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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P「성야에, 아스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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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4, 2017 17:50에 작성됨.

모바P「성야에, 아스카와」

 

 

「자아……」

 

 

일반적으로 사회인의 직무시간은 아침 8시 반 경부터 저녁 5시까지이며, 그것은 아이돌 프로듀서라는 다소 특이한 직업에 종사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제로 정시에 일을 마치는 일은 거의 없고 퇴근시간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는 것 또한 일반적인 사회인과 동일하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잔업이라는 이름의 연장전에 돌입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겠지.

 

아직도 산더미처럼 남은 서류더미에서 눈을 떼고, 애용하는 회전의자에 앉아 반바퀴 돌리자 보이는 건 내 담당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그녀──니노미야 아스카는 벌써 밤 8시가 가까워지는데도 사무소에 비치된 소파에 앉아, 아니 반쯤 누운 칠칠맞지 못한 자세로 애독하는 주간지를 읽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아스카는 이미 그 잡지를 몇번이고 읽었던 것 같다.

 

따라서 잡지를 읽는다기보단 그냥 페이지를 넘기던 아스카였지만,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이쪽으로 눈을 돌리고 작게 입을 열어,

 

 

「프로듀서, 일 끝나려면 멀었어?」

 

 

숙면을 방해받은 고양이의 울음소리 같은 음색으로 말했다.

 

 

「여기 서류 쌓인 것 좀 봐라. 나도 빨리 끝내고 네 상대를 해주고 싶지만, 이게 먼저란 말이다」

 

「한 시간 전에도 완전히 똑같은 말을 들었어. ……동정은 가지만, 기다리고 있는 내 기분도 생각해 달라고」

 

「안타깝게도 전혀 진척이 없어서 말이다. ……에휴, 저번 라이브의 반성점에 대해, 라니 뭘 어쩌란 거냐. 나의 아스카는 반성할 것 따위 없다고. 그치?」

 

「그걸 나한테 물어도 곤란한데…… 그리고 난 분명 네 담당 아이돌이긴 하지만, 네 것은 아니니까 말야」

 

「그게 그거지 뭐」

 

「그게 그거, 라.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이야말로 진실이 머무는 곳이지. 안타깝지만, 난 누구의 것도 아니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날 묶어둘 사슬은 될 수 없으니까」

 

「예이 예이. 알아모시겠습니다」

 

「하여튼 너란 녀석은……」

 

 

아스카는 원망스럽게 날 노려보고 있지만, 그런 표정도 역시 귀엽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갑자기 아스카가 움찔거리곤  표정이 바뀌어버렸다.

 

 

「어라. 너,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거냐」

 

「목소리로 나왔다고! 나 참, 네 마음의 문은 수리가 필요한 것 같군……」

 

 

아스카는 스톨을 입가까지 올려 발갛게 물든 볼을 감췄다가(물론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이대로 놀다가는 퇴근이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는지 내 업무로 화제를 돌렸다.

 

 

「좀 전에 네가 말한 라이브의 반성점 말인데, 예를 들어 『댄스에 너무 집중해서 노래가 흐트러졌다』 같은 건 어떨까」

 

「오, 굉장해! 역시 내 아이돌은 객관적으로 자기를 평가할 수 있군」

 

「아니, 라이브 끝나고 네게 지적받은 건데……」

 

 

그리고 나는 네 것이 아냐, 라고 아스카는 작게 덧붙였다.

 

어쨌든, 아스카의 지적을 바탕으로 2,000자 정도의 반성 레포트를 작성한 나는 당당히 퇴근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스카를 불렀다.

 

 

「됐어 아스카, 가자!」

 

「그렇게 소리 치지 않아도 들려. 그런데 내 계산대로라면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냉정히 생각해 보니까, 저 레포트 외에 다른 서류는 아직 기한까지 여유가 있더라」

 

「넌 여름방학 숙제를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타입의 인간이구나……. 나로선 같이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좋지만」

 

「그러고 보니…… 너 왜 오늘 나 퇴근하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

 

「……하아?」

 

 

아스카는 이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나…」라고 중얼거리곤 기막힌 듯한 어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아스카의 설명은 요점을 알듯 말듯 장황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완전히 잊고 있었다. 요 며칠간 사무소의 아이돌들이 들떠 있었던 것도, 오늘따라 거리에 커플이 가득했던 것도, 전부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사상에 귀결되는 것이었나!

 

 

……아니, 자백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난 크리스마스의 존재를 어렴풋이 의식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스카에게 듣기 전까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 못한 건 내 인생에 있어서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와는 전혀 연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리얼충의 행사이며 모태솔로인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그저 세상이 평소보다 시끄러울 뿐인 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가,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구나. ……아! 혹시 선물 기대하고 있었어……?」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아스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애초에 난 기독교도도 아니고. 애초에 크리스마스라는 이벤트 자체가 내게 있어선 가치 있는 날이 아니야」

 

 

아스카는 후훗, 하고 작게 웃었다.

 

 

「그럼, 어째서」

 

「……오늘은 세계가 평소보다 눈부시니까. 혼자 저 거리를 거닐었다간 난 실명하고 말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스카가 굉장히 쓸쓸해 보였기 때문에,

 

 

「……그렇군. 그럼, 같이 갈까」

 

 

나는 세계로부터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불어 우리의 체온을 빼앗는다.

 

아스카는 언뜻 보면 두꺼운 옷을 입어 따뜻해 보이지만, 실은 하반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절대영역 부근이 절대영도《앱솔루트 제로》 상태였다.

 

실제로도 자꾸 허벅지를 손으로 문지르는 걸 보니 많이 안쓰러웠다.

 

……아니, 아스카가 안쓰러운 건 평소대로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스카, 괜찮아? 내 목도리라도 허벅지에 두를래?」

 

「걱정하는 척 하면서 무슨 변태 발언을 하는 건가, 넌……」

 

「네 몸도 내 지갑도 따뜻해지니까 윈윈이잖아?」

 

「돈 받을 생각이었나?!」

 

「……뭐, 이건 농담이고, 담당 아이돌이 감기 걸릴 걸 보고 넘기면 프로듀서 실격이겠지」

 

「――문제 없어. 멋을 부리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니까. 게다가 난 언제나 이런 차림이니까 추위에는 꽤나 친숙해」

 

 

저렇게 말은 하지만, 아스카는 은근 샤이한 성격이라 자기의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데 저항이 있는 성격이다.

 

분명 지금도 피부가 쓰라릴 정도의 추위를 참고 있겠지.

 

때마침 내 앞에 자판기가 보였다.

 

나는 아스카를 놔두고 빠른 걸음으로 자판기 앞으로 가서 따뜻한 음료수를 두 개 골라 사왔다.

 

 

「자, 아스카」

 

 

그리고 나는 캔커피 두 개─미당과 무당─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왜?」

 

「허벅지에 대고 있으라고」

 

 

그녀는 잠시 절대영도《앱솔루트 제로》의 시선을 내게 향했지만, 이내 단념한 듯 「……하아」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손에 들고 있던 토트백을 내게 넘기고 대신 커피를 받아들였다.

 

두 개의 캔 커피를 여러 각도로 허벅지에 문지르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허벅지에 손을 뻗어 기분 좋은 듯이 「하아아아…」라거나 「흐으응…」 같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물론, 그 소녀가 내 담당 아이돌 니노미야 아스카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오우야……)

 

 

나, 천재. 과연 일부 동료로부터 『변태』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을 만하다.

 

아스카를 따뜻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내 마음도 따뜻하게 한다. 윈윈이라는 거다. 게임 이론적으로도 최적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전철역 다 왔어」

 

「아, 어」

 

 

머리를 흔들어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앞을 보니 몇 미터 앞에 지하철 역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었다.

 

 

「여기까지면 돼?」

 

「응. 우리 집은 역에서 내려서 코앞이니까. 그리고 프로듀서는 다른 노선이지? 여기까지면 충분해」

 

「그래, 그럼 오늘은 여기서 작별이네. ……집 도착하면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걱정도 팔자라니까……. 그럼 프로듀서, 내일 보도록 하지」

 

 

아스카는 내게 맡겨뒀던 토트백을 받아들고 지하통로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게서 5미터 쯤 떨어진 지점에서 이쪽을 돌아봤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스카는 기쁜 듯이 축하의 말을 전하고 무언가를 던졌다. 나는 허둥지둥 그걸 캐치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안녕이다」

 

 

그리곤 지하로 사라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 상대도 없는데 작게 그 말을 중얼거리고, 왠지 평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귀로에 오른다.

 

크리스마스도 가끔은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아스카에게 받은 무당 캔커피는, 그녀의 허벅지에 열을 뺏기고 이제 사람 피부 정도의 온도가 되어 있었다.

 

 

fin

 

 


 

 

아스카 목소리 듣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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