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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의 상처 자국

댓글: 2 / 조회: 2019 / 추천: 3



본문 - 10-08, 2019 23:23에 작성됨.

시부야 린은 폐차장으로 향하고 있다.

조금 전부터 타고 있는 택시 운전기사가 린을 힐끗힐끗 보고 있다.

평상시라면 다소나마 기분이 상할 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다.

린은 푸른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까.


그 차림으로 폐차장을 목적지로 지정한 것이다, 

차림새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장소 지정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이 쓰이겠지.


린도 일부러 폐차장으로 가기 위해 드레스를 입은 건 아니다.

지금부터 친구 결혼식에 출석하기 위해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것이다.


결혼식이라면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운전기사도 결혼식장을 목적지로 지정한 거라면 화려한 드레스 차림에 넋을 잃고 볼지언정 이렇게 의아한 시선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린에게는 폐차장으로 갈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다고 할까,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결혼식 신부는 시마무라 우즈키.

린과 같은 유닛에 소속된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신랑은 린과 우즈키의 담당 프로듀서였던 남성이다.

그런 두 사람이 결혼식을 치르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린은 식장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물론 축하하는 마음은 있다.

우즈키는 소중한 친구고, 린은 그 미소를 동경해 아이돌을 지망했을 정도다.

프로듀서도 자신을 찾아내 톱 아이돌까지 이끌어준 둘도 없는 인물이다.


우즈키와 프로듀서 모두 린에게는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의 결혼식.


그러나 프로듀서와 린은 과거에 사랑하는 사이였다.

처음에는 자신을 이끌어주었다는 고마움.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린이 깨닫는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고백한 것은 린이었다.

프로듀서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아이돌과 프로듀서가 그런 관계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도 억누르지 못한 마음은 린이 프로듀서의 품에 뛰어들게 했다.

프로듀서가 뿌리치지 않고 마주 안았을 때, 린은 말 그대로 인생 최대의 기쁨에 싸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주일 후에는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톱니바퀴가 미친 것은 3개월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린이 소속된 유닛인 뉴 제너레이션즈 일로 겨울 스포츠 특집을 소개하는 일을 하게 되어서, 린과 우즈키와 또 한 명의 멤버인 혼다 미오를 데리고 프로듀서의 운전으로 훗카이도로 왔다.

일은 무사히 끝났고, 그날 중에 도쿄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거기서 린이 소속된 또 하나의 유닛인 트라이어드 프리머스의 멤버인 나오와 카렌한테서 연락이 왔다.

두 사람 말로는 오프를 이용해 이쪽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즉 함께 놀자는 것이다.


프로듀서에게 물어보자 더는 일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자기는 회사에서 일이 있기 때문에 먼저 돌아가지만 쉬고 가도 된다면서.

린은 솔직히 프로듀서와 함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겸임해서 하고 있는 유닛간의 인간 관계상의 교류도 있으므로 남기로 했다.


린은 뉴 제너레이션 멤버인 우즈키와 미오한테도 같이 놀자고 제안했다. 

활발한 성격에다 현장에서 아쉬움이 남아 있던 미오는 바로 남겠다고 선언했지만, 겨울 스포츠에 재능이 없어서 구를 때 머리 위에 대량의 눈을 얹고 있던 우즈키는 애매한 미소를 띄우면서도 확실하게 거절하고 프로듀서와 함께 돌아가기로 했다.


그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생긴 것이다.

완전히 프로듀서의 과실이었던 것 같다.

복수의 아이돌을 혼자서 프로듀스하는 격무 때문에 수완이 뛰어난 프로듀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쌓였던 거겠지.

운전 중에 한순간의 졸음으로 핸들을 잘못 다뤄서 커브를 완전히 돌지 못하고 가드 레일을 부수고 그대로 몇 미터 아래의 벼랑으로 추락한 것이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고급차인 덕택에 안전 장치도 무사히 작동했으므로, 프로듀서와 우즈키는 늑골이나 쇄골이 크게 다쳤지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대형 사고라는 걸 감안하면 비교적 피해가 경미하다고 할 수 있다.

단 하나, 심하게 찌부러진 프레임이 날카롭게 꺾이고 그 끄트머리가 우즈키의 얼굴을 깊이 도려낸 것을 제외하면.


사고 소식을 듣고 린이 동료들과 함께 프로듀서와 우즈키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도 붕대를 감고 있으면서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인 우즈키의 부모에게 통곡하면서 엎드려 사과하는 프로듀서였다.

의사 말에 의하면, 우즈키의 얼굴에 난 상처는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근육까지 깊이 도달하고 있어서 완치되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한다.

아이돌로서의 복귀는 절망적이었다.


잠시 후, 그 이야기를 들은 우즈키는 크게 혼란에 빠졌고, 그날 밤에 차입된 과일을 깎는 나이프로 자기 손목을 그어서 자살까지 시도했다.


다음날, 프로듀서는 소속된 프로덕션에 사표를 제출했다.

공식상 이유는 사고의 책임을 지기 위해.

그러나 진실은 또 죽음을 선택할 위험이 있는 우즈키 옆에 있으면서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속죄를 완수하기 위해.


린은 프로듀서가 사표를 낸 후 그와 한 번만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프로듀서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중얼거리고 그대로 린한테서 떠나갔다.

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아이돌들에게 프로듀서와 우즈키가 결혼한다는 통지가 전해졌다.


그 후 아이돌들을 보면 우즈키가 혼란한 상태가 된다고 해서 문병하러 가지 못하고 있던 동료 아이돌들은 그 후 프로듀서와 우즈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 격려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프로듀서에게 동경을 품고 있던 대다수 아이돌들은 크게 낙담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우즈키의 회복과 두 사람의 출발을 축하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린의 가슴 속에는 아직도 의혹이 남아 있다.

그 의혹이 지금 린이 폐차장에 있는 사고 차량 앞으로 가게 한 것일까?


전방의 보닛이 몰라볼 정도로 부서져 있는 푸른 스포츠카.

프로듀서가 새 차를 살 때 즐겁게 보고 있던 카탈로그 안에서 린이 마음에 들어해서 억지로 색깔을 결정하게 한 추억의 색.

그 추억 안에서는 프로듀서의 팔 안에 있던 것은 린 본인인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린은 한 걸음 다가가 차 안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일면에 새까만 것이 흩날린 차 안은 사고 현장의 처참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칙칙한 검은색이 선명한 붉은색이었을 때는 분명 눈을 가리고 싶어질 참상이었겠지.


그러나 린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나였더라면, 이라고.

아이돌을 그만두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괴롭고 슬프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곁에 있고 계속 격려해준다면, 쭉 옆에 있어준다면···.

우즈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멋진 게 아닐까, 라고 아무래도 생각해버린다.


린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차 안을 들여다보자, 조수석의 프레임 천정 부근에 날카롭게 튀어나온 프레임이 눈에 들어왔다.

이 가시가 우즈키의 아이돌로서의 생명을 빼앗고, 린과 프로듀서 사이를 찢어놓은 악마의 송곳니.

증오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면서도 자신이 이 가시에 찢겨져 있었더라면 오늘 그 사람 옆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에 린은 사로잡혀버린다.


생각하면서 가시에 살짝 대듯이 얼굴을 가까이 한 린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천정이 너무 가깝다.

이 천정 부근에 있는 가시에 얼굴이 찢겨지려면 천정 부근에 머리를 문지르듯이 부딪혀야 한다.

그러나 차 안의 천정은 그런 함몰도 없고, 우즈키도 머리 부분은 얼굴에 난 상처 이외에 다른 상처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추락하던 중에 천정에 머리를 부딪힐 상황이 되면 무사하지 못할 게 뻔한데.


거기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밖에도 이상한 것이 있다.

우즈키가 조수석에 앉아서 안전 벨트를 매지 않을 리가 없다.

에어백도 있다.

그 두 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우즈키는 다른 상처가 생기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안전 벨트를 매고 있으면 천정 부근에 튀어나온 가시에 닿을 리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가시가 우즈키의 얼굴을 도려내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이 사라지지 않는 모순. 도대체 답은 무엇인가….


린이 가시에 손을 대면서 고민하고 있자, 폐차장 직원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걸어 왔다.

이 차를 압착할 차례니 물러나주실 수 없겠냐고.


그렇다. 오늘 이 차는 폐기 처분된다.

그렇게 들었기 때문에 린은 결혼식 직전인데도 추억과 결별하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결별하기는 커녕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되었다.

중장비로 들어올려지고 쇳덩어리에 압착되는 푸른 차체를 올려다보면서, 린은 떨떠름한 느낌을 받으면서 결혼식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식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린이 회장으로 들어오자, 프로듀서가 우즈키와 팔짱을 끼면서 버진 로드를 걷고 맹세의 말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우즈키는 얼굴에 새겨진 생생한 상흔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손목을 긋기까지 할 정도로 슬퍼하고 있던 자신의 상처를.

마치 주위에 자랑하듯이, 과시하듯이.


옆에 있는 반려에게.

참석자들에게.

그리고 린에게.


그 순간, 린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우즈키는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이다.


그 사고가 벌어진 순간, 아마 우즈키는 정신을 잃은 프로듀서보다 조금 더 빨리 깨어났을 것이다.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시야에 들어온 가시로 자기 얼굴을 찢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조를 기다린다.

자기 얼굴에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새기고 프로듀서가 책임을 지게 하는, 순간적으로 행한 명백히 악마적인 발상.


손목을 그은 것도 혼란해진 것처럼 보이게 해서 더욱 기반을 굳히는 행위다.

확실히 손목이라고 해도 과일 깍는 나이프로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위장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둘 다 참기 어려운 격통이다.

그러나 우즈키는 그 둘 다 주위에게 눈치채이지 않고 완벽하게 연기를 해냈다.


그 어두우면서 강인한 정신력에 린은 두려움을 느꼈다.

분명 우즈키도 또한 프로듀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여자의 감으로 린과 프로듀서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어난 사고.


우즈키는 눈앞에 있는 가시를 보고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정신을 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은 우즈키의 예측대로 돌아갔고, 우즈키가 사랑하는 사람인 프로듀서는 우즈키 옆에 있다.

진실을 알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지기 위해.


선서가 끝나고 맹세의 입맞춤을 하려고 할 때.

린은 자기도 모르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모든 것을 폭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증거는 이미 파편으로 변했고, 린이 알아낸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게 너무 늦었던 것이다. 

아니, 진실을 가려버릴 정도로 강한 우즈키의 집념에 린이 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즈키와 프로듀서의 입술이 겹치는 순간, 린의 눈에는 우즈키의 뺨에 새겨진 상처 자국만이 들어왔다.

린에게는 우즈키의 그 상처 자국이 프로듀서를 옭아매는 쇠사슬처럼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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