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1)

댓글: 8 / 조회: 2297 / 추천: 5



본문 - 10-12, 2016 19:10에 작성됨.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유령의 존재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나는 어느 쪽이냐면 안 믿는 쪽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괴물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을 수 있진 않아.
오히려 약한 편이지.
뭐, 내 나이 정도의 여자라면 보통 그런다고 생각해.
영감이 있다거나, 오컬트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나 같은 건 세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여자아이야.
그래, 극히 평범한 여고생.

「……인지라ー」

그래서 지금, 난 침대에 들어가서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어.
이런 오컬트,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난 안 믿어. 꿈이지 이건? 당연하지.
안보여 안들려 안보여 안들려……

「그대는 도대체 무얼 하고 계신지ー」

……그렇다곤 해도 이상한 꿈이구나.
귀 막고 있는데, 머릿속에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린다니.
정말 멋진 꿈이로군. 그래도 슬슬 일어나야지, 안 그럼 아버지한테 혼날 거다.
일어나야…… 응.
좋아! 일어났어!

「마침내 눈을 떠 주었기에ー」

나오「우와아아아아앗!?!?」

꿈이 아니었어.
거기엔 여전히 작은 아이가 내가 일어나는 걸 기다리고 있었어.
내 방, 침대 옆에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어렴풋하게 비쳐보이는 아이의 모습이.





나오「너, 너?!누누누누구웃?!가 아니라, 뭐야 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는지ー?」

나는 바보처럼 입을 뻐끔뻐끔하며 침대 위에서 굳어 버렸어.
몇 번 눈을 비비고 깜빡여 봐도, 반투명한 아이는 계속 거기에서 나를 보고 있었어.

뭐야이거.
뭐야이거.

어쨌든 꿈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아까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벽에 세게 머리를 박아 버렸으니까.
지끈지끈 아파 오는 머리를 누르면서, 난 필사적으로 생각했어.

사실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건 그러니까, 그, 유, 유령이란 거니까…… 나 지금 유령에 씌여서……

「유령은 아닌지라ー」

나오「아니아니아니아니」

무심코 츳코미를 넣어버렸어.
뭘 어떻게 봐도 유령이잖아!
아니, 그야 다리도 있고 둥둥 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반투명한 사람이라니 난 그런 거 모른다구.
애초에 인간이라고 하면 더 문제잖아!
사람 집에 멋대로 들어와서 자고 일어나려니까 갑자기 옆에 있으면 그건 이미 흉악범죄라고 해도 되잖아.
……어라? 그럼 차라리 유령이 나은가.

「그러니까 유령이 아니기에ー」

나오「그럼 요괴…… 아니, 도깨비……?그것보다, 남의 마음을 읽지 맛」

왜 이렇게 착실하게 츳코미를 넣게 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어.
내 머리도 결국 어떻게 된 걸까.



「저기, 아침부터 소란스러운데ー?」

1층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내심 엄청 안심했어.
그야말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몸을 옭아매던 공포가 팍 한 순간에 풀리고 나서, 문이 박살나는 거 아닐까 싶을 기세로 방을 뛰쳐나갔어.
혹시 뒤에서 따라올까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넘어지듯 계단을 내려왔지.

나오「아, 아, 아, 아버지! 나왔어! 나왔다구!」

「뭐!?」

아버지는 주방에서 아침밥을 만들고 있었어.
계란을 들고 앞치마를 하고 있는데 치명적으로 안 어울렸지.

「어디!?」

나오「내, 내 방! 여튼 큰일이야!」

그 이상 뭐라 말하기 전에 아버지는 큰 소리를 지르며 2층으로 뛰어 올라갔어.
그리고, 그 기묘한 텐션을 마주한 뒤 나는 갑자기 냉정해졌지.

저 바보 아빠,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라고!

뭐가 나왔는지도 모르면서 뭘 어쩌려는 건데.
그리고, 부엌에서 나올 거면 최소한 불은 끄고 나와.
어머니가 나가신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 엉터리 중년은 여전히 엉터리야.
나는 황당해져서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내 방으로 돌아왔어.



아버지는 하필 내 방 이불이나 책상서랍 같은 걸 부스럭대며 뒤지고 있었어.

나오「잠깐, 아버지! 뭐 하는 거야!」

내가 화를 내니, 이 사람은 왠지 깜짝 놀란 듯 눈을 껌뻑였어.
깜짝 놀란 건 이쪽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무리 긴급사태라곤 해도 말 한 마디 없이 이 나이의 딸 방을 뒤져대는 아버지가 있느냐고.

「바퀴벌레 나온 거 아냐?」

나오「그런 말 한 마디도 안 했어!」

「그럼 뭐가 나왔는데?」

입 밖으로「유ㄹ……」까지 꺼냈다가, 그만뒀어.
말해 봤자 아버지 혼자서 제멋대로 저지를 테고, 게다가 완전 머리가 식어 버린 지금은 바보 같아서 솔직히 말할 기분이 아니었거든.

결국 난「아무것도 아냐」라고 적당히 얼버무리곤 아버지를 방에서 쫓아냈어.
아버지는 처음에는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정신차리곤 아침밥 준비하러 돌아갔지.

나오「하아……」

끔찍한 아침이야.
가뜩이나 나른해지는 더위의 한여름인데 말야.
난 침대의 이불을 개곤 한숨을 쉬었어.
게다가, 어제 갔던 캠프에서 쌓인 피로가 아직도 안 가셨어.

캠프…… 그래, 어젠 아버지랑 같이 산에 놀러 갔던 거야.
여름 방학이라고 억지로 끌려가서……

나오「아앗!!」

생각났다…… 그 유령!!
오싹, 하고 등줄기에 한기가 들었어.



「마침내 기억해낸 것 같군요ー」

나오「우오오옷!?」

또 나왔어.
역시 잘못 본 건 아니었구나.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내 방 한가운데에서 서서 이쪽을 보고 있어.

나오「너…… 그 산에서……」

내가 말을 꺼내니, 그 녀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어.
호러 영화라면 여기서 다시 비명을 지르겠지만서도, 이상하게도 공포스런 감정은 들지 않았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냉정해.
뭐 소리 지르고 소란 피워 봐야 귀찮아지는 건 나란 걸 아까 알게 됐으니 말야.
게다가 잘 보니까 나쁜 짓을 할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예스러운 화복(和服).
맹해 보이는 표정.
작달막한 키.
뒤로 묶은 긴 머리.

응, 역시 그렇지.
난 어제, 이 유령과 만났어.……



…… 어제, 나랑 아버지는 이웃 마을에 있는 큰 산에 캠핑을 갔어.
왜 갑자기 아웃도어같은 걸 하게 됐느냐 하면, 그건 아버지한테 물어봐.
내 생각엔 그냥 삘이 꽃힌 거 아니었을까.

난 원래 그런 취미도 없었고, 처음에 갈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기운넘치는 것 보니까 거절할 수가 없더라.
아버지다운 일을 해 본답시고 노력하는 게 헛도는 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그렇다곤 해도 헛돌기 쉬운 성격이라면야 나도 딴 사람 얘기할 처지는 못 되지.

뭐 그거야 아무래도 좋다 치고, 우리가 간 곳은 미시로 산이라는 꽤 멋진 산이었어.
일단 캠핑장은 있었지만 전혀 사람 손을 안 탔는지 쓰질 않는다는 분위기가 팍팍 나고 있었어.
구분하자면 등산용이라는 거지…… 뭐 아버지가 그랬으니 아무 생각 없었겠지.
그렇게 됐으니, 일단 바베큐같은 걸 하기로 했어.

그리고, 사건이 터진 건 그 다음이야.
내가 텐트를 나와 개울에서 물을 긷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한테 들이받힌 것처럼 넘어졌어.
발을 헛디딘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딫힌 느낌.
다행히 상처는 없었지만, 온 몸이 축축해져서 기분이 최악이었어.

그리고 나서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강가에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서 있는 게 보였지.
처음엔 못 보일 모습을 봐 버렸구나 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었는데, 뭔가 상태가 이상하단 걸 깨달았어.
캠핑장에는 나랑 아버지밖에 없을 테고, 등산자라고 하기엔 복장이 기묘했어.
작은 아이였으니까, 어쩌면 미아일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말을 걸었지.

그랬더니 나는 또 개울 속에 넘어져버린 거야.

그 아이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까.
슉ー하고 갑자기, 연기처럼, 소리도 없이.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단 말이지.



나는 흠뻑 젖은 채로 소리지르며 텐트로 돌아갔어.
울먹이면서 아버지한테「유령 나와」라고 했지만, 대낮부터 나올 리가 없다면서 웃기만 했다니까.
확실히 여름 가장 밝을 때에 유령이 나온다니 말도 안 되지. 유령이 말이 되는지는 그렇다 치고 말이지.

하지만 미시로 산은 그런 게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곳이었어.
높다란 나무들이 이곳저곳에 어두침침한 그늘을 드리워서 낮에도 꽤 음침한 곳이었으니까.

그 순간엔 나 정말 돌아가고 싶었지만, 젖은 옷을 말리는 동안「기분 탓이었을지도」하고 생각해 버렸어.
그렇게 생각하니 유치한 자신이 약간 부끄러워졌고.
시간이 흘러 배고파져셔, 바베큐 고기를 굽자니 유령 생각보다 밥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어.

그리고 집에 돌아갈 무렵엔 벌써 잊어버린 거야.

잊어버렸을 텐데..

나오「설마 유령에 씌였던 건가……?」

나는 머리를 움켜쥐고 웅크렸어.
막상 이렇게 정체불명의 존재를 목격해 버리면, 아무리 믿음이 안 가더라도 믿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나니 이젠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기 시작했어.

이대로 유령한테 저주받아 죽어버리거나, 귀신 들려서 죽어버리거나.

「그런 일은 하지 않기에ー. 안심하시기를ー」

나오「그니까 멋대로 사람 마음을 읽지 말라니까……」



「그대에게도 면목없을 일을 해 버렸다고 생각하기에ー」

나오「…… 무슨 말이야?」

「불가항력이라고 하나ー…… 여기에는 깊ー은 사정이 있으니ー」

공포심은 사라졌지만, 무슨 목적으로 이런 건지는 알아야겠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이 유령의 말을 듣기로 했어.

「아까부터 말했지만ー, 나는 유령이 아닌지라ー」

나오「유령이 아니면 뭔데?」

「나는 요리타테노요시노카미(依立良之神)라고 하기에ー. 미시로 영산(靈山)에 모셔진 일주(一柱)의 신인 것인지라ー」

요리타테…… 뭐라고?
게다가 방금 신이라 그랬지?

「요리타테노요시노카미, 이오니ー」

요리타테노요시노카미, 혀 깨물겠다.
……가 아니라!
이 여자애가, 신이라고?

「산에서는 요시노 님이라고 불리었기에ー. 그대 또한 신앙해 보는 것은 어떨지ー」

나는 어느 새 정좌했어.
정체불명이란 건 변함없지만, 왠지 정좌하고 제대로 마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뭐야이거 정말 신인가? 얘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나는…… 나는 어느 쪽이더라?





 ○ ○ ○

「왜 그래 나오. 기운 없어 보이네」

나오「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부녀지간의 평범한 아침 풍경.
……에, 신까지 동석하는 건 무슨 일이냐고.
딱히 긴장한 건 아니었지만, 엄청 정신 산만해.

처음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려 하고 있자니 요시노가 벽에서 뿅 하고 나타나서 된장국을 성대하게 뿜어 버렸어.
아침밥 먹을 때까진 방에서 얌전히 있으라고 그랬는데.
하지만 요시노가 벽이랑 가구를 뚫고 지나가며 종횡무진 돌아다녀도 아버지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어.

아무래도 아버지는 요시노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 같아.
실제로, 지금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전혀 눈치 못 챈 것 같으니까.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나오「엣? 아니 딱히, 아무 것도」

「아무리 내가 멋져도 그렇지 정신놓고 보고 있으면 곤란하단다」

나오「시끄러. 다물어. 바보」

「게다가 아까부터 된장국을 뿜거나 혼잣말하거나 막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너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나오「아버지한텐 말하고 싶지 않아」

뭐니뭐니해도 요 근처에서도 괴인으로 소문난 아버지니까.
예전에는 극단에서 간판배우를 할 정도였고, 친구들 말 들어보면 잘 생겼다는 것 같은데, 안 그랬으면 여러모로 끝장이었어.
패션은 의미불명에 음식취향은 기묘하고 오타쿠고.
정신연령이 소학생인 상태로 어른이 된 느낌.



어머니가 나가버리고 나선 자신이 비상식적인 인간이라고 조금은 자각한 것 같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아직 멀었어.
지금도 봐, 일 나가기 전에 옷차림 정도는 확인해둬야 한다고.

나오「넥타이 매야지. 그리고 수염 좀 깎고, 잠버릇도 좀 고치고…… 그리고 양말은 둘 다 맞춰서 신으라고 그랬잖아!」

어디까지 챙겨줘야 하는 건데.
내가 니 엄마냐고.
아직도 익숙치 않은 듯한 넥타이를 매게 하고 현관에서 배웅해준 뒤,

나오「지가ー압! 지갑 놓고 갔어ー!!」

간신히 깨닫고 뛰어갔어.
언제나 이런 느낌.
정말 어처구니없지.

신이시어…… 저 노답 아버지를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라고 소원을 빌었지만, 요시노는 흥미 깊다는 듯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요시노「이상한 인간인지라ー」



아버지가 문제없이 출근한 걸 지켜보고 나서야, 나는 마침내 요시노랑 천천히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


나오「――저주!? 잠깐 기다려, 그건 변명할 여지가 없다구!」

요시노「저주라고는 해도 악의적인 주술 같은 건 아니지만ー」

이렇게도 본격적인 영적 체험을 한 뒤에「저주」같은 소리를 들으면 그것만으로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야.
소심한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러겠지.

여튼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자 하니, 요컨대 이런 모양이야.

그 캠프장에서 요시노는 우연히 내가 개울가에 나와 있는 걸 목격.
그 때 강 상류에서 곰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요시노가 나를 돕기 위해 바위 뒤에서 들이받았다.
거기까지는 단순히 사람을 돕는 거였지만, 뭔가 잘못돼서 들이받는 순간 강력한 결연(結緣)의 저주가 걸렸다고.

나오「그랬구나. 뭐, 곰한테 습격당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을지도……」

원래대로라면「고마워」라고 한 마디 하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나는 성격이 이래서 좀처럼 솔직한 말이 안 나온다.



나오「그래서, 결연의 저주……란 건 구체적으로 뭐야?」

요시노「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지요ー」

나오「나랑 요시노가?」

요시노「그러하오니ー」

나는 의자에 기대 심호흡을 했어.
눈을 감고, 다시 천천히 떴지.

나오「…… 그 저주는 어떻게 풀 수 있어?」

요시노「그것은 나 또한 알지 못하기에ー」

뭐 그럴 줄 알았어.
……아니아니 이거 정말로 위험한 거 아냐? 이거.

요시노「허나 이런 류의 저주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으며ー. 푸는 법도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지요ー」

나오「오옷! 빨리 말해 줘!」

요시노「첫 번째 가장 쉬운 것은 어느 한 쪽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며ー」

야.
갑자기 뒤숭숭한 이야기가 됐다구.



요시노「이 경우, 나는 신이기에ー. 죽는 것은 그대 쪽이 되지만ー」

나오「자자자,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요시노「나 또한 권장하지 않으며ー」

요시노가 말이 통하는 신이라 다행이야.
하마타면 죽을 뻔했어.

나오「그, 그 밖에는 무슨 방법이……」

요시노「연인 사이라면 다른 연을 맺고ー, 일의 연이라면 출세를 바라거나 하게 되면ー, 저주의 힘은 약해지지요ー. 그 약해진 곳을 잘라내면 되는 것이지만ー……」

나오「그렇구나」

요시노「공교롭게도 인간과 신령의 연이라고 함은ー, 그러한 전례는 들어 본 적도 없기에ー, 저 또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모르는 것이지요ー」

으ー음…… 확실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인연이긴 하네.
신이라면 소원 비는 정도밖에 찾은 적 없는데.
아, 그래도.

나오「방금 신령이라고 했지? 영이라면 불제라던가 하면 되는 거 아냐?」

요시노「그건…… 무리한 상담이오니ー」

나오「왜!?」

요시노「불제라 함은 원래 개인의 혼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기에ー,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ー」



나오「그, 그치만 방법은 있을지도 모른다구? 요시노가 모를 뿐이지」

요시노「필시ー……」

요시노는 뭔가 생각하고 있는지 팔짱을 끼고 있어.
그나저나 이 신, 감정이랄까, 표정이 전혀 변하질 않으니까 뭘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게다가 아까부터 내 책상이나 책장을 흘끗흘끗 보고 있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맞아?

요시노「……하나 묻자면ー, 그대는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ー?」

나오「뭐? 그야 뭐…… 신이라고 하면 우러러 떠받들고 신앙하는 거잖아?」

요시노「흐ー음.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나ー, 신을 모신다는 것은 숭배를 위해서만이 아니며ー, 은덕(恩德)을 받거나 때로는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오니ー」

나오「아ー, 응」

요시노「즉 사람과 신의 좋은 연이라 함은ー, 신앙에 대해 은덕을 베푸는 관계에 다름아닌지라ー」

나오「아! 알겠어! 신앙심을 완전히 없애면 연이 끊어지는 거구나?」

요시노「그렇지는 않은지라ー」

윽.
아닌가!



요시노「결론부터 말하자면ー, 그대가 품고 있는 고민을 제가 해결하게 된다면ー, 이 저주도 서서히 약해질 것이 아닐까ー」

나오「고민……?」

요시노「그러하오니ー. 불의의 사고라고는 하나ー, 결연의 저주에 걸렸다는 것은 그대에게 무엇인가 해결하고 싶은 고민이 있다는 것이 아닌지ー」

고민 상담 받습니다, 란 건가?
뭔가 굉장히 수상한데……

요시노「수상하지는 않은지라ー.제 특기로는 주로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이 있으며ー 물론 그 이외의 발원이나 기도도 경우에 따라서는 들어주지요ー」

나오「흐ー음…… 잃어버린 걸 찾는다, 라고」

어라?
이거, 잘 생각해보면 이런 거네.
…… 신이 나한테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거?

요시노「그런지라ー」

레알?
에, 거짓말이지?
그거 완전 럭키잖아.

요시노「락키ー 이기에ー」

나오「으~음, 아직 믿음이 잘 안 가는데…… 시험삼아 하나 괜찮을까?」

요시노「무엇인지ー」



나오「1주일쯤 전에 CD 잃어버렸어. 찾아봤는데 어딨는지를 모르겠어…… 어디 있는지 알겠어?」

요시노「씨ー디ー라는 것은 어떤 물건인지요ー?」

아, 거기서부터냐..
확실히 산에 모셔지던 신이 CD같은 걸 알 턱이 없나.

나오「에ー그러니까…… 이렇게, 얇고 둥글고 은색인 물건인데,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

요시노「그것이라면 저곳에ー」

엣, 하고 생각해 가리킨 곳을 보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New Generation』의 싱글 CD가 있었어.

나오「아, 응. 저런 느낌이야」

요시노「이것이 아니었는지요ー?」

나오「비슷한데 다른 걸 잃어버렸거든. 뭐랄까…… 한 쪽은 핑크색에『Cute jewelries』라고 씌여 있는데」

요시노「큐우ー토 쥬에……?」

나오「큐트 쥬얼리즈」

나는 영어 철자를 종이에 써서 보여주었어.

요시노「그렇군요ー, 그것이라면 이 방에는 없는 모양이기에ー」

나오「에?」



요시노「아래층에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ー」

나오「엣 그 정보만으로 알겠어?」

요시노「어떻게든ー」

나는 반신반의하며 1층으로 내려갔어.
요시노가「이쪽으로ー」라고 가리킨 곳은, 아버지밖에 안 쓰는 창고 방이었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요시노 말대로 뒤져 보니,

나오「거, 거짓말이지…… 진짜 있잖아……!!」

서류 뭉치 속에 섞여 있는 걸 확실히 찾아버렸어.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우연히 이럴 순 없겠지.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이 집은 꽤 크다구.
혹시 찍거나 해도, 보통은 내가 자주 들리는 방을 찾잖아. 거실 같이.


난 확신했어.
이 신은 진짜라고.

요시노「마침내 알아 준 것인지ー」

나오「아…… 그, 뭐냐…… 고, 고맙습니다……」



요시노「감사의 마음은 중요한 것이지요ー. 그것이 곧 신앙의 마음이기에ー」

표정은 여전히 읽을 수가 없지만 미묘하게 득의양양했어.
뭐 대단한 거란 건 확실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신의 은덕이라…… 뭔가 갑자기 설레는데.
이런 행운이 내 앞에 찾아오다니.
요시노, 아니 요시노 님.
처음에 의심하거나 유령 취급하거나 해서 미안.

요시노「저는 매우 관대한 신인지라ー. 그닥 신경 쓰지 않기에ー」

나오「저기ー, 요시노. 하는 김에 조금 더 찾는 것 좀 도와 줘……」

요시노「마음껏ー」

그리고 나는 기억나는 대로 잃어버렸던 걸 찾아냈어.
대부분 가위나 지우개같이 없어져도 별 문제 없는 것들이었지만, 딱 한 권 잃어버렸던 만화를 찾아냈을 땐 정말 다행이였어.
하지만 우리들 근처에 없는 건 요시노도 찾아내지는 못하는 모양이더라고.
예를 들면 옛날에 잊어버린 곰인형 같은 건 못 찾아냈고. 아마도 버린 걸까.
그런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이제 찾을 게 없어져서 우리들은 방으로 돌아왔어.
돌아다니느라 조금 땀이 났네.
여름더위 특유의, 끕끕하고 짜증나는 땀.
나는 이런 더위를 잘 못 버텼어. 이렇게…… 찌는 것 같네. 정말로.

하지만 우리 집엔 에어컨같은 게 없으니까 창문 열어서 바람 쐬는 수밖에 없지.
뭐 집 주변에는 나무나 식물이 많은데다, 촌이라서 아스팔트도 적은 편이니까 창문만 열어도 꽤 시원해.
하는 김에 선풍기도 틀자.

나오「그런데 말야. 요시노는 잃어버린 거 찾는 거 말고 뭐 할 수 있어?」

요시노는 빙글빙글 도는 선풍기의 날개를 지긋이 바라봤어.

요시노「……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나ー, 그 외에는 사람찾기, 퇴마, 인연 맺기 등이 있지요ー」

쓸모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미묘한 특기네…….
하지만 인연을 맺는다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랑 여, 연인 사이로 만들어주거나 하는 건가……?

요시노「그대는 연모하는 상대가 있는지요ー?」

나오「뭐!? 이, 이, 있을 리가 없잖아! 뭐라는 거야!」

요시노「어째서 화를 내는 것인지ー」

젠장ー, 멋대로 사람 마음을 읽지 말라고!
……뭐, 됐어.
일단 앞으로는 뭐 잃어버려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 미묘한 은덕이구나.
이렇게 되면, 그 외에도 이래저래 할 수 있는 건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물건은 만질 수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대화는 할 수 있는 것 같고.



나오「……요시노? 뭐 하는 거야?」

잠깐 눈을 뗀 사이 요시노는 아까 그 CD를 흥미롭다는 듯 살펴보고 있었어.

요시노「이 씨ー디ー라는 것은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ー?」

나오「그건 음악을 듣는 데 쓰는 거야」

요시노「음악…… 즉 악기라는 것인지ー?」

나오「아니 악기는 아니고, 이걸로 음악을 트는 거야」

라곤 해도 CD는 일단 PC에 집어넣고 나면 그 뒤엔 쓸 일이 거의 없는데.
그래서 아까 요시노한테 찾아달라고 했던 때에도, 딱히 못 찾아도 괜찮겠지ー 정도로 생각했었거든.
……잠깐 또 요시노가 생각 읽을라, 이런이런.

요시노「흐음ー…… 이 원반이ー…… 악곡을 연주한다고ー……??」

마음을 안 읽다니 놀랐어, 아무래도 요시노는 완전히 CD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야.
그렇구나, 산에 살던 신이니까, 이런 전자기기라던가 기계같은 건 처음 보는 물건이겠네.

나오「들어 볼래?」

요시노는 어린애처럼 꾸벅,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
PC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도 되겠지만, 모처럼이니까 아버지가 쓰던 CD카세트를 들고 왔어.
『Cute jewelries! 003』을 집어넣고, 곡 이름은 『내일 또 만날 수 있겠지』.

철컥

 ~~♪




요시노「오오~……데시떼ー……!」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요시노의 표정 변화를 봤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더라고.
웃음 나올 정도로 신선한 반응이야.
게다가 왠진 몰라도, 요시노를 보고 있자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지.

나오「좋은 곡이지」

요시노「진묘(珍妙)한 곡이오니ー」

이건 예상 못 했다.
진묘하다니, 그거 칭찬인가?

요시노「……잘 모르겠으니ー, 다시 한 번 들어 보고 싶은지라ー」

나오「마음대로 들어, 이제」

리피트 버튼을 누르고 방치할까.
요시노가 카세트 앞에서 오도카니 정좌한 채 듣고 있는 걸 바라보며, 나는 침대에 푹 하고 쓰러졌어.

시계를 봤더니. 벌써 곧 점심시간이네.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난 건가.
그렇게 배는 안 고픈데, 점심밥은 어쩔까나.
그러고 보니 오늘, 원래 뭐 할 예정이더라…… 아, 그랬지.
도서관에 가서 여름방학 숙제 하려고 그랬지.
그리고 카렌한테도 들려야……

나오「앗!!」

요시노「……깜짝 놀랐기에ー」



맞아, 문병 갈 때 가져가겠다고 약속한 그거!
그거 학교에 두고 왔어!
나 정말 바보~

……하아.
일단 학교에 가 봐야겠네.
교실 안 잠겨 있으면 좋을 텐데.

나오「저기, 요시노」

요시노「……~♪」

안 듣고 있네.
게다가 "진묘"라 그랬으면서 왠지 마음에 든 것 같고.
콧노래까지 불러가면서.

나오「저ー기 요시노ー?」

요시노「……핫. 방금 나를 불렀는지요ー」

나오「아까부터 불렀다고. 저기 말야, 나 이제부터 나가 봐야 되는데 말이지」

요시노「그러한지요ー. 그렇다면 나 또한 같이 가야 하는지라ー」

나오「에? 아니아니, 요시노는 집 좀 봐 줬으면 한다고 말하려고……」

요시노「그것은 무리이기에ー」

나오「ㅇ, 왜??」



요시노「이유는 모르겠으나ー, 그대로부터 멀리 떨어지면ー,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잡아당기는 것처럼ー, 나를 붙잡는지라ー」

그런 건가.
뭐, 결연의 저주라고 할 정도니까 말야.
보이지 않는 실 같은게 한두 개 정도 있어도 이상할 거 없지.
이해불능까진 아니지만.

나오「그건 어느 정도 거리인데?」

요시노「약 10간 정도이기에ー」

10간……이면 몇 미터야.
전혀 모르겠어.
(* 1간間은 약 1.818m - 역주)

요시노「이곳에서ー, 저곳까지에 이르는 정도일까요ー」

요시노가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어.
보아하니, 이 집에서 옆집 정도까지밖에 안 되네.
그러니까 20미터 좀 안 되나.

나오「으ー음……」

생각해 보니까, 요시노를 밖으로 데려가도 뭐 문제가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히려 은덕을 주시는 신을 굳이 멀리하는 게 손해 아닐까?

나오「좋아. 그럼 갈까, 같이」

요시노「싫은 것이기에ー」

나오「뭐??」



잘못 들은 건가.
생각치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구.
방금,「싫어」라고 한 거야?

요시노「그보다도 나오ー, 이 씨ー디ー는 다른 악곡도 연주할 수 있는 것인지ー?」

요시노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New Generation』의 CD를 가리키며 말했어.
근데 자기소개 한 적도 없는데 언제 내 이름 알게 된 건데.
아, 아까 아버지가 이름 불렀으니까 그런 건가.
……그게 아니라!

나오「요시노, 음악은 슬슬 그만 듣자? 나는 나가 봐야 한다고」

요시노「이번에는 이것을 들어 보고 싶기에ー」

어라, 대화가 안 되잖아.
이상하네.

나오「멋대로 그러지 마. 요시노가 안 간다 그래도 난 그냥 갈 거야」

요시노「씨ー디ー! 더 듣고 싶은지라ー!」땡깡

애냐!?

……애냐고!?
두 번이나 츳코미 넣어 버렸다.

나오「에~…… 잠깐, 요시노……에ー……」

요시노「므ー」

…… 이거 완전 떼쓰는 어린애들의 눈빛인걸.
지금까지의 위엄 있는 태도는 어디 간 건데.

난 이 시점에서 다시 자문하게 됐어.
정말로 이게 신이라고?
좌부동이 아니라?




요시노는 무릎을 안고 바닥에 딱 붙어서는, 밀어 봐도 거기서 꼼짝 않을 것 같아.
신도 고집을 부리는구나.
나는 그런 걸 생각하면서, 뭐 한 곡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 요시노의 투정을 들어 주기로 했어.
CD를 넣고 재생하니 요시노는 지금껏 투정부리던 걸 딱 하고 멈추더니 카세트 앞에 정좌했지.
신묘한 얼굴로 귀를 기울이고 있어.
정말,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나오「이거 듣고 나면 꼭 출발할 거야」

요시노「나오ー, 이 노래는 무엇이라 하는 것인지ー?」

안 되겠다 이 신. 사람 말을 안 들어.
또 뭐라 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적당히 맞춰 주는 수밖에 없으려나.

나오「가사 카드에 씌여 있어. 라곤 해도 요시노는 일본어는 몰라도 영어는 못 읽지」

요시노의 눈 앞에 펴 주니까, 바로 그걸 눈으로 쫓으며 노래를 흥얼흥얼거리기 시작했어.
영어 부분은 들리는 대로 따라하는 수준의 엉터리 발음이긴 했지만, 음정은 꽤나 괜찮았어.

나오「요시노는 음악 좋아해?」

요시노「내가 아직 사람이었던 시절ー, 일족 대표의 무녀로서 다양한 신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었기에ー, 가곡에도 자연히 관심이 싹튼 것인지라ー」

나오「사람이었던 시절……? 요시노는 신이 되기 전엔 인간이었던 거야?」

요시노「그러하오니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는데, 충격의 사실 아냐 이거?
인간이 신이 된다는 거야?
그리고 이거 어느 시대 이야기야.
수수께끼다.



요시노「이래봬도 나는ー, 마을에서 제일가는 무인(舞人)으로 이름났기에ー」

나오「헤에~……」

정말로?
뭔가 거짓말 같아.

요시노「의심하는 것인지요ー」

나오「아, 아니 그게아니라, 이건 그」

요시노「그럼 실연해 보도록 하지요ー. 천녀(天女)와도 같은 절미(絶美)의 예(藝), 지고(至高)라고 칭해진 나의 무(舞)를ー, 천천히 봐주시길ー」

요시노는 그렇게 말하곤 바로 일어섰어.
어?지금 여기서 춤 추려고?

내가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요시노는 뒤에서 틀어 둔『Evo! Revo! Generation!』에 맞춰 천천히 자세를 잡았어.
꿀꺽.
무의식중에 긴장해 버렸어.

요시노「~♪」

다음 순간, 나는 형용하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지.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

아장아장 뱅뱅 폭신폭신 부비부비 오똑
이하생략.

요시노「~♪」

나오「…………」



나오「……뭐 해?」

요시노「이것이 고래(古來)부터 미시로 산에 전해오던 의식의ー, 그 궁극의 무도인지라ー」

그러면서 빙글빙글 돌며, 조용히 뛰어다니는 거 있지.
무표정으로, 게다가 무서울 정도로 슬로우한 템포로.

나오「……풋……크큭……아하하하하!!」

이제 한계야.
미안, 요시노.
이거 보고 안 웃는 놈이 있음 존경할게.
가뜩이나 유연 체조 같은 괴상한 춤인데, 완전 엄근진한 얼굴로(糞真面目な顔) 업 템포인 곡에 맞춰 추니까 더 이상해졌어.
뭐야 그 몸의 각도는.
전위예술도 정도가 있지.

나오「아핫, 하핫, 자, 잠깐 타임! 너무 웃어서, 배, 배가…… 아하핫 푸핫 아하하하!!」

요시노「왜 웃는 것인지ー」

나오「그게 엄청 이상해서……크, 크크……히~……」

눈물까지 나왔어.
비겁하잖아 정말, 이럼 웃을 수밖에 없잖아.

나오「하아, 하아 ……요시노?」

훌쩍 눈물을 닦고 요시노를 봤어.
정신을 차려 보니 춤을 멈추고 나를 지긋ー이 노려보고 있었지.



어라?
설마 화 난 거야?

요시노「…………」

요시노는 삐진 듯 흥, 하고 고개를 돌렸어.

나오「미, 미안. 딱히 웃고 싶어서 웃은 게 아니……풋」

망했다.
생각하니까 다시 웃음 나와.

그게 아냐, 들어 줘 요시노.
확실히 네 춤은 대단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Evo! Revo! Generation!』에 그걸 추는 건 아무리 그래도 무리가 있지.
소란부시라면 몰라도.
(* 홋카이도의 전통민요 - 역주)

요시노「……나의 숭고한 무는ー, 어차피 이 시대의 인간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ー, 그리 신경쓰고 있지 않기에ー」

거짓말이네.
완전 화났어.

요시노「태평의 세는 동국, 자비의 신이 여기에 있다고 이름을 알렸을 정도로ー, 그러한 나를 화나게 만들다니 대단한지라ー」

그런 말을 뾰루퉁해져서는 뺨을 부풀리면서 해 봐야 설득력이 없어.
애냐고.



요시노「허나ー, 그렇게 불경한 일을 저지르다간 천벌을 마다하지 못하기에ー, 다시금 주의하시길ー」

나오「처, 천벌!?…… 이란 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거야?」

요시노「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재앙의 연속이기에ー」

천벌이라는 말을 들으니 내심 약간 겁먹었지만,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이 두려워하는 마음은 안 든다.
딱히 요시노의 신적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나오「그 재앙이란 건 예를 들면 뭐가 있어?」

요시노「길을 걷자면 개가 짖어대고 말똥을 밟게 되며ー, 눈에는 먼지가 들어가 계속 간지러우며ー, 하루에 한 번씩 물건을 잃어버리고ー, 동무들이 뒤에서 욕을 하게 되지요ー」

읏.
수수하지만 꽤 싫다.

나오「…… 잘못했어. 미안, 사과할게. 그러니까 용서해 주세요 요시노 님. 인간 주제에 말이 심했습니다. 요시노 님의 춤은 채고입니다」

요시노「……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ー, 용서하지 못할 이유도 없으니ー……」

나오「역시 요시노 님이야, 마음이 넓지! 이야, 천하의 무희!」

요시노「…………」

아, 오버했다.



…… 그리고 다시 요시노의 기분을 푸는 데 엄청 고생했어.
처음에 갖고 있는 CD들을 모두 보여줘도 토라져서 흥미 없어했을 때는 정말 곤란했지.
하지만 다른 수단은 없으려나 하고 노트북을 연 순간, 요시노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화면을 들여다본 건 나도 예상 외였다구.
이 신은 아무래도 호기심이 왕성한 것 같아.
스마트폰도 보여주니까 하나하나「오ー」라던가「호ー」라던가 반응하면서 놀랬고.
재미있네.

나오「저기, 슬슬 나가야 되는데……」

시계를 보니 정오를 훨씬 넘겼어.
딱히 서두르는 건 아니지만, 나도 꽤 배가 고팠는데다 일도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서.
요시노가 다시 떼 쓰기 전에 선수를 치는 거지.

나오「밖에는 더 재밌는 것들이 많다구」

요시노「그런지요ー…… 그렇다면야ー」

바로 고개를 끄덕.
신은 변덕이 심하다고 하던데, 바로 그런 느낌.


그렇게, 이런 일 끝에 나는 마침내 집을 탈출할 수 있었어.
뭐 그냥 요시노를 놔두고 혼자서 나와도 됐겠지만, 뭔 일 날지도 모르니까.

밖엔 햇볕이 강렬했어.
초목의 쉰 냄새가 마당에 퍼져 있었고.
매미 울음소리가 내리치듯 울려퍼졌어.
아, 여름이구나 싶었지.
요즘 매일 그런 걸 생각하는 것 같아.



그리고 자전거 바구니에 가방을 놓고 타려는데,

요시노「이걸 타고 가려는 것인지ー?」

나오「응? 그런데……」

그런데 요시노는 어떻게 데려가야 하는 거지.
유령같이 둥둥 떠서 붙어 오는 건가.
아니, 그건 시각적으로 섬뜩하니까 왠지 싫어.

어쩌지, 하고 생각하고 있자니 요시노가 자전거 앞바퀴를 올라서는 바구니에 쏙 하고 들어갔어.

나오「잠깐, 야! 내 가방 깔아뭉개지 마!」

요시노「괜찮ー, 가방이 망가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에ー」

그야 그렇겠지만 말이지……

나오「……뭐, 괜찮겠지. 떨어지지 마」

요시노를 바구니에 태우고 난 출발했어.
바로 앞에 요시노의 뒤통수가 보여.
앞은 보이니까 위험하진 않겠지만, 뭔가 이상한 기분이야.

그러고 보니까 옛날에 봤던 영화에서 비슷한 씬이 있었어.
그건 확실히 외계인을 태우고 자전거로 하늘을 나는 거였지.
신비적이고 로맨틱하지만, 만약 지금 요시노가 그런다고 생각하면 역시 무서워.
그야, 높은 곳 싫어하는걸.

나와 요시노를 태운 자전거는 그런 우주적인 신비같은 건 모르는 듯 태평히 내리막길로 나아갔어.




카미야 나오「요시노 님한테 혼날 테니까」(2)에서 계속...



 

역자 후기

밀린 장편번역 대신 레알 카미사마 신성 요시노님을 드리겟슴니다.

요시노님의 데시테-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 감이 안 와서, 삘 오는 대로 적당히 집어넣었습니다.
이건 "하건대"도, "할진대"도, "하오니"도, "하기에"도 다 안 어울려...

5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