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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시마무라 우즈키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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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1, 2015 11:03에 작성됨.

린 “시마무라 우즈키의 우울.”

 

 

마침내 봄이 온다.

길었던 겨울이 끝난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주위엔 냉랭한 공기가 아직 감돌고 있고,

계절과 시간만이 우리들을 지나칠 뿐이었다.

나와, 내가 상처주고만 친구의 시간은, 크리스마스이브 이후로 멈춘 채다.

 

 

○○○

미오 “……그래가지고, 다음 주에 무대가 시작되거든. 괜찮으면 보러 와줘.”

린 “응.”

미오 “친구 할인으로 해놓을 테니까, 알았지?”

린 “……응.”

미오 “……트라이어드는 어때? 애들하고 잘 하고 있어?”

미오는 날 신경써주고 있다.

난 그것이 아플 정도로 느껴졌다.

린 “난 잘 되가.”

그렇게 내뱉는 말을, 나 자신은 믿을 수 없었다.

우즈키도 아마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고 미오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우즈키 얘기를 꺼냈다.

미오 “최근에 말이지, 시마무랑 함께 쇼핑 갔다 왔어.”

린 “어디까지 갔었어?”

미오 “근처 슈퍼까지.”

린 “그래…….”

내가 하나하나 무거운 침묵으로 넘어가려는 것을, 미오는 상냥한 태도로 그대로 들어주었다.

나와 우즈키를 이어주고 있는 것은 지금은 미오뿐이었다.

뭔가 있을 때마다 미오가 우즈키의 상태를 보고하고, 나는 그것을 듣고

그렇게 직접 만나지 않고 해결하는 내 추하고 싫은 안도감이

차차 강한 자책감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난 점점 그것이 참을 수 없어지고 있었다.

 

 

난 우즈키가 무서웠다.

내가 만나러 가면 우즈키가 또 상처를 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피하고 있다고 자각했을 때는 이미.

그녀는 수습할 수 없는 곳으로 추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린 “학교에는……?”

미오 “아직 갈 수 없는 모양이야. 새 학기가 시작하고 꽤 지났으니까 이제와서……는 그렇지?”

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미오 “많이 늦었으니까 돌아갈까?”

미오는 그렇게 말했지만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지 않았다.

린 “저, 저기.”

미오 “왜?”

나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며,

린 “……가끔은 346에도 오고 그래. 모두 기뻐할 거니까.”

미오 “아하하……. 마음이 생기면.”

미오는 웃음으로 얼버무렸고 오늘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

―몇 개월 전, 크리스마스이브 당일. 결국, 우즈키는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NG는 라이브에 출연하지 못하고 다음 날, 프로듀서는 NG의 무기한 활동휴지를 전했다.

실질적으로 따졌을 때 해산이었다.

우리들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우즈키를 만나려고 했지만, 프로듀서는 그것을 말렸다.

의사의 진찰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만날 수 없다는 것.

나와 미오는 마치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듯 몸이 굳으면서 서로 이해 안 될 말을 나눈 뒤에.

마찬가지로 내뱉어야 할 대사를 잃은 채 괴로워하는 프로듀서를 보면서.

거기서 적어도 나는, 절망을 맛보았다.

……미오는 어떻게 생각했었을까.

 

 

그 뒤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신데렐라 프로젝트를 빠져나와 트라이어드 프리무스로 완전히 옮긴 것과,

미오가 346를 그만둔 것이 어디가 먼저 일어난 일인지 까먹어버렸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우즈키의 빈자리만이 맴돌았고 매일이 공허했다.

나는 자신을 책망했던 것과 동시에 우즈키를 만나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고민한 탓인지, 트라이어드를 활동에도 영향을 끼쳐 나오나 카렌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었다.

난 우즈키를 위해서가 아닌,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서둘렀다.

 

 

한 편 미오는 346를 그만두고 무대 여배우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몇 번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씩 만나 연습 얘기 등을 듣다보면.

아이돌보다 훨씬 엄격한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미오는 나같이 우즈키가 관둔 것으로 고민을 질질 끌지 않는 모양이었다.

난 그것이 부러우면서, 조금 정나미가 없다고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미오와 대화하면서, 내가 무심결에 꺼내버린 하찮은 후회를,

미오는 의외일정도로 심통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대화가 이어지자 차차 미오도 내가 뱉은 후회에 마찬가지로,

자신의 책임과 후회를 털어냈다.

미오도 나와 같이 가슴 속에 커다란 응어리를 짊어진 채, 얼버무리고 지내고 있었단 것을 알았다.

 

난 미오와 함께, 우즈키를 만나기로 결정했다.

NG 해산 이후로 반년 정도 지난 뒤에서야 말이다.

 

 

프로듀서하고 상담한 뒤 우즈키의 부모님과 연락을 취하자,

지금은 많이 진정되었으니 와도 괜찮다고, 놀랄 만큼 손쉽게 허락해주셨다.

나와 미오는 우즈키의 집을 방문하였고 오랜만에 만난 우즈키는 처음엔 아무것도 안 바뀐 것같이 보였다.

오히려 전보다 밝게 웃는 듯 느껴졌다.

우리들은 뭐부터 얘기해야할지 망설이며 일단 최근 상황을 말해주었다.

우즈키는 굉장해요, 라던가 그렇군요, 라고 미소로 맞장구 쳐주면서,

왠지 오랜만에 만난 기쁨에 즐거운 듯이도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녀가 완전히 회복한 줄 착각하고, 사과의 말을 잊은 채,

“다시 한 번 NG를 시작하자.”

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즈키는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 눈을 바라보며 흠칫했다.

우즈키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하나씩 사라지며 ‘아.’ 나 ‘우.’ 등 단편적인 말만 꺼내면서,

마치 건전지가 다된 듯이 고개가 축 처진 채로 멈춰버렸다.

미오가 몸을 숙이며 우즈키에게 ‘괜찮아?’라고 말을 건넸지만, 그 때는 이미 우즈키의 시야에는 우리들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입만이 뻐끔뻐끔 움직이는 것이 그녀가 ‘힘낼게요.’라고 말하기 위해 괴로워하는 것같이 보였다.

우즈키는 그 저주 같은 말조차 꺼내지 못하며 무표정으로, 마치 인형같이 힘없이 앉은 채로 우리들 앞에 고립하고 있었다.

지옥과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우즈키를 보고 마니, 공포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옆에서 미오 또한 마찬가지로 꺼낼 말을 잊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있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마음을 닫아버린 한 명의 인간을 앞에 두고,

그저 시간이 지나는 것을 견디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미오가 뭔가 떠올린 듯 일어서면서,

우즈키의 부모님을 부르러 갔다.

난 우즈키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의 행동을 깨달았다.

방으로 들어오신 우즈키의 엄마는, 미안하듯 ‘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나와 미오는 돌아가기 전 한 번 더 우즈키에게 이야기를 건네 보려 했었지만,

우즈키는 우리들이 돌아가려 하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듯이,

또는 처음부터 우리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이,

그저 멍하게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나가는 순간에 본 인형 같은 것이, 내가 본 마지막 우즈키의 모습이었다…….

…….

 

 

○○○

그 뒤로 3개월이나 지나고 있었다.

난 그 이후로 우즈키를 만나지 않았지만, 만날 용기조차도 나지 않았다.

우즈키의 최근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지금도 우즈키 집에 빈번히 찾아가는 미오가 말해주는 덕분에서다.

그 고통스러운 망령과 같았던 그녀의 그림자는 아직까지 내 기억에 뿌리내리고 있었고,

그것을 아무리 떨쳐내려 해봐도 결국 내 후회와 초조함이라는 상처를 파고 들 듯 넓혀 가면서,

또 그런 고통이나 슬픔이 찾아오면 어느 새인가 예전에 그녀가 웃었던 모습이 강렬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그 때마다, 난 심장이 조여 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자책하면서, 그렇게 하면 내 죄가 용서될지도 모른다는 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를, 미오는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미오는 내게 힘을 주려고 무대에 초대하려했던 것일까.

지금 내게 있어선 미오의 상냥함이 하나의 지탱점이 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길로 줄곧 뻗어나가는 그녀의 눈부실 정도로 밝은 태도와,

내게는 불가능했던 우즈키에 대한 헌신과 속죄를 한꺼번에 짊어지고 있단 것을 알아버리고 마니,

내 안의 어딘가에서 다른 어두운 감정이 솟아나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건 분명 질투와 같은 것이었고, 결국 우즈키도 미오도 나에겐 지나가버린 친구였다는 말이다…….

 

 

―그 이후로 또 나날이 흘렀고, 난 미오의 무대를 보러갔다.

무대에 서있던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돌이 아닌 연기자로써의 미오였다.

그리고 미오는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스테이지의 주역이 아닌, 그녀의 본래의 성격과 정반대인,

조용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조연 역할을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미오가 어떠한 과정으로, 그 역할을 어떤 기분으로 연기하고 있는지 난 잴 수 없었지만,

그렇게 무대 위에서 그저 한 번 씩 움직였다 급하게 멈춰 한마디 두 마디 대사를 읊고서는,

더욱이 그러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표정을 억제하거나 하는 그녀를 보고나니,

난 그것이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있는 뭔가 떳떳치 못한 것을 진정하게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상상도 했다.

그렇지만 연기가 끝나 무대의 막이 내려가고, 커튼콜에서 다시 무대로 올라간 배우들 안에 섞여,

관객에게 해맑은 미소를 내보이고 있는 미오를 봤을 때, 조금이라도 상상해보았던 감춰졌다고 판단한 그녀의 인상은,

막 깨어난 백일몽과 같이 흐릿해져가며, 또 그렇게 그녀를 통해 뭔가 소원이 이뤄진 것 같은 환각을 본 것이,

모두 꿰뚫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극장에서 나오고 다른 관객들이 줄지어 걸어 나오는 가운데 멈춰선 나는 미오와 만날지 말지 망설였다.

처음 본 연극은 물론 미오의 세련된 연기도 좋았지만 그걸 논외해도 솔직히 재미도 있었고,

뭔가 그리움 같은 것이 드는 신선한 감동과, 초대해 준 감사를 미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휴대폰을 꺼낼지 극장 스탭에게 말을 건네 볼지 생각하고 있자,

한 순간 길 반대쪽 약간 먼 곳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의 모습이 살짝 비춰졌고,

그 다음 순간은, 내가 무대에서 느낀 감상이나 미오 등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서,

그저 인파에 섞여, 그곳에 계속 서있는 슬플 정도로 겁내는 듯한 우즈키의 표정만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난 불현듯이 발견한 우즈키의 모습을, 거의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보아하니 우즈키는 극장 쪽을 먼발치에서 흘깃흘깃 보고있지만 나의 존재는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디 우즈키가 날 알지 못하길 바라듯 그녀에게 눈을 떼고 싶은 기분이 한 가득이었지만,

약간 어두운 그녀의 표정이나 부스스하고 초라한 머리카락,

방에서 입는 듯한 촌스럽고 수수한 옷, 그리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겁내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불쌍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한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우즈키의 시선 안으로 계속 들어가려는 것에도 연연치 않고,

우즈키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전혀 나를 인식하지 않으려하는 것을,

난 이상하게 공허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미오가 우즈키를 초대한 것이라 눈치 챘지만, 바로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의 어디까지가 미오의 계산에 의한 것인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난 이대로 우즈키에게 손을 흔들어 내 존재를 깨닫게 할까하고 엄청나게 망설였다.

그러나 내 모습을 인식한 우즈키가 내놓을 반응을 상상하니 내 몸이 긴장하고 마는 바람에,

이 참기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시간을 헤맸는지조차 모른 채,

그러는 사이에 멀리 있는 우즈키는 뭔가 추위에 떠는 것 같은 행동을 하며 그대로 어딘가로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

난 안도감에 훅하고 힘이 빠졌고, 갑자기 스며드는 듯한 봄의 추위를 느꼈다.

깨달은 마냥 길거리의 소음이 주변에 울리면서 내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

 

 

……바로 내 사고가 팽팽 돌 듯 회전했다.

내 자신이 어째서 안도해야하는지를 생각했다.

여태까지보다 더욱 무거운 현실이 내 주위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자신이 얼버무려가며, 또는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마비되어있었던 무언가가,

이 돌연적이고 일방적인 재회를 계기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깨달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과 연쇄하여 오랜만에 본 초라하고 힘없는 우즈키의 모습이,

내게 얼마나 분노와 혐오를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어디다 부딪혀야 좋을지 모를 격한 감정에 동요되었고,

깨달아보니 난 달리고 있었다.

마치 지금 막 깨달은 것 같이 그녀를 쫓아가는 것을 통해, 마치 자기 자신의 마지막 죄를 인정하길 바라길 빌 듯이…….

 

 

…….

우즈키 “린 쨩.”

우즈키는 나 쪽으로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숨을 헐떡이는 것을 의아하듯 쳐다보면서,

그 손바닥은 어딘가 갈 곳 없는 듯 그녀의 가슴팍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기도하듯 나에게 올곧은 눈동자를 향하는 것이었다.

린 “…….”

난 약간 기침을 하며 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소녀,

지금은 이미 이전과 같이 빛남조차 없고 초라한 소녀가,

그렇게나 대화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던 소녀가,

실제로는 맥 빠질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눈빛을 똑바로 던지고 있는 가운데,

그런 소녀를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소녀는 점점 경아한 듯 나의 상태를 살피면서,

우즈키 “……왜, 그러세요?”

그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로 물어보았다.

난 아까까지 궁지에 몰려 혼탁해지고 불분명하게 된 감정을 어떻게든 해석하려고 하면서,

하지만 아직 소녀다운 추억 속에 있는 듯한 우즈키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사이에,

내 모든 후회를 확대하듯 복받쳐 나온 것은,

그저 한 마디.

“미안해.”

라고, 그것을 말하는 사이에,

이제까지 아무리 후회하고 슬퍼해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이제야 흘러나왔다.

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목소리로 조용하게 울고 있었다.

그렇게 눈앞에 있던 우즈키는, 마치 미오가 곧잘 하는 곤란한 것 같은 미소를 내게 지었다.

 

 

엄청 멀리 경유하면서 시간이 지났지만, 드디어 이제서 평온함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때 나는 아직,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만을 생각한 거지,

사태 그 자체를 전부 원만히 수습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간신히 거슬러 올라가 얻은 것은 크리스마스이브 그 날의 우리들이지,

우즈키에게 있어 나와, 내게 있어서 우즈키는, 아직 시작에 불과한 제로인 관계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야 만다.

 

 

……나는 우즈키와 좀 더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잔뜩 있다고 말했다.

우즈키는 아직 약간 힘이 없는 듯이 보였지만 예전에 보였던 그녀다운 밝은 모습을 간직한 채,

“저도, 린 쨩하고 만나고 싶었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조금 어색한 말하기 어려운 듯한 행동으로,

“얘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말은, 그게 어떤 의미라 할지라도,

나에게 어느 안심감을 부여해주었지만 동시에,

그런 안심감과 함께, 왠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안한 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즈키는 약간 주저하듯 뒷걸음치며,

내가 봤을 땐 그것이 지금이라도 당장 도망치려는 듯 보여 목소리가 나왔지만,

단순히 나를 어딘가로 인도하는 듯 꾸물꾸물 저편으로 걷기 시작한 것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서로 아무 의사도 주고받지 않았는데도, 난 따르듯 우즈키 약간 뒤에서 나란히 걸었다.

우즈키 “오늘 왠지 추워요.”

린 “……응.”

난 언제나 적은 말로 대답한다.

그게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우즈키는, 사람 발걸음이 적은 곳을 걸어가면서,

때때로 갑자기 떠올린 듯 날씨 얘기를 하거나, 길을 걸으며 발견한 무의미한 것들을 나에게 말하거나 하였다.

“아, 고양이.”

그렇게 나와 우즈키가 동시에 목소리를 내거나 하면, 평화로운 웃음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었다.

우즈키 “미안해요.”

그녀가 먼저 그런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내가 순서대로 입을 열려고 하기 전에,

우즈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식으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며 속닥거리듯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몇 개월이나 떨어져 있던 탓에 본래의 우즈키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막상 이렇게 우즈키의 목소리나 모습을 가까이서 하니,

그 속에는 역시 옛날 우즈키의 모습,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분간 그녀와 나란히 걷고 있어보니,

그런 등불처럼 빛나는 예전과 같은 빛은 서서하게 현재 그녀의 풀죽은 인상에 감춰져서,

이젠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계속해서 나는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그저 우즈키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며 나란히 걸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기에 문득 나는,

아까 우즈키가 내뱉은 수수께끼 같은 ‘미안해요’라는 말의 의미를 맞춰보고 있었다.

 

 

2시간 이상 걸어서, 우즈키의 집에 도착했다.

그 극장에서 약 두 역 정도는 떨어져있는 듯한 장소였다.

린 “혹시, 오늘 갈 때도 계속 걸어서 갔어……?”

문뜩 그런 말을 꺼낸 뒤에,

우즈키 “가끔씩은 느긋이 산책하는 것도 재밌어요. 하지만 조금 지쳐버리고 말았네요.”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것이었다.

난 피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어째서 이렇게 알기 쉬운 상상을 맞추지 못한 걸까하고,

예전에 미오가 말해줬던 말을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미오는 우즈키가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가지 못한다고 말해줬다.

그녀에게는 외출조차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힘든 것이라고 말했었다.

오늘 우즈키는 그렇게 먼 곳까지 일부러 걸어서 온 것이고,

그건 분명 그곳까지 갈 다른 수단을 선택하지 못해서였던 것뿐이다.

우즈키 “다녀왔어요.”

우즈키가 뱉은 말은 불 키지 않은 텅 빈 집안에 허무하게 울렸다.

우즈키 “오늘은 저녁까지 부모님이 안 오셔요.”

앞에서 힘내가며 그런 식으로 당연한 듯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난 현관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나는 이제야, 우즈키가 무리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즈키는 혼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공포에 떨면서,

그 길을 걸었던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내가 저지른 이 무책임한 재회를 견디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올 때까지 내가 느끼고 있던 사소한 위화감의 정체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 우즈키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의 틈새에서 새고 있었다.

그녀의 비통하고 한탄스러운 목소리였던 것이다.

 

 

나는 어째서인지 몹시 화가나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상태인 우즈키를 연극에 초대한 미오에게도, 자신의 딸을 내버려두고 집을 비운 우즈키의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우즈키가 예전같이 웃으면서 나를 용서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던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순간 앞에 있는 소녀가 엄청나게 아파 보인다.

상처뿐인 로봇과 같은 형상을, 내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말에서도, 모습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껍질 속의 그녀가, 날 격하게 거절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만을 받아들인 감옥 속 죄인 같이.

 

 

우즈키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 움직임은 느릿느릿하고, 조잡한 동작이었다.

방은 깔끔하게 정리했지만 먼지가 쌓여있고, 왠지 습한 공기가 맴돌았다.

이전에 이곳에 왔을 때와 거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즈키 “하아…….”

우즈키는 한숨을 쉬고 바닥에 툭하고 앉았다.

난 그게 단순히 걸음에 지쳐서 나온 한숨인 것인지,

아니면 이 상황에 대한 초조함에서 나오는 한숨인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우즈키는 방에 들어온 나에게 앉으라는 듯 지시하는 구석은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을 내게 맡겨놓은 듯, 혹은 내 존재를 일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우즈키는 그대로 아무 말도 안하고 앉아있는 채였다.

 

 

거기서 역시, 우즈키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그녀에게서 마지막으로 남은 내게 대한 메시지와 같은 것을 느꼈다.

우즈키는 다시금 무언가 얘기를 꺼내려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앉아서, 서 있는 채로 있는 나의 발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숨쉬기 힘든 냉랭한 분위기가 충만한 상태였다.

난, 미오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우즈키와 대면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우즈키를 구원해줘야 해.

서로 침묵한 상태로, 난 차차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린 “우즈키…….”

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그녀는 그것에 무언으로

약간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난 우즈키가 뭔가 겁이 나는 듯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우즈키는 그것을 참듯 미묘하게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것이 내 눈에 얼마나 슬프게 비춰졌는지.

순간 마음이 괴로워지면서, 이 약한 존재를,

자신을 놀라게 한 자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조차 알 수 없는 듯한

이 불쌍한 존재를, 난 구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우즈키 옆에 달라붙듯 앉아서,

떠는 손을 만지려고 하는 순간,

우즈키는 내 가벼운 마음 씀씀이를 거절하는 듯 살짝 손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또다시 나 자신의 어리석고 멋대로 부린 행동에 절망했다.

난 아까까지 내 자신이나 미오나 우즈키 가족이 품고 있던 불합리한 초조함을,

재차 거듭하려하고 있다.

우즈키를 구하자고 생각한 것, 그 자체가 단순히 내가 우즈키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 우즈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 있어서와 다름이 없는 거다.

우즈키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원하거나 바라거나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서,

또는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갖지 못해서,

그 때문에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무력감에 빠져있는 것이다.

 

내가 훨씬 전부터 의식 속에서 거의 반 확신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을,

그리고 내가 인간으로써 양심적으로 강하게 감추려 했던 그 사실을,

난 이제야 말로써 인정할 수 있었다.

……나나 미오, 그리고 우즈키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우즈키에게 있어서는 참기 힘든 고통인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우즈키 옆에 다가가고 뭔가를 구하듯 소녀의 신체에 손을 대려하고 있다,

그 행위나 존재가, 발가벗은 듯 무방비인 마음의 상태인 우즈키에게 있어서는 해악일 뿐인 것이다.

지금 내가 우즈키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나,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프고 내 마음을 상처 입혀도, 난 그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용서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죄는, 이런 비참한 모양으로 벌을 과하는 것이었다.

난 문득, 미오를 떠올렸다…….

 

 

……미오도 분명, 우즈키와 만나는 사이에 이런 식으로 잔혹한 사실에 마주쳤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미오는 지금까지도 우즈키와 계속 만나고 있기도 하고,

오늘 일어난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미오는 우즈키에게 자신의 연극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난 미오에게 불합리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인 우즈키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거나, 그러면서 무책임하게 관여하고 내버려두는 것을 공공연히 잇고 있는 미오를, 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즈키는 그런 어중간한 마음 씀씀이에 상처받으면서, 그런 미오를 욕조차 하지 못한 채 있는 것이다.

…….

 

 

우즈키 “……린 쨩.”

우즈키가 나 쪽을 보지 않은 채 당돌하게 속삭였다.

난 그 괴로운 듯한 작은 목소리에 동요하여,

어느 샌가 험한 표정을 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눈치 채면서,

그런 내 상태 따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우즈키의 수그리고 있는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건조한 눈동자, 그 앞으로 텅 빈 눈빛…….

그것들이 갖춰진 풍경이, 왠지 그림같이 내 눈앞에 비쳐졌다.

우즈키 “……나도.”

린 “…….”

우즈키 “나도, 미오 쨩이 한 연극……, 보고 싶었어…….”

끊기듯 나오는 우즈키의 목소리는 점점 떨리며 숨이 끊어질 것 같았고,

난 너무나도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앞에 두고,

기절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건 그녀의 조심스럽지만, 있는 힘을 다한 말이면서,

그리고 미오의 일방적인 행위를 받아들이려는 말이기도 하였다.

 

 

우즈키 “…….”

우즈키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내 쪽으로 돌아보면서,

그리고 결국 또 뭔가 포기한 듯 내 쪽에서 얼굴을 돌려 혼자가 되어버렸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이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까 느꼈던 미오에 대한 분노나, 내가 내 자신에게 과하려고 한 잔혹한 벌 등도 전부 잊어버리고,

난, 그저 눈 앞에 있는 상처투성이인 소녀를,

진심으로 불쌍하고,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런 저주와 같은 감정에 지배되어,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 이외의 인간의 존재를 안 것 같이,

난 탐을 내듯 눈앞에 있는 덧없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우즈키는, 내 원하는 듯한 눈빛에 깨달은 듯 깨닫지 못한 듯,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난 옆에 앉은 우즈키의 허리에 손을 감싸,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힘을 주어 내 쪽으로 당겼다.

우즈키가 그걸 거절할 생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그 기세에 따라 힘없이 내 어깨에 쓰러져서,

그리고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듯 나를 향해,

눈을 위로 뜨면서, 몹시 망설이는 듯 조마조마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었다.

 

 

내 곁에 안겨온 그 부드러운 몸에서,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펴져 나와, 내 얼굴을 지나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나에게 다 맡긴 듯한 그녀의,

연약한 존재를 피부로 느끼고 있자니,

문득, 지금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팔을 놓아버린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겁내는 듯한 눈빛, 무의식적으로 떨고 있는 손끝,

내 바로 옆에서 쉬는 따뜻한 입김, 그와 함께 고동치는 풍만한 가슴…….

그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 마치 인형과 같이 사고를 잃은 육체를,

내 자신을 모두 던지고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듯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른다.

피로도 배고픔도, 그리고 내가 나에게 과하려한 벌도,

이렇게 우즈키를 만지고 있는 사이에는 전혀 내 의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우즈키의 형태를 띈 육체를, 과거 우즈키의 영혼과 현재 망가져있는 우즈키의 영혼이 깃들어져 있는 인형을,

내가 원하고자 하는 대로 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난 마침내, 미오가 어째서 그렇게 까지 해서 우즈키를 원하고 있었는지를 이해했다.

 

 

나도 미오도, 자기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우즈키를 구원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우즈키는 그 대용품일 뿐인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잔혹한 행위인가,

이해함과 동시에 배덕감에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난, 날 구하기 위해서, 우즈키를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난 그렇게 해서 죄를 갚지 않은 채, 미오 같이 죄를 겹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 안에 살고 있는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운 우즈키를 알아버리고 마니,

난 악마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즈키는 그런 우리들을 계속해서 용서해나가는 것이겠지.

우즈키는 죽은 사람 같이 사고를 잃어버린 채, 우리들의 인형이 된다…….

 

 

……나는, 떨고 있는 소녀의, 요염하고 땀에 젖은 피부에 손가락을 뻗으면서,

내 등 뒤, 먼 저편을 떨리는 눈빛으로 보고 있는 그 눈동자를 바라본다.

뜨겁게 불타는 듯한 숨결이 내 입술에 불어온다.

주변은 고요한 채, 그러고 있는 나와 소녀가 미미하게 끊기면서 내는 목소리만이,

이상할지 만큼 거대하게 울리는 것을, 나는 슬픈 듯 기쁜 듯한 기분으로 듣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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