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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은 진홍색 루즈로

댓글: 3 / 조회: 1466 / 추천: 5



본문 - 02-11, 2018 00:56에 작성됨.

그것은 그녀의 생일이 끝난 날의 밤이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 1시 쯤.
특별히 넓지도 않은 호텔 안의 한 방.
창가의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남자가 한명.
이런 시간에 잠을 깨우는 커피를 들이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하는 내가 있었다.
본래 내가 자고 있었을 침대 위에는, 진홍색으로 천진난만하게 입가를 장식한 14세의 소녀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주 얇은 옷차림에, 아직 마른지 얼마 되지 않은 눈물 자국이 뺨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볼까.






 시간은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점.
한번의 인터폰 소리와, 두번의 노크 소리가 내 귀에 닿았다.
이런 시간까지 룸 서비스는 없을 것이고, 애초에 부탁하지도 않았다.
여기는 내 집에서 꽤 떨어진 지방의 싸구려 비즈니스 호텔.
나를 알고 있고, 일부러 방까지 조사해서 찾아올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와버렸습니다."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내가 프로듀스를 하고 있는 아이돌, 『키타자와 시호』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와버렸습니다, 가 아니잖아. 이런 시간에"

"지금 가겠다고 아까 메일을 보냈지 않았나요. 내방(来訪)을 거부하는 듯한 답장은 안 왔었잖아요."


 돌아가, 라고 답할 새도 없이, 시호는 순식간에 내 팔 사이를 빠져나가, 실내로 들어왔다.
그녀와 엇갈리면서 여성 특유의 샴푸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너, 바로 요 앞에서 메일 보낸거지. 받은지 2분도 안 지났어."

"후훗"


 말하면서 나는 두꺼운 문을 닫았다.
이로써 본의 아니게, 이 공간은 나랑 시호, 둘만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허나 나는, 과연 이런 상황을 정말 거부하려고만 했을까.



"헤에, 여기가 프로듀서 씨의 방이군요."

 시호는 방에 들어오면서, 살풍경인 호텔의 실내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그 나이대 여자애다운 싱그러운 비누와도 같은, 한층 열정을 자아내는 향기가, 남자 냄새가 나는 방의 색을 물들이는 듯 했다.


"비즈니스 호텔이니까 거의 대체로 같은 방이겠지. 딱히 다를 거 없어."


 인기도 지명도도 오르기 시작한 요즘엔 다소 드문 지방 영업이 잡혀버려, 불가피하게 급한대로 숙소를 잡은 결과, 이런 싸구려 호텔이었지만 그럭저럭 머물만 했다.
사치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지낼 만하다.
 하룻밤을 보내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프로듀서 씨의 냄새가 나요. 이것만으로도 제 방과는 차이가 느껴져요."


 시호를 데리고 간 영업도 괜찮은 결과로 끝나고, 남은 건 내일 아침 첫 전철로 다시 도내로 돌아가는 것 뿐.
그런 밤에 이런 추문적인 밀회를 걸어온 시호의 억지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감성,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나."

원래 연상의 남성이 취향인 듯 했던 시호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동경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교묘하게 업무의 원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나의 방식이 엇나간 결과가.. 이런 상황이라 한다면...



"후후, 이런 저를 이용 했던 것은, 프로듀서 씨인 주제에."


소악마 같은 미소를 띈 시호에, 무심코 나의 뺨도 느슨해졌다.
뭐, 별 수 없다는 것의 표현이기도 하다.



"읏차"

"어이어이, 침대에 앉지 마"


당연한듯이 침대 위에 앉은 시호로 인해, 가슴이 철렁였다.
막으려 굳이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도 나였지만.


"왜죠?"

"그야, 거기는…… 잘 곳이잖아"

"따로 앉을 만할 곳이 없으니까, 괜찮지 않나요? "

"의자가 있잖아."

"그런 의자, 분위기가 안 살아요."

"또 그런 얘기를……"


호텔에 거의 대부분 비치되어 있는, 크기에 비해 편안함이 부족한 방금 말한 의자를 둘이서 째려보다, 문득 시호와 눈이 마주쳤다.


"앗, 지금의 얼굴. 역시 의식하고 있는 건가요?"

"……어른을 놀리지 마"


라고 하면서도, 이 상황에 적잖이 동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어른스러운 지체와 태도를 보이면서도, 아직 14살의 나이에 걸맞는 앳된 모습도 있는, 그런 불균형을 가지고 있는 시호.
그런 그녀가 나에게 가끔씩 걸어오는, 그 또한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그녀의 어필이 최근 나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었고, 나는 완전히 취하는 듯한 기분이 되어왔다.
그런 상태였던 요즘에, 오늘 밤 그녀가 찾아왔다.
그러한 방문은, 의식할 수 밖에 없었다.


"어른이라면, 역시 이런 곳에서 야한 짓을 하기도 하는 거죠?"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시호의 입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야한 짓』이라는 단어 하나에, 반사적으로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만약 제가 지금, 프로듀서 씨와 야한 짓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너 말야....."


나는 머리를 싸메는 포즈를 취했다.


"아,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죠."


알고 있다고, 이런 일.. 정말 머리를 싸메고 싶을 정도로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 포즈 』 일 뿐이라는 걸, 이미 자각하고 있다.


"진위 이전의 문제라고."

"저, 진심이에요. 상대가 프로듀서 씨였으면, 이라고 계속 생각해왔으니까."

"그래서 요즘, 이상한 메일만 계속 보내온거냐?"


시호와 친밀해지게 된 뒤로, 얼굴을 마주 할 기회가 없을 때에는 메일로 자주 의사 소통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화가 되었는지, 요즘은 그 내용도 완전히 연인끼리의 그것과도 같은 것으로 이어지게 되어, 이것 또한 나를 괴롭히는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골칫거리――? 무심코 웃음이 튀어나오는 단어다.


"그런 것도, 꽤 부끄럽답니다."

"읽는 나는 더 부끄럽다고. 뭐라고 답장해주면 될지 모르겠단 말야."

"답장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아요. 뭐랄까, 제 마음이라든지, 감정의 움직임 같은 것을, 그저 프로듀서 씨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프로듀서 씨를 생각해 버렸어요, 같은 걸 보내는 건 너무 적나라하잖아."

"후후, 아주 기분 좋았어요. "

"그만해 줘, 제발"



"……폐, 였나요?"


갑자기 침울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시호의 태도에는, 나이에 걸맞는 앳됨이 느껴졌다.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니 왠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 부끄럽다고"


그래, 딱히 호의를 받는 것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기쁠 정도다.
하지만, 역시 얼굴을 맞대기는 부끄러웠다.


"우후훗, 프로듀서 씨의 그런 모습, 꽤 좋아해요"

내 대답에 안심했는지, 침울했던 표정이 번쩍하고 밝아졌다.
그런 듯 싶더니, 곧바로 일어서서 내 양어깨에 팔을 감싸며 끌어안았다.
이런 대담함도 있으니 정말 이 아이는 다루기 어렵다.


"이봐 이봐, 안기지 마"


라고 하면서도, 떼어내려고는 하지 않는 나도 문제였다.
내심 그 상황을 즐기고 있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봐요, 눈치채지 못했나요……?"


라며, 노골적으로 입술을 가까이에 대고 무언가를 어필하려는 시호의 속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아. 립스틱잖아"


마치 『소녀』와 『여자』를 가르는 경계선 같은 선명함으로 시호의 입술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모를 리가, 없네요. 역시"

"그야 그건…… 내가.."


"맞아요, 당신이 오늘 선물로 준 루즈. 생일 선물로"


기이하게도 오늘은 시호의 생일이었기에, 영업을 끝냈을 때에 미리 준비해 온 립스틱을 전해 주었다.
당장 사용해 보겠다니, 고지식한 애라니까.. 정말.
그래도 이건 조금 붉은색이 너무 강했지.
문자대로 여러가지 의미로.


"생일에 지방에서 영업하게 되다니, 재수도 없네."

"그렇지 않아요."


시호는 물기 어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둘만이서 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까.오히려 이 상황이 저에게 있어서 선물, 이었으려나요."

"멋진 말을 하는군."


이런 순진한 감정 표현이 이따금씩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그녀의 열에 압도되어, 나도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조금만 더 세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응.……"

시호는 빠르게 얼굴을 가까이하여, 서로의 거리를 제로로 만드려 하였다.




"잠…… 안 된다고"

역시 위험하다 생각한 나는, 살짝 머리를 뒤로 뺐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키스 뿐이라면, 상관없겠죠?"

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절대로 안 된다, 무슨 말 하는 거야."


애초에, 아직 그런 관계가 되면 안 되지, 우리들…… 이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일단 그런 전제가 통하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만두었다.
아니, 뭐 관계 자체는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한 명의 프로듀서와 한 명의 아이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저 그 뿐인 관계.
라는 걸로, 해두고 싶었다.





"입술만 맞댈 뿐이니까. 그걸로 끝이니까"

"아저씨 같은 말투는 그만하세요.


……오늘은 그것만으로, 참을테니까……"






참을 수 없었다면 그 이상도 것도 하겠다는 발언인가.



"........알았다."

 각오를 다진 나는 쑤욱, 시호에게 얼굴을 가까이 다가갔다.
시호도 갑자기 거리가 줄어든 것에, 무심코 흠칫 몸을 떨었던 것이 나의 눈에도 보였다.




 참나, 이렇게까지 도발하고도, 거기까지 깊게 각오가 되어있지 않았던 건가.
기막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시호의 붉은 입술에 살며시 손가락을 얹었다.




"으읏……?"


그리고, 아주 약하게 붉게 물든 그 손가락을, 이번에는 내 입술에 얹었다.



"자, 이것으로 끝낼까"

"그, 그런..... 이런 어린애 속임수같은... "

"어린애, 맞잖아"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만을 표하는 시호의 머리를 타악, 한번 가볍게 두드리고, 두번 정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적당히 안 하면, 화낸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서 자라."

"……정말"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이 이상은,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내 자신의 예측에 따른, 일종의 경계 같은 것이었다.


"샤워하고 올테니까, 그 사이에 돌아가라."

"……각오, 하고 왔었는데.."

"마음은 기쁘지만"




그 말의 어디까지가 진심을 담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선을 넘을 수 없다.
아직 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른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 질이 나쁘다.



몇분 후.


따뜻하게 샤워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헹궜으나, 몸과 마음의 달아오름은 전혀 가라앉을 기색이 없었다.


어쩌지, 이대로 시호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이대로, 이 방에서 하룻밤을 묵게 할 것인가.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나는 문득 웃었다.
무리하게 결정 짓고 있다.
이대로 계속 이 좁은 밀실 안에 있다면, 정말 나도 어떻게 되어 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시호도 그것을 원하고 있기에, 방문했을 때부터 계속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런거냐?
정말로 나와 어떻게 되어 버리고 싶은거냐?
상대는 나면 되는거냐?
너는 어디까지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설프게 타협점을 찾으며 천천히 머리를 감았고, 이윽고 끝이 다가왔다.
그렇게 길게 시간을 끌 때가 아니다.
비치되어 있던 타올로 살짝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옷을 입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시호?"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실내.
혹시나 해서 불러보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뭐야, 정말로 돌아간거냐.
나의 가슴 속에는 안도감과, 왠지 모를 낙담이 피어났다.


"……응?"


그러나 조금 걸음을 내딛으니, 아까까지 건강하게 이야기하던 시호가 내 침대 위에 누워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호……"


오늘은 장거리를 돌아다녔고, 낯선 장소에서의 영업이었다.
그러니 피로가 쌓이는 것도 당연한거지.
이번에는 틀림없는 안도감 뿐이었다.
기다리다 지쳐서 잠들어 버렸다면 어쩔 수 없지.
시트 위에서 무방비로 숙면을 탐하는 잠자는 공주가 깨지 않도록,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살며시 앉아 다시 생각을 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나도 그냥 잘까? 시간도 늦었으니.

(거짓말 마라.)

――아니아니, 시호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이대로 놔두는 편이, 더 나을 거야.)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여기서.

(그래, 이대로.. 여기서.)




도합 세번의 생각 끝에, 목욕 타올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나는 시호를 위에서 덮치는 듯한 자세로 잠든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이렇게 보면, 정말 그저 14세의 소녀이다.
평소의 뾰족한 태도, 접근하기 어려운 듯한 인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리따운 미소녀 아이돌이 나의 침대 위에서 규칙적으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슨 짓을 당해도 상관 없으니까, 내 방에 온 거잖아?)

신중한 손놀림으로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
 자신의 머리에도 똑같은 것이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과는 전혀 다른 비단 같은 부드러운 촉감에 의해, 가슴이 요동쳤다.



(이건, 네가 바라던 전개였던 거잖아?)

이윽고 내 손은 시호의 머리카락을 지나, 볼을 타고 목덜미까지 넘어왔다.
자신보다 약간 낮은 체온이 손바닥을 통해서 온몸에 전해지는 쾌감에, 금방이라도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 했다.




(너는…… 나를 요구하고 있잖아?)

이미 자신의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게 된 양손이 시호의 가슴에까지 도달했고, 넘어서는 안 되는 금기를 깨버린다는 확신과도 비슷한 것을 느낀 그 순간.




"……지"





모기가 우는 듯한 시호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오며,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시호의 얼굴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 눈은 뜨고 있지 않아서 안심했다.
허나, 그 눈동자에서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가는 걸 눈치챈 순간, 나는 최악의 전개를 예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옳았다.
신중하게 모습을 살폈다.
다시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새어나왔을 때, 그 전개가 일어났다.



"……아버지……"






시호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울리는 호텔의 실내.
그 한쪽에서, 편안하지 못한 의자에서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며 앉아 있었다. 내 눈앞에 비치는 것은 단순한 바닥일까, 아니면 지옥의 문턱일까.





(……알고 있었다.)






시호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그 대사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커다란 엇갈림을 낳아 버렸다.
그것은 여간해서는 뛰어넘을 성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리를 놓을 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믿고 있었다.
오히려, 시호의 쪽에서 나에게로 뛰어들어 오지 않았는가.
불안정하고 위험하면서도 간신히 건널 다리를 놓아 준 것 아닌가, 라는 착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순진하게 자신에게 매달리고, 소악마처럼 요염한, 그러면서도 조금 서툴고 심하게 유혹을 해오거나.. 그러한 행위의 연장선에, 내가 아닌 『 다른 누군가 』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





이 길을 끝까지 나아가, 어디까지라도 빠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제 이 엇갈림은 뛰어넘을 수 없다. 나로서는 절대로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되돌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거짓말쟁이"


어느 쪽을, 누구를 향하는 것도 아닌, 신음처럼 나는 중얼거렸다.


우리는 영원히 이 거짓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밤.
스스로 선택한 진홍색 루즈가, 우리들을 완전히 가르는 경계선이 되어 버린 밤.





그것은, 그녀의 생일이 끝난 날의 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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