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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다발 3화 -안개꽃다발(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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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5, 2020 18:09에 작성됨.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 팬인 여자애에게 꽃다발을 받은 적이 있다.

 팬으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것 자체는 드물지 않다. 대게는 남자한테서 받고 중학생 정도의 여자 팬이 있는 것도 그 시절에는 드물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준 꽃이 내 인상을 강하게 잡고 놓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장미와 백합의 호화 꽃다발을 건네주는 가운데 그녀가 건넨 것은 하얗고 작은 꽃이었다. 다른 것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보일 것이다. 그것은사람의 바다속에서 잔물결같은 실소를 낳았다. 하지만 그 작고 사랑스러운 꽃다발은 지금까지 받았던 그 어떤 선물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서 나는 정말 기쁜것을 기억한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한다면, 그것이 정말 진심 어린선물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그래서 나는 첫눈에 그녀를 기억했고 라이브나 콘서트 때마다 그녀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 늠름한 목소리나 반짝이는 눈에 지금 생각하면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습을 알아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객석에서 나를 보는 눈은 빛나고 있었고, 나는 마치 햇빛을 받는 달처럼 이 빛을 받아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순수한 빛은 그 햇살과 같은 기분 좋은 것은, 분명 나에게는 없는 것이며, 그리고 내가 평생 바라고 마지않을 것이다. 온도도 빛도 없는 창백한 달은 원시보다 태양에 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나는 시즈카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나의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바람속으로 사라져 갔다. 시어터로 이어지는 길거리 벤치에 앉아 나는 꽃봉오리가 쏟아질 듯한 벚꽃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칼날처럼 차가운 겨울바람은 점점 비단 같은 동풍으로 변하고 있다.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은 조금씩 따뜻해져 왔고, 봄은 벌써 코앞이라는 곳까지 그 기색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오른쪽에는 그저 적적한 바람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낡은 벤치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 혼자뿐이었다. 겨울의 마지막이 찾아오는 기쁨보다 외로움을 앉은 채 그저 허전함과 외로움이 많이 차지했다.

「……그 아이의 마음에 그 아이의 동경에, 나는 먹칠을 하면서까지……」

 그 맑은 눈을 흐리면서까지, 그 예쁘고 천진난만한 동경을 회색으로 더럽히면서까지, 나는 그녀를 요구했다. 내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나는 그녀의 모든 것에 기대러 그녀의 모든 것을 이용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모가미 시즈카라는 소녀가 나에 대해 적지 않은 연모의 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가지지 않은 「가족」이라는 것을 어느 날 내 곁에서 마구 깎인 난봉을 부려먹은 애정이라는 햇빛의 나머지를 흐느끼려 했다. 아무리 그녀의 순진한 사랑이 물들어도, 아무리 그녀의 애처로운 기대를 저버린다 해도, 반드시 그녀는 나를 떠날 수 없다는 엽기적이고 잔혹한 사실을,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마음 속 어딘가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여기에 없다. 마치 지금까지의 일은 신기루였던 것처럼, 지금까지의 날들은 형이상의 허구였다고 종이에 써넣은 것처럼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예전에 읽은 단편 소설에 나왔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지우개로 지운 것 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 모든 것은 그녀의 모든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시즈카」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걸까?

 그녀는 그 때 분명히 자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 버린 것이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건 큰 실수라고 나는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다만 시즈카는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 제대로 그것을 전달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회를 없애기에는 계속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의 거리 공백을 메우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혼자 빈껍데기처럼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문득 이런 때 어른은 담배를 피울까 생각했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심정에 참을 수 없는 새하얀 어둠에 남겨졌을때 어른 들은 한 개비의 담배와 한잔의 술로 어둠에 빠져드는 것을 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미성년자라 술도 담배에도 관심이 없다. 목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쪽도 할 수 없다. 무언가를 잊는 것을,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나는, 분명 아직 어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쓰고 달콤한, 끊임없는 열병같은 푸른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가미 시즈카가 내 앞에서 사라진게 이미 한 달이 지나려 하고 있었다.



 모가미 시즈카와 나의 기묘한 관계의 시작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틀림없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향한 외설스러움을 동반한 일그러진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데뷔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나를 거듭한 사람으로 여겨져 왔고 그에 따라 나 또한 모가미 시즈카를 거듭한 존재로서 어느쪽이든 어느쪽을 겹치지 않고 점차 우리들의 인상은 대중속에 녹아들어 갔다. 그것은 마치 연기와 연기가 겹치는 것 같아 마치 서로의 유령이 오가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자매지간이다. 아니 선배와 후배라면 어차피 나와 시즈카는 같은 틀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런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도 점차 그런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짜 자매, 가짜 관계. 하아, 여기서 끝냈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악착같은 사람이었을까. 어느 기억을 되살려 봐도 이 무렵까지의 시즈카는 아직 행복했는데

「……후우……」

 어둠속에서 오랜 한숨을 내쉬고 나는 잔 속의 물을 한모금 마신다. 시간은 벌써 7시 반을 넘기려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한가운데서 내 한숨은 갈 곳 없이 둥둥 떠다닌다. 그것은 점차 유령처럼 부정형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때로는 소녀처럼, 때로는 소년처럼 방안을 춤춘다. 그것이 너무나도 즐거운 것 같아 나에게「한곡 어때?」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나는 휘청휘청 손을 뻗어......곧바로 당겨 힘없이 웃었다.

「크……하하、아하하하하하하……아하하하하! 후훗우후후후후후후후후훗……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배 속에서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올랐고 나는 몸을 「く」자로 구부리고는 감정이 향하는 대로 웃었다. 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런 내가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서 비웃는 것 말고는 자신을 책망할 수 없었다.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동시에 나는 약했다.

 비웃다, 비웃다, 비웃다, 비웃다. 웃고, 웃고, 웃고 ……어느 순간 문득 공기가 빠진 것처럼 내 배에서 그것들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유령뿐이네. 내 인생은」

 한참을 웃으니 연회 후의 처절한 적막감만이 내 마음에 남았다.

 그것은 마치 잿날 후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것 같고, 아주 잠깐의 비현실이라는 미주의 맛을 현실이라는 물로 억지로 쑤셔 버린 것 같은 난폭한 아픔이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내뺨을 차가운 것이 한줄기 미끄러져 내려와

「더 이상,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시즈카……」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올리가 없다.

 불이 켜지지 않은 내 방을 창백한 달빛만이 흐릿하게 채우고 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때 어떻게 했을지 머리에 안개가 낀듯 기억이 나지 않아. 그저 망막한 허무와 무료함만이 내 온몸을 피와 같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내일은 세번째 금요일이다. 여느때라면 내일 여기에 시즈카가 있다. 나를 언니로 보고 여동생을 연기하는 한 소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극장에도 라이브공연장에도 공원에도 큰 길에도 분명히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시즈카와 만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감옥 같은 이 방에서 희미하게 결여된 시간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번째 주 금요일만이 시커멓게 칠해진 달력 속에서 잉크너머로 일찍이 존재했던 그날의 추억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퇴폐하지만 그것만이 그녀를 한계까지 몰고 간 나의 속죄다. 인생은 인생에 의해서 밖에 속죄할 수 없다.

 강렬한 갈증이 뒤늦게 찾아와서 나는 잔에 남아있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내용물을 다 마셨더니 별로 피곤하지도 않은데 왜 그런지 졸리기 시작했다. 분명 몸이 아닌 마음쪽에 피로가 심하게 쌓여 있을 것이다. 최근 한 달동안은 계속 이런 상태다

「난, 진짜로 바보야。시즈카……」

 무거운 눈을 감자 마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듯 내 의식은 끊어졌다.


 내 의식이 미면에서 현실로 되돌아간 것은 귓가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전화 때문이었다. 뭔가 꿈을 꾸었던 것 같지만 무슨 꿈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액정에 비치는 시작은 7시 37분이다. 잠을 충분히 자는데도 불구하고 몇 시간씩 잔 듯 신기하게 머리는 맑았다.

 착신은 하루카로부터다. 전화를 받고 얘기할 여유가 없어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끈질기게 울려서 나는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치하야짱。나야、지금 뭔가 볼일있거나 하지 않아?〉

「아무것도 없어. 내가 요즘 일 많이 못하는거 알지?」

〈……그렇지。저기 치하야짱、지금부터 치하야짱 집에 가도 되지? 지금 바로 가까이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으니까……〉

「………………」

 그것은 곧、「들어갈게」라는 것이다。하루카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아마 한달전부터, 아니, 훨씬 전부터...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장기로 말하는「장군」、체스의 체크일것이다。나와 그녀의 관계를 전부 털어내 앞에 들이대고 분명 나를 부드럽게 몰아붙일 거다. 말은 없다. 하지만 상냥하고 단지 연민하는 듯한 동정의 눈으로 나를 보는것이겠지 그 어떤 추잡한 말보다 부드러운 침묵이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도려내는 것임을 그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저기, 안 될까? 치하야짱〉

「……괜찮아. 기다릴게」

〈응, 금방 갈테니까 기다려줘〉

 이 말을 끝으로 밝은 음색은 기계적인 소리로 바뀌었다. 전화가 끊어졌다.

「금방 갈게, 인가……。제발 빨리 와줘 하루카」

 이제는 내가 안고 있는 모든 것을 단 하나 남겨두고 놓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기댈 수 있는모든 것을 버리고 그녀가 원했던 아이돌로서 평생 죄를 지으며 속죄의 길을 걸어갈 결심을 나는 끝냇다. 그러니 적어도 하루카는 두 번 다시 결의가 흔들리지 않도록 다정하고 철저하게 연민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는 비참한 죄인으로 평생 성녀 행세를 할 수 있어.

 인터폰이 높고 맑은 소리를 내며 내 방에 울린 것은 그로부터 15분후의 일이었다. 마치 영원처럼 긴 15분이었다. 문을 사이에 두고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문을 열자 하루카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손에는 근처에있는 편의점과 슈퍼마켓 봉지가 들려 있었고 사무실에서 곧장 이곳으로 왔는지 늘 입고 있던 교복그대로였다.

「……오랜만이야 치하야짱. 잘 지냈어?」

「으, 응……뭐 괜찮아。자 들어와, 짐도 절반정도는 들어줄게」

「응, 고마워 치하야짱」

 탁 소리를 내며 스위치를 켜자 눈부신 불빛이 순식간에 방을 채우고 모든 것이 드러났다.

 곳곳에 옷과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군데군데 뿌옇게 먼지가 쌓인 살풍경한 내 방은 도저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하루카는 특별히 뭔가 내게 할 말은 없었다. 거짓말쟁이로 막히는 일도 방을 보고 더럽다고 새는 일도 없고, 그냥 척척 쓰레기를 봉지에 싸서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어간다.「너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어」라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말하고 있었다.

 곧 내 방은 예전보다 훨씬 깨끗해졌고, 하루카는 바닥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오늘은 저녁까지 일하다가 치하야짱 보고싶어서 온거야. 봐봐, 요즘 그다지 같이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잖아?」

「……응, 그러네。나도、진짜로 오랜만이야……저기、할 말이라는건 역시……」

「――――――」

 먼저 서두르는 나를 제지하듯 하루카가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댔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순간 망설이고 말을 더듬듯 목에 걸렸다.

「오늘은 미라이와 함께 라디오 일이 있었고, 미키는 퀴즈코너에서 오늘도 재미있는 답을 냈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연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수영장 개장해서 교과서에 실려있으면 지금쯤 담임선생님은 다 실렸다고. 후후훗」

「뭐랄까, 미라이답다고 하면 미라이 다운 대답이야. 말하려고 해서 생각나는것도 아니야.」

「아, 맞다. 저번주에는 촬영으로 교토에 갔는데 역시 기온은 수학여행으로 온 학생이 많더라.

 버스안에서 보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만 타고 있었고, 야사카 신사에 갔더니 학생이나 어른 커플만 있어서 왠지 부끄러워졌는데. 다음에 치하야짱도 계획있는날에 같이 여행가자」

「응, 그거 멋지네

 나도 계속 도쿄를 떠나지 않고……어디론가 먼곳에 가고 싶어.」

「카나짱도 보컬 레슨을 열심히 해서, 오늘은 처음으로 시호짱한테 칭찬받았어

 빨리 치하야짱도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또 레슨 봐줘. 처음에 비하면 진짜 잘해서......」

「카나는 발전하고 있어. 뭐니뭐니해도 노래를 진짜 좋아해 그 아이

 기술은 나중에 얼마든지 따라오니까, 그 마음이 제일 중요해 분명 그 아이는 알고 있을거야.」

「……오늘은 말을 많이 해주네, 치하야짱 뭐랄까 나 안심했어.」

「상대가 하루카니까. 그리고 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오늘은 하루카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헤헤헤、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네」

 그러자 하루카는 교복 블레이저를 벗어 접고 부엌에 있는 앞치마를 꺼내 손에 익은 손놀림으로 재빨리 익혔다.

「배고프지? 금방 만들어줄테니까 기다려」

「에에? 괜찮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 그리고 나도 도와줄거니까……」

「됐으니가, 앉아서 기다려. 치하야짱, 먹고 싶은거 있어?」

「…………가능하면 따뜻한 걸로 먹고 싶어」

「에헤헤, 알겠습니다! 그럼 둘이서 같이 먹자」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할 이야기가 있다며 여기에 왔다고 하는데, 종잡을 수 없는 근황을 이야기하거나 식사를 만들거나 하는 등, 왠지 이곳에 온 하루카가 이 이야기를 피하는 것 같다.

 ……아니, 확실히 피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하루카에 의해 항상 어긋나고 있었다. 빈둥빈둥 몸을 돌려서는 하루카를 집에 들여보낸 의미가 없다.

 물 흐르는 소리와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시원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멍하니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린 대가를 계속 받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얀 사막을 홀로 무거운 관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얗고 하얗다. 넓은 차가운 사막을 맨발로 사박사박 밟고 나아간다. 주변에 사람은 없고 내 발자국 소리만 간간이 남아있다.

 ――간다고 해도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 행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기름 튀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내게로 뛰어들어 보기 싫을 정도로 내 배가 울렸다. 조금 전까지 시체같았던 내 몸은 급격히 활력을 되찾아 맹렬한 식욕이 생겨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배고프면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잘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먹는 것을 먹고나서 생각하려고 나는 다시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장래를 생각하는 것은 내일도 백년후도 좋다. 지금은 뭐라도 좋으니까 입에 넣고 싶다.

「조금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 기대하고 있어. 치하야짱은 일식 좋아해?」

「응, 물론 좋아해。……아아、그러고보니 하루카랑 처음 만든 것도 일식이었네」

「후후후、그건 일식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나? 간장이랑 소스 잘못쓴거 재밌었는데」

「그, 그건 이제 잊으라고 계속 말했잖아. 정말……」

「에헤헤……뭐 오늘은 니쿠쟈카가 아니라 돼지고기 된장국인데

 아아 그래, 치하야짱은 니쿠쟈카의 시조가 뭔지 알아?」

「카레가 잘못 만들어진거 아닐까?」

「아니, 정답은 비프스튜야. 오시오 헤이하치로가 해외에서 먹은 스튜의 맛을 어떻게든 일본에서도 먹고 싶다고 해서 일본 요리사가 스튜 만드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육수로 만든 것이 니쿠쟈카의 시작이래. 방금전에 라디오 퀴즈 코너에서 들었어」

「헤에……해외에서의 맛을 잊지 못하고 일본에서도 먹고싶어지다니, 상당히 강렬한 체험인가보네」

「그 니쿠쟈카 생각나니까 해외물건이 일본갔다가 다시 해외로 돌아간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

「……왠지 오늘 하루카는 좀 심술궂네」

「심술궂은거 아니거든. 나 그건 그렇고 즐거웠고 소중한추억이야」

「추억……이라」

 ――추억이라니, 나에게는 괴로운 것 뿐이지만.

 순간 묘한 사이가 생겨나면서 어색한 영원 같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로 팽팽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얼음이 깨지듯 침묵을 키친타이머의 경쾌한 전자음이 찢었다. 나는 당연히 키친타이머 같은 것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지만 하루카나 아즈사씨 또는 프로듀서들이 우리집에 두고 간 물건들 중 하나다. 대부분의 것은 창고 대신 옷장에 밀어넣고 잇지만, 부엌에 있는 것은 하루카나 시즈카가 가져온 것이다.

「앗、큰일낫다! 무심코 이야기 해버려서……꺄아아아악!?」

「하, 하루카!」

 장판의 매끄러운 표면에 발이 미끄러졌는지 하루카는 아무것도 없는 거실에서 화려하게 넘어졌다. 큰 소리를 내며 화사한 몸이 땅을치고 리본이 흔들리는 머리가 벽에 부딪친다.

「아야야야야……또 넘어졌어。오늘은 아직 두 번밖에 넘어지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럼 오늘은 더 이상 넘어지지 않겠네. 정말이지, 이제 여기까지 오면 재주야……후훗……아하하하핫」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하루카가 이쪽을 보고 있다.

 눈치채면 나는 정말이지 오늘 처음처럼 웃을 수 있었어


 요리가 잇달아 생기고 두 사람분의 식사가 식탁에 늘어놓은 것은 8시가 조금 되었다고 할 때다.

 식단은 생선구이와 된장국, 계란부침과 두부백무침, 흰밥과 장아찌였다. 하루카답다고 하면 하루카다운 보통 일식이다. 김을 내뿜는 그것들을 입에 나르자, 나는 봇물 터지듯 젓가락을 움직여 요리를 차례차례 해치웠다. 어쩐지 나답지 않게 먹는법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때 나는 배가 고파 죽을뻔했다.

「치, 치하야짱、그렇게 급하게 먹지 않아도 밥은 안도망가!」

「에? 아아、미안해 하루카。맛있어서, 그만……」

「진짜? 다행이다! 사실 좀 더 제대로 다듬은걸 만들고 싶었는데……」

「아니,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야. 누가 만든 따뜻한 식사는 오래간만이었으니까……」

 하루카를 비추며 시즈카의 모습이 겹쳐진다.

 ――마지막으로 먹은건...... 그 날 레스토랑이었는지 모르겠네……。

 다시 젓가락을 움직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둘이서 탄 전철,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둘이서바라본 밤하늘의 별

 그 모든것이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되어 차레차례로 되살아난다

「……정말……오랜만이었으니까……」

 눈앞의 풍경이 물을 너무 많이 머금은 수채처럼 번져 윤곽이 흐려진다.

 눈물은 내 두 눈에서 쉴새없이 흘러내렸고, 마침내 나는 오열을 멈출 수 없게 되자 젓가락을 놓았다.

「미, 미안해 하루카……나、나……!」

「……괜찮아, 울고 싶을때 울어도 돼。

 치하야짱이 힘든 일이 있다는거 난 잘 알고 있으니까」

 하루카가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살짝 껴안는다.

「저기 치하야짱 괜찮으니까、무슨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치하야짱의 일이라면 나는 분명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아아, 치사해……정말로。

 이제야 편안해 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모든것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가능한 한 자세히. 하지만 간략하게만 하려고 애쓰면서 나는 나와 시즈카의 그때까지 관계를 완전히 털어놓으면서 하루카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세간에서 자매 같은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던 일, 그러다가 그 가짜 관계에 빠지게 된 일, 시즈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알고 그녀를 묶고 있던 일, 시즈카는 그 때문에 사라져 버린 일...... 그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했다. 잡담과 끼니를 거쳤기 때문인지 이야기는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루카는 내가 말을하는 동안 나를 끌어안은채 잠자코 그것을 듣고 있었다. 물론 예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지저분한 부분이 많은 이야기였지만 도중에 그만두는 일도 없이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말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끔 숨죽이는 소리나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그냥 눌러 죽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시즈카가 사라진건 내 탓이야」

「……………………」

 이야기가 끝나자 하루카는 내게서 몸을 떼고 조용히 눈을 감고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로 잠시생각에 잠긴 채 하루카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동정이라고도 거절할 수 없는 반응과 그에 이은 침묵이흐르면서 세계가 거기서 망한듯한 정적이 가득하다. 먼저 그 정적을 견딜 수 없게 된 것은 내쪽이었다.

「내가 시즈카의 마음을 더럽혔기때문이야……!

 시즈카는 자기 때문에 내가 변해버렸다고 말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최악이었어! 나는 시즈카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녀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었으니까......!」

「……응, 사실 다 알고 있었어. 치하야짱과 시즈카짱이 이상해진것도 시즈카짱이 사라진게 치하야짱과 관계가 있다는것도」

「――――윽!」

 반사적으로 뒤로 달아나려는 내 손을 하루카가 잡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린다. 화가 난 것 같은, 슬퍼하고 있는 것 같은눈에 똑바로 비쳐 나는 격렬하게 동요했다.

「안 돼 치하야짱、도망치면 안 돼。마치 다 끝난것처럼 얘기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윽, 그럼……그럼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거야? 이제 난 시즈카를 만날 자격이 있을리가 없고, 하루카도 모를리가 없잖아!?」

「몰라! 누굴 만나는데 자격따윈 필요없어!

 그런 그저 치하야짱이 도망치는것 뿐이야! 시즈카짱에게 응석부리는 것뿐이야!」

「그만둬……하루카는 몰라……이제 어쩔 수 없어……」

 처음 만난 날의 시즈카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의 시즈카가 번갈아 플래시백을 하며 꾸짖는 듯 한 시즈카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머리가 욱신거리고 나는 쥐어뜯듯이 머리를 감싸쥐고 작고 비참하게 웅크려 편안해지고 싶어서 하루카에게 몸을 맡겼는데 이러면 괴로워질뿐이다.

「제발, 제발 그저 날 불쌍히 여겨서……。최저라고、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막힘이 들어……! 이제 전부 포기하게 해줘……」

 고개를 숙인 채 용서를 빌며 나는 진심으로말을 꺼냈다.

「……그래, 치하야짱이 한 일은 안 되는 일이고, 분명 당장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하루카……난」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치하야짱 그렇기 때문에 이대로 두면 안 돼。

 시즈카짱과 관계 없이 사는 건 치하야짱이 보기엔 멋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그럼……그럼 난、어떻게 하면 좋아? 이 이상 어떻게하면」

「그건 치하야짱이 아니라 내가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저기, 치하야짱」

 하루카가 두 손으로 뺨일 만지며 내 얼굴을 들게 한다. 조금전까지 화를 내고 있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 두 눈은 의외로 상냥한 것으로 변해 있었다.

「치하야짱은 어떻게 하고 싶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하고 싶어……?」

「…………나, 는……」

 우르르 소리를 내며 내 마음에서 진심은 흘러내렸다.


 밤이 깊어서 여자아이가 혼자 짐에 들어갈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루카는 결국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녀도 그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는지, 그로부터 얼마 후 실이 끊어진것같이 잠들어 버렸다. 하루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샤워를 하고 대충 준비를 마치니까 11시가 다 되었다.

 불을 끄자 방은 원래의 죽음에 꺼진 듯한 달빛뿐인 세계로 돌아갔지만, 왠지 그곳은 내 장소가 아닌 듯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곳은 하루카가 있기 때문만이 아닌 원래 내가 있을 자리는 결코 죽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령도 환상도 이상하게도 어둠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고, 그저 맑은 고요만이 내 마음에는 있었다. 몸에는 신기하게 활력이 넘쳤고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죽은 사람 같았다는게 거짓말 같았다.

 ――분명 하루카는 나를 죽은 사람에서 이곳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온 거야

 한마디도 그녀는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마워, 하루카。네 덕분에 내가 제대로 앞을 향하게 되었어」

 달빛에 비치는 그녀의 잠든 얼굴이 한 순간 미소지은것 같아 나도 덩달아 미소지었다. 이 말은 틀림없이 진짜였다.

 하루카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상의 라이트(이것도 내가 산 게 아니다)만 켜고, 나는 미리 가지고 온 노트를 펴들고, 거기서부터 한 페이지를 난잡하게 찢어낸다. 볼펜을 펜케이스에서 꺼내 잠시 묵고한 뒤 나는 단숨에 편지라고 말하기엔 서투르고 간소한 메모를 쓰기 시작한다.

【하루카에게

 미안해. 일이 생겨서 외출할게.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침은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지 나가도 돼. 열쇠는 우편함에 들어있으니까 그걸로 잠그고 되돌려놔. 여벌은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어. 나는 하루카 덕분에 제대로 앞을 볼 수 있었고, 다음에 내가 할 일도 알았어. 오늘 하루카가 여기 와줘서 나는 정말 도움을 받았어.

 하지만 나는 하루카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시즈카는 아직 그날 그대로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난 시즈카를 찾아서 확실하게 다 끝내고 올거야.

 길게 써서 미안해. 하루카가 친구로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다 슴과 동시에 나는 일어나서 옷장에서 외투를 꺼내 재빨리 소매를 꿰고 휴대전화와 지갑만 넣은 가방을 잡고 가장 움직이기 쉬운 신발로 발을 담근다. 문손잡이는 차갑고 의외로 가볍게 돌았다.

 시간은 곧 자정이다. 내가 시즈카와 항상 만나는 세번째 금요일이다.

「……다녀올게, 하루카」

 방 안쪽에서 숨소리를 내는 하루카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때까지 나를 묶고 있던 투명한 감옥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시즈카는 분명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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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은 원래 4월중에 나올예정이었으나 
작가님의 스케줄과 슬럼프때문에 늦게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분량이 많아 전편과 후편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하루카 덕분에 치하야는 이제 자신이 뭘 해야할지 알게 되었고
바로 시즈카를 찾으러 가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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