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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채색의 빛 - 22. 나에게 꽃을, 초승달엔 유성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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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2, 2015 12:44에 작성됨.

극채색의 빛 - 22. 나에게 꽃을, 초승달엔 유성을

 



나에게는 이름 모를 꽃이 있고, 빛도 물도 주지 않는데 언제까지고 시들려고 하지 않는다.
뻗친 뿌리는 너무나도 넓고 깊어서 어느 순간에 고개를 들려고 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지 집착이라고 부를지 추악함이라고 부를지 동경이라고 부를지, 나에게는 모른다.
공동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그저 매일 기도한다.
시들어라, 시들어줘.


겸사로 커피를 들고 갔을때, 그는 자고 있었다.
피곤했던거겠지, 의자에 깊게 앉은 그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보였다.
나는 그저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하는것도 아니고 키스도 못하고 끌어안지도 못하는 나는, 그저 빤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섣부르게 만지면 그를 상처입혀버릴것 같아서 무서웠다. 무언가를 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의 안에 눈물이 솟아오른다. 그저 몇 십센티의 거리, 그마저도 죄가 깊게 느꼈다.
그래도 몸은 멋대로 움직인다. 허리에 감은 가디건을 집어 그에게 살짝 덮어준다.
위선이다. 이런걸 해서 뭐가 되나. 그렇게 묻는 목소리에 그러게, 하고 끄덕인다.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의 아이돌로 있고 싶었다.
그런데.

몸이, 빨려들어가듯이 그에게 기운다.
살짝 가까이한 그의 머리카락은 어른 남자의 냄새가 났다. 저도 모르게 만진 눈꺼풀은 얇았다.
그대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작게 이름을 부른다. 나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는 이름.
한 방울만 눈물이 흐르는것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끝나버린 사랑. 빨리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 그런데.

꽃은 아직 시들 수 없다.


          ※


뛰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내내 뛰고 싶었다. 멈추는게 무서웠다.
일을 하고, 레슨을 하고, 뭐든 좋으니까 예정을 좁히며, 달린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돌아와버릴것 같아서 무서웠다. 시들지 않는 꽃을 떠올릴것 같았다.

지쳐 허덕이는 나는 더는 생각하는것도 느끼는것도 사랑을 하는것도 많았다.
아무것도 아닌 나로 있고 싶었다. 아이돌인, 우상인 나. 그것만으로 있고 싶었다.
진짜 나는 아주 많아서, 노래나 연기나 카메라 상대를 하는 텅 비어버린 나라도 괜찮다면, 줄곧 그대로 있고 싶었다.

그러니까 뛰었다.
일이 없을때는 계속 뛰었다.
뛰고 있을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하며 다친 다리를 분하게 생각한다.
다친 직후도, 그 후의 악수회도. 그 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러니까 후회는 없다. 하지만, 생각한다.
만약 그때, 좀 더 제대로 춤췄다면? 스텝할때, 이상한 각도로 다리를 내렸을지도 모르는, 턴할때 축이 흔들렸을지도 모르는, 그런 피로가 부츠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것만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뛰고 있었을텐데.
마음만 애가 타서 멈출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홋카이도 스테이지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자신을 몰아붙여야 할 일을 찾은 나는, 결국 트레이닝 룸에 도착했다. 트레이너에게 상처 사정과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의 나라도써도 되는 기구를 물었다. 최근 기구는 단련해야하는것 마라고도 부담이 가지 않는것이 많은 모양이라, 생각했던것보다 내가 쓸 수 있는 기구는 많았다.

그리고나서는 일의 쉬는 시간에는 항상 트레이닝 룸에 있었다.
ㅁ모을 몰아붙이고 있을때는 무언가를 잊을 수 있었다. 꽃의 이름도, 나도.
프로듀서는 몇 번인가 그런 나를 보러 왔던 모양이다. 때때로 기구 옆에 물병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으므로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야한다며 잠깐 생각할 뿐이었다. 그것이 실행된 적은 없었지만.

귀가길의 우리는 역시 말이 없고, 이따끔 걸려오는 전화를 그는 더 이상 내 앞에선 받지 않고 있었다.
아마 그건 단 한번, 그가 보여준 사적인 장면에서의 빈틈이었겠지. 다른 누군가의 앞에서 그것이 찾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는 반면, 왜 내가 그런 통화를 들어야만 했던걸까 생각한다.
차 안에서 그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은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주문처럼 외우며 빨리 집에 도착하기를 빈다. 시들어라, 빨리 시들어라, 하고.
아름다운 감정도 더러운 집착도 무색투명한 무언가도 전부 양분으로 삼은 꽃은 언제까지나 존재를 주장한다. 그 속에 뿌리를 뻗고, 나의 사고나 행동 모든것에 기생하고 있다.
언젠가 이것이 마를 날이 오는걸까. 그저 추억이 될때가 와주는걸까.
그때가 되어서 나는 웃고 있을까.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며 그와 웃을 수 있는 날은 오는걸까.
하지만 아마 그런 날은 영원보다도 훨씬 건너편에 있어서, 나는 지금이 그저 갑갑하다.
그렇게 지옥같은 시간이 끝나면, 사무적인 대화를 두 세마디 하고 우리는 헤어진다. 그 무렵에는 완전히 피혜해져서, 그래도 안도한다. 오늘이라는 날도 제대로 끝났다, 라는 것에.

몸을 완전히 못 쓰게 되어도, 일은 얼마든지 있다.
보컬 레슨, 수록, 칼럼, 라디오, 양성소, 라디오 드라마, 인터뷰. 가득 채워진 예정을 해내는것만이, 나에게 있어서 구제같은 것이었다.
무슨 일에도 지쳐버린 나에게 단 하나 남은것. 아이돌.
굉장히 깨끗하고 순수하진 않았지만 아이돌라는 그것은 나에게 단 하나 남겨진 보루같은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돌을 하고 있을때만큼은, 숨을 쉴 수 있을것 같았다. 무언가 다른 것이 되었다.
그 정도로 그냥, ……단순한 시부야 린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일의 쉬는 시간, 항상 카페에서 칼럼이라도 쓰려고 생각해서 사무소를 뒤로했다.
거리는 완전히 여름색으로 물들어 있고 아스팔트는 지릿지릿 열을 방출하고 있었다. 햇빛이 하얗다. 양산을 쓴 사람 무리. 나도 저러는 편이 좋을까, 생각하면서 그만 자외선 차단제에 의지해버린다. 양손이 비어있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진정이 되지 않는 기분이 드는건 옛부터 그렇다.

차분한 정적과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진 평소의 카페는, 사무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있는 곳에 있다. 찌릿 피부를 그을리는 햇빛을 느끼면서 큰 스크램블 교차점의 신호를 기다린다. 미끌어내려갈뻔한 가방을 다시 고쳐 들었다. 속은 노트와 필기도구부뿐이니까 그렇게 무겁지 않다. 컴퓨터나 타블렛으로 집필하는 편이 속도는 오를까, 생각했지만 그런걸 하면 쓸데없이 빈 시간이 생겨버릴것 같아서 무서웠다.

신호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차의 왕래가 소리를 내며 귀에 날아든다.
문득 무언가가 보인것 같아서 큰 노상 비전을 올려다봤다. 거기에는 큼직하게 비쳐있던건 스테이지에서 노래부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편의점과 타이업으로 보낸 신곡 PV다.
(……예전엔,)
저곳에 비치고 있던건 전혀 다른 아이돌이었던가.

"…………, 어라?"

어째선지 갑자기 눈물이 솟아오를것 같아서 놀란다. 신호가 바뀌었다는걸 깨닫고 황급히 다리를 움직여서 얼버무렸다. 시답잖은 감상이다. 옛날의 자신은 확실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있을곳을 찾고 있었지만……그렇다고 해서 이런식으로 되어버린다고는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화면을 올려보던 그 무렵을 떠올리면, 왠지 굉장히 먼곳까지 와버린 느낌이 든다.

같은 곳으로는 더는 돌아갈 수 없다. 순수했던 무렵으로는 더 이상 될 수 없다.
지금의 나를 보면, 옛날의 나는 뭐라고 했을까. 바보처럼 웃을까. 그만두라고 말할까. 하지만, 그만둘 수 있었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어찌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틀렸다, 그만두자)
되돌아가려는 자신을 깨닫과 황급히 궤도 수정을 했다.
일을 생각하자. 좀 더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나』는 됐다. 그런건 언젠가 어딘가에서 생각하면 된다. 적어도 그건, 지금이 아니다. (그렇게 뒤로 미루면서 끝은 언제 내는걸까)

――생각하지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모든걸 뿌리칙고, 나는 아지랑이로 흔들리는 아스팔트 길을 혼자서 걷는다.


          ※


카페에 들어가니 안은 시원해서 쾌적했다. 평소 앉던 자리를 발견하고 앉는다. 평소와 같은 블랙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를 펼쳤다.
이번 테마는 뭘로 할까, 계절인게 좋을까, 아니면 최근에 있었던 일이 좋을까.
여러가지로 떠올라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손을 움직인다. 머리에서 이것저것 첨삭하기보다 생각난것을 전부 써버리고, 그 중에서 좋아하는걸 선택하는 편이 내 적성에 맞았다. 문자수나 제한이나 통일감이나, 그런건 쓴 다음에 생각한다. 제한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쓰는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생각나는대로 펜을 굴린다. 머리 속을 전부 종이에 복사하는것처럼.
어느샌가 주문한 커피는 와 있었고, 포근하고 좋은 냄새가 난다. 음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그것도 첨가한다. 전혀 맥락이 없는 문장이지만, 어차피 나중에 고칠거니까 됐다. 그런것보다도 집중하는게 더 중요했다. 어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건 잘 하는게 아니라 집중하는것. 그러면 대개의 결과는 나중에 따라왔다.

딸랑, 문에 붙어있는 종이 운다. 이 소리다, 이 공간도, 싫지 않다.
조용하고 차분하고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텅텅 비지도 않아서 언제까지 있어도 좋은 기분이 든다. 커피를 입에 넣으려고 문득 고개를 들자, 문쪽에 시선이 갔다.

"어라, ……, "

굉장히 낯익은 인영이 거기에 서 있었다. 프로듀서.
(……어째서, 여기에?)
오늘은 그는 굉장히 드물게도 오프였을 터였다. 무언가 긴급한 사태인걸까 생각해서 일어나려던걸 빈 손으로 제지된다.우연히 만난것뿐, 인걸까.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 시간이 지나도 안에 들어오려고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로 발꿈치를 돌리지도 않고, 점원에게 몇 명인가요, 라고 질문을 받고 겨우 망설이듯이 카페로 발을 들였다.
"그게……두, 두 사람으로"
"알겠습니다. 전좌석 금연이지만 괜찮으실까요?"

(두, 사람?)
빼꼼, 그의 바로 뒤에서 얼굴을 보이는 인영이 있었다. 작은 체구의 여성.
전체의 대범한 분위기하고는 반대로 빙글빙글 잘 움직이는 호기심 왕성해보이는 눈을 한 사람이었다. 멀찌감찌서 프로듀서의 뒤를 따르며,
"왠지 멋진 가게네요. 봐요, 여기저기에 작은 꽃이"
무슨 꽃일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꽃이 핀것처럼 방긋 웃었다.
(아――, )
낯익은 목소리에 알아버렸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이 사람이)
프로듀서와, 결혼하는, 사람.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봐버린다. 그러자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건 짧은 순간이고, 시선은 엄청 어색하다는 듯이 바로 피해졌다. 욱신, 가슴이 아프다.
(그렇, 지. 이런데서 일 동료에게 보이면……어색한가)
눈을 피해야하는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의지의 힘으로 그랬다. 도저히는 아니지만 자연스런 행동은 안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게, 자리는……어떡, 할까요"
"후훗. 어떡할까요라는 질문, 오늘로 몇 번째인가요? 그럼 창측으로요"
"눈부시지 않나요. 햇볕이라던가"
그보다 밖이 보이는 곳이 좋아요. 오늘은 구름이 예쁘게 흐르네요"
"그럼……그걸로"

집중, 할 수 없다.
얼굴은 테이블 위를 보고 있지만 주변 시선을 총동원해서 나는 이 2인조를 뒤쫓아버렸다. 여성 쪽이 먼저 걸어서 내 쪽으로 걸어온다. 마침 나도 창가 자리였으므로 가까운 자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이힐 소리. 그리고나서 프로듀서의 발소리.

(……이럴때, 어쩌면 좋을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상해질 정도로 고요해져있다. 일으하고 있을때처럼.
(그치만, 나와 그는, 일의 상대이지, 그런 관계고……그것뿐이잖아)
들려주듯이 마음으로 중얼거린다. 달칵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난것 같았다. 일을 하기 위한.

"프로듀서"
"린, 씨……,"
"드무네, 이런데서 만나고"
"아, 아는 사이인가요? 어, 어라? 이 분은……"

나는 자못 우연히 만나서 말을 건것뿐이라는 얼굴을 하고 손을 흔들어보인다.
그의 얼굴이 경직하여 굳어있는게 되게 익살스러웠다.

"네, 그게……담당인"
"어머"
어쩐지 본 적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라며 여성이 놀란것처럼 말한다. 그가 목에 손을 댄다. 손끝으로 그걸 지적하자 조금 웃어보인다. 놀리는듯한 목소리로.

"뭐야. 모르는 사람한테 보인게 아니니까 제대로 해"
"하아……으음, 그게, 이쪽이 약혼자인……"
"미즈키 료코입니다. 안녕하세요. 타케우치가 신세를 지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시부야, 린입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미즈키 씨는 무척이나 어른스런 여성인데 웃는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순수했다. 그대로 그녀는 프로듀서를 돌아보고 퐁, 하며 자연스런 동작으로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타케우치 씨, 직장 분에게도 얘기하셨군요"
"아뇨, 그게,
"아니에요. 저만, 우연히 알아서요"
"어머, 그런가요"

나는 하다못해 심술궂게 웃고,
"프로듀서. 퍼뜨리진 않을테니까 느긋하게 해"
그렇게 말하고 손을 흔들었다. 대화는 이걸로 끝이라는 식으로. 그 뜻을 읽고 미즈키 씨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슥 옆을 지나갔다. 대화가 멀어지는게 들려온다.

"저, 시부야 씨는 처음으로 직접 봤는데요, ……정말로 예쁜 사람이네요! 피부도 매끈매끈하고 얼굴도 작고……굉장히 아이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 네……"
"좋겠다아……어렸을때는 아이돌에 동경했어요"
"료코 씨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있군요"
"아이참, 저를 뭐라고 생각한거에요, 증말"
"그게……항상 하늘이나 벌레만 보고 있는걸로 생각해서……"
"……그, 그건 틀리지 않지만요"



――머리가 아프다.



모처럼 내린 스위치가 끊어지려고 한다. 일이다. 이건 일.
동료와 그런대로 잘 해가는것도 아이돌의 일. 그렇게 들려주는데, 어딘가 내내 깊숙한 곳이 이제와서 찌릿찌릿하게 아픔을 호소해온다. 어거지로 떼어내려고 한 꽃잎이 삐걱인다.
빨리 시들어줘. 끝내줘. 이젠 아무것도 없어. 남은건 없어. 말을 끈다.

크게 숨을 들이키고 내쉬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안하도록 되자. 아무것도 느끼지 않도록 되자. 그리고 일을 하자. 집중해. 나에겐 그걸 할 수 있는 힘이 분명 있어. 믿어.
바로 옆 자리에 앉은 프로듀서와 미즈키 씨의 목소리가 BGM처럼 흘러들어오는걸, 의식하며 끊었다. 좀 더 깊은 곳, 좀 더 집중한 무언가가 되야한다. 좀 더, 좀 더. 아이돌로서.
그렇게해서 펜을 굴린다.


――정신을 차리니 창문으로는 강한 석양비이 들어오고, 점원이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었다.
언뜻 주위를 돌아본다. 프로듀서네는.

(…………없어, ……)

몇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이미 진작에 가게를 나간 모양이었다. 돌아갈때 인사라도 받았던걸까. 나는 거기에 제대로 응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어깨의 힘이 빠졌다. 피로가 팍 몰려온다. 손에 쥐고 있던 펜이 테이블 위로 굴러떨어졌다. 노트 위로 시선이 멈춘다. 쓰고 있던걸 확인해야해. 그러면 오늘 일은 이제 끝나버린다. 아니면 조금 더 늦게까지 트레이닝 룸이라도 들어갈까. 그러자. 그러는 편이 좋다.

대충 썼던것에 눈을 보내고 테마를 정해서 픽업하고, 형성하고, 세세한 부분을 고친다. 오늘은 기껏해야 테마를 정하는 정도까지면 되겠지. 역시 커피 한 잔으로 너무 오래 있었다.
시선을 노트로 준다. 뭘로 할까. 계쩔 소재, 있었던것, 생각한것, 여러가지 있지만…….

(……………뭘, 까)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칼럼과 뭔가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나 집중해서 썼는데. 아니, 내용 자체는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돌발적으로 생각난거나 탈선을 포함해서 썼는데도 잘 종합되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거, 정말로 내가 쓴거야?)

지울 수 없는 위화감.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멋대로 쓴 문장 같았다.
제대로 종합되어 있고, 모아져있고, 그런대로 형태가 되어 있어서,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드는것도 없이, 그럭저럭 이상적으로.
하지만, 그래도, 이건.

(이건, 내 말이 아니야――)

빼곡하게 노트에 들어찬 단어의 나열은 그저 깨끗한 소리, 거짓투성이었다.
아이돌로서 셀프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고, 팬이 기뻐할만한,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불쾌하지 않고 그런대로 흥미를 끌만한, 그렇게 만들어진 말.

모르는 사이에 표정이 찡그려진다.
……충격이었다.
이 칼럼은, 카메라 앞에서 못 서게 되어, 망설이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여, 그럴때 받은 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등신대의 나를 팬에게 전하고 싶다. 그런 마음 하나로 계속해온 연재였다. 그런데, 이런.

(이런거, 전혀 내가 아니야)

저도 모르게 꾸깃, 노트 페이지를 움켜쥐어버렸다. 새까만 문자가 꾸깃꾸깃 구겨져간다. 가짜 말들. 외형만을 둘러싼 혼이 없는 단어.
(이런건 일이 안 돼)
마음만 애가 타서 달린다. 멈출 수 없다.

적어도 일은 해야했다.
나라는 개인이 시들지 않는 꽃에 기생되어 모든것을 잃어버렸다고 한다면, 하다못해 일만큼은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프로듀서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순한 나이기에, 아이돌로서의 나만큼은 남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쓰고 있었지?
저도 모르게 노트를 넘겨, 과거 메모를 넘겨봤다.
거기에는 전혀 종합되지 않은, 졸렬한 단어의, 드러난 마음으로 쓴 말들이 가득했다. 넘길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괴로웠거나 힘들었거나, 도망치고 싶어졌거나 떨렸거나, 그래도 어떻게든 하고 싶어서 꼴사납게 발버둥 친. 그 흔적이 있는대로 남겨져 있었다.

"…………. ……, "

노트가 손에서 떨어졌다.
숨이 새어나오고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괴로움의 궤적이었을 말이 반짝반짝 눈부셔서, 나를 상처입힌다.
더는, 이런식으로 순수했던 무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나의 말은, 팬에게는 더 이상, 닿지 않는다.

옛날 일을 떠올린다. 그렇게 이전이 아니었는데, 훨씬 옛날일처럼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었던 나.
목표도,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그 무엇도.
그런 어느날 나는, 그 사람과 만났다.

눈부신 신발을 받고, 나는 달렸다.
그리고나서는 모든것이 반짝반짝 빛나고, 집중을 하며, 눈부셨다.
행복감, 고양감, 흥분, 기쁨.
물론 즐거운 일만 있던건 아니었지만, 괴로웠던 전부를 없앨 정도로 그것들은 강하고, 눈부시고, 멋졌다. 그 무렵에는 모든게 다 빛나 보였다.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답다고는 몰랐다.

하지만.
그 극채색의 하늘비가 내린 날, 나는 사랑을 알아버렸다.

그 때부터 모든것은 반전했다.
그 사람을 만나서 손에 넣은 모든것은, 눈부심이 눈에 따갑고, 괴로워서.
많은 웃음을 칠하고, 감상과 맞바꾸어 정적을 손에 넣으려고 발버둥치고.
점점 내 안에선 여러가지가 빠져나갔다.
그리고, 텅 비어버린 내가 된다.
아무것도 없었던 나로.

비틀거리며 카페를 나왔다.
나가자마자 뛰어들어온건 선명한 오렌지, 그리고 파랑색으로 변해가는 그라데이션. 반짝 빛나는 일등별. 어딘가에서 본듯한, 하지만 분명 두번 다신 오지 않을 풍경. 석양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눈에 스며들어서 아팠다.

(……트레이닝, 해야지)
뛸 수 없고 일도 오늘은 더는 없는 나는 근육 트레이닝 정도밖에 할 일이 없다. 사무소로 돌아가려고 발을 움직이니,
"린 씨"
없을터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본다.
"프로듀서……?"
카페 문 바로 옆에, 벽에 기대어 서 있듯이 그 사람은 서 있었다. 사적인 날일텐데 평소같은 정장에 더운지 벗은 상의를 팔에 걸치고 있다. 벽에서 등을 떼고 그는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마주본다.

"……언제부터 있던거야? 여친은?"
"여기를 낭오고 바로 헤어져서……그리고나서 또 돌아왔습니다"
"어째, 서?"

그는 충분한 시간에 무언가를 생각하고, 망설이면서 목에 손을 대고――

"린 씨를, 바래다주려고 생각해서요"

그렇게 툭 중얼거렸다. 가슴이 아파질것 같다. 뿌리가 삐걱인다. 빨리 시들어줘. 기도는 헛되게 끝난다.
"왜? 오늘 오프잖아. 거기다 나, 지금부터 아직 트레이닝이,"
"돌아갑시다, 린 씨"
"…………, "
"……돌아갑시다"

같이.
그렇게 말한 그의 표정은 왠지 표정을 잘 읽을 수 없어서 나는 당혹해버린다.
어째서 나랑? 그렇게 묻고 싶다. 하지만 물을 수 없다. 대답을 듣는게 무서웠다. 단순한 걱정인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하다못해, 그걸 그의 입으로 듣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숙이고.

"……싫어. 일이 있으니까"
"일이란건"
"그러니까 트레이닝"
"그건……내일은 못 합니까"
"못 해. 내일은 내일 트레이닝이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모든걸 뿌리치고 걸어간다. 사무소로 돌아가자. 그래서 트레이닝을. 단순한 『나』가 아닌 시간을.
하지만 엇갈리려던 순간, 프로듀서는 내 팔을 잡았다. 확, 몸을 잡아당겨진다. 뒤돌아서 노려본다.

"……뭐야?"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안 간다고 했잖아"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끈질기네. 그런거, 약혼녀한테 미움살거야"

헷갈리니까. 그러자 그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그 틈을 보고 팔을 후려친다. 움켜쥐어진 곳이 뜨겁다. 그마저도 알 수 없게 되고 싶다고 바란다. 자조적으로 웃는다.

"뭐야. 그렇게나 걱정이야?"
"당연합니다, 그건――"
"그럼 치한을 만나지 않도록 택시로 돌아갈테니까. 그러면 되지"
"……, 그런건, 아니라"
"지금 나, 인생 최대로 벌고 있어. 그렇게 되었어"

자칫하면 더는 필요없어질지도 몰라, 프로듀서의 배웅.
그러자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일그러진 느낌이 들었다. 기분탓일지도 몰랐다. 아마 그렇다.
이제 나는 그에게 떨어지는 편이 좋다. 그러는 편이 꽃도 시들기 쉽다. 분명 그러는 편이, 망설임 없이 노래 부를 수 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아이돌밖에, 나에게는. 하다못해 그 정도는, 전부 하자.
그를 남기고 먼저 가려고 한다. 그 전에 문득 생각난게 있어서 뒤돌아보지 않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나 갈게. ……그렇지"
"린 씨,"
"…………칼럼의 마감, 조금만 연장해도 돼?"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가장한 목소리를 자연히 냈다고 생각한다.
잠시 침묵.

"알겠습니다. 조정하겠습니다"

생각했던것보다도 훨씬 똑바른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안도한다.
지금은 일을 하자. 거기에만 집중하자. 두번 다신 쓸 수 없는 말도, 뭔가 방법은 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인다면, 뭔가 좋은 생각이 나올지도 모르고. 그게 좋다.

"……이번에야말로 갈게"
"………………."

대답은 없었다. 포기한 모양이다.
그 일에 안도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내가 흔들린다. 점점 아무것도 없게 되어서, 아이돌밖에 안 남아있는데, 아직 『내』가 술렁일것 같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다. 이젠 버려야할 감정이다. 꽃은 시들어야한다.



――결국, 칼럼에 대해서 좋은 생각이 나오는 일은 없이.
나는 아슬아슬하게까지 연장한 마감을 앞두고 거짓투성이 깨끗한 소리를 세상에 공개하는걸 결정하고.
발간된 그건 지금까지 없을 정도로 호평이었다.
……심하게 허무했다.



          ※



편의점과 타이업, 홋카이도 이벤트를 직전에 두고 나는 의사에게 뛰어도 좋다는 보증을 받았다. 그때까지 매일 병원에서 테이핑을 받고 있던걸 떼었을때의 해방감은 없엉ㅆ다.
이걸로, 나는 또 뛸 수 있다. 달릴 수가 있다. 더는 멈추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밖을 달릴 수는 없었다.
숙박하고 있는 호텔 주변을 뛰고 싶다고 말했더니 프로듀서에게 속공으로 기각당한 것이다.
지금의 내가 무방비하게 밖에 뛰어다니면 소란이 될거라는 이유로.

평소 도쿄에선 변장같은건 하진 않았다. 그 거리는 모두 인파가 넘쳐나서, 거기에 마음 졸이지 않게 자신의 가는 길을 보고 있고, 다른 사람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지역은 다르다며 프로듀서는 말한다. 평소 있는 거리가 특수한것도 있어서 일로 방문하는 지역의 반응이 훨씬 보통이라고.

결국 문답끝에 체육관이 병설되어 있는 호텔에 숙박하고, 거기를 쓴다는게 되었다. 숙박시설의 랭크도 그러고보니 훨씬 높았던걸로 생각한다. 인기가 없었을 무렵에는 몰카로 수상쩍은 호텔에 집어 넣어진 적도 있었지. 왠지 굉장히 먼 추억같아졌다.

관광 동안에도 평범한 일은 있다.
양성소를 지나갈때는 점점 레슨 내용이 하드해졌고, 재개한 댄스 레슨은 몸이 무더져서 큰일이었다. 드라마 촬영도 있다. 음악 방송도, 버라이어티도.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건 칼럼과 인터뷰였다.
자신을, 자기 자신의 말로 말하는것. 그건 더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래저래 고민해서 생각하려고 하지만 머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결국 거짓투성인 깨끗한 소리를 입이 멋대로 말하고 있다. 그렇게 말한 말이 진짜 나의 말보다도 훨씬 호평이라, 대체 나는 뭘 요구받고 있는걸까, 라며 때때로 모르게 될것 같다. 하지만, 그걸로 다행이다.
아이돌로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그러한 일의 귀가길은 대개 프로듀서의 운전이 평소보다 조용하게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나의 한심한 바람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힘이 빠져 있었다.

(멈출 수는 없어)

달려야해.
달리고, 달리고, 달려야해.
안 그러면 나는.



          ※



여성지 표지의 일이 들어왔다.
평소 칼럼을 싣고 있는것과는 또 다른 여성지라 잡지의 표지를 꾸미는건 처음이었다. 긴장할까, 생각했지만 당일 아침이 되어보니 일을 할 수 있는 고양감과 뛰고 있는 감각으로 가슴이 가득해서, 역시 나에게는 아이돌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스타지오에 들어간 나를 맞이해준건 한 명의 여성 카메라맨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해요, 시부야 씨"
"안녕……하세요"

기억에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그라비아 재도전이 틀렸을때. 패닉을 일으키고 고개숙여버렸을 때다. 그때도, 그녀가 카메라맨이었던것 같다. 기억은 애매해서 또렷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흐릿한 인사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좋은 일을 합시다, 라며 말하고 웃었다. 시원스런 사람이었다.

"힘들어지면 바로 휴식합시다. 알겠죠"
"아, 네"
"서로 무리해도 좋을건 없으니까, 느긋하게 할까요"

상냥한 걱정하는 말. 그것이 마음에 조금 스몄다.
이제 이전의 나하고는 다르다. 카메라 따위 조금도 무섭지 않다.
무서운건 좀 더 다른것, 꽃이 시들지 않는것, 멈춰 서버리는것, 텅 비어버린 나에게서 『아이돌』마저도 사라져버리는것. 그러니까, 일을 해야한다.

(계속 달리자)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아이돌로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달리자)


"――들어갑니다! 잘 부탁합니다!"



          ※



촬영이 끝난 순간, 카메라를 휘두르듯이 놓은 그녀는 나에게 달려와서,

"……좋았네!!"

그렇게 말하며 나를 껴안았다. 꼬옥 안기고 따뜻해서 좋은 냄새가 났다. 왠지 수줍다. 좋았다, 가 아니라, 좋았네, 라고 들은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렇다, 이 사람은 이전의 나를 알고 있으니까. 무사히 카메라의 앞에 설 수 있던걸 기뻐해줘서 그것이 기뻤다.

촬영중에는 둘 다 내내 말이 없었다. 조명이나 포즈에 대한 짧은 지시가 이따끔 나를 뿐이라, 남은건 거의 말없이 보냈다. 거의 들려오지 않을 법한 셔터 소리가 굉장히 천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무 말을 듣지 않아도, 다음은 이렇게 하길 원하려나, 라는걸 알것 같았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몇 시간이나 단 둘이서 내내 얘기를 하고 있던것 같은 감각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말도 묵묵히 있고 싶었다는 것도, 어떤 비밀도 전부 공유해버린 기분이었다.

그녀는 나한테서 몸을 떼고 생긋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 조금 그늘이 있는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왜 그러세요, 저 뭔가――"
"으응, 그런게 아니야. 그저,"
말하려고 그녀는 프로듀서쪽으로 휙휙, 손짓을 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다음 이동까지 얼마 정도 시간 있나요"
"네? 으음, 1시간 정도입니, 다만"
"그럼 잠깐 이 애 빌려갈게요"
""에?""

프로듀서와 목소리가 겹쳐졌다.
"하지만 저, 그 동안 달리기를,"
"됐어. 잠깐 언니한테 어울려줘"
심술궂게 곧은 눈으로 쳐다보여져서 팔을 풀려고 하니 대항할 수 없었다. 방금전까지의 감각이 되살아나오는것 같았다. 단 둘만의, 다른 누구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찍고 찍히는 감각.
"……네"
툭, 흘러나온 대답에 프로듀서는 놀란듯이, 하지만 바로
"시간에는 맞이하러 가겠습니다. 어디 갔는지 도착하면 연락을 주세요"
시계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따라 간 곳은 스타지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려한 카페였다.
단골인 모양인지 망설임 없이 가장 안쪽 자리로 안내받기 전에 걸어간다. 그대로 쑥 소파에 앉고,
"자, 앉아앉아"
나에게도 자리를 권유했다. 하아, 대답을 하고 앉는다. 폭신폭신한 소파가 몸을 감싼다.
그녀는 점원을 불러서 멋대로 홍차를 둘 주문하고,
"……자 그럼"
하고 말하며 갑자기 방금전까지의 태도가 거짓말이었던것처럼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테이블에 팔굼치를 대고 몸을 앞으로 숙인다. 진지한 눈동자가 곧게 나를 쳐다본다.


"시부야 씨. …………괜찮아?"



"읏,"
들켜버린다, 이 사람에겐 뭐든 지 다.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계속된다. 홍차가 나온다. 그녀는 홍차에 손을 대지 않은채로, 그저 빤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어색해서 저도 모르게 평소에는 넣지 않는 우유를 홍차에 넣었다. 천천히 우유가 엷은 차색 속으로 녹아간다.

"괜찮다니……뭐가 말이에요?"
미소를 지어 얼버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속지 않고 그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 시선의 질량에 패할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려고 했을때,

"괜찮지, 않은거구나"

단정적인 한 마디. 푸슉 꽂힌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알아버린걸까. 그저 몇 시간동안 파인더 너머로 마주봤을 뿐인데. 하지만, 나에게도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녀는 신뢰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라는것. 렌즈를 통해서 느낀 확신.
고개숙인채로 말했다.
"뭔가……문제라도, 있었나요?"
"그런게 아니야"
똑바른 목소리. 아아, 간파당했다.그래도 나는 발버둥친다.
"그럼, 괜찮잖아요. 서로, 괜찮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괜찮은 일……이라"

그걸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어? 그녀는 말한다.

"그야 아이돌은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건……"
"그게 아니잖아"
엄한 목소리가 날아든다. 거기서 겨우 그녀는 홍차를 한 입만 마시고,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처럼 말했다.

"나는, 네가 언제까지 버티는건지 얘기를 하는거야"

언제까지.
……그런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달리고 달려서, 지금을 뛰어넘고, 그리고, 그 후에는?
하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고 있지 못한 모양이지만, 너는 진짜야"
내가 보장해라며 굳세게 그녀는 말했다. 몇 번인가 들었던 말.

나는 진짜다, 재능이 있다고 남들으 말한다.
(그런건 없는데)
나는 그저, 잊고 싶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 깨끗한 투명해질 수 있는거라면 계속 그려고 싶어서. ……그러기 위해서만 지금은, 일을 하고 있다. 달리고 있다.

――진짜 따위가 아니다.

진짜 아이돌이라는건 동료들을 말한다.
레슨이나 스테이지에서의 동료이며, 함박 터지는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반짝반짝하고, 힘내고, 즐기고, 즐겁게 만드는 그런게 진짜 아이돌인데.
나는 그저, 그러지 않으면 안 되어서 그러는것 뿐이다.
(조금도, 깨끗하지 않아)

내 마음따위 알리 없이 그녀는 계속한다.
"네가 망가지는건 업계전체의 손실이야"
"그런건……"
"아까워. 네가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아까월할만한 아이돌이 나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홍차 컵을 툭 두고 뭐, 하며 그녀는 휙휙 손을 흔들었다.

"라고해도, 실은 인건 개인적인 감상. 소재로서의 네 가치는 또 다른 이야기야"
"개인적?"

응, 굉장히 사적인 감상이야, 라고 말하며 그녀는 쿡 웃는다.

"그래. 내가 그저 너를 좋아하는것 뿐이야"
"좋아……"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놀람으로 컵을 든 손이 천천히 내려간다.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 내가 아닌데.
그저 한 번 카메라를 사이두고 마주본것 뿐인데, 어째서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말해주는걸까.
그런 의문이 얼굴에 나왔던건지, 그녀는 부드럽게 웃었다.

"카메라맨과 피사체는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다고 나는 생각해"
"그건……알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양손으로 네모난 풍경을 찍어내는 포즈를 취하는 그녀. 그 중심에는 아마 나.
"파인더를 사이두고 마주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본질이 보여"

움찔했다. 엘레베이터의 광경이 플래쉬백한다.
추악한 나를 들킨것 같아서 무서워진다.

"너도, 보인것 같아"
"……그건"
그녀는 손을 무릎에 돌리고 갑자기 어두운 눈동자를 지으며 눈꺼풀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망설이고, 괴롭고 힘들고, 하지만 혼자서 쓸쓸하게 참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의지하지 않아"

홍차가 손 안에서 식어간다.

"그저, 무언가를 뿌리치기 위해 열심히 달려서, 고독 중에서 열심히 살고 있어"
"…………그런건"

어미는 사라져갔다. 정답이 들킨것 같아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네 본질은,"

부-, 부-, 거기서 진동이 울렸다. 방금전까지의 진지함이 거짓말처럼 팟, 하며 평소대로같은 얼굴을 지은 그녀는 휴대폰에 손을 댄다. 쓴웃음을 짓는다.
"……시간이 되어버린것 같아"
이대로 여기에 있어도 괜찮지만, 그러면 프로듀서가 와버리나, 하고 그녀는 웃었다.

"이런 얘기는, 여자끼리만 하는거니까"

자, 가자, 하며 일어서서 잽싸게 전표를 챙긴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드러워서, 어른 여성이라는 느낌이 났다. 덩달아 나도 가방을 챙기고 일어선다.
"그렇지, 시부야 씨"
"네"
가슴팍에서 케이스를 꺼내어, 거기에서 작은 종이를 한 손으로 척 내밀었다.
"이거, 내 명찰. 뒤에 사적인 번호도 올려뒀어"
"아, 네"
황급히 받아든다. 프로듀서에게 옛날에 받은것과 달리 옅은 문양이 구석에 들어간, 여성다운 섬세해보이는 명찰이었다. 프리 카메라맨, 아키노 사쿠.

"괜찮다면……언제라도 연락해줘"
언젠가 뒷얘기를 계속하자, 라며 아키노 씨는 생긋 웃었다.
"……네"
이 명찰은 버릴 수 없을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키노 씨는 잽싸게 계산을 마치고 지불하겠다는 나를 간단하게 타이르고 잽싸게 걸어갔다. 스타지오의 앞까지 돌아가자 나를 맞이하러 온건지 마침 프로듀서가 문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다녀왔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다, 다녀왔어,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잽싸게 나와 아키노 씨의 사이에 끼어들고,
"……괜찮았습니까?"
경계하는 시선으로 아키노 씨를 빤히 쳐다봤다. 갑자기 아키노 씨가 깔깔 웃는다.
"어머나, 이래선 내가 나쁜 어른같잖아"
그렇게 말하고 한 차례 웃고는 마치 잡담을 이어서 하는것처럼


"프로듀서, 이 아이를 혼자로 만들지 말아줘"


선뜻 그렇게 말했다. 갑자기 프로듀서의 얼굴에 당혹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아이를 떠맡기는것 같은 말씨에 왠지 수줍어진다.

(나는, 혼자따위가, 아냐)

팬 모두도 있고, 스태프들도 붙어 있고, 동료도 있고, 프로듀서도 있으니까. 나는 결코 혼자는 아닐터였다.
하지만 자애로 가득찬 그 말씨에, 그만 아무 마라도 못 하게 되어서.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서 고개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 그럼 됐어"

또 괜찮은 일을 하자, 그렇게 말하고 아키노 씨는 한 번도 돌아보는 일 없이 스타지오로 들어갔다.



          ※



이벤트, 장거리 이동, 레슨, 라디오, 인튜버, 칼럼, 라디오 드라마, 악수회, 양성소, 트레이닝, 달리기, 텔레비전 출연, 드라마.
매일매일, 일이 쌓여있으면 있을 수록 안심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이돌을 제외한 모든것이 텅 비어버리면, 그걸로 안심할 수 있었다.


『――그걸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어?』


아키노 씨의 목소리가 머리속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도무지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꽃은 아직 시들지 않았다. 좀 더, 좀 더 텅 비워야한다. 초조해하기만 하고 있다. 그래도 일은 완벽해서 그 동안에는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서 안도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단번에 피로가 몰려와서 동물처럼 그저 잔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전국 남하 이벤트 투어는 별일 없이 무사히 종료했다.
남은건 도쿄에서 편의점 협찬 파이널 라이브가 있을 뿐이다.
그 준비에 쫓기는 중에 다른 일도 매일 가득 들어와서, 나는 어떻게든 아이돌로서 하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에 놓여져버려서, 두번 다신 돌아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내 그런 날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날, 라디오 드라마의 대본 읽기를 하려고 했던때.
프로듀서가 물을 주러 왔다. 최근에는 너무 빠져서 수분 섭취를 잊는다는 바보같은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데. 그는 트레이닝때도 달리기할때도 그리고 책을 읽을때도 성실하게 물을 주러 온다. 최근에는 그냥 그걸 목적으로 갖고 가는 수분의 양을 정하게 되었다.

"어떤가요, 상태는"
"나쁘지는 않으려나. 온에어도 호평이었고"
"오늘 컨디션은……"
"응, 양호. 조금 유연할때 다리가 굳어진걸 느낀 정도일까"

오늘밤 욕조에 들어가면 나을 범위라고 하고 나는 받은 물을 훅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을 지나가는게 시원하다. 한 차례 다 마시고, 뚜껑을 닫고 일어선다.

"항상 고마워. 그럼 나 대본 읽기로 돌아갈게"
"…………, 저기"
"어, 뭐?"

일을 하기 위한 기계가 되어 있던 나는 최근에는 이전보다도 그와 대화가 계속되게 되었다.
마치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무렵처럼, 아무 캥겨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 무서운건 없다. 달릴 수만 있다면, 나는 평정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는 몇 번인가 고개를 숙이고 그게, 하며 말을 더듬으며,
"대본 읽기, 어울릴까요"
"어? 왜? 그래도 돼?"
"네. 오늘은, 예정이 비어있어서요……"
"그래. 아-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 대본이 완전하게 들어오지 않았어"

둘이서 대본 하나를 보게 되는데 괜찮아? 라고 말하니 프로듀서는 묵묵히 끄덕였다.
일 레슨.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일도 태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설령 그와 얼굴을 마주대고, 하나를 쳐다보게 되는 일도. 나는 아이돌이니까, 아무렇지도 않다.

어깨와 어깨가 닿을 정도의 거리에 서서 둘 사이에 대본을 펼친다.
따뜻한 온도가 바로 옆에 있다. 오랜만에 꽃향기가 나는듯한 느낌이 드는걸, 일이니까, 라는 한 마디로 비튼다. 빨리 시들어버렸으면 싶은데, 지금 나는 보고 보지 못한 척을 하는 방법을 배운것 뿐이다. 그것도 굉장히 능숙해졌지만.

"그럼, 갈게.
 ……………………여보세요, 노보루군?"
"미, 미카코, 오랜만"

어색한 대사라도 상대가 있는것만으로 감정이입이 늘어난다.
진짜같은 감정. 두 사람의 시간은 점점 엇갈려간다. 상식도, 대화도, 통하지 않게 되어간다. 대화하는건 먼 추억뿐이라, 미래에 관한건 아무것도 없다.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수 없다. 말해버리면, 편해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럼, 슬슬……정말 좋아해, 노보루군"

그저 형골화해버린 인사.
가장 처음에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더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해서 상대의 마음도 없는 인사를 기다린다.
기다린다.
기다렸……지만.

"………………?"

아무리 기다려도 인사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아스럽게 생각해서 역할에서 벗어난다. 문득 현실이 돌아온다. 정신을 차리니 방금전까지 어깨가 닿을 거리에 있었을 프로듀서는, 나와 마주보고 있었다. 가만히 고개숙인채로.

"……프로듀서?"
"………………죄송합니다, 린 씨"



――저에겐, 말할 수 없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주먹이 꾸욱 움켜쥐여져 있다는걸 깨닫는다.
말 못해? 말 못한다는건 뭘. 지금까지 우리들, 뭘 하고 있었고, 어떤 대화를 했더라?
분명히 대사를. 그래, 정말 좋아해라고, 그런, 단순한 인사를.

"………………, 아, 아아-,"

겨우 납득하고 나는 미소를 얼굴에 칠했다.
그런 소린가. 설령 어떤 연기라도, 그는 앞으로 결혼하는 사람이고, 요컨대 절조를 지키는거다.

"그렇, 지……설령 연기라도, 정말 좋아해-, 라는건 말이지"

미즈키 씨에게 면목없는걸.

웃어라.
오랜만에 그렇게 명령하고 웃었다. 처음에는 명령따위 하지 않아도 멋대로 얼굴이 웃어줬는데.
그는 아직 고개숙이고 있다. 움켜쥐어진 주먹은 새하얗게 변해있다. (그렇게나, )

"아하하, 신경쓰지마. 라스트만 안 읽어도, 읊기는 할 수 있었고"
"……린 씨"

그게, 하고 몇 번인가 프로듀서는 말을 흐리고, 망설이고, 저도 모르게 목에 대려던 손을 또 꾸욱 움켜쥐고, 겨우 고개를 들었다.


"조금……쉬는게 어떻습니까?"


그렇게 말한 말은, 내가 예상도 못했던 말이었다.
(어――?)
"그건, ……무슨, "

"그 말대로의 의미입니다. 린 씨에겐 조금, 휴양이 필요합니다"

엄한 눈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말에 당혹해서, 내가 오랜만에 흔들린다.

"일을……쉬라는, 소리야?"
"네"
그렇게 오래는 못 빼드리지만, 하다못해 이틀, 아니 사흘 정도는, 하고 그는 말한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 왜냐면 나는, 나는.

"왜? 나, 뭐 제대로 못 했어?"
"아닙니다, 그런건"
"그럼 어째서? 지금대로여도 아무 부자유스러운건 없는데, 왜?"

멈춰서선 안 된다. 계속 달려야한다. 안 그러면, 난.
하지만 잔혹한 선언은 나를 꿰뚫는다.
"……조금, 몸과 마음을 쉬게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가 판단했습니다. 린 씨는 사흘간 쉬어주셔야겠습니다"


"――싫어!!"


"!? 린, 씨,"
갑자기 치솟는 끓어오른 격정은 뭐였을까.
공포인가, 초조함인가, 아니면 분노인가. 그마저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뜨거워져서, 격하게 머리카락을 흔들며 나는 소리지른다.


"나는 무대에 설거야!! 아무도 바라지 않아도 돼!!"

"아무도 나를 안 봐도 돼! 남에게 무슨 소리를 듣든 상관없어!"

"나에겐 이젠 아무것도 없어!!"

"나에겐 이제 이것밖에 남아있지 않는데……어째서 그걸, 빼앗으려는거야!?"


달려야해. 계속, 계속 달려야한다.
안 그러면, 나는 나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이돌의 나밖에 없다.
단순한 시부야 린은 없어져버렸다. 사라져버렸다. 안 그러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는 나에게 쉬라고 말한다. 멈춰서라고.
――그런 잔혹한 이야기가 있을까보냐.

"린 씨……뭐를, 그렇게, 초조해하는겁니까?"
"…………"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내가 겨우 입을 다물자, 프로듀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린 씨의, 계속 진전하려는 자세는……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하지만, 사람은 때론 멈춰서는것도 필요합니다"
내 외침따위 없었던것처럼, 그는 조용히 말한다.
"린 씨는, 좋을대로 달려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 자세를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어디까지라도 달린다면……제가, 당신의 브레이크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결심한겁니다"
"……, 그건,"

별것아닌 상냥함이 아프다.
왜냐면 나는, 이런걸 받아도 좋은 내가 아닌데.
나는 혼자서, 혼자서 이 꽃을 시들게 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브레이크따위 필요없어"

목소리가 떨렸다.
"어디까지라도 나는 달릴거야. 혼자라도 좋아. 당신 따윈……필요없어"
의지의 힘으로 입술을 움직여. 나에겐 할 수 있을거야. 왜냐면 나는 아이돌이니까.
하지만 프로듀서는 고개를 젓는다.

"아이돌과 프로듀서는 일심동체입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단순한 시부야 린을 봤다.
"얼마나 당신이 격하게 거부해도, 저에겐 당신을 멈출――"
"……의무가 있어?"
"아니오. 각오가 있습니다"

그건 누구를 위해?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아프고, 괴롭다. 목이 꼬옥 조여진다.
거부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아. 이 사람의 상냥함을 받아들이고 싶어. 버려버리고 싶어.
하다못해 도망치고 싶어. 얼굴을 피했다.

"잠시……혼자서 생각하게 해줘"
"그럴 수 없습니다"

예상밖의 즉답에 허둥댄다.
"어, 어째서?"
"지금의 당신을,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라니……나, 어디도 이상한 곳, 따윈"
"깨닫지 못한겁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나에게 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이 천천히 흔들려서 놀란다. 손을 벌린다. 지면에 물방울.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느낌이 든다.

(어째서, 아직……, )

그렇게나 모든 감정도 사고도 연정도 전부 없애버렸을텐데. 아직, 이렇게나.
필요없는데. 『나』따위 전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데.
왜 남으려고 하는거야. 어디까지, 나를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는거야.
적당히 해줘. 적당히 해달라고.
도망치듯이 몇 걸음 뒤로 비틀거리고, 모든걸 뿌리친 나는 소리질렀다.


"필요없어. 아무것도 필요없어!
 당신도 필요없고, 그런 상냥함도 필요없어!
 ――빨리 어디론가 가버려!!"



그 순간.
당신의 얼굴이, 심하게 상처입은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린 씨……"
"읏, ……으, …읏, 윽"
"………………"

한숨같은 무언가. 아이같은 히스테릭으로 이 사람을 상처입혔다. 기막혀한걸까, 곤란하게 만든걸까, 포기하게 한걸까.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아직 이런게 남아있었다니. 빨리 버려버리고 싶은데.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말한다. 아직 말하려고 한다.

"당신을 위해, 저는……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럼, …………줘,"
"네?"
"………………껴안아줘, …"

사라질것처럼 약한 목소리.
저도 모르게, 멋대로 떨어진 말이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아. 생각도 안 해. 생각한적따위 없을 터다.
어째서, 나는 내가 하는 말을 항상 들어주지 않는거지.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에게 미움사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라도 이 사람의 아이돌로 있고 싶었다.
그런데.

"……알겠습니다"
"에, "

생각도 못해본 말에 고개를 든다.
이미 그는 발을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걸어오는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라서 당혹한다.
잠깐, 하고 소리로 나오지 않는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말도 안 되는 정도로 옆에 다가온다.
저도 모르게 신장 차이를 올려다보려고, 표정이 눈에 들어오는것보다도 먼저,


――세게 끌어당겨졌다.



그대로 한쪽 팔로 굳세게 안긴다.
몸속이 꼬옥꼬옥 아프다.
그의 심장 고동이 가슴에 닿은 귀에 직접 들려온다.
나하고는 다른, 크고 굳센 심장소리.
눈물이 흘러나온다.

"이걸로……만족, 합니까"

그의 어미는 떨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왜냐면 그에겐 결혼상대가 있고, 정말 좋아한다고 거짓말 대본 읽기를 하는것조차도 꺼려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는거야?"
"저는, 당신의…………프로듀서니까요"

그 말에 괜히 가슴이 아파진다.

"당신이……좋을대로 하는것이……저의, 일입니다"

욱신, 하고 꽂힌것처럼 몸속이 아프다. 찌릿거린다.
아니야. 이런걸 원했던게 아니야.
입장을 이용해서, 그저 안겨도 거기에 마음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괜히 상처입을 뿐이다. 아플 뿐이다. 단순한 시부야 린이, 괴로울 뿐이다.

퉁, 그의 가슴을 밀쳐냈다.
그는 전혀 비틀거리지 않고, 그저 한 걸음, 조용하게 뒤로 물러났다. 고개숙인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의 표정은, 확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알았으니까"
쥐어짜낸 목소리는 쉬어서 지독했다. 이래선 노래 부를 수 없다.
"쉴게. 제대로, 쉴게"
그러니까, 하고 계속 말한다.

"두번 다신……이런짓, 하지마"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 토일요일을 합쳐서 3일간 휴가를 따오겠습니다, 라며 사무적으로 그는 말했다. 괜히 가슴이 아파지는걸, 시들게해줘, 시들게 해달라고, 주문처럼 외우며 보낸다.

이젠, 한계였다.



          ※



"안녕. 불러줘서 기뻐"

그렇게 말하고 느슨하게 미소짓는건 아키노 씨였다.
전에 갔던 카페하고는 다른, 평소 내가 칼럼을 쓰고 있는 장소. 평소와 같은, 창측의 자리.
거기에 그녀는 먼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갑자기 불러내서 죄송해요"
일, 있었지요. 그렇게 말하고 맞은편에 앉는다. 그녀는 괜찮아, 라고만 말하고 웃었다.
커피와 홍차를 하나씩 주문한다. 침묵.

뭘 얘기하면 될까, 뭘 얘기하면 안 될까, 잘 몰랐다.
어째서 그녀에게 전화를 해버린건지도.

그저, 시작해버린 휴일에 눈을 뜨고, 달리기 겸 하나코의 산책을 하고. 그랬더니 더는 할 일이 없어져버려서. 자신의 방은 어두컴컴하고, 어느샌가 꽃을 장식하는 일도 없어져서.
그래서, 정신을 차렸더니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것 뿐이다.

왠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일부러 불렀으니까 뭔가를 말해야하는데, 라고 생각해서 말을 찾고 있으니,

"그게 너의 진짜 얼굴이구나"

그걸 안것만으로도 와서 다행이야, 라고.
아키노 씨가 툭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일어나고나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웃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옛날에는 재미도 없는데 웃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지. 지금은 필요만 있다면 어떤 미소도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재미있는거나 즐거운 일이 있었을때, 웃을 수 없게된 느낌이 든다.

음료가 도착한다.
아키노 씨는 홍차에 설탕을 망설임없이 하나 통째로 넣고, 아무 말을 하지도 않고 가만히 나를 기다렸다. 애타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무릎 위를 빤히 쳐다보고, 나는 몇 번이나 망설이고 결국,


"제 안에……내내 뿌리박고 있는 꽃이 있어요"


그렇게 말했다.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미 한참 전에 거기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빨리 시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래, "
"……계속 시들어주지 않아요"

툭툭 말하는 나에게 아키노 씨는 인내심 강하게 어울려줬다.
이런 영문 모를 이야기, 해본들 소용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도 있다. 그래도 말하는걸 멈추지 않았던건 어째서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편이 좋을까, 라고 여러가지로 생각했지만 결국 그대로
"그게……아마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대로 얘기를 지었다.

아키노 씨는 조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고,
"그건 괜찮은거 아니야?"
"괜찮지 않아요. ……나쁜 감정이에요. 지워버리고 싶어요"
즉답했다. 지워버리고 싶은건 물론, 지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감정. 마음, 이구나"
"…………"
"지우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있는건 괴롭지"
"……네"
"그러니까 일에 몰두해서 잊으려고 하는거야?"
"…………아마도요"
"그래……. 그건 굉장히, ……힘들구나"
"그런……걸까……그마저도, 잘 모르겠어요"

괴로웠다고 생각한다. 아마.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것도 잘 모르겠다.
프로듀서와 약혼녀의 모습을 봐도,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전부 정지해버렸고, 텅비어버렸다. 그걸로 다행이다. 남은건 이 꽃을 시들게 하는것 뿐이다.
하지만, 아키노 씨는 말했다.

"사람의 마음에, 좋고 나쁘다는게 있을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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