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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죠 카렌과 보내는 여름 ⑭ -完-

댓글: 8 / 조회: 842 / 추천: 5



본문 - 01-20, 2019 03:37에 작성됨.

 삐비비빅. 삐비비빅.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오늘은 금요일. 마음 설레는 주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침대에서 일으켜서 이를 닦은 다음.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아무 일도 없는 평소대로의 일상이다.

 전이랑 다를 바 없을, 텐데.

 어쩐지 조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분명 기분 탓이겠지만.


「응……?」


 서랍에 목걸이가 들어 있다.

 페퍼민트 그린 컬러에 연꽃을 본뜬 목걸이다.

 선물용 포장재도 같이 들어 있다.

 왜 이런 게 여기 들어 있지.


 …… 아, 마유 생일 선물로 산 거구나.

 맞다, 보름쯤 뒤면 마유 생일이니까 하고 샀었을 거다.

 아니면 유닛 결성 축하 기념 선물이든가.

 아무튼 다시 포장해서 가방에 넣어 두자.


「다녀올게ー」


 집을 나설 때 왠지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분명, 기분 탓이었을 거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씨」


「안녕하세요, 치히로 씨」


「이틀 꼬박 휴가 내고 어디 가셨던 거에요?」


「쁘띠 여행이요」


 혼자서 유원지에도 가고 카루이자와에도 가고, 보람찬 유급휴가였다.

 이렇게 될 거였다면 13일에도 연차 써서 6일짜리 휴가로 만드는 것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자, 일이 늦어지진 않았지만 쉬었던 만큼 의욕을 내 줘야겠지.

 아이돌들도 유닛 데뷔를 향해서 힘내고 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유닛명, 아직 못 정했네요……」


「그랬었죠오…… 마유와 유쾌한」


「에어 기타!」


「리이나 쨩, 정말 그래도 돼?」


 카라시렌콘으로 하쟀던 녀석이 할 말은 아니잖아.

 그건 제쳐 두고서라도, 슬슬 본격적으로 유닛명을……


「…… 무도회 같은 이미지는 어떨까」


 나는 불현듯 중얼거렸다.

 이 유닛의 데뷔곡 Love∞Destiny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무도회인가요오…… 흐음흐음, 그렇다면……」


「으음, 댄스 파티?」


「재미 없네요!」


「………… 아, 그럼……」


 모두의 시선이 치에리에게 모인다.


「…… 가면무도회, 같은 건…… 어떨까요……」


「마유도 똑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마치 자기 아이디어였다는 것처럼 자랑하는 마유.

 가위바위보를 늦게 내서 이긴 다음 뽐내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좀 락함이 부족하지 않아?」


 락 밴드가 아니니까 그런 건 아닐까.

 애초에 요즘 리이나가 말하는 락이란 게 뭔지부터 모르겠다.


「그럼………… 『Masque:Rade』 란 유닛명은 어떨까요?」


「오ー! 엄청 영어잖아!」


「마스커레이드…… 멋진 유닛명이에요!」


「Masque:Rade라…… 꽤 잘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역시 마유, 네이밍 센스가 괜찮다.

 저거 말고 다른 아이디어가 없으면 이대로 결정되겠지.


「이런 유닛명은 어때? 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지 않았나요오?」


「글쎄? 그래도 괜찮잖아, 락하구」


 락. 락이란 무엇인가.


「마스커레이드란 건 가면무도회라는 뜻 맞죠?」


「네…… 일단, 그것 말고도 다른 뜻이 있긴 하지만요」


 분명 가식, 허구, ~~을 가장하다, 같은 뜻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그런 뜻이랑은 상관없겠지.


「그럼, 유닛명도 정해졌고 대단원도 다가오고 있어. 트레이너 씨도 의욕만만하게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열심히 하고 와」


 네 사람을 배웅한다.

 Masque:Rade…… 좋은 유닛이 될 것 같다.



「아. 마유만 잠깐 남아 줄래」


「…… 우후후, 안 돼요오 P 씨이. 사무소에서는…… 집에 가서 해요, 네?」


 몸을 비비 꼬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아마 마유가 기대하는 그런 용건은 아닐걸.

 아아 저거 봐, 다른 아이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세 사람이 나가고 나서 가방 안에 있던 선물을 꺼낸다.

 유닛명도 정해졌으니까 지금 주는 게 좋겠지.


「자, 유닛 결성 축하해. 리더로서 노력할 수 있게 내가 주는 선물이야」


「………… 시, 식은 언제 올리나요오?!」


 무슨 식?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왜 그렇게 되는데?

 딱 봐도 사고가 비약하고 있다.


「우후후…… 우후후후후…… 우우~ 우우~」


 기쁨에 언어 중추가 망가져 버린 모양이다.

 억누르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히죽거리고 마는 마유.


「이, 이이이! 이건…… 프, 프로포즈라고 받아들이면…… 아아, 그래도 안 돼요오…… 마유한테는 유닛이……」


「유닛 결성 축하한단 말 들었어?」


「못 들었어요!」


「그럼 잘 들어」


 너무도 불안해진다.

 왜 마유는 아이돌 활동할 땐 착실하면서 나랑 얘기하기만 하면 이렇게 변해 버리는 걸까.


「이건…… 목걸이?」


「아아, 보는 대로야」


 마유는 포장을 풀고 안에 든 걸 꺼냈다.


「………… P 씨, 왼손 약지에 목걸이는 못 끼워요」


「왼손 약지가 아니라 열 손가락 어디에도 목걸이는 못 끼는데」


 그러니까 유닛 결성 축하 선물이랬잖아. 몇 번이고 말하게 하지 마.

 치히로 씨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짓고 있다.


「잘 됐네요, 마유 쨩」


「…… 이건, P 씨가 주시는 선물인가요?」


「그래, 내가 고른 선물이야」



「흐음흐음. 그러시다면……」


 기쁘게 받을게요. 라든가.

 그렇게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 마유는, 받을 수 없어요」


 …… 어?

 수취 거부라고?


「…… 마음에 안 들어?」


「반대로 물을게요. P 씨는 이 목걸이가, 마유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사신 건가요?」


 그거야 당연하지. 마유 주려고 산 거니까.

 마유가 기뻐해 줄 수 있도록 마유한테 어울리는 목걸이를 고르는 게……


「…… 어라, 분명……」


「네. P 씨가 마유를 생각하면서 고르셨다면, 이런 디자인으로 사진 않으셨을 거에요」


 그 말대로다.

 마유한테 어울리는 선물이라면 당연히 붉은색에 장미꽃이나 리본을 본딴 디자인으로 골라야 한다.

 적어도 페퍼민트 그린은 절대 아니다.

 색은 치에리한테 딱 맞는다고 쳐도, 연꽃 디자인은……


「…… P 씨는 이 목걸이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사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마유는 받을 수 없어요.

 조금 외로운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유.


「……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아뇨, 마유는 괜찮아요. 반지도 아니었으니까요」


「다음에 제대로 된 걸로 다시 준비해 둘게」


「반지를요오?!」


「붙잡아서 미안해. 레슨 열심히 받고 와」


 자, 나도 슬슬 일을 시작해야지.

 유닛 데뷔가 가까워졌으니 할 일은 산더미만큼 많다.

 하나씩 하나씩 착실하게 진행시키자.

 유닛 데뷔를 최고로 장식할 수 있도록.








「다녀왔어ー」


 너무 피곤하다.

 대량의 업무와 연휴 여행의 여독 그리고 피로감이 끊임없는 물결처럼 밀어닥친다.

 가라앉듯이 소파에 주저앉아서 맥주 한 캔을 딴다.

 텔레비전을 켜 보니 어딘가에서 하고 있는 불꽃놀이 대회가 생중계되고 있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지. 배도 안 고프고 귀찮기도 하다.

 적당히 풋콩이라도 씹으면서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연속해서 터지는 불꽃놀이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울려퍼진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도시의 밤하늘에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 이렇게, 조용했던가.


 사무소에 있는 우리 방에 사람이 많아지고 떠들썩해져서 그런 걸까.

 텔레비전 소리가 조금 작아서 그런 걸까.

 항상 혼자 보내는 이 방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게 느껴져서.

 왜인지 공연히 외로워졌다.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여름 밤하늘을 보고 센티해져서 그런 거겠지.

 맥주캔은 이미 텅 비어 있어서 두 번째 캔에 손을 뻗는다.

 이것만 마신 다음 샤워하고 자자.


 이것도, 평소대로일 텐데.

 이렇게나 뭔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대체 왜일까.


 모르겠, 지만.


 절대, 기분 탓으로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아닐 거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았다.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Masque:Rade가 데뷔하고 대히트를 쳤다.

 CD도 내고 여기저기서 라이브도 했다.

 멤버들 생일에는 파티를 열었다.

 크리스마스 때도, 당일엔 못 했었지만 파티를 열었다.


 마유도 치에리도 리이나도 미호도.

 점점 성장해 가는 아이돌들을 바라보는 건 기쁜 일이었다.

 물론 나와 치히로 씨도 꽤 노력했다.

 사무소에서 아침을 맞이한 날이 몇 번이나 있었던지.


 충실한 나날이었다.

 바쁘지만서도 즐거운 날이 이어져 왔다.

 보람차고 만족스러웠다.

 그랬을, 텐데.


 …… 하지만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뭔가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광경은 아직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그게 대체 뭔지조차도 모르겠지만.


 Masque:Rade 네 사람이 보여 주는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훌륭하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고의 성과일 텐데.

 그런데도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계속, 나는 찾아다니고 있다.

 휴일엔 산책을 다니게 됐다.

 뭔지도 모를, 그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찬 바람이 부는 날에도. 눈이 쌓인 날에도. 꽃가루가 지독하게 날리는 날에도.


 그리고, 오늘.

 받아 보라는 듯이 햇빛이 쏟아져서, 더위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여름날에도.

 

 7월 12일. 일요일.


 일요일이란 구원이다.

 이건 전에도 말했던가.

 길어지니까 생략하겠지만 아무튼 오늘은 일요일이다.


 여름은 갑작스레 시작돼서, 겨울에 그렇게나 동경했던 이 온기가 지금은 이게 현실이라고 말하기라도 할 듯 체력을 앗아간다.

 6월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쌀쌀함을 전혀 남기지 않은 채로, 며칠 전부터는 오직 더위가 메우고 있다.

 쨍쨍이란 의태어가 딱 맞을 정도로 무섭게 빛나는 태양은 아스팔트가 반사하는 빛과 어우러져 도시의 여름을 자아내고 있다.

 土 위아래로 日가 있어서 더울 暑.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걷고 있다.

 뭔가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무소에 휴가를 내고.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집을 빠져나와서.

 이렇게 더운 날에 난 질리지도 않고 계속 걸어 나간다.


 그 날부터 마흔 번을 넘어서 쉰 번 가까이 되는 일요일마다.

 그저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고만 있다.

 구름이나 안개라기보단, 흐릿한 꿈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듯한 감각.

 하지만 그것도 의외로 즐거운 나날이었다.


「P 시이…… 더워…… 더워여어……」


「…… 오랜만에 휴일이니까 집에서 쉬면 좋았을 텐데」


 …… 높은 빈도로 옆에 마유가 있었으니까.


 봄 가을엔 건강하고 발랄하게 데이트 데이트! 란 느낌이었지만.

 겨울엔 추위에 떨며 눈사람 같아졌고.

 여름엔 더위에 녹아 버릴 것 같아져서.

 오늘도 이렇게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따라오고 있다.


「P 씨, 요즘엔 바쁘셔서 놀아 주질 않으시니까요오」


「아니, 너 아이돌이거든. 예전엔 같이 나가고 그러진 않았잖아」


 아마 전보다 마유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으니까.

 왠지 모르게 산책하러 나가서 5분 정도 지나면 마유랑 만나게 되고, 그리고 둘이서 한가로이 산책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만두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내 말을 전혀 들어 주질 않아서 포기했다.

 꽤 확실하게 변장하고 있으니까 들킬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건 그렇다 쳐도 내가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따라오는 걸까.

 평범하게 무섭다.

 여름은 호러의 계절이니까 허락해 주겠지만 다른 계절엔 삼가 줬으면 한다.


「마유는 나날이 일하느라 피곤해요」


「그렇구나. 집에서 편하게 쉬면 되겠네」


「우후후, 말은 그렇게 하셔도…… 사실은 기쁘신 거죠오?」


「마유가 피곤하다고 그래서 산책 끝낸 게 몇 번인지나 알아」


 기쁜지 아닌지 묻는다면 반반.

 그냥, 심심하지는 않다.

 지루하진 않다.

 시끄럽고 귀찮긴 하지만.



「후후, 동반자니까요. 휴일에도 함께 지낸다는 뜻이 있잖아요오?」


「반려자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사전에서 다시 찾아보고 와」


「백과사전에는 P 씨랑 마유 둘이 찍힌 사진이 실려 있었어요오」


「이 나라 괜찮을까」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걱정한다고 뭘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그나저나………… 덥네」


「그러네요오…… 잠깐 쉴까요오?」


 그것도 좋지.

 벌써 점심때도 다가왔고, 근처 카페에서 가볍게 배라도 채워 둘까.

 사람이 가득한 역전 로터리를 빠져나와서 적당한 카페를 찾는다.

 어딜 가나 귀성 일정 탓에 일손이 부족한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 므므므…… 신경쓰이던 카페는 휴업이었어요」


「이래서야 이제 패스트푸드점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공간이 열려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까.

 왔던 길을 되돌아서 역 쪽으로 향한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좌우에 늘어선 가게들을 바라본다.


 띠링


「어, 문자가……」


「누구 문자인가요? 사적인 용건인가요? 여성인가요?」


 캐묻는 마유를 무시하고 핸드폰을 켠다.

 내 개인용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만한 사람이……


「…… 역시 스팸 같은데. 『지금 만날래?』 라네」


「아아. 그런 문자 많죠오. 마유한테도 자주 와요」


 본 적 없는 전화번호로 오는 문자는 확인 안 하는 게 좋다.

 제목도 빈 칸이었으니. 무시하고 들어갈 가게나 찾자.


 얼마 안 가, 눈 앞에 M 글자로 유명한 햄버거 가게가 나타났다.

 게다가 세상에, 지금은 아이스 커피를 공짜로 나눠 주고 있다.

 마치 지금의 우리를 위해 설치한 것만 같은 이 햄버거 가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 눌러앉기엔 양심이 찔리니까, 적당히 아이스크림이든 쉐이크든 주문하기로 하자.


「마유는 뭘로 할래?」


「우후후, 그런 걸 마유 입으로 말하라고 하시다니…… P 씨는 변태에요오」


 대화가 성립하질 않는다.

 나이나 IQ 차이가 크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이런 경우엔 무슨 수치가 얼마나 차이나서 그러는 걸까.

 그나저나, 장난만 치고 있을 순 없다.

 순조롭게 줄이 짧아지고 계산대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슬슬 주문을 제대로 정하기 적당한 타이밍이다.


 …… 고 생각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쿠폰은 기한이 지나서……」


「올해야말로 먹힐까 싶었는데………… 안 돼? 나 돈이 없거든」


「그렇게 말씀하셔도……」


「…… 꼭 있네요오, 이런 손님」

 
 마유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러는 김에 거리를 꽤 좁혀 온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쪽을 의식할 여유가 없다.

 눈 앞에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면서 잔돈을 찾느라 지갑을 뒤지고 있는 갈색 머리 여고생을 빤히 보고……


 ーー 겨우, 찾아낸 것 같다.

 
「정말, 쿠폰 기간 정도는 제대로 확인하고 가게에 왔어야죠오…… 게다가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데 지갑에 250엔도 없다니……」

 
「…… 좋았어」


「엣? 저, 저기…… P 씨이……?」


 이건 분명, 다시 없을 찬스다.

 각오를 다지고, 난 앞에 있는 여고생에게 말을 건다.


「대신 제가 계산해 드릴까요?」


 나 스스로도 이 자식 무슨 소릴 한 거야 싶긴 하다.

 수상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 그런데.

 
「…… 후후, 약속 잘 지켜 줬구나」


「어?」


 눈 앞의 소녀는 웃고 있다.


「아. 아니지아니지. 뭐야 당신은. 가게에서 헌팅이라니 상식이 부족한 것도 정도가 있지」

 
 거침없이 거절당했다.

 아니, 나도 알고는 있지만.

 그리고 말하진 않겠지만, 그건 네가 할 말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너무도 서늘한 시선과 점원의 눈빛이 가슴에 아프게 꽂히지만, 그래도 좀 더 들러붙어 보자.

 
「헌팅은 아니지만…… 일단 우리도 빨리 계산하고 싶으니까, 내가 계산하게 해 주면 안 될까?」

「…… 감자튀김 하나로 여고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감자튀김 하나도 못 사는 여고생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고 말하면 화낼 테니까 말로 하진 않겠지만.

 
「3분 얘기해도 관심 없으면 자리 비켜 줄 테니까」

 
「………… 안ー돼」


 거절당하고 말았다.

 뭐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될 수 있으면 잠깐이라도 좋으니 얘기를 들려 주고 싶었다.

 그러면 아이돌에 대해서 조금은 관심이 생겼을 테니까.

 왜 내가 그녀를 스카우트하려고 했는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난 지금 Masque:Rade를 프로듀스하는 데만도 힘에 부치는데.


 …… 그런데도.


 눈 앞의 여자아이가.

 페퍼민트 그린 컬러에 연꽃을 본딴 목걸이가 어울릴 것 같은 여자아이가.

 시끄러울 것 같고, 제멋대로일 것 같은 여자아이가.

 스테이지에 선 모습을, 보고 싶어졌으니까.
 


「3분 갖곤 한참 부족하니까」


「………… 어?」


 그렇게 짧은 시간에 고맙단 마음은 못 전할 테니까.

 이번엔 꼭 전할 테니까.

 아마 이번에만 해도 한참 부족할 테니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렇게, 후훗 하고 웃으며.

 이 쪽을 돌아보고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말했다.


「올 여름에도 잘 부탁할게, P 씨」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건 나중 일이었지만.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시끄럽고 귀찮은 여자애였지만.

 기적 같은 만남이 패스트푸드점 계산대 앞에서 이뤄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지만.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오봉 기간 하루 전부터.





 호죠 카렌과 보내는 여름이, 시작됐다.




= = = = = = = = = = = = = = = = = = = =
번역전 용량 330kb, 번역후 309kb. 이걸로 완결입니다.
개인적으로 번역한 ss 중에는 가장 명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초반에 느껴지던 어색한 요소들 (카렌의 성격이라든가 의미심장한 대사들 같은) 을 복선으로 싹 회수하고,
여운이 남는 깔끔한 엔딩으로 마무리까지 좋았다고 봅니다.

읽어 주신 여러분, 댓글 남겨 주셨던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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