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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죠 카렌과 보내는 여름 ⑩

댓글: 4 / 조회: 754 / 추천: 3



본문 - 01-14, 2019 02:48에 작성됨.

「우으으, 돌아가기 싫어……」


「도쿄는 여기보다 더우니까요오……」


 8월 12일 월요일. 합숙 마지막 날.

 오늘도 또 오늘대로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 내리며 여름날을 자아내고 있다.


 오전 레슨은 이미 끝내고 철수 모드로 들어가고 있다.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준비.

 벌써 땀을 꽤 흘려서 한 번 더 샤워하고 싶어진다.

 뭐 역에 도착할 때까지 또 흘리게 될 테니 포기했지만.


「신세졌습니다ー」


 여관 분들께 인사드리고 버스에 올라탄다.

 그리고 덜컹덜컹 산길을 내려가길 수십 분. 도중에 환승해서 또 수십 분.


「…… 도시가……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어, 다들 봐!」


 사막에 조난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카렌의 말을 듣고 반쯤 잠에 빠지기 시작하던 의식을 되찾았다.

 우리 말고도 승객이 더 있으니까 좀 조용히 말해 줬으면 좋겠다.


「아, 모처럼 갔었는데 여관에서 다같이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그랬네요」


「그러고 보니 사진을 안 찍었네요. 아까울지도」


 겨우 버스가 역 앞에 도착했다.

 내리는 동시에 기지개를 켜고 크게 한숨을 들이마신다.

 아아, 멀미 나고 졸렸다.

 역시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게 최고지.


 시각은 벌써 오후 네 시. 해도 조금씩 저물어 가기 시작한다.

 햇볕도 조금은 잔잔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덥다.


「이제 전철 타고 돌아가는 거던가?」


「아니, 근처에서 축제 하고 있는 모양이라더라. 다들 좋다면 들렀다 갈까 했는데」


「갈래!」


「갈래요오!」


 정해졌다.


 그렇게 됐으니 역 내의 코인 락커에 짐을 맡기고 걸어서 축제 회장인 신사로 향한다.

 *봉오도리 대회를 하루 일찍 열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오늘은 대체휴일이기도 하니까 형편 좋게 맞춘 거겠지.
 ※주1

 오히려 요즘 들어선 오봉 일정이나 관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적을 것 같기도 하다.

 휴가만 낼 수 있으면 충분하니까.


 그러고 보니 올해는 귀성 못 하고 넘겨 버렸구나.

 카렌 혼자 집에 두고 갈 수도 없었으니.

 뭐 우리 친가에서도 돌아올 수 있으면 생각해 둬라, 정도였으니까.

 앞으로 당분간은 유닛 활동을 지원하느라 바빠질 테고.



 둥! 둥!


 근처에서 북 소리가 난다.

 목적지인 신사가 가까워지고 있다.


「오오오ー, 사람」


「감상 어휘력 수준이……」


 신사의 토리이를 빠져나가면 펼쳐지는 경내에는 사람・사람・사람.

 중앙에는 망대가 우뚝 서 있고 북 소리는 그 위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도쿄의 유명한 봉오도리 회장만큼의 인구밀도는 아니어도 꽤 활기차서.

 햇볕의 더위와 춤추는 사람들의 열기가 합해져서 무서울 정도로 덥게 느껴졌다.


「모처럼 온 거 유카타 입는 것도 좋았을 텐데」


「렌탈 업체 같은 게 어디 없을까요오」


 유카타 차림으로 망대를 둘러싸고 춤추는 사람들 사이로 카렌과 마유, 리이나가 빠르게 섞여들어간다.

 본인들이 아이돌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거 아닐까.

 변장용 안경이랑 모자로 얼마나 속일 수 있을지.

 야 이 바보야, 덥다고 모자 벗으려고 하지 마.


「치히로 씨는 뭐 하실래요?」


「프로듀서 씨. 저쪽에서 토산주를 마실 수 있는 것 같은데, 같이 가서 마실까요?」


「아뇨, 여기서 돌아갈 때 다들 인솔해서 가야 하니까……」


「체엣ー. 분위기 못 맞추는 남자는 인기 없다구요ー?」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치히로 씨가 텐트 쪽으로 떠나 버렸다.

 평범한 축제처럼 노점이 많이 있었다면 좀 더 손쓰기 어려워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뭐 할래, 치에리 쨩」


「…… 북, 나도 쳐 보고 싶은데…… 교대해 달라고 하면 안 될까……」


「안 돼 치에리 쨩! 부탁이야, 치에리 쨩만은 저 쪽으로 넘어가지 말아 줘!!」


 다들 즐거워 보이니까 내버려 둬도 괜찮겠지.

 아무래도 춤출 체력까진 없어서 근처에 놓인 파이프 의자에 앉아서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주변 사람들한테 아이돌이란 사실을 들켜 버리면 그건 그 때 어떻게 하기로 하고.

 뭐 잘 되겠지.


 여름의 풍물인 봉오도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하늘은 주홍색으로 물들고, 불어오는 바람도 조금 시원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줄어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아직도 힘이 넘친다고라도 말할 듯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춤추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가끔씩 우리 아이돌 넷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새 옆 자리에는 종이컵을 한 손에 든 치히로 씨가 앉아 있었다.

 안에 든 건 분명 일본술이겠지.

 다들, 합숙 마지막 날을 이것 보라는 듯이 즐기고 있다.

 
 그나저나 망대 위에서 북을 치고 있는 트윈테일 여자애가 싫을 정도로 낯이 익은데, 내가 아는 그녀는 그렇게까지 액티브하지 않으니까 내 착각이었던 걸로 해 두자.



「아ー 재밌었다. 더워어ー……」


「응, 고생했어」


「주변 사람들한테 맞추면 잘 몰라도 춤출 수 있는 거구나」


「카렌이 거기서 주변 사람들한테 맞춰 줘서 좋았어」


 녹초가 된 카렌이 먼저 윤무에서 빠져나왔다.

 그대로 내 옆에 앉아서 펄럭펄럭 가슴 앞을 부채질한다.

 이 녀석이니까 혼자 멋대로 다른 춤을 추진 않을까 내심 불안하기도 했었지만.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는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길래 눈을 돌린다.


「그나저나, 후우…… 봉오도리란 건 열기가 대단하구나」


「도쿄의 유명 봉오도리 대회는 훨씬 더 대단할걸」


 하치오지의 봉오도리는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참여하는 봉오도리로 기네스북에도 실렸다고 한다.

 인파가 사흘 간 80만 명. 초인기 아이돌도 모으기 어려울 레벨이다.


「헤에ー, 80만 명이면 도쿄 돔 몇 개나 채울까?」


「분명 수용 인원수가 5만 5천 명이었으니까…… 열네댓 개 정도겠지」


「와, 일본의 삼 분의 일이잖아」


 그러고 보니 전에, 일본은 도쿄 돔 47개 정도 넓이라고 했었던가.

 약간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그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 그래서, 봉오도리란 건 대체 뭐야? 왜 춤추는 건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봉에 찾아온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아마, 공양하는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건 신사 관계자 분께 물어보면 기쁘게 설명해 주실 것 같은데.


「음ー…… 그것도 좀 그렇지 않아?」


「더 조용하면 좋을 것 같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찾아오는 영혼들도 원랜 인간이었던 거잖아?」


「뭐 그렇지」


「이렇게나 즐거우면 저승으로 돌아가기 싫어져 버리는 거 아닐까, 싶어서」


 떼 쓰는 애도 아니고.

 아니, 아직 어린애인 영혼도 있기야 하겠지만.


「으음…… 그럼 내년에 또 와 달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


 어차피 매년 하는 거니까.

 *가지로 소까지 만들었는데 15일에 맞춰서 돌아가 주지 않으면 면목이 없어진다.
 ※주2


「그리고 있잖아, 어둡고 시시하면 내년에 다시 오기 싫어질 거 아냐」


「후후, 그렇겠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럼 왜 물어본 거야.

 이럴 땐 사실 관심 없더라도 본심을 숨겨 주면 좋겠다.

 아니, 바보 같을 정도로 솔직한 점이 카렌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 얘긴 왜 한 건데? 란 흐름이 돼 버린다.



「P 씨는 춤 안 춰?」


「피곤하니까」


「괜찮아괜찮아. 내가 리드해 줄게」


 아니 춤을 잘 못 출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니까.

 하지만 카렌은 내 말은 한 귀로 흘리고, 내 손을 잡아끌어서 일으켜 세웠다.


「자자, 안에 들어가서 춤추자! 남자니까 레이디를 똑바로 리드해 줘야지!」


「방금 전이랑 또 말이 다르잖아……」


 애초에 너 레이디란 느낌이 아니잖아? 란 말은 꾹 눌러서 삼켰다.

 말하면 기분 상할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손 잡고는 봉오도리 춤 못 추는데」


「그럼 우리끼리만 무도회 할까?」


「너 아이돌이라니까? 변장도 안 한 아이돌이랑 손 잡고 춤출 수 있겠냐고」


「가면 사서 쓰면 돼?」


 봉오도리 축제 한복판에서 가면 쓴 여자애랑 손 잡고 춤추다니, 벌칙도 아니고.

 오히려 훨씬 더 눈에 띄어서 빈축이나 사겠지.

 결국 손을 놔 주질 않아서 포기하고 그대로 춤을 춘다.

 솔직히 몸을 조금 움직이기만 했는데도 벌써 너무 지친다. 평소에 안 하는 움직임은 힘들다.


「후후, 너무 못 추잖아. 그래선 스테이지에 못 선다구」


「아이돌이랑 비교하지 마」


 애초에 난 프로듀서니까 스테이지에 설 필요도 없잖아.

 한동안 북 소리와 반주와 주변 사람들에 맞춰서 팔을 흔든다.

 온 몸을 움직이기엔 너무 피곤하니까 그럴듯하게 한 팔만으로.

 그렇게 팔을 흔들기만 하는 것도 꽤 지치는 일이었다.


「…… 이제 그만 가야겠다」


 등이 밝아서 몰랐지만 해는 진작에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움직이느라 몰랐지만 불어오는 바람도 꽤 서늘해져 있다.

 아마 오후 여섯 시 정도 됐을 테니 슬슬 역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지.

 내일부터 우리는 평소대로 일을 해야 하니까.



「에ー 돌아가기 싫은데에ー」


 애냐 너는.

 하고, 놀리려는 순간.


「꺅!」


 카렌이 뒤에 있는 사람한테 부딪혀서 넘어질 뻔했다.

 잡고 있는 손을 급하게 당겨서 이 쪽으로 끌어들인다.


「…… 오ㅡ 오…… 파인 플레이……」


「나한테 고마워해」


「…… 잡아 줘서 고마워」


 의도치 않게 끌어안는 형태가 돼 버렸지만 넘어지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

 부딪혀 버린 뒷 사람과 서로 사과하고서 춤추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카렌이 좀처럼 멀어지려고 하질 않아서.


「…… 카렌?」


「………… 돌아가는 거, 싫다아. 쭉 곁에 있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젯밤에 카렌과 마유가 나누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쿄에 돌아가고 나면 카렌은 이번 주 중으로 우리 집에서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돌과 프로듀서니까.

 게다가, 언제라도 사무소에서……


「…… 부르면 언제든지 만나러 갈게」


「…… 어?」


「도쿄 돌아가면, 카렌이 이사 가기 전에 핸드폰 계약을 새로 하자. 첫 달 요금은 내가 내 줄게. 만나고 싶을 때…… 곁에 누가 있어 줬으면 할 때는 언제라도 전화로 불러 줘」


 프로듀서인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타협안.

 호죠 카렌이라는 한 명의 여자아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


「그러면, 달려갈게. 만족할 때까지 곁에 있어 줄게」


「…… 언제든지?」


「내가 안 자고 연락 받을 수 있으면」


「어디서든?」


「막차 안 끊겼으면」


「몇 번이든?」


「몇 번이든. 그러니까 카렌도…… 아이돌 활동, 온 힘을 다해서 노력해 줬으면 해」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내 사생활이 힘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스테이지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빛나는.

 언제라도 빛나는 오리온자리 같은 아이돌, 호죠 카렌을 보고 싶으니까.


「…… 후후, 뭐야 그거. 폼잡긴」


「안 어울린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응, 그러면…… 나도 만족할 수 있으려나」


 …… 그나저나, 하고.

 카렌은 면목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주변 사람들이 엄청 쳐다보고 있지 않아?」


 …… 아, 맞다.

 지금 봉오도리 한복판에 있었지.

 놀리는 듯한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카렌이 나한테 안겨들어 있는 덕에 얼굴은 안 보이는 구도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인가.


 아니, 애초에 안겨들질 않았으면 이렇게 주목받을 일도 없었겠지만.


「…… 어딜 사람들 보는 데서 꽁냥꽁냥대고 있는 건가요오?」


 마유가 팔을 잡아당겨서 카렌을 떼어낸다.

 그대로 주위에 가볍게 인사한 다음 스으윽 퇴장할 기회를 노린다.

 거북한 시선을 피해서 치히로 씨와 합류한 다음 서둘러 신사를 떠난다.

 들려우는 북 소리에는 힘이 잔뜩 깃들어 있다.


「…… 후우」


「P 씨이? 꽤나 사이좋아 보였는데 말이죠오?」


「…… 고생했어 마유. 치에리 어디 있는지 몰라?」


「리이나 쨩이랑 미호 쨩이, 이제 돌아가야 하니까 북채 좀 놓으라고 설득하고 있어요오」


 그렇, 구나.

 역시 그거 치에리였나.

 여름을 즐기고 있구나.

 활달해졌구나.


 …… 이 유닛에서 믿고 의지할 만한 멤버가 미호 한 명으로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다ー녀왔어ー…… 아ー, 집에 와 버렸다」


「어서 와. 그리고 다녀왔어」


 오후 열 시가 지나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합숙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카렌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아마 학창 시절에 수학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집 근처 역에 도착했을 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다녀왔어 현실. 돌아오고 싶진 않았지만, 이란 느낌.


「아, 들어와 P 씨」


 이렇게 들어올 때 카렌과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을 날이 며칠이나 남았을까.

 이 생활에 익숙해진 건 나도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와서 버릇처럼 다녀왔다고 말해도 받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 외로워지는 날도 생길 것 같다.

 뭐, 익숙해지겠지.


「원래는 외톨이였는걸, 우리 둘 다」


「그러고 보니 카렌, 이사 가기로 한 데는 어떻게 됐어?」


「으음, 아직은 비밀!」


 빨리 안 알려 주면 업무상 곤란한데.

 그리고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라면 만나러 간다는 약속도 지키기 쉬워진다.


 평소대로 샤워를 하고 서로 자리가 정해진 소파에 몸을 묻는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지. 졸음과 피로 탓에 식욕도 없다.

 텔레비전을 켜니 정말 있었던 것 같은 무서운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다.

 병원에서 이미 죽은 환자의 영혼이, 라는 흔한 이야기.


「…… 저거 알아. 너스콜이 심야에 울리면 지인짜 시끄러워지거든」


「그게 더 무섭구나」


「뭐 나도 자주 신세졌었지만」


「정말 있었던 괴로운 얘기는 그만두자?」


 웃기 힘들잖아.

 무거운 분위기가 되지 않게 채널을 돌린다.

 음악 방송. 이게 훨씬 낫지.

 우리 사무소 아이돌이 발매한 곡이 흐르면, 내 담당 아이돌도 아닌데 조금 기뻐진다.



「…… 아, P 씨」


「응, 왜 그래?」


「내 꿈을 이뤄 줘서 고마워」


「갑자기 왜」


「……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을 동경하던…… 동경하는 것조차 우스울 정도로 초라했던 나를 아이돌로 바꿔 줘서 고마워」


「우습다니…… 동경 정도는 아무나 할 수 있고, 아무나 해도 돼. 동경하는 존재가 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전부 카렌의 힘이기도 하고」


 서로답지 않은 말을 주고받는 건 피곤해서 그런 걸까.

 졸릴 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벌써 11시를 넘었다.

 날짜가 바뀔 때까지 안 자면 내일까지 영향이 갈 것 같은데……


「……정말 감사하고 있어. 다녀오라고 말한 적은 많아도, 다녀오겠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어서오라고 말한 적도 많지만, 다녀왔다고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


「…… 그렇게나……」


「…… 그런 내가 온 힘을 다해 노력하게 만들어 주고, 온 힘을 다해서 응원해 주고, 내 제멋대로인 소원도 이뤄 줘서…… 울 것 같아질 정도로, 기뻤어」


 기뻤다, 고.

 그 말을 입에 담는 카렌의 표정은, 하지만 당장이라도 울기 시작할 것 같았다.


「…… 있잖아, 카렌이 앓고 있던 병은 얼마나 큰 병이었던 거야?」


 중병이었다는 건 알고 있다.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카렌 본이니 말하고 싶지 않아할 거라 생각해서 굳이 물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아마, 아무래도 카렌의 병세는 내 상상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 나았는지 정도는 알려 줬으면 한다.



「…… 목말라, 주스 마시고 싶어」


「지금 이 흐름에서 그렇게 끊기야」


 너무도 카렌다워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냉장고를 뒤져 봐도 없었던 모양이다.


「칼피스 다 떨어졌잖아. 편의점 다녀올게」


「오봉 선물로 들어온 건 지난 주에 카렌이 다 마셨잖아…… 나도 따라갈게. 밤 늦어서 위험하니까」


「됐어 됐어, 먼저 자는 건 어때?」


 어떻게 그러겠어.

 이런 시간에 여자애를 혼자 내보내면 문제가 된다.


「…… 그럼 자판기 칼피스로 참을게」


 참는다니 뭐야,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래도 자판기는 이 건물 로비에 있으니 안심이다.

 
「P 씨가 먼저 자 줘야 나도 옆에서 자러 가기 쉬우니까, 푹 자고 있어?」


「너 진짜……」


 무슨 말을 하든 듣지도 않을 테고, 쓸데없이 설교해 봤자 허무하기만 할 테니까 그냥 자자.

 불을 끄고 수면등을 켠 다음 소파에 눕자마자 강렬한 졸음이 습격해 온다.

 틀림없이 봉오도리 때의 피로가 겹친 거다.

 내일 근육통만 안 왔으면 좋겠는데……


「그럼 P 씨, 예비 열쇠 빌릴게」


「금방 올 거면 안 잠그고 나가도 돼」


「문단속 꼼꼼히 안 하면 위험하잖아」


 뭐, 어쩌든 별로 상관없나……

 …… 이래서야 아무래도 카렌이 다녀올 때까지 깨어 있진 못할 것 같다.


「…… 저기, P 씨」


「왜 카렌」


「………… 응, 아냐……」


 한 호흡 쉬고.

 즐거운 것 같은 카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후후, 다녀올게!」


「엉. 다녀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났다.

 우편함에 뭔가 집어넣는 소리가 났다.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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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오봉お盆, 봉오도리
7월 15일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명절인 오봉お盆은 우리 나라의 추석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7월 13일에 조상신을 불러들이면서 시작하고 16일에 조상신을 배웅하며 끝난다.
원래는 음력 명절이지만 일본에 양력이 전래된 이후에는 양력으로 지내는 게 보통이며
지역에 따라 한 달 늦게 8월에 지내거나 음력으로 7월 15일을 맞추기도 한다.

봉오도리盆踊り는 이 명절 기간 동안에 개최되는 윤무 축제.
조상의 영혼과 후손들이 어울려 다같이 춤을 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주2) 가지로 만든 소
오봉에 장식하는 상징물.
오이로 말 모양을 만들어서 영혼이 올 때는 빠르게 찾아오기를,
가지로 소 모양을 만들어서 영혼이 갈 때는 이승에서 바치는 공물을 싣고 천천히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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