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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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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7, 2018 17:44에 작성됨.

P 「■■,**,○○」 3

 


  五.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뇨, 무슨 말이냐고 하셔도……」

  다가서봐도 효과는 없었다. 접수대의 남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곤란한건 이쪽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나는 라이브 회장이 되었을 시민홀에서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비닐 우산을 들고있는 체육복 차림의 그녀들이 종종걸음으로 따라온다.

  「프로듀서.……어떻게 됐어?」

  물으면서도 내 안색으로 헤어렸는지 ○○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오늘 여기서 라이브를 할 예정이 없대. 아니, 있었지만 얼마 전에 없어졌다고.」

  「뭐야, 그거 무슨 소리야?」■■가 따진다. 나도 대답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중지됐다는 말이지? ……우리한테 연락을 잊은거야?」 **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심하게 치명적인 미스이다. 이쪽은 한달 이상 전부터 계속 이날을 시야에 넣고 움직이고 있었다. 준비한 의상과 기재, 아이돌들의 레슨이 전부 쓸모없어 지는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일이 무너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만의 하나를 위해서 수첩에 기입한 오늘의 메모를 본다. 이벤트 회장도 날짜도 정확하다. 주최자는……미시로 프로. 선배가 기획한 합동 라이브였다.





  먼저 차로 돌아가라고 아이돌들에게 말하고 나는 선배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업무중에는 언제나 3콜 이내에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그날의 콜음은 매우 길게 이어지고 나서야 중단되었다.

  『……미안, 기다렸지. 무슨 일이야?』

  왠지 피곤이 쌓인듯한 목소리였다. 초조함에 따지려고 했지만 그 음색에 조금 평정으로 돌아온다.

  「……고생하십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연락했습니다.」

  『뭔데? 미안하지만 지금 바쁘거든. 간략하게 부탁할게』

  「그럼 서론 없이.……오늘 합동 라이브 중지됐습니까? 저희쪽은 아무런 이야기도 못들었습니다만」

  그렇게 물으니 선배는 『뭐……?』라고 중얼거리고 잠시 후에 내 귀에 면목없는 목소리가 닿았다.『……미안해. 전달 안됐구나. 완전히 이쪽의 미스야, 정말로 미안해』

  「끝난 일입니다. 사죄는 이제 괜찮으니까 일의 경위를 알려주세요.」

  『아아, 미안. 실은……』 대답하려했을 때 통화중인 전화기 너머에서 큰 목소리가 선배의 이름을 불렀다. 『알고있습니다, 바로 갑니다! ……젠장, 미안, 정말로 미안한데 나중에 하자. 여유가 없어. 지금 미시로가 위험해』





  빠른 어조로 거기까지 말하고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통화가 끊겼다. 저쪽 사정으로 휘둘렸는데도 이런 푸대접. 역정을 내는게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나에게 분노의 감정은 적었다. 그것보다 내 의식을 이끌어내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시로가 위험해?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곳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지만 선배의 모습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사정을 알고싶다, 아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다.

  일단은 돌아가야하나. 나는 빗속을 운전했다.





  사무소에 도착하자 거의 동시에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하지만 전화를 위한 콜은 아니었다. 메시지를 수신했다는 통지음. 선배의 메시지였다. 『오후 3시, 거기로 갈게』『시간이 안되면 말해줘』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답장을 보내고 차에 실어둔 기재들을 내렸다.

  그녀들에게는 오늘은 일단 해산이라고 전하고, 보고를 위해서 사장실로 향했다.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고, 문고리를 돌려봐도 움직이지 않는다. 부재중인가. 무심코 문을 후려갈겨 버리고,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초조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 수 없이 내 책상으로 돌아와보니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가도 된다니까?」

  「갈 리가 없잖아」라고 ■■가 말했다.

  책상에 머그컵이 올라온다. 「프로듀서는 뭐 마실래?」**의 걱정스러운 말에 커피를 부탁했다. 제각각 취향껏 산 4개의 머그컵에 각설탕을 떨어뜨리자 제각각 다른 소리가 울려퍼진다. 오피스 플로어에는 전기포트가 있다. 물을 끓여 타온 인스턴트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우선, 오늘 라이브는 꽤 전부터 중지됐고, 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라는 거지?」

  「그래」 긍정했다. **의 확인이 오늘 일어난 일을 단적이며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말이 안되지 않아? 중지된건 그렇다치고……아니, 그것도 말도 안되지만! 연락도 없는건 더 말이 안되잖아」 ■■가 투박스럽게 말한다. ○○도 그에 편승한다.

  「응. 솔직히 조금, 유쾌하지 않……네. 제대로 설명을 들어야겠어. 경우에 따라서는 화낼거야.」

  「알아. 설명도 들을거고.……아무래도 사정이 있는 모양이야. 아직 자세히는 못들었지만」

  「사정도 없이 이런 일이 생긴거라면 문답무용으로 책임자 때릴거야」

  「연락도 안한 이유는 뭐래? 이유가 있다고 전부 다 괜찮은건 아니잖아」

  「……나한테 따지지 마. 나도 알고싶어.」

  명백하게 기분이 나쁜 ■■와 ○○, 나의 눈치를 보며 **이 「아핫」하고 갑자기 웃었다. 목소리는 메말라있었다.

  억지로 웃으려 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자기혐오한다.

  「저기……있지, 프로듀서. 선배님은 3시에 온댔지?」

  「……응. 그렇게 연락왔었어.」

  「그럼말야, 저기……점심, 뭐 먹을까. 나 배고파~! 다들 슬슬 배고프지? 그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다. 그것이 명백하게 보여서 참지 못할것 같았다. 아플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에서 나는 아무것도 못했다. 나는 최연소인 그녀보다도 미숙했다.

  「……배달이나 시킬까」

  나갈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상황도 여기 있는게 좋다.

  ■■와 ○○도 나와 같은 심경──으로 보이는 표정이었다. 셋 다 찬성했기에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뭐 먹고 싶어?」

  「……피자」 「초밥」 「으응……중화」

  「조금정도는 맞춰볼 노력을 하자」 내가 말했다.

  순간, 공기가 펑하고 터졌다. 합의한듯이 넷이 동시에 뿜었고 그것에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모두가 이런 험악한 얼굴로 식사하다니, 그런건 사양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의 리퀘스트인 중화를 고르고, 점심 식사는 평소처럼 화기애애하게 흘렀다.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걸 달라는 **도, 고명인 김치에 질색하는 ■■도, 혼자 담담히 다 먹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도. 평소의 광경은 나를 안심시켰다.





  그 후,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에 사무원님이 내 책상으로 달려왔다.

  「프로듀서씨, 미시로 프로에서 손님이 오셨어요. 응접실 B로 모셨어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무말 없이 그녀들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동석할 마음이 만만해 보였다. 거절할 이유도 없으니 데리고 2층의 B실로 향했다.

  마음대로 들어오라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려있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검정색 소파에 앉은 선배는 차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똑똑하고 목재문을 두드리자 어깨를 작게 움츠리며 일어선다. 그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언제나 신세 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의 미숙한 실수로 커다란 폐를 끼친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직 실내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양 깊게 허리를 숙인다, 그의 맞은편 소파로 이동하고 나서, 「사과하는데 익숙하지 않으시네요」라고 빈정거렸다.

  고개를 든 선배는 우울해보이는 얼굴을 나에게 향했다.

  「……정말 미안해」

  「사과할 상대가 틀렸습니다.」 나에 대한 사죄는 질릴 정도로 들었다.

  이어서 들어온 세 사람을 보고 선배는 바로 납득해서 「……그 말 대로지」라고 말하며 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미안해」

  재차 깊이 내려간 머리는 아이돌들을 향하고 있었다.

  오랜 관계인 나조차도 이렇게 기특한 선배는 처음 봤다. 그녀들도 당연히 평소의 모습밖에 모를테니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었었다.





  서로 자리에 앉아 마주본다. 테이블 너머의 선배는 광대뼈가 두드러져 보였다. 원래부터 말랐지만 한층 더 살이 빠진 그 모습은 꽤 건강하지 못해 보였다.

  「……그럼. 무슨 일이 있어서 오늘 같은 일이 생겼는지, 였지. 꽤나 큰 일이니 아마 금방 널리 알려지겠지만」

  선배가 조용히 입을 연다. 나는 그의 말을 재촉했다.

  「우선 내 설명을 한번 들어줘. 질문은 나중에 얼마든지 받을테니까. 알았지?」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고마워. 그럼, 일단은 전화로 말한 대로야. 미시로가 지금 상당히 위험해……아니, 이건 약간 어폐가 있나」

  미시로·그룹은 여전히 건재하다. 다만 그 휘하의 예능 사무소인 예능 사무소 미시로·프로덕션의, 그곳에서도 특히 아이돌 사업부가 현재 매우 요동치고 있다. 그것이 선배의 입으로부터 나온 첫 설명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하면」 그렇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바로 삼켰다. 질문은 나중에 하기로 했었다. 선배는 살짝 턱을 뒤로 빼고는 재차 말을 꺼냈다.

  「우리 아이돌 부서 전체를 통괄·관리하는 상무 이사가 얼마 전에 돌아왔어. 얼마 전까지는 미국에 있었는데……그리고 단번에 일이 커졌어」

  통괄·관리를 담당하는 상무 이사……그 존재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미시로에 재적하고 있었을 무렵에는 미국에 있었겠지.

  미시로 프로는 다양한 아이돌을 대량으로 안고 있었다. 정통파 아이돌에서 구태적 정통파 아이돌, 버라이어티 특화, 보이시, 매니시, 걸리시, 펑키시, 어덜티한 사람도 있고, 10살도 안되는 아이마저도 있다. 심지어는 자칭 외계인이나 산타클로스 등의, 이른바 「별종」까지 나타났을 정도. 이런 폭력적일 정도의 개성을 모은 점이 미시로의 특색이었다──그랬지만.


[모바마스]P 「■■,**,○○」

http://www.s-translation.jp/cgi-bin/web.cgi?url=http://elephant.2chblog.jp/archives/52218205.html&languageWeb=JK&mode=T



  「상무는 그룹 창업자의 직계혈족인데다가 실력좋은 엘리트여서 젊은 나이부터 미국을 자주 들락거리며 배운 사람이라더라. 이번에 본격적으로 귀국해서 미시로 프로의 현상을 확실하게 파악해보니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 이렇게 표현하니 소인배처럼 들리지만……뭐, 경영자니까. 한마디로, 『현 상황은 비효율적이다』란다.」

  모든 아이돌은 아이돌 다워야 한다. 그것이 돌아왔다는 상무의 주장이었다고 한다. 아이돌은 아이돌 답게. 과거의 연예계같은 스타성을, 다른 세계같은 스토리성의 확립을 바로 요구했다.

  개성을 살리는 현재의 방식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늦는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비효율은 배제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재편성하기위해 리셋을. 전개중이던 아이돌 사업부의 프로젝트는 전부 백지화되었다고 선배가 말을 잇는다. 이번 합동 라이브가 중지된 것도 그 영향 중 하나.

  그야말로 독불장군. 미시로 정도의 대기업이면 상층부와 말단은 거리가 멀다. 톱의 결정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이상 뒤집히지 않는다. 내려진 명령은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그런건……그런건!」**이 테이블을 쾅 치며 힘차게 일어선다. 그 반응을 예견했는지 선배가 그녀를 달랜다.

  「정말로 미안해.……우리들도 납득 못하고 있어. 무엇보다도 아이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

  일어선 **은 감정을 향할 곳을 잃은듯이, 화난 표정 그대로 털썩 앉았다.

  선배는 이제야 찻잔에 손을 댔다. 한모금만 마시고,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여태껏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사내가 정신없다보니 일이 백지화됐다고 연락하는 것을 잊고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탄식을 한번 새었다. 미시로가 위험하다──거기에는 거짓도 과장도 없었고, 정말로 큰 일이 일어났다.

  「내부분열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아아……뭐, 그렇게 되지. 다들 불만이 많지만 톱에서 내려온 지시야. 받아들이는 녀석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한편 나같은 녀석도 여기저기 있어.」

  「미시로의 아이돌들은 어떻게 되는거죠?」라고 ○○가 물었다.

  「상무가 좋게 보지 않는 타입은? 이라는 의미지.……지금은 모른다고 밖에 말 못하겠어. 계약같은 문제도 있으니 바로 해고되진 않겠지만.」





  「그렇게나 과격합니까?」

  내 물음에 목을 비튼다. 「과격……하다기 보단, 고집이 강하고 성미가 급하지, 그 사람은. 게다가 틀린 말은 안하니까 곤란해.」

  「……선배님도 개성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지만……방식으로서, 감정을 배제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이익을 회수한다면, 상무의 말도 아마 틀리진 않다고 생각해.……정작 아이돌들이 반발하고 있으니 정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하지만 경영자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말에는 명확한 모순이나 결함이 없어. 찔러볼 여지도 없어서 곤란해.」

  틀리지 않다.──라는 것인가. 어질, 시야가 어긋난 것 같았다.……뭐지? 선배의 말에서 뭔가 기시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일텐데?

  그런 이상한 감각에서, 평소와 다른 ■■의 불안한듯한 목소리로 깨어났다. 쭈뼛쭈뼛 손을 올리고,

  「저기. 질문 있는데요.」

   선배가 그래, 라고 재촉한다.




  「……프로젝트가 백지화되서, 이번 합동 라이브도 없어진게, 맞죠?」

  「그래」

  「그러면」 그 눈동자는 두려운듯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저희들의 일은 어떻게 되나요? 미시로에서 받은 일……이거 말고도 많이 있었지? 프로듀서」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그 말을 들을 때까지 생각도 못했다니 난 대체 얼마나 둔한건지. 고개를 벌떡 들고 선배의 얼굴을 봤지만 그는 고개 숙이고 있었다.

  「……자세하게는 나중에 따로 알릴거지만, 확실하게 사라지는 일이 몇개쯤」

  아니, 선배가 고개를 흔들었다. 「몇개나. 있다고 생각해. 다시한번 사과할게.」

  「그럴수가……」

  「어, 어떻게 못하나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의 목소리에 선배가 힘없이 대답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아니, 상무가 돌아온 것이 알려지고나서, 그러니까 사실은 꽤 전부터지만. 정말 여유가 없어.」

  「너무 제멋대로인게 아닌가요」

  「정말로 면목없어.」

  날카로워진 ○○의 추궁도 흘려진다. 거기서 눈치챘다. 선배의 안색이 없다. 너무나 차갑게 보였다.

  「사과하러 와서, 거기다가 일을 빼앗는 꼴이 됐는데, 말로만 사과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래도, 이해해 줘. 납득하지 않을 수 없어.」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 그의 시선이 나를 꿰뚫는다──아아, 그러니까 이 사람은 유능하겠지. 우선순위와 취사선택을 착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능한 사람의 필수조건이다.

  「나는 너에게 호의적이야. 네 담당 아이돌들도 마음에 들어……하지만, 알잖아.」

  내뱉어진 말은 잔혹할 정도로 사랑으로 흘러넘쳤다.

  「나는 너희들보다 우리 아이돌들을 더 좋아하니까. 소중하니까. 너희들을 위해서 우리가 피를 흘릴 수는 없어.」

  미안.

  그는 마지막에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후에 선배의 문자가 도착했다. 미시로의 현 상황을 알기 쉽게 정리한 그 말미에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열어보면 미시로에서 넘겨준 일 중에서 캔슬 된 것들이 날짜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과 수첩을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취소선을 긋는다. 전부 긋기도 전에 불쑥 군소리가 튀어나왔다.

  「……전부잖아」

  뭐가 「몇개쯤」인지. 뭐가 「몇개나」인지.

  비뚤어진 글씨체로 쓰여진 일정의 거의 절반을, 새까만 잉크가 덧칠했다.




  六.

  구름 틈새로 태양이 엿보이고 있었다. 오랜만의 맑음이 머리 위에 잿빛 안쪽에 보인다. 접은 비닐 우산으로 땅바닥을 찔렀다. 웅덩이가 고여있었다. 반사되는 내 표정은 흐리고 검었다.

  출근해서 내 책상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렸다. 소변을 보고 손을 씻고 있으니 거을 안에서 두번째의 허상이 나타나 시선이 마주친다.

  「……어이쿠. 안녕하세요」

  「아아, 안녕」

  그는 프로듀서 동기였다. 동기기는 하지만 여기에 같은 기수에 입사했을 뿐이고, 내가 꽤나 연상이다. 그가 「도저히 동기같지 않다」라면서 나를 선배라고 불렀기에 나도 그를 후배처럼 취급하고 있었따.

  「왠일로 일찍왔네」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오피스에 가장 일찍 도착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항상 나다. 누가 어떤 타이밍에 오는지는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평소의 그는 지각 직전을 노린듯이 출근했었을텐데.

  「아아……뭐, 큰일이 터졌으니까요. 빨리 정리하고 싶은것도 있어서」

  소변기에 붙으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아침이라서 그런지 살짝 쉬어있었다.

  「그래」

  그 날 이후로, 우리 사무소도 엉망진창이었다. 큰 나무가 흔들리는데, 거기서 자라는 나뭇가지가 멀쩡할 리는 없다. 미시로라는 업계 최대 기업인 사무소가 흔들리고 있으니 그 영향은 막대할 수 밖에 없었다.

  사태는 미시로가 넘겨주는 우리의 일이 사라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위험하네요」 마치 남일처럼 그가 푸념을 흘린다.

  「꽤나. 부탁한다 젊은이」

  농담을 한마디 하면, 책임막중하네, 라며 그가 곤란한듯이 웃는다.

  영 상태가 안좋아보이는 그를 두고 먼저 나가려하니 내 머리채를 그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선배. 다음에 한잔 하죠.」

  「……상당히 뜬금없는데」

  「괜찮잖아요. 술한번 사주세요.」

  「이거 아주 뻔뻔한 놈일세.」

  쓴웃음만 남기고, 확약은 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오피스 플로어에 도착해 보면, 평소에는 없는 선객이 있었다. 두툼한 등신대 사이즈의 파란색 덩어리가 바닥에 널려있다. 어제밤은 여기서 잔 모양이다. 사무쪽 일은 요 며칠 미친듯이 증가했다. 밟지 않게 조심스럽게 통로를 건너 내 책상에 가방을 올렸다.

  PC의 전원을 누르고 겉옷을 벗었다. 메일함 아이콘에는 통지를 알리는 붉은 배지가 점등하고 있다. 열어보면 미독메일이 주르륵 쏟아져내렸다. 내용만 확인하면 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헛웃음이 나왔다.

  메일 내용은 예상대로 일이 캔슬됐다는 연락이었다. 미시로의 이변은 이미 우리뿐 아니라 업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미시로 프로는 지금 부서 전체를 대개혁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일을 취소했다. 입장과 자본력이 강고한 대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다음에 있을 미시로 프로 주최 이벤트까지 전부 중지됐다. 그것이 퍼스트 임펙트라면 제 2파는 더 광범위하게 퍼진다. 다른 회사가 주최하는 이벤트도 미시로의 아이돌이 참가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중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지가 중지를 불러일으키고, 진감(震撼)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의 기둥이 흔들리는 것이 이정도나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입장이 어떤지는 아플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오는 연락에 대응하거나 서류작업 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상층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 사무소로 보내졌다. 그런 내가 또 저쪽의 결정에 휘둘려 미시로때문에 책상에 매달리고 있었다.

  참 짖궂은 운명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어금내를 악문다.





  「……영양 드링크, 냉장고에 다스째로 넣어놨어요~」 라는 힘없는 목소리가 불의를 찌르고 등으로 날아온다.

  「에?」

  「……안녕하세요. 완전철야하셨나요? 고생하시네요……」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어조. 뒤를 돌아보니 파란색 덩어리가 상체를 일으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부터 가벼운 메이크만 하는건지 맨얼굴임에도 인상은 변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아직 덜깨셨네요」

  「응~……? ……아뇨, 잠은 깼는데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긁고 그녀가 크게 하품을 하고 천정을 바라본다. 「……아~ 그러고보면 프로듀서씨는 어제 퇴근하셨죠. 생각났다 생각났어.」

  세수하고 올게요, 라며 침낭에서 느릿느릿 우화하고 플로어 출입구로 걸어간다. 스웨터 차림이었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 왔다고 생각하니 조금 놀랐다. 이어서 들어온 동기인 후배가 기겁한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봐, 봤어요? 『안냐세요~』랬어요, 『안냐세요~』. 저 사람 평소에는 저런 느낌인가요? 분위기 완전히 다른데요?」

  「그녀는 어제밤에 여기서 잔 모양이니까. 잠이 덜깼겠지.」

  그렇다지만 저정도라니, 라며 그는 놀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동료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훈훈한 일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었다. 이런 형태로 봤다는 것이 씁쓸했다.





  어제 퇴근에서 오늘 출근까지, 자동으로 멋대로 모인 사무일은 점심 전에 끝났다. 예상보다 빨리 끝나서 ■■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3시에 집합하기로 했었는데 좀 더 일찍 올 수 있겠어?』

  『괜찮아』『점심먹고 갈게』 이모티콘으로 애교있게 데코레이션된 답장을 확인한 나는 수첩의 일정을 고쳤다. 일찍 영업 가자. 사무원님에게도 전해뒀다.

  「네, 알겠어요. 화이트보드만 고쳐 써 주실 수 있나요?」 살짝 시선을 준 것만으로도 그녀가 키보드를 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무리하지는 마세요.」

  「제 몸은 제가 잘 안다니까요. 뭐, 걱정해주신건 고맙지만요.」

  힘없는 쓴웃음은 그녀다웠다. 그래도, ──그래도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은 내 오지랖이겠지.

  얼마 후 도착한 ■■를 데리고, 우리는 영업을 갔다.

  차안는 어두웠다. 실제적인 광도가 아니라 분위기가.

  **은 약간 낙천적인 성격이 있따. ○○는 그 강한 경쟁심으로 오히려 분발했다. 그 곳에 있었던 아이들 중에서 가장 큰 쇼크를 받은 사람은 ■■였다고 생각한다.





  메시지를 읽었을 때는 어느정도 회복했다고 생각해 안심했었지만.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그 날 이래로 쭉 어둡다.

  ……이럴 때 뭐라고 말해야 되는지 모르는게 한심했다.

  안심해──괜찮아.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었다면, 그녀의 불안해보이는 표정을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큰소리 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불확정성이 높은 일을 괜찮다고 단언했다가, 나중에 그 기대를 배반하게 되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말해주는게, 나을련지.

  영업중의 그녀의 표정은 미소였지만, 거기에는 주석이 붙어있다. 진심으로 웃을 수 없었던 것을 상대가 알아챘을련지.

  모르겠다.





  「……있지, 프로듀서씨」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그래?」

  「우리, 괜찮은거야?」

  망설임 없는 곧은 물음에, 심장이 강하게 고동쳤다. 핸들을 잡고있는 손에 식은땀이 흐른다. 대답에서 도망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듯이 교통신호는 적색의 시그널을 켰고, 나는 마주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름답고 투명한 눈동자 안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을 간파할 수 있었다.

  「……괜찮아. 라고는, 미안, 확실하게 말할 수 없어.」

  동공이 커지고 흔들린다. 힘이 빠진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는다. 「……그렇구나」

  「잠깐.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줘.」

  하고 싶은 말을 머리 속에서 정리해 연결한다.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해도 ■■의 마음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일은 줄어들기만 한다. 게다가 오늘 영업도 잘 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로 괜찮다는 무책임한 말은 내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그렇더라도.

  「노력할게. 괜찮아지게. 나는……」 아니, 고개를 한 번 저었다.「우리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할거니까. 그러니까……믿어주지 않겠어? 멋진 말은 못해주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만은 약속할테니까.」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자각한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을텐데도 덥다. 그럼에도 눈은 돌리지 않는다. 그것은 나 나름 각오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한참동안 서로 응시하고 있었던것 같았다. 실제로는 잠깐이었겠지. 뒷차의 클락션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신호는 빨리 지나가라며 녹색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엑셀을 밟았다.

  엔진소리와 거리의 풍경이 지나가는 소리와 섞여,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후훗……프로듀서씨, 너무 당황하잖아」

  「시끄러워. 잘 들어, 뒷차는 운전할때 제일 무서운 것중에 하나야.」

  「모르겠지만……」 그녀는 가냘픈 한숨을 쉬었다.「……응. 믿을게. 프로듀서씨」

  곁눈질로 훔쳐본 그 모습은 역시 불안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했다.

  「힘내자.……함께. 영업같은것도 가능한 도와줄거고, 무슨 일이든 할테니까말야. 언제든지 불러줘.」

  「그래……힘내자, 함께.」

  「응!」

  내가 선택한 말이 정답이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래도 선명하게 피어오른 그녀의 덧없는 미소를 보고 믿기로 결심했다.





  사무소로 돌아오니 오피스 플로어의 입구에서 사무원님과 마주쳤다.

  「어머, 다녀오셨어요?」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어~」

  사무원님은 토트백을 안고 있었다. 시간은 정시를 한참 지났다. 「퇴근하세요?」

  「네, 뭐. 급한건 전부 끝냈고, 어제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은 괜찮겠죠.」

  그녀를 붙잡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사무원의 리더로서 일 대부분을 맡았고 처리속도가 빠른걸로 유명하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그녀가 그 자리에 서서 불쑥 말했다. 그 입가는 '히죽'하는 의성어가 들릴것 같을 정도로 호를 그리고 있었다.

  「……기운 차리셨네요, 프로듀서씨. ■■쨩이랑 만나고나서 힘이 나신건가요?」

  「응?」 갑작스럽게 이름을 불린 ■■가 당황한 신음소리를 냈다.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당신.」

  「아핫, 무서운 목소리 내지 마세요.……뭐, 자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기 전보다 표정이 좋아지셨어요, 정말로.」

  「당신도입니다만」

  「아~, 아니~ 저는 그냥 잠이 덜깨서 그랬던거고요. 그 때는 못 볼 꼴을 보여서 죄송하네요.」

  꾸벅 내린 머리를 바로 올리고, 그녀는 이번에 ■■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노골적으로 수상하게.





  「■■쨩도말야……뭐, 아이돌 모두일려나. 요즘 별로 사무소 안오지?」

  「그건……응. 그치만 방해될것 같아서. 엄청 바빠보이는데 그 옆에서 우리가 뭘 도와줄 수 있는거소 없잖아?」

  「……착하구나~ 엄청 기특해. 그거야 당연히 신경쓰이겠네」

  사무원님이 쾌활하게 깔깔 웃었다. 평소보다 텐션이 약간 높은걸 보아 철야의 영향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말야,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으니까. 우리들은 신경 안써도 괜찮으니까. 예전처럼 그냥 놀러와도 괜찮아.」

  사무원님은 ■■의 귓가에 귀를 댄다. 그 행동에 비해 목소리는 별로 작지 않다. 그녀의 말은 나에게도 전부 들렸다.

  「괜찮으면 사무소에 오렴. 프로듀서씨도 쓸쓸해보이고, 우리들도 시끌벅적한 너희들을 보고있으면 힘이 나니까」

  그렇죠? 라고 말하고, 사무원님의 입가가 또다시 호를 그린다.

  「……응. 알겠어, 놀러 올게. **랑 ○○한테도 말할게」

  「잘 부탁해~,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드며 그녀는 엘레베이터 홀 쪽으로 사라졌다.





  ■■가 나를 올려보고 있다. 「있지, 프로듀서씨」

  「안쓸쓸해」라고 내가 말했다.

  「부정 빠르잖아! 그런데 들렸어?」

  「그렇게 목소리가 큰데 안들리겠냐……」

  계속 이곳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유리문을 밀어서 들어간다. 들어오니 플로어는 휑했다. 사람이 몇몇 있지만, 책상 수에 비하면 꽤나 썰렁했다.

  「……모두 없네」라고 ■■가 말했다.

  「그렇지, 프로듀서들은 다들 영업갔을테니까」

  현상의 최우선은 일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라진 만큼 최대한 보충해야 한다. 그것을 못했을 때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책상에, ■■는 옆자리 빈 책상에 앉았다.

  반복적인 움직임으로 PC의 전원버튼을 누른다. 나갔다 온 사이에 처리해야 하는 안건이 순조롭게 늘어났다.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해야만 한다. 양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가 「힘내자」라고 말해줬으니까.

  「힘낼게. 약속했으니까」

  힘껏 웃으니, 그녀도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아무리 육체가 괴로워하고, 정신이 닳아 문드러지더라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멈춘다는 선택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이 장소를 내 생각 이상으로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거의 잠깐동안의 관계밖에 없었던 미시로에서 흘러나와 도착한 이 마음편한 장소. 처음으로 내가 능동적으로 전력을 다하겠다고 생각한 이 장소를 만약 잃어버린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묵직하게 아팠다.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 말을 어기지 않을 생각이었고, 실제로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각오인가, 실력인가? 혹은 둘 다였던가.





  PC의 도표 소프트가 정리한 수지를 보고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지출이 수입을 웃돌고 있다. 즉, 적자였다.

  책상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젠장. 빌어먹을.

  흘러나온 말은 누구에게도 닫지 않는다. 권태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눈꺼풀마저 무겁다.

  수첩을 연다. 체크의 옆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한다. 해야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쓰고 주석을 달고 쓰고 수정하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쓰고 쓰고 지우고 지우고──모든 페이지가 꾸깃꾸깃했다.

  펜과 수첩이 손에서 흘러내려 책상 위에서 튕긴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양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아무리 머리를 자극해도, 이 쓸모없는 뇌세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선배? 뭐하세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아니, 갑자기는 아닌가. 하지만 후배가 다가오는 기색도 발소리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아무 것도 아냐」라고 내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는 안보이는데요. 요즘 너무 무리하는거 아닌가요?……아니, 뭐, 마음은 이해하지만요.」

  그의 눈매에 다크써클이 보였다. 서로 상황은 대충 비슷하겠지.





  답답해져서 「무슨 용건이야?」라고 떨쳐내듯이 말한다.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딱히 용건이 없어도 창가에서 죽을것같은 표정 짓고있는 동료를 보면 말 정도는 걸죠……제가 그렇게 박정해보였어요?」

  「……아니. 미안. 정곡이야」

  「살살해주세요. 저도 제법 곤란하니까요. 뭐, 용건은 있지만요.」

  「있었어?」

  「있어요. 사장님이 불러요, 잠깐 오라고.」

  「……사장님이?」

  「네」 그가 수긍했다. 「……요즘 안보이던데 뭐하고 있었을까요?」

  그의 말대로 나도 최근 사장님을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 사람에게 직접 지시를 받지도 않으니 사라졌다고 별 영향은 없지만.

  무슨 용건인가. 이 타이밍에 태평하게 장기 두자고 말하면 아무리 나라도 주먹이 날아갈지도 모르겠다.

  계단으로 최상층까지 올라가 복도 끝의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오오, 들어오게, 라는 태연한 목소리가 들린다.

  「실례합니다.……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언제부터였더라, 라고 생각하고 바로 떠올랐다. 처음으로 이변을 눈치챈 그 합동 라이브 날, 일단 상사에게 보고하려고 찾아왔지만 부재중이었다. 그날 이래로 한번도 만난적 없었다.





  「그렇지.……아니, 계속 자리를 비워서 미안하네. 뭐, 자네들에게는 내 존재는 별로 필요 없었겠지만」

  사장이 어깨를 흔들며 껄껄 웃는다──지금 상황을 모르는건가, 이 인간은?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올랐다.

  「……사장님,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응? 아아, 물론. 여기에 얼굴을 내밀지는 못했지만 보고서는 읽었으니까」

  「그렇다면……!」 내 목소리가 높아진다. 「당신은 해야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겁니까!」

  이그제큐티브 데스크에 손바닥을 떨어뜨린다. 고정시킨 손바닥이 아프다. 그러나 아픔에도 머리는 차가워지기는 커녕 더더욱 가열해서 불타오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사장은 태연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자네의 말대로네. 나는 이 사무소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있지. 그러나.」

  데스크의 서랍을 조용히 열고, 사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우선은, 자네에게 이걸 줘야하지……지금까지 정말로 고마웠네.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뭐야 그건. 해고라고 말하는건가? 웃기지마! 감정에 휘둘려 눈을 부릅뜨고──그리고, 굳어졌다. 이 서류는 본 적이 있다.





  출향명령서, 겸 동의서. 2년쯤 전의 기억이 플래시백한다. 그 때와 똑같은……아니, 다른 점이 딱 하나. 그 때 사인한 것과 다른 점은 출향처와 출향지의 사명이 반대라는 것.

  돌아와라. 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당연한 이야기네」 사장은 말했다. 「2년 미만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쭉 봐 왔네. 자네는 우수한 프로듀서야. 그곳에서는 분명 우수한 어시스턴트였겠지. 이 판국에 그런 인재를 버릴 리 없지.」

  말을 차단하고 싶어서 힘껏 데스크를 쳤다. 이런 것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만두십시오. 전 돌아가지 않습니다」

  「진심인가?」

  사장은 어디까지나 온화하게 설득하듯이 나를 마주보았다. 주름진 눈꺼풀 안쪽, 그 눈동자가 상냥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확실히 미시로 프로는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있네. 하지만 그렇다해도 저곳은 대기업이야. 왠만하면 망할 일은 없겠지. 정리해고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이지만, 아직 하지는 않았어. 돌아가면 나쁜 대우는 받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네.」

  반면 여기는, 거기까지 말하고 사장님은 말을 멈췄다. 그것은 괜한 배려였다. 애매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나도 그 한중간에 있으니까.





  알고 있다. 어느 선택이 합리적인지는 내 눈에도 명확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서류를 한줌의 망설임도 없이 찢어버렸다. 세로로 접어서 두번, 세번. 나를 구속할 명령은 갈기갈기 찢겨서 공중에 흩어진다.

  「괜찮겠나?」라고 사장이 말한다.

  「괜찮습니다」라고 내가 대답했다.

  약속했다. 노력하겠다고. 믿어달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뻔뻔하게 중도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만약, 약속이 없었다고 해도, 그래도 분명 나는 이곳에 잔류하는 것을 선택하겠지.

  그녀들이 있기에 내가 미소지을 수 있다.

  「……이곳이 제가 있을 곳이니까요.」

  사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까지 말해준다면 사양안고 부탁하겠네. 미시로쪽에는 내가 말해두지……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그는 다양한 의미가 담긴듯한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리고 사장님이 출향서를 꺼낸 것과 같은 서랍에서 파란색 커버의 클리어 파일을 꺼냈다. 「이건 선물이네. 받아주겠나?」

  「……뭡니까, 이건」

  「파일이지」

  「그게 아니라」

  「나도 아네」

  사장님이 쿡쿡 웃는다.……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파일을 받고 적당히 펼쳤다. 눈에 들어온 정보에 나는 크게 놀랐다.





  「나도 이런 비상사태에 아무 것도 안한건 아니라네.」

  사장의 말이 귀를 흔든다. 그러나 눈은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나머지는 자네 마음대로 잘 해보게. 실력은 잘 알고있으니 안심하고 맡기겠네.」

  거기에는 라이브의 기획정보가 파일링되어 있었다. 도쿄에 있는 꽤 큰 규모의 홀에서, 참가자로는 우리 사무소 소속의 아이돌들의 이름이 쓰여있다. 물론 내가 담당하는 세명의 이름도.

  펄럭펄럭 넘겨보니 그 전부에 일의 자료가 들어있었다.……우리들로는 영업조차도 좀처럼 잘 되지 않았는데.

  「당신은……」

  「나도 왕년에 좀 나가던 양반이라.……자네는 젊으니 이런 늙은이에게 지지 말게」

  이렇게나 기쁜 야유는 처음 들었다.

  「……죄송합니다. 매우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괜찮아.……아아, 잠시만 가디려보게. 자네, 일로 복귀하기 전에」

  흥분된 마음으로 사장실에서 나가려하니 사장이 부른다. 또 뭔가가 있나싶어 뒤돌아보니 사장이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들은 치우고 가주겠나. 요즘 나이때문인지 허리가 아파서 말일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내가 갈기갈기 찢은 출향지시서. 이 무슨 쪼잔한 짓인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자업자득이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종이조각을 정리하고 사장실에서 나왔다.





  「……아까운 짓 하셨네요.」

  문에서 나오니 사무원님이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심심한듯이 머리카락을 꼬고 있었다.

  「……들으셨나요」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시는데 당연히 들리죠」  그녀가 기막힌듯이 말했다. 「여기를 버리고 미시로로 돌아가라, 그런 좋은 조건 없어요. 그걸 잘도 퇴짜놓으셨네요?」

  「뭐, 저는 여기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가요……」

  무정하게 말하고 그녀가 사장실 문을 가리켰다. 「……그럼, 저도 불렸으니까 실례할게요.」

  사무원님은 노크하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런가요, 라고 말하고나서 문에 노크하는 사이, 그녀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고 있던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그 말은 내 고막까지는 닿지 않았다.


 


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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