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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 안즈 "내일의 사탕"
1: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1:43:15.85 ID:3wbvbtx40
"사랑은 말이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연모하는…거 비슷한 거야!"
"비슷한, 이라니."
애초에 사랑한다랑 연모한다는 뜻이 겹치잖아.
살짝 더러워진 벽, 너덜너덜한 블라인드, 좁아터진 방 안 한가운데서 혼자 커다란 소파.
금이 간 벽에 걸린 시계도 옆에서 굴러다니는 스마트폰도 무시하고 게임기의 홈 화면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저녁을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확실히 밤 시간대였다.
그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고 항의하고 사탕을 받은 게 벌써 두 시간 전, 옆에 굴러다니는 사탕 포장지는 두 자릿수에 이르려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래. 안즈는 날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한 거지?"
"응~."
"그건 사랑이야!"
"그럼 그걸로 됐어."
분명 일을 너무 해서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겠지. 이런 일은 의외로 자주 있다.
밤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는 혼자 잡소리를 시작하곤 한다. 그것도 소재가 장대한 걸 고르는 점이 안 좋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냐던지, 마음이 어쩌고저쩌고, 아까 한 사랑 이야기는 그의 단골 소재다. 들을 때마다 그 실체가 바뀐다.
지난번에 한 얘기에서 사랑은 분명 성욕이라고 했다. '그럼 프로듀서는 안즈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놀리니까 갑자기 무지 당황하는 게 몸의 위협을 느꼈다.
2: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1:44:41.73 ID:3wbvbtx40
"오늘은 늦을 거야."
소파에서 돌아누우니 스치는 소리가 생각보다 방 안에 크게 울려퍼졌다. 혼자 집에 가는 것도 귀찮고, 집에 빨리 가 봐야 침대에서 게임이나 하겠지.
내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묵묵히 작업으로 돌아갔다. '신경 안 써.' 정도는 말해 줬어야 했을까? 혹은 '신경 쓰인다'고 말해서 죄책감을 더해, 우위에 서야 했을지도. 멋대로 기다리는 쪽은 난데, 그는 분명 사탕 한 봉지 정도는 더 꺼내 줄거다.
"안즈가 이렇게 기다려 주는 것도 사랑일지도."
"안 어울리는 짓은 그만두지?"
"그렇네, 나도 성의를 다한 보수로 응해 줘야겠지."
멀리서 엔진 소리가 윙윙거리고 있다.
그가 한숨과 함께 컴퓨터를 덮고 일어선다.
그걸 보고 나도 데굴데굴 하고 소파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따라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실패했다. 그가 차가운 눈으로 이 쪽을 보고 있다.
"내일의 사랑은 뭐가 되는 거야?"
어설프게 끌어당겨진 순간,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등에 힘을 줬다.
업무는 괜찮냐느니 그런 눈치 없는 소리 할 리가 없지. 그 대신 그에게 어질러진 스마트폰이나 게임기 정리를 시키기로 했다.
3: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1:57:05.68 ID:3wbvbtx40
☆
저와 그의 사이에는 이상한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약속' 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엄격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그건 확실히 저희에게 있어 약속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한 달에 한 번 세번째 주 금요일에 이뤄집니다.
저는 대학 강의가 끝나고 평소처럼 신세를 지고 있는 아이돌 사무소에 들릅니다.
그 날은 별 일이 없으면 휴일로, 결코 뭔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사무소에 가는 건 아닙니다.
불규칙하게 일이 들어오는 게 당연한 직업인데 이상하게도 그 날만은 아무런 볼일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이브도, 그에 대비한 레슨도 이벤트도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이끌리듯 사무소에, 그의 곁으로 갑니다. 작은 봉투를 마음에 든 가방 속에 품고.
저희의 약속이 시작된 날엔 하늘이 맑았던 것 같기도 하고, 주룩주룩 비가 내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동아리 친구에게 주기로 했던 직접 만든 슈크림을 소파 위에서 먹고 있었고, 건너편의 TV 속에서는 동네 과자를 예쁜 아나운서 씨가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바삭한 반죽은 베어물 때는 촉촉하고, 문 구멍에서는 바닐라 향이 가득 퍼집니다. 슈크림이 맛있게 잘 만들어졌다는 성취감도 그 때 뿐, 친구가 오늘 대학을 쉰다는 쓸쓸함이 달콤하게 제 목을 지납니다.
걱정스레 연락을 해 그녀에게서 오늘 쉬는 이유는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안심했지만, 반대로 내가 대학교에서 혼자 잘 할 수 있을지 염려를 받아 버린 게 기억납니다.
아무래도 저는 위태롭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저는 잘 하려고 하는데 분명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지요. 그녀의 말버릇은 "아이리는 내가 없으면 안된다니까."로, 그 말을 의심할 틈도 없을 정도로 대학에서 그녀는 저와 줄곧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4: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2:05:04.77 ID:3wbvbtx40
"아이리가 만든 거야?"
찢어진 반죽에서 흘러넘친, 구름 같은 크림을 조심스레 핥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걸어 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면서도 "맞아요."라고, TV의 네모와 슈크림의 단맛 속에 빠져들며 대답했습니다.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지 않은 건 크림이 볼에 묻어 있을지도 몰라 부끄러워서였을지도 모릅니다.
"흐음." 하고 심심한 것처럼 숨을 내뱉는 그를 등 뒤로 느끼고, '맞아, 다음에는 그를 위해서 단 과자를 만들어 줘야지.'그렇게 막연히 생각했어요.
5: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2:05:45.19 ID:3wbvbtx40
시나몬 애플 파이, 딸기 타르트, 커스타드 크림이 든 슈크림.
저는 매 달 세 번째 금요일마다 꼭 사무소에 직접 만든 과자를 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그 날이냐고 하면 명확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전날 밤에는 여유가 생기고, 역시 그 다음 날도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볼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봉투를 내자 그는 급탕실에서 예쁜 그릇과 포크를 하나씩 꺼내 책상 위에 놓습니다.
그 접시는 장식이 없는 소박한 것이지만 저는 그가 낸 접시 위에 자신작인 과자를 놓고, 어떻게 하면 가장 돋보일까 좁은 그릇 위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합니다.
겨우 만족스러워졌을 무렵엔 어느새 그가 홍차가 담긴 잔을 두 개 들고 제 곁에 서 있습니다.
그는 항상 제가 꺼내놓은 과자를 우물우물 정말 느리게 먹을 뿐, 칭찬도 불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과자를 다 먹고 "고마워."라는 감사의 말만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과자를 먹는 동안 그의 책상 반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가능한 그가 있는 쪽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의 기척을 등 뒤로 느끼는 이 순간이 정말 참을 수 없이 좋았습니다.
6: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2:07:57.44 ID:3wbvbtx40
그래서일까요?
사실은 그가 단 걸 잘 못 먹는다는 걸 제가 안 건, 그 약속이 반 년은 더 계속된 후의 일입니다.
우연히 사무원 씨와 같은 소속인 수습생의 대화를 들었어요.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어떻게 할 거냐는 얘기였습니다.
아직 한참 먼 미래의 일이지만 그녀들은 마치 내일이 바로 그 날이라도 되는 듯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대화 속에 그가 단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가 잘 못 먹는 걸 계속 먹여왔다는 죄책감보다도 '단 걸 잘 못 먹는 그가 내 과자를 계속 먹어 줬구나.'라는 게 기뻤습니다.
다 먹고 "고마워"라고 하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보면 그 속에는 확실히 저희들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가 단 걸 잘 못 먹는다는 걸 안 그 달에, 저는 단 맛을 줄인 쿠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단 맛 대신 식감을 즐길 수 있도록 견과류를 섞는 등 공부를 해 가면서, '기뻐해 줄까?'라고 기대에 가득찼습니다.
봉투를 꺼내니 그는 평소처럼 급탕실로 가서, 접시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가져온 접시 위에 제가 만든 쿠키를 늘어놓습니다. 크기도 형태도 가지각색인 그것들을 어떻게 예쁘게 놓을지는 참 복잡해서 평소보다 몰두해 버렸습니다.
저는 그 날만은 과자 준비를 마치고, 홍차를 받고, 소파에 앉아서도 계속 힐끔힐끔 뒤쪽을 돌아봤습니다.
그는 일단 정중히 두 손을 모은 다음 포크를 집었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놓은 쿠키를 각각 세 개의 포크 끝으로 찔러 뚫으려고 했지만, 그 쿠키는 가루를 흩뿌리며 둘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그 조각과 충격은 접시 위에 소용돌이를 일켰고, 쿠키들이 사수하던 아름다운 대열은 단숨에 간단히 무너져서 비참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그는 곤란한 듯이 잠시 멍하니 있었지만 이윽고 포크를 놔두고 부서진 조각을 조심스레 집어올려서 귀찮은 것처럼 입 안으로 옮겼습니다.
7: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19(日) 22:10:47.41 ID:3wbvbtx40
그의 표정은 변함없습니다. 맛이 있다고도, 맛이 없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 안심하고 드디어 그의 모습을 살피는 걸 그만뒀습니다.
"달지 않네."
처음엔 누가 그렇게 중얼거렸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방에 있는 건 저와 그 둘 뿐일 텐데, 어느샌가 제삼자가 들어온 건가 하고 불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건 결코 밝은 목소리가 아니라 낮고 탁한, 제가 처음 듣는 누군가의 불만의 목소리.
뒤돌아 보니 역시 거기엔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물우물 쿠키를 입으로 옮깁니다.
ーーーー다음은. 다음부터는.
특별히 단 과자를 그에게 대접하자. 따뜻하고, 따끈해서 더워질 정도로 상냥한 달콤함을 그에게 건네자.
설레이며 홍차를 홀짝거리니 머스캣 향기 속엔 무심코 얼굴을 찡그려 버릴 정도로 떫은 맛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와의 약속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 달 한번씩, 굉장히 달콤한 과자를 저는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옆에서 과자 드시는 걸 봐도 되나요?"
그렇게 물으니 단 걸 잘 못 먹는 그는 부끄러운 듯이 수줍어하면서 "항상 고마워."라고, 한 마디 중얼거렸습니다.
8: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0:56:43.48 ID:sLaYIaHx0
☆
사랑이란 뭘까?
사랑스럽다. 귀엽다. 지켜 주고 싶다. 친하다. 주고만 싶다. 곁에 있고 싶다.
생각하고 있다. 그리워하고 있다. 이어져 있다. 연결되어 있다.
어차피 말은 말일 뿐이고, 성애(性愛)는 단지 생존본능이야.
애초에 사랑 같은 이상적인 건 존재하지 않아.
모두가 질릴 정도로 사랑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분위기에 있어서 익숙하고, 글 가운데에도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에 현혹되어선 안 돼요.
사랑은 누군가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 뿐. 그것만으로 충분한 겁니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워.
이렇게나 사랑하고 있어.
9: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0:57:45.13 ID:sLaYIaHx0
"그,그래서. 뭐랄까, 절친이 말이지."
눈 앞에 있는 파스타를 포크에 빙글빙글 감는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니, 사실은 뭘 하고 있는지는 이미 파악해 두었어요.
분명 지금은 내 도시락을 먹고 있겠지요.
오늘 반찬도 그가 좋아하는 걸 갖춘 뒤에, 설령 바쁘더라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게끔 애정을 담은 주먹밥을 만들어 놨어요.
과연 기뻐해 줄까?
"그 사람은 그런 말 안 해주고……해 줘도 곤란한데요……"
빙글빙글. 빙글빙글.
그와 만나면 말하고픈 게 잔뜩 있어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목욕은 어떠신가요? 저녁밥 준비는 다 됐으니 좋아하는 쪽을 고르셔요. 물론 저를 고르셔도 괜찮아요.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으니까요.
저기, 그런데 슬슬.
"사, 사랑이란 건 뭘까?"
저희들도 결혼, 이라던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10: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0:58:55.22 ID:sLaYIaHx0
"두 분 다 행복하신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자 한 쪽은 작게 미소를 띄우고, 다른 한 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붉힙니다.
파스타를 한 입 포크에 감았지만 이제는 배가 불러서 먹지 못하겠습니다. 맛있었어요.
그녀들과는 옛날에 업무상 유닛을 짰었습니다.
'유닛'으로 저희는 틀림없이 예전에, 어떤 시기에 말입니다만, 세 명이서 그룹 아이돌로 활동했습니다.
그럭저럭 팔리긴 했지만 유명과는 거리가 먼, 그런 위치를 평행하게 나아가 프로덕션이 도산을 선고받을 때쯤 자연스레 소멸했던 유닛입니다.
개인적인 연락도 요새 들어서는 하지 않게 되어, 이렇게 다시 만나 식사를 하는 건 수 년 만입니다.
"마유 씨도 웃고 있네."
쇼코 짱.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여러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졸린 듯한 눈동자로 이쪽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와 마주하면 어느샌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 안쪽까지 허용해 버리게 됩니다.
형용하기 어려운 근질거림에 시선을 돌려 버리자 불안한 듯이 사과해 옵니다.
정말이지 너무 귀엽고 무방비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노 짱, 눈을 돌린 곳에는 걱정스레 이 쪽을 바라보는 그녀가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금세 얼굴을 돌려 버리는 게 작은 동물 같아서, 저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고 장난을 치게 됩니다.
곱슬이었던 머리카락은 지금은 부드럽고 푹신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빙글빙글 하고 손가락을 얽으니 '아우우'하는 소리를 내 버렸습니다.
11: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0:59:52.96 ID:sLaYIaHx0
"마유 씨, 변하셨네요."
"그런가요?"
"옛날보다 좀 더 심술궂어지셨는데요."
그건 그 말대로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이렇게나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한테 사랑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아주 조금 심술궂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전에 아이돌과 프로듀서 관계였던 사람들이 연을 맺는다. 두 사람 다 그런 관계가 가깝다.
그 사실은 제게 있어서 흐리게 빛나는 광명 같은 것으로, 피처럼 새빨간 독이기도 해요.
"쇼코 짱, 결혼은 특별한 건가요?"
노노 짱의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손가락으로 감으면서 무심코 그런 질문을 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정도는 그녀에게 용서받을 수 있겠지요.
노노 짱도 흥미가 있는지 시선을 힐끔힐끔 쇼코 짱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참에 노노 짱한테도 언제 결혼할 생각이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녀는 책상 밑에 틀어박혀 버릴지도 모릅니다.
쇼코 짱은 잠시 생각나는 시늉을 한 다음 눈 앞에 있는 컵을 손가락으로 쿡 찔러 물결을 일으키면서, 제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봅니다.
매끈한 입술이 칠칠치 못하게 풀려 있습니다.
"결혼이 아니라, 절친이, 특별해."
그녀의 말은 막연히 치고 있었던 막 너머로 제게 울려왔습니다.
저는 비로소 그녀가 예전보다 훨씬 요염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12: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01:23.34 ID:sLaYIaHx0
…………
"어서 오세요, 수고하셨어요."
"또 여기 있는 거야?"
"마유는 당신 거니까요."
가볍게 말하자(저는 가벼운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지만) 그는 곤란한 듯 무슨 말을 할지 몰라하는 것 같았기에, 대화를 여기서 끊었습니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양 손으로 받아서 거실에 돌려 놓습니다.
가방을 받아들 때 손과 손이 서로 닿게 노력해 보았지만 그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무척 수줍어해 줬는데, 저는 지금도 이렇게 부끄러운데, 이제 익숙해진 걸까요.
방 안에 그의 발소리가 울립니다.
탁 탁 탁, 존재감 있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입니다.
이 소리가 멈추고 옷이 스치는 소리로 바뀌었을 무렵, 저는 눈을 돌리고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어흠, 그러면.
"목욕하실래요? 밥 준비도 되었으니,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그리고.
"밥이 좋겠네, 라고 할까."
그는 질린 것처럼 도리질을 쳤습니다.
그 도리질은 일부러 그렇게 큰 동작으로 연기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내 집에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평소와 같은 정형구가 자아내집니다.
그의 집에 방문하기로 한 지 벌써 1년도 넘게 지나, 그 동안에 계속 들어온 말입니다. 그 쪽은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13: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02:40.30 ID:sLaYIaHx0
아뇨, 변명을 한마디 하자면, 저도 이렇게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었어요.
그에게 폐를 끼칠지도 몰라요.
아무리 제가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도, 사람의 관계는 수치처럼 단순한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그렇듯이 저의 여정도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요.
아이돌과 프로듀서, 그 관계는 저희들을 강하게 묶는 붉은 실이 되리라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언젠가 아이돌로서 제가 어딘가에 당도하게 된다면.
그런 막연한 꿈을 가지고 나아간 길은 부서져서 사라져 버렸어요.
자기가 어디에 도착하고 싶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목에 걸린 사슬을 만지니, 거기에는 목걸이 대신에 이 방의 여벌 열쇠가 묶여 있었어요.
저기, 여기에 오지 말라고 하실 거였으면 왜 이 열쇠를 제게 주신 건가요?
"저기, 여보."
"결혼 안 했잖아."
……혼나 버렸어요.
느낌은 좀 다르지만, 아까 했던 말은 부정당하지는 않았는데. 좀 유감스러운 기분이에요.
맞아, 우리들은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렇기는 커녕 사귀고 있다는 표현조차 저희의 관계를 바르게 표현하지는 못해요.
프로듀서를 사랑한 아이돌과 자기를 좋아하는 아이돌을 담당한 프로듀서의 연장선상.
역시 그는 제게 있어서 특별해요.
자화자찬이 아니라면, 그에게 있어서도 저는 특별하다고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그 사실에 확실한 형태는 없어요. 하지만 분명 그것만으로 충분할 거에요.
당신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런데,
"저기, 서방님."
"서방님이 아니라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불안해지는 저를 부디 용서해 주세요.
14: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19:27.25 ID:sLaYIaHx0
☆
내가 결벽증이 된 계기는 초경을 경험했을 때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깔끔한 걸 좋아하긴 했다. 틈만 나면 멸균 클리너로 어딘가를 닦곤 하고, 이유가 어떻든 한 번 쓴 도구는 젖은 천으로 닦아냈다.
가위나 펜, 필요한 게 필요한 곳에 없으면 진정이 안 돼서 언제 어느 때라도 그것들을 잊어버리고 딴 데다 두는 일이 없도록 각각의 이름표가 붙은 상자 속에 잘 넣어뒀고, 어딘가에 얼룩이나 더러움을 발견했을 땐 부모님의 원수라도 발견한 마냥 닦고 또 닦았다.
분명, 나는 단 하루 목욕탕에 들어가지 못하기만 해도 죽어 버리겠지. 그런 약한 생물이었다.
그래서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걸 처음으로 본 날, 나는 어딘가에서 되돌이킬 수 없을만큼 더러워져 버린 게 아닐까 하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나였기 때문에, 그녀를 '더럽다'라고 생각해 버린 점에 대해서는 부디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게 얼마나 실례되는 생각인지 잘 알고 있고, 애초에 너무 심한 건 나다.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하지만 단지, 슬리퍼를 신는 사무소에서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와서, 빗으로 빗지 않은 버석버석한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 그녀에게 나는 역시 좀 싫어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책상 밑에 들어가서, 거기에 맨발로 털썩 주저앉아서, 잡균들 덩어리……아니, 균 그 자체인 버섯들을 행복하게 끌어안은 모습을 보면 '그녀는 분명 나와는 별개의 생물이구나.'라고 생각해 버릴 정도다.
그녀는 무척 사랑스럽고 예뻤다.
내가 담당하는 아이돌이자, 내 절친이기도 했다.
15: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21:31.24 ID:sLaYIaHx0
나의 결벽증은 너무나도 도가 지나치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나보다 꽤 나이가 적고, 솔직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요구했다.
우선 방 안에서는 반드시 슬리퍼를 신을 것.
그리고 밖에서 사무소로 들어왔을 때는 방에 들어오기 전에 개인실(우리 사무소엔 화장을 하거나 지우는 목적으로 쓰이는 방이 있다.)에서 손을 씻고 양치를 하고, 머리도 잘 정돈할 것.
이건 기본적으로 내가 담당했다.
여러 부위가 뻗쳐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상하게도 빗으로 슥슥 잘 빗겨졌다.
하지만 빗은 다음에는 원래대로 중력을 거슬러 버려서, 아무래도 보람이 없었다.
요점은, 내 대략적인 요구는 그녀의 몸이 어느 정도 청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와 장소에 따라 그녀의 얼굴을 닦기도 하고, 머리를 정돈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말하는 대로 해 주었다.
그리고 마치 내게 몸을 맡기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이, 기쁘게 웃는 것이다.
단지, 그런 그녀도 결코 양보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었다.
양보하지 않는다고 하기엔 좀 다를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에게 결코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 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려나.
그건 바로 책상 밑에서 그녀가 버섯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는 시간이었다.
어째서 내 책상 밑에서냐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 점에서만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부러 신겨 둔 슬리퍼를 벗고, 지면과 일체화한 것처럼 털썩 주저앉는다.
그 모습이란 마치 그녀의 몸의 연장선으로 책상 밑이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듯 했다.
나는 역시 그 행위를 좋게 여기지는 못했지만, 신성한 분위기 또한 느끼고 있었다.
그 때의 그녀는 다른 생물은커녕 머나먼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았다.
16: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22:53.88 ID:sLaYIaHx0
나는 그녀의 신성불가침한 시간에 간섭하는 대신에, 적어도 책상 밑을 어느 곳보다 깔끔하게 만들려 노력했다.
매일 아침 일찍 와서 책상 밑을 들여다보고, 작은 쓰레받기로 가볍게 먼지를 쓴 다음 세제로 살짝 적신 스펀지로 책상 다리를 깨끗이 닦았다.
백 엔에 산 세 장짜리 걸레 중 한 장을 물에 적셔서 바닥 전체를 닦고, 다른 한 장의 마른 걸레로 마무리를 짓는다. 마지막 한 장은 예비용으로 책상 구석에 남겨둔다.
그리고 내 전용 슬리퍼도 책상 구석에 준비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점차 다른 사람들이 사무소에 온다.
그렇게 '똑똑'하고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문에 울리면 나는 가방에서 빗을 꺼내어 방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어주는 것이다.
가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혹시, 그녀와 버섯들의 그 좁은 공간 속으로 나도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하고.
거기엔 더러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단지 우리들만 있을 뿐. 영원한 시간이 흘러간다.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 그녀는 역시 받아줄 것이다.
어쩌면 "뭐야, 역시 들어오고 싶었던 거구나. 여긴 마음이 편안하니까."같은 말을 해줄지도 모른다.
더러운 곳에선 죽어 버리는 나는, 깨끗한 곳에서도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끌어안은 버섯들의 갓은 매끌매끌해서, 그 모습은 나도 모르게 만지게 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17: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26:46.30 ID:sLaYIaHx0
☆
"사랑이란 말이지……실은, 이 세상엔 없는 거야!"
힘차게, 영혼에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이는 무척 충격적인 말이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있다고 생각했던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경악하겠지. 자,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그녀는 나를 외면하고 휴대용 게임기에 빠진 상태였다. 좀 시간이 지나도 대답이 없었다. 대신에, 삑삑 하는 그 자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낡아빠진 방 안에 울려퍼질 뿐이다.
의미도 없이 블라인드를 손으로 헤집어 열어 보거나, 도로 되돌리거나 했다. 혹시 들리지 않았던 걸까. 아니아니, 그럴리가 없지. 영혼이 떨릴 정도로 마음을 담았을 텐데.
"그럼 있지, 안즈의, 안즈의 이 감정은……대체 뭐야?"
그래서일까, 점점 블라인드를 손가락으로 가지고 노는 게 즐거워지기 시작했을 때 느닷없이 그런 대답을 듣자 당황해 버렸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심장은 두근 하고, 만화처럼 정말 두근 하고 뛰었다.
가슴 속에서부터 천천히, 한숨이라고도 심호흡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숨을 토해냈다.
18: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27:41.11 ID:sLaYIaHx0
저녁이 밤으로 바뀌어가는 이 시간대는 나에게 있어서 해방의 시간이었다.
언제나 잔소리가 많은 여상사. 남의 책상 위가 무슨 상관이야? 생일 선물로 멸균 클리너라니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서 답도 없다.
옆에서 기계처럼 주먹밥을 먹는 직장 동료. 말을 걸어봐야 붙임성이라곤 없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급탕실에 점점 늘어가는 식기는 이 녀석 짓인 것 같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사무소에는 그런 녀석들이 아직 더 있다. 귀찮은 녀석들만 있다.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포위되어 일하고 있다.
그래도, 이 시간엔 해방되는 것이다. 시간에 엄격하고 유능한 결벽녀와 로봇남은 물론이고 늘어지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도 빨리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해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사무소 안에는 나와 다른 한 사람뿐이다.
단 둘뿐인 이 시간에 나는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거겠지.
사랑이라던지 사랑이 아니라던지, 적당히 시덥잖은 얘기를 하면 그녀는 적당히 시덥잖게 대답해 주니까, 그건 무척 기분이 편안해져서 좋단 말이지.
그녀의 농담을 얼버무리듯이, 파우치에서 사탕을 꺼내어 소파를 향해 던졌다. 그녀에게서 좀 먼 곳에 떨어져버린 그것을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주우려 하고 있다.
19: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29:25.55 ID:sLaYIaHx0
"프로듀서는 아마 나르시스트에 인간 혐오가 심해서 그런 걸거야."
"무슨 소리야, 나만큼 사랑을 신봉하는 사람은 없다구."
"사랑 같은 거 없다고 말한 직후잖아."
"너를 보면서 그렇지도 않겠다고 생각한 거야."
"적당적당하네." 그렇게 말한 그녀는 결국 사탕에 손이 닿지 않은 것 같아서, 소파 위에서 다시 편하게 늘어져 있었다.
사탕을 내던진 건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다. 자신이 좀 한심했다.
"적어도 나는 너를 좋아하고, 사무소 사람들도 다 좋아한다고."
"그럼 안즈를 좀 더 응석부리게 해달라구."
"알았어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사탕을 줍는 김에 그녀도 주워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억지로 잡아당겨 어깨에 들쳐메려고 했는데 꾸물꾸물 어설프게 업히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20: 이하, 무명을 대신해서 SS정보 VIP가 전해 드립니다. 2017/03/21(火) 21:30:17.26 ID:sLaYIaHx0
"가끔은 공주님 안기라던지, 사랑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시끄럽고, 짊어진 무게는 살짝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면 내일은 갑자기 공주님 안기를 해주마.
어차피, 오늘의 이 대화를 그녀는 잊어버렸을 테니까.
으음, 다중 화자 시점 SS는 처음 해 보네요
그나저나...쇼코 프로듀서는 여자일 텐데 약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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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이리 파트는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단거 싫어한다더니 안 달게 해 주니 싫어하는..?
어찌 되었던, 다른 이들과 아이리는 다르다. 라는 거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