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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리의 라스베가스 동화 #12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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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4, 2017 14:30에 작성됨.

어쨌든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으니 그냥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 이오리가 기대고 있는 벽 정면에 출납원이 있었다. 조던은 모퉁이를 돌아서 이 길을 따라 오라고 했다. 그 말대로 가는 길에 이오리는 예의 그 헐벗은 복장의 웨이트리스를 지나쳤다. 잠시 동안 저런 옷을 직접 입는 것을 생각해 보니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저런 옷을 입고 하이킥 동작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쇼에 나가기에는 너무 어리다. 어쨌든 재미있을 것도 같았다. 그 때가 된다면.

 

모퉁이를 돌자 금방 라운지가 나왔다. 수많은 호텔 투숙객들이 노트북을 끼고 앉아 있었다. 조던은 아픈 엄지손가락마냥 눈에 확 띄었다.

 

조용하고 차분히 있던 그는 이오리를 보자마자 반응했다. 그는 일어서서 손을 흔들었다.

 

"잠깐이지만 그 노아 여우에게 완전히 붙잡힌 줄 알았잖아."

그런 말을 하다니 그녀를 존중할 마음은 조금도 없는 것 같앗다. 왜 그런지는 곧 알게 되겠지.

"왜, 혼자 남게 될까봐 걱정했어? 나 없이 우울해할 게 딱 보이는데."

 

그렇게 놀려도 조던은 별로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애초에 별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오리를 보고 웃는 걸 보니 그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이오리는 문득 이 상황이 암시하는 바를 깨닫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남자가 이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 건 아마도 이오리가 태어났을 때 말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오리가 딸을 처음으로 보게 된 아버지의 표정을 알 길은 없었지만.

 

"그럼." 조던의 목소리엔 빙하도 깰 만한 힘이 있었다. "친구들을 찾아보자."

 

컴퓨터가 준비되는 동안 조던은 이오리에게 20달러를 주고 뭔가 먹을 것을 사 오라고 했다. 이 작은 라운지 옆에는 커피와 빵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다. 조던이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려 주지 않았지만, 이오리는 페이스트리 몇 개를 슬쩍 보고 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거의 확신하며 골랐다.

 

값을 치르고 나니 조던은 벌써 인터넷에 접속해 있었다. 점심 시간은 훌쩍 지났고 저녁때가 다가오고 있었으니 먼저 간단히 요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조던이 보여 주는 그 확실한 태도를 보면 (물론 이오리도 그를 믿고 있었다) 곧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 할 것이었다. 마지막 여정을 위한 체럭이 조금 필요할 뿐이었다.

 

이오리는 테이블에 블루베리 머핀과 크랜베리 주스 한 병을 놓았다. 조던은 빠르게 타자를 치다가 그녀가 뭘 골랐나 보려고 잠깐 멈췄다. 그러더니 이오리를 보고 피식 웃었다.

 

"니히힛~" 조던이 방금 보여준 '매우 정직한' 모습에 대한 보답이었다. "노아가 우리 콘서트장을 이미 알고 있다는 건 어떻게 눈치챈 거야?"

 

웹페이지들을 둘러보며 그가 말했다. "음, 먼저 아주 거만한 태도 때문에. 날 보는 태도는 완전히 '내가 너보다 위야' 였어. 처음엔 그냥 건방진 건 줄 알았는데, 그 때 셰지어 중령 생각이 났지. 휘하 몇몇 대원들이 콘서트를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장소를 물어보지도 않았고, 네가 장소를 모르는 걸 별로 걱정하지도 않았잖아. 아마 일본에 주둔한 해병대원들을 많이 아는 노아가 미리 말해줬을 거야. 그 사람들 중에 팬들이 섞여 있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니, 그냥 사람 좋은 호스티스가 즐길 만한 공연을 알려 준 셈이지."

 

그게 일전의 이상한 느낌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노아가 일을 질질 끌며 거짓말한 건 설명되지 않았다.

 

"별로 안 어려워. 노아는 이벤트 코디네이터잖아.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고객을 끌어모을까? 못 해. 잠재 고객들은 가고 싶은 데 어디로든 간단 말이야. 사람들을 끌리게 하는 건 카지노가 할 일이지. 자기 취향으로만 판단해서 결정한 걸 되돌리는 건 거의 불가능해. 마치 사과 좋아하는 사람한테 억지로 오렌지 파는 격이지. 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앉아서 고객이 오길 기다리는 것 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냐. 네트워킹은 할 수 있어. 자기 이름과 실력을 알리는 것 말이야. 좋은 평판이 만들어지면 거의 최고의 광고가 되겠자.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부탁을 들어 주게 하는 거야. 서로서로 돕도록. 처음에 노아가 '미나세 이오리'라고 불렀지. 네가 소개할 때는 '이오리 미나세' 라고 하잖아."

 

"미나세가 내 성이야. 일본에서는 소개할 때 성을 먼저 말하는 게 관습이니까." 이오리가 설명했다.

 

"그럴 것 같았어. 그럼, 노아는 널 정식으로 부른 거지만 내 성 같은 건 신경도 안 썼지. 이상하다고생각 안 해? 그리고, 네 가족들에 대해 좀 과하게 관심있는 것 같지 않았어?"

 

"우리 가족?" 물론 이오리는 미나세의 이름값을 잘 알고 있었지만, 노아가 그걸 어떻게... 그러다 모든 퍼즐 조각이 짜맞춰졌다. "날 알고 있었어!"

 

"바로 그거야! 널 만나기도 전에 네 가족과, 너와, 이곳의 콘서트까지 모든 걸 알고 있었어. 미나세 그룹 전체가 빚진 게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을 끌어댄 거야. 널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키우려고 한 셈이지!"

 

이오리는 마음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은 없었다. 그녀와 친구가 되어서 미나세 그룹의 재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마주친 것, 한두 번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냥 다 상관없는 일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노아는 답을 알고 있고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조던은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오리는 뭘 하는지 볼 수 없었다. 그는 팔걸이가 넓은, 큰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이오리는 그 팔걸이에 걸터앉아서 조던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는 몸을 기대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거 한 번 봐봐." 조던은 방금까지 열려 있었던 탭을 보여 주었다. 일본어-영어 통역사를 구한다는 글이었다. 작성자가 K.오토나시 로 쓰여 있었다. "아는 이름이야?"

 

보고 있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오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아! 맞아맞아맞아! 이분한테 물어보면 돼!"

"잠깐만 기다려." 그가 말했다. "못 봤어? 문번을 좀 봐."

이제 보니 좋은 영어 실력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영어를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최소한 지기 생각만큼 잘 하는 건 아냐. 지금 이메일을 보내면 아마 번역을 해서 답장을 쓰고 그걸 다시 번역해서 보내야 할 거야. 몇 시간은 걸리겠지."

 

코토리 씨가 블루스와 재즈를 좋아해서 그런 쪽의 영어 노래들을 듣는다는 건 이오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어를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메일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한다면. 그건 플랜B야. 플랜A는 우리가 스스로 해결하는 거지. 그럼 이제 이걸 봐." 그가 사진들을 넘기며 말했다.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모두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었다. 멋진 수트를 입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진들을 넘겨 봐도 이오리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문제일까? 이게 내가 찾을 수 있던 모든 통역사들인데."

 

이오리는 고개를 숙였다. 결국 코토리에게 연락해 답장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이오리는 조던이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뭔가 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조던이 보여준 사람들은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통역사는 20살도 채 되지 않아 보이던 젊은이였는데, 이들은 모두 최소한 30대는 넘어 보였다. 도대체 코토리 씨는 검색을 어떻게 한 거지?

 

그러다 이오리는 마지막 프로필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잠깐! 저게 뭐야?"

"음?" 조던이 사진을 보았다. "학력: UNLV? 네바다 라스베가스 대학교."

"그 사람, 그 글자가 쓰여진 스웨터를 입고 있었어."

"그러면 UNLV 학생이었겠네." 조던은 잠시 동안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말했다. "아니지! 아직 학생인 거야!"

 

검색엔진으로 돌아간 조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이오리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리츠코와 코토리가 타자가 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조던과는 비교도 안 될 것 같았다. 아마 비밀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때도 이런 속도였으리라. 금세 새로운 페이지들이 몇 개 열렸다.

"여기서 아는 사람은?"

이제는 한 사람 대신 단체사진들이었다. 세번째 사진에서,

"이 사람이야!"

조던이 스크롤을 살짝 내렸다, "리치 영?"

분명히 들어 본 이름이었다, "응!"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 이오리는 지금 보고 있는 사이트 제목을 보았다. UNLV 애니 동호회. 역시

 

그 다음에는 SNS였다. 순식간에 그의 개인 페이지를 찾아냈다. 큰 볼드체 글자로 쓰인, 2일 전 그가 쓴 마지막 상태 메시지가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이오리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이거야?" 목소리는 마치 귓속말 같았다.

조던은 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글에서 나온 호텔 겸 카지노의 페이지였다. "엔터테인먼트", "공연" 을 차례대로 누르고, 스크롤을 내리자...

 

마침내 보였다.

 

류구코마치.

 

가운데에 이오리. 왼쪽엔 아미. 오른쪽에 아즈사. SMOKY THRILL 끝부분의 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서 이오리는 눈을 깜박였다. 얼굴에 뭔가 흐르는 느낌을 받자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상시 이오리의 까칠한 성격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도 없었고,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변명거리라고는 아예 없었다. 이오리는 대놓고 울기 시작했고, 숨이 막힐 때마다 살짝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눈을 살짝 뜨자 바라보고 있던 조던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지, 특유의 작은 미소를 짓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한 번 눈이 마주치자 온갖 감정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이오리는 의자로 다가가 조던을 꽉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반응? 머리 위에 그가 크고 부드러운 손을 살짝 얹는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서 울음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마치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울음을 그치자 이오리는 조던이 준 냅킨으로 눈가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보니 조던이 어느새 머핀을 먹었다는 것을 보았다. 이오리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리고 예쁜 소녀가 자기 어깨에 대고 울고 있었는데 빵을 먹은 것이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직접 보았으면 했지만, 안 그래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시 웃음이 나왔다.

 

"자, 그럼." 조던이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갈까?"

이오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았다, "응!"

 

 

-그냥 코토리 씨한테 일본어로 이메일 썼으면 됐을 텐데... 인코딩이 문제인가
-오랜만에 한번 저질러 봅니다. 염치도 없지. 어차피 끝낼 기약도 없잖아 오마에.

-아이커뮤의 오픈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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