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마 다들 지금쯤은 새해 첫날을 위해서 가족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아는 척 말을 거는 건...지금 분위기에서는 좀 그러려나...'
실로 유감스럽게도, 그는 남성 아이돌이면서도 여심에 대해서 무지하고 제대로 직시할 수도 없으며, 헌팅은 꿈도 못 꾸는 겁쟁이다. 하루카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먼저 알아채고 말을 걸 때까지 조용히 침묵하기로 결심한 토우마는 곧 그녀의 옆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라고는 해도, 벤치의 끝부분에 걸터앉은 것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인기척을 느낀 하루카가 시선을 돌렸다. 아마가세 토우마는 "여어"하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아마...가세, 군..."
하루카는 천천히 토우마의 성을 읊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이야? 난 별로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도 되는데"
"새해 첫날이 올 시간인데, 축 쳐져 있는 지인을 보면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리 없잖아"
말을 해놓고, 토우마는 아차! 하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뭔지는 몰라도 영 안 좋은 일이 있어보이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는 건내지 못 할 망정 평소처럼 퉁명스러운 말을 해버렸다. 상처받지 않았을까? 속으로 걱정하면서 토우마는 은근슬쩍 하루카의 눈치를 보았다
"......무슨 일인지, 안 물어봐?"
"......물으면, 대답해 줄 거야?"
"글세...지금은, 딱히 누구라도 상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야..."
공허한 울림. 토우마는 분위기를 읽고 침묵했다. 그 침묵을 긍정의 신호로 알았는지 하루카는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에게 고백했어"
"뭣?! 진짜냐?!"
토우마는 경악했다. 여성 아이돌, 그것도 미성년자인 그녀가 자기 소속사의 젊고 잘생긴 프로듀서에게 고백을 했다고 한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커다란 스캔들이 되어, 961 프로의 쿠로이가 물고 늘어져 765 프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역풍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치만...차여버렸어..."
"......"
고백에 성공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리 없다. 멋쩍은 듯, 시선을 피하는 토우마.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보다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가져갔더라고...아아...아쉬워라...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를텐데..."
토우마는 그 프로듀서를 먼저 낚아채 간 용기있는 여성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왠지 모르게, 그 여성은 765 프로의 멤버들 중 한 사람일 것 같았다.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토우마는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미우라 아즈사. 분명 가슴이 가장 큰 성인 여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토우마. 프로듀서와의 나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귀기 시작하면, 하루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힘들테니까
책임감이 강하다고 해도 그 또한 남자. 분명 연인이 생기면...섹스도 하고 싶을 것이다. 하루카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참겠지만, 역시 1년 동안 참는 것보다, 그보다 더 빨리, 고백받은 당일이라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아즈사가 더 좋을지 모른다
아니...어쩌면 이전부터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루카가 은근슬쩍, 미키가 대놓고 호감을 드러낸다고 해도, 그에게 있어 두 사람은 자신이 돌봐야 하는 아이돌이자 아이들이니까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하나......'
아마가세 토우마는 연애경험이라고는 전무하며, 강한 척을 할 뿐 숙맥인데다가 동정이기까지 한 남자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짝사랑으로 끝낼 뿐, 고백할 용기도 없이 허세만을 부리는 겁쟁이기까지 한 남자다. 즉, 다른 건 다 잘 해도, 연애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형편없는 남자인 것이다
'그냥 나중에 좋은 사람이 생기겠지, 하고 말할까. 아니, 그건 너무 흔하고 입에 발린 소리 같아. 세상에 남자는 많다─라는 건...아니, 이것도 NG인가?'
열심히 고민하던 토우마는 예전에 했던 미연시에 본 대사를 떠올렸다
"어이, 아마미. 아이돌은 연애 금지야. 잊은 것 아니겠지?"
"......"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는 돈벌이를 위해, 인기를 위해서 순결이나 정조를 장사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느니,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 좋아한다면 고백하는게 당연한 거야. 이어지고 싶다던가, 사귀고 싶다던가, 결혼하고 싶다던가─그런 마음을 가지는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자기가 생각해도 꽤나 말을 잘 하고 있다며 속으로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며, 토우마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말이야...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
단결을 주장한다고 해도, 톱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이듯이. 연애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 다른 사람이 빼앗아갔다고 해도, 설령 나중에 결혼해, 아이까지 낳는다고 해도, 게임은 끝난게 아니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까지는──
"바보네, 아마가세 군. 골 들어간다고 해서 골키퍼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
"......"
제대로 반격을 당했다. 부끄러움으로 인해 침묵하는 토우마.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또 어떻게 둘러대고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토우마의 옷깃을, 하루카가 붙잡았다
"아마가세 군"
"뭐, 뭐야...?"
당황하는 토우마를 올려다보는 하루카. 그녀의 눈은 여전히 공허했지만, 그 안쪽에, 뭔가 다른 생각이 새어나오는 듯 했다
"시간이 남는다면, 오늘 아마가세 군의 집에서 재워주지 않을래? 나, 막차 놓쳐버려서 갈 곳이 없거든"
"......"
뜬금없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제안에 벙쪄버린 토우마. 동시에, 머릿 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들어섰다
──이건, 100% 유혹하는 거다, 라고
*
"여기가 아마가세 군이 사는 집이구나? 남자가 자취하는 방이라고 해서 더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네?"
"나는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는 살지 않아"
말은 그렇게해도, 토우마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집 안에 여자를 끌어들였다. 그것도 상대는 아이돌. 즉, 미소녀다. 픽션에서나 봤었던 상황의 주인공이 된 지금, 토우마는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안절부절 걱정되었지만, 특유의 허세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놓고 있지는 않았다
말 더듬었다. 동정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동정이라는게 꼭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사회의 편견 상 남자는 동정이면 욕 먹고, 여자는 비처녀면 욕 먹는 세상. 토우마는 갑자기 이 순간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양성평등은 언제쯤 이루어질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쥬피터의 리더씩이나 되면 돈도 꽤나 잘 벌텐데, 이런 집에서 사는 거야?"
"...남자 홀로 자취하는데, 굳이 큰 집을 살 필요는 없어.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고"
토우마가 자취하는 집은 피규어 전시를 위한 방과 화장실 그리고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 말고 다른 방이 없다. 거실과 부엌은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거실에는 소파 대신 침대가 있고, 그 옆에는 노트북이, 정면에는 TV가 있다. 고시촌 수준의 방보다는 훨씬 나은 방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딱히 잠 안 오지?"
"응"
"그럼...대화라도 하지 않을래?"
딱히 대화를 나눌 화제는 없지만, 이런 제안을 건네는 것도 토우마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하루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먼저 말했다
"아마가세 군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 없어?"
"......있었지"
지금은 다른 남자랑 사귀고 있지만. 고백할 용기도 없었으면서 질투했다가 지금은 체념해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찌질한 남자다
"과거형...나랑 비슷한 경우?"
"......아니, 나의 경우에는 고백조차 하지 못 했어. 오히려, 용기내서 고백한 네가 더 대단하다"
"헤에...의외네. 아마가세 군, 거침 없는 성격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고백도 당당하게 할 것 같았는데"
어쩌면, 연인 사귀기에 실패 했기에, 토우마는 아이돌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이돌은 연애 금지─라는 걸 변명으로 내세우며, 톱 아이돌에 매달렸었다. 결국에는 실패하고, 961에서 나와, 315에 들어가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져 먼저 고백을 한 하루카에게 은근히 존경심마저 느낀다
"그렇구나. 그러면, 우리 모두 실연한 동지이려나?"
"너보다는 못 하겠지. 나는 고백하지도 못 하고 후회한 바보니까"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더 비참해져간다. 침울해져가는 토우마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두 손으로 그의 양뺨을 잡고 고개를 돌리게 해 자신을 응시하게 했다
"뭐, 뭐야?"
갑자기 얼굴이 가까워져 똑바로 그녀의 두 눈을 응시하자 부끄러움을 느끼는 토우마. 얼굴을 돌리려고 해도, 꽉 붙잡혀 있어 벗어날 수 없다. 어떻게든 눈동자만이라도 굴리지만,
"나를 봐줘, 아마가세 군"
"윽...!"
마치 정신조작이라도 당한 듯, 토우마는 하루카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결국 하루카와 눈동자를 마주치는 토우마. 잠깐의 침묵 후, 하루카는 갑자기 입을 맞췄다. 그녀를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못 하고, 눈동자만 크게 뜬 채 가만히 있는 토우마. 갈 곳을 잃어버린 두 손은 허공에 붕 떠,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혀마저 섞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입술이 맞닿았다가 떼어졌을 뿐이다
"아, 아마미...?"
"저기, 아마가세 군"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하루카는 토우마를 지그시 응시하며,
"우리끼리라도, 즐겨보지 않을래? 실연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해보자"
이성의 끈을 싹둑 잘라버렸다
*
사실은 알고 있다. 하루카가 그를 유혹하는 건, 단순히 프로듀서를 대신할 다른 남자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마음의 교환 같은 건 없이, 단순히 몸만을 바라는 관계. 그것을, 토우마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동정을 떼기 위해서일까. 남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거기서 물러나기 싫었던 것일까
쪽, 하고 부드럽게, 하루카의 목에 키스를 하는 토우마. 하루카는 읏, 하고 신음을 흘린다. 아마 숨결과 입술의 이질적인 감촉 때문에 간지러움을 느낀 것이겠지
"아마가세 군..."
"...아마미"
흔들리는 눈으로 토우마를 올려다보는 하루카. 그는 하루카의 허리와 등을 꽉 끌어안으며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키스를 나눴다. 아마 언론에서 이들의 행각을 본다면 특종이라며 연예기사 1면에 딱~! 하고 실을 것이다
한쪽은 315 프로덕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돌 유닛 쥬피터의 리더. 다른 한쪽은 765 프로덕션의 올스타 멤버들 중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리더와 리더의 만남과 연애행각. 들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연애적인 감정 같은 건 없다. 일방적인 마음이 엇갈려 낳은 결과물일 뿐이다
아마미 하루카가 좋아하던 남자는 아마가세 토우마가 아니다. 아마가세 토우마가 좋아하던 여성 또한 아마미 하루카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만나, 서로를 달래려다가, 상황이 만들어낸 욕망에 몸을 맡긴 것이다
조심스럽게 하루카를 침대 위에 눕히는 토우마. 그도 남자이기에 야한 영상이나 만화 같은 건 보았다. 그렇기에,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전으로 돌입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아마미 하루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반라의 상태에 가깝다고 해도, 부끄러움의 탓인지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리는 하루카. 토우마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럼...벗길게...?"
"네......"
여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 토우마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치마와 속옷을 벗겼다. 그녀의 음부에는 뽀송뽀송한 털들이 있었다. 2차 성징도 거의 다 겪었을테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래에 있는 털도 관리하는 것인지 깎아낸 흔적이 엿보였다
자신이 처음 면도를 했을 때가 떠오른 토우마. 다른 상념에 빠져 있다가 핫! 하고 놀라며 자신도 주춤주춤 바지를 벗었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 본능대로 뻣뻣하게 선 자신의 음경을 보며 토우마는 긴장했다
자위를 할 때에도, 이만큼이나 커진 적이 없었다. 얼마나 여자에 굶주린 것인지, 자신의 이런 면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걸 또 하루카의 음문에 가져가 댔다
"들어, 간다..."
"응...들어, 와...크읏!"
푸욱, 파고들어 가는 음경.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건 한순간 뿐이었다. 이미 두 사람 다 흥분해서 질도, 음경도 발기한 상태이기에 고통은 바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뜨거움을 느꼈다
찔걱찔걱, 천천히 흔드는 허리와 파고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음경. 다만, 여성의 음문은 보통 엉덩이에 가깝기 때문일까, 이 자세를 상당히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2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 속으로는 엄청난 고민을 한 토우마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미, 베개, 이리 줘"
아마미가 머리를 기대고 있던 베개를, 그녀의 허리 아래에 깔아놓고 그 위에 아마미의 몸체를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허리를 흔들기 편한 자세가 되었다
토우마는 강하게 허리를 박았다. 튕기듯이 접히는 아마미의 허리. 동시에 큰 신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다만, 고환이 둔부에 부딪혀 찌르르르 밀려오는 고통은 토우마의 입에서도 고통에 찬 심음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발산되는 아드레날린은 그런 통증을 마비시키고 마음껏 허리를 흔들게 했다. 본능적으로, 마치 짐승처럼 행위에 열중하던 두 사람
그때, 하루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윽, 흑...!"
"....."
왜 갑자기 그녀가 울기 시작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건 아마 신체적인 아픔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첫경험을 바치는 것에 대한 씁쓸함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이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질투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연의 아픔이 이제서야 강하게 느껴져 슬픔 때문에 우는 것일 수도 있다
"......"
토우마는 울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인지, 계속해서 행위를 지속했고...곧 절정에 이르렀다
하룻밤 자고 난 뒤에는 이전보다 어색함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는 아마미를 보자 다시 굳어져 버렸다. D컵 크기의 가슴 그리고 여기저기 새겨져 있는 붉은 키스 자국들. 지난밤, 그녀의 몸에 새긴 자신의 흔적을 보자, 그때가 다시 떠올라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루카도 새빨개진 토우마의 얼굴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고,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때문에, 토우마의 다리 위에서 이불이 당겨져, 다리 사이에 달려있는 음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침이 되면 나타나는 남자의 생리적 현상 때문에 불쑥 솟아올라 있는 음경이 말이다. 절대로 아마미의 몸을 보고 일어선 것이 아니다. 일어선 상태에서, 그녀를 보고, 다시 불끈불끈한 느낌이 오긴 하지만
서둘러 근처에 던져둔 팬티와 반바지를 입는 토우마. 주변에 널려 있는 그녀의 옷들과 속옷들이 보였지만, 애써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그러니까...아침식사라도 할래?"
"......그래. 그러자"
하루카는 새빨개진 얼굴을 돌리며 대답했다
*
탁탁탁탁. 도마 위에 울리는 식칼 내리치는 소리. 소리가 들릴 때마다 대파가 잘게 썰려나간다. 하루카는 게로게로 키친에서 했던 요리를, 지금 다시 토우마의 집에서 재현하고 있었다. 토우마는 옆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둘 다 의외로 취미 및 특기가 요리인지라 함께 공동작업을 하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침식사가 빠르게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연인이나 부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요리하는 과정에선 딴 생각하는 일 없이 서로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로를 의식하다가 칼로 손가락을 베인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준비가 다 끝난 후, 김이 다 빠진 밥솥에서 주걱으로 밥을 퍼 그릇에 담고, 침대 앞에 펼친 작은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평소에는 혼자 앉아서 먹는 식사. 갑자기 다른 사람과 함께 먹으려고 하니, 식탁이 이전보다 더 좁아진 듯한 느낌도 있지만,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했다. 식사 후 설거지까지 다 끝낸 뒤, 토우마는 창문 밖에 고개를 내밀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새해 첫날부터 인근의 신사에 참배를 올리러 갔기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다. 지금이라면 밖에 나가도 다른 사람에게 들킬 일이 없었다
"그럼...나는 이만 가볼게"
"응...잘 가"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남녀 그것도 아이돌이 함께 걷다가 들키면 스캔들로 오해받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관계까지 가져버린 것을 들켜버린다면, 최악이다. 765도, 315도 역풍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315 프로 소속의 아이돌 밴드 유닛 하이조커의 보컬인 이세야 시키는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결국 말까지 끊겼다. 그만큼,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
"앞길 막......"
뒤이어 다가온 다른 멤버들도 토우마와 함께 있는 하루카를 보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토, 토우마...이게 대체 무슨...?"
"이,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이야기 해! 어, 어이 아마미...잘 가라!"
"아, 응"
아마미는 밖으로 내보내고, 하이조커는 방 안으로 들이며, 토우마는 방문을 닫았다
*
"──그래서, 동정 졸업했어?"
"흐, 흥! 당연하지! 그런 상황에까지 갔는데 가만히 있을 정도로 쑥맥은 아니거든?!"
"와, 진짜 부럽네!"
어젯밤의 첫경험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는 남자고교생들. 하지만, 그 중에서 후유미 쥰이 태클을 걸었다
"저기...이 문제, 그리 가볍게 취급할 문제가 아니에요...아이돌, 그것도 인기 유닛인 쥬피터의 리더인 토우마 씨가 여자랑 섹...성관계를 가졌다고요? 게다가 상대도 엄청나게 유명한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인 아마미 하루카에요. 이게 알려졌다간, 토우마 씨 뿐만이 아니라 315의 모두가, 그리고 765의 모두가 엄청난 역풍을 맞을 거에요"
"아......"
쥰의 경고에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내들. 토우마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어, 어쨌든...나라고 해서, 그런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야...솔직히 충동에 몸을 맡긴 나도, 아마미도 문제가 있어...너희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지...그래도, 부탁한다. 오늘 있었던 일은, 어디에 가서도 발설하지 말아줘"
"물론. 우리도 바보가 아니니까, 당연히 비밀로 할 거야. 이게 알려지면 우리만 피 보는게 아니니까"
"그래도...사장님이나 야마무라 씨에겐 말해야 하는 것 아님까?"
"사장님은 몰라도 야마무라 씨는 안 돼. 그 사람, 허당이니까, 어디가서 실수로라도 말해버릴지 몰라"
긴급회의를 끝내고, 쥰이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어쨌든 이 일에 대해서는 저희와 사장님 그리고 토우마 씨만 아는 걸로 하죠. 호쿠토 씨나, 쇼타 군에게는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덤으로, 이제 아마미 씨와는 만나도 모르는 척 하세요. 괜히 이번 일로 이상한 정분이라도 나면, 곤란해 집니다"
"알겠어. 모두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
지난밤의 일은 한순간의 미혹에 빠져있던 것으로 결론을 내리며 토우마는 이제부터 최대한 아마미를 포함해서라도 여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기로 결심했다
새해 첫날을 위해 참배를 하러 찾아온 신사. 그 앞에서, 토우마와 하루카는 딱 마주쳐 버렸다. 그녀도 765 프로의 동료들과 합류해 이곳에 찾아온 듯 했다
사정을 알고 있던 하이조커와 토우마에게 들었던 호쿠토와 쇼타도 경악하며 말문이 막혔다. 사정을 모르는 765 프로의 소녀들 중 미나세 이오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거야? 경쟁사라고 해서, 여기에 와서까지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얼른 지나가"
"아, 알고 있어"
아무 말 없이 지나치는 토우마와 일행들. 하루카는 슬며시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으나 토우마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걸었다. 우연히 다른 765 프로의 아이돌들과도 만났으나, 어제 하루카와 토우마가 하룻밤을 보냈던 일 때문인지, 까불까불거릴 하루나, 시키, 쇼타도 조용히 있었다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토우마는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겸허하게 신사 앞에서 기도를 했다
'부디...어젯밤과 관련된 일로 인해...커다란 문제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그건 한순간의 미혹에 판단이 흔들려 일어난 실수였다. 프로 의식이 뛰어난 아마가세 토우마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 아무리 동정에, 모쏠에, 연인에 굶주렸다 해도, 지난밤의 일은 너무 지나쳤다. 단순히 몸뿐인 관계. 거기에는 사랑도, 같이 밤을 보낸 뒤의 정도 없었다
"아, 아! 맞다! 새해의 운세가 어떨지 확인하러 가볼까!"
"그, 그게 좋겠네~! 아아, 어떠려나~! 대길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하, 하, 하"
일부러 765 프로와 멀어지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려는 쇼타. 어색하게 웃으며 호응하는 하루나. 그리고 토우마의 운세는──대흉(大凶)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참 너무한 운세였다
"그쪽들은...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
하루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토우마. 하루카의 곁에는 치하야와 야요이가 있었다. 갑자기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은 토우마였으나 빨리 용건만 해결하고 보내기로 했다
"대흉이야. 새해 첫날부터 기분 잡치는군"
"그래? 우연이네. 나도 똑같이 대흉인데"
"......"
하루카가 펼친 종이에는 대흉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그러고서 아무 말 없이 토우마를 응시하는 하루카. 토우마는 시선을 피할까 싶었지만, 다른 765 프로의 아이돌도 있는 상황에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똑같이 응시하며
"뭘 보고 있는거지?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
"아니. 다만, 뭔가 다른 느낌이 나서. 원래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 난달까?"
"언제부터 서로 자주 알고 지냈다고 원래 알던 느낌과 다르느니, 마느니 말하는 거야? 이상한 오해 사기 싫으니까 말을 조심하라고. 그럼, 모두들 이만 가자. 새해 첫날이고, 일도 없으니까 오늘은 계속 노는거야!"
억지로 지나치려던 토우마의 옷깃을 하루카가 붙잡았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그 자리에 모여있던 모든 아이돌들이 놀랐다
"저기, 아마가세 군...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
하루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옷깃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토우마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기 보다는, 뭔가 다른 것을 참고 있는 모양이다. 토우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들, 그렇지 않은 얼굴들도 있지만──두 사람이 부족하다
프로듀서와 미우라 아즈사가 없었다
"......짧게 끝내"
"잠깐, 토우마 씨...?!"
말리려는 쥰의 손을 토우마가 막았다
"잠깐이야. 잠깐이면 되니까, 좀 참아줘"
눈치 빠른 호쿠토도 주변을 둘러보고 무슨 이유인지 알아챈 듯, 다른 이들을 데리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하루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치하야도, 그녀를 토우마와 단 둘이 만나게 하는 건 거부감이 들었으나, 지금 하루카가 매우 심란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야요이를 데리고 물러났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인적이 드문 오솔길로 향한다.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던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건 하루카 쪽이었다
"신기하네. 우리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란히 걸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
"......나도 그래"
한때는 765와 961의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았고, 지금은 765와 315로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는, 서로 미묘하지만 말이다
"아마, 아니 토우마 군은...어떻게 하고 싶어? 나와의 관계...한 번 사귀어 볼래?"
"......거절한다"
아마미 하루카는 좋은 여자다. 요리도 잘 하고, 외모도 예쁜데다가 성격도 좋다. 하지만, 남자로서 여자에게 품는 호감은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갈 수 없다는 걸 토우마는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프로듀서가 남아있으니까. 하루카는 그저 그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하룻밤을 같이 보냈던 남자에게 이런 제안을 건네는 것 뿐이다
"어라? 여자의, 그것도 여성 아이돌의 순결을 받아가놓고 책임도 안 질 셈?"
"그런 식으로 따지면 너도 내 동정을 받아갔잖냐. 쎔쎔이야. 정 나와 사귀고 싶다면...일단 자기와 관련된 것부터 정리하고 오는게 어때?"
프로듀서와의 관계라거나, 미우라 아즈사와의 관계라거나, 하루카가 프로듀서에게 차인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아이돌들 간의 관계라거나. 토우마는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되지만, 하루카는 그것 말고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하하하, 그것도 그렇네. 나는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지......"
다시 말 없는 침묵. 한참을 걷다가, 다시 빙글 돌아 일행에게 돌아가는 길. 하루카는 갑자기 핸드폰을 건네왔다
"메일 주소, 교환하지 않을래? 나...앞으로도, 토우마 군과, 자주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거절해야 한다. 사적인 만남은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메일이나 전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 토우마. 어째서 본인이 이렇게까지 흔들리는지 알 수 없다. 단순히 첫경험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를 동정하기 때문일까
2일 후. 1월 3일의 이른 아침. 토우마는 인근의 공원에 들렸다. 약속한 장소 근처를 둘러보자, 한 벤치에 앉아있던 안경 쓴 남자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이쪽이야"
"......내 번호는 또 어떻게 알고 연락한 거야?"
"하루카에게서 들었어"
토우마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정확히는 벤치의 끝 부분에 앉았다. 남자, 765 프로의 P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로 연락한거지? 딱히 당신하고 할 이야기는 없는데"
"나는 있어. 프로듀서니까, 자기가 관리하는 아이돌이, 다른 사무소 소속의 아이돌과...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왔다는 건,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힘든 사안이거든"
"......"
"하루카가 말한 건 아니야. 내가 말하게 한 거지. 뭔가 평소와는 분위기라든가, 행동거지라든가가 묘하게 이상해서, 걱정되어 물어보니, 어느새 추궁하는 것처럼 되어서, 조용히 듣게 되었어"
P는 자신의 아이돌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카에게는 다르게 느껴졌겠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고, 새해 첫날의 참배에 나오지 않고, 같은 침대 위에서 아즈사와 함께 뒹굴고 있었을 남자의 걱정. 불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선...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콘돔은 사용했니?"
"......아니"
"......안에다 했니, 밖에다 했니?"
"안에다 했어"
P는 미간을 찌푸렸다. 철 없는 10대의 불장난. 그 정도로 여기고 있겠지
"콘돔을 사용하든, 밖에다 싸든, 똑같이 아이돌을 건드린 남자 입에서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이로군. 게다가, 다른 아이돌들도 함께 나온 걸 보면, 다 같이 새해 첫 참배를 올리러 신사에 가자고 약속을 한 것 같은데, 너와 미우라 아즈사는 그 약속을 어긴 것 같더군?"
"......그렇지. 면목없네. 내가 누군가를 나무랄 자격은 없지"
그래도, 만약의 가정인데─라고 덧붙이며 말한다
"만약...그 하룻밤의 실수로...하루카가, 그...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너는 어떻게 할 거지?"
"......"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연예계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있다. 특히나 그건, 아무리 입막음을 위해 돈을 뿌려도 알려질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아마미 하루카가 산부인과를 들른다면, 그 병원 관계자들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줘도 어느새인가 다 알려지게 되어 있다
"너는, 책임질 수 있는거야?"
어떻게 말해야 할까. 토우마는 여기서 섣불리 책임을 지겠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이제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애는 애였던 것 같다
"한 번 잤다고 무조건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는걸. 그건 그쪽에서 먼저 유혹한 거였어. 너에게 차여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무 남자라도 좋다는 듯이 말이야. 그나마 우연히 만난게 나였기에 망정이지 술취한 취객을 상대로도 다리를 벌렸을 거──?!"
뻑!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토우마는 바닥을 굴렀다. 씩씩거리며 외쳤다
"네가, 그런 놈이었을 줄은 몰랐다! 너는, 쿠로이 사장과는 다른, 좀 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그러셔? 나도, 네가 좀 더 책임감이 있는 어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토우마는 반격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붙었지만, 아이돌로서 체력단련도 하는 토우마와 달리 언제나 일에 치이듯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게 전부 다 인 P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잘 들어, 이 망할 자식아. 그때의 일은, 나와 그 녀석의 문제야. 그 녀석이 직접 책임져 달라고 하면, 나는 그럴 생각이야. 하지만, 제 3자가 말을 해온다면, 나는 하지 않을거다. 자기 문제도 제대로 끝맺음 내지 못 한 얼간이 주제에, 어른이라고 꼰대짓 하지 말라고!"
P를 한 번 걷어차고서, 토우마는 돌아갔다. 그 날 하루는 정말로 최악의 하루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을 잡쳤다
멍하니 방 안에 누워있다가, 문득 핸드폰이 보였다. 잠시 핸드폰을 응시하던 토우마는 그걸 잡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토우마 군?]
전화를 받은 상대는 아마미 하루카였다
"지금, 통화 가능하냐?"
[응. 나, 오프니까. 지금은 집이야. 무슨 일로 전화했어?]
이것을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다가 토우마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오늘...너희 프로듀서하고 만났어"
[......]
"비밀을 밝힌 것에 대해 타박을 하려는게 아니야. 그저...혹시 몰라서 전화한 거야...만약에, 아주 만약의 이야기인데...그날 밤의 일로, 네가 임신을 했다면..."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본인의 입으로, 차마 그녀가 임신했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임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제대로 알려면, 입덧을 하거나, 배가 불룩 나오기 시작해야 알 수 있어. 아니면, 산부인과에 가던가. 토우마 군은, 나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 줄 거야?]
"스캔들 터질 일 있나. 그런 곳에 직접 가게...네 친구들 중, 미나세 이오리의 힘을 빌리면, 조용히 알 수 있지 않아?"
미나세 이오리는 글로벌적인 재벌인 미나세 그룹의 일원. 당연히 전문 주치의도 있을 것이고, 보안이나 기타 세세한 부분에서도 섬세하고 빠르게 일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나세 家에서 관리하는 산부인과 의사를 통해서 임신 사실을 알아보면 기자들에게 들킬 일도 없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응. 한 번 이오리에게 부탁해봐야 겠네. 용건은 그것 뿐]
"그것 뿐이라니......아니, 그것 뿐이야"
한순간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자각하고 깜짝 놀란 토우마
'정신 차리자, 아마가세 토우마. 언제부터 그 여자를 좋아했다고 이 난리야. 너는 단지 그녀가 네 아이를 임신했을까봐, 책임지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책임지겠다고 말하는게 무서워서 그런 것 뿐이야'
그래도, 만약에, 정말로 그녀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토우마 군의 말대로...만약에 내가 토우마 군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솔직히 말해서, 지우라고 하고 싶어"
한순간의 불장난으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나 죽어갈 아기. 아기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욕이 나올 정도의 무책임한 행동과 말
"그렇지만...만약에...네가 그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면...말리지는 않을게. 책임을 져 달라고 한다면...양육비 정도는 건네줄 수 있어"
최악의 남자. 최악의 아버지. 최악의 가장. 여러가지 말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으나 토우마는 애써 무시했다.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아이를 기른다는 건,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건 매우 무겁고 신중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잘 모르겠네...아마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판단을 내리지 못 할 것 같아. 일단은, 이오리와 상담해보고...피임약이라도 먹어볼까 싶어]
이런 때일수록 어른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결국 토우마는 자신이 아직도 애라는 것을 인정하고 아는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음...토우마 군. 청소년 성보호 법에 관련하여 이야기하자면 말이야"
"테루 씨. 그런 건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나 말해봐요. 법정싸움으로 갈 일은 없을테니까"
전직 변호사 텐도 테루와 경찰관 아쿠노 히데오는 골머리를 썩혔다. 어느날 갑자기 동정소년이 뜬금없이 같은 아이돌 소녀와 자고 왔단다. 그것도 상대는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 알려졌다간 후폭풍은 둘째치고, 둘 사이의 나이나 그런 것을 포함한 다른 문제들도 꽤나 많았다
"일단...너와 그녀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싶은데..."
히데오가 모범적인 질문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토우마의 답변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몸뿐인 관계야. 그 녀석은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다른 여자가 채갔어. 고백도 거절했고. 그 상황에서 나와 만나, 몸의 온기로 위로받고자 했던 여자야. 그리고 나는 그걸 거부하지 않았고"
"책임지지도 못 할 일을 냉큼 받아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전직 교사 하자마 미치오의 일갈. 토우마는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토우마 군. 나는 자네를 믿었다. 자네는 비록 바보지만, 성실하고 무슨 일에든 열심이며 책임감이 넘치는 학생이였어! 비록 방향성은 다르다고 해도, 나는 자네를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하필이면 이런 일을 벌인거지?!"
"어이어이, 미치오 씨. 너무 큰 소리 내지 말라고. 다른 애들이 듣겠어"
그런 미치오를 말린 것은 엔죠지 미치루였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물었다
"우선 현실적인 문제부터 따져보자. 너, 그녀를 책임질만큼의 경제적 능력은 되냐?"
"쌓아놓은 돈은...꽤 있어. 961 때부터 취미생활 이외에는 그리 크게 돈을 쓰지 않으니까. 지금도 일을 더 많이 늘리면 어떻게든 될테고"
"일단 이건 들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여기서, 카미야 유키히로가 끼어들었다
"토우마 군과 아마미 양의 관계가 발각되어, 언론의 먹잇감이 될 경우. 어떤 후폭풍이 밀려올지 모릅니다. 상대방 측에서 이 일에 대해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일단 그쪽의 어른들과 책임자와 이에 관련한 상의를 나눠서 없던 일로 해버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니, 잠깐. 토우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 그 여자애. 상태가 정상이 아닌 모양인데. 그게 가장 최우선 사항 아니야?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폭탄이잖아"
거기에 신겐 세이지가 이의를 제기했다
"사람의 마음. 특히나 그 나이대의 여자애 마음은 보통이 아니라고. 나도 '아마네'라는 조카딸을 접해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 그런 정신상태의 여자아이라면, 갑자기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아뇨, 거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세한 상황을 잘 몰라요. 한 번 그 아마미 양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할 지 모릅니다. 그녀가 가장 큰 문제라면, 그녀의 관점에서 주변이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 부터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아마미 양을 찬 남자와 그 남자를 낚아챈 여자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와타나베 미노리의 말에, 사장 사이토 타카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그쪽 사장과 책임자에게 연락해서 관련인물 싸그리 끌어모은 면담을 제안해보도록 하지. 회의 끝. 바로 실행에 옮긴다"
315 프로덕션의 아이돌 유닛 『Cafe Parade』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카페. 오늘은 영업 쉽니다─라는 팻말이 달려 있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4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다들 빛이 잘 안 드는 어두운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모자와 안경까지 쓰는 등 변장을 했기에 누가 누구인지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마주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하루카"
"그러게요, 프로듀서"
P의 옆에는 아즈사가, 토우마의 옆에는 하루카가 앉은 형태로 서로 마주보는 테이블. 거북한 분위기가 물씬 흘러나온다
"이오리네 집안에서 관리하는 의사 중 한 분에게 검사를 받았어요. 다행히 임신은 하지 않았다고 해요. 관계를 가진지 며칠 안 되어서, 단순히 아직 제대로 된 반응이 안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요"
하루카는 처연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현재 관계도는 옆나라 막장 드라마의 전개와 거의 동일시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P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선 상황을 제대로 정리해보자. 나는...아즈사 씨의 제대로 된 교제를 시작했다. 지금은 아즈사 씨가 계속 아이돌 활동을 하길 원하기에 가만히 있지만, 시간이 흘러 아즈사 씨가 은퇴를 할 때 즈음, 조용히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야. 그렇기에, 나는 하루카. 너의 고백을 거절했어"
"그리고 저는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토우마 군에게 안겼고"
"나는 낼름 받아먹었지. 도둑고양이처럼"
분위기가 다시 싸~ 해진다. 잠자코 가만히 있던 아즈사가 물었다
"저기, 하루카짱. 옆자리의 아마가세 군에 대해서는, 현재 어떻게 생각하니?"
하루카는 토우마를 돌아보았다. 토우마도 그녀를 돌아보았다. 둘 사이에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하루카 쪽에서 다시 먼저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친구요. 친구라고 생각해요. 라이벌일 수도 있고"
"연애적인 의미로는...그런게 없니?"
"고작 한 번 잤다고 해서 연인이 되는 거냐?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읽으셨구만?"
비꼬듯이 말하는 토우마. 아즈사는 할 말이 없어졌다. 나이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텐데도, 그들과 자신 사이의 인식의 차가 20년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P가 끼어들었다
"그래...아직은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온 것일수도 있다고 했지? 앞으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보면서, 나중에 정말로 임신을 하게 됬다면...그땐 어떻게 할 거니?"
"글세요...지워야 할까요? 아니면 은퇴하고 홀로 키워야 할까요. 저, 이래보여도 일단은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고, 하는 일도 꽤 많아서, 제법 돈 많이 벌었어요? 지금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먹고 사는 길에 큰 지장이 없기도 하고요. 아, 토우마 군은 어떻게 생각해?"
"제대로 된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거야. 그래도, 만약 네가 책임을 져달라고 한다면──양육비용 정도는 공동으로 제공하겠어. 그걸로 너와 있었던 일은 없던 일로 치는 거야"
"너무하네, 토우마 군...거짓말이라도 먼저 책임져준다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사랑하지도 않은 여자하고, 사랑하지도 않는데 관계를 맺고, 사랑하지도 않는 아기를 키워서 좋은게 뭐가 있어? 얼마 못 가 이혼하게 될 걸? 너도 마찬가지잖아. 넌 날 사랑하지 않아.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고"
정이 메말라있는 관계. P는 두 사람을 보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전까지는 나름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토우마 쪽에서 일방적으로 이기겠다고 불을 피우며, 하루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는, 성별이 달라도 같은 목표를 향하는 라이벌과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날. 새해 첫날이 오기 수시간 전에 있었던 일. 그때의 일로, 모든게 틀어져 버렸다
누가 가장 많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P는 아즈사를 사랑했고, 아즈사도 P를 사랑했다. 그래서 하루카의 고백을 거절했다. 하루카도 P를 사랑했지만 마음을 접어야 했고, 그걸 대신할 남자를 구했다. 우연히 지나가던 아마가세 토우마가 거기에 딱 걸렸고, 토우마 본인도 자신이 P를 대신할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계약서를 작성하자...토우마와 하루카는 앞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말 것. 나와 아즈사는 서로 사귄다는 것을 티내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 이 정도면 된 거겠지?"
"그러려면...제 은퇴시기를 조금 더 앞당겨야 할 것 같네요"
"아즈사 씨...?"
"저는, 아이돌의 일도 좋지만...P도 그만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류구코마치는 오래 전에 해체되었다. 아즈사가 영화 쪽으로, 아미가 마미와 함께 예능 쪽으로, 이오리가 홀로 무대 위에 솔로 데뷔를 하려고 나갔을 때 더 이상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행동과 일에 책임을 지는, 그런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어디 카페 같은 곳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엔 두 사람은 너무나도 유명했다. 변장을 하고, 인적이 드문 공원의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들키지 않고 조용히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안녕, 토우마 군"
"......안녕"
토우마는 하루카의 배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날씨가 추워서 두툼한 코트를 입었다고 해도, 배가 불룩 나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하루카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1개월을 조금 넘긴 거니까. 티가 나려면, 지금으로부터 대충 4개월은 더 지나야 해"
"그런가......"
걸으면서, 하루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나...아직 이 아이를 어떻게 할 지 정하지 못 했어"
"......낙태 하지 않을거야? 아이돌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데?"
"응. 그리고 원했던 임신도 아니었지. 이오리도 4개월 내로 정하라고 했어. 그때쯤 되어야, 765 프로 올스타 신곡 준비라는 핑계로 1년 정도 시간을 끌 수 있다고 말했거든. 낙태를 하고, 건강 관리하고, 다시 몸매를 이전의 때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래"
솔직히 최근 입맛도 까다로워진 것 같아─라고 하루카는 덧붙였다. 토우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책임한 관계. 무책임한 임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의 몸으로는, 그녀의 고충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무섭긴 해. 이 배 안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고 하니까. 내게서 영양분을 가져가는, 그리고 어쩌면...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는 생명"
"......"
출산하기로 결정을 하면, 은퇴를 해야할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기로 매일매일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 없이 낳은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고, 정신나간 사생팬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아마미 하루카는 지금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아마가세 토우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녀를 보호하려 들면, 그까지 휘말려 들어가,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다. 아직 부모님들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두 사람. 이걸 말하면,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다
"그냥 낙태를 해. 그게, 우리 둘 모두를 위해서 좋은거야"
"하지만, 이 아이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 원하지도 않았는데 죽어버리는 이 아이는?"
"아이 하나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쌓아올린 건 전부 포기하고, 그 아이에게 전부 맡기자고? 다른 동료들은, 회사는 어쩔 생각인건데? 행여나 들키기라도 한다면...모두가 끝장난다고"
"......토우마 군. 이전에 했던 말 기억해? 책임져 달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던 것"
잊을 리 없다. 잊을 수 없다. 아무리 그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나...4개월 동안 계속 고민해볼거야. 그리고 결정을 내릴거야. 그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토우마 군은 그걸 받아줄 수 있어?"
"......"
토우마는 머릿 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낙태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출산을 할 경우 어떤 식으로 무난하게 수습할 것인가. 무겁게, 입을 연다
"네가 책임져 달라고 한다면...은퇴하고, 결혼해줄게"
이미 한 배를 탔다. 이제와서 그녀와 아이 둘만을 떠나보낼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간은 되지 못 한다.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다. 여자 하나 제대로 직시하지 못 하고, 헌팅조차 못 하는 숙맥이라고 해도, 한 번 내린 결론은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
"미나세에게 부탁해서, 출산 시기를 속여달라고 하자. 은퇴하고 결혼하면, 최소 3년 정도는 잠적할 수 있어. 너는 집 안에만 있고, 내가 가끔씩 밖에 나가서 쇼핑을 하고 오는 형식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돈이 꽤 된다. 여태까지 모아두었던 피규어를 비롯한 덕질용품들도 팔면 꽤나 값어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 안에만 있어도 3년은 놀고 먹으며 살 수 있다
하루카는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토우마를 올려다 보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후회해. 지금 내가 이 말을 왜 하고 있는 거지? 라고도 스스로가 미친 것처럼 느껴져...하지만, 나는 비겁한 남자가 되어가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아"
"톱 아이돌의 꿈을 포기할 수도 있는데?"
"너도 출산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 꿈을 포기하게 되는 거잖아? 내 라이벌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네가 그 꿈을 포기한다면, 나도 못 할 건 없겠지...그리고, 내 개인의 꿈을 위하여 모두를 희생시킬 수는 없어"
그들은 짊어지고 있는게 많다. 동료, 회사, 팬 그리고 꿈. 그 모든 것을 포기하면 분명 엄청나게 후회할 것이다. 눈물도 잔뜩 흘리겠지. 그럼에도, 서로가 결정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선을 넘는 행동을, 그들은 하지 못 한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고마워, 토우마 군...그래도, 나 혼자만의 인생이 걸린게 아니라, 토우마 군의 인생도 걸려있는 거니까...좀 더 생각해볼게"
"말했어. 당연히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 왜 갑자기 자취를 하나 싶더니, 이걸 위해서였냐고. 하지만, 토우마 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니까, 울면서 아무 말도 못 하시더라고"
"......아주 부모님 심장에 대못을 박아버리는구만"
"응...나, 정말로 불효녀네..."
토우마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저, 토우마입니다. 예...결론 나왔어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주세요. 저, 은퇴하고 아마미 하루카랑 결혼식 올릴 겁니다. 뭐, 결혼식은 그냥 조촐하게 아는 사람들만 모여서 열 거에요. 그냥 그렇게만 알아두세요...예. 사정,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침없이 다음 사람들에게도 알린다
"호쿠토. 지금, 쇼타와 같이 있지? 응...목소리만 들어도 다 안다고? 그래...이해해줘서 고맙다. 너희들과 같이, 쥬피터로 활동할 수 있어서, 정말로 즐거웠다. 나 없이도 잘 굴러갈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다, 쥬피터가 아니어도 이미 활동 노선을 확실히 잡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해...그래, 정말로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마지막은 부모님이다
"나, 결혼해요......그래요.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거냐고,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전에 말했잖아요. 아마미 하루카하고 잤다고. 그때는 지금만큼 큰 소리 치지는 않았잖아요...예. 그래요. 그때는 단순히 잤다고만 얘기했죠. 근데, 얘...임신해버렸거든요...지우라고? 아버지. 당신이 알던 아마가세 토우마는, 여자를 임신시키고, 아이를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없었다는 살아갈 쓰레기 자식이었어?! 할 거야! 은퇴하고, 결혼할 거라고! 그렇게만 알아둬!!"
그리고 탁 끊어버린다
"이걸로...나도 너와 같지?"
"꼭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
"인생의 무덤으로 가는 길. 불효로 인해, 지옥의 밑바닥까지라도 간다 한들, 못 갈 것 없지"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서로 사랑해야만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맞선으로 만난다던가, 결혼하고 나서 정을 키워간다던가.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이어질 수 있다면, 『첫사랑은 죽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같은 말 따윈, 세상에 없을 것이다
토우마는 하루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쯤 315의 사장이 765의 사장과 P에게 전화를 걸어 공식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세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겠지
"잡아. 이제 갈 시간이야"
"참 거침이 없구나, 토우마 군은?"
"어물쩍어물쩍 거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간섭하는 것도 귀찮고. 우리는...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살자고 말하는게 좋을 것 같으니까"
하루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서, 토우마는 하루카와 함께 걸어나갔다. 주변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것 따위는 관심없다. 지금 가는 장소가,. 그들이 혼인을 할 장소와 같을 테니까
이전부터 어울렸다느니, 똑같이 성의 맨 앞글자에 天자가 들어가서 어울린다느니 호평 일색이었다. 물론 젊은 나이에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팬들까지 배신했다는 말도 나왔지만, 토우마와 하루카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 새로 생길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였다
아키즈키 료의 커밍아웃 이후 이전보다 훨씬 더 인기가 높아진 것처럼 이 세상의 팬들은 은근히 관용적인 사람들이었다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말이야......"
"조촐하기는 하지. 참가인원들이 화려할 뿐"
765, 315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돌, 사장, 매니저, 프로듀서 등 그들과 조금이나마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축하를 위해 찾아왔다
특히 그들의 부모님. 마음고생을 많이 시킨 불효자녀들의 결혼식에 결국 참가해 주셨다. 여전히 납득하지 못 하는 것도 없잖아 있지만,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부모. 결혼 이후 출산과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주례를 서는 것은 315 프로덕션의 사장 사이토 타카시
"신랑 아마가세 토우마는 신부 아마미 하루카를 사랑합니까?"
"사랑하지 않습니다"
주변이 술렁거린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대충 짐작한 사이토는 재차 하루카에게 물었다
"신부 아마미 하루카는 신랑 아마가세 토우마를 사랑합니까?"
"사랑하지 않습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내려앉은 결혼식장. 사이토는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두 분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으려 하십니까?"
토우마와 하루카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한때의 불장난 상대가 눈 앞에 있다. 설마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지만,
"이것은 속죄. 평생을 안고 가야할 짐. 그걸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관계를 가졌다는 증거는 이 뱃 속에 있는 아이 하나 뿐. 하지만, 저는 이 아이를 배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더 아이에게 정을 품었습니다. 그렇기에,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을 결정했습니다"
"뱃 속에 있는 아이는 제 피를 이은 아이입니다. 그녀가 그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저 또한 그녀와 함께 아이를 길러야 겠지요. 그렇다면, 아이를 통해서, 부부 간의 정을 키워볼 생각입니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될 필요는 없다.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점 더 정이 싹틀 수도 있으니까. 토우마와 하루카는 그런 길을 선택했다
"그럼 신랑 아마가세 토우마는 신부 아마미 하루카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결혼, 후회하지는 않게 해주겠어. 어디든지 따라가 줄거야. 네가 나와 그 아이를 버리지 않는 한"
객석의 분위기가 다시 변한다.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카에게 재차 같은 질문을 했다
"토우마 군과 있었던 일.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배 아파가면서 낳을 아이라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금지옥엽처럼 키우지는 못 할 망정, 너와 함께 버릴 수는 없잖아? 끝까지 따라와줘. 죽음이 갈라놓아도, 사후세계의 끝까지 함께"
"물론. 넘어져도, 억지로 끌고갈거야"
"큰일이네. 나, 자주 넘어지는데"
미소짓는 두 사람. 그것만으로 이미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럼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모두의 축하 속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앞으로 그들이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는 계속 지켜봐야 알겠지만, 책임감 강한 두 사람이 안 좋은 의미로 결별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을 거라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5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토우마는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다.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라 할 수 있는 소녀, 아마미 하루카가 누워있다. 그녀의 목과 가슴팍 등에 남아있는 붉은 자국들은 그가 하루카의 몸에 남긴 키스 자국
여자를 제대로 직시하지도 못 할 정도의 숙맥인 아마가세 토우마는 대체 어쩌다가 아마미 하루카와 하룻밤 잘 정도의 관계가 되었는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
"벌써 새해인가"
입김이 나오는 겨울의 밤. 12월의 말. 아마가세 토우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쥬피터의 동료들과 새해를 함께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1월 1일 아침. 신사에 찾아가 새해의 첫날을 다 함께 축하하기로 결론을 내렸었기에, 오늘은 일찍 자기 위해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응...? 저건...?"
그러던 중, 토우마의 눈에 우연히 한 소녀가 들어왔다. 머리의 양쪽에 붉은 리본을 맨 소녀, 아마미 하루카였다. 언제나 밝고 단결을 외치던 그녀는 어째서인지 공허한 눈으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토우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곧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아마미 하루카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 한 마디로 건네기로 말이다
'그럼 어떤 식으로 다가갈까'
+3
1. 따뜻한 캔커피를 들고 간다
2. 그냥 무조건 다가가서 말을 건다
3. 조심스럽게 옆에 앉아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아는 척 말을 거는 건...지금 분위기에서는 좀 그러려나...'
실로 유감스럽게도, 그는 남성 아이돌이면서도 여심에 대해서 무지하고 제대로 직시할 수도 없으며, 헌팅은 꿈도 못 꾸는 겁쟁이다. 하루카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먼저 알아채고 말을 걸 때까지 조용히 침묵하기로 결심한 토우마는 곧 그녀의 옆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라고는 해도, 벤치의 끝부분에 걸터앉은 것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인기척을 느낀 하루카가 시선을 돌렸다. 아마가세 토우마는 "여어"하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아마...가세, 군..."
하루카는 천천히 토우마의 성을 읊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이야? 난 별로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도 되는데"
"새해 첫날이 올 시간인데, 축 쳐져 있는 지인을 보면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리 없잖아"
말을 해놓고, 토우마는 아차! 하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뭔지는 몰라도 영 안 좋은 일이 있어보이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는 건내지 못 할 망정 평소처럼 퉁명스러운 말을 해버렸다. 상처받지 않았을까? 속으로 걱정하면서 토우마는 은근슬쩍 하루카의 눈치를 보았다
"......무슨 일인지, 안 물어봐?"
"......물으면, 대답해 줄 거야?"
"글세...지금은, 딱히 누구라도 상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야..."
공허한 울림. 토우마는 분위기를 읽고 침묵했다. 그 침묵을 긍정의 신호로 알았는지 하루카는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에게 고백했어"
"뭣?! 진짜냐?!"
토우마는 경악했다. 여성 아이돌, 그것도 미성년자인 그녀가 자기 소속사의 젊고 잘생긴 프로듀서에게 고백을 했다고 한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커다란 스캔들이 되어, 961 프로의 쿠로이가 물고 늘어져 765 프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역풍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치만...차여버렸어..."
"......"
고백에 성공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리 없다. 멋쩍은 듯, 시선을 피하는 토우마.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보다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가져갔더라고...아아...아쉬워라...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를텐데..."
토우마는 그 프로듀서를 먼저 낚아채 간 용기있는 여성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왠지 모르게, 그 여성은 765 프로의 멤버들 중 한 사람일 것 같았다.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토우마는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그 프로듀서와...사귀게 된 사람이 누구인데?"
"궁금해? 그러면 알려줄게"
그 사람의 이름은──
+2
1. 호시이 미키
2. 키사라기 치하야
3. 미우라 아즈사
*
"아즈사 씨...운명의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니...정말로 찾아서 가버렸네"
미우라 아즈사. 분명 가슴이 가장 큰 성인 여성이었던 걸로 기억하는 토우마. 프로듀서와의 나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귀기 시작하면, 하루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힘들테니까
책임감이 강하다고 해도 그 또한 남자. 분명 연인이 생기면...섹스도 하고 싶을 것이다. 하루카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참겠지만, 역시 1년 동안 참는 것보다, 그보다 더 빨리, 고백받은 당일이라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아즈사가 더 좋을지 모른다
아니...어쩌면 이전부터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루카가 은근슬쩍, 미키가 대놓고 호감을 드러낸다고 해도, 그에게 있어 두 사람은 자신이 돌봐야 하는 아이돌이자 아이들이니까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하나......'
아마가세 토우마는 연애경험이라고는 전무하며, 강한 척을 할 뿐 숙맥인데다가 동정이기까지 한 남자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짝사랑으로 끝낼 뿐, 고백할 용기도 없이 허세만을 부리는 겁쟁이기까지 한 남자다. 즉, 다른 건 다 잘 해도, 연애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형편없는 남자인 것이다
'그냥 나중에 좋은 사람이 생기겠지, 하고 말할까. 아니, 그건 너무 흔하고 입에 발린 소리 같아. 세상에 남자는 많다─라는 건...아니, 이것도 NG인가?'
열심히 고민하던 토우마는 예전에 했던 미연시에 본 대사를 떠올렸다
"어이, 아마미. 아이돌은 연애 금지야. 잊은 것 아니겠지?"
"......"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는 돈벌이를 위해, 인기를 위해서 순결이나 정조를 장사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느니, 그런 꿈도 희망도 없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 좋아한다면 고백하는게 당연한 거야. 이어지고 싶다던가, 사귀고 싶다던가, 결혼하고 싶다던가─그런 마음을 가지는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자기가 생각해도 꽤나 말을 잘 하고 있다며 속으로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며, 토우마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말이야...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
단결을 주장한다고 해도, 톱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이듯이. 연애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 다른 사람이 빼앗아갔다고 해도, 설령 나중에 결혼해, 아이까지 낳는다고 해도, 게임은 끝난게 아니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까지는──
"바보네, 아마가세 군. 골 들어간다고 해서 골키퍼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
"......"
제대로 반격을 당했다. 부끄러움으로 인해 침묵하는 토우마.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또 어떻게 둘러대고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토우마의 옷깃을, 하루카가 붙잡았다
"아마가세 군"
"뭐, 뭐야...?"
당황하는 토우마를 올려다보는 하루카. 그녀의 눈은 여전히 공허했지만, 그 안쪽에, 뭔가 다른 생각이 새어나오는 듯 했다
"시간이 남는다면, 오늘 아마가세 군의 집에서 재워주지 않을래? 나, 막차 놓쳐버려서 갈 곳이 없거든"
"......"
뜬금없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제안에 벙쪄버린 토우마. 동시에, 머릿 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들어섰다
──이건, 100% 유혹하는 거다, 라고
*
"여기가 아마가세 군이 사는 집이구나? 남자가 자취하는 방이라고 해서 더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네?"
"나는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는 살지 않아"
말은 그렇게해도, 토우마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집 안에 여자를 끌어들였다. 그것도 상대는 아이돌. 즉, 미소녀다. 픽션에서나 봤었던 상황의 주인공이 된 지금, 토우마는 뭘 해야 할 지 몰라서 안절부절 걱정되었지만, 특유의 허세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놓고 있지는 않았다
'이제 또 어떻게 해야 하지'
+2
1. 야식
2. 대화
3. 취침
말 더듬었다. 동정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동정이라는게 꼭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사회의 편견 상 남자는 동정이면 욕 먹고, 여자는 비처녀면 욕 먹는 세상. 토우마는 갑자기 이 순간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양성평등은 언제쯤 이루어질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쥬피터의 리더씩이나 되면 돈도 꽤나 잘 벌텐데, 이런 집에서 사는 거야?"
"...남자 홀로 자취하는데, 굳이 큰 집을 살 필요는 없어.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고"
토우마가 자취하는 집은 피규어 전시를 위한 방과 화장실 그리고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 말고 다른 방이 없다. 거실과 부엌은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거실에는 소파 대신 침대가 있고, 그 옆에는 노트북이, 정면에는 TV가 있다. 고시촌 수준의 방보다는 훨씬 나은 방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딱히 잠 안 오지?"
"응"
"그럼...대화라도 하지 않을래?"
딱히 대화를 나눌 화제는 없지만, 이런 제안을 건네는 것도 토우마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하루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먼저 말했다
"아마가세 군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 없어?"
"......있었지"
지금은 다른 남자랑 사귀고 있지만. 고백할 용기도 없었으면서 질투했다가 지금은 체념해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찌질한 남자다
"과거형...나랑 비슷한 경우?"
"......아니, 나의 경우에는 고백조차 하지 못 했어. 오히려, 용기내서 고백한 네가 더 대단하다"
"헤에...의외네. 아마가세 군, 거침 없는 성격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고백도 당당하게 할 것 같았는데"
어쩌면, 연인 사귀기에 실패 했기에, 토우마는 아이돌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아이돌은 연애 금지─라는 걸 변명으로 내세우며, 톱 아이돌에 매달렸었다. 결국에는 실패하고, 961에서 나와, 315에 들어가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져 먼저 고백을 한 하루카에게 은근히 존경심마저 느낀다
"그렇구나. 그러면, 우리 모두 실연한 동지이려나?"
"너보다는 못 하겠지. 나는 고백하지도 못 하고 후회한 바보니까"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더 비참해져간다. 침울해져가는 토우마를 바라보던 하루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두 손으로 그의 양뺨을 잡고 고개를 돌리게 해 자신을 응시하게 했다
"뭐, 뭐야?"
갑자기 얼굴이 가까워져 똑바로 그녀의 두 눈을 응시하자 부끄러움을 느끼는 토우마. 얼굴을 돌리려고 해도, 꽉 붙잡혀 있어 벗어날 수 없다. 어떻게든 눈동자만이라도 굴리지만,
"나를 봐줘, 아마가세 군"
"윽...!"
마치 정신조작이라도 당한 듯, 토우마는 하루카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결국 하루카와 눈동자를 마주치는 토우마. 잠깐의 침묵 후, 하루카는 갑자기 입을 맞췄다. 그녀를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못 하고, 눈동자만 크게 뜬 채 가만히 있는 토우마. 갈 곳을 잃어버린 두 손은 허공에 붕 떠, 손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혀마저 섞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입술이 맞닿았다가 떼어졌을 뿐이다
"아, 아마미...?"
"저기, 아마가세 군"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하루카는 토우마를 지그시 응시하며,
"우리끼리라도, 즐겨보지 않을래? 실연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로해보자"
이성의 끈을 싹둑 잘라버렸다
*
사실은 알고 있다. 하루카가 그를 유혹하는 건, 단순히 프로듀서를 대신할 다른 남자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마음의 교환 같은 건 없이, 단순히 몸만을 바라는 관계. 그것을, 토우마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동정을 떼기 위해서일까. 남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거기서 물러나기 싫었던 것일까
쪽, 하고 부드럽게, 하루카의 목에 키스를 하는 토우마. 하루카는 읏, 하고 신음을 흘린다. 아마 숨결과 입술의 이질적인 감촉 때문에 간지러움을 느낀 것이겠지
"아마가세 군..."
"...아마미"
흔들리는 눈으로 토우마를 올려다보는 하루카. 그는 하루카의 허리와 등을 꽉 끌어안으며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키스를 나눴다. 아마 언론에서 이들의 행각을 본다면 특종이라며 연예기사 1면에 딱~! 하고 실을 것이다
한쪽은 315 프로덕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돌 유닛 쥬피터의 리더. 다른 한쪽은 765 프로덕션의 올스타 멤버들 중에서 리더를 맡고 있다. 리더와 리더의 만남과 연애행각. 들키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연애적인 감정 같은 건 없다. 일방적인 마음이 엇갈려 낳은 결과물일 뿐이다
아마미 하루카가 좋아하던 남자는 아마가세 토우마가 아니다. 아마가세 토우마가 좋아하던 여성 또한 아마미 하루카가 아니다. 그저 우연히 만나, 서로를 달래려다가, 상황이 만들어낸 욕망에 몸을 맡긴 것이다
조심스럽게 하루카를 침대 위에 눕히는 토우마. 그도 남자이기에 야한 영상이나 만화 같은 건 보았다. 그렇기에,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전으로 돌입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그건 아마미 하루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반라의 상태에 가깝다고 해도, 부끄러움의 탓인지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돌리는 하루카. 토우마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그럼...벗길게...?"
"네......"
여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 토우마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치마와 속옷을 벗겼다. 그녀의 음부에는 뽀송뽀송한 털들이 있었다. 2차 성징도 거의 다 겪었을테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아래에 있는 털도 관리하는 것인지 깎아낸 흔적이 엿보였다
자신이 처음 면도를 했을 때가 떠오른 토우마. 다른 상념에 빠져 있다가 핫! 하고 놀라며 자신도 주춤주춤 바지를 벗었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 본능대로 뻣뻣하게 선 자신의 음경을 보며 토우마는 긴장했다
자위를 할 때에도, 이만큼이나 커진 적이 없었다. 얼마나 여자에 굶주린 것인지, 자신의 이런 면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걸 또 하루카의 음문에 가져가 댔다
"들어, 간다..."
"응...들어, 와...크읏!"
푸욱, 파고들어 가는 음경.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건 한순간 뿐이었다. 이미 두 사람 다 흥분해서 질도, 음경도 발기한 상태이기에 고통은 바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뜨거움을 느꼈다
찔걱찔걱, 천천히 흔드는 허리와 파고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음경. 다만, 여성의 음문은 보통 엉덩이에 가깝기 때문일까, 이 자세를 상당히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2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 속으로는 엄청난 고민을 한 토우마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미, 베개, 이리 줘"
아마미가 머리를 기대고 있던 베개를, 그녀의 허리 아래에 깔아놓고 그 위에 아마미의 몸체를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허리를 흔들기 편한 자세가 되었다
토우마는 강하게 허리를 박았다. 튕기듯이 접히는 아마미의 허리. 동시에 큰 신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다만, 고환이 둔부에 부딪혀 찌르르르 밀려오는 고통은 토우마의 입에서도 고통에 찬 심음소리가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발산되는 아드레날린은 그런 통증을 마비시키고 마음껏 허리를 흔들게 했다. 본능적으로, 마치 짐승처럼 행위에 열중하던 두 사람
그때, 하루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윽, 흑...!"
"....."
왜 갑자기 그녀가 울기 시작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건 아마 신체적인 아픔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첫경험을 바치는 것에 대한 씁쓸함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이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질투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연의 아픔이 이제서야 강하게 느껴져 슬픔 때문에 우는 것일 수도 있다
"......"
토우마는 울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울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설령 안다고 해도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인지, 계속해서 행위를 지속했고...곧 절정에 이르렀다
다음날 아침의 일+2
1. 돌려보낸다
2. 한 번 더
3. 아침식사
"어이, 아마미. 일어나봐"
"으, 으음......"
하룻밤 자고 난 뒤에는 이전보다 어색함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는 아마미를 보자 다시 굳어져 버렸다. D컵 크기의 가슴 그리고 여기저기 새겨져 있는 붉은 키스 자국들. 지난밤, 그녀의 몸에 새긴 자신의 흔적을 보자, 그때가 다시 떠올라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루카도 새빨개진 토우마의 얼굴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고,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렸다. 때문에, 토우마의 다리 위에서 이불이 당겨져, 다리 사이에 달려있는 음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침이 되면 나타나는 남자의 생리적 현상 때문에 불쑥 솟아올라 있는 음경이 말이다. 절대로 아마미의 몸을 보고 일어선 것이 아니다. 일어선 상태에서, 그녀를 보고, 다시 불끈불끈한 느낌이 오긴 하지만
서둘러 근처에 던져둔 팬티와 반바지를 입는 토우마. 주변에 널려 있는 그녀의 옷들과 속옷들이 보였지만, 애써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그러니까...아침식사라도 할래?"
"......그래. 그러자"
하루카는 새빨개진 얼굴을 돌리며 대답했다
*
탁탁탁탁. 도마 위에 울리는 식칼 내리치는 소리. 소리가 들릴 때마다 대파가 잘게 썰려나간다. 하루카는 게로게로 키친에서 했던 요리를, 지금 다시 토우마의 집에서 재현하고 있었다. 토우마는 옆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둘 다 의외로 취미 및 특기가 요리인지라 함께 공동작업을 하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침식사가 빠르게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연인이나 부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요리하는 과정에선 딴 생각하는 일 없이 서로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로를 의식하다가 칼로 손가락을 베인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준비가 다 끝난 후, 김이 다 빠진 밥솥에서 주걱으로 밥을 퍼 그릇에 담고, 침대 앞에 펼친 작은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평소에는 혼자 앉아서 먹는 식사. 갑자기 다른 사람과 함께 먹으려고 하니, 식탁이 이전보다 더 좁아진 듯한 느낌도 있지만,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했다. 식사 후 설거지까지 다 끝낸 뒤, 토우마는 창문 밖에 고개를 내밀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새해 첫날부터 인근의 신사에 참배를 올리러 갔기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다. 지금이라면 밖에 나가도 다른 사람에게 들킬 일이 없었다
"그럼...나는 이만 가볼게"
"응...잘 가"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남녀 그것도 아이돌이 함께 걷다가 들키면 스캔들로 오해받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관계까지 가져버린 것을 들켜버린다면, 최악이다. 765도, 315도 역풍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부모님에게는 미리 연락 드렸던 거야?"
"문자, 보냈었으니까...괜찮아. 호텔에서 잤다고 했어...그럼, 바이바이. 아마가세 군"
작별인사를 나누고, 문을 열어 나가는 하루카. 그러나, 이 무슨 최악의 타이밍인지, 누군가들이 소리를 내면서 토우마의 집 문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1. 쥬피터
2. HIGHxJOKER
3. F-LAGS
같은 315 프로 소속의 아이돌 밴드 유닛 하이조커의 보컬인 이세야 시키는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결국 말까지 끊겼다. 그만큼,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
"앞길 막......"
뒤이어 다가온 다른 멤버들도 토우마와 함께 있는 하루카를 보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토, 토우마...이게 대체 무슨...?"
"이,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이야기 해! 어, 어이 아마미...잘 가라!"
"아, 응"
아마미는 밖으로 내보내고, 하이조커는 방 안으로 들이며, 토우마는 방문을 닫았다
*
"──그래서, 동정 졸업했어?"
"흐, 흥! 당연하지! 그런 상황에까지 갔는데 가만히 있을 정도로 쑥맥은 아니거든?!"
"와, 진짜 부럽네!"
어젯밤의 첫경험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는 남자고교생들. 하지만, 그 중에서 후유미 쥰이 태클을 걸었다
"저기...이 문제, 그리 가볍게 취급할 문제가 아니에요...아이돌, 그것도 인기 유닛인 쥬피터의 리더인 토우마 씨가 여자랑 섹...성관계를 가졌다고요? 게다가 상대도 엄청나게 유명한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인 아마미 하루카에요. 이게 알려졌다간, 토우마 씨 뿐만이 아니라 315의 모두가, 그리고 765의 모두가 엄청난 역풍을 맞을 거에요"
"아......"
쥰의 경고에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내들. 토우마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어, 어쨌든...나라고 해서, 그런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야...솔직히 충동에 몸을 맡긴 나도, 아마미도 문제가 있어...너희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지...그래도, 부탁한다. 오늘 있었던 일은, 어디에 가서도 발설하지 말아줘"
"물론. 우리도 바보가 아니니까, 당연히 비밀로 할 거야. 이게 알려지면 우리만 피 보는게 아니니까"
"그래도...사장님이나 야마무라 씨에겐 말해야 하는 것 아님까?"
"사장님은 몰라도 야마무라 씨는 안 돼. 그 사람, 허당이니까, 어디가서 실수로라도 말해버릴지 몰라"
긴급회의를 끝내고, 쥰이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어쨌든 이 일에 대해서는 저희와 사장님 그리고 토우마 씨만 아는 걸로 하죠. 호쿠토 씨나, 쇼타 군에게는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덤으로, 이제 아마미 씨와는 만나도 모르는 척 하세요. 괜히 이번 일로 이상한 정분이라도 나면, 곤란해 집니다"
"알겠어. 모두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
지난밤의 일은 한순간의 미혹에 빠져있던 것으로 결론을 내리며 토우마는 이제부터 최대한 아마미를 포함해서라도 여자들과의 접촉을 피하기로 결심했다
+2
1. 다음날 또 만난다
2. 일주일은 만나지 않는다
"......"
"......"
새해 첫날을 위해 참배를 하러 찾아온 신사. 그 앞에서, 토우마와 하루카는 딱 마주쳐 버렸다. 그녀도 765 프로의 동료들과 합류해 이곳에 찾아온 듯 했다
사정을 알고 있던 하이조커와 토우마에게 들었던 호쿠토와 쇼타도 경악하며 말문이 막혔다. 사정을 모르는 765 프로의 소녀들 중 미나세 이오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거야? 경쟁사라고 해서, 여기에 와서까지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얼른 지나가"
"아, 알고 있어"
아무 말 없이 지나치는 토우마와 일행들. 하루카는 슬며시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으나 토우마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걸었다. 우연히 다른 765 프로의 아이돌들과도 만났으나, 어제 하루카와 토우마가 하룻밤을 보냈던 일 때문인지, 까불까불거릴 하루나, 시키, 쇼타도 조용히 있었다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토우마는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겸허하게 신사 앞에서 기도를 했다
'부디...어젯밤과 관련된 일로 인해...커다란 문제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그건 한순간의 미혹에 판단이 흔들려 일어난 실수였다. 프로 의식이 뛰어난 아마가세 토우마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 아무리 동정에, 모쏠에, 연인에 굶주렸다 해도, 지난밤의 일은 너무 지나쳤다. 단순히 몸뿐인 관계. 거기에는 사랑도, 같이 밤을 보낸 뒤의 정도 없었다
"아, 아! 맞다! 새해의 운세가 어떨지 확인하러 가볼까!"
"그, 그게 좋겠네~! 아아, 어떠려나~! 대길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하, 하, 하"
일부러 765 프로와 멀어지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려는 쇼타. 어색하게 웃으며 호응하는 하루나. 그리고 토우마의 운세는──대흉(大凶)이었다. 새해 첫날부터 참 너무한 운세였다
"그쪽들은...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
하루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토우마. 하루카의 곁에는 치하야와 야요이가 있었다. 갑자기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은 토우마였으나 빨리 용건만 해결하고 보내기로 했다
"대흉이야. 새해 첫날부터 기분 잡치는군"
"그래? 우연이네. 나도 똑같이 대흉인데"
"......"
하루카가 펼친 종이에는 대흉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그러고서 아무 말 없이 토우마를 응시하는 하루카. 토우마는 시선을 피할까 싶었지만, 다른 765 프로의 아이돌도 있는 상황에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똑같이 응시하며
"뭘 보고 있는거지?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
"아니. 다만, 뭔가 다른 느낌이 나서. 원래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 난달까?"
"언제부터 서로 자주 알고 지냈다고 원래 알던 느낌과 다르느니, 마느니 말하는 거야? 이상한 오해 사기 싫으니까 말을 조심하라고. 그럼, 모두들 이만 가자. 새해 첫날이고, 일도 없으니까 오늘은 계속 노는거야!"
억지로 지나치려던 토우마의 옷깃을 하루카가 붙잡았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그 자리에 모여있던 모든 아이돌들이 놀랐다
"저기, 아마가세 군...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
하루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옷깃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토우마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기 보다는, 뭔가 다른 것을 참고 있는 모양이다. 토우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들, 그렇지 않은 얼굴들도 있지만──두 사람이 부족하다
프로듀서와 미우라 아즈사가 없었다
"......짧게 끝내"
"잠깐, 토우마 씨...?!"
말리려는 쥰의 손을 토우마가 막았다
"잠깐이야. 잠깐이면 되니까, 좀 참아줘"
눈치 빠른 호쿠토도 주변을 둘러보고 무슨 이유인지 알아챈 듯, 다른 이들을 데리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하루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치하야도, 그녀를 토우마와 단 둘이 만나게 하는 건 거부감이 들었으나, 지금 하루카가 매우 심란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야요이를 데리고 물러났다
둘만 남은 상황. 옷깃을 놓고, 하루카가 말했다
"잠시, 걸을까요?"
"......그러지"
자신도 참 성격이 물러터졌다고, 속으로 자책하며, 토우마는 하루카를 따라 걸었다
+2
1. 프로듀서와 아즈사에 대한 이야기
2. 토우마와 하루카에 대한 이야기
"신기하네. 우리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란히 걸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
"......나도 그래"
한때는 765와 961의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았고, 지금은 765와 315로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는, 서로 미묘하지만 말이다
"아마, 아니 토우마 군은...어떻게 하고 싶어? 나와의 관계...한 번 사귀어 볼래?"
"......거절한다"
아마미 하루카는 좋은 여자다. 요리도 잘 하고, 외모도 예쁜데다가 성격도 좋다. 하지만, 남자로서 여자에게 품는 호감은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갈 수 없다는 걸 토우마는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프로듀서가 남아있으니까. 하루카는 그저 그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하룻밤을 같이 보냈던 남자에게 이런 제안을 건네는 것 뿐이다
"어라? 여자의, 그것도 여성 아이돌의 순결을 받아가놓고 책임도 안 질 셈?"
"그런 식으로 따지면 너도 내 동정을 받아갔잖냐. 쎔쎔이야. 정 나와 사귀고 싶다면...일단 자기와 관련된 것부터 정리하고 오는게 어때?"
프로듀서와의 관계라거나, 미우라 아즈사와의 관계라거나, 하루카가 프로듀서에게 차인 것을 알고 있는 다른 아이돌들 간의 관계라거나. 토우마는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되지만, 하루카는 그것 말고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하하하, 그것도 그렇네. 나는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지......"
다시 말 없는 침묵. 한참을 걷다가, 다시 빙글 돌아 일행에게 돌아가는 길. 하루카는 갑자기 핸드폰을 건네왔다
"메일 주소, 교환하지 않을래? 나...앞으로도, 토우마 군과, 자주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거절해야 한다. 사적인 만남은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메일이나 전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 토우마. 어째서 본인이 이렇게까지 흔들리는지 알 수 없다. 단순히 첫경험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를 동정하기 때문일까
"내 핸드폰, 받아. 네가 직접 적어 넣어"
"응......"
두 사람은 함께 귀환했다
+2
1. 프로듀서와의 만남
2. 아즈사와의 만남
"아, 이쪽이야"
"......내 번호는 또 어떻게 알고 연락한 거야?"
"하루카에게서 들었어"
토우마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옆자리에 앉았다. 정확히는 벤치의 끝 부분에 앉았다. 남자, 765 프로의 P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로 연락한거지? 딱히 당신하고 할 이야기는 없는데"
"나는 있어. 프로듀서니까, 자기가 관리하는 아이돌이, 다른 사무소 소속의 아이돌과...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왔다는 건,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는 힘든 사안이거든"
"......"
"하루카가 말한 건 아니야. 내가 말하게 한 거지. 뭔가 평소와는 분위기라든가, 행동거지라든가가 묘하게 이상해서, 걱정되어 물어보니, 어느새 추궁하는 것처럼 되어서, 조용히 듣게 되었어"
P는 자신의 아이돌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카에게는 다르게 느껴졌겠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고, 새해 첫날의 참배에 나오지 않고, 같은 침대 위에서 아즈사와 함께 뒹굴고 있었을 남자의 걱정. 불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선...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콘돔은 사용했니?"
"......아니"
"......안에다 했니, 밖에다 했니?"
"안에다 했어"
P는 미간을 찌푸렸다. 철 없는 10대의 불장난. 그 정도로 여기고 있겠지
"콘돔을 사용하든, 밖에다 싸든, 똑같이 아이돌을 건드린 남자 입에서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이로군. 게다가, 다른 아이돌들도 함께 나온 걸 보면, 다 같이 새해 첫 참배를 올리러 신사에 가자고 약속을 한 것 같은데, 너와 미우라 아즈사는 그 약속을 어긴 것 같더군?"
"......그렇지. 면목없네. 내가 누군가를 나무랄 자격은 없지"
그래도, 만약의 가정인데─라고 덧붙이며 말한다
"만약...그 하룻밤의 실수로...하루카가, 그...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너는 어떻게 할 거지?"
"......"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연예계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주워듣고 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있다. 특히나 그건, 아무리 입막음을 위해 돈을 뿌려도 알려질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아마미 하루카가 산부인과를 들른다면, 그 병원 관계자들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줘도 어느새인가 다 알려지게 되어 있다
"너는, 책임질 수 있는거야?"
어떻게 말해야 할까. 토우마는 여기서 섣불리 책임을 지겠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이제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애는 애였던 것 같다
"한 번 잤다고 무조건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는걸. 그건 그쪽에서 먼저 유혹한 거였어. 너에게 차여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무 남자라도 좋다는 듯이 말이야. 그나마 우연히 만난게 나였기에 망정이지 술취한 취객을 상대로도 다리를 벌렸을 거──?!"
뻑!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토우마는 바닥을 굴렀다. 씩씩거리며 외쳤다
"네가, 그런 놈이었을 줄은 몰랐다! 너는, 쿠로이 사장과는 다른, 좀 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그러셔? 나도, 네가 좀 더 책임감이 있는 어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토우마는 반격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붙었지만, 아이돌로서 체력단련도 하는 토우마와 달리 언제나 일에 치이듯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게 전부 다 인 P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잘 들어, 이 망할 자식아. 그때의 일은, 나와 그 녀석의 문제야. 그 녀석이 직접 책임져 달라고 하면, 나는 그럴 생각이야. 하지만, 제 3자가 말을 해온다면, 나는 하지 않을거다. 자기 문제도 제대로 끝맺음 내지 못 한 얼간이 주제에, 어른이라고 꼰대짓 하지 말라고!"
P를 한 번 걷어차고서, 토우마는 돌아갔다. 그 날 하루는 정말로 최악의 하루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을 잡쳤다
+2
1. 하루카와 연락
2. 동료들과 대화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토우마 군?]
전화를 받은 상대는 아마미 하루카였다
"지금, 통화 가능하냐?"
[응. 나, 오프니까. 지금은 집이야. 무슨 일로 전화했어?]
이것을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다가 토우마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오늘...너희 프로듀서하고 만났어"
[......]
"비밀을 밝힌 것에 대해 타박을 하려는게 아니야. 그저...혹시 몰라서 전화한 거야...만약에, 아주 만약의 이야기인데...그날 밤의 일로, 네가 임신을 했다면..."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본인의 입으로, 차마 그녀가 임신했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임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제대로 알려면, 입덧을 하거나, 배가 불룩 나오기 시작해야 알 수 있어. 아니면, 산부인과에 가던가. 토우마 군은, 나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 줄 거야?]
"스캔들 터질 일 있나. 그런 곳에 직접 가게...네 친구들 중, 미나세 이오리의 힘을 빌리면, 조용히 알 수 있지 않아?"
미나세 이오리는 글로벌적인 재벌인 미나세 그룹의 일원. 당연히 전문 주치의도 있을 것이고, 보안이나 기타 세세한 부분에서도 섬세하고 빠르게 일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나세 家에서 관리하는 산부인과 의사를 통해서 임신 사실을 알아보면 기자들에게 들킬 일도 없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응. 한 번 이오리에게 부탁해봐야 겠네. 용건은 그것 뿐]
"그것 뿐이라니......아니, 그것 뿐이야"
한순간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자각하고 깜짝 놀란 토우마
'정신 차리자, 아마가세 토우마. 언제부터 그 여자를 좋아했다고 이 난리야. 너는 단지 그녀가 네 아이를 임신했을까봐, 책임지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책임지겠다고 말하는게 무서워서 그런 것 뿐이야'
그래도, 만약에, 정말로 그녀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토우마 군의 말대로...만약에 내가 토우마 군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
"......솔직히 말해서, 지우라고 하고 싶어"
한순간의 불장난으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나 죽어갈 아기. 아기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욕이 나올 정도의 무책임한 행동과 말
"그렇지만...만약에...네가 그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면...말리지는 않을게. 책임을 져 달라고 한다면...양육비 정도는 건네줄 수 있어"
최악의 남자. 최악의 아버지. 최악의 가장. 여러가지 말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으나 토우마는 애써 무시했다.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아이를 기른다는 건,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건 매우 무겁고 신중히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잘 모르겠네...아마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판단을 내리지 못 할 것 같아. 일단은, 이오리와 상담해보고...피임약이라도 먹어볼까 싶어]
"그래......"
[더 할 말은 없는 거지? 그럼, 이만 끌게, 토우마 군]
"......"
통화가 끊어졌다.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고서, 토우마는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으아아...머리 아파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
+2
1. 동료들과 상담
2. 어른들과 상담
"음...토우마 군. 청소년 성보호 법에 관련하여 이야기하자면 말이야"
"테루 씨. 그런 건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나 말해봐요. 법정싸움으로 갈 일은 없을테니까"
전직 변호사 텐도 테루와 경찰관 아쿠노 히데오는 골머리를 썩혔다. 어느날 갑자기 동정소년이 뜬금없이 같은 아이돌 소녀와 자고 왔단다. 그것도 상대는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 알려졌다간 후폭풍은 둘째치고, 둘 사이의 나이나 그런 것을 포함한 다른 문제들도 꽤나 많았다
"일단...너와 그녀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싶은데..."
히데오가 모범적인 질문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토우마의 답변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몸뿐인 관계야. 그 녀석은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다른 여자가 채갔어. 고백도 거절했고. 그 상황에서 나와 만나, 몸의 온기로 위로받고자 했던 여자야. 그리고 나는 그걸 거부하지 않았고"
"책임지지도 못 할 일을 냉큼 받아버리면 어쩌자는 거냐!"
전직 교사 하자마 미치오의 일갈. 토우마는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토우마 군. 나는 자네를 믿었다. 자네는 비록 바보지만, 성실하고 무슨 일에든 열심이며 책임감이 넘치는 학생이였어! 비록 방향성은 다르다고 해도, 나는 자네를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하필이면 이런 일을 벌인거지?!"
"어이어이, 미치오 씨. 너무 큰 소리 내지 말라고. 다른 애들이 듣겠어"
그런 미치오를 말린 것은 엔죠지 미치루였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물었다
"우선 현실적인 문제부터 따져보자. 너, 그녀를 책임질만큼의 경제적 능력은 되냐?"
"쌓아놓은 돈은...꽤 있어. 961 때부터 취미생활 이외에는 그리 크게 돈을 쓰지 않으니까. 지금도 일을 더 많이 늘리면 어떻게든 될테고"
"일단 이건 들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여기서, 카미야 유키히로가 끼어들었다
"토우마 군과 아마미 양의 관계가 발각되어, 언론의 먹잇감이 될 경우. 어떤 후폭풍이 밀려올지 모릅니다. 상대방 측에서 이 일에 대해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일단 그쪽의 어른들과 책임자와 이에 관련한 상의를 나눠서 없던 일로 해버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니, 잠깐. 토우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 그 여자애. 상태가 정상이 아닌 모양인데. 그게 가장 최우선 사항 아니야?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폭탄이잖아"
거기에 신겐 세이지가 이의를 제기했다
"사람의 마음. 특히나 그 나이대의 여자애 마음은 보통이 아니라고. 나도 '아마네'라는 조카딸을 접해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 그런 정신상태의 여자아이라면, 갑자기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아뇨, 거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세한 상황을 잘 몰라요. 한 번 그 아마미 양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할 지 모릅니다. 그녀가 가장 큰 문제라면, 그녀의 관점에서 주변이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지 부터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아마미 양을 찬 남자와 그 남자를 낚아챈 여자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와타나베 미노리의 말에, 사장 사이토 타카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내가 그쪽 사장과 책임자에게 연락해서 관련인물 싸그리 끌어모은 면담을 제안해보도록 하지. 회의 끝. 바로 실행에 옮긴다"
적극적인 어른들의 의견을 따라서, 토우마는 따라 움직였다
+2
1. 4인 면담(토우마, 하루카, P, 아즈사)
2. 다수면담(어른들이 꽤 많이 참석)
다들 빛이 잘 안 드는 어두운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모자와 안경까지 쓰는 등 변장을 했기에 누가 누구인지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마주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하루카"
"그러게요, 프로듀서"
P의 옆에는 아즈사가, 토우마의 옆에는 하루카가 앉은 형태로 서로 마주보는 테이블. 거북한 분위기가 물씬 흘러나온다
"이오리네 집안에서 관리하는 의사 중 한 분에게 검사를 받았어요. 다행히 임신은 하지 않았다고 해요. 관계를 가진지 며칠 안 되어서, 단순히 아직 제대로 된 반응이 안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요"
하루카는 처연하게 웃었다.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현재 관계도는 옆나라 막장 드라마의 전개와 거의 동일시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P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선 상황을 제대로 정리해보자. 나는...아즈사 씨의 제대로 된 교제를 시작했다. 지금은 아즈사 씨가 계속 아이돌 활동을 하길 원하기에 가만히 있지만, 시간이 흘러 아즈사 씨가 은퇴를 할 때 즈음, 조용히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야. 그렇기에, 나는 하루카. 너의 고백을 거절했어"
"그리고 저는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토우마 군에게 안겼고"
"나는 낼름 받아먹었지. 도둑고양이처럼"
분위기가 다시 싸~ 해진다. 잠자코 가만히 있던 아즈사가 물었다
"저기, 하루카짱. 옆자리의 아마가세 군에 대해서는, 현재 어떻게 생각하니?"
하루카는 토우마를 돌아보았다. 토우마도 그녀를 돌아보았다. 둘 사이에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하루카 쪽에서 다시 먼저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친구요. 친구라고 생각해요. 라이벌일 수도 있고"
"연애적인 의미로는...그런게 없니?"
"고작 한 번 잤다고 해서 연인이 되는 거냐?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읽으셨구만?"
비꼬듯이 말하는 토우마. 아즈사는 할 말이 없어졌다. 나이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텐데도, 그들과 자신 사이의 인식의 차가 20년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P가 끼어들었다
"그래...아직은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온 것일수도 있다고 했지? 앞으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보면서, 나중에 정말로 임신을 하게 됬다면...그땐 어떻게 할 거니?"
"글세요...지워야 할까요? 아니면 은퇴하고 홀로 키워야 할까요. 저, 이래보여도 일단은 765 프로 올스타의 리더고, 하는 일도 꽤 많아서, 제법 돈 많이 벌었어요? 지금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먹고 사는 길에 큰 지장이 없기도 하고요. 아, 토우마 군은 어떻게 생각해?"
"제대로 된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거야. 그래도, 만약 네가 책임을 져달라고 한다면──양육비용 정도는 공동으로 제공하겠어. 그걸로 너와 있었던 일은 없던 일로 치는 거야"
"너무하네, 토우마 군...거짓말이라도 먼저 책임져준다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사랑하지도 않은 여자하고, 사랑하지도 않는데 관계를 맺고, 사랑하지도 않는 아기를 키워서 좋은게 뭐가 있어? 얼마 못 가 이혼하게 될 걸? 너도 마찬가지잖아. 넌 날 사랑하지 않아.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고"
정이 메말라있는 관계. P는 두 사람을 보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전까지는 나름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토우마 쪽에서 일방적으로 이기겠다고 불을 피우며, 하루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는, 성별이 달라도 같은 목표를 향하는 라이벌과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날. 새해 첫날이 오기 수시간 전에 있었던 일. 그때의 일로, 모든게 틀어져 버렸다
누가 가장 많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P는 아즈사를 사랑했고, 아즈사도 P를 사랑했다. 그래서 하루카의 고백을 거절했다. 하루카도 P를 사랑했지만 마음을 접어야 했고, 그걸 대신할 남자를 구했다. 우연히 지나가던 아마가세 토우마가 거기에 딱 걸렸고, 토우마 본인도 자신이 P를 대신할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계약서를 작성하자...토우마와 하루카는 앞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말 것. 나와 아즈사는 서로 사귄다는 것을 티내지 않고 은퇴할 때까지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 이 정도면 된 거겠지?"
"그러려면...제 은퇴시기를 조금 더 앞당겨야 할 것 같네요"
"아즈사 씨...?"
"저는, 아이돌의 일도 좋지만...P도 그만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류구코마치는 오래 전에 해체되었다. 아즈사가 영화 쪽으로, 아미가 마미와 함께 예능 쪽으로, 이오리가 홀로 무대 위에 솔로 데뷔를 하려고 나갔을 때 더 이상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것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행동과 일에 책임을 지는, 그런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가세 군과 하루카도...약속할 수 있니?"
"그걸로...이 구질구질한 상황을 끝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네. 저도 그걸로 좋아요"
그렇게, 당사자들간의 계약으로 일단락이 났다
+2
1. 한동안 만나지 않는다. 대화도 없다. 연락도 없다
2. 완전히 관계를 끝낸다
한달 후. 우연히 하루카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토우마는 망설이다가 그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이렇게 연락하는건 오랜만이네, 토우마 군]
"용건만 말해"
토우마의 재촉에 하루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임신이래]
"......"
토우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최악의 상황이 결국 눈 앞에 다가오고 말았다
"...만나서, 만나서 이야기하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주절주절 뭔가 말해야 하는데, 나오는 건 달랑 만나자는 이야기 뿐
[알겠어. 우리 둘끼리 만날까?]
"그건......"
+2
1. 둘끼리 만난다
2. 어른 동반(부모 제외)
"안녕, 토우마 군"
"......안녕"
토우마는 하루카의 배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날씨가 추워서 두툼한 코트를 입었다고 해도, 배가 불룩 나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하루카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1개월을 조금 넘긴 거니까. 티가 나려면, 지금으로부터 대충 4개월은 더 지나야 해"
"그런가......"
걸으면서, 하루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런데, 나...아직 이 아이를 어떻게 할 지 정하지 못 했어"
"......낙태 하지 않을거야? 아이돌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데?"
"응. 그리고 원했던 임신도 아니었지. 이오리도 4개월 내로 정하라고 했어. 그때쯤 되어야, 765 프로 올스타 신곡 준비라는 핑계로 1년 정도 시간을 끌 수 있다고 말했거든. 낙태를 하고, 건강 관리하고, 다시 몸매를 이전의 때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래"
솔직히 최근 입맛도 까다로워진 것 같아─라고 하루카는 덧붙였다. 토우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책임한 관계. 무책임한 임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의 몸으로는, 그녀의 고충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솔직히 무섭긴 해. 이 배 안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있다고 하니까. 내게서 영양분을 가져가는, 그리고 어쩌면...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는 생명"
"......"
출산하기로 결정을 하면, 은퇴를 해야할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기로 매일매일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 없이 낳은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고, 정신나간 사생팬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아마미 하루카는 지금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아마가세 토우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녀를 보호하려 들면, 그까지 휘말려 들어가,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다. 아직 부모님들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두 사람. 이걸 말하면,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다
"그냥 낙태를 해. 그게, 우리 둘 모두를 위해서 좋은거야"
"하지만, 이 아이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 원하지도 않았는데 죽어버리는 이 아이는?"
"아이 하나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쌓아올린 건 전부 포기하고, 그 아이에게 전부 맡기자고? 다른 동료들은, 회사는 어쩔 생각인건데? 행여나 들키기라도 한다면...모두가 끝장난다고"
"......토우마 군. 이전에 했던 말 기억해? 책임져 달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던 것"
잊을 리 없다. 잊을 수 없다. 아무리 그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나...4개월 동안 계속 고민해볼거야. 그리고 결정을 내릴거야. 그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토우마 군은 그걸 받아줄 수 있어?"
"......"
토우마는 머릿 속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낙태를 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출산을 할 경우 어떤 식으로 무난하게 수습할 것인가. 무겁게, 입을 연다
"네가 책임져 달라고 한다면...은퇴하고, 결혼해줄게"
이미 한 배를 탔다. 이제와서 그녀와 아이 둘만을 떠나보낼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간은 되지 못 한다.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다. 여자 하나 제대로 직시하지 못 하고, 헌팅조차 못 하는 숙맥이라고 해도, 한 번 내린 결론은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
"미나세에게 부탁해서, 출산 시기를 속여달라고 하자. 은퇴하고 결혼하면, 최소 3년 정도는 잠적할 수 있어. 너는 집 안에만 있고, 내가 가끔씩 밖에 나가서 쇼핑을 하고 오는 형식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돈이 꽤 된다. 여태까지 모아두었던 피규어를 비롯한 덕질용품들도 팔면 꽤나 값어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 안에만 있어도 3년은 놀고 먹으며 살 수 있다
하루카는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토우마를 올려다 보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후회해. 지금 내가 이 말을 왜 하고 있는 거지? 라고도 스스로가 미친 것처럼 느껴져...하지만, 나는 비겁한 남자가 되어가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아"
"톱 아이돌의 꿈을 포기할 수도 있는데?"
"너도 출산을 하면, 자연스럽게 그 꿈을 포기하게 되는 거잖아? 내 라이벌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네가 그 꿈을 포기한다면, 나도 못 할 건 없겠지...그리고, 내 개인의 꿈을 위하여 모두를 희생시킬 수는 없어"
그들은 짊어지고 있는게 많다. 동료, 회사, 팬 그리고 꿈. 그 모든 것을 포기하면 분명 엄청나게 후회할 것이다. 눈물도 잔뜩 흘리겠지. 그럼에도, 서로가 결정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선을 넘는 행동을, 그들은 하지 못 한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고마워, 토우마 군...그래도, 나 혼자만의 인생이 걸린게 아니라, 토우마 군의 인생도 걸려있는 거니까...좀 더 생각해볼게"
그 말을 끝으로, 토우마와 하루카는 또다시 헤어졌다
+2
1. 낙태
2. 출산
삭제가 안 되면 그냥 없던 걸로 치고 넘어가죠
그 만남으로부터 4개월 후. 하루카는 토우마에게 말했다. 토우마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님에게는?"
"말했어. 당연히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 왜 갑자기 자취를 하나 싶더니, 이걸 위해서였냐고. 하지만, 토우마 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니까, 울면서 아무 말도 못 하시더라고"
"......아주 부모님 심장에 대못을 박아버리는구만"
"응...나, 정말로 불효녀네..."
토우마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저, 토우마입니다. 예...결론 나왔어요.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주세요. 저, 은퇴하고 아마미 하루카랑 결혼식 올릴 겁니다. 뭐, 결혼식은 그냥 조촐하게 아는 사람들만 모여서 열 거에요. 그냥 그렇게만 알아두세요...예. 사정,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침없이 다음 사람들에게도 알린다
"호쿠토. 지금, 쇼타와 같이 있지? 응...목소리만 들어도 다 안다고? 그래...이해해줘서 고맙다. 너희들과 같이, 쥬피터로 활동할 수 있어서, 정말로 즐거웠다. 나 없이도 잘 굴러갈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다, 쥬피터가 아니어도 이미 활동 노선을 확실히 잡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해...그래, 정말로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마지막은 부모님이다
"나, 결혼해요......그래요.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거냐고,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전에 말했잖아요. 아마미 하루카하고 잤다고. 그때는 지금만큼 큰 소리 치지는 않았잖아요...예. 그래요. 그때는 단순히 잤다고만 얘기했죠. 근데, 얘...임신해버렸거든요...지우라고? 아버지. 당신이 알던 아마가세 토우마는, 여자를 임신시키고, 아이를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없었다는 살아갈 쓰레기 자식이었어?! 할 거야! 은퇴하고, 결혼할 거라고! 그렇게만 알아둬!!"
그리고 탁 끊어버린다
"이걸로...나도 너와 같지?"
"꼭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
"인생의 무덤으로 가는 길. 불효로 인해, 지옥의 밑바닥까지라도 간다 한들, 못 갈 것 없지"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서로 사랑해야만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맞선으로 만난다던가, 결혼하고 나서 정을 키워간다던가.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이어질 수 있다면, 『첫사랑은 죽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같은 말 따윈, 세상에 없을 것이다
토우마는 하루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쯤 315의 사장이 765의 사장과 P에게 전화를 걸어 공식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세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겠지
"잡아. 이제 갈 시간이야"
"참 거침이 없구나, 토우마 군은?"
"어물쩍어물쩍 거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간섭하는 것도 귀찮고. 우리는...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살자고 말하는게 좋을 것 같으니까"
하루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서, 토우마는 하루카와 함께 걸어나갔다. 주변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것 따위는 관심없다. 지금 가는 장소가,. 그들이 혼인을 할 장소와 같을 테니까
*
기자회견 결과+2
1. 개판
2. 축하
이전부터 어울렸다느니, 똑같이 성의 맨 앞글자에 天자가 들어가서 어울린다느니 호평 일색이었다. 물론 젊은 나이에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팬들까지 배신했다는 말도 나왔지만, 토우마와 하루카가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 새로 생길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였다
아키즈키 료의 커밍아웃 이후 이전보다 훨씬 더 인기가 높아진 것처럼 이 세상의 팬들은 은근히 관용적인 사람들이었다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말이야......"
"조촐하기는 하지. 참가인원들이 화려할 뿐"
765, 315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돌, 사장, 매니저, 프로듀서 등 그들과 조금이나마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축하를 위해 찾아왔다
특히 그들의 부모님. 마음고생을 많이 시킨 불효자녀들의 결혼식에 결국 참가해 주셨다. 여전히 납득하지 못 하는 것도 없잖아 있지만,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부모. 결혼 이후 출산과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주례를 서는 것은 315 프로덕션의 사장 사이토 타카시
"신랑 아마가세 토우마는 신부 아마미 하루카를 사랑합니까?"
"사랑하지 않습니다"
주변이 술렁거린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대충 짐작한 사이토는 재차 하루카에게 물었다
"신부 아마미 하루카는 신랑 아마가세 토우마를 사랑합니까?"
"사랑하지 않습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내려앉은 결혼식장. 사이토는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두 분은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으려 하십니까?"
토우마와 하루카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한때의 불장난 상대가 눈 앞에 있다. 설마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지만,
"이것은 속죄. 평생을 안고 가야할 짐. 그걸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관계를 가졌다는 증거는 이 뱃 속에 있는 아이 하나 뿐. 하지만, 저는 이 아이를 배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더 아이에게 정을 품었습니다. 그렇기에,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을 결정했습니다"
"뱃 속에 있는 아이는 제 피를 이은 아이입니다. 그녀가 그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저 또한 그녀와 함께 아이를 길러야 겠지요. 그렇다면, 아이를 통해서, 부부 간의 정을 키워볼 생각입니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될 필요는 없다.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점 더 정이 싹틀 수도 있으니까. 토우마와 하루카는 그런 길을 선택했다
"그럼 신랑 아마가세 토우마는 신부 아마미 하루카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결혼, 후회하지는 않게 해주겠어. 어디든지 따라가 줄거야. 네가 나와 그 아이를 버리지 않는 한"
객석의 분위기가 다시 변한다. 사이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카에게 재차 같은 질문을 했다
"토우마 군과 있었던 일. 후회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배 아파가면서 낳을 아이라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금지옥엽처럼 키우지는 못 할 망정, 너와 함께 버릴 수는 없잖아? 끝까지 따라와줘. 죽음이 갈라놓아도, 사후세계의 끝까지 함께"
"물론. 넘어져도, 억지로 끌고갈거야"
"큰일이네. 나, 자주 넘어지는데"
미소짓는 두 사람. 그것만으로 이미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럼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모두의 축하 속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앞으로 그들이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는 계속 지켜봐야 알겠지만, 책임감 강한 두 사람이 안 좋은 의미로 결별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을 거라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
끝