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무더운 여름날 길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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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3, 2016 23:17에 작성됨.

 

장마따윈 기억도 안날 정도로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걷기만 해도 흐르는 땀과 온 몸에 달라붙는 뜨거운 습기는 당신의 체력을 한없이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잔업과 야근으로 삶은 커녕 잠도 거의 없는 당신은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몽롱한 정신으로 걷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거리, 그리고 땅이 다가옵니다.
이상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세상은 어두워지고 얼핏 무언가 쓰러진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습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당신은 아무 것도 느껴지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는게 이렇게 편안한거구나 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편안함에 몸을 맡기려는 찰나 어떤 소리가 들립니다. 속삭이듯이 작은 그 소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당신을 부르고 있다는 기묘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자 방금까지의 공허함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강렬한 빛과 통증이 몰려옵니다.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신음소리를 내자 바로 옆에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흐릿한 형체가 빠르게 다가옵니다.

 

 

0 - 9 : (모기였습니다. 너무 더워서 환각이 보였던 모양입니다. 당신은 남의 피를 빨아가는 악랄한 해충에게 천벌을 내린 후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런 당신을 보고 웃기라도 하는듯 하늘에선 태양이 이글거립니다.)

 

10 - 19 : "괜찮으세요?" (지나가던 시민 A였습니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이 사람은 하지만 결국 자신이 엑스트라라는 것을 자각한듯 당신이 눈을 뜨자 다시 갈길을 가버립니다.)

 

20 - 29 : "아.. 진정하세요. 여긴 병원입니다." (의사선생님입니다. 왠지 영 좋지 못한 곳에 총을 맞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분은 당신에게 흥분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무더위에도 불철주야 바쁘신 의사선생님은 전화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간청을 무시하고 간호사들과 함께 나가버립니다.)

 

30 - 39 : "자네가 이런다고 회사에서 자네를 인정해줄거 같나?" (철혈의 상무님께선 자기관리를 못한데다 회사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든 당신을 좋은 눈으로 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결국 당신은 반강제로 유급휴가를 내고 맙니다.)

 

40 - 49 : "내가 자네 이럴 줄 알았다네." (부하를 걱정하던 노령의 부장은 당신의 명함을 본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응급실까지 찾아온겁니다. 걱정과 안심이 섞인 잔소리를 들으며 당신은 쓴웃음을 짓습니다.)

 

50 - 59 : "너도 진짜 못말린다." (당신과 친한 동료가 우연히 당신을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왔습니다. 동료의 도움으로 당신이 쓰러짐으로써 발생한 스케쥴 트러블을 해결하지만 당신의 지갑은 상당히 가벼워질 예정입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맙시다.)

 

60 - 69 : "프로듀서 씨?! 괜찮으세요?" (눈에 좋은 녹색 옷의 사무원입니다. 다크서클이 턱에 닿을 기세인 당신을 걱정하던 그녀는 당신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없이 달려온겁니다. 이 사무원이 2X살의 OL일지 과금의 여신일지는 지금 걱정받고 있는 당신에게 맡깁니다.)

 

70 - 79 : "휴~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했어." (당신은 예전에 동료의 부탁으로 동료의 아이돌이 일하는 곳에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인연이 지금 당신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 또한 인덕이라면 인덕이겠지요.)

 

80 - 89 : "정말.. 놀래키지 말라구!" (당신과 미팅이 약속되어있던 당신의 아이돌은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당신이 오지 않자 당신을 찾아 나섰다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당신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당신의 아이돌의 잔소리를 감내해야만 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90 - 99 : "프로듀서? 정신이 든거야?!" (당신의 아이돌은 생각 이상으로 당신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눈물로 엉망이 된 그 얼굴을 보며 당신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앞으론 몸관리는 잘 하도록 합시다.)

 

100 : "~♪ ...잘 잤어?" (하루라는 시간동안 당신의 아이돌은 당신이 눈을 뜰 때까지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장가 같기도 하고 애타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한 그 노래를 들으며 당신은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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