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모바 P 「연애 편지의 비술」(2)

댓글: 4 / 조회: 884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3-26, 2017 13:42에 작성됨.


모바 P 「연애 편지의 비술」(2)


30:모바 P가 류자키 카오루에게 2017/03/21(화) 00:58:29. 53 ID:8eAfNHgBo


   10월9일

  건강하게 지내나요.

  선생님입니다.


  얼마전에 밖을 걷다가 근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걸 봤습니다.

  벌써 그런 계절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동안 교문을 멍하니 바라보니 문득 카오루가 떠올라서 그리워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카오루의 학교의 이야기는 자주 들었었지만, 선생님이 직접 학교 행사를 보러 간 적은 없었군요.

  만약 다음에 카오루의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면 보러가고 싶네요.

  하지만 가족도 아닌 사람을 학교에 들여 보내줄련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있었더니 학교 경비원님이 째릿하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수상한 사람이 어슬렁대고 있다고 생각했겠죠.

  선생님같은 선량한 샐러리맨을 나쁜 사람으로 의심하다니, 정말이지 실례구만, 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경비원님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일의 방해가 되지 않게 선생님은 꾸벅 인사를 하고 학교를 지나갔습니다.


  사실 선생님은 옛날부터 자주 「불심검문」을 받았습니다.

  린 언니와 노노 언니를 스카우트 했을 때도, 몇 번 「불심검문」을 받았었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이 그렇게나 수상해보이는걸까요?

  고민하다보면 자주 「얼굴이 무섭다」라는 말을 들으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나저나 카오루는 레슨을 열심히 받고 있는것 같네요.

  목표가 있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훌륭합니다.

  하지만, 무리를 하면 안되요.

  밥은 하루 세끼 꼬박꼬박 먹고, 밤에는 늦게까지 깨있지 말고 일찍 자야합니다.

  몸이 안좋은것 같으면 참지 말고 아빠나 엄마나 후배P에게 꼭 말하세요.


  선생님은 카오루 말고도 한 사람, 노력을 잘하는 아이돌을 알고있습니다.

  그 아이는 재능도 있어서 첫 라이브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과시하고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라이브 영상을 보고, 팬이 되어, CD를 샀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그 아이는 「팬의 기대를 배신하면 안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슨도, 악수회도, 라이브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라고 자신에게 타이르며 계속 홀로 노력했습니다.


  자, 카오루는 그녀가 굉장히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만, 사실 이건 큰 함정이었습니다.

  사람은 지나치게 노력하면 건강을 해치는 법입니다.

  그래고 지나치게 노력한 그녀는 큰 이벤트 직전에 몸이 안좋아져서 몇일동안 쉬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기껏 노력한게 전부 허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공부도 손놓고 있어서 학교의 성적도 심각했습니다.


  알겠나요, 카오루.

  치에쨩과 빨리 공연하고 싶어서 서두르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선생님도 물론 노력하는 카오루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혼자서 전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힘들거나 아프면 무리하지 말고 쉬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세요.

  선생님은 지금의 카오루가 아이돌의 일을 천천히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사기사와 선생님이나 노노 언니에 대해서 여러모로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편지, 즐겁게 읽었습니다.


  사기사와 선생님은 책읽는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군요.

  책을 많이 읽는건 훌륭한 일입니다.

  똑똑하고 훌륭한 어른들은 대부분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입니다.

  즉, 사기사와 선생님은 틀림없이 똑똑하고 훌륭한 어른이겠죠.

  유감스럽게도 선생님은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으니 사기사와 선생님을 본받아야겠네요.

  카오루도 흥미가 생기면 사기사와 선생님에게 재미있는 책을 추천받아보세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가을은 독서의 가을이면서도, 스포츠의 가을이기도 하고 예술의 가을이기도 합니다.

  예술이라는 단어는 카오루에게 아직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요컨데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노노 언니의 그림과 글에 대해 카오루는 편지에 이렇게 썼었지요.

  「귀엽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어」

  이 「이상한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확실히 예술적인 센스인겁니다.

  노노 언니의 그림이나 글을 「잘 모르겠지만 좋다」라고 생각하는 카오루의 마음은 매우 중요한 것이랍니다.

  누군가가 만든 작품을 차분히 맛보고, 자신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충분히 예술적인 대처입니다.

  그리고, 그 「좋다」라고 생각한 마음을 숨기지 말고 노노 언니에게 전해주세요.

  자신이 쓴 작품을 칭찬받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기뻐할거에요.


  그러면, 다음에 또.


  류자키 카오루씨에게



33:모바 P가 모리쿠보 노노에게2017/03/21(화) 01:00:41. 58 ID:8eAfNHgBo


   10월 12일

  전략.

  편지 읽었어.

  갑자기 「아이돌 그만둡니다」라는 편지가 와서 깜짝 놀랐어.

  노노야.
  뭐, 진정하고 읽어줘.

  아이돌을 그만두는건 네 자유야.
  하지만 나는 네가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해.
  잠깐의 감정에 흘러가서 급하게 결론을 내기 전에, 조금 더 생각해보지 않을래?


  카오루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잖아?
  만약 네가 그 일에 대해 화났다면 카오루에게 말했어야 해.
  일방적으로 속에 담고 포기하면 오히려 서로에게 응어리가 남을 뿐이야.

  만약 이미 사과를 받았고, 그래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도, 용서해주면 안될까?
  카오루는 아직 아이야. 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잘 모를 뿐이야.



  틀림없이 카오루는 노노을 존경해서, 존경하는 「노노 언니」를 모두가 알아주길 바랬었을거야.

  노노의 비밀의 시 노트가 우연히 카오루의 짐과 섞여서 카오루의 책가방에 들어간건 불행한 사고였어.

  그리고, 카오루가 반친구들 앞에서 노트에 쓰여진 시를 낭랑하게 읽은것도 일종의 사고이고.

  그 아이는 결코 노노를 괴롭히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한것이 아니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침울해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생각했으면 해.

  반대로 생각하는거야.
  「읽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자고.

  애초부터,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시 노트라는건 알고있어.
  비밀로 삼고있는걸 억지고 공개하라고 말할 생각은 없고.

  하지만, 자신이 만든 시를 누군가가 읽고 감상을 받는게 그렇게 나쁜 일일까?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아마 떨면서 「그런거 무리─」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즐겁다고 생각할거야.

  게다가 나도 네가 날마다 써온 시를 한번만이라도 읽어보고 싶었어.
  결코 놀리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야. 모리쿠보 노노라는 소녀에게 매력을 느껴서 더더욱 알고 싶어서야.

  이것도 훌륭한 아이돌의 소질이라고 볼 수 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는 너 자신에게 더 자신을 가져.
  편지만 봐도 노노가 쓰는 글은 재미있고, 글솜씨도 있다고 생각해.


  가능하면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후배 P와 차근차근 이야기해보고, 이 고비를 넘어 아이돌을 계속하길 바래.
  믿는다.


  모리쿠보 노노님


  P.S
  린에게도 너무 걱정끼치지는 마.



35:모바 P가 후배 P에게2017/03/21(화) 01:02:33. 73 ID:8eAfNHgBo


   10월 12일

  전략.

  너 지금 태평하게 편지따윌 쓰고 있을 때냐?

  사정은 노노의 편지를 읽고 알았어.
  그 녀석의 시노트가 카오루의 학교에서 공개처형을 당한 모양이더만.
  그게 너무 쇼크라서 아이돌을 그만두고 싶다고 쓰여있었어.


  너 대체 뭐하는거냐.
  애초에 그런 고민상담은 담당 프로듀서인 후배 P에게 해야하는거잖아.
  카오루의 관리도 마찬가지야.
  전부 너에게 책임이 있어.

  확실히 노노는 예전부터 자주 도망치고, 「일 그만둡니다」나「찾지 말아 주세요」라는 편지를 쓰는 아이였어.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상대는 언제나 담당 프로듀서 였다고.
  결코 전 담당인 외부인에게 하지 않았을거야.


  그런데 너란 놈은 오타쿠인게 들켰다는 시잘데기 없는 걸로 고민하고 있고.
  「사기사와씨에게 들킨게 무엇보다 괴롭다」고?
  너같은 변태는 존재 그 자체가 이미 공연외설죄니까 이제와서 그런걸로 끙끙대지마.
  그렇게 그녀에게 정신팔리고 있으니까 중요한 일이 엉성해진거 아냐.
  반성해라.

  게다가 저번에, 내가 격려해 준 편지의 답장은 왜 이따구야?
  「귀이개 보이스가 아닙니다. ASMR입니다!」
  알까보냐 멍청아.


  애초에 같은 시기에 비슷한 사건을 겹치게 하지마.
  폭로대회가 아니거든.
  어쨌든 너보다는 노노의 상태가 훨씬 걱정이다.

  평소처럼 노노의 변덕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너만으로는 조금 불안하다.
  나쁜 소리는 안할테니까 치히로씨한테도 이야기해둬.
  린과 카오루는 그녀에게 맡기고, 너는 노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보는거야.

  잘 해봐라.


  후배 P에게



36:모바 P가 모리쿠보 노노에게 2017/03/21(화) 01:03:51. 87 ID:8eAfNHgBo


   10월 14일

  노노, 그리고 린에게.

  P입니다.

  전화도 받지 않아서 이 편지를 보냅니다.
  찢거나 버리지말고 읽어주세요.



  자.

  노노를 인질로 세우고 농성이라니, 린도 제법 대담해졌구나.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지.
  사감님도 곤란해 하시잖아.
  이상한 고집을 부리지 말고, 나와.


  그건 그렇고, 치히로씨가 직접 전화로 구원요청해서 놀랐어.
  설마 너희 둘이 파업을 하다니, 치히로씨에게도 계산 외였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너희 둘은 지금 53프로의 대우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더군.
  시 노트 공개 사건의 책임 추궁에 더해, 주로 후배 P의 노노에 대한 대우 개선을 요구한다, 랬지.


  지금이니까 확실히 말할게.

  후배 P에게 노노를 맡길 수 없다는 린의 주장은 잘못됐어.
  그녀석은 그저 서투를 뿐이야

  프로듀서의 능력으로서 불만이 있는거야?
  하지만 잘 생각해봐.
  작년, 린을 프로듀스 했었을때의 나도 모든 면에서 미숙하고 무능했어.

  그 무렵에는 린도 신인 아이돌이었으니까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야.
  특히 나는 허세부리는것만은 자신있었으니까, 너는 그런 나의 일면만을 보고 「프로듀서는 이래야 한다」같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해.
  사실 지금 후배P는 잘하고 있는 편이야.



  하나, 옛날 이야기를 해줄게.

  어느 곳에 시원찮은 한명의 남자 대학생이 있었어.
  그 남자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얼굴도 머리도 별로 좋지 않고 낯가림이 심해 친구가 적었지.
  강의실의 한 귀퉁이에 숨듯이 살아있고, 학과 동기들에게는 뒤에서 「눅눅한 센베」라고 불리고, 강의에는 빠지지 않고 출석했지만, 선천적으로 요령의 안좋아서 성적은 항상 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어.
  그러한 허무한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남의 눈에 띄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겸허한 마음도 점차 비굴의 정신으로 변해갔어.
  어느새 남자는 대학의 음지를 떠돌아다니는 음지의 요괴가 되버린거야.

  하지만, 그런 고독한 생활속에도 사는 보람은 있었지.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였어.
  「장래는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
  강의나 과제, 아르바이트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묵묵히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었지.
  남자는 바보라서,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그림을 보여준 적 없음에도 노력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런 일을 하게 될거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믿고있었어.

  그리고, 그가 2학년이 된 가을의 일이었어.
  강의실에서 시간때우기 삼아 낙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어.
  말을 건 인물은 학과 동기이면서 밴드맨을 하고있던 남자였어.
  밴드맨은 그의 뛰어난 그림실력을 보고 「올해 문화제의 선전 포스터를 그려 주겠어?」라고 의뢰했어.

  그는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이 의뢰를 맡았어.
  이 뜻밖의 상황은 그의 마음에 기쁨보다 불안을 가져왔지만, 어쨌든 해 보려고 했어.
  얼마 후에, 고심해서 그린 일러스트를 보여주자 그 밴드맨은 매우 만족하면서 「하는 김에 이것도 그려줘」라며 의뢰를 늘렸어.

  실제로 그는 나름대로 그림을 잘그리고, 또 단순한 성격이었다보니 예상외의 호평에 황송해하면서도, 자신이 인정받은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크게 기뻐했지.
  그 이후, 그 밴드맨이 시키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마구 그렸어.
  점차 주문은 까다로워지고, 그가 그린 그림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릴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필요해 주는 것이 기뻐서 알지도 못하는 써클들의 포스터 그림을 잇달아 의뢰받아도 별 의심도 없이, 음지의 요괴의 고집을 보이듯이 끝없이 노력했어.



  그리고, 문화제가 일주일 남은 어느 날, 그는 배신당했어.
  밴드맨이, 그가 그린 일러스트의 모든 것을 「이거 내가 그렸어」라면서 다른 써클에 팔고 있었던거지.
  자신이 속았고, 무상으로 일하게 됐다는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항의하려 했지만 상대는 그를 일방적으로 무시했어.

  다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지.
  단기간에 비슷한 그림체의 포스터가 복수제출된것에 수상함을 느낀 문화제 실행위원이 비밀리에 수사를 했었어.
  그리고 문화제 직전, 그의 의뢰주는 써클간 부정 거래의 용의로 신병이 확보되고, 동시에 그 비열한 범행도 드러나게 됐어.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음지의 패자」라고 여겼던 그였어.
  후일, 그는 피해자로서 써클회의에 불리고 수많은 모르는 사람들의 앞에 섰지.
  「이거 네가 그린거야?」 「잘그렸네」 「몇 학년?」 「어느 학과?」 「그런데 라인 해?」
  그는 횡설수설하며 답변했지만 말을 잘 못하다보니 잘 전해지지 못했어. 대신 실행위원 회장이 도와주고, 결과적으로 그의 그림은 정식적인 수속에 따라 각 써클의 포스터로 채용되게 됐지.

  그의 이름은 문화제에 전시된 포스터와 함께 순식간에 유명해졌어.
  그야말로 뜻밖의 공명, 굴러들어온 복이였어.
  그는 그 후, 문화제 실행 위원으로 들어오길 권유받고, 흘러가는대로 따랐어.

  그렇게 한번 받아들여지면, 그의 서투르지만 의외의 애교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고, 이윽고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생기게 됐어.
  그래도 여전히 혼자 있는걸 좋아하고, 묵묵히 그림만을 그리며 보내는 날도 적지 않았지만, 이전과 달리 그린 그림을 누군가가 봐도 떨지 않게됐어.

  학과 동기들에게도 인정받아서 이전처럼 「눅눅한 센베」라고 불리지 않고, 대신 「돼지군」이란 별명으로 귀여움받았어.
  참고로 그 별명을 붙인 사람이 그를 정식 무대로 끌고온 실행위원회장이고, 입회하라고 권유한것도 그 남자였지.



  자, 그는 이렇게 음지속에서 숨어있던 생활에서 벗어나, 평범한 수준의 캠퍼스 라이프를 손에 넣을 수 있었어.

  하지만 원래는 낯가림 심하고 눈에 띄는걸 싫어하던 남자가 이런 상황에 만족했을까?
  이전에는 고독만을 유일한 벗삼아 비굴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이 입학 이래 처음으로 신뢰한 상대에게 배신당한거야.
  인간 불신에 걸려도 이상할것 없지.

  어느 날, 의문으로 생각한 오지랖많은 회장이 그에게 질문했어.

  「너 주변에서 돼지라고 불리는거 안싫냐?」

  「전부 선배탓이잖아요」

  아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었어.
  확실히, 반박할 수 없었지.
  일단 「미안」이라고 말했어.

  「그정도는 상관없는데……제대로된 대화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애초에 약해요」

  「그럼, 지금은 안즐겁냐?」

  그렇게 물으니 녀석은 부끄러운듯이 대답했지.


  즐겁습니다, 라고.


  뭐, 단순한 옛날 이야기야.
  딱히 교훈같은걸 이야기하고 싶은건 아냐.
  녀석이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본인에게 물어봐라.



  이야기를 되돌리자.

  린, 그리고 노노.
  후배 P는 확실히 바보지만, 그래도 성실한 남자야.

  게다가 아주 작은 용기만으로 세계가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가를,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이기도 해.
  계기가 자신에게 좋았던 체험이 아닐수는 있지만, 그것을 넘어야만 보이는 경치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프로듀서라는 인종은 많든 적든, 아이돌에게 저 너머의 경치를 보여주고 싶은 법이야.
  사람의 꿈을 공감하고, 그것을 응원하는 것을 소질이라고 한다면, 그녀석은 나따위보다 훨씬 뛰어난 프로듀서가 되겠지.

  확실히 지금은 아직 미숙할지도 몰라.
  나도 기막힐때가 자주 있어.
  하지만 처음부터 전부 잘 하는 사람은 없어.
  그건 알지?


  만약 그럼에도 린이 후배 P를 신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해도, 그것은 너 자신의 문제이며 노노는 관계 없어.
  노노를 두둔해주는건 자유지만, 이건 애초부터 노노와 후배 P의 문제야.

  린이 하는건 단순한 과보호야.
  시급하게 노노의 신병을 해방하도록.


  애초에, 파업을 일으켜도 구체적인 요구가 없으면 우리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고.
  후배 P에게 듣자하니 노노의 방에 농성하고 안쪽에서 바리게이트를 쌓고 있다던데……

  「노노는 넘기지 않아」라는 성명만 들어봤자,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

  너는 대체 노노의 뭔데.


  만약 이 편지를 읽고 하루가 지나도 진전이 없다면 나도 그쪽으로 갈 생각이야.
  치히로씨에게 전화로 들었는데, 후배 P는 하루종일 방 밖에서 너희들을 설득하고 있다며.
  이야기를 좀 해보는게 어떨까.

  마음이 바뀌기를 빌게.



44:모바 P가 센카와 치히로에게2017/03/21(화) 09:22:53. 25 ID:8eAfNHgBo


   10월 23일

  요즘 상당히 추워졌습니다.
  가을바람이 점차 강해지고, 제 6평짜리 싸구려 아파트도 난방기구 설치 보류로 인해 시베리아 유배지를 방불케하는 엄동설한이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춥다는 이야기는 못들었어.
  지난 주까지 그렇게 더웠는데.
  창 밖에서는 눈치없이 상륙한 동장군이 나부끼고 있고, 요원하는 태양은 약 5일동안 구름 뒤에 숨어있습니다.

  아아, 우울해.
  니가타의 하늘은 왜 이렇게나 우울한걸까요.
  시야 구석에 항상 암운이 낮게 끼어있어서 마치 머리 위를 누군가가 누르고 있는 기분입니다.
  호쿠리쿠는 자살율이 높다던데 이해가 갑니다.
  지금도 이런데 겨울을 생각하면, 아아 세상에!

  한편, 사장님은 딱히 추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평소처럼 빈둥대고 있습니다.
  골프니 회식이니 임원접대를 열심히 하는걸 곁눈질하며 저는 홀로 열심히 일하는 나날입니다.
  얼마 전에는 업무중에 갑자기 「이제 곧 스키의 계절이군. 스키는 재미있지. 가고싶네」라며 노골적으로 중얼거리더니 한마디 해달라는듯이 저를 힐끔힐끔 훔쳐보더군요.

  저랑 같이 갈 생각이면 확실히 말하시지.
  물론 거절할겁니다만.
  뭐, 여전히 이런 상태입니다만, 그 사람도 일단 영업은 열심히 하는 모양이니 저도 크게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사무소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분명 뒤에서 제 이름을 대면서 「풉큭큭」거리며 비웃고 있겠죠.
  확실합니다.

  저번 주의 불쾌한 사건, 잊었다는 말은 못하시겠죠.

  린과 노노의 파업은 애초부터 이상했습니다.
  노노는 몰라도 프로의식이 높은 린이 그런 아이같은 이유로 일을 내던질 리가 없죠.

  뭔가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습니다.
  나중에 조사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날, 린과 노노만 타이밍 좋게 스케쥴이 비어있더군요.
  실제로는 파업이 아닌 단순한 오프였고요.
  게다가, 본래라면 둘 다 굉장히 바쁠 시기인데, 3일 내내 레슨도 없이 부자연스럽게 일정이 비어있던건 어찌된 영문인지.

  다시 생각해본 저는 확신했습니다.
  제가 허겁지겁 도쿄로 갔을 때, 여러분이 어떤 태도로 맞이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아, 프로듀서다」 「진짜 왔네」 「작전 성공!」
  그 때는 무슨소린가 했습니다만, 뒤늦게 알았습니다.

  치히로씨.
  전부 당신이 짰군요.

  저와 후배 P는 감쪽같이 당했고요.
  린이 현상에 적잖은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만, 그 불만을 표출시키기 위해 이런 쓸데없이 장황한 수단을 취하다니.
  게다가 그것을 저를 도쿄로 유인할 구실로 삼기까지. 악마도 못할 생각일겁니다.

  한심하게 함정에 그대로 걸려 헛발질한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린도 노노도, 제가 기숙사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반쯤 질렸더만요.
  그 허술한 바리게이트도, 제가 온걸 알자마자 허둥지둥 정리하고, 제가 씩씩대며 설득하려 입을 열자마자 「아, 이제 끝났으니까 됐어」라며 가볍게 넘어갔단 말입니다.

  진지하게 편지까지 썼는데!

  쓸데없는 에피소드까지 덧붙인 덕분에 린도 노노도, 카오루까지 신나게 저와 후배 P의 이야기를 조르고.
  그리고 그 자식은 제 과거에 대해 술술 다 불어버리고.
  덕분에 제 위엄은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고 치히로씨의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퍼뜨릴까 생각했지만, 뒷감당이 무서우니 관뒀습니다.



  뭐, 그렇긴해도, 말이죠.
  오랫만에 모두와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이것은 정말입니다.

  일단, 린이 안고있던 문제도 조금은 풀어진것 같고, 이 건에 대해서는 결과가 올 라이트이니 용서해주지 못할건 아닙니다.

  노노의 시노트 공개 사건도 듣자하니 의외로 금방 회복했던 모양이고.
  아니, 저건 정색한걸까요?
  어느쪽이든 반년 전에 비해 강해진것 같아 기쁘면서도 외로운 그런 감개가 끓어왔습니다.
  게다가 웃음이 많아졌군요.
  이것은 큰 성장입니다.
  소녀를 가장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미소니까요.

  카오루와도 잘 지내고 있는걸 보고 마음이 놓였어요.
  어쨌든, 53프로가 평소처럼 평화롭다는걸 알아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그 회식은 너무한거 아닙니까?

  후배 P가 방패가 되주지 않았다면 저도 위험할 뻔 했습니다.
  아무리 평소의 울분이 쌓여있다해도, 그렇게까지 마구잡이로 먹일건 없잖습니까.
  게다가 저와 사기사와씨는 첫대면이었다고요.
  어색한 얼굴로 도중까지 어울려 준 그녀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정작 저도 솔직히 4병째부터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사기사와씨의 무릎을 베고 잠든 후배 P가 그대로 그녀에게 간호받고 택시태워 보낸 것 까지는 기억에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 다음이 도저히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설마 치히로씨, 취한 저에게 이상한 약속을 시키진 않으셨겠죠?
  사실 제가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았을지가 가장 불안합니다.
  다음날 아침, 당신의 집에서 눈을 떴을때는 놀랐습니다만, 숙취의 두통과 구토때문에 그럴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날 아침, 치히로씨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보였던게 불길하게 느껴집니다.





  치히로씨.

  저는 가끔씩 당신이라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어떤 때도 당황하지 않고, 세상에 무서운게 없는듯한, 온화한 미소의 뒤에서는 어떤 속셈이 꿈틀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퇴로라는 퇴로는 전부 콘크리트로 막혔다는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거죠. 저같은 속인은 당신이 설치한 완벽한 레일 위를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때때로 눈치채 달라는듯이 장황하게 돌린 어프로치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사소한 일로 순진하게 기뻐하거나 혹은 아이처럼 부루퉁해지기도 합니다.
  대체 어디까지가 계산이고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제가 판단을 보류하는 사이에 당신은 그 마음의 틈새에 교묘하게 찔러들어오는군요.

  그 영혼은 여신인지 천사인지, 혹은 악마인지.
  마치 인류를 관리・관찰하는 상위 존재가 변덕스럽게 여성의 모습을 빌려 지상에 현현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신은 교활하고, 그리고 자비깊습니다.


  그런 신의 시점으로 인생을 부감하고 전능의 극에 달한듯한 치히로씨가 왜 저같이 왜소한 인간을 고집하는지.
  그것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저같은 시시한 남자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멋지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그야말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치히로씨에게 응석부리다보면 틀림없이 글러먹은 인간이 되버리겠죠.
  그래서 저는 자신의 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당신과 헤어지고 신천지를 목표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훌륭한 남자가 되서 돌아오겠다고, 그렇게 약속하며.

  제가 53프로를 떠나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이유는 이전의 편지에도 썼었죠.
  사실 딱 하나, 굳이 그 편지에 쓰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표정을, 행동을 떠올리는 그 어떤 사소한 계기조차도, 이미 한번 버린 미련을 꼴사납게 끌어올리는 변명이 될것같아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아직 약속을 완수하지 못했다」
  이 반년간, 저는 자신에게 그렇게 타이르며 야심만으로 이를 악물고 고독하게 일에 매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역시 안되네요.
  사무소에서 편지가 온 그 날부터, 단단히 굳힌 제 결의가 천천히 녹아내리는것이 느껴졌습니다.
  끝에는 「한 번 놀러가는건 괜찮겠지」라고 생각해버린 자신의 연약함이 싫어지는군요.
  편지의 마력은 무섭습니다.
  이미 결의나 고집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저는 한심한 남자입니다.
  지난 주에 당신과 오랜만에 만나고, 술을 함께 마시며, 잔뜩 휘둘리며, 절실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은 전과 조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번 더, 저 자신과 치히로씨를 위해 이 편지를 보냅니다.

  그 날, 제가 술의 기세로 한 농담같은건 전부 잊어주세요.
  제가 본심으로 약한 소리를 할 수 있는건, 치히로씨, 당신의 앞에서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직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을 일방적으로 의지하여 자신의 무능을 얼버무리는건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언젠가 진정한 의미로 치히로씨에게 믿음직한 남자가 되기 위해,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날이 올 때까지, 제 이런 꼴사나운 허풍을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이기적인 부탁이라는건 잘 알고있습니다.

  긴 변명같은 난문, 실례했습니다.


  이 편지에 답장은 필요 없습니다.


  센카와 치히로님




  P.S
  이것을 다 쓴 다음 날, 다시 읽고, 아연실색했습니다.

  뭐야 이건.
  부끄러워.
  완전히 연애편지잖아.
  멍청한 나!

  쓰는 와중에 혼자 분위기 타버렸습니다.
  냉정해진뒤 읽으니 저 자신도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괴문서군요.
  보내지 말까 생각했지만, 모처럼 썼고, 찢기에는 좀 아까우니 부끄러움을 참고 보내겠습니다.



50:모바 P가 후배 P에게 2017/03/21(화) 09:28:20. 88 ID:8eAfNHgBo


   10월 26일


  너도 정말 질리지도 않는 놈이구나.
  나한테 편지를 써봤자 좋은일 없다는건 지난 번의 한 건으로 학습 못한거냐?

  「이 사람의 오지랖은 월드클래스」라고 치히로씨에게 평가됐을 정도의 남자라고.
  그런 인간이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편지왕래를 해봤자 쓸데없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지.

  요 한달동안을 되돌아봐도, 내가 이곳저곳에 보낸 편지들의 이중잣대에는 나 자신도 한숨이 나오더라.

  노노에게는 「나한테 뭐든 상담해라」라고 했으면서, 한편 너에게는 「아이돌을 제대로 챙려라」라고 질책했지.
  그리고 근원을 더듬으면, 카오루에게 보낸 노노를 칭찬해달라고 부탁한 편지가, 어떤 의미로는 시노트 낭독 사건의 계기라고 볼 수 있어.

  즉, 그 파업사건의 원인은 반정도 내 편지때문이란거지.
  그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며, 그래서 저저번주의 회식에서 사과했었잖아.
  그리고 향후 일절 편지같은 어울리지도 않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을텐데.


  그럼에도 너는 또다시 편지를 보내는구나.
  노노도 여전히 편지를 보내고, 치히로씨마저 필요 없다고 한 답장을 보내고.

  너희들 대체 뭐야.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



  뭐, 좋아.
  누가 보냈든간에 상담의 편지를 무시하는 의리없는 행동은 나의 신조의 반하니 답장정도는 보내주마.
  이하의 문장을 3회 음독하고 가슴에 새기도록.


  「사기사와씨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요?」라고?
  그런건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나는 사기사와씨가 아니야.

  애초에 너, 그녀에게 무릎베개까지 받을 정도의 사이잖아.
  이제 와서 뭘 고민하는거냐고, 멍청아.
  직구로 던져버려 짜샤.

  회식때, 내가 일부러 「남자친구 있어?」라고 물어봐줬으니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빨리 안하면 다른 남자한테 뺏길거다.

  확실히, 그녀는 미인이지.
  너에게는 지나치게 아까울 정도로 미인이야.
  분위기는 조금 어둡지만, 가슴은 크고 머리도 좋아.
  여태까지 이성과 사귄 경험은 없다고 했고, 남자에게 익숙하지 않은것도 한눈에 보여.
  너같은 동정이 반하는것도 사무치게 납득할 수 있었어.

  그런 여성에게, 아무리 만취했다고 해도, 기대고, 간호받고, 무릎베개까지 받는게 허락된 남자에게 대체 뭘 조언해주란 소리냐.

  부러운 자식.
  열불이 치솟는다.

  따라서 나는 더이상 너의 연애상담은 받지 않기로 했다.
  타인의 조언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 당장 자신의 연애를 달려라.

  이상.


  헤타레 후배 P에게


  P.S
  사무소에서 내 이상한 소문 퍼뜨리지 마.
  특히 대학시절의 이야기는 금지다.
  영화 록키에 영향을 받아서 날계란을 먹다가 식중독에 걸려 입원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퍼뜨리지 마라.
  관엽식물에 빠져서 자취방을 정글로 만들었다가 방에 잘 곳이 사라져서 밖에서 노숙한 이야기는 더 안된다.
  명심해.



52:모바 P가 센카와 치히로에게 2017/03/21(화) 09:30:24. 96 ID:8eAfNHgBo


   10월 26일

  답장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왜 보내신 겁니까.

  그렇게 제 결의를 흔들고 싶습니까?

  게나가 제 편지를 일고 웃다니!

  확실히 그 편지는 좀 너무 감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본심에서 나온 글이었습니다.

  그것을 당신이라는 사람은 「귀찮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일축해버렸군요.
  게다가 「귀엽다」니 대체 무슨 작정이십니까.
  저는 귀여움을 어필한 적이 없습니다.
  단호히 철회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후배 P와 사기사와씨를 이어주는 사랑의 큐피드 클럽」이란 재밌어보이는 조직을 결성해서 제 호기심을 끄집어내려 하지 마십시오.
  노노랑 린까지 끌어들이다니, 당신들 악마입니까?
  그런 재미있어보이는 흉계에 제가 기쁘게 참가한다고 생각했다면 큰 실수입니다.

  물론 저도 후배 P의 순진해빠진 연정에 한몫 거들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제 흥미를 끌어내려는 치히로씨의 수법에 그냥 걸릴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이미 후배 P에게는 「연애상담 거절」이라고 절연장을 보냈습니다.
  그녀석은 아무래도 생각만 깊이 하다가 당장 해야 하는 행동을 자꾸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건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든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석은 그걸 몰라서 일방적으로 가까워질 방법만 생각하고 있으니.
  후배 P가 느긋한 성격인건 괜찮습니다만, 상대가 언제까지나 기다려준다고 볼 수는 없고, 오히려 기다려주지 않는게 보통입니다.

  거기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동앗줄을 끊어버리고, 배수의 진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퇴로가 없는 싸움에 임한다면 스스로 호기를 잡을 수 있겠죠.

  제 조언따위에 매달리고 있으면 그녀석은 그걸 변명삼아 끝없이 판단과 각오를 미룰겁니다.
  그래서는 본말전도겠죠.

  사랑으로 들뜬 후배 P라는 일대의 엔터테이먼트를 가까이서 보지 못하는건 매우 아쉽습니다만, 이건 전부 녀석을 위해서.
  저는 깔끔하게 손을 떼고, 그와 그녀의 알콩달콩한 스토리를 멀리서 듣기만하는 손해보는 역할에 철저히 임할 생각입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후배 P가 나이값도 못하고 사랑으로 들뜬 모습이 조금 부러워서기도 합니다.
  저런 무지무치한 새끼돼지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그야말로 인생의 불찰이군요.
  하지만 현재 저희를 둘러싼 상황을 되돌아보니, 에치고 산맥을 기준으로 명백하게 명암이 나뉘어진 모양새입니다. 이 사실이 저를 분노케합니다.

  한쪽은 일본의 구석에서 외로움에 사무쳐 오지랖이 악화되고 편지왕래라는 취미에 빠진 불쌍한 남자.
  다른 한쪽은 화려한 대도시, 건방지게도 미녀와 썸타고 있고 청춘의 꿈을 되찾을 생각으로 들떠있는 한 사람의 바보.

  신경쓸게 뭐있나 싶기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그렇게까지 마음이 넓지는 않습니다.


  후배 P만 즐겁게 살다니! 치사해!

  왜 내가 이런 경솔경박한 놈을 일부러 챙겨줘야하는데

  어째선지 괜히 열받는다.

  이런건, 바로 얼마전에 고군분투를 맹세한 나를 괴롭히는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냥 알아서 하라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연애에 정신팔리고, 하는 김에 고민으로 괴로워하던가.
  남은건 전부 그쪽에 떠넘기고 나는 못본척 하겠어.



  어떻습니까, 치히로씨.

  제 확고한 결의, 이해하셨습니까?

  그런 이유로, 재차 여기서 편지왕래단절조약, 및 개인의 명예회복협정을 체결하겠습니다.

  (1)향후, 저를 유혹하는 편지를 쓰는 것을 금할 것.

  (2)저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풍문의 유포를 저지하고 사무소의 오해를 풀도록 노력할 것

  알겠죠?
  특히 (2)가 중요합니다. 그 사건 이래로 린과 후배 P가 제 신나게 제 뒷담을 하는 모양이던데.
  그 둘이 친해진것은 매우 기쁜 일입니다만, 그것이 제 희생 위에 성립되었다는것이 매우 납득가지 않습니다.
  본인이 없을 때 뭐하는 짓이야.
  이것도 전부 당신 때문이니까 제대로 책임져주세요.

  이상.
  건강하시길.


  센카와 치히로님


  P.S
  후배 P가 정면으로 돌진하고 옥쇄 했을 경우, 회복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치히로씨가 사랑의 큐피드 클럽을 결성하는 것은 별로 상관없습니다만, 녀석이 실연당했을 때는 바로 위로해줄 수 있게끔 만전의 준비를 해두십시오.

  만약, 만에 하나 녀석의 연애가 성취된다면, 그 때는 예외적으로 단절조약을 파기도 괜찮으니 소식을 주시기 바랍니다.
  유감스럽게도,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만……


(3)에서 계속

P의 심정이 매우 이해가 되는 내 마음...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