들을 이어주고 있던 '약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나날은 그날 그대로 멈춰있다. 약속은 항상 내쪽에서 했으니 더 이상 관계가 진전될 수도, 우리가 멀리 갈 수도 없다. 그래서 시즈카는 반드시 지금까지 나와 약속한 장소 중 한 곳에 있을 터였다. 나와 함께 했던 추억중에 오직 한 사람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약속, 약속장소……。

「……우선, 공원부터 찾아보자……!」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사거리를 건너 아무도 없는 한적한 주택가를 나는 홀로 추억을 좇아 달린다. 끈적끈적한 밤의 바람은 마치 나를 다시 붙잡으려는 듯 뒤로 빠져 나간다. 가도 소용없다. 돌아서서 그녀는 잊으라고 귓가를 지날 때마다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틀림없이 내 목소리였고, 난 아직 이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여기다、이 모퉁이를 돌면 시즈카가……!

 어둠을 뿌리치듯 모퉁이를 돌아 나는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하아、하아……」

 어깨로 거친 숨을 쉬며 눈으로만 주위를 둘러본다.

 오른쪽을 본다, 시즈카는 커녕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왼쪽을 본다, 무언가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도망가버렸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여기에는 없구나、시즈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더 크게 숨을 내쉰다。

 숨을 고를수록 머리도 차가워지고 영사기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듯이 뇌리에 추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여기가, 시즈카와 지낸 첫번째 장소였네」

 땅의 차가움이 신발밑창을 타고 발로 흘러들어오는것 같아 나는 참을 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공원에는 그네와 철봉, 미끄럼틀 등의 놀이기구와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어느쪽인가 하면 나같은 고등학생이 놀러오는 그런 멋의 장소가 아니다. 시즈카와 둘이서 이곳에 온 것은 생각하면 완전한 우연이었다.

 ――그때、아직 시즈카는 제대로 웃고 있었다……。

 그네에 혼자 앉아 가볍게 저어본다. 낡은 쇠사슬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내 몸은 앞뒤로 진자처럼 어색하게 흔들렸다.

 그날 시즈카와 이곳에 온 것은 거의 우연으로 우연히 둘이서 이 근처에서 만났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던 나는 이 공원 벤치에 앉아 홀로 하늘을 보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때는 아직 봄도 여름으로 바뀌어 가는 황혼이었고 아직 후배들을 잘 알지 못했다. 내버려두면 좋으련만 왠지 그 쓸쓸한 표정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옆에 앉아 말을 걸어버렸다.

 그때는 무슨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 서로의 근황이니 장래니 하는 두서없는 이야기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때, 이 아이가 옆에 있으면 하고 그렇게 나는 느끼고 말았다. 그건 분명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그녀를 "여동생 같다"라고 말해버렸다. 나와 시즈카의 일그러진 관계는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나 때문에 시작된 것이니까, 모든것이 시작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지만……。

 옆의 그네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그때 나는 분명히 시즈카의 모습을 거기서 보았다. 손을 뻗어도 옆의 그녀에게 손이 닿지 않는다. 그녀는 비치는 몸을 살짝 앞뒤로 움직이며 구름에 가려진 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림자처럼 아득한 환상이구나, 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날 입었던 제복 그대로 이곳이 아닌 멈춘 세계 속에서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난 갈 수 없고, 내가 와도 그녀가 행복해지는 일은 없을거다. 어떻게보면 이것이 그녀의 가장 행복한 모습일 것이다。

「시즈카……」

 내가 그렇게 외치자 시즈카의 그림자는 슬그머니 내 쪽을 돌아보더니, 소리 없이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일어났다. 그림자는 마치 산책하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오른쪽과 왼쪽 다리를 움직여 공원 출구로 미끄러지듯 걸어간다.

「……으! 기다려!」

 그네에서 뛰어오르듯 떨어져 손을 뻗었지만 그림자는 비치고 내 손은 감각도 없이 빠져나가 버렸다. 균형을 잃고 고꾸라지면서 내 몸은 그림자쪽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런 나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계속 나아가더니 순식간에 공원 출구로 나가버렸다.。

「기다려、거기서! 시즈카는 어디있지!? 대체 어디로 갔어!?」

 그런 걸 물어도 대답이 나올 리 없는데도 나는 달려가 그림자를 쫓으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공원을 뛰쳐나가보니 하늘에는 더욱 구름이 드리워져 별도 보이지 않았다. 한층 어두워진 거리 사이로 그림자는 미끄러지듯 계속 이동했고 나는 그것을 숨을 헐떡거리며 쫓았다. 저 그림자만이 단 하나 남겨진 진짜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는 것 같았다。

「시즈카……! 시즈카……!」

 앞으로 앞으로 손을 뻗으면서 나는 시즈카의 환영을 계속 쫓는다.

 ――사과해야 하는데……시즈카를 원래대로 되돌려야 하는데……!

 그림자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가짜 거리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그림자는 나와 시즈카의 추억을 깨끗이 헤매지 않고 계속 걷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번화가 혹은 도서관 혹은 찻집...... 마치 레코드판 위로 바늘이 계속 나아가는 것처럼, 그림자가 가는 곳마다 나는 모가미 시즈카라는 소녀와의 묘한 관계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억해 냈다.

 레코드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그림자는 조금씩 옅어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자가 희미해짐에 따라 또 하나...... 내 모습을 한 그림자가 옆에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아、하아……어째서……」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 끊임없이 분비되고 있던 아드레날린으로 조심조심 움직이던 부들부들 무릎이 웃고, 차가워진 콘크리트에 손을 짚는다。

「어째서 아직……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 거야……? 난 이제 유령이 아닌데……제대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치하야짱은 어떻게 하고 싶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아니야……나는、그런 일 때문만은……」

「그럼 왜 언니는 거기 있는거야?」

「…………」

 그림자는 시즈카를 닮은 목소리로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것은 한없이 시즈카의 목소리를 닮았지만, 그러나 마치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처럼 현실감없는 거짓말 같은 목소리였다。

「저, 지금까지도 행복하잖아요? 이대로 돌아가요.」

 ――……이건 시즈카가 아니다。

「이대로 자매로서...... 계속 둘이서 살아가자. 우리 계속 이렇게 가족으로 해왔잖아. 잃은 가족을 대신해서..... 그렇지? 언니?」

 ――아아, 그렇구나. 역시 그렇구나……。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평소 시즈카처럼 조용하지 않은 뭔가, 가짜로 가득한 세상에서 가짜에 파묻혀 사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합성착색료를 빨아먹고 합성착색료를 뱉어내는 지금까지의 관계로 돌아가는게 훨씬 편하고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시즈카를 되돌리는 것보다 훨씬 쉽다。

「자, 언니, 일어나? 일어나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야. 지금까지처럼 언니라고 부르게 해줘? 키사라기 치하야의 여동생으로 있어줘?」

 그림자의 목소리는 귀에 요란하게 울린다。

 그것은 달콤한 말이었지만 내가 바라는 말은 아니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긴 했지만, 그 말이 내 마음을 강하게 울렸고, 내 마음을 얇게 덮은 거짓의 막을 반쯤 거칠게 걷어냈다。

 ――나, 시즈카를 좋아해……。

 속마음을 드러낸 내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흐른다。

「……갈 수 없어. 나, 그 여자와 더 이상을 갈 수 없어」

「…………언니?」

「나는, 시즈카가……모가미 시즈카를 좋아해! 그러니까……그러니까 다시 한번!」

 몇번인가 자세를 흐트러뜨리면서도 일어서고 휘청거리면서도 나는 걷기 시작한다. 보는 곳은 가짜 그림자가 아니라 구름에 가려진 달 쪽. 단 하나의 진짜 모습만이 내 눈에는 비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나는 시즈카랑 만나고 싶어! 그게 설령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나는 시즈카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그럼, 저를 제대로 찾아주세요. 저는 언제라도...... 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쓸쓸한, 하지만 어딘가 기쁜 듯한 목소리를 끝으로 그림자가 사라진다. 추억이 아닌 그녀와의 미래를 향해 지금은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해는 뜨고 해는 높이 이르러 깊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역 근처 분수로 걸터 앉으니 엉덩이 주위는 점차 따뜻하다. 밤이나 아침에 비해 사람이 꽤 많아져 시끄러운 소리 떼가 살갗을 어루만지듯 지나간다. 눈부시게, 따뜻하게, 나만 피해 세상은 흘러간다.

 봄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나만 짙은 색의 겨울에 남겨둔 채 화창한 봄의 황혼은 한가롭게 서 있었다/

「시즈、카……」

 아주 조금만 벌어진 입에서 몇 번이나 중얼거리던 말이 헛소리처럼 새어 나온다. 멍한 의식속에서 더 이상 그밖의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시즈카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알고있는 추억의 장소에도 어디에도。

 찾아도 찾아도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있는거야……시즈카……」

 그저,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저,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나도 단 하나...... 진짜를 갖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제 가짜는 질색이다. 그녀가 진짜 나를 원했듯이 나도 오직 모가미 시즈카라는 진짜를 원했던 것이다。

「진짜……진짜、네……」

 헉 하고 나는 숨을 삼킨다. 크게 뜬 눈에 어느 봄날이 떠오른다.

〈전, 예전에 치하야씨를 한번 만나러 간적이 있어요.〉

 저물어 가는 벤치 안에서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쭉, 부모님이 결정한 일을 시키는 대로 해왔지만...... 그때만은 자신의 의지로 한, 소중한『진짜 기억』이에요〉

 여기 오는 길에 꽃집에서 산 자그마한 안개꽃 한 다발을 석양에 비춰본다. 하얀 꽃잎이 주황빛을 빨아들이고 은은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안개꽃 자체의 하얗고 덧없음이 햇빛을 받아 더욱 사라지지 않는 탓일 것이다.

〈제 인생은, 가짜만이 산더미처럼 쌓인 인생이지만...... 그 진짜 추억 하나 있으면 저는 왠지, 쭉 저로 있을 것 같아요.〉

「……바보.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아직 방문하지 않은 둘이서 갔던 추억의 장소

 모든 것이 끝난 그 장소에서 모든 것이 부서진 그날 그대로 모가미 시즈카는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이제 거기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제대로 기다려줘 시즈카, 약속이니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는 제자리에 꽃다발을 놓고 역 쪽으로 뛰기 시작한다.

 하늘은 점차 푸르스름해지고 때는 저녁에서 밤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창밖은 점차 인공적인 불빛을 잃고 진한 청색의 밤하늘로 변한다.

 사람들로 가득 찬 전동차안은 봄날씨와 가짜의 차가움이 혼재된 기묘한 미지근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이전에 보았던 패기 없는 얼굴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승객들과는 조금 다르다...... 소중한 것을 깨달은 덕분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귀에 장착한 이어폰에서는 라디오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늘밤의 날씨는 맑은 날씨 시각에 의해 유성군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약하네, 나도 시즈카도」

 문득, 역 앞 분수에 놓고 온 안개꽃의 꽃다발이 생각난다.

 ――안개꽃의 꽃말,인가。

 그 꽃말은 청순과 맑은 마음. 그리고 변하지 않는 마음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구나. 단지, 그것을 속일 이유를 원했을 뿐……」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봐야 할 것은 거짓말을 한 것보다 왜 거짓말을 했는가 하는 배경이다......는 잘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시즈카도 자신의 생각을 거짓으로 굳히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부끄럽고 애절하다...... 혹은 동경과 같은 혹은 의존적인, 혹은 사랑과 같은 쓰디쓴 달콤한 한 쪽밖에 없는 진짜 기분을。

 곧 전차는 목적지에 닿는다.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제 나 하나뿐이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처럼 주변은 조용했고, 나의 한숨소리와 삐걱대는 바퀴소리, 차체가 흔들리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다른건 아무것도 없는 오직 한 사람을 단 한사람에게로 실어 나르는 쇠상자는 경쾌한 리듬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덧 하늘에 드리워져 있던 구름은 어디론가 흘러가기 시작하고, 푸르스름한 달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열차는 기계적인 안내방송과 함께 멈췄고, 문이 열리며 나는 한 걸음 내디뎠다. 달빛이 희미하게 내리쬐는데 한걸음 또 한걸음 나는 걸음을 내딛는다。

 ――이제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구름이 계속 흘러가고 별들이 그 전체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건 둘이서 찾은 마지막 장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전망대 중앙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탁、탁、벽돌로 만든 땅 위를 걸을때마다 맑고 높은 소리가 울린다。

 어느덧 구름은 찢어지고 은모래 같은 밤하늘은 구석구석 모든 것을 비추고있다. 그것은 언제 흘러넘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넘쳐흐르는 빛이 나와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역시 여기있었구나、시즈카」

「――――윽!」

 튕겨진 듯 소녀는 뒤돌아보며,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 얼굴은 잊을 리가 없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계속 생각해 온, 모가미 시즈카의 얼굴임에 틀림없다.

「치, 치하야씨, 어떻게」

「……약속했잖아」

 한 걸음 두걸음 시즈카에게 다가오면 시즈카도 마찬가지로 내게서 거리를 둔다。

「금요일에 만나자...... 우리가 함께 있든 아니든」

 한발짝 다가서자 한발짝 멀어진다. 그런 숨바꼭질은 머지않아 끝을 맞았다. 곧바로 시즈카의 발은 맨 끝에 있는 울타리에 부딪히고 멈췄고 나는 금방 시즈카를 따라잡았다.。

「……늦어서 미안해. 시즈카. 많이 기다리게 했나보네」

「…………에요……」

「에?」

「왜 여기에 온거에요!? 전 제가 원해서 치하야씨한테서 떨어진 거잖아요!?」

 분명 나를 노려보는 시즈카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나온다。

「더는...... 더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저, 이대로라면 전……!」

「……그럼, 어째서 여기에 온걸까」

「…………그건」

「시즈카、나는……」

「――――――윽!」

 쿵 하고 가슴에 강한 충격을 받아 나는 몸을 젖히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시즈카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잠시 나를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쏜살같이 내 밑에서 쏜살같이 달아났다

「기다려……기다려 시즈카!」

 바로 자세를 고쳐 일어나 시즈카의 뒤를 쫓는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제대로, 제대로 이 손으로……!

 시즈카는 산기슭쪽이 아니라 산 정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걸려 넘어질 뻔하면서도 나는 그 등에 매달렸다.

 지금 여기서 시즈카를 잃어버리면 필시 나는 두 번 다시 진짜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가짜는 질색이다. 우리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첫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첫발을 내딜수 있는 스타트라인에 갈 수 있도록 나도 시즈카도 걸어갈 수 있도록 결코 여기서 그녀를 놓칠 수는 없었다

「……으、시즈카!!」

「――――――」

 나의 외침에 시즈카가 흠칫 놀라며 뒤돌아본다。

「나……이제 더 이상 너한테서 도망치지 않을거야! 제대로 본심을 마주보고, 제대로 시즈카를 받아들일게! 그러니까 들려줬으면 하는거야, 너의 본심을!」

「그렇다면...... 그렇다면 절 쫓아오지 마세요! 저 때문에 치하야씨는 이상해져 버렸으니까요! 제가 없어지면 치하야씨는 괜찮아질테니까요……!」

 시즈카가 숨을 들이마시고 굳게 눈꺼풀을 감는다

「그러니까 계속...... 떨어져 있게 해주세요!」

「거짓말이야 시즈카! 그건 너의 본심이 아니야!」

 지금은 분명히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무엇이 본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쁜건 나야 시즈카! 나는 계속...... 너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너를 이용해서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저도...... 저도 치하야씨의 기분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었지만, 치하야씨와 관계를 계속하고 싶어서......치하야씨가 상처받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었어요! 상처받기를 바라기까지도 했어요!」

「나는 시즈카에게 해쳤어!」

「저는 치하야씨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어요!」

 진심이 흘러넘칠때마다 나와 시즈카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져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코앞에까지 그 등은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고, 나는 어깨 끝이 떨어져 나갈 듯한 기세로 시즈카에게 손을 계속 뻗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둘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저는, 저는……!」

 하얗고 가는 손목에 이제야 손이 닿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딱 멈추고 세계엔 원래의 정적이 돌아온다.

 가짜만 쌓아올린 산꼭대기에서 나는 확실히 진짜를 손에 쥐었다.

「……겨우 잡았다. 시즈카」

「…………어떻게 여길 아셨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시즈카가 내게 그렇게 물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슬프게도 기쁜듯한 복잡한 색깔의 눈이었다.

「물론 알아, 나와 시즈카는 같으니까 혼자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어... 그렇지?」

「네, 네……그렇죠」

 내 손에서 시즈카의 손목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이번에는 하얀 손이 내 손을 잡는다. 이번에는 시즈카도 흠뻑 젖은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마주본 채 느리고 평온한 시간이 흐른다.

「저, 치하야씨에게 너무 심한 말 많이 해버렸네요.」

「……아니야, 아무 말도 안했어.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일을...... 난 해 왔으니까……」

 꽉 하고 시즈카의 손이 내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온다。

「……치하야씨. 저, 치하야씨를 좋아해요.」

「그래, 알고 있어. 나도 시즈카를 정말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요...... 사랑해요……!」

 다시 시즈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며 힘차게 내 품으로 날아든다. 오열을 하면서 악착같이 매달리는 그녀의 몸을 나는 부드럽게 껴안는다

「저, 사실은 치하야씨와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 비록 거짓말이라도, 비록 가짜라도, 치하야씨랑 함께 있어서, 전, 전……!」

「……알아, 알고있어 시즈카. 사실은 시즈카를 너무 좋아해서...... 함께 있고 싶다고 정말로 정말로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내 눈에서도 주체할 수없게 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온다。

 분명 이 결말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시즈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거짓말하지 않고 시즈카와 계속 함께 있고 싶으니까……」

 꽈악 시즈카의 가느다란 몸을 온몸으로 감싸며 그 체온을 고스란히 느낀다. 두 사람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서로의 온기만 찾고 있었다. ......이윽고 잃어버린 그것을 결코 잊지 않도록。

「그러니 이건 이제 그만둘까? 가짜가 아닌 진짜로서 함께 있기 위해서...... 이 가짜 장난은 끌낼까?」

「…………네, 치하야씨」

 긴 침묵 끝에 시즈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을 신호로 우리의 마지막 포옹은 어이없게 끝났다. 멀어진 둘의 틈새로 아직 차가운 봄밤의 공기가 끼어들어 간다。

「이번에는 제대로...... 둘이서 진행하게......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아. 지금 두 사람이면 틀림없이 괜찮아」

「……그렇네요. 봐요. 하늘 좀 봐요.」

 시즈카가 내 눈물을 닦아 손을 잡고 똑바로 밤하늘을 가리킨다.

 그곳은 별이 가득한 하늘. 시간이 지나도 그날 보고 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반짝임의 세계였다。

「……응, 그렇네」

 시즈카의 손을 꼭 잡고 나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위를 향해 힘껏 웃는다.

 둘이서 지냈던 모든 날들이 되살아나고, 이 손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만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이대로 옆을 봐 버리면 이손을 끌고 어딘가 모르는 곳으로 시즈카를 데려가버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나와 지금까지의 나대로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밤하늘만 보면서 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을 더듬는다。

「오늘은 별이 예쁘네、시즈카」

 처음으로 함께 걷기 시작한 두 사람을 축복하듯, 하나둘씩 별은 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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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시즈 3부작 시리즈 안개꽃다발의 마지막 편입니다.

가짜 관계가 아닌 진짜 치하시즈로서 제대로 관계가 맺어지는

해피엔딩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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