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일을 하기 위해 나가고 나면 그녀에게는 10시간이 넘는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할수있는 것이 몸을 움직이는 것 뿐이라는 점이 절대적인 악조건이긴 하지만 말이다.
히비키「.....」
그녀는 멍하니 방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처음 이 공간으로 돌어올 때부터 이 공간의 사면은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자 비스므리한 것으로 막혀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나무집 같았다. 그렇다. 먹이를 먹기 위해 굴러들어온 아이들을 가두기 위한 마녀의 집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공간의 벽들을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버린다면 그녀는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이미 반쯤은 자신이 제정신인지 자신할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차라리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수십, 수백, 수천....아니. 수만 시간을 멍하니 버터야 한다면 차라리 미치는게 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 그녀였다. 어쩌면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빠져 헤헤 거릴수 있다면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갈지도 몰랐다.
물론 그녀에게는 무리였다. 먹지를 못해서 페인트는 커녕 작은 숟가락 드는 것도 힘이 든다.
그에게 부탁하면 되겠지만 아마 '왜?' 한마디에 대답도 못하고 말겠지.
........라고 또다시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의 습관화 되어버린 '쓸데없는 생각 하기'에 빠졌을때. 그녀의 시선은 문쪽으로 향했다.
데칼코마니 마냥 온 벽이 나무색인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의 색을 갖고있는 존재. 문.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호러로맨스스틸러 영화라면 저 문이 열려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럴리가 없었다.
지금도 열명이 넘는 숫자를 하나하나 프로듀스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가 고작 문을 잠그고 가지 않는 실수를 할리가 없다. 응응. 그럴리가 없다. 아쉽게도 이건 영화도 아니고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도 아니니까.
히비키「하하....」
이 공간에 있으니 미친 것을 넘어 현실과 영화 속을 착각하려고 하는 자신을 보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저벅저벅
그럴리가 없다. 그녀는 확실하고 있었다. 이것은 문 옆에 놓아둔 화초 아래에 벌래가 있는가 없는가 확인하는 수준의 일도 아니었다. 딱히 그녀가 저 문까지 다가간 다음, 문고리를 돌리고 확실히 잠겨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침대까지 돌아가는 '수고'를 넘어선 '막노동'을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저벅저벅
하지만 그녀는 심심하다. 지루하다. 제정신이 아니다. 약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녀에게는 이 쓸데 없는 행동을 할 이유가 조금도 없지만, 변명 거리로 댈만한 것들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 조심히 돌렸다.
분명히 돌아갈듯 하다가 멈춰야 할 문고리.
철컥
하지만 그것은...
여기에 서있는 그녀, 혹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할 그의 기대를 배신하고, 시계의 초침 마냥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이마에서 맺힌 땀이 흘러내려 뺨을 통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자 엄청난 양의 땀이 손을 따라온다.
이마의 땀을 한 바가지 훔친거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마에는 아직 많은 양의 땀이 녹고있는 고드름 마냥 남아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올라온 계단은.....5계단.
그때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몸이 어느 정도로 약해져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저 공간 안에서 할수있는 일은 걷거나 뛰는 것이 최대였다. 하루의 한끼 밖에 못 먹는 그녀가 몸상태를 호전시킬만한 운동을 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갈때면 그는 그녀를 안고 윗층의 화장실까지 대려다 줬다. 당시에는 그가 자신을 그만큼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그녀의 체력이 떨어지기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도 말한마디 한마디를 아껴야 할 정도로 약한 상태지 않은가.
한 계단, 한 걸음을 내밀 때마다 온몸에 철근을 달고있는 느낌이다.
히비키「.....」
그냥....돌아갔까?
한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른 고민은 쉽게 물리치기 힘들었다.
차라리 돌아가고 그가 올때까지 모른척 할까?
어쩌면 그가 돌아오고 문이 열려있었음을 깨달는다면 그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얼마나 크게 기뻐할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기뻐할 것이다. 그럼 그의 마음도 조금 넓어질 것이고 어쩌면 그녀가 밖으로 나갈수 있도록 어떠한 조치를....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솔직히 몇년 동안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어느 정도 열어놓았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 한끼, 공간 안에서 벗어나기 금지, 현재 바깥 세상의 이야기 거리 금지.
전혀 나아진것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도 바깥 세상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가 올때까지 몇 시간일지도 모르는 시간을 잠겨있지 않은 문을 무시한다는건 몇번을 생각해봐도 무리였다.
그녀는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걸을 때보다 다리의 각도를 더 올려야 한다는 것이 죽도록 힘들었지만 다시 저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열몇 계단을 올라온 그녀는 벌써부터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 다리 때문에 네발로 뛰어다니는 짐승처럼 기어다니듯이 계단을 올라왔다.
분명 어제도 봤었던 그의 집....하지만 지금 그와 함께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혼자 왔다는 제일 큰 차이점이 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아플 정도로 눈부시다. 딱히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빗소리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웃어본적이 기억에 없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움직인다.
히비키「하하! 하하하하!」
저벅저벅저벅
그녀는 두손을 바닥에서 떼어내고 일어서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끼이이익
냉장고의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냉장고 안에서 불어온다. 대부분 인스턴트 뿐이지만 한 구석에 작은 플라스틱 통들 안에 들어있는 반찬 거리가 보인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아무거나 손에 닿은 것을 꺼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차가움에 연약해진 피부가 아파왔지만 이런 점 또한 좋았다.
히비키「이잇...」
한 동안 뚜껑을 열기 위해 낑낑거린 그녀는 결국 뚜껑을 무사히 열고 통 안에 든 음식을 대충 손으로 집어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다른 사람이 보면 동물원에서 탈출한 짐승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먹은듯 안 먹은듯 지낸 그녀에게는 소용없는 사실이었다.
한 통을 비운 뒤, 다시 한통. 그리고 또 다시 한통.
히비키「우..우....우웁!」
그리고 잠시 후, 당연하지만 오랜만에 포식을 한 그녀의 위는 비명을 질렀다.
히비키「꿀꺽, 꿀꺽!」
금방 먹은 것을 다시 싱크대에 뱉어낸 그녀는 냉장고 안에 있는 물을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렇게 행복한 행위를 그녀는 몇년 동안 못 한 것일까. 그러고보면 그는 항상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었겠지? 못된 놈. 나쁜 놈. 꼼생이. 정신 나간 놈.
세상은 그녀가 실종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녀를 나타내는 증거품이나 마찬가지인 그 물건들을 그가 가만히 놔뒀을리는 없다.
혹시 지금 그녀가 어떠한 상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그 공간에서 항상 알몸으로 있었다고 대답하겠다.
일단 그녀는 옷장에서 자신이 입을만한 옷을 찾았다.
크기가 맞을리는 없겠지만, 큰 티셔츠를 커다란 치마처럼 입으니 해결되었다.
먹을 것도 해결되었다. 옷도 해결되었다.
이제 적당한 신발만 찾아서 바깥으로 나가면 된다.
그리고....
히비키「........」
히비키「.......」
히비키「어,어떻하지?」
나가서 뭘해야 하지? 바깥은 어떻게 생겼지? 길은 어떻게 되어 있었지? 뭔가 뭘리 떨어진 사람들끼리 대화할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존재했던거 같은데? 아닌가? 그것보다 사람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더라? 구급차? 차? 차는 뭐였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건이었나?
그러고보니 자신은 누구였지? 아이돌? 아이돌이 뭘 하는 직업이었지? 그것보다 자신은 왜 이곳에 들어왔었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절대로 무리라고 믿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바깥과 자신을 끊어버린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고자 하니, 그녀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건 현재를 버티고자 하는것 뿐이었고. 결국 과거의 모든 것을 망각해버렸다.
히비키「그러,니까. 나,나는. 에, 우우....」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기억하고자 해도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이러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뚝뚝
뚝뚝뚝뚝
위에서 비가 쏫아지면 지면에 부딪혔다.
하늘은 파란 색이었다. 바닥에 고여있는 물은 투명했다. 바닥은 밝은 검은 색이었고, 그 공간의 바닥보다 딱딱했다.
히비키「헤헤.」
그녀는 생각했다. 비록 많은 것을 잊어버렸으면 어떤가. 그래도 수년만에 나와보는 바깥 세상이다. 일단 걷자. 어디가 목적인지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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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다리를 넘어 바닥에 닿을만큼 길어진 머리카락은 그녀가 걸을 때마다 무언가 끌리듯 마찰음을 내뱉었다.
그녀는 목적도 없이 방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지러움도 없다. 메스꺼움도 없다. 그저 심심해서 미치기 직전일 뿐이었다.
그것은 시간.
TV, 시계, 창문.
시간을 확인할수 있는 수단들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방안을 밝게 해주고 있는 전등과 그녀가 잠을 잘때, 그리고 그와 잠자리를 가질때 쓰이는 침대 뿐이었다.
사무실 일로 항상 바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무실에 프로듀서가 두명 뿐이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가 그녀의 하루에 있어서 유일한 등장인물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는...
히비키「하아...」
그녀는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었다.
P「...」우물우물
그녀의 식사는 언제나 하루에 한끼다.
그가 출근하기 전에 먹는 아침 식사.
이유로 따지면 그가 시간이 없어서 이기도 하고...
혹시나 그녀에게 기운이 생겨 탈출을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탈출하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는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딱히 함께 할수있는 일도 없지만 (성적인 행위를 할수는 있지만 체력이 되지 않는다.)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때 그가 상상도 못할 외로움을 느낄것이란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주물럭주물럭
히비키「...」
P「...」
히비키「있잖아, 가슴만 만지고 있는건 사양인데.」
P「미안.」
주물럭주물럭
히비키「있잖아.」
P「응?」
히비키「그냥 낮에는 윗층에 있으면 안돼?」
P「...」
그녀의 가슴 위를 누리고 있던 그의 손이 뚝하고 멈쳤다.
현재 사회에서 그녀는 엄연히 '실종' 상태였다.
살고있던 집이 불타고 가족같은 애완 동물들을 잃은 충격으로 아무 말없이 사라져버린 비련의 아이돌이었다.
혹시나 누군가가 그녀를 발견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든 사건의 원인인 그도 예측할수 없었다.
P「안...돼.」
히비키「응.」
히비키「.....」
그녀는 멍하니 방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처음 이 공간으로 돌어올 때부터 이 공간의 사면은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자 비스므리한 것으로 막혀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나무집 같았다. 그렇다. 먹이를 먹기 위해 굴러들어온 아이들을 가두기 위한 마녀의 집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공간의 벽들을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버린다면 그녀는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 이미 반쯤은 자신이 제정신인지 자신할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차라리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수십, 수백, 수천....아니. 수만 시간을 멍하니 버터야 한다면 차라리 미치는게 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 그녀였다. 어쩌면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빠져 헤헤 거릴수 있다면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갈지도 몰랐다.
물론 그녀에게는 무리였다. 먹지를 못해서 페인트는 커녕 작은 숟가락 드는 것도 힘이 든다.
그에게 부탁하면 되겠지만 아마 '왜?' 한마디에 대답도 못하고 말겠지.
........라고 또다시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의 습관화 되어버린 '쓸데없는 생각 하기'에 빠졌을때. 그녀의 시선은 문쪽으로 향했다.
데칼코마니 마냥 온 벽이 나무색인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의 색을 갖고있는 존재. 문.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호러로맨스스틸러 영화라면 저 문이 열려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럴리가 없었다.
지금도 열명이 넘는 숫자를 하나하나 프로듀스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가 고작 문을 잠그고 가지 않는 실수를 할리가 없다. 응응. 그럴리가 없다. 아쉽게도 이건 영화도 아니고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도 아니니까.
히비키「하하....」
이 공간에 있으니 미친 것을 넘어 현실과 영화 속을 착각하려고 하는 자신을 보니 실실 웃음이 나왔다.
저벅저벅
그럴리가 없다. 그녀는 확실하고 있었다. 이것은 문 옆에 놓아둔 화초 아래에 벌래가 있는가 없는가 확인하는 수준의 일도 아니었다. 딱히 그녀가 저 문까지 다가간 다음, 문고리를 돌리고 확실히 잠겨있는 것을 확인한 다음, 침대까지 돌아가는 '수고'를 넘어선 '막노동'을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저벅저벅
하지만 그녀는 심심하다. 지루하다. 제정신이 아니다. 약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녀에게는 이 쓸데 없는 행동을 할 이유가 조금도 없지만, 변명 거리로 댈만한 것들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 조심히 돌렸다.
분명히 돌아갈듯 하다가 멈춰야 할 문고리.
철컥
하지만 그것은...
여기에 서있는 그녀, 혹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할 그의 기대를 배신하고, 시계의 초침 마냥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히비키「아?」
어떤 방향으로든 그녀의 기대를 배신해버린 문고리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오랜만에 본의 아니게 머리 속이 하애져 버렸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마음 속에 아주 작은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혹시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건가? 너무 심심해서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선채로 잠들어버리는 습관을 만든것일까?
히비키「....」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것이 절대 꿈이 아니란 것은 딱히 깊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도 알수있었다.
그녀는 계속 잡고있던 문고리를 당겼다.
비록 몇년 동안 계속된 하루 한끼 식단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이 많이 안 좋아졌지만 문을 열고 닫는 데에는 큰 문제가....없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문을 안전히 열수있었다.
히비키「하아....하아....」
문너머로 보이는 계단, 이 계단만 올라가면 이 공간에서 나갈수 있다.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갈때가 아니라면 절대로 벗어날수 없었던 이 공간.
그의 허락이 없으면 절대로 벗어날수 없었던 이 공간.
몇년동안 조금씩 잔인하게 그녀의 모든 것을 갈아먹어 버린 이 공간.
이 공간에서 벗어날수 있다. 이 괴물의 위 같은 곳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히비키「........」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이렇게 심장이 빠르게 뛴게 얼마만이지?
적어도 이 몇년간 그와 관계를 가질때를 빼면 없는거 같다.
히비키「.....나가자....」
그렇게 그녀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이마에서 맺힌 땀이 흘러내려 뺨을 통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자 엄청난 양의 땀이 손을 따라온다.
이마의 땀을 한 바가지 훔친거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마에는 아직 많은 양의 땀이 녹고있는 고드름 마냥 남아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올라온 계단은.....5계단.
그때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몸이 어느 정도로 약해져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저 공간 안에서 할수있는 일은 걷거나 뛰는 것이 최대였다. 하루의 한끼 밖에 못 먹는 그녀가 몸상태를 호전시킬만한 운동을 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갈때면 그는 그녀를 안고 윗층의 화장실까지 대려다 줬다. 당시에는 그가 자신을 그만큼 소중하게 대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그녀의 체력이 떨어지기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도 말한마디 한마디를 아껴야 할 정도로 약한 상태지 않은가.
한 계단, 한 걸음을 내밀 때마다 온몸에 철근을 달고있는 느낌이다.
히비키「.....」
그냥....돌아갔까?
한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른 고민은 쉽게 물리치기 힘들었다.
차라리 돌아가고 그가 올때까지 모른척 할까?
어쩌면 그가 돌아오고 문이 열려있었음을 깨달는다면 그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얼마나 크게 기뻐할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기뻐할 것이다. 그럼 그의 마음도 조금 넓어질 것이고 어쩌면 그녀가 밖으로 나갈수 있도록 어떠한 조치를....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리가 없었다. 솔직히 몇년 동안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어느 정도 열어놓았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하루 한끼, 공간 안에서 벗어나기 금지, 현재 바깥 세상의 이야기 거리 금지.
전혀 나아진것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도 바깥 세상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가 올때까지 몇 시간일지도 모르는 시간을 잠겨있지 않은 문을 무시한다는건 몇번을 생각해봐도 무리였다.
그녀는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걸을 때보다 다리의 각도를 더 올려야 한다는 것이 죽도록 힘들었지만 다시 저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히비키「열아홉 계단...」
열몇 계단을 올라온 그녀는 벌써부터 비명을 지르려고 하는 다리 때문에 네발로 뛰어다니는 짐승처럼 기어다니듯이 계단을 올라왔다.
분명 어제도 봤었던 그의 집....하지만 지금 그와 함께가 아닌 자신의 힘으로 혼자 왔다는 제일 큰 차이점이 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아플 정도로 눈부시다. 딱히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빗소리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웃어본적이 기억에 없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움직인다.
히비키「하하! 하하하하!」
저벅저벅저벅
그녀는 두손을 바닥에서 떼어내고 일어서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끼이이익
냉장고의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냉장고 안에서 불어온다. 대부분 인스턴트 뿐이지만 한 구석에 작은 플라스틱 통들 안에 들어있는 반찬 거리가 보인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아무거나 손에 닿은 것을 꺼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차가움에 연약해진 피부가 아파왔지만 이런 점 또한 좋았다.
히비키「이잇...」
한 동안 뚜껑을 열기 위해 낑낑거린 그녀는 결국 뚜껑을 무사히 열고 통 안에 든 음식을 대충 손으로 집어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다른 사람이 보면 동물원에서 탈출한 짐승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먹은듯 안 먹은듯 지낸 그녀에게는 소용없는 사실이었다.
한 통을 비운 뒤, 다시 한통. 그리고 또 다시 한통.
히비키「우..우....우웁!」
그리고 잠시 후, 당연하지만 오랜만에 포식을 한 그녀의 위는 비명을 질렀다.
히비키「꿀꺽, 꿀꺽!」
금방 먹은 것을 다시 싱크대에 뱉어낸 그녀는 냉장고 안에 있는 물을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렇게 행복한 행위를 그녀는 몇년 동안 못 한 것일까. 그러고보면 그는 항상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었겠지? 못된 놈. 나쁜 놈. 꼼생이. 정신 나간 놈.
잠시 내놓고 입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속으로 그를 씹어댄 그녀는 집안을 돌아다녔다.
세상은 그녀가 실종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녀를 나타내는 증거품이나 마찬가지인 그 물건들을 그가 가만히 놔뒀을리는 없다.
혹시 지금 그녀가 어떠한 상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그 공간에서 항상 알몸으로 있었다고 대답하겠다.
일단 그녀는 옷장에서 자신이 입을만한 옷을 찾았다.
크기가 맞을리는 없겠지만, 큰 티셔츠를 커다란 치마처럼 입으니 해결되었다.
먹을 것도 해결되었다. 옷도 해결되었다.
이제 적당한 신발만 찾아서 바깥으로 나가면 된다.
그리고....
히비키「........」
히비키「.......」
히비키「어,어떻하지?」
나가서 뭘해야 하지? 바깥은 어떻게 생겼지? 길은 어떻게 되어 있었지? 뭔가 뭘리 떨어진 사람들끼리 대화할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존재했던거 같은데? 아닌가? 그것보다 사람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더라? 구급차? 차? 차는 뭐였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건이었나?
그러고보니 자신은 누구였지? 아이돌? 아이돌이 뭘 하는 직업이었지? 그것보다 자신은 왜 이곳에 들어왔었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절대로 무리라고 믿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바깥과 자신을 끊어버린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고자 하니, 그녀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건 현재를 버티고자 하는것 뿐이었고. 결국 과거의 모든 것을 망각해버렸다.
히비키「그러,니까. 나,나는. 에, 우우....」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기억하고자 해도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이러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뚝뚝
뚝뚝뚝뚝
위에서 비가 쏫아지면 지면에 부딪혔다.
하늘은 파란 색이었다. 바닥에 고여있는 물은 투명했다. 바닥은 밝은 검은 색이었고, 그 공간의 바닥보다 딱딱했다.
히비키「헤헤.」
그녀는 생각했다. 비록 많은 것을 잊어버렸으면 어떤가. 그래도 수년만에 나와보는 바깥 세상이다. 일단 걷자. 어디가 목적인지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걷자.
리츠코「프로듀서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가 곤란해 보이는 것이 눈에 띄었는지.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키즈키 리츠코가 말을 걸어왔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무실이 커지고, 은퇴를 하거나 소속사를 옮긴 아이들도 몇몇 있지만 아직도 같은 사무실에 남아 일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인 그녀였다.
P「아아, 그게...집에 갔다와야 할거 같아. 정말 미안.」
리츠코「호오, 프로듀서님이 실수를 하다니...꽤나 희귀한 장면인데요?」
평소에 실수를 잘 하지 않는 그였기에, 마치 친구의 약점이라도 잡아낸 꼬마애처럼 키득거리는 그녀였다.
P「....」
아주 잠깐 동안 집 지하에 있을 가나하 히비키가 생각났지만 금방 그만 두었다.
자신이 그녀를 집에 대려가는 가정, 그녀가 집에 있는 동안 행한 행동, 그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노력. 뭐 하나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것이 없다.
그는 그녀를 모른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어떠한 생각으로 갑자기 사라져버린 건지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세뇌하지 않으면 갑자기 어떠한 실수를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저 그녀를 이해하며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강한 프로듀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
P「.......」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문에서 나와 마당에서 나오고 있는...
절대로 밖으로 나오면 안되는 존재.
절대로 세상에 알려지면 안되는 존재.
절대로 자신의 집 지하 외의 장소에서 만나면 안되는 존재.
가나하 히비키가 그의 시선 안에 들어왔다.
어떻게 나온거지? 왜 여기있지? 어째서? 자신이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했나? 그것보다......
그녀는 문이 열려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밖으로 나와버린건가.
이제 어느 정도 그녀가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이 생활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이제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그만의 착각이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뻔뻔한 생각이란 걸 안다. 하지만...하지만...
너무나 화가 난다. 고작 문이 열려있었다는 이유로. 기회가 왔다듯이 바로 밖으로 뛰쳐나와 버린 그녀가 싫다. 버텼어야지. 힘들었어도 싫었어도 무시하고 자신을 기다렸어야지.
아무래도 그녀는 아직 정신을 제대로 잡지 못한거 같다. 그는 알려줘야 했다. 다음에 또다시 이런 상황이 왔을때 그녀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잊지 않도록 깊숙히 각인시켜야 했다.
그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서로의 눈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당황, 두려움, 긴장, 분노, 아쉬움, 슬픔, 실망. 여러가지 감정이 누구의 기분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왔다갔다 하는것이 보인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다 한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
그녀의 얼굴 쪽으로 그의 손이 다가온다.
재빠르게 그녀의 작은 입을 막아버리고는 다른 손으로 그녀를 안아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게 그의 행동에 대항할 체력 같은게 있을리가 없었다. 어쩌면 저항 때문에 그의 기분이 더더욱 상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금방 그의 화가 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본노로 가득찬 그였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히 하고자 하고있다는 것을.
그녀는 예상했다. 그는 그녀를 바로 그 공간으로 대려갈 것이고,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언제나 행했던 행위를 할것이다. 솔직히 탈출의 기회를 놓친것은 너무나 아깝지만 이미 실패해버린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바깥 공기를 느껴본 것으로 만족해야 할 일이었다.
혹시 모르잖는가. 어쩌면 시간이 흘러 그가 이런 실수를 또 할수도....
보지 않는게 나을지도....하여튼 조심해주세요.
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그가 그녀를 내려놓은 곳은 푹신한 침대가 아닌 딱딱한 바닥이었다.
그녀를 내려놓고 바로 문을 닫고 잠그는 그.
긴장 때문에 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는 나갈때부터 계속 신고있었던 구두를 벗고 방 한구석에다 던져놓았다.
그리고 가만히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히비키「커억!!」
배에 가해진 충격.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던 그녀는 강한 구토감을 느꼈다.
히비키「으으,웁, 우웨에에에엑!!」
히비키「우웩! 웩! 콜록콜록!」
아직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음식들이 식도를 통해 올라와 나오고 있다.
히비키「우웁, 웩! 우웩!」
구토감에 위액까지 뱉어내고 있는 그녀.
하지만 아직도 음식을 게워 내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히비키「아앗...」
강제로 끌어올려진 그녀의 시선 안에 그의 어깨 너머에 있는 반대쪽 손이 들어온다. 울퉁불퉁하게 보일 정도로 강하게 쥐고 있는 주먹.
그녀가 설마? 하고 생각하고 있을때 주먹은 빠르게 그녀의 얼굴로 날아왔다.
폭력. 폭력. 폭력.
순수하게 다른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은 단어. 폭력.
막아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매달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서 그에게 안기듯이 매달려 보았지만 그는 그녀를 가볍게 떼어내고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아프다. 발로 차인 배가 아프다. 손바닥에 맞은 뺨이 아프다. 왼쪽 눈도 아프다. 오른쪽 팔도 아프다. 주먹을 막으려 했던 손가락도 아프다. 아프다. 전부 아프다.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이러지 않을게요. 때리지 말아요. 다시는 안 이럴게요. 제발 때리지 말아요. 살려주세요. 아파요.
아무리 울어도, 애원해도, 용서를 구해도 소용 없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그녀에게 잠자리를 요구하고, 하루에 한끼 밖에 안 주고, 이 공간에서 못 나가게 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때린 적은 없다라는 것을.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과거로 돌아갈수 있다면 문을 모른척하고 그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냥 무시할껄. 문 같은거 신경쓰지 말고 평소처럼 어떻게 심심함을 때울지 고민이나 하고 있을껄. 왜 갑자기 문 같은것을 신경쓴 것일까.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히비키「아아...아퍼...」
P「하아....하아...」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렵다. 그가 잠시 쉬고 또다시 때릴거 같아서 너무나 무섭다. 그녀는 울면서도 그와 눈이 안 마주치도록 바닥을 쳐다봤다.
바닥에는 그녀가 게워 낸 토사물 뿐이었지만 저 악마같은 인간을 자극하게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의 대한 미움을 뛰어넘어 자신에 대한 원망과 후회 밖에 들지 않는다. 왜 그랬지. 진짜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히비키「다,다시는 안 그러, 흐읍...그럴게요. 그러지 말...」
히비키「흐윽- 흑흑...」
히비키「우와아아아앙....흐아아아앙....」
폭력이 멈춘 그 시간, 그 공간에는 그녀의 울음 소리만 울려퍼졌다.
시야가 흐릿하다. 주위의 뭐가 있는지, 어떤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흐릿한 시야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주장하고 있는 한 여자. 그녀만 보일 뿐이다.
히비키「시,싫어....왜 이런 일을....」
겁을 먹은 꼬마애처럼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 이런이런...그런 말 하면 안돼지. 일이 이렇게 된건 너 때문이잖아. 너가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았어도....
P「하아...」
어차피 벌은 이미 끝났다. 지금부터는 뒷처리를 해야한다.
바닥에 있는 토사물도 닦아 없애야 하고 그녀의 몸도 씻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P「하아....」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녀의 상반신 곳곳에는 파란 멍이 나있었다.
그녀의 몸은 상당히 약해져있는 상태다. 작은 상처가 몸에 큰 부담을 줄수도 있다.
혹시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겠지?
잠시 흥분하여 그녀에게 험한 짓을 해버리긴 했지만 난 그녀에게 장애나 병이 생기길 원하지는 않는다.
음, 정확히 확인을 하려면 병원에 대려가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녀는 실종 처리된 상태였다. 병원에 대려가는건 위험한 행위이다.
그러고보면 그녀가 이 집에 있는 동안 큰 병에 걸린적이 없었던거 같다. 그래봤자 가벼운 감기 정도.
생각은 여기까지만 하고...일단은...그녀를 씻겨야 겠다.
P「괜찮아, 씻으러 가는거야.」
히비키「흐윽...흐윽....」
아까의 행동과 전혀 연관되지 않는다고 느껴질만큼 친절한 목소리와 행동. 하지만 그녀에게는 온몸이 떨린만큼 무섭고 두려웠다. 그의 손이 갑자기 짐승의 발톱처럼 변하여 자신의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거 같았다.
머리 속으로는 그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서 그에게 기대야 한다는 건 알고있지만 아직도 욱씬거리는 몸은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계속하여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물론 신체 건강한 남성인 그의 힘을 이기고 품에서 벗어날수는 없었다.
끼익
샤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그녀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고 물을 틀고 수도꼭지로 물의 온도를 조절했다.
적당히 따듯한 온도에 맞혀놓은 그는 아직도 덜덜 떨고있는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구토하고 울고 비명 지르느라 꽤나 지친 모양인지 떨면서도 멍하니 초첨없는 눈동자를 하고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토사물이 묻어 기분 나쁜 냄새가 나고있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자신 또한 옷을 전부 벗었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 물이 나오고 있는 샤워기 아래로 대려갔다.
몇년간 단 한번도 자른적 없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현재에는 그녀의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자라난 상태였다.
물을 머금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상당히 무겁다. 지금 지쳐있는 그녀의 목 힘만으로 버틸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집사처럼 팔에 둘렀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씻겨주었다.
히비키「하아...하아...」
P「다시는 그러지 마.」
히비키「...」
히비키「흑...흑흑...」
히비키「다시는 안 그럴게....다시는 그러지 않을께....」
지구 상에서 그녀와 그, 단 둘만 아는 이 사건.
이 일은 그녀는 물론이고 그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사실 언제가 일어날 일이었다. 만약 자신이 문을 잠그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가 없을때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저 그녀의 속에 상처가 계속 썩어가다고 오늘 자신의 실수에 의해 곪아 터졌을 뿐이다.
너무 압박하고 제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적당히 풀어주는 것도 필요한 법이었다.
다행이 오늘 자신의 대처는 나쁘지 않았던거 같다. 조금 큰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간단히 해결할수 있을거 같기도 하고. 처음 경험해보는 그의 폭력적인 모습에 그녀가 상당히 위축되어 다루기 쉬워지기도 했으니 결과 또한 나쁘지 않았다.
P「......」
생각을 마친 그는 옆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있는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의 일이 꽤나 큰 충격이었던 건지 몇시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을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는게 눈에 보였다.
시선도 못 마주치고 말도 못하며 은근히 신체의 접촉도 꺼리고 있다.
항상 밤마다 딱 붙어서 자던 그녀와 그였지만 지금은 조금 떨어진 상태였다. 심지어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건지 두팔로 자기 자신을 안고있는 모습이었다.
P「......」
그녀가 자신의 집 앞에 나와있는 모습을 봤을때....자기 자신도 놀랄만큼 화가 난 자신을 발견할수 있었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난폭했으며 끊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솔직히 그녀에게 서운했다.
P「....」
머리가 복잡하다. 고작 한가지 일에 여러가지 반응을 보이는 자신이 놀라웠다. 특히 그 반응의 원인이 그녀라는 점이 더 놀라웠다. 혹시....혹시 자신은 그녀를....
뭐, 아직은 더 두고볼 일이다. 일단 지금은 지금 해야할 일을 해야한다.
생각을 마친 그는 눈을 감았다.
다행이 대부분 멍은 사라졌고 크게 아픈 곳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도있는 진료를 받게 하는게 좋을거 같다.
P「...」
히비키「....?」
왠지 모르게 퇴근한 후로부터는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라면 이미 관계를 갖거나 그냥 자거나 했을텐데, 요즘은 그냥 침대에 앉아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차라리 무언가라도 한다면 안심이 될텐데, 설마 저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마음에 안든다며 때리는건 아니겠지?
하여튼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니, 누워있어도 불편하고 서있어도 불편하고 앉아있어도 불편하다. 뭘해도 불편하다.;
P「히비키...」
히비키「으,응? 네? 예? 어, 우...」
P「그냥 예전처럼 말해도 돼.」
히비키「으,응...」
그에 대해 조금 안좋은 생각을 하고있던 중, 도둑질 하다 걸린 놈처럼 깜짝 놀란 그녀는 잠시동안 반말을 할지 존댓말을 하지 고민하다가 그의 한마디에 최대한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P「뭔가...가지고 싶은 거라도 있어?」
히비키「......」
히비키「........」
히비키「.......」
히비키「응?」
정말, 정말 단 조금도, 눈꼽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그의 질문 때문에 그녀의 생각과 행동, 둘다 한꺼번에 멈추어 버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건지. 그는 또다시 질문을 시작햇다.
P「그러고보니 너 입을만한 옷 없지? 아니면 게임기라도 사줄까?」
히비키「........」
히비키「.....」
히비키「가,갑자기 왜....?」
어쩌면 그 사건 당시를 때고 최근 들어 제일 크게 긴장하고 있던 그녀는 긍정적인 물음에 힘을 얻어 대답할수 있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 거긴 하지만 말이다.
P「아니, 일단은 필요한 것은 있어야 할거 같아서. 너의 소유라고 할만한게 없잖아.」
그의 말대로였다. 어쩌면 그녀의 몸으로 시작해서 그녀의 머리카락, 발톱이나 손톱 같은것도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가 가지고 가고자 한다면 그녀에게 빼앗을수 있는 것들뿐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눈이 있는 그가 그런 여성의 매력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것들을 함부러 만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P「'가지고 싶은 것' 이라고 단적인 부분만 생각하지 않아도 돼. 그냥 원하는 것을 전부 말해.」
히비키「.......」
히비키「정말?」
P「응.」
그녀는 오랜만에 그의 눈을 째려보듯이 바라봤다. 그렇게 진지하지도 않지만 딱히 거짓말을 하는 눈치도 아니다.
히비키「그럼...낮에 너무 심심해. TV하고 게임 같은게 있으면 좋겠어.」
P「응, 하지만 연락이 되는 기계는 안돼.」
히비키「어...응. 그리고 옷도 있으면 좋겠어. 아니면 잠옷이라도. 속옷도 있으면 좋겠어.」
P「응.」
히비키「그리고 그...된다면 밥도 자주, 많이 먹고싶어. 하루에 두끼라도 좋으니까. 밤에 너무 배고파.」
P「응.」
그녀는 진중히 그리고 빠르게 말을 꺼내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하는 기분이 나쁘다는 표시는 내지 않는다.
히비키「그리고....하면 좋겠고, .....도 하면 좋겠어.」
P「응. 응.」
그는 그랬다. 그녀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란 말로 대답해줬다.
히비키「흑....흑흑....」
왠지 서러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는데도. 전부 다 허락해준다고 하는데도. 너무 서러워서 순간 눈물이 나왔다. 한 방울 떨어진 눈물은 떠다시 다른 눈물을 부르고 결국 울음이 되었다.
히비키「으아아아앙-」
그녀는 울었다. 그래도 그는 그저 바라만 보고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왠지 그런 그가 더더욱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것 같았다.
히비키「...」
웅성웅성웅성
히비키「.......」
그녀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을 보고있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 보인다. 그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을 보고있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 보인다. 그녀는 고개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린 아이가 보인다. 어릴적에 TV에서 본적있는 애니메이션 케릭터의 인형탈이 풍선을 들고있다. 직원복을 입은 여성이 다른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가나하 히비키. 그녀는 지금 몇년만에 그 공간에서 나와 그와 함께 백화점에 와있는 순간이었다.
P「가자.」
히비키「어, 응....」
시작은 휴일 어느 날,(정확하게 오늘이 언제인지 모른다. 그저 그가 출근하지 않으니 휴일인가 짐작할 뿐이다.) 언제나처럼 멍하니 시간을 때우던 그녀에게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꽤나 헐렁했지만 입을만한 여성용 옷을 던져주었다.
그러고 하는 말이.
P「가자.」
갑자기 어딜?
설마 그가 자신에게 밖으로 나가자는 말을 꺼낼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그녀는 몇번이고 '그러니까 어디를?' 이라는 같은 질문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와 몇일 전 나눴던 대화. 그녀가 울면서 끝내기 때문에 은근슬쩍 넘어가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올줄은 몰랐다.
예상도 못한 순간, 불시에 당한 일(?)이었기 때문에 환호라던가, 기쁨이라던가 하나도 느낄새가 없었다.
물론 기쁘냐고 물으면 기뻣지만...
TV 같은 것을 살때는 약간 경제적인 부분에서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거겠지?
그렇게 그와 그녀는 목록의 물품들을 다 사고 집으로 돌아갔다.
뭔가 음침한 기운이 넘치는 나무 판자로 이루어진 벽에는 알록달록한 벽지가 붙여졌고 창문이 있다는 기분이라도 내라는 의미로 커텐도 설치했다.
옷장도 생겼고 의자도, 책상도 생겼다.
간단히 말하자면 좀더 '사람사는 집' 같은 느낌이랄까, '인간적인 느낌'이 느껴졌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몇일 후에 TV가 들어온다고 한다.
게임기도 있다.
이제 심심하지 않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 안 해도 된다. 이제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이야기만 잘되면 책같은 것을 사줄지도 모른다. 기쁘다. 좋다. 고생 끝에는 낙이 온다고 했는데, 딱 이런 상황을 말하는 속담인가 싶다.
설마 그가 자신이 말한 모든것을 기억하고 들어줄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동안 그가 밉지는 않아도 절대로 좋지는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상황이 개선되니 없던 호감까지 생길려고 한다.
히비키「헤헤헤.」
아, 그것보다 이 게임 재미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