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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다발 1화 -플라스틱 멜랑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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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0, 2020 10:41에 작성됨.



 예전에 좋아했던 아이돌에게 자신의 용돈으로 산 꽃다발을 건넨 적이 있다. 아빠도 엄마도 아이돌을 싫어했기 때문에 모두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했다.

 몰래 돈을 모아 두 사람에게는「친구 집에 자러간다」고 거짓말을 했고、나는 거의 맨몸으로 도쿄행 기차에 올라탔다. 낮익은 경치가 창 너머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은 죄의 쾌감으로 들끓었다. 이대로 세상 끝까지 향할까 싶을 정도로 그 때 나의세계는 현란했다.

 그러나 꽃집앞에 늘어선 화려한 꽃은 모두 내가 부담해서는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작은 안개꽃 다발을 사고 나는 회장으로 향했다. 다른 예쁜 꽃들은 많았는데 그때 내게는 안개꽃이야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안개꽃의 꽃말은 맑은 마음, 깨끗한 마음. 처음 본 진짜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청순한 사람이었다. 남들은 장미 백합 화사한 꽃다발이나 값비싼 선물을 주었지만 남들보다 남달리 볼 수 없을 것 같은 내 꽃다발을 그녀는 무척 소중하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엷은 입술이 매끄럽게 움직이며 고맙다는 말이 들릴 때 나는 갑자기 겸연쩍어 허둥지둥 도망쳐 버렸다. 그녀는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번 물어보고 싶지만 그건 분명 못할거야. 그리고무엇보다 묻지 않아도 된다. 이 찬란하고 부끄럽고 어린 추억을 더이상 손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진짜 기억이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비록 가짜 산꼭대기라 해도 이 진품만 있으면 괜찮아

 이윽고 찾아올 때까지 나는 의심없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밤이 미끄러지듯 창밖의 경치가 흘러간다.

 거리는 차가울 정도로 조용했고 스테레오에서 들리는 라디오만이 남의 일처럼 내귀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유리 한 장 사이에 둔 시야와 기계를 사이에 둔 음성. 지금의 나에게 들어가는 정보는 모두 남의 일로만 느껴졌다.

 ――그래 모두 가짜인 것이다. 이 거리도, 이 공기도, 그리고 나도.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데워진 미지근한 감촉이 폐를 채운다. 내쉰 숨결은 뭔가 내 소중한 것까지 얽어맨 것 같았다.

「왜 그래, 시즈카」

 옆에서 방울같은 목소리가 들려 차가운 손이 내 손을 살짝 잡았다. 그 감촉과 목소리는 틀림없이 진짜였고, 나는 가짜 무리에서 눈을 떼듯 그쪽을 보았다.

「멍하게 있는 건 별일이네. 오늘 레슨은 지친걸까」

「……네, 뭐……」

「이제 곧 도착할거야. 그러면 천천히 할 수 있으니까……그때까지 힘내자」

「아니, 괜찮아요。……저기、오늘도『하는』거에요?」

「그래, 시즈카한테는 언제나 폐만 끼치네. 싫어?」

 대답 대신 나는 그 손을 꼭 붙잡는다. 내 시선 앞에서 그녀는 천천히 얇은 입술을 쭉쭉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가늘어진 눈이 내 시선과 부딪쳐 조금 어색해져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지금 나는 시어터에서 집까지 가는길을 택시로 이동하고 있다. 집이라고 해도 우리 집은 아니다. 우리집은 사이타마지만 여기는 도쿄 시부야다. 택시는 너저분한 대로와 독한 불빛 무리를 유령처럼 빠져나가 창문으로 향하는 세계는 점점 소리와 빛을 떨어뜨려 갔다. 운전자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걸어 온 것 같지만 마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내 뇌에 남아 있지않았다.

 택시는 조용한주택가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에 멈춰섰고 저절로 문이 열리고 나는 내뱉듯이 택시에서 나왔다. 밤공기는 차갑게 목을 뚫고 간간이 차의 엔진음이 은은하게 울린다. 달은 마치 너무나 창백한 빛으로 나와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택시는 자취를 감추었고 마치 세상에 단 둘밖에 없는 듯했다.

「자, 가자 시즈카. 오늘도 추우니까 계속 밖에 있으면 감기 걸린다고?」

「……치하야씨, 저는……」

「뭐야? 왜 그래 시즈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가요 치하야씨」

 목에 걸린 것을 토해내듯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왠지 맹렬하게 어색하고 민망해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 되는데 나는 일부러 계단을 선택하여 3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랐다. 자신에게 달라붙는 그림자를 뿌리치듯 거칠게 발을 구르며 달렸지만 그늘은 전혀 떨어지지를 않는다. 항상 일정 거리에서 나를 따라온다.

 ――당연하지. 그 그림자를 잡고있는건 나니까。

 그림자는 차갑고 심장이 경종을 치고 있는 나의 체온이 부각될것 같아 다시 부끄러워졌다. 왠지 견딜 수 없게 되어 멈춰서자 그림자가 거친 숨결로 내 쪽을 들여다본다.

「……뭘 그렇게 서두르는거야 시즈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아무도 어디 가지 않아. 나도 시즈카도 여기밖에 안 가니까」

 ――아, 그래. 여기가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방은 3층 모퉁이 방이고 그녀의 방보다 앞설 수는 없다. 모가미 시즈카와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두 인간이 가는길은 언제나 이 방으로의 일방통행이며, 오른쪽에도 왼쪽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마치 선로 같았다고 생각했다.

「자, 들어와 시즈카. 오늘도 잘 부탁해」

「…………응、『언니』」

 쓴 것을 혀로 굴리듯이,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마치 퇴로를 막는 것처럼 내 뒤에서 문이 닫히고 몹시 무거운 소리가 났다.

 여기는 막다른 골목. 다만 퇴색할 뿐인 투명한 감옥

 ――……저는 치하야씨가……。

 마음속에서 조차 난 진심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부터 시작된 일이었을까

 한달에 한번, 세번째 금요일 밤 나와 그녀는 가족 흉내를 낸다.

 가족놀이라고 해서 특별히 뭔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하룻밤 집에 있으면서 같이 밥을 먹거나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다만 그 동안 나는 계속 그녀를 "언니"라고 불러야한다. 그녀도 기본적으로 그때는 나를 후배가 아닌 여동생으로 대한다.

 ……취급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어디까지나 본인은

「오늘은 뭘 만들까? 나도 요즘 연습은 잘 하고 있지? 유…………시즈카」

 네, 하고 숨을 삼키며 그녀의 볼에서 땀이 흐른다.

「……저번에는 파스타였고 오늘은 다른걸로 하자 언니」

 한껏 미소를 지어 붙이고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슬픈 목소리로 작게 미안해라고 중얼거렸다. 낯익은 광경인데도 그날은 조금 화가 났다. 이것을 하고 싶다고 말한것은 바로 그녀 자신인데 그녀만 마음대로 상처받고 있는 것이다. 너무 제멋대로이고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것은 어디까지나『흉내』인거다。나는 진짜 여동생이 아니고 그녀도 나의 언니는 아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알아버리는 것이다. 이 가족 놀이에서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다. 언제나 내 몸을 통해 누군가의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어디까지나 그 누군가의 정보를 느끼기 위한 매체......라디오나 스크린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분명히,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필요하지 않은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카씨나 미라이라도 좋은것이다. 말을 할 수 있고 사람모양을 하고 있으면, 이 2인연극은 성립되는 것이니까.

 왠지 어색한 분위기라 그녀와 나는 우선 쿠션 위에 걸터앉아 TV를 켰다. 그녀는 마치 내게서 정신을 차리듯 TV쪽으로 집중하고 있었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그럴 기분이 되지 않았다.

 ――어째서, 나일까……。

 왜 선택된게 나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히 내가 언제라도 그녀 옆에 있었기 때문일까

 ……그럼 왜 나는 항상 그녀 곁에 있었을까. 나는 그에 대해 매우 간단한 답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본인 앞에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곧은 말은 실탄이다. 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꾸미면 누군가를 위협해 따르게 하는 것도 쉽다. 그리고 총구에서 날아온 총알은 반드시 어딘가에 맞아야 한다. 어디에도 맞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러니까 이 총을 잡는건 정말 중요할 때만 해도 되는 거야.

 천장을 올려다본 채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치 앞질러 가듯 시간은 지나간다. TV에서는 연예인이 어느 바다에서 뭔가를 리포트하고 있었는데,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툭, 하고 차가운 손이 어깨에 닿아 내 몸은 물고기처럼 펄쩍 뛰면서 의식은 순식간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팔이 뻗는 끝에는 그녀가 활짝 웃고 있다. 그러나 얼굴은웃고 있어도 눈만은 여전히 기쁨의 빛을 띠고 있지 않았다.

「저기 시즈카, 슬슬 쇼핑하러 갈까? 닫혀 버릴 거야」

 등에 누군지 모르는 귀신을 붙인 채 나와 그녀는 쇼핑하러 나갔다가 늦은 저녁거리를 사러간다. 폐점 직전의 슈퍼에 사람이 거의 없고 파는 물건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마침 있던 반찬이나 주먹밥을 사들고, 다시 막다른 골목의 투명한 감옥으로 소리 없이 돌아갔다. 그녀는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내 뒤에 귀신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를 순수한 모가미 시즈카로 본 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뭔가 같이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

「아뇨, 저는 이걸로 충분해요。……언니」

「이번에는 어디 가게로 먹으로 갈까? 언니가 예약해줄게. 전에 촬영에서 다른 사무실 사람이 알려준 곳인데……」

「……치하야씨, 저 실은……」

 탁、하고 포크가 접시를 두드리는 큰 소리가 내 말을 끊는다。

 마치 라디오 전원이 꺼진 것처럼 세계는 일순간에 소리를 잃고 생각난듯 새삼 내 목덜미에 땀이 미끄러졌다.

 ――아차, 이건 절대 말하면 안 되는데……。

「언니야, 시즈카. 틀렸잖아」

 강한 어투와는 반대로 그녀의 눈은 얼떨결에 여깆기 헤엄치고 있었다.

「아니야, 나는 언니잖아……아니야、아니야、아니야……」

 ――아아, 또 귀신이다。

 휴~ 하고 산숨을 내쉬며 나는 컵 속에서 따뜻해진 물을 입에 머금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속마음 덩어리는 물에 떠내려가 다시 뱃속으로 돌아간다. 실탄은 여전히 탄창안에서 잠들어 있어 빨리 쏘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그녀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가정은 이미 오래 전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 때문에 한때 그녀가 활동을 중지했던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문제 자체는 극복한 것이라고 프로듀서는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설령 통증이 가더라도 상처는 아물지 않으니까. 그게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분명, 이 관계가 필요한거겠지. 그녀도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이인 것이다. 치유해야할 고독이 이 인공첨가물로 치유된다면 그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고 약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 안에 있는『진짜』그녀는……。

 말은 또 목 안에 막혀서 호흡이 약간 힘들어진다. 내뱉는 거짓말은 때에 달콤한 설탕이지만, 내뱉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속내는 언제든지 쓴 독이라는 것을, 나는 그녀와 만나고 처음 알았다.

 어쩌면 그녀에게 귀신은 나일지도 모른다.

 내 등 뒤에 들러붙은 뭔가가 그녀에게는 진짜고 비춰지는 나는 그 "무언가"의 가짜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관게는 합성착색료 같은 허울뿐인 것이다. 거창한 인형놀이라 해도 무방하다.

「저기, 시즈카 제대로 언니라고 말해봐, 자, 할 수 있잖아. 나를 언니라고 말해봐, 어서, 어서……」

 차가운 손이 이쪽으로 뻗어가 내 목에 걸린다. 그 손은 가늘게 떨렸고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목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

 불쌍하다. 그때 라는 솔직하게 생각했다.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짝퉁에만 묻히는 것도 좀 지쳤다.

 ――치하야씨, 진짜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속마음의 말은 총탄이다. 마음으로 입에서 풀어내는, 마음도 부서지는 실탄이다.

 마음의 총다리에 손을 얹고 말의 총알을 재빠르게 넣는다. 총알을 약실로 보내 그녀의 마음을 조준한다. 햇살끝에 겁먹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몰래 기학적 유열을 느꼈다.

 나중에 탄환만 당기면 된다. 생각하는 바를 다해, 지금 이때를 쏴부수면 될 뿐이다. 그러면 이 바보같은 소꿉놀이도, 유령놀이도 끝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반드시 끝난다. 발사된 총알은 반드시 맞아야 하니까.

「……부탁할게, 시즈카……」

 꺼져 들어가는 듯한,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와서 내 총구는 그녀에게서 크게 벗어나 버렸다. 나는 언어의 총을 다시 꺼내 떨리는 그녀의손에 내손을 살며시 포갰다. 속내는 다시 물러나고 거짓말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응、미안해 언니。내가 나빴어」

 이미 그렇게 대답하는게 고작이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 뭔가 할 말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이곳으로 달려와 내가슴에서 오열 섞인 목소리로 "미안해"를 반복하며 울었다. 나는 떨리는 그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몇번이든 괜찮다고 말할뿐이다,

「미안해, 미안해 시즈카。나、나……!」

「……괜찮아요, 전 여기 있어요. 언니」

 분명 그 때 내 입가가 일그러져 있었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가느다란 몸을 만지면서 나는 그 목숨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몇번이나 되뇌었다. 언제든지 그녀의 마음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자유』가、이 꽉 막힌 감옥에는 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언제라도 아주 조금 키사라기 치하야의 마음의 상처를 만져보는 것이다. 달콤하고 달콤한 거짓말 속에 아프고 쓰라린 진실을 아주 조금만 드러내 주면 그녀는 유쾌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마치 눈보라 속에서 불의 따뜻함을 찾듯 그녀는 나의 온기를 탐욕스럽게 찾아온다. 매달리는 힘은 점점 강해지고 숨도 점점 가빠진다.

「시즈카……」

「치하야、씨……」

 뜨거운 눈으로 그녀가 내 눈을 바라보며 점차 얼굴이 다가온다.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강하게 어깨를 붙잡혀 도망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없는 가운데 그녀의 충동이 다가오기를 기분 좋게 흥분으로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서로의 한숨이 서로 닿고 그녀의 긴 속눈썹이 때때로 나의 속눈썹을 스친다. 그 한숨은 달콤했고, 필연적으로 나의 숨도 거칠어졌다.

「미안해, 용서해줘」

 미안할 정도로 그런 말을 남기고 그녀가 나를 탐하기 시작한다.

 의존과 집착의 짐승에 묻혀 먹혀들면서 나는 더없는 행복과 쾌락에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내 것은 무조건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만 가득했던 충동에 맡길 만한 거친 정사에 나는 이제 피학적 유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가족인 척을 한다. 그것은 누이와 누이동생이라는 관계만이 아니다. 때때로 남편과 아내를 연기하는일도 내 몫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그대로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단지 키사라기 치하야를 원한다. 가짜뿐인 인생에 단 한가지를 준 그녀에게 나는 몇 번이고 애태우며 아이돌의 세계로 온 것이다.

 그 기억에 미치도록, 다시 확인하듯이, 나는 그녀와의 행위에 몇 번이고 빠져들었다. 아무것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 날이 밝아서 그녀와 떨어져 버리는 것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날 만진 그녀의 손은 분명 따뜻했던 것 같다.

 그날의 그녀는 고상하고, 힘세고, 그러면서도 고독했다. 겁먹고 연약한, 그릭 옆에 내가 자고 있는 그녀와는 정반대다.

 희미한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의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고 타액과 땀으로 몸은 끈적끈적했다.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난 손으로 그녀의 하얀 손을 만지자 손은 싸늘하게 차가웠다.

「……내가 알고 있는 치하야씨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가느다란 몸을 잡아당긴다. 손뿐만 아니라 몸도 차갑고 마치 부드러운 인형을 안고 있는 듯했다. 거칠게 삶을 니낄 수 있었던 한때가 끝나자 마치 죽은듯이  이 방의 시간은 멈춘다.

「…………이런 가짜는, 끝내야 하는데……」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시작한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끝내는 것은 간단하고 총알은 쏘기만 한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언제나 떨린 채로, 방아쇠는 언제가 되어도 당길 수 없다.

 결국 나도 무서운 것이다. 설령 이 관계가 가짜라고 할 지라도, 내 안에 있는 진짜 추억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분명 이 관계가 끝나면 그녀는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될 것이다. 반드시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이다. 귀신도. 소꿉장난도, 이 행복도,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의 총에는 언제나 안전장치가 걸려 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총을 꺼내 겨눠도 마지막 하나가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이윽고 기분 좋은 피로감과 졸음이 찾아오고, 나는 미연의 구렁텅이로 천천히 떨어져 간다. 나락과 같은 잠 속에서 희미하게 알고 있는 향기가 비강을 간지럽힌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가짜속에 둘러싸여 오로지 진짜 꿈만 품은채 내 의식은 완전히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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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ヶ瀬駿河님의 치하시즈 3부작입니다.
작가님으로부터 번역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내용을 보건데 시즈카에게 있어선 대부분이 가짜
그리고 치하야가 짐승처럼 시즈카를 덮쳐서......ㅗㅜ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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