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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신데렐라 스토리즈 7. Sing in the summer (1/2)

댓글: 4 / 조회: 2185 / 추천: 0



본문 - 12-10, 2015 00:32에 작성됨.

여름햇살―

그렇게나 떠들썩했던 도심거리가 거짓말 같이 조용해지는 계절.

항상 만원이었던 전철에도 앉을 수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다.

하지만 자동개찰구를 빠져나와 회사로 향하는 길은 항상 다름없다.

그녀는 소프트케이스에 넣은 기타를 매고 걷고 있다.

이날도 아침부터 햇살이 강한 게 한낮엔 매우 더워지겠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발걸음은 가볍다.

정문현관은 닫혀있는 탓에 뒷문으로 들어간다.

경비실에서 간단히 수속을 거친 뒤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당연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고요한 로비에서 내 발걸음소리만이 울린다.

익숙한 장소인데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항상 언급하는 프로젝트 룸으로 향하자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노크한 후 방으로 들어간다.

거기엔 이젠 익숙한 커다란 남자가 한 명.

“오, 자기. 일에 여전히 열심인데.”

남자는 컴퓨터에 마주 앉아 뭔가 일을 하고 있다.

그녀의 미래를 좌우할 일이다.

“키무라 양, 안녕하세요.”

“안녕하셔. 그럼 난 갈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아. 한 번 뿐인 인생, 후회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왼쪽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Sing in the summer

 

 

 

 

 

8월 후반.

섬머페스를 마친 346프로덕션은 약간 늦은 오봉야스미를 맞이했다. ※일본은 양력 8월 15일을 사이로 중추절연휴가 있음.

그 때문에 일부 사원이나 아이돌을 제외하고 많은 관계자가 귀성하고 있었다.

그건 나츠키 들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후미카는 부모님 본가가 있는 나가노로, 아리스는 할아버지가 계신 효고로 갔다.

하지만 나츠키는 본가에 가지 않았다.

가을에 맞이하는 데뷔를 대비하여 신곡을 연습하기 위해서이다.

노래나 댄스뿐만 아닌 나츠키 본인의 희망에 따라 기타파트도 녹음한다.

그 때문에 그녀는 기타연습에 여념이 없다.

또한 신인 록페스티벌 참가도 검토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앞으로 서서히 바빠지게 된다.

지금 시간 있을 때 가능한 만큼 연습을 거듭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나츠키가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들 모르는 곡을 연주할 리 없다.

누구보다도 재능을 타고난 만큼 누구보다 노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것이 키무라 나츠키인 것이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꽤 타이트한 스케줄을 치르게 된 것을 나츠키는 적극적으로 스케줄을 받아들였다.

그저 단순히 오봉 때 본가에 돌아가지 않는 것만이 아닌 앞으로 이어질 많은 시련에도 도전해 나갈 것.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길이었다.

“흐응. 꽤 괜찮네.”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기타 조율(튜닝)을 반복한다.

아마추어시대는 일부러 돈을 내고 스튜디오를 빌려 연습이나 녹음을 했었지만, 지금은 무료로 방음시설도 갖춰진 연습장을 쓸 수 있다.

뭐든 돈이 들어간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연습에 열중하게 된다.

왼손잡이용 기타를 치며 하나하나 음을 확인해간다.

‘움직임이 안 좋아, 한 번 더.’

대부분의 음악이면 두, 세 번 듣는 것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나츠키이긴 하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악보를 숙독, 데모테이프도 반복해서 듣는다.

자신의 피부가, 살이, 뼈가, 그리고 혈액이.

모두 음악과 일체될 수 있도록.

에어컨이 틀어져있음에도 상관없이 땀이 흩날려 바닥이나 악보에도 튀긴다.

‘좋아. 잘 움직여지기 시작했어.’

그녀에게 있어 음악은 삶의 모든 것이라고 자부해도 좋다.

쉬는 시간만 생기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밴드에선 보컬은 아니었지만 노래나 춤도 싫진 않다.

단순히 부르고 춤추는 아이돌이라면 수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악기연주를 해내면서 무엇보다 자신밖에 낼 수 없는 음색을 내는 아이돌이 되자.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맹세한 약속이기도하다.

‘자기. 너하고 끝까지 갈 거야.’

음악, 그건 그녀에겐 살아가는 증거이기도 하며 에너지이기도 하다.

 

 

*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연습실 입구에 와이셔츠차림을 한 프로듀서가 서있었다.

“뭐야 자기, 사무소에 도둑이라도 들어왔어?”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하며 나츠키가 물었다.

“슬슬 점심시간이라서 말이지요.”

“응?”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를 넘고 있었다.

아직 이다.

기타를 치고 있으면 그만 시간을 잊어버리고 만다.

안 좋은 버릇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만둘 수 없다.

나츠키는 기타를 내려두고 가까이 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괜찮으십니까?”

그런 나츠키에게 프로듀서가 말을 건다.

“괜찮다니, 뭐가?”

“아뇨, 가을부터 스케줄간격이 꽤 좁습니다. 벌써부터 무리하고 계신 게 아닌지, 하고 생각해서요.”

“딱히 무리같은 거 없다니까. 너무 신경 쓴다, 자기.”

“하지만 오늘도 계속 연습만 하시고.”

“난 음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예.”

“나 좀 더 신뢰해도 되잖아?”

“신뢰…….”

“난 자기가 발견한 신데렐라라고.”

“…….”

“농담이야. 뭐 신데렐라라고 하면 보통 아리스나 후미카를 연상하겠지. 난 마차 끄는 말에 간신히 속하기나 할까?”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어?”

“키무라 양. 당신도, 제게 있어선 신데렐라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멍칭아. 그런 걸 진지하게 얘기하지 마라니까. 부끄러워.”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마. 좀 기뻤어. 그보다 말이야.”

“예”

“자기 벌써 밥 먹었어?”

“아뇨, 이제 먹어야합니다.”

“어디서 먹어?”

“오늘은 회사식당도 쉬기 때문에 편의점도시락이라도 사올까 하고요.”

“그럼 말이야, 잠깐 기다려봐.”

“예…….”

 

 

그 후 탱크톱셔츠에 파카를 입은 나츠키는 천보자기를 들고 프로젝트 룸에 등장했다.

“저기 말이야, 오늘 도시락 싸왔거든. 같이 먹자.”

“제 것도 있는 겁니까?”

프로듀서가 난감해하면서 말했다.

“달리 누가 있겠어. 아침에 말하는 걸 깜빡했을 뿐이야.”

그러면서 나츠키는 도시락상자를 두 개 꺼낸다.

조금 두근거렸다.

잘 생각해보니 남에게 도시락 싸주는 건 이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키무라 양이 만드셨습니까?”

컵에 보리차를 따르며 그가 물었다.

“여기서 누가 만들겠어? 중학교졸업하고서부턴 자취했으니까 도시락 같은 것도 나름 만들 줄 알게 됐어.”

“그렇습니까.”

“뭐 도시락 싸서 점심식사비를 아껴서 그 돈으로 악보나 기타를 산 것도 있었지만 말이지. 바이트 월급만으로는 왠지 불안하기도 하고.”

“고생하셨군요.”

“아니 딱히 고생까진 아니고. 은근 즐겁기도 했으니까. 뭐 요리도 음악도, 근본적인 부분은 같다고 보거든.”

“같다고요?”

“봐봐. 음악은 음의 조합이잖아? 요리는 맛이라든가 씹힘 등의 조합. 그것을 맛있다든가 잘한다든가 판단하는 거니까.”

“재밌는 생각이시군요.”

“그래?”

“(도시락)안을 봐도 되겠습니까?”

“응.”

조금 부끄러웠지만 프로듀서는 정중하게 도시락상자의 뚜껑을 연다.

안에는 달걀말이나 자그마하게 잘라진 햄버그가 들어있었다.

“의외로 귀여운 도시락이네요.”

“뭐야 자기. 내가 귀여운 도시락 만들면 안 된다는 거야?”

“아뇨, 딱히 그런 말이 아니고요.”

“뭐 나도 이런 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은 하는데 말이야.”

“절대 안 어울릴 리 없다고 봅니다. 그저 조금 의외여서요.”

필사적인 얼굴로 해명하는 그의 얼굴을 보자 재밌었다.

“그럼, 먹자.”

“잘 먹겠습니다.”

커다란 프로듀서와 비교하여 나츠키가 갖고 온 도시락상자는 약간 작게 보인다.

그런 작은 도시락상자를 정성스레 들어 먹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 매우 귀엽게 느껴졌다.

“…….”

말없이 음식을 씹고 있는 프로듀서.

나츠키는 어때, 라고 묻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자기 도시락을 먹는다.

맛은, 나쁘지 않을 터다.

“키무라 양.”

“네!”

갑자기 말을 걸었기 때문에 그만 정중히 대답하고 말았다.

“저기……. 매우, 맛있습니다.”

“…….”

“키무라 양?”

“ㅇ,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예.”

“왠지 말이야, 그런 식으로 들은 게 처음이라 조금 익숙하지 않다고.”

“그렇습니까?”

“흐응.”

나츠키는 부끄러워하며 자기 도시락을 먹는다.

맛도 나쁘지 않게, 영양밸런스도 일단 생각해서 만들었다.

한 번 외식만 하다가 건강을 망가뜨린 적이 있어서 그 이후엔 식사할 땐 조심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음악만 생각하는 나츠키였지만 집에서 요리하기 시작하면서는 매우 기분전환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밴드동료나 친구에게도 요리를 접대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땐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야, 오늘은 어째서 약간 두근거린 걸까?’

나츠키는 자기감정을 망설이면서도 행복한 기분에 잠겨있었다.

“아까 키무라 양이 음악과 요리는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지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응? 아. 그게 어쨌는데?”

“아뇨 그게……. 키무라 양께서 맞추신 간은, 당신이 하시는 음악과 닮아있는 게 매우 다정한 느낌이 듭니다.”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읊는 그의 말이 나츠키 뺨을 꽤 뜨겁게 달구어버린 모양이다.

“ㅂ, 바보 같은 말 하지 마, 정말.”

“그런가요?”

“진짜. 무슨 말하는 거래.”

오늘은 왠지 페이스가 이상하다.

그리 생각은 했으나 결코 기분 나쁜 건 아니었다.

“자기.”

“예.”

“혹시 괜찮으면, 앞으로 자기한테―”

<<∼♪>>

저 부분까지 말하는 쯤에 나츠키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계속 로커에 넣어놨었기 때문에 매너모드로 해놓지 않은 탓이다.

“아, 누구야 도대체.”

화면을 보자 아리스가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세요? 연습 힘내세요.’

아리스다운 정중한 문장이었다.

그걸 보고 약간 웃음이 터진다.

“왜 그러십니까?”

그 모양을 본 프로듀서가 물었다.

“아니, 아리스가 문자 보냈어. 힘내라는데.”

그러면서 핸드폰 화면을 스크롤하니 ‘추신’이라고 써져있었다.

‘프로듀서 씨는 식사는 잘 하고 계신가요? 그 사람은 일에 빠져들면 먹는 것도 잊어버릴 거 같아 걱정돼요. 야채도 제대로 먹어달라고 말해주세요.’

‘추신이 더 길잖아. 뭐하는 거야 아리스.’

나츠키는 아리스가 보낸 문자를 보며 쓴웃음을 지으면서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

“저기, 키무라 양…….”

고개를 들자 프로듀서가 뭔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자기. 화장실 가려고?”

“아뇨, 그런 게 아니고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일어서 어딘가로 갔다.

그리고 잠시 흘러 돌아오자 양손에는 종이상자를 조심히 들고 있었다.

“그거 뭐야?”

우락부락한 커다란 남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디자인의 상자다.

“그게, 약간 이릅니다만.”

“어?”

그건 초코케이크였다.

게다가 귀엽다. 홀 케이크가 아닌 쇼트케이크 스타일이었지만, 절대 싼 게 아니란 걸 바로 알았다.

“회사냉장고에 차갑게 해놓았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아뇨, 키무라 양의 생일이여서요.”

“아~”

“8월 19일은 나츠키의 생일이다.

허나 나츠키 본인도 데뷔 생각에 몰두하여 잊고 있었다.

“ㄱ, 기억하고 있었어?”

“타치바나 양에게 생일선물을 주고, 키무라 양에게는 아무 것도 안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자기 의리 넘치네. 뭐 됐어, 고마워. 기뻐 이런 거.”

“단 거 좋아하십니까?”

“어. 이래 보여도 단 건 엄청 좋아해. 나도 여자니까.”

자기가 말해놓고 약간 부끄러워지는 나츠키.

“그리고 이것을.”

그러고서 그는 작은 상자를 꺼낸다.

“이건.”

가늘고 긴 상자를 열자 작은 목걸이가 들어있던 것이다.

“지인가게에서 만들었습니다. 절대 비싼 건 아니므로 걱정 마시고 쓰십시오.”

상자에서 꺼내들어 보니 가는 사슬 끝에 금색 기타 모양을 한 장식이 붙어있었다.

“쩌는데? 펜더 기타야.”

자세히 보니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있다.

“키무라 양을 여러모로 생각해보고, 결정한 것입니다만…….”

“후후, 기뻐. 고마워 프로듀서.”

“음…….”

나츠키가 한 말에 그는 안심한 모습으로 웃음 짓는다.

“맞다, 자기. 낮부터는 보컬레슨 좀 하려고 하거든? 같이 좀 봐줄래?”

“보컬레슨에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요.”

“모처럼 자기가 선물도 준 겸 보답 좀 하려고 말이야.”

나츠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약간 웃었다.

 

 

*

 

 

오전 중에 사용했던 일렉트릭기타는 일단 놓아두고 통기타를 꺼내어 조율(튜닝)했다.

“키무라 양, 도대체 무엇을…….”

난감해하는 프로듀서에게 나츠키가 말한다.

“지금부터 아주 잠깐 라이브를 열려고 해. 하지만 관객이 없음 쓸쓸하잖아? 자기가 내 관객이 되었음 싶어서.”

“라이브 관객 말입니까?”

그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다.

단 한 명밖에 없는 관객이라니, 보통 라이브에선 생각할 수 없다.

단 길거리공연이라면 다르다.

“자기. 내 원점은 길거리공연이야. 나와 넌 길(스트리트)에서 만났어. CD데뷔가 시작이 아냐. 어디까지나 스트리트가 내 시작이라고.”

“…….”

“뭐 여긴 길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지. 오늘 길거리는 뜨겁잖아? 그래서 여기서 라이브를 열려고 해. OK?”

“예.”

“그럼 들어줘. 네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곡,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곡. 오늘은 부르고 싶어.”

‘자기를 위해서 말이지.’

그 생각한 것만큼은 쑥스러워서 말로 꺼낼 수 없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날만큼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조율한 기타를 치며 이제 막 외운 노래를 부른다.

심박수가 상승하고 혈액과 아드레날린과, 그리고 비트가 체내를 달린다.

지금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감정.

그리고 앞으로 소리로 표현할 미래를 향한 마음.

많은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음악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른다. 그저 그녀한테는 음악이 있고, 그리고 음악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질리지도 않게 매일매일, 음악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여태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돌이라는 필드에서 활동하는 것에 불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불안감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마저 사랑스럽다.

눈앞에 있는 남자와, 함께 걸을 수 있다면.

‘내 마음, 전해져라.’

몇 분이 지났을까.

5분정도라고도, 혹은 1시간정도 지났다고 느껴진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목소리를 높였다.

기타파트는 연습해놨지만 목은 풀지 않았던 관계로 약간 목이 아팠다.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워밍업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라이브 끝을 맞이한 프로듀서는 조용하게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매우 훌륭한 곡이었습니다.”

“영혼에 전해졌어?”

“예.”

“그럼 다행이네.”

나츠키가 프로듀서한테 수건을 받으면서 말했다.

“함께 열심히 합시다.”

“말할 필요도 없잖아.”

그러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연습실 문이 열렸다.

“이런 곳에 있었어요?”

“아리스?!”

하얀 원피스를 입은 타치바나 아리스가 들어왔다.

“너 뭐하는 거야. 효고에 가지 않았어?”

“할아버지한테는 벌써 인사를 마쳐서요, 오늘 낮에 도쿄로 돌아왔어요.”

“뭐야. 좀 더 느긋하게 있다 오지 그랬어.”

“둘이서 재밌게 보내려고요? 나츠키 언니.”

“ㄸ, 딱히 그런 게 아니고.”

“타치바나 양. 어째서 회사(이곳)에 오신 겁니까?”

프로듀서가 사이를 비집듯 물었다.

“아뇨 그냥. 좀 걱정되어서였을 뿐이에요. 둘 다 곧잘 무리하는 분들이니까요.”

“그렇게 무리 안 하거든?.”

나츠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결혼식장에서 어느 영예분의 보디가드를 때린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 땐 어쩔 수 없던 거 알잖아?”

이렇게 얘기해도 이 아이도 프로듀서를 걱정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하자 나츠키는 조금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 때였다.

“?!”

벗고 바닥에 놓아둔 나츠키의 파카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문자가 아닌 전화였다.

“아, 미안해.”

“아뇨 괜찮습니다.”

연습실에서 핸드폰을 쓰면 트레이너가 야단을 치겠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눈치 볼 필요도 없다.

화면을 보자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이름이 보였다.

“여보세요?”

돌아갈 때 무슨 선물이 좋은지 물어보려는 걸까, 등을 생각하며 나츠키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ㅇ, 여보세요 나츠키 쨩?’

“왜 그래?”

목소리 톤을 듣고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어디야?”

‘나가노 집에 있는데……. 그게, 나…….’

“후미카?”

‘나, 아이돌 그만둬야할 것 같아…….’

“야, 무슨 말인데!”

나츠키가 지른 고함에 가까이 있던 둘은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았다.

연습실에 긴장감이 감돈다.

 

 

*

 

 

나가노 현 사기카와 정―

나가노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그 마을은, 인구 약 1만 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그 마을에 있는 사기사와 가(家), 즉 후미카네 본가는 그 지역에서 유명한 가문이라고 한다.

“즉 후미카가 한 말을 정리하자면, 아버지한테 아이돌활동을 하는 걸 들켜서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격노하고 도쿄에 돌아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는 거로군.”

후미카가 전화한 다음날, 나츠키 일행은 프로듀서가 운전하는 자동차(회사차)를 타고 후미카네 본가가 있는 나가노 현에 도착했다.

나가노 현에 온 것은 나츠키와 프로듀서, 그리고 아리스도 같이 왔다.

안 와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떼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아리스도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후미카 부모님께는 말씀 안 드렸었어?”

“예. 하숙집에 계시는 숙부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후미카네 삼촌하고 자기랑 아는 사이였지?”

“예.”

“하지만 언젠가는 인사드려야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 저희 집 같이요.”

뒷좌석에 앉은 아리스가 말했다.

분명 그는 아리스네 어머니하고 인사를 마친 상태였다.

“분명 맞는 말씀입니다. 데뷔가 결정된 단계에서 정식적으로 인사드리려고 했었습니다.”

“확실히 우리들은 아직 데뷔한 게 아니라서 진짜 아이돌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나츠키가 말한다.

“하지만 잡지에 게재되는 바람에 들켜버린 거네요.”

아리스가 그렇게 말하며 예의 결혼잡지를 꺼내든다.

거기엔 웨딩드레스차림인 후미카와, 얼굴은 가려졌으나 체격을 보고 확연히 프로듀서라는 걸 알 수 있는 남성모델이 보였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격노했다는 거야?”

“어머님께서는 나름대로 이해해주셨습니다만…….”

“고집불통아버지와 대립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긴 한데…….”

침울한 분위기가 차내를 배회한다.

“…….”

“뭐 심각하게 생각해도 바뀌는 건 없잖아? 정신 차리자고.”

나츠키가 그렇게 말하며 모두에게 용기를 북돋으려한다.

“키무라 양, 죄송합니다.”

“왜 사과하는데, 자기.”

“데뷔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에 휩쓸리게 하고 말아서요.”

“뭐라는 거야. 이제 와서 그런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

“맞아요. 우리들은 동료니까요, 서로 도와야죠.”

“여러분…….”

“게다가 후미카 언니가 아이돌을 그만 두면 엄청 슬플 거예요.”

“타치바나 양.”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호를 대기하던 도중 프로듀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

 

 

“우와~ 큰데?”

후미카네 본가를 본 나츠키 일행은 동시에 한숨을 짓는다.

그 지역의 명가답게 넓은 단지에 잘 정비된 정원이 보인다.

집 주변에는 높고 하얀 벽이 빙그르르 둘러져있었다.

안에 들어가자 커다란 현관이 보인다.

차임 버튼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눌러보니 몇 초 지나자 누군가 집 안에서 나왔다.

나이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후미카네 어머니인가 했지만 그리 닮지 않다.

“저기, 346 프로덕션에서……, 온 사람입니다. 사기사와 후미카 양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그러면서 프로듀서가 자기소개를 하자,

“아, 346에서 오신 분. 네, 얘기는 들었어요. 지금 사모님을 모셔올게요.”

‘사모님?’

나츠키가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여성은 후미카네 어머니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른 뒤 프로듀서 일행은 또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다다미 향기가 나는 손님방이다.

아까 그 여성이 차를 가져다주었다.

“바로 오실 거예요.”

여성이 그리 말하자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셨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후미카?’

순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분위기가 닮은 여성이 들어왔다.

후미카보다 약간 키가 작고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거기 있던 건 틀림없이 후미카와 쏙 빼닮은 여성이었다.

“후미카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나츠키 일행 세 명 앞에 앉은 여성이 그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아까 그녀들을 맞이해준 여성은 이 집 도우미라고 한다.

나츠키는 가정부를 채용한 집을 처음 봤다.

지금 일본에선 사라진지 오래잖아, 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소동을 일으켜 매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정식데뷔이후 전달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조금 더 빨리 말씀드릴 걸 그랬습니다.”

프로듀서가 그러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뇨, 괜찮아요. 고개 들어주세요. 애초에 잘못한 건 이쪽이니까요.”

“예?”

“저는 저희 애한테 여러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이돌이 된다는 것도, 여러 사람과 만났다는 것도요.”

“…….”

“저는, 숨기 바빴던 저희 아이가 자신이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게 기뻤고요 딱히 반대하진 않았어요.”

“…….”

“하지만 그이는 반대했어요.”

“그이라고 하자면 역시나.”

“후미카의 아버지, 즉 제 남편이에요.”

“…….”

“제 남편은 외동딸인 후미카를 엄청 귀여워했어요. 딸이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갈 때도 반대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도련님 집에 하숙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찬성했어요. 그렇지만 딸이 아이돌이 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격노했다는 모양이에요.”

프로듀서는 조용히 후미카네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기 보다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나츠키 자신도 이 때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남편은 대대로 이어진 사기사와 가를 지키는 걸 제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를 위해선 우수한 사위를 맞이하는 게 중요. 예능업계에 들어가면, 그게 불가능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프로듀서가 입을 열었다.

“네.”

“그럼 따님의, 후미카 양의 생각은 어떤가요?”

“물론 저도 딸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싶어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던 것도 찬성했었죠.”

“그럼 아이돌은…….”

“그것도 찬성하고 싶어요. 단 남편은 이 이상 멋대로 행동하는 걸 용서해주지 않겠지만요.”

“멋대로…….”

나츠키는 그만 주먹을 쥐고 만다.

후미카가 아이돌이 된 것을 단순히 멋대로 행동하는 거라고 말할 셈인가?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들고 싶어서 아이돌을 목표하는 건데.

“아버님과는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지역 정치가 분하고 만남이 있어서요, 저녁쯤 돌아올 거라고 봐요.”

“그럼 따님과 대화를 나눌 순 없겠습니까? 그녀의 의지를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딸은 그게……. 여기 없어요.”

“예?”

“친척집에 맡겨놨어요. 여기서 1킬로미터 떨어진 장소에 있는 집이고요.”

“어째서 그곳에?”

“도쿄 사무소에 소속한 자가 찾아와서 괜한 설득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라고 남편이 말하면서 데리고 갔어요.”

“그거 감금이잖아.”

그만 말을 꺼내는 나츠키.

‘이 녀석들, 후미카를 자기에게 안 넘길 작정이야.’

오늘 아침부터 후미카의 휴대전화를 끊어놓은 건 그 때문인 건가, 하고 나츠키가 생각했다.

“장소는, 어딥니까?”

프로듀서가 물었다.

평소 같으면 알려줄 리 없다.

딸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멀리 떨어진 집에 가둬놓은 거니까.

하지만 후미카네 어머니는 세로로 두 번 접은 한 장의 종이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이것은.”

“후미카가 있는 장소를 적은 지도에요.”

“어째서 이것을?”

“전 그 사람을 저항할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후미카는 가능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설령 젊을 때만이라도 말이지요.”

“…….”

“하지만 본인이 이제 하기 싫다, 고 말하면 강제적으로 이어가게 하진 말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약속하지요.”

“잘 부탁드려요.”

프로듀서는 종이를 받고 일어섰다.

“가자 자기. 사로잡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거야.”

“예.”

그가 강하게 끄덕였다.

 

 

*

 

 

나츠키 일행은 사기사와 가 친척 집까지 차로 이동했다.

후미카네 본가 정도는 아니지만 그 집도 꽤 커다랗다.

“역시 사기사와 가는 명가였나 봐…….”

나츠키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아, 누가 있어요.”

아리스가 정문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응?”

보자 문 앞에는 지역에 사는 젊은이인 것 같은 남자가 두 명 서있었다.

마치 문지기 같다.

이 시대에 문지기가 있나, 하고 나츠키가 약간 놀란다.

“실례합니다. 여기에 사기사와 후미카 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런 남자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건다.

“뭐야 너……?”

“아가씨에게 볼일이라도 있어?”

외견도 험상궂지만, 말투도 그리 좋지 않다.

“프로듀서, 괜찮을까.”

그의 뒤에서 아리스가 걱정하는 듯 중얼거렸다.

“괜찮아. 자기를 믿자.”

나츠키는 그런 아리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여기에 사기사와 후미카 양이 있을 겁니다만.”

“그럼 어쩔 건데?”

“전 346 프로덕션에 소속한 프로듀서이고, 사기사와 후미카 양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러 왔습니다. 여기 있다면 만나게 해주십시오.”

“당주님이 아가씨를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어. 물러가지 않을래?”

“반드시 만나야만 합니다.”

“안 돼.”

“꼭 만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안 된다고 했잖아!”

금방이라도 싸움을 걸 것 같은 남자가 프로듀서에게 얼굴을 가까이 댄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체격에서 우월한 프로듀서는 더욱 거리를 좁힌다.

“부탁입니다. 사기사와 후미카 양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안 된다고 했잖아! 얘기를 들어 좀!”

그러는 동안 집안에서 남자 몇 명이 나왔다.

“야, 뭔데?”

“이 녀석이야. 346의 남자가 왔어.”

“346? 절대로 보내지 마.”

다른 남자가 강하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조금만이라도 대화를.”

“끈질기네, 정말!”

말을 끊은 나츠키가 프로듀서 앞으로 뛰어든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잖아!”

“뭐야 이 계집은.”

그러면서 남자가 나츠키를 째려본다.

“다 큰 여자애를 이런 장소에 가둬놓고 부끄럽지도 않냐?!”

“우리들은 당주님의 명령으로.”

“뭐가 당주님인데. 언제쩍 시대냐! 촌스러워.”

“뭐라고 이 X이…….”

“야, 멈춰!”

“시끄러워!!”

열 받은 남자 한 명이 바로 나츠키에게 손을 뻗는다.

“!!”

하지만 그 손은 나츠키를 건드릴 수 없었다.

“……우리 아이돌한테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프로듀서가 남자의 팔을 잡았기 때문이다.

“아야야야야!!! 뭔 힘이 이렇게 세!”

팔을 잡힌 남자가 눈물방울을 흘리면서 팔을 붙잡는다.

결국 팔을 놔준 프로듀서는 나츠키를 감싸듯 하면서 말했다.

“한 번 더 말하겠습니다. 사기사와 후미카 양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형씨 잠깐만 기다려줄래?”

“?”

저택 안에서 리더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등장했다.

“당신은.”

“야마모토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사기사와 가를 모셔왔다. 지금도 사기사와계열회사에서 일하고 있지.”

“후미카 양과 만나고 싶습니다만.”

“기분은 압니다. 여긴 사모님이 알려주셨겠죠.”

“예.”

“하지만 우리들도 당주님 명령은 거역할 수 없어.”

“…….”

“사기카와 정(이곳)에선 사기사와 가를 거역해선 살 수 없어. 부디 물러나주길 바란다.”

“하지만…….”

“부탁입니다!”

그러면서 야마모토라고 이름을 밝힌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야, 너희들도 부탁해!”

“ㅇ, 예. 부탁드립니다.”

남자의 명령에 모두가 고개를 숙인다.

“……알겠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 터라 프로듀서도 이 이상 무리를 강행할 기분이 나지 않은 모양이다.

 

 

*

 

 

후미카가 있는 저택에서 일단 물러난 프로듀서 일행은 작전회의 겸 근처 정식집을 찾았다.

TV를 보니 코시미즈 사치코의 얼굴에 문어가 달라붙은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까 미안했어, 자기. 후미카를 생각하다보니 그만 열 받고 말아서 말이지.”

“아뇨. 저도 잠시 냉정을 잃었습니다.”

정식집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주눅들어봤자 소용없어요. 후미카 언니를 되찾을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죠.”

그렇게 말한 건 아리스다.

“되찾으려면 어떡하면 좋을까. 그 저택에는 후미카네 아버지가 풀어놓은 아저씨들이 있는데.”

“사기사와 가요, 의외로 대단한 집안인가 봐요.”

“뭐 시골엔 그런 대지주적인 집이 보면 있잖아.”

“무슨 대화를 나누시나요?”

“엑?”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었기에 세 명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주문 받으려고 하는데요.”

목소리의 주인을 보자 50대 정도로 보이는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쓴웃음 짓고 있었다.

“아뇨, 실례하겠습니다.”

세 명은 일단 주문을 한다.

A런치라고 하는 게 빨리 나오는 듯해서 모두 그걸 주문했다.

“그런데 손님 분들께서는 이곳 분이 아니신 것 같네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그, 도쿄에서 왔습니다.”

프로듀서가 정중히 대답했다.

“그런가요? 이곳 먼 곳까지 일부러 오실 줄은. 혹시 ‘사기카와 마쓰리’를 보러 오신 건가요?”

“사기카와 마쓰리?”

“아, 모르시나보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시골에서 열리는 이벤트니까요.”

“어떤 이벤트입니까?”

“음 그게, 그거에요. 매년 이 시기 때 열리는 축제에요. 다른 지역말로 하면 오봉도리대회 같은 거겠네요.”

“예.”

점원이 바라본 곳엔 ‘사기카와 마쓰리’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옛날엔 유명한 가수도 부르고 크게 열었던 모양이지만요, 사기카와의 인구도 줄어서 최근엔 축소지향으로 여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조금 있으면 사라질 지도 몰라요. 전 어릴 적부터 계속 즐겨 와서 없어지면 좀 쓸쓸하겠지만 시대의 흐름을 이길 순 없으니까요.”

“예…….”

“아, 실례했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얘기가 길어진 걸 자각한 건지 점원은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보통 패밀리레스토랑 같은 곳에선 지인이 아닌 한 점원이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세 명은 약간 놀라고 말았다.

이게 시골이구나, 라고.

“뭐, 축제도 좋은데 지금은 후미카가 우선이야.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나츠키가 찬물을 마시며 말했다.

“그래야죠.”

“…….”

나츠키가 한 말에 아리스와 프로듀서는 반응이 크지 않다.

“지금은 그거야, 닌자 같이 그 저택에 살며시 숨어들어서 후미카를 구출한다든가.”

“ㄹ, 루팡 3세 같아요.”

나츠키가 한 말에 아리스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건 불법침입입니다. 범죄에요.”

프로듀서는 지극히 당연한 태클을 건다.

“뭐야 자기. 그럼 어떻게 하라고.”

“역시 여기선 혼마루를 노려야할 것 같습니다.”

“혼마루, 말인가요?” ※간단히 말해 성이나 저택의 본관 같은 것.

“사기사와 양 아버님과 직접 담판 짓겠습니다.”

“괜찮을까? 베이는 거 아냐?”

나츠키가 약간 농담조로 얘기해 본다. 하지만 내심으론 정말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나름 걱정도 들었다.

“역시 그 정도까진 아닐 거라고 봅니다만…….”

후미카나 어머니가 한 말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예능업계에 들이는 걸 강경하게 반대한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설득하기 힘들 것이다.

“기다리셨습니다.”

잠시 지나자 아까 그 여성점원이 런치를 들고 왔다.

약간 늦은 점심을 먹는 세 명.

“아, 미안해요.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츠키가 런치를 다 옮긴 점원에게 물었다.

“네, 뭐죠?”

“아주머니도 사기사와 가를 잘 알아요?”

“엑? 사기사와 댁 말인가요? 그거야 알지요.”

“유명해요?”

“뭐 현재 사기카와 거리는 사기사와 가로 이루어졌다고 봐도 되니까요.”

“네?”

“이 마을엔 사기사와 당주님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가 몇 개 있어서,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사기사와하고 연을 맺고 있어.”

“호오…….”

“옛날에는 사기사와 이외에도 여러 가게나 회사가 있었지만 저출산 문제나 고령화의 영향으로 하나하나 물러났어. 그 가운데 계속 이 마을에서 경영하고 있는 사기사와 회사는 마을에게는 마지막 생명선이라고 봐도 될 걸.”

“그런가요.”

‘그런 가문의 외동딸이었냐. 그렇다면 후미카가 사실 엄청난 집안출신인 아가씨란 말인 거잖아? 괜찮을까?’

지역주민의 말을 듣고 불안해지는 나츠키.

하지만 프로듀서는 딱히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런치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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