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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나오 「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 (5)

댓글: 5 / 조회: 1513 / 추천: 1



본문 - 12-11, 2016 14:01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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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4)에서 이어집니다.



 ○ ○ ○

노도의 하루였어.

산을 내려와서 처음 한 일.
우리들은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어.
슈코 말을 따라 역 앞의 라멘집에 들어갔는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요시노가 「저 또한 먹을 것이기에ー」 라더라.
아마 다 먹는데 혼자만 안 먹고 있기 싫었던 것 같아 (라고 슈코가 그랬어)
아니면 같은 신으로서 대항 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물론 난 「어떻게 먹을 생각이냐고」 하면서 반쯤 웃으면서 츳코미를 넣었어.
하지만 다음 순간, 점원이 물 세 잔을 갖고 오고 요시노한테 주문하시겠냐고 물어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고.

요시노 「이…… 돈코츠라ー멘 차ー슈ー 곱빼기? 라는 걸 주시겠나요ー」

점원은 세 사람 분의 주문을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방으로 돌아갔어.
놀라서 굳어 버린 내 껀 슈코가 적당히 주문했고.
잠시 후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난 조심조심 요시노의 몸을 만져 봤어.

툭툭.
문질문질.

요시노 「간지럽기에ー」

마, 만질 수 있어.
인간같이.

요시노 「본래는ー, 신체(神體)를 아무렇게나 현현해서는 안 되는 것이나ー, 나오가 공물을 바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ー」

나오 「아무도 공물을 바친다고 말한 적 없는데!?」

요약하면 내가 사라 이 말인가?
요시노는 얼굴을 돌리곤 얼버무리려는 듯 콧노래를 불렀어.
얘 언제까지 시치미 뗄 생각인 거야.

슈코 「나도 지금 돈 없으니까 잘 부탁할게ー♪」

나오 「…… 작작 안 하면 정말 화낸다」

라고 해 봐야 결국 내가 전부 내야 하는 처지가 됐어.
정말 최악이야.
이래저래 너무 신경쓰여서 라멘 맛도 제대로 못 봤고.

일단, 슈코가 나중에 요시노 몫까지 갚겠다고 하긴 했지만.
신이 돈이 어디서 나는지 생각해 보면 그건 그것대로 무서워.

가게를 나오고 나서 요시노는 역시 원래대로 반투명한 영체로 돌아간 모양이었어.
뭐, 평범하게 생각해 보면 실체가 없는 게 이래저래 편리하겠지, 전철 요금 같은 걸 생각해 보면 나도 이게 나아.
나는 혹시나 해서 손을 뻗었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되돌렸어.

 

그리고 오후 무렵, 역에서 슈코랑 헤어져 전철에 탄 나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하게 됐어.

자리에 앉아 전철의 기분 좋은 진동에 졸고 있었는데 요시노가 갑자기 말했어.

요시노 「좋지 않은 낌새가 느껴지는지라ー」

나는 그 한 마디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잠이 깨 버렸어.

또냐!
게다가 전철 안에서!?

나오 「……어제랑 같은 느낌? 아니면 진짜 유령ー이라던가?」

요시노 「정확하겐 알지 못하겠으나ー……」

나는 수상하게 보이던 말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봤어.
그 때 시선에 들어온 게 옆 차량과의 연결부에 있는 창문으로 이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여학생이었어.

나오 「헉」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작은 비명을 질러 버렸어.
슬쩍 보기만 해도 아는, 차갑게 찌르는 듯한 시선.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야.

하필 이런 때 타다니……

유령과는 다른 의미로 엮이고 싶지 않은 저 소녀의 이름은, 코바야카와 사에야.

 

걔는 나랑 눈이 마주쳤단 걸 눈치채곤 황급히 숨어 버렸어.

요시노 「무슨 일인지ー?」

나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그냥 일어나서 튀어 버릴까 망설였지만, 어차피 앞으로 10분 정도면 역에 도착할 테니 일단 지금은 그냥 넘기기로 했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뭘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는 지 의문이겠지.
게다가 나 같은 경우, 일방적으로 아는 것 뿐이고 실제로 면식도 없어서, 구체적으로 쟤한테 나쁜 일을 당한 것도 아냐.

간단히 설명하자면, 코바야카와 사에는 내가 다니는 반나무(播南) 고등학교 1학년이고, 우리 학교 그림자의 지배자인 거야.
입학 2개월도 안 돼서 우리 학교 톱이 됐다는 놀라운 소녀. 그게 사에였어.
실제로 어떤 수단으로 지배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얽힌 안 좋은 소문은 말하자면 끝도 없다고.

예를 들어 봄 입학식 때, 시비를 건 선배 몇을 손가락 하나로 모두 병원에 보냈다던가.
수업 시간에 사에한테 어러운 질문을 했던 수학 선생이 한동안 수수께끼의 근신 처분을 받았다던가.
밤마다 일진들의 집회를 열어 조직적으로 학생들에게 자릿세를 뜯어간다던가.
피범벅이 된 걸 목격했다던가, 심지어는 쳐다보기만 해도 사람을 기절시키고, 거스르는 놈은 제 말을 듣게 세뇌시킨다던가 등등…… 그런 소문이야.

뭐, 그런 걸 모르면 평범하게 어른스럽고 귀여운 소녀로밖에 안 보이지만 말야.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하잖아?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얽히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건드리지 않는 신에 탈이 없다란 말도 있고.

 

그런데.

어째서 그 우는 아이도 조용하게 만든다는 일진이 아까부터 나를 감시하듯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내가 뭔가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라도 했나?
하지만 요 며칠 동안 했던 걸 돌이켜 봐도 전혀 생각나는 게 없어.

나도 좀 과하게 쫄고 있는 거 아닐까 싶어.
일단, 2학년인 내가 선배인데.

하지만 요시노가 아까부터 「낌새가ー」 라고 했던데다가,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시선이 엄청나게 느껴지는걸.
이래서야 긴장 마라는 게 무리라고.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리에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어.
혹시 사에도 요시노의 모습이 보이는 걸지도 몰라.
즉, 슈코처럼 인간인 척 하고 있는 신일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러면 학교에서 초인적일 정도로 두려움을 사고 있다는 것도 납득이 가.

……하아.
그냥 전부 내 망상으로 끝났으면 좋을 텐데.

 

역에 도착하고 나서 난 빠르게 전철에서 내렸어.
요시노가 뒤에서 타박타박 따라오고.
뒤돌아봐도 사에가 쫒아오는 기색이 없길래 안심하고 개찰구를 빠져나갔어.

뭐랄까, 내가 생각해도 멍청멍청한 망상이었다 싶어.
아침부터 여러 모로 충격적인 일이 있어서 좀 신경질적이 됐었는지도 모르겠고.

난 「후훗」 하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거기서 해방된 기분으로 심호흡했어.

사에 「저기」

나오 「푸우웃!? 코바야카콜록 사ㅇ쿨럭」

사에 「괘, 괜찮나요?」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서 깜짝 놀라서 사래들려 버렸어.
역 출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나보다 먼저 내렸을 줄은.

나오 「하, 하아…… 아, 괘, 괜찮아……」

사에 「…… 저를 알고 계시는 건가요?」

사에는 깜짝 놀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어.
눈에는 동공지진이, 목에선 말이 막혀가면서 난 「으, 응」 하고 끄덕였지.

사에 「갑자기 말을 걸어서 미안해요. 볼일이라고 할 정도는 안 되는 건데, 저기, 여쭤볼 게 있던지라……」

뭔가 말하기 곤란한 듯,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망설이고 있었어.
나는 언제라도 튈 수 있게 경계하면서, 다음 대사를 기다렸지.

사에 「……저기, 저 사람이랑은 무슨 관계 있나요?」

나오 「………… 네?」

 

왠지 흐름을 타고 역 앞의 찻집에 들어가 버렸어.
코바야카와 사에와의 뜻밖의 해우에 당황한 나는, 근처에 있던『월견정(月見亭)』이라는 간판을 보고 도망치듯 자리를 옮겼어.
서서 이야기하기도 뭣하니까,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지금, 난 셀프 목조르기를 절찬리 후회하면서 나온 냉수를 들이키고 있어.
귀여운 웨이트리스가 꺄삐꺄비한 목소리로 주문을 받네.
「주문은 정하셨나요?」
「저는 커ー피ー를…… 그쪽은 뭐 드시렵니까?」
「나, 나는 물로 됐어……」

긴장과 거북한 마음에 표정이 조여 오는 나완 달리, 사에는 유난히 조용히 있었어.
내 안에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코바야카와 사에라는 인물상은,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태반이 편견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얘, 완-전 자그마한데다 가냘프잖아.
교육을 잘 받은 건지, 같은 여고생인지 모를 정도로 말투가 부드럽고 고풍스러워.

요시노 「나오에게도 이 소녀 정도의 품격이 있었다면ー, 여성으로서의 매력에 부자유 없을 것일 터인데ー」

나오 「시끄러워요」

사에 「어디에 말하는가요?」

나오 「앗, 그러니까, 아, 아무것도 아냐. 아하하……」

그렇다곤 해도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는 건 위험해.
벌레 한 마리 죽일 것 같지 않은 청초계열 아가씨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일진으로 두려움을 사고 있단 건 사실인 것 같고.

가래도 조금 안심한 건, 사에는 요시노를 인식하지는 못한다는 거였어.
목소리도 안 들리는 모양이고.
일진 비인간설은 일단 부정된 것 같아 안심했어.

요시노 「…………」

아까부터 요시노가 사에 얼굴을 쭉 쳐다보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아.

 

잠깐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다가, 사에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자기소개를 했어.
나도 저쪽처럼 이름을 댔고.

사에 「……어머, 같은 학교 선배님이셨대니, 꼭 실례를……」

나오 「아, 아니, 그건 딱히 상관 없지만 말야…… 그래서 아까 말했던 거 말인데, 그 사람이란 건 뭐야?」

사에 「그 사람이라는 건 그 사람을 말하는 거에요. 호리호리하게 키가 크구, 새하얀 피부에 고운 은발에, 총명한 눈빛이 멋진……」

나오 「엣, 혹시 슈코 말야?」

사에 「슈코 씨라고 하는 것인지요? 하아……」

황홀,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법한 표정을 하고 있어.

나오 「혹시 슈코가 뭐 이상한 거 했어? 아니면 저주를 받았다던가……?」

사에 「저주……? 그런 거 아니랍니다. 그저 전번에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그 때의 답례를 할려고 계속 찾구 있었어요…… 으응, 신세를 졌다구 하는 게 그렇게 큰 일은 아니라요, 제가 실수로 곤란해하던 차에 도와주셨는대, 그 때는 이름자 하나 들을 새도 없이 허깨비처럼 사라지시지 뭐야요…… 그 뒤룬 원체시리 찾을 수가 없어서, 찾구 있다곤 해두 반쯤 포기하구 있었어요. 그랬는데 오늘 우연히 역에서 뵈어서 깜짝 놀래서, 깨나 말을 걸라구 했는데 일행 분이랑 같이 계시지 뭐에요. 솔직하게 말하면 언니랑 헤어지구 나서 바로 쫓아갔는데두 또 홀연히 모습을 감추시는 게 뭐야요? 뭐 야호한테라두 홀린 걸까 신기하구 신기해서…… 실은 용무가 뭐구 다 팽개치구서 급히 언니 뒤를 따라온 거에요. 대단히 실례라구는 생각하지마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엔 원체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정말루 죄송합니다」

나오 「으, 응」

잘 모르겠지만 압도되어 버렸어.
방언 때문에 내용이 절반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요컨대 슈코한테 도움을 받아서 보답하고 싶다는 건가?
……그거, 정말로 슈코려나? 착각한 거 아냐?

그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무래도 내가 아는 슈코가 맞는 모양이었어.
약간, 아니 매우 미화된 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대체적인 외관상 특징이 일치했고.

나오 「그러니까ー, 사실 나도 슈코는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이라서. 뭐,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같은 느낌으로…… 그래서 연락처같은 것도 못 들었고. 미안」

사에 「……그런 건가요……」

사에는 척 보기에도 실망한 것 같아.
왠지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야.
하지만 거짓말은 안 했는걸.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신인데, 연락처는커녕 다음에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일생에 한 번 뿐인 기회라고 생각하고 포기해 줘.

나오 「그, 그럼 난 이만……」

사에 「기다려 주셔요」

갑자기 자세를 바로잡고는 나를 멈춰세웠어.

사에 「그럼 적어도 선배의 그 아는 사람이라는 분을 소개받을 수 없을까요」

나오 「엣?」

망했다.
완전히 궁지에 물렸어.

 

나오 「음ー 그, 뭐냐. 아, 맞아맞아! 모르는 사람한텐 연락처 가르쳐 주지 말라고 걔한테 들었거든, 응.」

사에 「카미야 선배가 사정을 설명해 주시는 건……?」

나오 「에!? 으, 응…… 아, 그러고 부니까 둘 다 핸드폰 안 갖고 있었지~……」

난 바본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다 들키게 하는 거야.
아니나다를까 무진장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

사에 「……역시 오늘 갑자기 이럼 곤란하시겠죠. 정말루……」

사에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선 찻집의 종이 냅킨에 자기 휴대폰 번호랑 주소를 적어서 나한테 건네 줬어.

사에 「슈코 항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생기면 이쪽으루 연락해 주셔요. 어처구니 없는 부탁이 아닐까 하지만요……」

내가 그 종이를 받고 나자, 사에는 이제 볼 일이 끝났다는 듯 영수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단 이야기는 이걸로 끝인 모양이야.
나는 안심의 한숨을 쉬었어.

건네받은 번호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생각했어.
사에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협력할 생각같은 거 하나도 안 해.
가뜩이나 지금도 요시노라는 골칫거리가 있는데, 그보다도 더 귀찮을 것 같은 데 일부러 엉덩이를 들이밀 정도로 난 목숨을 허투루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니, 사에가 뭔가 생각난 듯 돌아서서 말했어.

사에 「고럼, 내일까지 연락 부탁드릴게요. 혹시라도 내일까지 연락이 읎으면……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 무언의 압력에 난 잠자코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
사에는 그걸 보고 만족한 거처럼 「그럼」 하고 고개를 숙이곤 가게를 나왔어.
그리고 그를 보낸 나는 찻집에서 혼자, 머리를 싸맸어.

어쩌다 이렇게 됐지.

오늘을 액일이라고 안 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둥둥 뜬 기분이 그리운 추억처럼 떠올라.

요시노 「어째서 그렇게 축 쳐져 있는 것인지ー」

나오 「하아……」

나는 에어컨 빵빵한 가게 안의 썰렁한 테이블에 엎드려서 우울한 기분에 젖어 갔어.

가게 구석에서는 토끼 귀를 단 점원이 한가하게 하품을 참고 있었어.……

 

 

 <19:36>

【톡:호조 카렌】

나오<저기

나오<코바야카와 사에라고 있잖아? 우리 학교에

카렌<알지ー

나오<오늘 우연히 만나서 얘기했었는데

나오<죽는 줄 알았어

카렌<에 뭐야그거 자세히+(0゚・∀・) +

나오<여자애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나오<사례를 하고 싶대

카렌<뭐라는거야

나오<내일까지 정보 없음 죽인대

나오<어쩌지

카렌<힘내

카렌<뼈는 주워줄게

나오<내가 죽는 건 괜찮아?

카렌<너무 기죽었잖아(o-∀-o)

나오<사에의 공포를 모르는 모양이네

카렌<걔 별로 나쁜 애는 아니고

나오<알아?

 

카렌<알고 있다 그랬잖아

나오<이야기해본 적 있어?

카렌<없는데

나오<없는거냐

카렌<뭐 어떻게 되겠지?

나오<말은 쉽지

나오<일단 내일 거기 못 갈지도

카렌<(´・ω・`)시무룩

나오<미안

나오<오늘은 정말 지쳤어

나오<잘자

카렌<쫀잠

 

……나는 충전한 스마트폰을 내던지고 침대로 쓰러졌어.
체력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지친 건 아니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엄청나.
머릿속에 정보들이 너무 많이 빙빙 돌고 있어서 뇌가 제대로 처리를 못 해.

오전에는 산을 올라서 미시로 신사에 갔지.
요시노랑 나의 먼, 먼 과거예 연결고리.
너구리족과 여우족의 인연, 미시로산의 전설.
슈코랑 요시노, 그리고 나랑 완전 붕어빵이라던 나오코 씨.

농담 같은 것들뿐이라, 혹시 엄청난 몰카같은 데 속아넘어가고 있는 거 아닐까 하고 지금도 생각해.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신기할 정도로 납득하고 있어서, 그게 묘하게 두렵기도 하고.

요시노가 평범하게 실체화해서 라멘 먹었을 때도 깜짝 놀랐어.
그 때는 가볍게 넘겼지만, 그럼 진심으로 하면 뭐든 할 수 있단 거잖아.
나쁜 짓이든 뭐든간에…… 뭐, 요시노는 그런 건 잘 분별해서 하니까 일단 안심하고 있긴 하지만.
그 측면에서 슈코는 아직 미지수라서 좀 무서워.

 

슈코 말이라면, 문제되는 건 사에의 조사 부탁이야.

실은 찻집에서 사에한테 협박풍 상담을 들어줬을 때랑은 상황이 약간 바뀌었단 말이지.

뒤늦게 알게 된 거지만, 요시노가 오늘 지하철 안에서 느꼈다는 「좋지 않은 기운」 이란 거.
그 정체가 바로 사에 본인이었던 거야.
하지만, 악령에 씌여 있다던가 하는 건 아닌 모양이야.
사에의 일방적으로 비대한 감정이 생령이 돼서 그 주변을 맴돌고 있다던가.

요시노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ー, 그 종류의 영혼에는 짚이는 구석이 있는지라ー」

나오 「역시 저주받은 거야?」

요시노 「…… 어떠한 의미에서는 그런 것인지라ー. 저 소녀의 혼은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기에ー」

나오 「뭐? 사람?」

요시노 「사람이 아니라ー, 연애, 연모의 뜻을 가지는 사랑인지라ー」

나오 「…… 누구를 사랑하는 건데?」

요시노 「말하는 것을 듣자하면 아마 슈코가 아닐까 하고ー」

그걸 듣고 난 쓰러질 뻔했어.
뭔가 이제 완전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굴러가서 영문을 모르겠어.

왜 인간이 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게다가 여자끼리라구.

요시노 「질투와 집착 속에 약간 섞인 동경과 호의의 빛…… 사랑색이라고 해도 다양한 것인지라ー. 단정을 할 수 없으나ー」

요시노 왈, 사에의 생령의 근원은 『질투』라고 해.
즉, 슈코랑 같이 다녔던 나를 보고, 뭔가 이렇게 타오르는 게 있던 걸까.
그 묘하게 무서운 눈빛은 그게 이유였단 건가.

…… 완전 골치 아픈 이야기야.

 

결국, 사례하고 싶단 건 핑계고 사에는 단순히 슈코를 만나고 싶은 것 뿐이네.
그리고 사에는 내가 그 중개자 역을 하길 바라고 있어.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사랑의 큐피트가 되란 거지.

왜 내가 그런 거 해야 하는 거냐고 생각해 봤는데, 상대가 그 사에라서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어.

…… 그렇게 생각하니까, 실제론 조금 두근두근해졌을지도 모르겠어.
학교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소녀가 반한 상대는 인지를 초월한 신이라니.
사랑 응원같은 건 나랑은 잘 안 맞지만, 잘하면 저 둘한테 빚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딱히 생색내고 싶단 건 아냐.
뭔가 재밌어 보이잖아?

이렇게 된 이상 근성으로라도 슈코를 찾아내서 사에를 보여줘야 한단 생각이 들어.
게다가 슈코한텐 라멘값 받아야 하고.

뭐, 사실 문제가 되는 건 행방을 알 수 없는 슈코한테 어떻게 연락하냐는 부분인데……으~음, 어쩌지.


슬슬 본격적인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밤, 침대에서 뒹굴며 그걸 곰곰히 생각하자니 요시노가 입을 열었어.

요시노 「슈코를 찾는 일이라면ー, 제가 도움을 줄 수도 있는지라ー」

나오 「오히려 안 도와주면 못 찾는데」

나 혼자선 감당 못 할 거야 처음부터 뻔했던 거고.

요시노 「확실히 슈코는 변덕쟁이니ー, 산에 있다면 몰라도ー, 마을에서 언제 어디에 나타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즉ー」

나오 「그럼 어떻게 해……」

요시노 「사람이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고민이라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지라ー」

나오 「……그렇구나……!」

듣고 나니 생각났어.
그러고 보니 요시노 그런 특기 있었지.

나오 「그렇구나…… 그럼 생각보단 어떻게도 될지도…… 후아……」

아. 왠지 안심하니까 갑자기 졸려.

아직 목욕 안 했는데…… 아, 됐어.
지금은 아무 생각도 못 하겠어.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자……

땀에 젖어 끈적이는 것도 무시하며, 난 그대로 베개에 의식을 가라앉혀 갔어.

그리고 눈꺼풀 뒤의 불빛이 암전하고, 몸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서……――

 


「――…… 필시 피곤할 테죠ー. 저도 오늘만큼은 쓴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겠는지라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그리운 목소리.

「그대를 보고 있자면 떠올라 버려요ー…… 제가 아직 소녀였을 때, 나오코 언니한테 어리광부리며 같이 놀던 때의 기억이ー……」

「오래 전에 잊었다고 생각했었으나ー, 슬픔도 후회도, 지금에 와서 되돌아오니…… 저도 아직 미숙한지라ー」

「나오…… 그대에게서 나오코의 모습을 보는 내 미련이야말로, 분명 이 저주의 참된 원인이겠지요ー」

「어쩌면, 서로 태어났을 때부터 운명으로 엮인 몸ー…… 즉, 혈연의 저주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ー」

―― 어쩐지 다정한 무언가가 뺨에 닿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
감싸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어.

「…… 그대에게 일방적으로 내맡기고 있는 애념(愛念), 향수(郷愁), 회한(悔恨)…… 허나 지금의 제게 그런 집념을 품을 자격은 있는 것일지요ー……?」

「그대는 나오코와 다르다ー…… 그리 뻔한 일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이런 못난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길ー……」

아, 그렇구나.
이 온기.

「…… 여름 밤에 하릴없이 그리워하거든, 떠오르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인연의 명월……」

「자아, 지금은 푹 잠드시길ー……」

그리운 엄마의 냄새.
옛날, 아직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
나를 재워 줄 때, 엄마의 목소리.

 

 

꿈을 꿨어.

어렸을 때의 꿈

엄마의 꿈.

태어나기 전의 기억.

토끼와 고양이, 그리고 카렌의 꿈 ――………….




 

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6)으로 이어집니다.






역자 후기

 

사투리... 죽... 여줘...

 

사에=항의 교토벤은 서울 사투리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보통 교토벤은 경상도 사투리로 많이 번역하지만, 아무래도 경상도 사투리의 이미지가 교토벤의 이미지랑은 좀 달라서...

 

게다가 서울 사투리는 이미 사멸돼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엉터리 사투리를 막 싸재껴도써도 아무도 모른다는 장점이 있죠.
햣하! 야매 사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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