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P하고 한다고는 안했습니다?
제가 P를 걸은건 이 막장상황의 낌새를 눈치채고 하루카가 히비키를 덮치는걸 차단할 권한이나 힘이 있으며 히비키의 마음의 상처를 어느정도 완화하고 망설이는 타카네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강철멘탈의 소유자가 P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탁한애 포함) 와봤자 사태 호전 못시키고 BAD END 밖에 안보이네요… 내 타카네는 이런 유리멘탈이 아냐!!! (도주)
P.S.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완전히 데우스 P 마키나 구만
P.S.2 야요이엘을 걸면 다른의미로 사태가 호전되…려나?
아무렇지 않게 사무소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선 프로듀서는,
바닥에 뒹굴며 절정에 몸을 떨고 있던 두 소녀를 보고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루카「…… 아」
하루카 역시 그대로 굳어 말을 잇지 못했다.
히비키「하아, 하앗… 하… 하루카…?」
숨을 헐떡이던 히비키는 하루카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알아채고서는,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한 발 늦게 이변을 눈치챘다. 이 쪽을 망연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본 순간 들끓던 머릿속이 단숨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히비키「에… 아, …… 저」
하루카「……」
P「……」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
어떤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세 사람 중 누구도 떠올려내지 못하는 가운데 침묵만이 흐르고,
P「… 우선… 옷을 입고, 정리해 줘」
P「…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할 거니까」
아마도 머릿속으로 고르고 골라 겨우 이끌어냈을 터인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은 프로듀서가 다시 문을 닫고 모습을 감춘 후에도, 하루카와 히비키는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었다.
느릿하게,
히비키가 두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보여졌다. 알려질 거야. 모두에게 알려져 버려. 모두에게?
치하야. 유키호. 미키. 아즈사. 이오리. 야요이.
타, 카,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뒤늦게 정신이 든 것처럼, 하루카가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티슈를 뽑아 몸을 닦아내고 팬티를 다리 사이에 끼워넣은 후 한 장씩 옷을 껴입기 시작한 하루카는, 히비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히비키「…… 아……」
망연자실한 채 그것을 올려다보던 히비키는, 하루카가 그대로 소파로 걸어가 주저앉은 후에야 더듬더듬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혼란과 당혹, 초조함으로 가득차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굳게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뭐라도 말해 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아래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하루카는,
끝까지 히비키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P「… 사정을 들려줄 수 있을까?」
히비키「……」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떨군 히비키에게 프로듀서가 물어 왔다. 두 사람은 손님 접대에 사용하는 응접실에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하루카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프로듀서는, 히비키를 먼저 불러앉혀 이야기를 시작했다.
P「뭐라고 할지… 일단은 아이돌끼리니까 스캔들이 날 일도 없겠고, 히비키가 원한다면 못 본 일로 해 두고 싶어. 프로듀서라고 해서 사적인 관계에까지 개입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P「… 그렇다곤 해도, 말도 안 되게 놀란 건 사실이지만…」
말을 마친 프로듀서는 이마에 손을 짚고는 눈을 감았다. 히비키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P「… 밝히고 싶지 않은 것도 많겠지. 하지만… 하나만큼은 묻고 싶어」
히비키「……」
P「히비키, 이 쪽을 봐 줘」
조심스레 고개를 든 히비키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한없이 진지한 눈빛.
분노나, 책망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에 조금이나마 안도하고 있던 히비키에게, 프로듀서가 나직하게 물어 왔다.
P「사무소에 나오지 않았던 거, 이번 일과 뭔가 관계가 있어?」
히비키「… 읏」
두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짧은 기간 내에 연속해서 일어났던, 두 가지 이상한 일.
증거는 없더라도 무언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P「… 우리 사무소에선 아직까지 본 적이 없지만, 생각보다 이 업계에서는 많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들었어. 만약 히비키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피해를 입고 있다면 부디 나에게 알려줬으면 해」
히비키「……」꾸욱
P「…… 나로는 미덥지 못한 거야?」
프로듀서는, 아마 진심이다.
자신이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걸 퍼뜨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말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바래 왔잖아. 망설이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어.
솔직한 심경으로는,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벗어나지 못하면─ 이 이상 지속됐다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타월로 몸의 물기를 닦으며 히비키는 샤워실에서 걸어나왔다. 자신의 집이니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는 없었지만, 기분 상의 문제로 일단은 몸에도 타월을 두르고 있었다. 여전히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샤워를 한 덕에 조금은 머리가 개운해진 것 같았다. 히비키의 기척을 알아챘는지 이누미가 다가왔다.
히비키「이누미? 무슨 일이야?」
이누미「컹」
히비키「응? 고개를 숙여 달라는 거야?」
이누미는 한 번 고개를 끄덕했다. 히비키가 쭈그리고 앉아 몸을 굽히니, 부들부들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감촉에 히비키는 움찔 몸을 떨었다.
히비키「우왓! 이, 이누미?」
그대로 히비키의 뺨을 몇 번 핥은 이누미는 가볍게 얼굴을 부비더니 이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조금 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는 뺨을 매만지며, 히비키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히비키「…」
히비키「위로해 주려는, 거였으려나…?」
조금이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만의 일일까. 방송이나 오디션을 위한 작위적인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기쁜 마음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혼자는, 외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지내기로 했던 동물들이었다. 모두로부터 '히비키는 외로움을 잘 탄다'며 간혹 놀림받을 때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조금 화를 내기는 했지만, 분명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가나하 히비키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왔다.
이누미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준 것일지도 모른다.
히비키「… 그러고 보면 요새는 좀처럼 산책을 해 주지 못했네」
히비키「쓸쓸하게 만들어서 미안, 이누미…」
히비키는 자리에서 일어서, 속옷을 입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주저앉아 쿠션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 밖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오프가 주어졌는데도 이렇다 할 할 일은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타카네에게 만날 권유라도 해 보았겠지만, 지금은 타카네의 얼굴을 마주하고서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타카네 쪽에서도 자신을 피하고 있고.
애초에 어째서 자신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도 그렇고, 요즘 이런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위화감의 의미를, 히비키는 오래 지나지 않아 이해했다.
히비키「… 응, 그렇네」
히비키「요새는 오프가 생기면, 반드시─」
하루카가, 불러냈으니까.
모처럼 나아진 기분이 다시 음울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히비키는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마저 결국은 하루카를 떠올리는 자신.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사고의 연결에 히비키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실제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쩌면, 정말로 이미 하루카는 가나하 히비키의 생활에서 '없으면 이상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일까.
히비키「… 그런 일은, 없다고」
턱에 힘을 넣어,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이런 생각만 하게 되는 걸까. 하루카 따위는 지긋지긋하다. 지금이라도 해방된 것을, 기쁘게 여겨도 모자랄 판이 아닌가.
히비키「그래, 이누미… 이누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자」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생각해낸 것은 곧바로 하는 편이 좋겠지. 마침 기분 전환도 필요하다. 최근 어울려 주지 못한 만큼, 확실하게 산책시켜 주도록 하자.
히비키「이누미! 오랜만에 자신과 산책을─」
이누미를 부르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선 히비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부르르 진동하며 벨소리를 내기 시작한 히비키의 휴대전화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히비키「아…」
누구일까. 프로듀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무소의 다른 누군가일지도. 혹시, 정말로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지만, 어쩌면 타카네일지도 몰라.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까지 놀라 굳을 필요도 없다. 못박힌 것처럼 멍하니 서 있을 필요도 없다.
아무렇지 않은 동작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받으면 된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히비키가 떨리는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아 귀에 가져다 대는 데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자신이 액정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히비키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호─, 히비키』
히비키「……」
육감, 이라는 것일까.
제법 빗나가지 않고 잘 맞곤 하기 때문에, 히비키는 자주 스스로를 '감이 좋다'고 자랑해 오곤 했지만,
지금만큼은, 맞기를 바라지 않았다.
히비키「무슨 일이야?」
『딱딱하네. 확실히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굳을 필요는 없지 않아? 앞으로는 사무소에선 자제하도록 할 테니까』
쿡쿡.
언제나 즐거워서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소리죽여 억누르는 웃음소리.
『그치만 히비키, 그 때 가지 못했었지? 앞으로 조금 남았었는데 말이야─. 프로듀서 씨도 센스가 없으시다니까. 지금쯤 애타서 혼자 자위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목소리를 들어 봐선 그건 아니었던 것 같네? 약간 아쉬울지도」
히비키「… 큭…!」
머리가 끓어올랐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하루카를 떨쳐버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저항해라. 너 같은 건 끔찍하게 싫다고, 적어도 한 마디라도 말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지 않은가. 타카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렵다고 해도, 악의를 드러내는 정도라면 자신에게라도 가능하다.
히비키「…적당히 하라고, 하루카」
『흐응?』
히비키「자신은, 하루카가 좋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하루카 같은 건 천박하고 상스러운 최악의 인간이야」
『……』
히비키「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자신은 하루카 따위는 절대로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런 비겁한 짓, 아무리 당한다고 해도─」
『그럼 그만둘래』
히비키「…」
히비키「어…?」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 같았다.
『뭐, 마침 슬슬 질리기도 했고. 타카네 씨한테 다 말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렇담 괜찮아, 모두 비밀로 해 줄 테니까』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비키「… 하, 하지만 하루카를 믿을 수 있을 리가…」
『못 믿는다면 그걸로 됐지만, 난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거라구? 어쨌거나 히비키가 그렇게 싫어한다면 지금부턴 아무 것도 하지 않을게. 그걸로 됐어?』
히비키「… 하아…?」
히비키「하루카… 너, … 대체」
하루카『안녕, 히비키. 지금까지 즐거웠어』
뚝.
순식간에 통화는 끊겼다.
망연한 채로 휴대전화를 든 손을 늘어뜨린 채, 히비키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어떤 반응을 취하면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주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비키「뭐… 야, 이게」
히비키「이걸로 끝인 거야…?」
하루카는 진심일까. 이제 다시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 하나, 믿을 수가 없었다.
휴대전화를 강하게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 손 안에 확실하게 쥔 현실감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인지.
단순히,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린 것인지.
당연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 통화로부터 하루카는 정말로 히비키에 대한 모든 접촉을 멈췄다.
라이브가 끝난 후에도, 함께 일을 갈 때에도, 오프가 겹치는 날에도, 하루카는 히비키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그 무서울 정도의 집착이, 이렇게나 간단하게 사라져 버리는 게 가능한 것일까.
그런 히비키의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카는 지금까지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예전의 하루카'를 완벽하게 재현해 보일 뿐이었다.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을 때에도, 마주치게 되었을 때에도, 하루카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히비키「… 윽」멈칫
하루카「…?」
하루카「왜 그래, 히비키? 몸이라도 안 좋아?」
히비키「……」
히비키「아무 것도… 아니야」
하루카「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고개를 숙인 히비키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하루카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 의문, 그리고 탈력만이 계속되는 매일.
히비키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가증스러운 집착에서 이제서야 벗어났는데, 어째서 편해질 수 없는 거야.
이래서는 정말로,
그 다음은 차마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했다간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아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미 망가져 있다고 느꼈으니까.
어떻게 끝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일을 마치고서 돌아온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채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히비키는 혼잣말을 읊조렸다.
히비키「어째서…」
히비키「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자신조차 스스로를 잘 알 수 없었다.
언제 다시 하루카가 그 팔로 덮쳐눌러 올지 알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타카네가 자신을 돌아봐 줄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도 없다.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결국 그런 이야기잖아.
하루카가 주던 굴욕감과 수치심, 그리고 잔혹한 쾌락이 어느 새부터인가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타카네도, 다른 모두도,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루카만큼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몸을 짓누르고 탐욕스럽게 뺨을 핥아 올리던 하루카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래, 그랬어.
타카네는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가까스로 들어올려 앞을 더듬으면,
하루카의 모습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아무 것도 없다.
싫어.
… 혼자는 싫어.
히비키「…………!」
싸악, 소름이 돋았다.
온 몸의 신경이 순식간에 곤두서는 것 같은 섬뜩한 감각.
히비키「말도… 안, 돼」
히비키「자신…」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히비키「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몸이 떨려왔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히비키「하핫… 아하하」
히비키「그렇구나… 자신은 바보네」
히비키「자신, 분명히 하루카가 뭔가 꾸미고 있지 않을까 계속 두려워했는데」
히비키「그런 건 사실 아무 것도 없었구나…」
히비키「하루카가, 굳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렇게」
히비키「… 타카네…」
나는, 자신은.
히비키「자신…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히비키「… 무서워…」
히비키「구해 줘… 타카네…」
지금이라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인정해 버리고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구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외로움을 잘 타는 외톨이니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부탁이니까 옆에 있어 줘.
왜 몰라주는 거야, 타카네.
자신, 타카네가 필요해.
하루카는 느긋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졸린 것처럼도 보이는, 반쯤 감은 채인 장난기 어린 눈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생일 선물을 들고 돌아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기쁨과 두근대는 기대. 그러나 그 기다림에 조급함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쳐 둔 덫에 사냥감이 걸려들 것을 100% 확신하고 있다면, 나머지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수고, 길들였다. 반드시 돌아올 터다. 하루카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아직 부족하다.
좀 더 탐닉하고, 유린하고, 망가뜨리고 싶어.
나만이 알고 있는 히비키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히비키로 만들고 싶다.
눈을 감으면 그 때의 광경이 아직도 어른거리며 되살아났다.
불이 꺼진 사무소 안에서, 하루카의 두 다리 사이에 개처럼 엎드린 채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혀를 움직이던 히비키. 오싹오싹한 자극과 희열, 몸을 가득 채우는 정복감, 중독될 것 같은 강렬한 배덕감 속에서 무엇보다도 하루카를 흥분시켰던 것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던 가나하 히비키 같은 건, 이런 천박한 암캐에게선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히비키를 이렇게 만든 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달할 것만 같았다.
하루카「… 하아…」
몸이 뜨거워지는 감각. 애타는 기분에 무심코 움직이려는 손을, 그러나 지금은 억눌러 두기로 했다. 이 오갈 곳 없는 욕망조차도 참아 모아서 머지않아 돌아올 그 아이에게 남김없이 풀어놓도록 하자. 듬뿍, 사랑해주자. 왜냐면 히비키는 나의, 그러니까… 어라? 뭐였더라?
친구, 동료, 좋아하는 사람, 짝사랑 상대, 손이 닿지 않는 사람, 노예, 강아지, 하인, 장난감. 이제 와선 그다지 무엇이더라도 상관없었다.
하루카「질렸다니… 말도 안 되지, 정말로」
하루카「싫증 같은 게 날 리가 없잖아…?」
앞으로 조금 남았다. 정말로 조금, 그 정도만 있으면, 아마미 하루카의 '사랑'은 이루어져. 타카네 씨에게는 정말로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그 날부터 쭈욱 생각해 왔다. 바보 같이 숨기만 할 게 아니라 한 발 더 내딛기만 하면 이렇게나 달콤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따위, 그 조언이 없었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그 타카네 씨는, 최근 처량하기 그지없는 꼴을 하고 있다. 조금은 동정심마저 들었다. 잘났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으면서, 결국 진짜 '사랑'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 있는 건 내 쪽이잖아. 가능하다면 이 쪽에서 새롭게 가르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루카「… 흐응, 그것도 재밌을지도. 뭐, 타카네 씨는 고지식하니까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고 보면.
아니, 이렇게 말하는 건 걸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줄곧 무시하고 있었던 가능성이니까. 하지만 히비키를 기다리는 동안의 심심함도 달랠 겸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히비키는 타카네 씨에게 갈지도 모른다.
요새는 꽤나 불안해 보였으니까. 이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직감했다면 타카네 씨에게 매달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히비키는 스스로 털어놓는 걸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루카「그렇네…」
하루카「… 어떻게 할까나…」
어쩌면 방금─
굉장히,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예전의 하루카라면 아마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사랑에 눈뜬 여자아이에겐 말 그대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머지않아 찾아올 완성을 기대하며, 소녀는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띄운다.
---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며칠 동안이나 끊임없이 해 왔던 생각이었다.
시죠 타카네는 본래 '기다리지' 않는다.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즉시 행동에 옮긴다. 망설이지도, 움츠리지도 않았다. 아이돌─ 만인의 우상이 된 몸으로서, 그리고 시죠 가의 인간으로서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러한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그것을 '무겁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다운 것들을 전부 버리는 일은, 타카네에겐 불가능했다.
타카네「결국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시죠 타카네는 가나하 히비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겪어 보는 경험이었다.
타카네「… 그것은」
타카네「괴로우면서도, 무척이나 애타는 기분이군요, 히비키」
타카네「…」
타카네는 지쳐 있었다.
손을 내밀고, 그것이 매몰차게 내쳐지는 것이 두려워,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을 올곧게 향하게 하는 것이 힘겨워 뻗은 팔을 거두고 숨어들었다.
결국은 그에 대한 화풀이를 히비키에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어찌나 나약하고, 형편없는 모습인가.
타카네「사모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입니까」
타카네「…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주제를 모르는 말입니다」
타카네「저와 같이 옹졸한 자가, 히비키를 마음에 둘 자격은…」
타카네「……」
타카네「… 히비키」
타카네「저는, 이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타카네「만약 이대로 히비키와 다시금 서로를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타카네「저… 는」
은빛의 공주, 만인의 우상.
시죠 타카네로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아릿한 감정. 상실감과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심장의 안쪽에서 파열하는 것만 같았다.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져 가는 무언가를 확실하게 느길 수 있었다.
아픔과는 다른 아픔에 경련하는 가슴을 양손으로 억누르고, 돌연 뺨에서 느껴지는 뜨뜻미지근한 한 줄기의 감촉. 그것이 자신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의 흔적이라는 것을, 타카네는 뒤늦게 깨달았다.
타카네「아…」
타카네「… 이, 러한… 꼴사나운…」
황급히 훔쳐낸 눈물은, 그럼에도 여전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타카네「…… 읏…」주륵
타카네「안 됩, 니다… 이러… 한」
타카네「… 욱, 웃……」뚝…
타카네「…… 흑… 앗…」뚝…
안 됩니다.
더 이상 약해진다면,
더 이상 '혼자'인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이 넘쳐흐르는 것을 억누르지 못하면,
다시는, '시죠 타카네'로 돌아갈 수 없게 돼.
이런 상황에서조차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모아 묶은 풍성한 검은 머리칼, 그리고 그것에 쉽게 가려질 정도로 사실은 누구보다 가녀린 어깨. 뒤를 돌아보고 이 쪽을 확인하고서는 씨익 웃어 보이던 그 미소는, 어느 새인가 타카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되어 있었다.
타카네「… 키」
타카네「히, … 키…!」
입술이 멋대로 움직여 단어를 자아낸다.
지금 그것을 입 밖으로 냈다간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두려웠다. 말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시죠 타카네는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가득 고여 흔들리던 눈물이 방울이 되어 떨어져내렸다.
뜨거운 물방울이 바닥과 부딪혀 작은 자국을 만들고,
그와 동시에 마치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들려온 것은,
타카네「…… 아」
초인종의, 소리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이 멍한 머릿속으로 타카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시간에 방문할 사람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이건간에 추태를 보일 수는 없다. 애써 눈물을 닦아내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선 채로 이 쪽을 바라보는 익숙한 청록빛의 두 눈동자를 본 순간, 단숨에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타카네「… 아, ……」
히비키「……」
눈시울이 또다시 주체할 수 없이 뜨거워졌다. 그것을 깨닫고 황급히 등을 돌렸다. 우는 얼굴만큼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눈 앞에 있었으니까.
분명히 멈추었다고 생각한 눈물이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제어를 잃은 채로 흘러내렸다. 터져나오려는 흐느낌을 막아내고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뚝뚝 떨어져 손등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히비키「… 타카네」
타카네「…」
히비키「이 쪽을… 봐 주지 않는 거야?」
타카네「…」
용서하십시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히비키. 그렇게 말하고 싶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말의 형태조차 취하지 못한 오열이 새어나오리라고,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치도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이러한 형태로 다시금 얼굴을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정말로 생각치도 못했다.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억누르려는 저항은, 그러나, 가볍고 애처로운 감각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히비키에게 등 뒤에서부터 안겼다.
등에 닿는 따스한 체온과 가슴에 휘감긴 두 팔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타카네「… 아… 아」
히비키「타카네, 자신은 전혀 완벽하지도 않고, 오히려 말도 안 되는 바보야」
그렇지 않습니다. 구제할 수도 없을 만큼 어리석은 것은 히비키가 아닌 저입니다.
히비키「그래서, 타카네에게 잘 말하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타카네가 저번에 이렇게 해 줬던 걸 생각해냈어」
그건, 그저 괴로움을 덜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상처의 아픔을 누군가의 팔을 대신 깨무는 것으로 풀었을 뿐입니다.
히비키「자신, 그 때… 어쩐지 말로 하지 않더라도 타카네의 생각을 알 수 있었으니까, 자신도 이렇게 하면… 타카네가… 알아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예에, 그 말대로입니다.
히비키의 마음은 사무칠 정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껴안고 있는 것을 그만둬 주세요.
히비키「… 미안… 타카네. 자신은 굉장히 무서웠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이 이상 히비키의 몸에 닿고 있으면, 히비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히비키「그렇지만 역시 자신에게 있어서 제일 무서운 건, 타카네를 잃게 되는 거야」
저는 더 버틸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히비키「그러니까… 그러니까, 타카네… 자신이 잘못했어. 사과할 테니까」
히비키「자신과 함께 있어 줘…」
그 한 마디를 듣고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더는 주체할 수 없게 된 타카네는 그대로 몸을 돌려 히비키를 안았다.
이젠 히비키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 왔던 것을 정신없이 쏟아냈다.
타카네「아… 아아… 우아아아…!」
타카네「아, 흑, 아아…! 히비키… 히비키, 죄송… 흑, 합니다…」
타카네「저는, 아아, 저는… 죄송합니다… 죄송합… 으아, 아아… 아아아…!!」
히비키「… 아하핫, … 어린애 같다고, 타카네」
히비키「그렇게 엉엉 울어서는…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타카네「흑… 으으… 아아, 아아아…!」
히비키「… 미안해야 할 건 자신인데… 읏」
히비키「… 왜… 타카네, 가… 우, 윽…」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히비키는 멋쩍다는 듯 눈을 훔쳤다. 작은 몸집으로, 그럼에도 한껏 팔을 벌려 타카네를 꼭 껴안으며 히비키가 조용히 속삭였다.
히비키「타카네… 자신은…」
히비키「타카네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
타카네「… 예」
히비키「타카네는 어떤 거야?」
히비키「타카네도… 자신이 아니면 안 돼?」
타카네「… 그런 것… 은」
히비키「말해줬으면 좋겠어」
히비키「타카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
히비키「응? 타카네…」
히비키의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으며 타카네는, 지금 이 소녀에게 필요한 말을, 자신이 해야만 할 말을 의외로 차분하게 떠올려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답을 단지 읊을 뿐인 것처럼, 그 입이 움직였다.
타카네「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카네「히비키가 아니면… 안 됩니다…」
타카네「히비키를 결코 혼자 두지 않겠습니다」
타카네「그러니… 안심해 주세요, 히비키…」
목 뒤로 휘감은 팔에 힘을 더했다. 한없는 신뢰와, 애타는 애정을 전하기 위해.
부디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제대로 전해지기를.
히비키「… 헤헷… 응」
히비키「굉장히 기쁘다고… 정말로…」
히비키「… 타카네가 그렇게 생각해 줘서… 그러니까」
히비키「자신도 조금만… 울어도… 괜찮을, 까…?」
이젠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타카네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히비키는 몸을 떨며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악몽에서 깨어나 잔뜩 겁에 질린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다. 타카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쪽 손을 올려 히비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품 안의 상처입은 아이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타카네는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품 안에 안겨 있던 히비키의 몸의 떨림은 점차 잦아들어, 이제는 호흡에 맞춰 그 등이 작게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한, 어떤 잡음도 새어들어오지 않는 공간 안에 두 소녀의 숨소리만이 떠돈다. 타카네도, 히비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니까. 알고 싶었던 것은 이미 충분히 알았다.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카네가 팔을 움직여, 히비키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드러난 히비키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젖어 애처로운 꼴이 되어 있었지만, 그 표정에는 슬픔 같은 것은 엿보이지 않았다. 이 쪽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동자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타카네는 알지 못했다. 단지 똑바로 그 눈을 마주하고, 생각을 전했다.
괜찮은가요.
히비키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그대로 몇 번인가 깜박일 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려는 듯 잠시 여기저기로 굴러가던 눈동자가 어느 순간 멈추고, 그와 함께 히비키가 얼굴을 붉게 상기시켰다. 무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 작게 들썩이려던 입술은 끝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닫혔다. 그를 대신하려는 듯, 히비키의 고개가 한 번 끄덕, 하고 작게 움직였다.
대화를 나누지 않고서도 서로 소통했다.
타카네로서는 허락을 얻은 것보다도 그 사실 쪽이 더 기쁘게 느껴졌다.
눈을 살며시 감은 채로 타카네가 히비키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아주 잠깐 동안만 어쩔 줄 몰라하던 히비키 역시 이내 눈을 감고 다가올 따스함을 기다렸다. 부드러운 피부와 피부가 가늘게 떨리고, 스칠 듯 가까이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그대로 살짝 맞닿았다.
그 때 타카네가 눈을 감은 것은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는 점으로 보아서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았다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광경을 피해갈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아마, 타카네는 이 순간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듯 스르르 열린 히비키의 눈꺼풀 사이로 언뜻 엿보인,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의 그것만큼이나 압도적인 공포에 짓눌려 있는 눈동자를,
끝까지 눈을 감고 있었던 타카네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쁘다.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타카네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었으니까. 이젠 혼자 두지 않겠다고 타카네가 말해 주었으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타카네와 키스할 수 있었으니까.
기쁨 이외의 감정이 끼어들 여지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행복한 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두근대는 가슴의 고동에 견디며 기다리던 타카네의 입술이 닿아 온 순간,
히비키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몇 번이고 억누르며 겨우 삼켰다.
숨을 삼키지 않기 위해서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눈을 뜨자 보인, 온통 타카네로 가득차 있는 흐릿한 시야의 한 쪽 구석에,
그 아이의 붉은 리본이─ 얼핏, 하고.
그랬었지.
그러고 보면, 하루카는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지저분해
─ 분명히 환멸하겠지
─ 있지, 좋은 걸 알려 줄게
─ 이제부터 타카네 씨와 키스할 때면
─ 어디에 있더라도, 앞으로 평생 동안
─ 기쁘지, 히비키?
닿아 있는 입술을 조심스럽게 떼고서 타카네는 그대로 히비키를 다시 한 번 안았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히비키는, 어쩐지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굳어 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올바른 것일까. 마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억눌러 참는 것도 같다고, 어렴풋이 느꼈다.
히비키의 등 뒤에 두른 손을, 조금 더 앞쪽으로 가져왔다. 조심스러운 손동작으로 상의를 비집고 들어가자 까끌한 브래지어가 손에 닿았다. 그것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타카네는 재차 손을 움직여 히비키의 등 뒤로 가져갔다. 당연하게도 후크를 풀기 위해서다.
평소대로의 타카네였다면 히비키의 상태에 위화감을 느낀 나머지 걱정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도 '쌓여' 있었던 만큼, 지금만큼은 타카네에게도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인간인 이상 강력한 욕구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도 무엇도 아니다.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 히비키도 오래간만의 접촉에 긴장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명백히 이상한 히비키의 모습을 애써 그렇게 흘려념기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몸을 뜨겁게 달구는 이 충동에 몸을 맡길 뿐.
히비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히비키의 체취. 굉장히 오랜만에 맡아 보는, 그리운 냄새. 지금 품 안에 안겨 있는 살결도, 검고 풍성한 머리칼도, 지금이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히비키를 맛볼 수 있다. 오직 그 욕구만이 타카네의 온몸에 실처럼 묶여, 애타는 신체를 잠식해 이리저리 휘둘러 간다.
달칵, 금속이 마찰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브래지어가 풀려 스르륵 흘러내렸다. 입을 벌려 아이스크림을 베어물듯 눈 앞의 탐스러운 목덜미를 가볍게 물고서 타카네는 히비키의 가슴으로 손을 움직였다. 손 안에 오롯이 쥐어지는 아름다운 형태의 유방. 그 감촉의 그리움과, 성욕을 미쳐 날뛰게 하는 치명적일 정도의 매력에 타카네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혀를 움직여 목덜미를 핥았다. 그대로 쇄골을 향하고, 이로 물어 상의를 조금 걷어낸 후 키스하듯 힘을 주어 빨았다. 한 차례 떨리며 반응하는 신체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이 애타는 기분을 사모하는 이에게 남김없이 전부 풀어놓고 싶다. 흔히 욕정이라고 일컫는, 수치스럽고 추악한 감정. 그런 통념조차 지금의 타카네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상체를 덮고 있는 셔츠를 다소 거칠게 벗겨내자 가볍게 흔들리며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을 살필 여유조차 잊고서 그대로 가슴에 달라붙듯 밀착해 유두를 덥석 물었다. 기쁨을 주려 한다기보다는 오갈 곳 없는 성욕을 터트리는 것에 가깝게 보이는 거친 애무. 히비키의 몸이 간헐적으로 심상치 않은 기세로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서 타카네는 허겁지겁 자신의 스커트에 손가락을 걸었다. 심장이 맥동한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 귓속을 거칠게 때린다. 자기 자신과 가나하 히비키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주체할 수 없는 애틋함으로 가득차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이 괴롭다. 그것을 어디론가 쏟아붓고 싶어, 다시 입을 맞추기 위해 한 쪽 팔을 뻗어 히비키의 목 뒤에 둘렀다. 다른 팔로는 자신의 스커트와 속옷을 함께 내리며, 타카네는 얼굴을 들고서 히비키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뜨겁게 들끓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얼어붙어 산산조각이 갈라졌다.
타카네「─── 아…?」
타카네「…… 히비키…?」
질끈 감긴 눈.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 얕고 가쁜 호흡. 새파랗게까지 보이는 안색.
모든 지표가 가리키는 하나의 감정은,
공포다.
이와 비슷한 광경을, 이전에 본 적이 있다. 지금과 굉장히 닮은 장면.
욕정에 눈이 멀어 일방적으로 그것을 부딪히고, 그 두려움과 슬픔에 울며 떨었던, 사랑하는 상대.
그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되었던간에, 지금 이 상황은 여지없이 그 때의 재현이다.
맹세했을 것인데.
다시는 이런 식으로 상처입히지 않겠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타카네는 할 말을 잃고서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징징 울리던 하반신도, 미칠 듯 날뛰던 욕망도, 한껏 고조되었던 흥분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순식간에.
거부할 수 없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난폭한 욕망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그라들었다.
사라진 뒤에 보면 그토록 허무한 것이었던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자괴감이 몸을 휘감았다.
타카네「……」
타카네「히비…… 키」
히비키가 눈을 떴다. 잔뜩 수축해 있는 동공이 혼란스럽다는 듯 난잡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얼어붙어 있는 타카네에게 향하고, 우뚝 정지했다. 히비키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히비키「아, ……」
히비키「… 미, 안… 타카네, 그…… 이상… 하네」
히비키「…… 자신… 어떻게, …… 된」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말을 더듬던 히비키는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를 황급히 주워 입기 시작했다.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엉망인 옷매무새를 한 채로 히비키가 일어섰다.
히비키「…, … 우……, ────읏」
위태롭게 달싹이는 입술에서는 끝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히비키는 달아나듯 문을 열고 타카네의 집으로부터 뛰쳐나갔다.
털썩, 하는 소리가 났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다.
두 무릎을 꿇은 채로, 타카네는 팔을 축 늘어뜨리고서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고여 넘쳐 흘러 아래로 떨어졌다. 소리내어 울 수 있을 정도의 기운조차 몸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그저 그 두 가지만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의식이 그대로 꺼져 버릴 때까지 타카네는 그 자세 그대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타카네「……」
의사와는 상관없이 눈이 떠졌다.
잠들었던 것일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깨어났음에도 몸을 움직일 기분은 들지 않았다. 눈만을 뜬 채로 시선을 움직여 주위를 확인했다. 방 안에는 밝은 햇빛이 비쳐들고 있다. 이 정도라면, 아마 사무소에 출근하는 것은 이미 늦었겠군요. 가장 먼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자신이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조금 놀랐다. 그 정도로, 이미 시죠 타카네는 시죠 타카네답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것일까.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허전함을 느껴 시선을 몸 아래로 옮기자 하반신은 완전히 알몸인 채였다. 차분하게 그 이유를 되새기고서 타카네는 말없이 옷을 입었다.
타카네「… 모르겠습니다」
타카네「저는…」
타카네「… 이젠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히비키」
그 때, 무언가를 눈치챘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핸드폰이 깜박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아마 잠에서 깨어난 것도 저것 때문일 것이다. 타카네는 그것을 주워 확인했다. 메시지가 착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발신자는.
타카네「… 아마미 하루카…」
무단으로 결근한 것에 대해서 프로듀서에게 연락의 부탁이라도 받은 것일까. 하지만 어째서 하필 아마미 하루카에게?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카네는 메시지를 열고, 내용을 확인했다.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마미 하루카와는 일시적으로 유닛을 이루어 행동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무대 컨셉과 의상, 선곡 따위에 대한 상담을 위해 몇 번인가 방문한 적이 있었던 하루카의 집. 기억을 더듬어 가며 타카네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을 옮겼다.
단지 눈 앞에 내려온 밧줄을 붙들었을 뿐. 그것 이외엔 무엇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지리라고, 타카네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려 하던 히비키의 모습.
최근 며칠 간 하루카에게서 느꼈던 무엇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기묘한 불안감.
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짙은 안개가 머지않아 걷히리라고.
하지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타카네가 보기를 원했던 것일까.
시야를 방해하는 안개는 때로는 보호를 위한 방벽이 되기도 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로부터 그 자신을 지키는 장막.
그것이 걷혔을 때,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몰아쳐 파멸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타카네는 망설였다.
소리없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문 안에 들어선 몸에 소름이 스쳤다.
타카네는 난심했다.
거울에 비친 눈동자는 작게 떨리더니, 이내 확연한 빛을 품었다.
타카네는 결단했다.
발소리를 울리며 인적이 없는 복도를 걸어, 조금은 눈에 익은 문을 앞에 두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기계적인 멜로디가 울리고, 정적.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조심스레 손을 올리고 돌리자 문 손잡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돌아갔다. 그대로 문을 당겨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 해가 떠 있는 낮인데도 하루카의 집 안은 기괴하리만치 어두웠다. 마치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이유 모를 떨림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타카네는 안으로 들어선 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알아챘다.
숨이 막힐 듯한 적막 사이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대로 선 채 잠시 귀를 기울이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가장 비슷한 것은, 분명히.
그렇다, 그러고 보면.
그 때, 어째서인지 아주 먼 옛날의 일로만 느껴지는 그 날의 아마미 하루카도.
타카네도, 히비키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던 하루카도,
이런 기분을 느꼈었던 것일까.
신발을 벗은 후, 현관에 딛은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소리의 근원지는 중앙의 거실. 현관 복도와 거실의 사이는 또 하나의 문으로 가로막혀 있다.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욱 분명해져, 그 정체룰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알 수 있는 그것을, 그러나 아직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알 수 없다고 몰아세우며.
아직 돌아갈 수 있다고, 돌아가도 아무 의미도 없다고, 두 가지의 충동을 동시에 맞부딪히며.
타카네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쥐고, 당겼다.
장해물을 벗어던지고서, 이미 신음성이라고 알고 있었던 신음성이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들어오는 빛이 방 안에 줄무늬를 새겼다.
그 중앙, 삐걱이는 소파 위에서 서로 뒤엉켜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주위의 어둠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새하얀 다리의 색.
방문자를 알아챘는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로 하루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눈 안에 꿈틀거리는 것을 타카네는 확실하게 보았다.
이전에도 본 기억이 있었다. 그 때, 그 라이브 후의 대기실. 하루카와 눈을 마주치고서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던 때. 그 때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때가 되어서도 알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 ─
저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경계해야만 할 것이었는데.
눈앞이 흐려졌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지탱할 힘을 잃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앞을 향해 걷는다.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면서도, 비틀대면서도, 단지 계속해서 걸었다.
몸을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고르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하루카가 입꼬리만을 움직여 히죽 웃었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그 눈으로 타카네를 응시하며, 하루카는 손으로 틀어쥔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 정체를 확인한 순간.
시야가 낮아져 있다.
정신을 차리자 타카네는 이미 무릎을 꿇은 채였다. 몸에서 단숨에 힘이 빠져나가, 서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호되게 바닥과 부딪힌 무릎이 욱신댔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망연히 앞만을 바라보았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 단 하나, 유일하게 허락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목소리를 내는 것 정도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음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의문.
히비키의 머리를 내려놓고서 소파에서 일어선 하루카가 타카네를 향해 다가갔다. 훤히 드러난 가슴이 발을 옮길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지만 그것을 신경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카네의 앞에 선 하루카가 타카네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를 진정한 의미로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그 순간 타카네는 처음으로 경험했다.
하루카「어째서냐고 물어도… 결국 타카네 씨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죠? 수수께끼 풀이에는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못 풀면 끝」
하루카「… 아무한테도, 불평은 할 수 없어요」
타카네「……」
침묵하는 타카네.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하루카가 말을 잇는다.
하루카「저, 일단은 타카네 씨한테도, 히비키한테도 기회를 주고 싶었으니까, 되도록 그 쪽은 터치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들어보세요, 타카네 씨」
하루카「히비키 말이예요… 타카네 씨의 집에서 뛰쳐나오는 걸 붙잡았더니만, 처음엔 버둥거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어 오는 거 있죠?」
히비키의 이름이 들렸기 때문일까. 거의 반사적인 동작으로 타카네의 눈길이 히비키에게 향했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엉망진창이 된 채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히비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몸에 아무 것도 걸쳐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카「아하하핫! 아아, 정말로, 정말로 웃겨서…! 그렇게나 울고불고 싫어했던 히비키가, 키스 한 번 했다고 바로 헤벌레한 얼굴이 돼서는 표정을 싹 고치더라니까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하루카「… 그래서 저희 집으로 데려와서 귀여워해 준 참이예요. 어때요, 타카네 씨」
하루카「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타카네「……」
길을 터 주겠다는 것처럼 하루카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에 반응하듯 비틀비틀 일어선 타카네가,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하지만 소파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 리도 없어, 두세 걸음만에 타카네는 소파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내려다보면.
히비키「하악, 하악, 하앗… 앗, 읏, 핫… 하, 윽… 앗…!」
아직까지도 몸을 움찔대며 무아지경으로 신음을 토해내는 히비키의 모습. 하루카의 타액과 자기 자신의 애액으로 온몸이 뒤덮인 채, 몸을 온통 헤집는 절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며.
아아, 이렇게나 흐트러진. 이렇게나 원색적인.
이렇게나.
하루카「… 어떠세요?」
어느 틈에 다가온 것인지, 귓가에 하루카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뭔가 대답을 하기 위해 벌린 입에서는 겨우 한 마디만이 힘겹게 새어나왔다.
타카네「…… 언제, 부터였습니까?」
하루카「으음, 그러니까… 분명히 라이브 후에 대기실에서 단 둘만 있었을 때, 그 때가 처음이었죠」
타카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루카「네. 히비키가 느끼는 곳은 다 알수 있게 될 때까지, 히비키가 더 이상 눈물도 흘리지 않게 될 때까지, 히비키가 타카네 씨도 잊어버리도록」
하루카「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하루카「계속 범했어요」
타카네「……」
하루카「있죠, 타카네 씨. 어떤 기분인가요? 솔직히 좀 궁금해져서요. 히비키가 이런 모습이 되어 있는 걸 보고, 기분이 어때요?」
이 소녀는.
하루카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대답을 돌려주기 위해 입을 열어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 아마 말할 수 있었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카「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비키랑 잘 되지 않으신 거죠? 헤헤, 이래서야 처음이랑 입장이 반대네요」
타카네「……」
하루카「그래도 저렇게 귀여운 히비키를 독차지하는 것도 역시 좀 그러니까…」
하루카「… 특별히, 기회를 드릴게요」
타카네「… 무… 슨」
하루카「잘 보세요, 타카네 씨. 히비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하루카의 말을 듣고, 재차 히비키에게 눈길을 돌린 타카네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안대를 하고 있다.
어두운 탓에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카「뭐, 역시 거기까진 안 보이시겠지만 귀마개도 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타카네 씨가 온 줄은 전혀 모르고 있을 거예요」
타카네「…… 그래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루카「딱히 어떻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하루카「… 기회를 드리겠다, 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하루카가 타카네의 손을 잡아챘다. 미처 손을 뺄 틈조차 없이, 잡힌 손이 하루카의 움직임에 딸려갔다.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챈 타카네가 뒤늦게 저항하려 했지만, 하루카의 기이할 정도의 완력에는 이길 수 없었다.
타카네「큭…! 무슨, 짓을─」
뚝 하고, 부자연스럽게 타카네의 목소리가 멈췄다.
히비키「아, 앙…! 흣…!」
자지러지는 듯한 히비키의 신음소리. 그대로 굳어 있던 타카네가 그제서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하루카의 손에 쥐어진 채인 자신의 손가락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의 어둠 탓이 아니다. 히비키의 몸 안으로 삼켜진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이해했다.
하루카「… 어때요, 타카네 씨?」
침입한 손가락을, 히비키의 질벽이 부드럽게 휘감아 간다. 쿵쿵 맥박치는 혈류와 흥건한 애액, 손가락이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움. 아직도 절정의 여운이 남은 것인지 질은 불규칙적으로 움찔움찔 수축하기를 반복하며 타카네의 손가락을 조여오고 있었다.
어리석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히비키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신비로운 아이돌. 은빛의 고고한 왕녀. 그렇게 떠받들어지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며 요란스레 치켜세워지던 이 눈은 결국, 소경의 눈만큼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더럽혀진 채로 어둠 속에서 헐떡이고 있는 히비키의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탓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타카네「아, 아아, 아」
밉다.
아마미 하루카가 밉다.
하루카만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히비키가 이런 꼴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토록 괴로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 하루카 때문이다.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카네「아아, 아─ 아아─」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히비키를 위해서.
두려움에 못 이겨 마침내 찾아왔던 히비키에게 자신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욕망에 미쳐 애액을 흘리며 먹어치우듯이 몸을 핥고, 그 입술을 몇 번이고 탐했다.
무엇이 다른가.
하루카가 했던 일과, 무엇이 다른가.
타카네「…… 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실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가.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겉멋든 말을 입 밖으로 내었을까.
만약 그 때부터였다고 한다면.
오만이었을 뿐인 그 말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타카네「후, …… 후후」
이러한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 역시,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탓해야 할 대상 역시도, 다른 누구도 아닌.
타카네「……」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시죠 타카네가 어떠한 자였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아마미 하루카를 어째서 미워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가나하 히비키에게 품어 왔던 것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게.
검은 잉크병을 넘어뜨린 것처럼, 새카맣게 뒤덮여 간다. 느껴 왔던 것도, 경험해 왔던 것도, 생각해 왔던 것도, 무엇 하나 남김없이 검고 검게.
거짓말처럼 텅 비어 버린 검은 도화지 같은 머릿속을 뒤이어 무언가가 대신해서 채워 간다.
편해지고 싶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
그러한 욕망은, 인간으로서, 시죠 타카네로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타카네「…… 아아」
그 몸을 얽매고 있는 것 따위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굶주린 들개처럼, 타카네가 무서운 기세로 히비키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히비키「앗, 읍, 응… 훅, 웁, 우읍… 읍」
타카네「읍, 프핫, 하, …… 하아, 하아, 학, 음… 후읍」
입을 맞대고, 혀를 넣었다. 히비키는 저항하지 않았다. 치열을 핥고 혀를 맞물리게 하고 침을 들이마신다. 맛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맛본다.
히비키「… 응, 윽…! 핫, 으, 흐아… 윽!」
아까부터 삽입되어 있었던 타카네의 손가락은 어느샌가 그 숫자가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쑤셔박듯이 깊숙하게 삽입시킨 검지와 중지, 약지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여, 질벽 위쪽을 긁듯이 강하게 누른다. 꾸욱, 압박할 때마다 그에 반응하듯 히비키의 몸이 격렬하게 튀었다.
타카네「하아, 하아, 하악, 츄웁, 음, 하악, … 하아, 웃, 하아」
바짝 밀착해 비벼지는 두 몸의 사이에 끼인 듯한 꼴이 된 타카네의 옷은 이미 땀과 타액,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랑곳하지 않고서 타카네가 혀를 움직인다. 떼어진 입에서 끈적하게 늘어지는 침이 드러난 쇄골 위에 수놓이듯 흔적을 그렸다. 그것을 뒤따르듯 타카네가 목덜미를 핥아내렸다. 동시에 다른 한 손을 들어올려 히비키의 왼쪽 가슴을 터질듯이 움켜쥐었다.
히비키「으응! 으하, 으… 핫!」
히비키의 고통 섞인 신음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타카네가 거칠게 손을 움직인다. 쾌락을 주려는 것이 아닌, 먹이를 먹어치우려 드는 굶주린 동물과도 같은 동작. 그것은 이미 애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타카네「후욱, 후욱… 후우, 하아, 하… 읏」
타카네가 히비키의 몸에서 손가락을 빼내고서, 곧바로 자신의 입에 넣었다. 혀를 움직여 끈적한 애액을 음미하듯 핥고, 그 맛을 나누려는 듯 재차 히비키에게 키스하고서, 뒤이어 허겁지겁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속옷만이 남겨지고, 그것마저도 벗겨져 간다. 애액은 이미 최고조로 이른 흥분에 흥건히 넘쳐 허벅지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타카네가 히비키의 한 쪽 다리를 붙잡고서 벌리자 히비키의 비소 역시 완전히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흠뻑 젖어 애액을 토해내고 있는 히비키의 두 다리 사이에 타카네가 하반신을 가져갔다. 음란한 물을 머금은 음순이 서로 가까워지고, 이내 맞닿아 찌걱, 하는 물소리를 냈다.
타카네「흐, 아읏…!!」
히비키「응, 앗…! 흐아, 아앙!」
안타까운 한숨이 겹쳐지고, 뒤이어 타카네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짓눌려 뭉개지는 둔덕과 한껏 충혈되어 허리를 흔들 때마다 스쳐지는 음핵. 양쪽에서 넘쳐흘러 습기어린 소리를 내는 애액. 음란하게 출렁이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슴. 마치 남성이 여성을 범하는 것처럼, 타카네는 목을 뒤로 젖힌 채로 열락에 겨워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어 댔다.
타카네「하아! 응, 핫, 하악, 으핫, 아응! 응!」
히비키「힉, 앙, 후아! 흐아, 아, 아아아! 우앗… 앙!」
문득 정신이 들었다는 듯, 그러나 혼탁한 채인 눈동자를 하고서 타카네가 히비키의 뒷목을 끌어안았다. 그 탓에 타카네의 풍만한 가슴과 그에 못지 않은 히비키의 가슴이 압력에 짓눌려 일그러진 형태가 되었다. 겹쳐지는 유두의 자극에 흠칫흠칫 등골을 떨며, 타카네가 히비키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히비키「하윽…! 쿠핫, 윽, 읏…!」
타카네「… 으음… 후우, 읍…!」
그와 동시에 음부를 문질러 맞대는 허리의 움직임이 한층 격해졌다. 히비키도 그에 호응하듯 허리를 흔들어 대어, 방 안은 튈 듯이 요란한 물소리로 가득 차 간다. 가능하다면 몸의 뿌리 끝까지 찔러넣고 싶다는 것처럼, 타카네가 격렬하게 몇 차례 허리를 밀어붙이고,
타카네「응, 응! 읏, 아, ……….!!」
히비키「아! 흐아아앗! 으, 아……!! 윽……!!」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며, 두 소녀는 절정에 이르렀다.
타카네「하악, 하악, 하아… 하… 하」
거친 숨을 내쉬며, 타카네가 쓰러지듯 히비키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재차 겹쳤다. 마찬가지로 절정을 증명하듯 거칠어진 히비키의 숨소리. 쿵쾅대는 히비키의 심장의 박동.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살의 온기. 등골을 타고 흘러 온몸을 주체할 수 없이 떨리게 하는, 위험할 정도의 쾌감.
이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계속 원해 오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두 손에 넣은 것.
타카네「… 후… 후후… 후후후, 우후훗.. 하, 아핫」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째서인지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을 붙잡아 두지 않기로, 그렇게 결정했으니까.
아마, 너무나도 행복해서일 것이다. 행복하다면 웃는 게 당연하니까.
타카네「… 아아…」
노곤한 피로감에 힙겹게 저항하며, 오른손을 들어 히비키의 몸을 어루만졌다. 이것을 원했다. 지금까지 애타게 원해 오던 것은, 분명히 이것이다. 이젠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아.
은색의 달빛을 담은 눈동자라고, 일찍이 누가 말했던가.
늪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혼탁한 자줏빛의 눈동자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이미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타카네의 눈가에서 한 방울의 액체가 흘러, 히비키의 몸 위로 떨어졌다. 땀도, 애액도, 타액도 아닌 그것은, 그러나 순식간에 그 안으로 섞여들어 타카네 본인조차도 알아챌 수 없었다.
만약에 알아챘더라도, 어째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조차 지금의 타카네에겐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말없이 지켜본 소녀가, 타카네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은 후 팔을 뻗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직도 아주 조금 고여 있었던 눈물을 검지를 세워 소리없이 닦아내어 주고서, 하루카가 입을 열었다.
하루카「… 가엾어라」
하루카「정말로, 가엾은 사람」
하루카「괜찮아요, 타카네 씨. 이제부터는 제가…」
하루카「… '사랑' 이라는 걸」
하루카「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타카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리고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이었다.
짤막한 후기 비슷한 것.
무슨 말부터 쓰면 좋을지... 길었네요.
그냥 가벼운 히비타카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급격한 시리어스 노선 전환과 함께 굉장히 길게 와 버렸습니다. 사실 게으른 연재 덕에 기간만 길어졌을 뿐이지 분량 자체는 별 것도 없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요.
도중에 몇 번 언급했듯 분명히 본래 컨셉에 충실해서 히비타카 해피 엔딩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앵커는 절대적이니까요...뭐 이렇게 되어 버린 것도 이건 이거대로 괜찮겠지 싶습니다. 하루카에 대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어찌 됐든, 이젠 끝이네요. 신사판에 있는 주제에 그렇게 야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시리어스한 분위기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지루한 내용 전개, 터무니없이 길게 질질 끌리기까지 하는 글에 지금까지 어울려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참여하진 않으셨더라도 읽어 주신 분들께도요.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별 것도 없는 글 주제에 이런 식으로 후기까지 쓰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딱 이것까지만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정말로 끝.
음, 유일하게 히비키 글이라 읽어봤는데 정말 재미있네요.
개인적으로 취향에 상당히 잘 맞고 묘사도 잘 되어있고 완결이 났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을 궁금해할 만큼 내용도 흥미진진했습니다.
솔직히 야한 것만 기대하고 봤는데 상당히 명작이었어요
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28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제가 P를 걸은건 이 막장상황의 낌새를 눈치채고 하루카가 히비키를 덮치는걸 차단할 권한이나 힘이 있으며 히비키의 마음의 상처를 어느정도 완화하고 망설이는 타카네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강철멘탈의 소유자가 P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탁한애 포함) 와봤자 사태 호전 못시키고 BAD END 밖에 안보이네요… 내 타카네는 이런 유리멘탈이 아냐!!! (도주)
P.S. 이렇게 써놓고 보니 완전히 데우스 P 마키나 구만
P.S.2 야요이엘을 걸면 다른의미로 사태가 호전되…려나?
신창댓 갱신하실 때가 됐습니다.
P「다녀왔어. 아무도 없─」
아무렇지 않게 사무소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선 프로듀서는,
바닥에 뒹굴며 절정에 몸을 떨고 있던 두 소녀를 보고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루카「…… 아」
하루카 역시 그대로 굳어 말을 잇지 못했다.
히비키「하아, 하앗… 하… 하루카…?」
숨을 헐떡이던 히비키는 하루카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알아채고서는,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한 발 늦게 이변을 눈치챘다. 이 쪽을 망연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본 순간 들끓던 머릿속이 단숨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히비키「에… 아, …… 저」
하루카「……」
P「……」
어떤 말을 꺼내면 좋을지,
어떤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세 사람 중 누구도 떠올려내지 못하는 가운데 침묵만이 흐르고,
P「… 우선… 옷을 입고, 정리해 줘」
P「…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할 거니까」
아마도 머릿속으로 고르고 골라 겨우 이끌어냈을 터인 한 마디를 힘겹게 내뱉은 프로듀서가 다시 문을 닫고 모습을 감춘 후에도, 하루카와 히비키는 한참 동안이나 움직일 수 없었다.
느릿하게,
히비키가 두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보여졌다. 알려질 거야. 모두에게 알려져 버려. 모두에게?
치하야. 유키호. 미키. 아즈사. 이오리. 야요이.
타, 카,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뒤늦게 정신이 든 것처럼, 하루카가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티슈를 뽑아 몸을 닦아내고 팬티를 다리 사이에 끼워넣은 후 한 장씩 옷을 껴입기 시작한 하루카는, 히비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히비키「…… 아……」
망연자실한 채 그것을 올려다보던 히비키는, 하루카가 그대로 소파로 걸어가 주저앉은 후에야 더듬더듬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혼란과 당혹, 초조함으로 가득차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굳게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뭐라도 말해 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아래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하루카는,
끝까지 히비키에게 입을 열지 않았다.
P「… 사정을 들려줄 수 있을까?」
히비키「……」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떨군 히비키에게 프로듀서가 물어 왔다. 두 사람은 손님 접대에 사용하는 응접실에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하루카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프로듀서는, 히비키를 먼저 불러앉혀 이야기를 시작했다.
P「뭐라고 할지… 일단은 아이돌끼리니까 스캔들이 날 일도 없겠고, 히비키가 원한다면 못 본 일로 해 두고 싶어. 프로듀서라고 해서 사적인 관계에까지 개입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P「… 그렇다곤 해도, 말도 안 되게 놀란 건 사실이지만…」
말을 마친 프로듀서는 이마에 손을 짚고는 눈을 감았다. 히비키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P「… 밝히고 싶지 않은 것도 많겠지. 하지만… 하나만큼은 묻고 싶어」
히비키「……」
P「히비키, 이 쪽을 봐 줘」
조심스레 고개를 든 히비키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한없이 진지한 눈빛.
분노나, 책망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에 조금이나마 안도하고 있던 히비키에게, 프로듀서가 나직하게 물어 왔다.
P「사무소에 나오지 않았던 거, 이번 일과 뭔가 관계가 있어?」
히비키「… 읏」
두 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짧은 기간 내에 연속해서 일어났던, 두 가지 이상한 일.
증거는 없더라도 무언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P「… 우리 사무소에선 아직까지 본 적이 없지만, 생각보다 이 업계에서는 많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들었어. 만약 히비키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피해를 입고 있다면 부디 나에게 알려줬으면 해」
히비키「……」꾸욱
P「…… 나로는 미덥지 못한 거야?」
프로듀서는, 아마 진심이다.
자신이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걸 퍼뜨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말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바래 왔잖아. 망설이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어.
솔직한 심경으로는, 무서웠다.
지금이라도 벗어나지 못하면─ 이 이상 지속됐다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하지만, 혹시라도 생각치도 못한 과정으로 타카네가 알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느 쪽이든, 결정이 필요했다.
1. 말한다
2. 말하지 않는다
>>+2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프로듀서는, 조금은 슬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P「… 그러니」
히비키「… 미안, 프로듀서…」
히비키「자신…」
P「… 히비키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괜찮아.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어」
P「그러면 다음은 하루카와도 이야기를 할 건데, 그건 괜찮을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P「그러면 히비키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해. 밖에 있는 하루카에게 들어와 달라고 전해 주면 고맙겠어」
히비키「…… 응」
자리에서 일어난 히비키는 응접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앉은 채인 프로듀서의 옆을 지나가면서도, 히비키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프로듀서는 히비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하루카가 보였다.
히비키「… 하루카」
프로듀서가 할 이야기가 있다, 고.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하루카는 몸을 일으켜, 태연한 발걸음으로 히비키에게 다가왔다.
불쑥, 무표정한 얼굴이 들이밀어졌다.
히비키「윽…!?」
무슨 속셈인 것일까.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 가늘게 신음을 흘린 히비키에게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하루카는 한참 동안이나 히비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내 그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비틀렸다.
가늘게 떨리는 비취빛의 두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것일까.
하루카「…… 응, 안심했어」
히비키「… 에…?」
쿡쿡 하고 작게 웃는 소리를 내며, 하루카는 히비키를 뒤로 하고 응접실의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달칵, 쇠가 맞물리는 소리. 그것을 앞으로 밀어 응접실에 들어서기 직전에 하루카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루카「히비키가 야한 아이라서, 안심했다는 거야」
히비키「……!」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하루카는 모습을 감춘 뒤였다.
굳게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 것만 같은 아픔.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히비키는 동요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닿을 리가 없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는데도,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비키「아… 냐」
히비키「자신, 은… 타카네가… 알게 되는 게, 두려워서…」
히비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히비키「절대로… 그런 이유, 가…」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비키「─ 웁…!」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
무엇이 그렇게 역겨웠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토할 것 같은 느낌에 입을 틀어막자, 구토감은 한참 후에야 사그라들었다.
히비키「… 윽, 하아, 하아, 하아…」
손이다.
수없이 많은 손이 꿈틀꿈틀 움직이며, 질척하게 질퍽하게 온 몸에 빠짐없이 들러붙어 있다.
달팽이 같은 끈적한 점액을 온 몸에 남기며, 기분 나쁜 극치감의 여운은 처참하게 유린당한 흔적이 되어, 아직까지도 몸 깊은 곳에, 불쾌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 잊을 수 없을 거야
히비키「…………」
돌아가자.
집에 돌아가서 몸을 씻고, 쉬자.
그 외의 다른 것은, 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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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구원 플래그가 보이지 않는다
헉학퍽퍽 이거 보는 맛에 아이마스넷 옵니다!
타월로 몸의 물기를 닦으며 히비키는 샤워실에서 걸어나왔다. 자신의 집이니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는 없었지만, 기분 상의 문제로 일단은 몸에도 타월을 두르고 있었다. 여전히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샤워를 한 덕에 조금은 머리가 개운해진 것 같았다. 히비키의 기척을 알아챘는지 이누미가 다가왔다.
히비키「이누미? 무슨 일이야?」
이누미「컹」
히비키「응? 고개를 숙여 달라는 거야?」
이누미는 한 번 고개를 끄덕했다. 히비키가 쭈그리고 앉아 몸을 굽히니, 부들부들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갑작스러운 감촉에 히비키는 움찔 몸을 떨었다.
히비키「우왓! 이, 이누미?」
그대로 히비키의 뺨을 몇 번 핥은 이누미는 가볍게 얼굴을 부비더니 이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조금 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는 뺨을 매만지며, 히비키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히비키「…」
히비키「위로해 주려는, 거였으려나…?」
조금이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만의 일일까. 방송이나 오디션을 위한 작위적인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기쁜 마음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혼자는, 외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지내기로 했던 동물들이었다. 모두로부터 '히비키는 외로움을 잘 탄다'며 간혹 놀림받을 때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조금 화를 내기는 했지만, 분명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가나하 히비키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왔다.
이누미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준 것일지도 모른다.
히비키「… 그러고 보면 요새는 좀처럼 산책을 해 주지 못했네」
히비키「쓸쓸하게 만들어서 미안, 이누미…」
히비키는 자리에서 일어서, 속옷을 입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주저앉아 쿠션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한참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 밖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오프가 주어졌는데도 이렇다 할 할 일은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타카네에게 만날 권유라도 해 보았겠지만, 지금은 타카네의 얼굴을 마주하고서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타카네 쪽에서도 자신을 피하고 있고.
애초에 어째서 자신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도 그렇고, 요즘 이런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위화감의 의미를, 히비키는 오래 지나지 않아 이해했다.
히비키「… 응, 그렇네」
히비키「요새는 오프가 생기면, 반드시─」
하루카가, 불러냈으니까.
모처럼 나아진 기분이 다시 음울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히비키는 쿠션에 얼굴을 묻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마저 결국은 하루카를 떠올리는 자신.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사고의 연결에 히비키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실제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쩌면, 정말로 이미 하루카는 가나하 히비키의 생활에서 '없으면 이상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일까.
히비키「… 그런 일은, 없다고」
턱에 힘을 넣어,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이런 생각만 하게 되는 걸까. 하루카 따위는 지긋지긋하다. 지금이라도 해방된 것을, 기쁘게 여겨도 모자랄 판이 아닌가.
히비키「그래, 이누미… 이누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자」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생각해낸 것은 곧바로 하는 편이 좋겠지. 마침 기분 전환도 필요하다. 최근 어울려 주지 못한 만큼, 확실하게 산책시켜 주도록 하자.
히비키「이누미! 오랜만에 자신과 산책을─」
이누미를 부르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선 히비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부르르 진동하며 벨소리를 내기 시작한 히비키의 휴대전화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히비키「아…」
누구일까. 프로듀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무소의 다른 누군가일지도. 혹시, 정말로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지만, 어쩌면 타카네일지도 몰라.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까지 놀라 굳을 필요도 없다. 못박힌 것처럼 멍하니 서 있을 필요도 없다.
아무렇지 않은 동작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받으면 된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히비키가 떨리는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아 귀에 가져다 대는 데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자신이 액정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히비키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호─, 히비키』
히비키「……」
육감, 이라는 것일까.
제법 빗나가지 않고 잘 맞곤 하기 때문에, 히비키는 자주 스스로를 '감이 좋다'고 자랑해 오곤 했지만,
지금만큼은, 맞기를 바라지 않았다.
히비키「무슨 일이야?」
『딱딱하네. 확실히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굳을 필요는 없지 않아? 앞으로는 사무소에선 자제하도록 할 테니까』
쿡쿡.
언제나 즐거워서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소리죽여 억누르는 웃음소리.
『그치만 히비키, 그 때 가지 못했었지? 앞으로 조금 남았었는데 말이야─. 프로듀서 씨도 센스가 없으시다니까. 지금쯤 애타서 혼자 자위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목소리를 들어 봐선 그건 아니었던 것 같네? 약간 아쉬울지도」
히비키「… 큭…!」
머리가 끓어올랐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화가 났다.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하루카를 떨쳐버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저항해라. 너 같은 건 끔찍하게 싫다고, 적어도 한 마디라도 말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지 않은가. 타카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렵다고 해도, 악의를 드러내는 정도라면 자신에게라도 가능하다.
히비키「…적당히 하라고, 하루카」
『흐응?』
히비키「자신은, 하루카가 좋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하루카 같은 건 천박하고 상스러운 최악의 인간이야」
『……』
히비키「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자신은 하루카 따위는 절대로 좋아하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런 비겁한 짓, 아무리 당한다고 해도─」
『그럼 그만둘래』
히비키「…」
히비키「어…?」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 같았다.
『뭐, 마침 슬슬 질리기도 했고. 타카네 씨한테 다 말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렇담 괜찮아, 모두 비밀로 해 줄 테니까』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비키「… 하, 하지만 하루카를 믿을 수 있을 리가…」
『못 믿는다면 그걸로 됐지만, 난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거라구? 어쨌거나 히비키가 그렇게 싫어한다면 지금부턴 아무 것도 하지 않을게. 그걸로 됐어?』
히비키「… 하아…?」
히비키「하루카… 너, … 대체」
하루카『안녕, 히비키. 지금까지 즐거웠어』
뚝.
순식간에 통화는 끊겼다.
망연한 채로 휴대전화를 든 손을 늘어뜨린 채, 히비키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어떤 반응을 취하면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주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히비키「뭐… 야, 이게」
히비키「이걸로 끝인 거야…?」
하루카는 진심일까. 이제 다시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는 것일까.
무엇 하나, 믿을 수가 없었다.
휴대전화를 강하게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 손 안에 확실하게 쥔 현실감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인지.
단순히,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린 것인지.
히비키「하루카…」
히비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끝날 리가 없죠!
그 통화로부터 하루카는 정말로 히비키에 대한 모든 접촉을 멈췄다.
라이브가 끝난 후에도, 함께 일을 갈 때에도, 오프가 겹치는 날에도, 하루카는 히비키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그 무서울 정도의 집착이, 이렇게나 간단하게 사라져 버리는 게 가능한 것일까.
그런 히비키의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카는 지금까지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예전의 하루카'를 완벽하게 재현해 보일 뿐이었다.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을 때에도, 마주치게 되었을 때에도, 하루카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히비키「… 윽」멈칫
하루카「…?」
하루카「왜 그래, 히비키? 몸이라도 안 좋아?」
히비키「……」
히비키「아무 것도… 아니야」
하루카「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고개를 숙인 히비키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하루카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 의문, 그리고 탈력만이 계속되는 매일.
히비키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가증스러운 집착에서 이제서야 벗어났는데, 어째서 편해질 수 없는 거야.
이래서는 정말로,
그 다음은 차마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했다간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아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미 망가져 있다고 느꼈으니까.
어떻게 끝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일을 마치고서 돌아온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채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히비키는 혼잣말을 읊조렸다.
히비키「어째서…」
히비키「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자신조차 스스로를 잘 알 수 없었다.
언제 다시 하루카가 그 팔로 덮쳐눌러 올지 알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타카네가 자신을 돌아봐 줄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도 없다.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결국 그런 이야기잖아.
하루카가 주던 굴욕감과 수치심, 그리고 잔혹한 쾌락이 어느 새부터인가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타카네도, 다른 모두도,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알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루카만큼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몸을 짓누르고 탐욕스럽게 뺨을 핥아 올리던 하루카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그래, 그랬어.
타카네는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가까스로 들어올려 앞을 더듬으면,
하루카의 모습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아무 것도 없다.
싫어.
… 혼자는 싫어.
히비키「…………!」
싸악, 소름이 돋았다.
온 몸의 신경이 순식간에 곤두서는 것 같은 섬뜩한 감각.
히비키「말도… 안, 돼」
히비키「자신…」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히비키「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몸이 떨려왔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히비키「하핫… 아하하」
히비키「그렇구나… 자신은 바보네」
히비키「자신, 분명히 하루카가 뭔가 꾸미고 있지 않을까 계속 두려워했는데」
히비키「그런 건 사실 아무 것도 없었구나…」
히비키「하루카가, 굳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이렇게」
히비키「… 타카네…」
나는, 자신은.
히비키「자신…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히비키「… 무서워…」
히비키「구해 줘… 타카네…」
지금이라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인정해 버리고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구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외로움을 잘 타는 외톨이니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부탁이니까 옆에 있어 줘.
왜 몰라주는 거야, 타카네.
자신, 타카네가 필요해.
히비키「……」
히비키「…………」
1. 타카네에게 찾아간다.
2. 하루카에게 찾아간다.
>>+2
히비키가 찾아가니 이미 질척해진 하루카와 타카네가...!
제 글과 엔딩이 겹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 구지가를!
졸린 것처럼도 보이는, 반쯤 감은 채인 장난기 어린 눈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생일 선물을 들고 돌아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기쁨과 두근대는 기대. 그러나 그 기다림에 조급함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쳐 둔 덫에 사냥감이 걸려들 것을 100% 확신하고 있다면, 나머지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수고, 길들였다. 반드시 돌아올 터다. 하루카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아직 부족하다.
좀 더 탐닉하고, 유린하고, 망가뜨리고 싶어.
나만이 알고 있는 히비키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히비키로 만들고 싶다.
눈을 감으면 그 때의 광경이 아직도 어른거리며 되살아났다.
불이 꺼진 사무소 안에서, 하루카의 두 다리 사이에 개처럼 엎드린 채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혀를 움직이던 히비키. 오싹오싹한 자극과 희열, 몸을 가득 채우는 정복감, 중독될 것 같은 강렬한 배덕감 속에서 무엇보다도 하루카를 흥분시켰던 것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던 가나하 히비키 같은 건, 이런 천박한 암캐에게선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히비키를 이렇게 만든 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달할 것만 같았다.
하루카「… 하아…」
몸이 뜨거워지는 감각. 애타는 기분에 무심코 움직이려는 손을, 그러나 지금은 억눌러 두기로 했다. 이 오갈 곳 없는 욕망조차도 참아 모아서 머지않아 돌아올 그 아이에게 남김없이 풀어놓도록 하자. 듬뿍, 사랑해주자. 왜냐면 히비키는 나의, 그러니까… 어라? 뭐였더라?
친구, 동료, 좋아하는 사람, 짝사랑 상대, 손이 닿지 않는 사람, 노예, 강아지, 하인, 장난감. 이제 와선 그다지 무엇이더라도 상관없었다.
하루카「질렸다니… 말도 안 되지, 정말로」
하루카「싫증 같은 게 날 리가 없잖아…?」
앞으로 조금 남았다. 정말로 조금, 그 정도만 있으면, 아마미 하루카의 '사랑'은 이루어져. 타카네 씨에게는 정말로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그 날부터 쭈욱 생각해 왔다. 바보 같이 숨기만 할 게 아니라 한 발 더 내딛기만 하면 이렇게나 달콤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따위, 그 조언이 없었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그 타카네 씨는, 최근 처량하기 그지없는 꼴을 하고 있다. 조금은 동정심마저 들었다. 잘났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으면서, 결국 진짜 '사랑'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 있는 건 내 쪽이잖아. 가능하다면 이 쪽에서 새롭게 가르쳐 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루카「… 흐응, 그것도 재밌을지도. 뭐, 타카네 씨는 고지식하니까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고 보면.
아니, 이렇게 말하는 건 걸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뿐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줄곧 무시하고 있었던 가능성이니까. 하지만 히비키를 기다리는 동안의 심심함도 달랠 겸 지금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히비키는 타카네 씨에게 갈지도 모른다.
요새는 꽤나 불안해 보였으니까. 이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직감했다면 타카네 씨에게 매달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히비키는 스스로 털어놓는 걸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루카「그렇네…」
하루카「… 어떻게 할까나…」
어쩌면 방금─
굉장히,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라.
예전의 하루카라면 아마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사랑에 눈뜬 여자아이에겐 말 그대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머지않아 찾아올 완성을 기대하며, 소녀는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띄운다.
---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며칠 동안이나 끊임없이 해 왔던 생각이었다.
시죠 타카네는 본래 '기다리지' 않는다.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즉시 행동에 옮긴다. 망설이지도, 움츠리지도 않았다. 아이돌─ 만인의 우상이 된 몸으로서, 그리고 시죠 가의 인간으로서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그러한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그것을 '무겁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다운 것들을 전부 버리는 일은, 타카네에겐 불가능했다.
타카네「결국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시죠 타카네는 가나하 히비키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겪어 보는 경험이었다.
타카네「… 그것은」
타카네「괴로우면서도, 무척이나 애타는 기분이군요, 히비키」
타카네「…」
타카네는 지쳐 있었다.
손을 내밀고, 그것이 매몰차게 내쳐지는 것이 두려워,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을 올곧게 향하게 하는 것이 힘겨워 뻗은 팔을 거두고 숨어들었다.
결국은 그에 대한 화풀이를 히비키에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어찌나 나약하고, 형편없는 모습인가.
타카네「사모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입니까」
타카네「… 웃기지도 않을 정도로, 주제를 모르는 말입니다」
타카네「저와 같이 옹졸한 자가, 히비키를 마음에 둘 자격은…」
타카네「……」
타카네「… 히비키」
타카네「저는, 이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타카네「만약 이대로 히비키와 다시금 서로를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타카네「저… 는」
은빛의 공주, 만인의 우상.
시죠 타카네로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것일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아릿한 감정. 상실감과 죄책감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심장의 안쪽에서 파열하는 것만 같았다.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져 가는 무언가를 확실하게 느길 수 있었다.
아픔과는 다른 아픔에 경련하는 가슴을 양손으로 억누르고, 돌연 뺨에서 느껴지는 뜨뜻미지근한 한 줄기의 감촉. 그것이 자신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의 흔적이라는 것을, 타카네는 뒤늦게 깨달았다.
타카네「아…」
타카네「… 이, 러한… 꼴사나운…」
황급히 훔쳐낸 눈물은, 그럼에도 여전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타카네「…… 읏…」주륵
타카네「안 됩, 니다… 이러… 한」
타카네「… 욱, 웃……」뚝…
타카네「…… 흑… 앗…」뚝…
안 됩니다.
더 이상 약해진다면,
더 이상 '혼자'인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이 넘쳐흐르는 것을 억누르지 못하면,
다시는, '시죠 타카네'로 돌아갈 수 없게 돼.
이런 상황에서조차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모아 묶은 풍성한 검은 머리칼, 그리고 그것에 쉽게 가려질 정도로 사실은 누구보다 가녀린 어깨. 뒤를 돌아보고 이 쪽을 확인하고서는 씨익 웃어 보이던 그 미소는, 어느 새인가 타카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되어 있었다.
타카네「… 키」
타카네「히, … 키…!」
입술이 멋대로 움직여 단어를 자아낸다.
지금 그것을 입 밖으로 냈다간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두려웠다. 말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시죠 타카네는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가득 고여 흔들리던 눈물이 방울이 되어 떨어져내렸다.
뜨거운 물방울이 바닥과 부딪혀 작은 자국을 만들고,
그와 동시에 마치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들려온 것은,
타카네「…… 아」
초인종의, 소리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이 멍한 머릿속으로 타카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시간에 방문할 사람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이건간에 추태를 보일 수는 없다. 애써 눈물을 닦아내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선 채로 이 쪽을 바라보는 익숙한 청록빛의 두 눈동자를 본 순간, 단숨에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타카네「… 아, ……」
히비키「……」
눈시울이 또다시 주체할 수 없이 뜨거워졌다. 그것을 깨닫고 황급히 등을 돌렸다. 우는 얼굴만큼은 결코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눈 앞에 있었으니까.
분명히 멈추었다고 생각한 눈물이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제어를 잃은 채로 흘러내렸다. 터져나오려는 흐느낌을 막아내고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뚝뚝 떨어져 손등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히비키「… 타카네」
타카네「…」
히비키「이 쪽을… 봐 주지 않는 거야?」
타카네「…」
용서하십시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히비키. 그렇게 말하고 싶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말의 형태조차 취하지 못한 오열이 새어나오리라고,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치도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이러한 형태로 다시금 얼굴을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정말로 생각치도 못했다.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억누르려는 저항은, 그러나, 가볍고 애처로운 감각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히비키에게 등 뒤에서부터 안겼다.
등에 닿는 따스한 체온과 가슴에 휘감긴 두 팔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타카네「… 아… 아」
히비키「타카네, 자신은 전혀 완벽하지도 않고, 오히려 말도 안 되는 바보야」
그렇지 않습니다. 구제할 수도 없을 만큼 어리석은 것은 히비키가 아닌 저입니다.
히비키「그래서, 타카네에게 잘 말하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타카네가 저번에 이렇게 해 줬던 걸 생각해냈어」
그건, 그저 괴로움을 덜기 위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상처의 아픔을 누군가의 팔을 대신 깨무는 것으로 풀었을 뿐입니다.
히비키「자신, 그 때… 어쩐지 말로 하지 않더라도 타카네의 생각을 알 수 있었으니까, 자신도 이렇게 하면… 타카네가… 알아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예에, 그 말대로입니다.
히비키의 마음은 사무칠 정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껴안고 있는 것을 그만둬 주세요.
히비키「… 미안… 타카네. 자신은 굉장히 무서웠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이 이상 히비키의 몸에 닿고 있으면, 히비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히비키「그렇지만 역시 자신에게 있어서 제일 무서운 건, 타카네를 잃게 되는 거야」
저는 더 버틸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히비키「그러니까… 그러니까, 타카네… 자신이 잘못했어. 사과할 테니까」
히비키「자신과 함께 있어 줘…」
그 한 마디를 듣고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더는 주체할 수 없게 된 타카네는 그대로 몸을 돌려 히비키를 안았다.
이젠 히비키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 왔던 것을 정신없이 쏟아냈다.
타카네「아… 아아… 우아아아…!」
타카네「아, 흑, 아아…! 히비키… 히비키, 죄송… 흑, 합니다…」
타카네「저는, 아아, 저는… 죄송합니다… 죄송합… 으아, 아아… 아아아…!!」
히비키「… 아하핫, … 어린애 같다고, 타카네」
히비키「그렇게 엉엉 울어서는…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타카네「흑… 으으… 아아, 아아아…!」
히비키「… 미안해야 할 건 자신인데… 읏」
히비키「… 왜… 타카네, 가… 우, 윽…」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히비키는 멋쩍다는 듯 눈을 훔쳤다. 작은 몸집으로, 그럼에도 한껏 팔을 벌려 타카네를 꼭 껴안으며 히비키가 조용히 속삭였다.
히비키「타카네… 자신은…」
히비키「타카네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
타카네「… 예」
히비키「타카네는 어떤 거야?」
히비키「타카네도… 자신이 아니면 안 돼?」
타카네「… 그런 것… 은」
히비키「말해줬으면 좋겠어」
히비키「타카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
히비키「응? 타카네…」
히비키의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으며 타카네는, 지금 이 소녀에게 필요한 말을, 자신이 해야만 할 말을 의외로 차분하게 떠올려냈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답을 단지 읊을 뿐인 것처럼, 그 입이 움직였다.
타카네「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카네「히비키가 아니면… 안 됩니다…」
타카네「히비키를 결코 혼자 두지 않겠습니다」
타카네「그러니… 안심해 주세요, 히비키…」
목 뒤로 휘감은 팔에 힘을 더했다. 한없는 신뢰와, 애타는 애정을 전하기 위해.
부디 조금의 부족함도 없이 제대로 전해지기를.
히비키「… 헤헷… 응」
히비키「굉장히 기쁘다고… 정말로…」
히비키「… 타카네가 그렇게 생각해 줘서… 그러니까」
히비키「자신도 조금만… 울어도… 괜찮을, 까…?」
이젠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타카네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히비키는 몸을 떨며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악몽에서 깨어나 잔뜩 겁에 질린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다. 타카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쪽 손을 올려 히비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품 안의 상처입은 아이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타카네는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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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쓰려고 했는데 나오는 게 없으니 고역이네요
일단 이것만
히비타카로 끝날건 처음부터 정해져있었지만 하루카 쪽도 마무리지어야하니 좀 더 이어집니다.
품 안에 안겨 있던 히비키의 몸의 떨림은 점차 잦아들어, 이제는 호흡에 맞춰 그 등이 작게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한, 어떤 잡음도 새어들어오지 않는 공간 안에 두 소녀의 숨소리만이 떠돈다. 타카네도, 히비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니까. 알고 싶었던 것은 이미 충분히 알았다.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카네가 팔을 움직여, 히비키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드러난 히비키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젖어 애처로운 꼴이 되어 있었지만, 그 표정에는 슬픔 같은 것은 엿보이지 않았다. 이 쪽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동자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타카네는 알지 못했다. 단지 똑바로 그 눈을 마주하고, 생각을 전했다.
괜찮은가요.
히비키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그대로 몇 번인가 깜박일 뿐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려는 듯 잠시 여기저기로 굴러가던 눈동자가 어느 순간 멈추고, 그와 함께 히비키가 얼굴을 붉게 상기시켰다. 무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 작게 들썩이려던 입술은 끝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닫혔다. 그를 대신하려는 듯, 히비키의 고개가 한 번 끄덕, 하고 작게 움직였다.
대화를 나누지 않고서도 서로 소통했다.
타카네로서는 허락을 얻은 것보다도 그 사실 쪽이 더 기쁘게 느껴졌다.
눈을 살며시 감은 채로 타카네가 히비키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아주 잠깐 동안만 어쩔 줄 몰라하던 히비키 역시 이내 눈을 감고 다가올 따스함을 기다렸다. 부드러운 피부와 피부가 가늘게 떨리고, 스칠 듯 가까이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그대로 살짝 맞닿았다.
그 때 타카네가 눈을 감은 것은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다는 점으로 보아서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았다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광경을 피해갈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아마, 타카네는 이 순간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듯 스르르 열린 히비키의 눈꺼풀 사이로 언뜻 엿보인,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의 그것만큼이나 압도적인 공포에 짓눌려 있는 눈동자를,
끝까지 눈을 감고 있었던 타카네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쁘다.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타카네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었으니까. 이젠 혼자 두지 않겠다고 타카네가 말해 주었으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타카네와 키스할 수 있었으니까.
기쁨 이외의 감정이 끼어들 여지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도 저것도, 행복한 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두근대는 가슴의 고동에 견디며 기다리던 타카네의 입술이 닿아 온 순간,
히비키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몇 번이고 억누르며 겨우 삼켰다.
숨을 삼키지 않기 위해서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눈을 뜨자 보인, 온통 타카네로 가득차 있는 흐릿한 시야의 한 쪽 구석에,
그 아이의 붉은 리본이─ 얼핏, 하고.
그랬었지.
그러고 보면, 하루카는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지저분해
─ 분명히 환멸하겠지
─ 있지, 좋은 걸 알려 줄게
─ 이제부터 타카네 씨와 키스할 때면
─ 어디에 있더라도, 앞으로 평생 동안
─ 기쁘지, 히비키?
닿아 있는 입술을 조심스럽게 떼고서 타카네는 그대로 히비키를 다시 한 번 안았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히비키는, 어쩐지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굳어 있다고 표현하는 쪽이 올바른 것일까. 마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억눌러 참는 것도 같다고, 어렴풋이 느꼈다.
타카네「… 히비키?」
히비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타카네는,
1. 이젠 참을 수 없다.
2. 히비키가 걱정된다. 돌려보낸다.
>>+3
평소대로의 타카네였다면 히비키의 상태에 위화감을 느낀 나머지 걱정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도 '쌓여' 있었던 만큼, 지금만큼은 타카네에게도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인간인 이상 강력한 욕구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도 무엇도 아니다.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 히비키도 오래간만의 접촉에 긴장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명백히 이상한 히비키의 모습을 애써 그렇게 흘려념기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저, 몸을 뜨겁게 달구는 이 충동에 몸을 맡길 뿐.
히비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히비키의 체취. 굉장히 오랜만에 맡아 보는, 그리운 냄새. 지금 품 안에 안겨 있는 살결도, 검고 풍성한 머리칼도, 지금이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히비키를 맛볼 수 있다. 오직 그 욕구만이 타카네의 온몸에 실처럼 묶여, 애타는 신체를 잠식해 이리저리 휘둘러 간다.
달칵, 금속이 마찰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브래지어가 풀려 스르륵 흘러내렸다. 입을 벌려 아이스크림을 베어물듯 눈 앞의 탐스러운 목덜미를 가볍게 물고서 타카네는 히비키의 가슴으로 손을 움직였다. 손 안에 오롯이 쥐어지는 아름다운 형태의 유방. 그 감촉의 그리움과, 성욕을 미쳐 날뛰게 하는 치명적일 정도의 매력에 타카네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혀를 움직여 목덜미를 핥았다. 그대로 쇄골을 향하고, 이로 물어 상의를 조금 걷어낸 후 키스하듯 힘을 주어 빨았다. 한 차례 떨리며 반응하는 신체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이 애타는 기분을 사모하는 이에게 남김없이 전부 풀어놓고 싶다. 흔히 욕정이라고 일컫는, 수치스럽고 추악한 감정. 그런 통념조차 지금의 타카네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상체를 덮고 있는 셔츠를 다소 거칠게 벗겨내자 가볍게 흔들리며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을 살필 여유조차 잊고서 그대로 가슴에 달라붙듯 밀착해 유두를 덥석 물었다. 기쁨을 주려 한다기보다는 오갈 곳 없는 성욕을 터트리는 것에 가깝게 보이는 거친 애무. 히비키의 몸이 간헐적으로 심상치 않은 기세로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서 타카네는 허겁지겁 자신의 스커트에 손가락을 걸었다. 심장이 맥동한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 귓속을 거칠게 때린다. 자기 자신과 가나하 히비키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주체할 수 없는 애틋함으로 가득차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이 괴롭다. 그것을 어디론가 쏟아붓고 싶어, 다시 입을 맞추기 위해 한 쪽 팔을 뻗어 히비키의 목 뒤에 둘렀다. 다른 팔로는 자신의 스커트와 속옷을 함께 내리며, 타카네는 얼굴을 들고서 히비키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뜨겁게 들끓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얼어붙어 산산조각이 갈라졌다.
타카네「─── 아…?」
타카네「…… 히비키…?」
질끈 감긴 눈.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 얕고 가쁜 호흡. 새파랗게까지 보이는 안색.
모든 지표가 가리키는 하나의 감정은,
공포다.
이와 비슷한 광경을, 이전에 본 적이 있다. 지금과 굉장히 닮은 장면.
욕정에 눈이 멀어 일방적으로 그것을 부딪히고, 그 두려움과 슬픔에 울며 떨었던, 사랑하는 상대.
그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되었던간에, 지금 이 상황은 여지없이 그 때의 재현이다.
맹세했을 것인데.
다시는 이런 식으로 상처입히지 않겠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타카네는 할 말을 잃고서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징징 울리던 하반신도, 미칠 듯 날뛰던 욕망도, 한껏 고조되었던 흥분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순식간에.
거부할 수 없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난폭한 욕망은 너무나도 손쉽게 사그라들었다.
사라진 뒤에 보면 그토록 허무한 것이었던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자괴감이 몸을 휘감았다.
타카네「……」
타카네「히비…… 키」
히비키가 눈을 떴다. 잔뜩 수축해 있는 동공이 혼란스럽다는 듯 난잡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얼어붙어 있는 타카네에게 향하고, 우뚝 정지했다. 히비키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히비키「아, ……」
히비키「… 미, 안… 타카네, 그…… 이상… 하네」
히비키「…… 자신… 어떻게, …… 된」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말을 더듬던 히비키는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를 황급히 주워 입기 시작했다.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엉망인 옷매무새를 한 채로 히비키가 일어섰다.
히비키「…, … 우……, ────읏」
위태롭게 달싹이는 입술에서는 끝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히비키는 달아나듯 문을 열고 타카네의 집으로부터 뛰쳐나갔다.
털썩, 하는 소리가 났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다.
두 무릎을 꿇은 채로, 타카네는 팔을 축 늘어뜨리고서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고여 넘쳐 흘러 아래로 떨어졌다. 소리내어 울 수 있을 정도의 기운조차 몸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그저 그 두 가지만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의식이 그대로 꺼져 버릴 때까지 타카네는 그 자세 그대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타카네「……」
의사와는 상관없이 눈이 떠졌다.
잠들었던 것일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깨어났음에도 몸을 움직일 기분은 들지 않았다. 눈만을 뜬 채로 시선을 움직여 주위를 확인했다. 방 안에는 밝은 햇빛이 비쳐들고 있다. 이 정도라면, 아마 사무소에 출근하는 것은 이미 늦었겠군요. 가장 먼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내 자신이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조금 놀랐다. 그 정도로, 이미 시죠 타카네는 시죠 타카네답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것일까.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허전함을 느껴 시선을 몸 아래로 옮기자 하반신은 완전히 알몸인 채였다. 차분하게 그 이유를 되새기고서 타카네는 말없이 옷을 입었다.
타카네「… 모르겠습니다」
타카네「저는…」
타카네「… 이젠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히비키」
그 때, 무언가를 눈치챘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핸드폰이 깜박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아마 잠에서 깨어난 것도 저것 때문일 것이다. 타카네는 그것을 주워 확인했다. 메시지가 착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발신자는.
타카네「… 아마미 하루카…」
무단으로 결근한 것에 대해서 프로듀서에게 연락의 부탁이라도 받은 것일까. 하지만 어째서 하필 아마미 하루카에게?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카네는 메시지를 열고, 내용을 확인했다.
할 말이 있습니다. 히비키의 집으로 와 주세요.
한 줄뿐인 간결한 메시지였다.
---
이 분들 이렇게 될 거 아셨으면서 단 앵커겠죠?
다들 히비키 괴롭히기 너무 좋아하시네요
제가 어리석어서 히비키를 아프게 하는군요... 아아...
그 때 무대 컨셉과 의상, 선곡 따위에 대한 상담을 위해 몇 번인가 방문한 적이 있었던 하루카의 집. 기억을 더듬어 가며 타카네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을 옮겼다.
단지 눈 앞에 내려온 밧줄을 붙들었을 뿐. 그것 이외엔 무엇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지리라고, 타카네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숨기려 하던 히비키의 모습.
최근 며칠 간 하루카에게서 느꼈던 무엇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기묘한 불안감.
이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짙은 안개가 머지않아 걷히리라고.
하지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타카네가 보기를 원했던 것일까.
시야를 방해하는 안개는 때로는 보호를 위한 방벽이 되기도 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로부터 그 자신을 지키는 장막.
그것이 걷혔을 때, 어쩌면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몰아쳐 파멸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타카네는 망설였다.
소리없이 열린 엘리베이터의 문 안에 들어선 몸에 소름이 스쳤다.
타카네는 난심했다.
거울에 비친 눈동자는 작게 떨리더니, 이내 확연한 빛을 품었다.
타카네는 결단했다.
발소리를 울리며 인적이 없는 복도를 걸어, 조금은 눈에 익은 문을 앞에 두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기계적인 멜로디가 울리고, 정적.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조심스레 손을 올리고 돌리자 문 손잡이는 아무런 저항 없이 돌아갔다. 그대로 문을 당겨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 해가 떠 있는 낮인데도 하루카의 집 안은 기괴하리만치 어두웠다. 마치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이유 모를 떨림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타카네는 안으로 들어선 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알아챘다.
숨이 막힐 듯한 적막 사이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대로 선 채 잠시 귀를 기울이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가장 비슷한 것은, 분명히.
그렇다, 그러고 보면.
그 때, 어째서인지 아주 먼 옛날의 일로만 느껴지는 그 날의 아마미 하루카도.
타카네도, 히비키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섰던 하루카도,
이런 기분을 느꼈었던 것일까.
신발을 벗은 후, 현관에 딛은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소리의 근원지는 중앙의 거실. 현관 복도와 거실의 사이는 또 하나의 문으로 가로막혀 있다.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욱 분명해져, 그 정체룰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알 수 있는 그것을, 그러나 아직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알 수 없다고 몰아세우며.
아직 돌아갈 수 있다고, 돌아가도 아무 의미도 없다고, 두 가지의 충동을 동시에 맞부딪히며.
타카네는 손을 뻗어, 문고리를 쥐고, 당겼다.
장해물을 벗어던지고서, 이미 신음성이라고 알고 있었던 신음성이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들어오는 빛이 방 안에 줄무늬를 새겼다.
그 중앙, 삐걱이는 소파 위에서 서로 뒤엉켜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주위의 어둠과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새하얀 다리의 색.
방문자를 알아챘는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로 하루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눈 안에 꿈틀거리는 것을 타카네는 확실하게 보았다.
이전에도 본 기억이 있었다. 그 때, 그 라이브 후의 대기실. 하루카와 눈을 마주치고서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던 때. 그 때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때가 되어서도 알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 ─
저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경계해야만 할 것이었는데.
눈앞이 흐려졌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지탱할 힘을 잃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앞을 향해 걷는다. 제대로 걷지조차 못하면서도, 비틀대면서도, 단지 계속해서 걸었다.
몸을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고르면서도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하루카가 입꼬리만을 움직여 히죽 웃었다.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그 눈으로 타카네를 응시하며, 하루카는 손으로 틀어쥔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 정체를 확인한 순간.
시야가 낮아져 있다.
정신을 차리자 타카네는 이미 무릎을 꿇은 채였다. 몸에서 단숨에 힘이 빠져나가, 서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호되게 바닥과 부딪힌 무릎이 욱신댔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망연히 앞만을 바라보았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 단 하나, 유일하게 허락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목소리를 내는 것 정도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음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의문.
타카네「히비키」
타카네「어째서」
히비키의 머리를 내려놓고서 소파에서 일어선 하루카가 타카네를 향해 다가갔다. 훤히 드러난 가슴이 발을 옮길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지만 그것을 신경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타카네의 앞에 선 하루카가 타카네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를 진정한 의미로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그 순간 타카네는 처음으로 경험했다.
하루카「어째서냐고 물어도… 결국 타카네 씨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죠? 수수께끼 풀이에는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못 풀면 끝」
하루카「… 아무한테도, 불평은 할 수 없어요」
타카네「……」
침묵하는 타카네.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하루카가 말을 잇는다.
하루카「저, 일단은 타카네 씨한테도, 히비키한테도 기회를 주고 싶었으니까, 되도록 그 쪽은 터치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들어보세요, 타카네 씨」
하루카「히비키 말이예요… 타카네 씨의 집에서 뛰쳐나오는 걸 붙잡았더니만, 처음엔 버둥거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어 오는 거 있죠?」
히비키의 이름이 들렸기 때문일까. 거의 반사적인 동작으로 타카네의 눈길이 히비키에게 향했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엉망진창이 된 채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히비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그 몸에 아무 것도 걸쳐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카「아하하핫! 아아, 정말로, 정말로 웃겨서…! 그렇게나 울고불고 싫어했던 히비키가, 키스 한 번 했다고 바로 헤벌레한 얼굴이 돼서는 표정을 싹 고치더라니까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하루카「… 그래서 저희 집으로 데려와서 귀여워해 준 참이예요. 어때요, 타카네 씨」
하루카「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타카네「……」
길을 터 주겠다는 것처럼 하루카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에 반응하듯 비틀비틀 일어선 타카네가,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하지만 소파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 리도 없어, 두세 걸음만에 타카네는 소파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내려다보면.
히비키「하악, 하악, 하앗… 앗, 읏, 핫… 하, 윽… 앗…!」
아직까지도 몸을 움찔대며 무아지경으로 신음을 토해내는 히비키의 모습. 하루카의 타액과 자기 자신의 애액으로 온몸이 뒤덮인 채, 몸을 온통 헤집는 절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며.
아아, 이렇게나 흐트러진. 이렇게나 원색적인.
이렇게나.
하루카「… 어떠세요?」
어느 틈에 다가온 것인지, 귓가에 하루카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뭔가 대답을 하기 위해 벌린 입에서는 겨우 한 마디만이 힘겹게 새어나왔다.
타카네「…… 언제, 부터였습니까?」
하루카「으음, 그러니까… 분명히 라이브 후에 대기실에서 단 둘만 있었을 때, 그 때가 처음이었죠」
타카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루카「네. 히비키가 느끼는 곳은 다 알수 있게 될 때까지, 히비키가 더 이상 눈물도 흘리지 않게 될 때까지, 히비키가 타카네 씨도 잊어버리도록」
하루카「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하루카「계속 범했어요」
타카네「……」
하루카「있죠, 타카네 씨. 어떤 기분인가요? 솔직히 좀 궁금해져서요. 히비키가 이런 모습이 되어 있는 걸 보고, 기분이 어때요?」
이 소녀는.
하루카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대답을 돌려주기 위해 입을 열어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 아마 말할 수 있었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카「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비키랑 잘 되지 않으신 거죠? 헤헤, 이래서야 처음이랑 입장이 반대네요」
타카네「……」
하루카「그래도 저렇게 귀여운 히비키를 독차지하는 것도 역시 좀 그러니까…」
하루카「… 특별히, 기회를 드릴게요」
타카네「… 무… 슨」
하루카「잘 보세요, 타카네 씨. 히비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하루카의 말을 듣고, 재차 히비키에게 눈길을 돌린 타카네는 그제서야 알아챘다.
안대를 하고 있다.
어두운 탓에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카「뭐, 역시 거기까진 안 보이시겠지만 귀마개도 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타카네 씨가 온 줄은 전혀 모르고 있을 거예요」
타카네「…… 그래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하루카「딱히 어떻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하루카「… 기회를 드리겠다, 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하루카가 타카네의 손을 잡아챘다. 미처 손을 뺄 틈조차 없이, 잡힌 손이 하루카의 움직임에 딸려갔다.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챈 타카네가 뒤늦게 저항하려 했지만, 하루카의 기이할 정도의 완력에는 이길 수 없었다.
타카네「큭…! 무슨, 짓을─」
뚝 하고, 부자연스럽게 타카네의 목소리가 멈췄다.
히비키「아, 앙…! 흣…!」
자지러지는 듯한 히비키의 신음소리. 그대로 굳어 있던 타카네가 그제서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하루카의 손에 쥐어진 채인 자신의 손가락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방 안의 어둠 탓이 아니다. 히비키의 몸 안으로 삼켜진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이해했다.
하루카「… 어때요, 타카네 씨?」
침입한 손가락을, 히비키의 질벽이 부드럽게 휘감아 간다. 쿵쿵 맥박치는 혈류와 흥건한 애액, 손가락이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움. 아직도 절정의 여운이 남은 것인지 질은 불규칙적으로 움찔움찔 수축하기를 반복하며 타카네의 손가락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 감촉은 한없이 음란하고, 고혹적이고, 어째서인지,
대단히 안타까워서.
하루카「지금이라면, 타카네 씨라는 걸 알리지 않은 채로」
하루카「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소녀의 치명적이랄만치 달뜬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다.
하루카「… 네? 타카네 씨」
하루카「어떻게, 하실래요?」
1. 용서할 수 없다.
2. 히비키를 범한다.
3. 히비키의 안대를 벗긴다.
>>+4
엔딩 직결 앵커
하지만 발판
하루카가 다시 질시에 빠져서 완전히 절망한다던가...
히비키는 어딘가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던가...
어리석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히비키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신비로운 아이돌. 은빛의 고고한 왕녀. 그렇게 떠받들어지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며 요란스레 치켜세워지던 이 눈은 결국, 소경의 눈만큼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더럽혀진 채로 어둠 속에서 헐떡이고 있는 히비키의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탓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타카네「아, 아아, 아」
밉다.
아마미 하루카가 밉다.
하루카만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히비키가 이런 꼴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토록 괴로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 하루카 때문이다.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카네「아아, 아─ 아아─」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히비키를 위해서.
두려움에 못 이겨 마침내 찾아왔던 히비키에게 자신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욕망에 미쳐 애액을 흘리며 먹어치우듯이 몸을 핥고, 그 입술을 몇 번이고 탐했다.
무엇이 다른가.
하루카가 했던 일과, 무엇이 다른가.
타카네「…… 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실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가.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겉멋든 말을 입 밖으로 내었을까.
만약 그 때부터였다고 한다면.
오만이었을 뿐인 그 말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타카네「후, …… 후후」
이러한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 역시,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탓해야 할 대상 역시도, 다른 누구도 아닌.
타카네「……」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시죠 타카네가 어떠한 자였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아마미 하루카를 어째서 미워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가나하 히비키에게 품어 왔던 것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게.
검은 잉크병을 넘어뜨린 것처럼, 새카맣게 뒤덮여 간다. 느껴 왔던 것도, 경험해 왔던 것도, 생각해 왔던 것도, 무엇 하나 남김없이 검고 검게.
거짓말처럼 텅 비어 버린 검은 도화지 같은 머릿속을 뒤이어 무언가가 대신해서 채워 간다.
편해지고 싶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
그러한 욕망은, 인간으로서, 시죠 타카네로서 남아 있기 위해서는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타카네「…… 아아」
그 몸을 얽매고 있는 것 따위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굶주린 들개처럼, 타카네가 무서운 기세로 히비키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히비키「앗, 읍, 응… 훅, 웁, 우읍… 읍」
타카네「읍, 프핫, 하, …… 하아, 하아, 학, 음… 후읍」
입을 맞대고, 혀를 넣었다. 히비키는 저항하지 않았다. 치열을 핥고 혀를 맞물리게 하고 침을 들이마신다. 맛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맛본다.
히비키「… 응, 윽…! 핫, 으, 흐아… 윽!」
아까부터 삽입되어 있었던 타카네의 손가락은 어느샌가 그 숫자가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쑤셔박듯이 깊숙하게 삽입시킨 검지와 중지, 약지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여, 질벽 위쪽을 긁듯이 강하게 누른다. 꾸욱, 압박할 때마다 그에 반응하듯 히비키의 몸이 격렬하게 튀었다.
타카네「하아, 하아, 하악, 츄웁, 음, 하악, … 하아, 웃, 하아」
바짝 밀착해 비벼지는 두 몸의 사이에 끼인 듯한 꼴이 된 타카네의 옷은 이미 땀과 타액,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아랑곳하지 않고서 타카네가 혀를 움직인다. 떼어진 입에서 끈적하게 늘어지는 침이 드러난 쇄골 위에 수놓이듯 흔적을 그렸다. 그것을 뒤따르듯 타카네가 목덜미를 핥아내렸다. 동시에 다른 한 손을 들어올려 히비키의 왼쪽 가슴을 터질듯이 움켜쥐었다.
히비키「으응! 으하, 으… 핫!」
히비키의 고통 섞인 신음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타카네가 거칠게 손을 움직인다. 쾌락을 주려는 것이 아닌, 먹이를 먹어치우려 드는 굶주린 동물과도 같은 동작. 그것은 이미 애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타카네「후욱, 후욱… 후우, 하아, 하… 읏」
타카네가 히비키의 몸에서 손가락을 빼내고서, 곧바로 자신의 입에 넣었다. 혀를 움직여 끈적한 애액을 음미하듯 핥고, 그 맛을 나누려는 듯 재차 히비키에게 키스하고서, 뒤이어 허겁지겁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속옷만이 남겨지고, 그것마저도 벗겨져 간다. 애액은 이미 최고조로 이른 흥분에 흥건히 넘쳐 허벅지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타카네가 히비키의 한 쪽 다리를 붙잡고서 벌리자 히비키의 비소 역시 완전히 드러났다. 마찬가지로 흠뻑 젖어 애액을 토해내고 있는 히비키의 두 다리 사이에 타카네가 하반신을 가져갔다. 음란한 물을 머금은 음순이 서로 가까워지고, 이내 맞닿아 찌걱, 하는 물소리를 냈다.
타카네「흐, 아읏…!!」
히비키「응, 앗…! 흐아, 아앙!」
안타까운 한숨이 겹쳐지고, 뒤이어 타카네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짓눌려 뭉개지는 둔덕과 한껏 충혈되어 허리를 흔들 때마다 스쳐지는 음핵. 양쪽에서 넘쳐흘러 습기어린 소리를 내는 애액. 음란하게 출렁이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슴. 마치 남성이 여성을 범하는 것처럼, 타카네는 목을 뒤로 젖힌 채로 열락에 겨워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어 댔다.
타카네「하아! 응, 핫, 하악, 으핫, 아응! 응!」
히비키「힉, 앙, 후아! 흐아, 아, 아아아! 우앗… 앙!」
문득 정신이 들었다는 듯, 그러나 혼탁한 채인 눈동자를 하고서 타카네가 히비키의 뒷목을 끌어안았다. 그 탓에 타카네의 풍만한 가슴과 그에 못지 않은 히비키의 가슴이 압력에 짓눌려 일그러진 형태가 되었다. 겹쳐지는 유두의 자극에 흠칫흠칫 등골을 떨며, 타카네가 히비키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히비키「하윽…! 쿠핫, 윽, 읏…!」
타카네「… 으음… 후우, 읍…!」
그와 동시에 음부를 문질러 맞대는 허리의 움직임이 한층 격해졌다. 히비키도 그에 호응하듯 허리를 흔들어 대어, 방 안은 튈 듯이 요란한 물소리로 가득 차 간다. 가능하다면 몸의 뿌리 끝까지 찔러넣고 싶다는 것처럼, 타카네가 격렬하게 몇 차례 허리를 밀어붙이고,
타카네「응, 응! 읏, 아, ……….!!」
히비키「아! 흐아아앗! 으, 아……!! 윽……!!」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며, 두 소녀는 절정에 이르렀다.
타카네「하악, 하악, 하아… 하… 하」
거친 숨을 내쉬며, 타카네가 쓰러지듯 히비키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재차 겹쳤다. 마찬가지로 절정을 증명하듯 거칠어진 히비키의 숨소리. 쿵쾅대는 히비키의 심장의 박동.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살의 온기. 등골을 타고 흘러 온몸을 주체할 수 없이 떨리게 하는, 위험할 정도의 쾌감.
이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계속 원해 오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두 손에 넣은 것.
타카네「… 후… 후후… 후후후, 우후훗.. 하, 아핫」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째서인지는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을 붙잡아 두지 않기로, 그렇게 결정했으니까.
아마, 너무나도 행복해서일 것이다. 행복하다면 웃는 게 당연하니까.
타카네「… 아아…」
노곤한 피로감에 힙겹게 저항하며, 오른손을 들어 히비키의 몸을 어루만졌다. 이것을 원했다. 지금까지 애타게 원해 오던 것은, 분명히 이것이다. 이젠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아.
은색의 달빛을 담은 눈동자라고, 일찍이 누가 말했던가.
늪지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혼탁한 자줏빛의 눈동자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이미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타카네의 눈가에서 한 방울의 액체가 흘러, 히비키의 몸 위로 떨어졌다. 땀도, 애액도, 타액도 아닌 그것은, 그러나 순식간에 그 안으로 섞여들어 타카네 본인조차도 알아챌 수 없었다.
만약에 알아챘더라도, 어째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조차 지금의 타카네에겐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말없이 지켜본 소녀가, 타카네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은 후 팔을 뻗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직도 아주 조금 고여 있었던 눈물을 검지를 세워 소리없이 닦아내어 주고서, 하루카가 입을 열었다.
하루카「… 가엾어라」
하루카「정말로, 가엾은 사람」
하루카「괜찮아요, 타카네 씨. 이제부터는 제가…」
하루카「… '사랑' 이라는 걸」
하루카「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타카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리고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이었다.
END. 무채색의 사진
무슨 말부터 쓰면 좋을지... 길었네요.
그냥 가벼운 히비타카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급격한 시리어스 노선 전환과 함께 굉장히 길게 와 버렸습니다. 사실 게으른 연재 덕에 기간만 길어졌을 뿐이지 분량 자체는 별 것도 없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요.
도중에 몇 번 언급했듯 분명히 본래 컨셉에 충실해서 히비타카 해피 엔딩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앵커는 절대적이니까요...뭐 이렇게 되어 버린 것도 이건 이거대로 괜찮겠지 싶습니다. 하루카에 대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어찌 됐든, 이젠 끝이네요. 신사판에 있는 주제에 그렇게 야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시리어스한 분위기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지루한 내용 전개, 터무니없이 길게 질질 끌리기까지 하는 글에 지금까지 어울려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참여하진 않으셨더라도 읽어 주신 분들께도요.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별 것도 없는 글 주제에 이런 식으로 후기까지 쓰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딱 이것까지만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정말로 끝.
암러빙잇
작성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상당히 잘 맞고 묘사도 잘 되어있고 완결이 났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을 궁금해할 만큼 내용도 흥미진진했습니다.
솔직히 야한 것만 기대하고 봤는데 상당히 명작이었어요
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