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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죠 카렌과 보내는 여름 ③

댓글: 1 / 조회: 961 / 추천: 4



본문 - 12-24, 2018 05:05에 작성됨.

 삐비비빅, 삐비비빅.


 자명종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수요일 아침.

 타이머를 맞춰 둔 에어컨은 이미 꺼졌고, 조금씩 더워지는 방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이번에 울린 건 여섯 시 반에 설정해 둔 첫 번째 알람이니까 앞으로 30분은 더 잘 수 있다.

 그리고 샤워한 다음 아침밥을……


 쿵!


「아팟!」


 몸을 뒤집으려다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잠꼬대가 심한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침대 끝에서 자고 있었던 모양……


「…… 어? 소파?」


 아직 흐릿한 눈을 문지르며 일어서니, 거기엔 침대가 아니라 소파가 놓여 있다.

 나 왜 소파에서 자고 있었던 거지?

 어젯밤에 술을 마셨던 기억은 없다.

 아무리 그래도 화요일에 기억 안 날 정도로 퍼마시진 않을 테고.


 …… 뭐, 상관없나.

 너무 피곤해서 샤워하자마자 소파에 누워 자 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런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 침실로 가서 앞으로 30분 동안 침대에서 질 좋은 아침잠을 탐내 보실까.


「………… 으겍」


 침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찬 공기가 흘러나온다.

 조용하지만 에어컨이 도는 소리가 들린다.

 …… 냉방이 켜져 있었다.

 이럴 수가…… 아무도 없는데 밤새 돌아가게 켜 놔 버렸던 걸까.

 
 실제로 하룻밤 정도 가지고 전기세가 크게 차이나진 않겠지만, 정신적인 데미지가 크다.

 별로 상관도 없는 치히로 씨가 설교를 늘어놓을 것 같다.

 그건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된 일.

 다시 냉방을 켤 필요도 없어졌고, 지금 끄면 30분 정도는 딱 좋은 온도에서 아침잠을 즐길 수 있다.


 자, 리모콘은 어디 있을까.

 방에 불을 켜고……



「…………………… 하?」


 자고 일어나자마자 거듭해서 들어오는 충격 (그 중에 한 번은 물리적인 충격이었다) 의 연속에 나는 결국 말을 잃었다.


「…… 으응…… 불 꺼……」


 방에 여자애가 있다.

 평소에 내가 자는 침대 위에서 여고생쯤 되는 여자애가 자고 있었다.

 불을 껐다가 다시 켜 본다.

 여자애는 사라져 주지 않았다.


 …… 풍속?

 아니, 그럼 왜 이렇게 늦게까지 자고 있는 거야.

 아니, 어딜 봐도 여고생이지?

 ………… 유괴? 강도? 빈집털이?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그랬다가 만약에 내가 유괴한 애였다면 내가 체포당하고 만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애가 『이 사람한테 유괴당했어요!』 라고 말하면, 재판까지 갔을 때 나한테 승산은 없겠지.

 아니, 말은 그래도 정말 내가 무의식 중에 유괴한 애라면 자수해야겠지만.


「후아아암…… 불 끄라고 했잖아…… 앗!」


「아니 누구야 너!」


「읏?! 당신 누구?!」


「내가 할 말이거든!!」


 …… 아아, 소리 지르느라 잠이 다 깼다.

 그러는 동시에 점점 어제의 기억이 되돌아온다.


「「…… 기억났어」」


 여고생과 목소리가 겹친다.

 몸을 겹쳤다면 큰 문제였겠지만, 그럴 걱정은 없을 것 같다.


「…… 좋은 아침, P 씨」


「…… 응. 좋은 아침 카렌」


 그 애의 이름은 호죠 카렌.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없는 것도 있어서), 오늘부터 한동안만 동거하게 된 여자애였다.





「…… 아, 나 지금 있을 데가 없는데」


「「「「하?」」」」


 울려퍼진 네 사람의 목소리가 깔끔하게 겹친 채 사방에서 카렌에게 향했다.

 당연한 거겠지, 이 반응은.

 여고생인데 있을 데가 없다고?

 그럼 지금까진 어떻게 살고 있었다는 건데.

 
「…… 자세한 사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꽤 섬세한 사정이 있음을 짐작하고, 치히로 씨가 정중하고 마일드하게 묻는다.


「으음ー…… 아, 있을 데가 없단 건 지금 살 데가 없다는 뜻이니까?」


「아뇨, 그건 알고 있으니까요……」


 얼버무렸다, 는 건 별로 얘기하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는 거겠지.

 카렌이니까 진심으로 자기 말을 설명하려고 들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여태까지는 어떻게…… 본가에 살고 있었던 거에요? 아니면 혼자서?」


「원래 본가에 살고 있었는데…… 좀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지금은 혼자야. 그래서 지난 얼마간은…… 친구네 집이나 넷 카페에서」


 지금은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 정도면 되겠지.

 그 때부터 혼자 살다가, 월세라든가 못 내게 돼 버린 걸까.

 그렇다면 감자튀김 살 돈조차 없었던 것도 납득이 간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바빴던 이유는 아르바이트 때문이었을지도.


「이런저런 일들……」


「…… 얘기 안 하면 안 될까?」


「…… 아뇨, 괜찮아요. 사무소에서 기숙사 방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기숙사비 내기도 힘들지두」


 뭐, 감자튀김도 못 살 정도니까 그렇겠지.

 기숙사비 시스템이 어떻게 돼 있는지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아무리 이 사무소가 대기업이라고 해도 무료는 아닐 거고.

 카렌만 면제해 줄 수도 없는 게, 그랬다간 전면 무료화해야 하게 될 거다.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금전 쪽 문제라면 치히로 씨한테 맡겨 두고 싶지만……


「확실히 성공하고 나서 낸다고 하기도 좀…… 상황을 봐서, 부모님께 부탁드리기도 어려울 것 같고……」


「동의서에 사인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돈 내 달라든가 하는 건 절대 무리」


 기숙사비 지불을 조금 유보해 달라고 한 다음, 월급이 나오고 나서……

 그것도 어렵겠지.

 애초에, 이렇게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하지만 갓 달리기 시작한 아이돌이 벌 수 있는 돈이래 봐야 얼마 안 된다.

 레슨 수업료 같은 건 낼 필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기숙사비에 생활비까지 내야 한다면……


 아니, 진짜 여태까진 어떻게 살아온 거야.



「…… 아, 저기 P 씨. 나 지금, 엄청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딩동! 하고 머리 위에 느낌표가 보일 것만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 쪽을 돌아보는 카렌.

 솔직히 나쁜 예감밖에 들질 않는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부탁할게」


「이래 보여도 나 꽤 조신하다구?」


 아니 매춘을 의심한 게 아니라.


「P 씨네 살게 해 줘」


 매춘이었다.


「안 돼?」


「당연히 안 되죠오오!!」


 제일 처음 반응한 건 마유였다.

 아니,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다 같은 감상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부탁해 마유, 정론으로 설득해 줘.

 어쩐지 아이돌이 지어선 안 될 것 같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마유 vs 카렌 제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치사해요! 마유는 아직 찾아가 본 적도 없단 말이에요오?!」


「가 보면 되잖아」


「………… 그러네요. P 씨이. 마유, P 씨 댁에 가 보고 싶어요오!」


 한 방에 KO. 필살기는 『가 보면 되잖아』.

 5초의 열전 끝에 승리를 거둔 건 카렌이었다.


「…… 마유 쨩, 우리는 아이돌이에요……?」


 내가 말하고 싶었던 바를 치에리가 대변해 줬다.

 아이돌을 집에 들였다는 사실을 들켜서 파멸, 그런 엔딩은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너는 내가 밖에 다닐 때 따라오기도 하니까, 결정타가 될 것 같은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카렌에게도 해당된다.


「카렌 쨩도에요. 들은 적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돌이 그런 상대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치히로 씨가 개입했다.

 분명 잘 설득해 주실 거다.



「어, 그래도 나 아직 데뷔도 안 했구」


「…… 그것도 그러네요……」


 …… 분위기가 좀 이상해진다.


「데뷔도 안 한 평범한 여고생이 누구랑 사귀든 별로 문제 없잖아?」


「그렇다는데요, 프로듀서 씨」


 큰일이다. 치히로 씨마저 적이 돼 버렸다.

 분명 『쓸 데 없이 돈 나갈 데가 없어졌다』 든가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내가 스스로 확실하게 거절해야 끝날 모양이다.

 진작 그랬어야 했겠지만.


「카렌, 다 큰 여자애가 모르는 남자 집에서 살면 안 되지.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위험하잖아」


「어, 뭐야? P 씨 그런 짓 하려고?」


「안 해, 절대」


 직접 스카우트한 아이돌 후보생한테 손을 댔다가 모가지라니,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이래봬도 이 일에 긍지를 갖고 임하고 있는데.


「그럼 괜찮잖아」


「…… 어떻게 나를 그렇게까지 믿을 수 있는 거야?」


 만난 지 겨우 몇 일 정도. 횟수로 쳐도 고작 두 번.

 그런데 왜 그녀는 벌써 나를 그렇게나 신뢰하고 있는 걸까.

 사기인가? …… 아니,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 같은데……

 아니면 실은 격투기를 즐겨서, 만약에 덮쳐지더라도 역으로 유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런 녀석이 댄스 레슨 받다 지칠 리가 없잖아.


「P 씨가 일할 때 보여 주는 열의가 진짜란 걸 알고 있으니까. 절대 나한테 손 댈 일 없잖아?」


「…… 카렌은 싫지 않아?」


 믿어 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랑 동거한다는 사실에 저항감은 없는 걸까.


「요즘 여고생은 다 그런 거 아냐?」


「요즘 애들은 조숙하구나아……」


「………… 쭉 혼자서 있는 것보다, 아무라도 좋으니까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


 아, 물론 재미있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라며 웃는 카렌.

 그 말과 어조에선, 열여섯 살 여자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가 느껴졌다.



「…… 그래서, 안 돼? 아무래도 안 된다면,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에라도 눌러앉을 건데」


 …… 아아, 그런가.

 이거, 나한테 승산이라곤 없는 상황이다.


 살 곳을 준비해 주지 않으면 카렌은 우리 사무소에 다닐 수가 없다.

 그러면 놔 주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반대로 살 곳을 준비해 줘야만 하는 상황이고.

 아니 애초에 살 곳 없는 여자애를 다시 방치해 버린다니, 난 그런 짓 못 한다.

 
「…… 일방적인 어리광이란 것도 알고 있어. 실제로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도 없을 테구」


 원래 이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더라도, 인재만큼은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 그런데도.


「…… 치히로 씨, 카렌이 데뷔할 때까지 저랑 같이 해결책을 찾아 주세요」


「물론 그러겠지만요…… 그 말씀은……」


「…… 카렌, 너는 괜찮은 거지?」


「…… 엣, 정말 괜찮겠어……?」


 난, 보고 싶다.

 스테이지에서 빛나는 그녀의 모습을.

 믿어 보고 싶다.

 불가능할 정도의 우연이 겹쳐 이뤄진 이 만남을.


 그렇다면 나는 별로 상관 없다.

 넓은 맨션이니까 한 사람 정도 늘어난다 해도 문제는 없다.

 한 사람 생활비 정도면 그렇게 부담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괜찮다.


「어. 앞으로 잘 부탁할게」


「…… 응. 잘 부탁해!」





 ーー 이런 느낌으로 같이 살게 됐던 거다.


「하아…… 최악. 맨얼굴 보여줘 버렸어」


「포기해.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거야」


「아침밥 아직?」


「집주인한테 그렇게 세게 나올 수 있는 점은 솔직히 대단하구만」


 하지만 왜인지 더 강하게 반박하지 못한 채, 결국 내가 아침밥을 만들게 됐다.

 냉장고에 대단한 재료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인스턴트 된장국이랑 계란부침 정도밖에 못 만들겠지만.


「카렌은 보통 아침에 샤워해?」


「그날그날 기분 따라. 오늘은 안 해도 괜찮으려나. P 씨는?」


「난 보통 매일 해. 거실은 더워서 땀도 흘렸을 테고」


「그럼 나머지는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된장국에 뜨거운 물 부어 놓을게」


「다 식겠다」


 샤워를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혹시 나, 터무니없는 녀석을 주워 버린 게 아닐까.

 왜인지 모르게, 손이 많이 가는 여동생 같은 느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보다 여자애랑 둘이서 동거라니, 침착하게 잘 생각해 보면 역시 위험한 느낌이 든다.

 솔직히 앞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P 씨는 지금…… 어, 나? 하? 그럼 반대로 물을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욕실에서 나와 보니, 카렌이 누구랑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전화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내 얘길 하고 있으니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랑.

 아아, 마유가 나한테 모닝콜을 해 준 거겠구나.


 …… 카렌, 허락 없이 남의 전화를 받지 마.

 다시금 앞날이 불안해졌다.


「응. 응! 맞아, 자동 응답 서비스ー 일 리가 있겠냐ー! 아, 참고로 P 씨는 땀을 많이 흘려서 샤워하고 있어」


「야 카렌. 멋대로 남의 전화 받고 있으면 안 되지」


「아, 지금 나왔어. 바꿔 줄까?」


 네, 하고 전화를 건네받았다.

 표시된 이름은…… 역시 마유구나.


「여보세요, 좋은 아침 마유」


『P 씨이이이이! 안녕하세요!! 그 여자는 누군가요오?!』


 한 순간 진심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고 싶어졌다.

 볼륨도 너무 컸지만, 아침부터 열량도 너무 높다.


『그리고! 아침부터 땀이라뇨?! 그런 관계를 맺은 여자가 있었다니 마유는…… 우우우…………』


「…… 카렌인데」


『………… 아아, 그 여자였나요오. 그랬죠오. P 씨 댁에서 살기로 했었죠오……』


「그리고 땀 흘린 건 냉방이 중간에 꺼져서였거든. 켕길 만한 일은 절대 없었어」


『…… 마유가 아침밥 만들러 가 드릴게요오. 주소를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오?』


「그럼, 사무소에서 봐」


 삑


 ………… 후우, 피곤하다.

 느긋하게 아침밥이라도 먹어야지.


「저기 P 씨, 이 컵라면 내가 먹으면 안 돼?」


「기대하던 녀석이니까 좀 봐 줘」





「안녕하세요」


「안녕ー」


「우후후, 안녕하세요. P 씨이. 카렌 쨩, 카렌 쨩, 카렌 쨩! 그 여자는 어디 갔나요오」


 사무소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유가 다가왔다.

 치에리는 벌써 익숙해졌다고라도 말하려는 듯이, 읽고 있는 잡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안녕하세요, 치히로 씨」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씨. 어떠셨나요? 여고생과의 동거 생활은요」


「특별히 이렇다 할 일은 없었네요」


「…… 어머? 그…… 그 애는……?」


「음, 카렌 말야? 옷이라든가 가져올 겸 해서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 받으러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오후에 온다고」


 오후에는 올 수 있다는 건, 본가가 도내에 있다는 걸까.

 한 번 인사하러 다녀오고 싶긴 하지만, 뭐 그건 제쳐 두고.


「마유는 오늘 촬영, 치에리는 오디션이었지. 몇 시쯤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마유는 문제없이 끝나면 오후 세 시 정도에요오」


「저는…… 아마, 점심 때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돌아와서 레슨에 어울려 줄 수 있을까?」


「「물론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두 사람은 방을 나섰다.

 이미 솔로로 데뷔한 두 사람은, 앞으로 결성할 유닛 말고도 활동이 잡혀 있다.

 마유는 잡지 모델. 치에리는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방송 쪽 일이 많다.

 카렌의 레슨에 쭉 붙어서 봐 주기는 어려울 테고, 어느 정도 기초는 나랑 트레이너 씨가 둘이서 어떻게든 해야겠지.

 
「…… 그래서, 프로듀서 씨」


「왜 그러세요?」


「저어어어어엉말 아무 일도 없었나요?」


「아무것도 없었다니까요…… 왜 그렇게까지 캐물으시는 거에요」


「그치만, 그게…… 그렇잖아요? 궁금하잖아요」


 여자애는 몇 살이 돼도 그런 게 신경쓰이는 생물인걸요! 라며 의욕만만해하는 치히로 씨.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정말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카우트한 여자애를 데뷔하기도 전에 망쳐 버리는 멍청이가 있겠냐고.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범죄 행위니까.


「이렇게, 목욕하고 나온 모습을 보고 두근거리고 말았다든가」


「안 했어요」


「다녀와, 다녀올게, 란 말을 주고받고서 두근거리고 말았다든가」


「안 했거든요」


「…… 시시하네요」


「아이돌이 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해 주세요」


 부ー부ー 하고 축 늘어진 채 모니터를 바라보는 치히로 씨.

 …… 분명 본인은 별로 좋은 만남이 없는 거겠지.


「…… 이상한 생각 하시는 거 아니죠?」


「치히로 씨 정도의 미인이시라면 찾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 분명 괜찮을 거에요」


「불쌍하게 여기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아, 프로듀서 씨! 눈앞에 미인이 있어욧」


「그러네요. 제 컴퓨터 배경화면, 삼색털 고양이랍니다」


「………… 프로듀서 씨한테도 연애 관련 소식은 없는 것 같네요」


 그러니까 없다고 말했는데.

 정말, 이상한 기대는 안 해 주셨으면 한다.





「안ー 녕하세요ー!」


 타앙ー!


 슬슬 점심을 먹을까 싶던 시간에 카렌이 들어왔다.

 양 팔에는 커다란 가방과 캐리어가 매달려 있다.

 마치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한 모습이지만, 아마 안에는 갈아입을 옷 같은 게 가득 차 있겠지.

 …… 사복 센스도 좋네. 스타일도 좋으니까 모델도 어울릴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으음…… 카렌 쨩이었죠?」


「응. 정답! 어라, 치에리랑 마유는?」


「그 둘은 일하러 나갔어. 치에리는 곧 돌아올 시간이긴 한데」


「저기 P 씨, 나 배고파!」


「냉장고에 젤리 들어 있어」


「감자튀김 먹고 싶지 않아?」


「…… 밤에 먹으러 갈까?」


 이 대화의 흐름은, 그거지. 삼촌이랑 조카 같은 사이에 자주 나누는 그런 대화.

 조만간 용돈 달라고 끈질기게 졸라 대는 거 아니려나.


 철컥


「다녀왔어요…… 아, 그…… 카렌 쨩, 와 있었네요」


「오, 안녕ー 치에리. 일 다녀오는 길? 귀국길?」


「태어나서 평생 일본에만 있었는데……」


「저녁밥, 프로듀서 씨가 사 준다고 그랬는데 같이 안 갈래?」


 안 그랬거든.


「에…… 괜찮나요?」


 …… 이라고, 말할 순 없지.


「상관없긴 한데…… 치에리는 변장하는 거 잊지 마」


「부럽네요 젊은 애들은ー 밥도 사 달라고 할 수 있고. 그쵸, 프로듀서 씨?」


「치히로 씨, 오늘 밤엔 고등학교 때 친구랑 마신다고 그러지 않으셨나요?」


「그랬었죠. 우후후, 내일은 어른의 계단을 좀 더 오른 센카와로서 출근할게요!」


 …… 어려울 것 같은데.

 입으로 말하진 않겠지만.


「그럼 카렌, 보컬 레슨 받으러 가자. 치에리도 어울려 줄래?」


「오케ー」


「네」





「간장공장공장장」


「간장! …… 곤장! …… 공잔잔! 왜 이렇게 발음하기 어려운 건데?!」


「그건, 발음 연습 레슨이니까 그런 거 아닐까……」


 ~~~~~~~~~~


「아이우에오!」

「아에이우에오아오인데……」


 ~~~~~~~~~~


「아아아아……………앗! 숨차!」


「아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대단하잖아 치에리」


「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 복근 간지럽혀 보고 싶어졌어」


「아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


「…… 미안해, 째려보지 말아 줘……」


 ~~~~~~~~~~


「나 아이돌은 무리일지도 몰라」


「빨라 빨라, 포기하는 거 너무 빠르잖아」


 워밍 업 한 바퀴를 끝낸 카렌이 절망하고 있었다.


「치에리는 간단하게 해내고 있는데……」


「그거야 쭉 하던 거니까」


 처음 시작할 땐 누구나 그렇지.

 발음 연습도 폐활량도 레슨을 거듭하면 어떻게든 된다.

 괜찮을 거다, 분명.

 본인에게 의욕만 있다면야.


 아이우에오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만.


「이걸 매일 계속하는 거야?」


「아니 이건 아직 워밍업인데」


「그엑…… 이제부턴 노래라도 해?」


「그렇지. 자기 곡이 있으면 그걸 부르거나 해」


「………… 자기 곡……」


 자기 자신만의 곡을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자신만의 곡을 손에 넣는 기쁨, 그건 대단한 기쁨이겠지.

 치에리가 데뷔했을 때도 마유가 데뷔했을 때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 노력할게. 노력은 훌륭한 거니까」


「약간 어제 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거지 너」





「다녀왔습니다아…… 어머, 하고 있네요오」


 저녁 때가 되기 전에 마유가 돌아왔다.

 이미 우리도 방에 돌아와 있었고, 치에리는 카렌의 보이스 트레이닝을 도와 주고 있다.


「아에이우에오아오!」


「고생하셨어요, 마유 쨩」


「네, 고생하셨어요 치히로 씨」


「수고했어 마유!」


「…… 네, 수고하시네요…… 카렌 쨩」


 배에서부터 소리를 지르고 있는 탓에 굉장히 시끄럽다.

 이거 집에 있을 땐 절대 안 했으면 좋겠다. 옆집에서 찾아올라.

 아, 목욕탕에서 반신욕하면서 하는 정도면 나쁘지 않겠는데.

 하루종일 트레이닝에 어울려 줄 수 있는 건 꽤 좋은 상황이다.


「으후우우우…… 끝!」


「…… 안 끝났어요, 카렌 쨩」


「그래요오. 마유가 돌아왔으니까 다음은 자세 트레이닝에요오」


「자세 트레이닝이면, 스트레칭 같은 거? 그럼 여유지」


「………… 우후후, 그런가요오」


 카렌이 『역시 나 아이돌은 무리일지도 몰라』 란 말을 입에 담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 지친 몸에 감자튀김이 스며들어…… 체력이 회복되는 맛이야……」


「잘 먹었습니다, P 씨이」


「가, 감사합니다」


「됐어 됐어. 둘 다 카렌 트레이닝 도와 줬으니까」


 레슨을 얼추 마치고 나서, 세 사람을 데리고 사무소 내부 카페로.

 이미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우리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 그래도 감자튀김 파는 카페란 건 꽤 좋을지도…… 자주 와야지……」


「그나저나 꽤 커다란 짐이네요오」


「아ー 이거? 옷 말고도 이것저것, P 씨네 집에 옮겨야 되니까」


「…… 몇 번 들어도 부럽네요오…… P 씨이, 한 명만 더 들여 주시면 안 될까요오?」


 이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나도 꽤 마음에 들어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에 가져가서 마시고 있다.

 그 치히로 씨가 맛있다고 말하게 만든 이 커피. 일 끝나고 마시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점원 여자애가 굉장히 귀엽다.

 아니, 그래서 다니고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아, 돌아가는 길에 저녁 재료도 사야겠네. 카렌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으음ー, 손요리기만 하면 뭐든 좋으려나」


 그건 가정 요리의 대부분을 지칭하는 거 아닌가.

 너무도 어바웃하고 광범위해서 전혀 참고가 되질 않았다.


「그나저나 카렌 쨩 요리는 잘 하나요오?」


「무리, 전혀 해 본 적 없어」


 당번제를 도입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이래서야 아마 매일 아침저녁으로 요리하게 될 것 같지만…… 1인분 늘리는 정도는, 뭐 문제 없나.


「웃후후후, 그렇다면 마유가 P 씨 댁에 실례해서 손수 만든 요리를」


「…… 계속 입원해 있었으니까, 그럴 기회도 없었구」


「선보…… 여…………」


 마유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큰일. 어떡해요 P 씨…… 라고 눈빛으로 말한다.


 …… 계속 입원해 있었다.

 그건…… 그 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 아, 미안미안. 이상한 얘기 해 버렸네」


「…… 건강, 안 좋은 거야? 뭔가 무거운 병이라든가……」


「…… 옛날에는. 몇 년 전까진 아마, 집이나 학교보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지금은 괜찮고?」


「응. 보면 아는 대로야」


 이런 환자가 어디 있어? 라고 깔깔 웃으며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카렌.


 …… 그러니까, 손수 만든 따뜻한 요리, 라는 건가.

 계속 입원하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라면,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없는 날도 많았던 거겠지.

 그다지 많지도 않고 맛도 없는 환자식을, 다 식은 채로 흘려넣듯이 먹은 적도 있을 거다.

 애초에 식욕조차 없어서 식사를 거르는 날이 계속됐던 적도 있었을 거고.


「아, 이상하게 걱정하진 말아 줘. 그런 거 진짜 싫거든」


「…… 아아, 알았어」


 그래서, 그 반동으로 지금은 감자튀김 매니아인가.

 밤엔 감자로 *키슈라도 만들어 주기로 하자.
 ※프랑스의 파이 요리. 달걀과 우유에 고기,  야채, 치즈 등을 섞어서 만든다.


「마유랑 치에리도, 부탁이야」


「…… 알았어요오. 뭐 처음부터, 카렌 쨩한테 배려하려는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요오」


「…… 야채, 먹을래요?」


「됐거든! 지금은 건강하니까 기름이랑 소금만 먹고 살아갈 거야!!」


 그건 원래 건강했어도 요절할 것 같은데.





「다ー 녀왔어ー」


「다녀왔습니다ー」


「이럴 땐 다녀오셨어요, 아냐?」


「나도 막 돌아온 참인데」


 카렌의 큰 짐은 내가 들고, 쇼핑 봉투만 카렌한테 맡기고 집까지 왔다.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무거운 열기가 방에 들어갈 기력을 앗아간다.

 일기예보에선 맑다고 했으니, 창문 열어서 환기시켜 놓고 갔다 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 그럼…… 어서 들어와, P 씨」


「…… 응. 다녀왔어 카렌」


 에어컨을 켜고 사 온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는다.

 그대로 잠시 동안 열어 놓고 냉장고 안의 냉기를 받아도 보고.

 자, 어서 저녁밥을 만들어 볼까.

 그 사이에 카렌이 샤워하고 나올 테니.


「아, 그러고 보니 카렌 쓸 샴푸 같은 것도 따로 사 왔으면 좋았겠네」


「후후, 쨔잔! 낮에 사 놨지ー」


 나 똑똑하지ー 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짐이 무거워지니까 올 때 한꺼번에 사 오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나저나 그럴 돈은 어디서 난 걸까.


「있잖아? 아무리 나라도 한 푼도 없는 건 아니란 말야」


「의심해서 미안하다. 그럼 먼저 씻고 나와」


「네ー에. 아, 엿보면 안 돼?」


「금방 소면 데칠 테니까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ー」


 어차피 데칠 거, 그냥 에어컨 켜지 말고 창문이나 열어 놓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환기팬 켜기가 좀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나.

 나 혼자 산다면야 땀범벅이 돼도 금방 샤워하면 되니까 괜찮곘지만, 아무래도 여자애가 집에 있는데 그럴 수는 없을 테고.

 물을 끓이는 동안에 간장과 시치미와 와사비를 준비해서, 그러는 김에 간단한 야채볶음까지 완성시킨다.



『쭉 혼자서 있는 것보다, 아무라도 좋으니까 같이 있고 싶기도 하고……』

『몇 년 전까진 아마, 집이나 학교보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이것저것 많이 포기하고 있었거든…… 그런 나한테도 희망을 준 게, 텔레비전 너머에 있는 『아이돌』 이었으니까』


 카렌의 말들을 떠올리고서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가 얼마나 큰 병을 앓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분명, 입원이라곤 며칠 정도밖에 해 본 적 없는 나로선 상상도 못 할 법한 나날이었을 거다.

 게다가, 한창 친구들과 교류하며 추억을 쌓아올려야 할 초등학생・중학생 시절에.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그녀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돼서, 그런 나날을 아이돌 활동에 할애해 준다면.

 반드시 성공시켜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 나도, 노력해야겠지」


「뭘? 엿보기?」


「음, 벌써 다 씻었구나. 여자애들은 씻을 때 좀 더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P 씨가 소면 데칠 거니까 빨리 씻고 나오라며」


 그러고 보니 그랬지.

 데친 소면을 찬물로 마무리해서 큰 접시에 담고 얼음을 올린다.


「아, 나 핑크색 먹을래」


「초록색은 내 거니까 절대 훔쳐먹지 마라」


 …… 뭐, 무겁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거다.

 본인도 신경쓰지 말라고 하기도 했고, 지금은 이렇게 건강하니까.

 프로듀서로서 해야 할 일은 누가 담당이든 변함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온 힘을 다해 해낼 뿐이다.


 그건 그렇지만.


「오늘 아침에도 생각한 거지만…… 다른 사람이랑 이렇게 집에서 밥 먹는 거, 오랜만이다 싶어」


「그치, 나도」


 대체 왜일까.

 집에서 먹을 땐 항상 혼자였으니까 잊고 있었다.

 물론 밖에선 다른 사람이랑 같이 먹기도 하고, 그럴 땐 말도 잘 하지만.


「…… 잘 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아침엔 서두르느라 몰랐지만, 이 말을 집에서 하는 것도 정말 몇 년 만일까.

 나쁘진 않네, 이런 거.

 다른 사람이랑 같이 집 탁자를 둘러싼 채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식사하는 것도.


「아 실수. 초록색 먹어 버렸어」


「봐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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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부터는 좀 빨라질 겁니다.
페이스가 느려도 양해해 주세요.
그나저나 점점 분량이 늘어나는 느낌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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