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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를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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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5, 2018 00:00에 작성됨.

마음을 따를 용기를


2: ◆Hnf2jpSB.k 2017/02/25(土) 20:39:27.29 ID:82PlN37Do



'나는 어쩜 이리도 어리석을까'라고,

요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잦다. 


딱히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뛰어든 다음에 대체 어떤 세계가 있는지, 그런 건 전혀 몰랐다.


나의 프로듀스는 아마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본인조차 이렇게 생각할 정도이니,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안 그렇냐?'고 물어보면 바로 답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더 나아졌을 것이다.


분명히, 아마도.


……그랬으면 좋겠는걸.



3: ◆Hnf2jpSB.k 2017/02/25(土) 20:40:40.52 ID:82PlN37Do



"치하야, 어느 쪽 일이 더 좋아?" 


멍 하니 있었더니 어느샌가 눈 앞에는 프로듀서가 있었다. 

그 손에 들린 건 TV 프로그램 기획서로 보이는 서류 뭉치.


하나는 정통파 노래 방송.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버라이어티 계열의 여행 방송.


"………노래 방송 쪽이요." 


"알았어. 이 쪽 기획으로 아까 얘기를 진행시켜 볼게." 


'치하야라면 이 쪽을 고를거라고 생각했었어.' 작게 미소짓는 얼굴이 그렇게 말했다.

분명 그렇긴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4: ◆Hnf2jpSB.k 2017/02/25(土) 20:41:17.76 ID:82PlN37Do



이전의 나라면 노래 이외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인간을 더욱 키워가는 것.

그게 바로 내 노래가 보다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배웠을텐데도, 나는 무난한 선택을 하고 만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고 말았다.


어째서냐고?

최고의 결과로 보답해서 프로듀서가 기뻐해 줬으면 하니까.

노래 방송이라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5: ◆Hnf2jpSB.k 2017/02/25(土) 20:42:08.20 ID:82PlN37Do



으으음, 이게 아니야. 

이건 그냥 변명일 뿐이야. 


설령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서 실패하고 말더라도 프로듀서는 결코 비웃지 않을 거야.

도전 그 자체를 긍정하고 받아들여 줄거야.

그 결과를 다음으로 이어가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줄 거야.



6: ◆Hnf2jpSB.k 2017/02/25(土) 20:42:43.40 ID:82PlN37Do



그런 사람이었기에 나를 이렇게까지 바꿀 수가 있었다고 생각해.

세상 물정 모르고 고집불통인, 그런 나와 끈기있게 같이 있어 줬어.

나를 부정하지도 않고, 나를 교정하려 들지도 않고.


단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에 대해 가르쳐 주셨어.

내 가능성을 믿어 주셨어.


그런 사람이었기에 나는……



7: ◆Hnf2jpSB.k 2017/02/25(土) 20:43:17.92 ID:82PlN37Do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고 할까, 나는 그 사람에게 볼썽사나운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가슴을 쭉 펴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아이돌로 있고 싶었다.


가벼운 회의를 마친 후 일어선 프로듀서의 등을 눈으로 뒤쫓는다.

사무소 문이 닫히는 소리에 한숨만 깊어진다.


나는 어쩜 이리 어리석을까.


허세를 부릴 필요는 없는데.

프로듀서는, 어떤 나라도 긍정해 주실 텐데.



8: ◆Hnf2jpSB.k 2017/02/25(土) 20:44:09.30 ID:82PlN37Do



*************************** 



"안녕, 치하야." 


"프로듀서……" 


아까 얘기했던 노래 방송의 녹화를 끝내고 준비실로 돌아가니 프로듀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웃는 얼굴이 나를 안심시켜 준다.

나는 잘 해낸 거라고, 그렇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약간의 꺼림칙함이 스며들어왔다.

도전하는 것의 중요함을 나에게 알려 준 이 사람의 기대에, 나는 부응하지 못했던 거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별로 안 좋은 내 표정을 보고 이렇게 말해준다.

피곤해서 이런 표정을 짓는 게 아니라는 걸 필시 알고 있는 거겠지.


9: ◆Hnf2jpSB.k 2017/02/25(土) 20:44:46.64 ID:82PlN37Do



"오늘의 치하야는 지금껏 본 중에서 제일 좋았다니까?" 


하지만 분명 제일 중요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내가 노래 방송을 고른 건지.

어째서 내가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생각한건지.


단지 치하야가 도전을 잠시 주저했던 것뿐.

그리고 그랬던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고.


아마도 프로듀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10: ◆Hnf2jpSB.k 2017/02/25(土) 20:45:42.43 ID:82PlN37Do



"이런 결과가 나온 것도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이 있어서야."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깨닫는 중이다.

그보다 더더욱 커다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 마음.

잠 못드는 밤에 나의 가슴 속에서 날뛰는 이 마음.


알아줬으면 해.


눈치채줬으면 해.


분명 지금, 내 얼굴에 쓰여 있을 테니까.



11: ◆Hnf2jpSB.k 2017/02/25(土) 20:47:04.51 ID:82PlN37Do



"그러니까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어." 


하지만 그래서는 안 돼.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기부터 한 발짝 내딛어봐야만 해.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그 사실이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뜨겁게 가슴 속을 애태우는 이 감정을 이대로 내버려두는 건.



12: ◆Hnf2jpSB.k 2017/02/25(土) 20:47:54.94 ID:82PlN37Do



"프로듀서……" 


"응? 왜 그래?" 


말하지 않아서 후회스러웠던 것.

말로 꺼내었다간 후회해버릴지도 모르는 것.


그 한 마디는,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세계로 이어져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됐던, 나와 프로듀서의 무언가가 바뀔 게 틀림없다.


무서워.


그래도.


그렇다면.


"저, 프로듀서가- " 


견딜 수 없이 고동치는 이 마음을 따라서- 




<끝>



13: ◆Hnf2jpSB.k 2017/02/25(土) 20:50:37.56 ID:82PlN37Do


치하야 생일 축하를 겸해서 SS를 썼습니다.

생일에 어울리는 내용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이 SS는 우르후르즈의 "바보라서"를 듣고 착상했던 글입니다.

원곡이랑은 닮은 것 같으면서도 안 닮은 작품이 되어 버렸지만, 재미있게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치하야 생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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